완도군은 현재 고금도가 고구마 원조임에도 고구마 최초 전래지라는 것을 전혀 언급하지
않는다 고구마 원조농쟁은 오히려 부산 동래지역으로 학설이 굳혀지고 완도군에서도
고금도 고금 원조를 확실이 따질 필요가 있는것이 완도 고금도 고구마 원조는 전설로
치부되는 실정이다
왜? 고구마 원조가 완도 고금도인가 여러학설을 정리해 보앗습니다
1. 고구마는 고금도를 통해 처음 전래되었다.
대표적인 구황(救荒) 식품의 하나이며 원산지가 멕시코를 중심으로 한 중앙아메리카로 알려져 있는 고구마의 한국 전래에 관한 두가지 설이 있습니다.
첫번째는 고금도에 처음 전래되었다는 설, 두번째는 조선 통신사에 의해 부산에 처음 전래되었다는 설이 있습니다. 그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면…
첫번째 고금도에서 유래되었다는 설은 - 옛날 장흥 천관산에 살며 축지법에 통달한 위처사 (魏處士)라는 사람이 고금도 삼개문에 살고 있는 성처사(成處士)를 자주 찾아와 글과 재주를 겨루며 살았는데, 등거산 아래 득암리의 김처사가 같이하며 세 사람은 절친한 사이가 되었다. 그러던 중 어느날 일본인들이 해난사고로 표류한 것 을 이 세 처사가 구해 주었더니 고마움의 뜻으로 고구마 종자인 남감저(南甘藷) 를 주고 돌아갔다. 세 처사는 이것을 심어 먹으며 이웃한 고금도 주민들에게도 종자를 나누어 주었는데, 이것이 전국으로 퍼졌 나갔고 이름또한 고금도의 고금마 (古今麻) 가 고구마로 불리게 되었다- 는 것입니다.
두번째 고구마가 조선에 처음 소개된 것은 1963년 김여휘등이 유구(오끼나와)에 표착해 껍질이 붉고 살이 희며 맛이 마와 같은 식품을 먹었다는 기록 (조선왕조실록)이 있는데, 우리나라에 고구마가 본격적으로 수입된 것은 그보다 100년 뒤인 1760년쯤이다. 조선후기 참봉 이광려는 중국의
(농정전서)를 통해 고구마를 알게 되었는데, 이것이야말로 백성을 위한 작물이라 여겨
보급시키고자 하였으나 실패하였다
그러나 그의 친척인 동래부사 강필리가 재배에 성공하여 마침내 각지로 보급되었다. 동래부사
강필리는 고구마의 재식전파에 힘쓰는 한편, 한국 최초의 고구마 전문서인 <<감저보>>까지
지었다고 한다. 그뒤 김장순은 남부지방에서만 재배되던 고구마를 경기지방에서 시험재배하여
그 연구 결과를 <<감저신보>> 로 저술하였고, 서유구는 <<종저보>>를 저술하는 한편, 호남지방에서의 보급에 힘썼다. 1900년대 이후에는 고구마가 전국적으로 재배되게 되었다
2. 고구마의 이름은 고금마(古今麻)에서 유래되었다.
고구마라는 이름의 유래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설이 있다.
고구마가 처음 들어왔을 때 전라고 고금도 땅에서 많이 재배한데서 생겼다는 것
( 고금마 → 고그마 → 고구마 )이 그 첫째이고, 일본 대마도에서는 고구마로 부모를 잘
봉양한 효자의 효행을 찬양하기 위해 관청에서 고구마를 ‘고코이모’라 했는데 우리말로는
‘효행 감자’라는 뜻으로, 이 ‘고코이모’가 우리 나라에 들어와 ‘고구마’가 된 것
( 고코이모 → ? → 고구마 )이라 설이 그 두번째 입니다.
3. 현재 우리나라 정설은 고금도와 무관한 것 처럼 보입니다.
고구마가 조선에 유래된 것은 영조39년(1763년) 조엄이 대마도에서 고구마를 들여와
부산지역에 재배하게 한 것은 기록을 근거로 할 때 사실로 보입니다. 또한 일제강점기
부산동래의 고구마는 일본인들도 줄을서서 사 먹을 정도로 인기가 있었다고 하고,
그 품종을 ‘일산배 기’라고 하는 것을 봐서도 일본에서 들어온 ‘고코이모’가
부산 동래지역에서 재배되고 전국으로 전파된 것은사실로 보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의문은 남습니다.
