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여행기는 아쉽게도 사진이 없어요. 처음이네요. 아쉽지만 다음편에 많이 올리겠습니다.
♠ ♠ ♠
건물로 들어가기 전에 아저씨는 민박집의 번지수를 알려주면서 주의하라고 일러주었지만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글쓴이 주:66G번지. 같은 번지라도 A, B, C...에 따라 입구가 달라진다). 현관문을 지나면서도 마지막으로 한 번 힐끗 뒤를 돌아보았다. 다행히 우리의 뒤를 쫓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계단을 한 층 걸어올라가서 막대 형광등이 줄지어 켜 있는 긴 복도를 따라가니 끝언저리 오른 편에 민박집이 위치하고 있었다. 안에서는 죠셉과 낮에 통화를 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아주머니가 나와서 우리를 맞아주었다.
나는 다소 깜짝 놀랐는데 그 이유는 첫째, 얼굴이 80년대 어머니들이 많이 바르시던 마사지 크림을 바른 것처럼 번들거려서였고 둘째, 밤인데도 눈썹과 속눈썹의 화장을 지우지 않아서였다. 그리고 이내 나는 그것이 눈썹 문신임을 알아차렸다. 눈썹 문신 라인들이 아주 푸른 빛을 띄면서 피부속에서 은은하게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민박집은 현관쪽에 작은 거실이 하나 있고, 소파 몇개와 컴퓨터가 한 대 놓여있었으며, 집안의 복도를 따라 좌우로 숙소들이 있었고 끝편 오른 쪽에 주방과 식당이, 그리고 좌측편에 세면실이 있었다. 우리는 하루 이틀만 묵다 갈 요량으로 왔기에 짐이 많지 않았으므로 가벼운 짐을 숙소에 풀고 지친 몸을 쉬게 할 겸 샤워부터 했다. 샤워를 끝내고나니 한결 기분도 좋아졌다.
마침 우리가 도착한 이후에 민박집의 저녁 식사 시간이 되었다. 집에 머물고 있는 학생들이 다 나와서 식사를 했는데 한꺼번에 사람들 파악하기는 좋았지만 늘 그렇듯이 왠지 불편한 기운이 감돌았다. 특히 인사를 해도 형식적으로 받고 눈을 마주치지 않는 사람은 무척 불편한데 그 커플도 예외는 아니었다.
남들 식사가 끝날 때쯤 느릿느릿 나타난 그들은 영국 유학생 커플이라는데 방학을 이용해 이태리 여행을 와있는 상태라고 했고 둘이서만 샤워실 옆 독방을 쓰고 있었다. 집에는 알바때문에 귀국을 못한다고 말했다는데 사실 그들이 그리 좋게 보이지는 않았다. 집에 거짓말을 하고 어린 남녀가 밀월 여행을 온 데 대한 도덕적 잣대를 들이밀었기 때문은 아니었다. 그들에게서는 묘한 독소가 풍기는 듯이 느껴졌다. 그들의 태도는 이를테면 이런 식이었다.
[말을 시키면 대답은 하겠지만 너희들과는 기본적으로 대화하고 싶지 않아. 말을 할 필요가 없거든. 그 이유는... 내가 편하고 즐겁게 여행하면 그만이고 너희들은 우리의 편함과 즐거움에 전혀 도움이 되질 않아. 그러니 웬만하면 우리에 대해 알려고 하지 않아 줬으면 좋겠는데. 글쎄, 둘만의 여행... 어떻게 되겠지. 책임? 짜증나게 그런거 묻지 말아줘.]
식사는 대체로 입맛에 맞았는데 한두가지 중국식의 향료가 섞여있는 음식이 있어서 맛이 생소한게 있었다. 나는 열심히 그 향료음식의 이름을 물어보았는데 다 잊어버리고 말았다.
식사를 마치고 식당으로 통해있는 베란다에 나가 보았다. 베란다에서 내려다 보니 다른 집의 발코니가 다 들여다 보였다. 조셉과 나는 잠시 훔쳐보는 사람이 되어 남의 집을 엿보았는데 그것도 이내 싫증이 났다.
나폴리의 밤공기를 느껴보았다. 후텁지근한 공기가 내 주위를 꽉 채우고 있었고, 가끔 그릇이 달그락거리고 작게 티비 소리만 들려올 뿐 동네는 고요했다. 베란다에서 고개를 빠꼼이 빼들고 나폴리를 내려다 보았다. 잘 보이지 않는 시내를 애써서 보려고 하다 보니 겨우 담장 하나만으로 예의 '정글의 법칙'만이 존재하는 'wild world'로부터 격리되어 있다는 사실이 믿겨지지 않았다.
다시 식당으로 들어왔다. 우리는 여행 코스를 아직도 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카프리로 갈 것인지, 아말피로 갈 것인지, 아니면 소렌토나 폼페이로 갈 것인지... 사실 나폴리에 내려 올때는 분위기 봐서 이틀 정도 머물면서 한번에 다 보고 올라가는 것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런 마음은 싹 사라진 상태였다. 어서 이 나폴리를 벗어나야겠다는 생각 뿐이었다.