- 기록만이 사실인가?
- 부산 이외지역으로 고구마가 전래될 가능성은 없는가 ?
- 고금과 관련된 설화는 전혀 근거없이 만들어 진 것이고 그래서 고금도 전래에 관한 설은 전
혀 근거가 없는 것인가 ?
- 고구마의 어원을 고코이모에서 어원을 찾는다면 ( 고코이모 → ? → 고구마 ) - 고코이모가
고구마로 바뀌는 중간에 다른 명칭이 있어야 하나 찾을 수 없다는 사실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지 ?
4. 고구마의 고금도 전래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
1763년 통신사 조엄이 일본 대마도에서 고구마를 조선에 갖고 들어와 부산 동래 지역에서 재배에
성공한 것은 사실로 보인다
- 그럼 고금도에 처음 전래되었다는 설은 근거가 없는 것인가 ?
고금도에 처음 전래되었다는 설은 ‘설화’까지 포함하고 있고, 어원을 살펴보아도 고금도에
처음 전래되어 전국에 전파되었다는 설도 상당히 신빙성이 있어보인다.
특히 ! 고금도가 호남 유학의 중심무대 였던 것을 감안한다면, 고금도를 통한 고구마의 전국으로의 전파 또한 충분한 가능성으로 고려해 볼만하다.
- 고금도에서는 고구마을 고구마라 하지 않고 감재 or 감자라고 부르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
볼만하다. 타지역에서는 고구마라고 부르는데 왜? 고금도에서만은 고구마라고 하지 않고
감자 또는 감재라고 할까 ?
그것은 철수네 집을 철수네에서는 그냥 ‘우리집’ 이라고 하는 것과 같은 이치 로 볼수있다.
즉 고금마(古今麻)라는 명칭을 사용할 수 있는 지역은 고금에서 유래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
는 타지역에서 만 사용 할 수 있는 것으로 설명할 수 있다.
5. 고구마의 고금도 전래에 대한 주장의 필요성
각 지자체는 인물, 특산물, 설화등에 대한 원조논쟁을 열심히 하고 있다. 대충 살펴보면 ….
- 대게 : 경북 영덕군과 울진군의 대게 원조 논쟁
- 홍길동 : 홍길동전 작자인 허균의 출생지인 강원도 강릉시와 홍길동전 탄생지인 전남 장성
군의 ‘홍길동’ 을 둘러싼 원조 논쟁
- 세종대왕 눈병치료 수(水) : 충남 연기군 관정리 약수와 청원군 초정약수간의 원조 논쟁
- 심청이 논쟁 : 곡성은 소설의 배경이 된 설화, 옹진은 소설의 무대가 된 ‘인당수’등 지명을 각 각 내세워 연고를 주장한다.
- 별주부 : 경남 사천군과 충남 태안군
- 변강쇠 : 경남 함양군과 전북 남원시와의 논쟁
- 논개 : 논개가 숨진 진주와 태어난 전북 장수군(태어난 곳)과의 논쟁
이처럼 각 지자체 ‘원조논쟁’에 열심인 이유는 간단하다. 이 논쟁을 통해 관광소득 향상과 지역 이미지 제고를 꽤할 수 있는 두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6. 완도군에 바란다.
완도 & 고금도의 고구마 원조 주장이 필요하다.
해남군과 해남군 화산면은 화산 특산물 ‘고구마’에 대해 농협과 함께 대대적인 홍보를 하고 있
고, 이를 통한 농가소득 향상에 기여하고 있다.
이처럼 완도군과 고금도는 고구마에 전래지로서의 특성과 장점을 살려 1차적으로는 고구마
생산 및 판매 그리고 농가소득향상을 위한 노력을 해 주길 바란다.
특히 고금도는 충무공 유적지, 특산물 유자와 함께 고구마 최초 전래지로서의 장점을 살려,
지역 축제로도 발전 시켜 나갈 수 있는 계기를 만들었으면 한다
첫댓글 으랏차차~ 아자 아자!!! 고금도 고구마 최초 전래지라는것을 언능 규명하였음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