늘 나의 의사를 존중해서 말하던 조셉도 이번만은 예외였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하루만 있다 간다."
하지만 이틀을 있든, 하루를 있든 갈 곳을 정해야 하는데, 문제는 어느 떡이 더 큰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 때 밑져야 본전이라는 심정으로 도움을 청한 것이 문신을 하신 주인 아주머니였다. 아주머니와 이야기 하는 내내 눈썹밑에 문신 라인을 쳐다보고 있기가 너무 민망해서 나는 테이블을 보고 이야기했다. 그런데 아주머니는 정말 보기와는 너무 다른 분이었다.
우리가 카프리와 아말피에 대해 묻자 차근차근한 말투로 각각의 장단점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말만으로 모자라면 슬그머니 일어나 메모지를 가지고 와 적으면서, 열차를 타고 어디서 내려서 어느 버스 정류장에서 몇 번을 타면 된다라는 식으로, 각각의 교통수단의 가격은 얼마라는 것까지 알려주는 것이었다.
그녀의 상세한 정보에 우리는 혀를 내두를 수 밖에 없었는데 그녀가 주는 정보는 자신이 설명하는 지역을 모두 스스로 가보고 정확히 기억해내서 제공하는 만큼 무척 생생했다. 민박집 주인 노릇을 하려면 시간이 그리 넉넉치는 않을텐데 언제 그렇게 다 다녔는지 궁금했다. 아마도 그녀는 여행을 무척이나 사랑하는 사람인 것 같았다.
우리가 그렇게 처음의 어색한 느낌을 다 털어내고 그녀와 즐겁게 대화를 나누고 있을 무렵,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아주머니는 한참을 통화하면서 뭔가 굉장히 걱정을 하고 애가 타는 듯이 통화를 했다.
통화가 끝난 후 무슨 일인가 물었더니 투숙하던 학생 너댓명이 아말피를 간다고 나섰다가 길을 잃었다는 것이었다. 포지타노라는 곳을 돌아보다가 돌아가는 버스를 탔는데 엉뚱한 곳에 도착하고 말았다는 것이었다.
막차도 끊어진 그 때 시각이 밤 10시 반 정도. 아주머니는 전화에서 무슨 개 짖는 소리도 나고 큰 일이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무척 걱정을 하셨다. 그들은 그 곳에서 하루를 자고 이튿날 돌아오겠노라고 했다 하였다.
아주머니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보니 어느덧 시간이 12시가 가까와져서 우리는 그만 들어가겠노라고 일어섰다. 방으로 돌아와보니 아까 길을 잃었다는 학생들의 것으로 보이는 배낭만이 주인없는 침대를 지키고 있었다.
방에는 우리 외에도 서너 명의 사람이 더 있었다. 그 중 단연 눈에 띄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바로 아까 9시경부터 잠을 자는 남자였다. 창문 아래 자기 침대에서 무지막지하게 코를 골면서. 그는 키는 커보이지 않았지만 짧은 스포츠 형 머리에 근육이 좀 발달한 체형을 가지고 있었다.
그의 코고는 소리는 어찌나 큰지 우리는 문소리가 클까봐 조바심을 내는 일 따위는 할 필요가 없었다. 그냥 쿵! 하고 문을 닫아도 되었으니까. 그러나 잠을 청할 시간부터가 문제였다. 어찌하면 곱게 잠에 빠져들 수 있단 말인가.
그런데 가만히 누워서 분위기를 파악하자니 그의 코골이에는 패턴이 있었다. 주구장창 코를 골아대는 것이 아니라 5분 정도 골고 5분 쯤 휴식을 취하는 주기가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그 고요한 5분을 틈타서 얼른 잠에 빠져들어야만 했는데 하루 종일 걸어다니고 기차와 거리에서 시달린 우리로서는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폭풍우처럼 몰아치는 그의 코골이가 한타임 지나가고 마침내 침묵의 시간이 다가왔다. 때를 놓칠세라 죠셉과 내가 얼른 잠에 빠져들려 애를 쓰고 있던 그때였다. 코골이와 다른 소음이 우리의 청각을 찢었다. 비교적 짧고 불쾌한 소음이었다. 방귀소리였다.
소리의 길이로 보아 상당한 개스가 분사되어 나온 것으로 추측이 되었고 그와 머리를 맞대고 누워있던 나는 반사적으로 흠짓 숨을 멈추고 말았다. 그리고 그때 더욱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다량의 개스가 방출되던 그 순간, 열린 창문 너머로부터 공교롭게도 나폴리 여름밤의 산들바람이 불어들어왔던 것이다! 달빛에 곱게 드리워진 얇은 망사 커튼이 하늘거렸고 바람은 남자 방을 부드럽게 훑고 돌아나갔다(이튿날, 창문의 맞은 편 침대에 누워있던 죠셉에게 물었더니 개스가 분사되고서 때마침 바람이 불어들어오는 것을 발가락으로 느끼는 순간, 냄새는 아직 도착하지 않았지만 앞으로 닥칠 일에 눈앞이 캄캄해졌다고 했다).
어떻게 잠이 들었는지 모르게 자다가 새벽 3시 경 화장실에 가기 위해 일어났던 나는 그 코고는 남자가 자리에 없는 것을 발견했다. 어디 담배라도 피러 간것으로 생각을 했는데 새벽 6시 경 깼을 때 다시 보니 그는 여전히 자리에 없었다.
새벽 3시에 관광을 나서다니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의아하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나중에 아주머니께 아침식사를 하면서 여쭈어보니 그는 트럭 운전사라고 했다. 그말을 듣자 그제서야 모든 의문이 풀렸다, 그가 일찍 잠자리에 든 것부터 새벽에 나간 것까지.
죠셉과 나는 그렇게 민박집에서의 섭섭하지만 그리 아쉽지도 않은 하룻밤을 보내고 카프리로 가기 위해 길을 나섰다.
*다음 편은 지중해의 푸른 보석, 카프리 편입니다. 푸른 동굴의 아름다운 빛깔과 섬의 정상 몬테 솔라로에서의 기억은 평생 잊지 못할 것 같아요. 모두들 기대해 주세요~
▒ ▒ C l u b M e d i t e r r a n e a n ▒ ▒
누르시면 지중해 클럽"으로 이동합니다!
Basement Jaxx - Do your thing
첫댓글 앗싸,, 일등이닷,, 노래도 넘 경쾌하고 좋고 퍼런 눈썹의 아주머니와 독소를 풍기는 오만방자한 어린커플, 코를 골며 가스를 내뿜는 트럭 드라이버 ㅋㅋㅋ 재밌게 잘 읽었어요
앗싸,, 이등이닷.. ㅋㅋㅋㅋㅋㅋㅋㅋ 정말 재미있네요~ 담 푸른 카프리를 기대하며..
우와 ~ 담편 카프리 편이네요!~ 헤헤 제가 젤로 가보고싶어하는 곳중 하나에요!~~,,, 기대하고있을게요
ㅎㅎ.... 문신 아주머니 정말 자상하시네요...^^ 다음편도 기대할께요~ 사진이 없으니 글에 더 집중하게 되는것도 같아요
간만에 와서 넘 흥미진진한 여행기 읽고 가네여.... 카프리라... 우선 맥주부터 생각이 나는군여.. 꿀꺽~~~ 어여어여 담편 올려주세여......................
오랫만에 올라온 여행기인 만큼 넘 잼있게 읽었어요..시간이 꽤 지났는데도 상황상황 있었던 일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기억하고 계시네요..관찰력과 기억력이 넘 비상하신듯...(망사커튼이 하늘거리는 장면까지..대단!!^.^b) 무섭네요..^^;;ㅋㅋ
저 간접 출연? "투숙하던 학생 너댓명이 아말피에 간다고 나섰다가 길을 잃었다"는 학생ㅎㅎ
맞아, 다듀 간접출연.. ㅋㅋ
개스~ 산들바람~ 절묘한..타이밍~!!
사람은 겉모습만 보구 판단하면 안된다는 교훈적 내용이...저 산들바람이 소녀님 코에 스멀스멀 기어들었을걸 생각하니 갑자기 공포스러워 지는데요? ㅋㅋ 근데 사진 없는거 정말 아쉬워요~^^그래서 담편이 더 기다려지네요~
문신 아주머니 자상함은 인터넷에도 널리 퍼져있는듯 해여. 네이버 블로그에 나폴리 강씨 민박 관련 글을 봐도 '아주머니의 친절한 설명에 힘입어' 같은 표현 많이 등장. ^^ 사진이 없는 건 워낙 정신도 없었고 이때쯤이 디카로 시시콜콜 찍는거에 신물이 났던듯 싶네여.
정말 ㄹ ㅣ얼하게~~~잘 쓰시네염~~~감동이에여,,,,,,,,,푸른빛의 눈썹~~~ㅋㅋㅋ 담편 카프리가 정말 기대만땅임도 ㅏ,,,,!! 제가 이태리 여행 일정을 바꿔서 그날 날씨에 따라서 아말피 아님 카프리 갈듯 하거던여,,,^^
방을 훑고 지나간 산들바람이 하이라이트네요..정말 앞이 깜깜했겠당...소년님 글솜씨는 어딜 내다놔도 빠지지 않을거에요~~~좀 배우고 싶으네..
저두 이번에 갔다왔어요~~ 바닷빛이 환상이었답니다..~~
다운이 형은 도덕소년이기도 하네요..ㅋㅋㅋ
나폴리... 세계 3대 미항... 영화 리플리의 배경이었던 그 아름다운 곳이... 하루만 있자고 할만큼 별루였나요? ㅠㅠ; 문신아줌마 넘 좋으시네요.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