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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양 |
요녕성의 성도 심양(2005.9) 심양(Shen yang)은 중국 동북3성인 길림성, 요녕성, 흑룡강성의 최대도시인 요녕성의 성도이면서 중국 동북지방의 최대도시이다. 1625년 누루하치가 세운 금 나라부터 만주제국에 이어 청왕조가 북경으로 천도하기 전까지 수도로서 번성하였다고 한다. 북경으로 수도가 이전된 후에도 중국의 두 번 째 수도로서 동북 무역의 중심지로서의 중요성을 인정받은 곳이라고 한다. 1644년 수도를 다시 북경으로 옮기면서 개명하였고 청조가 중국을 완전히 통일한 후에는 이곳에 봉천부를 설치하였다고 한다. 심양이라는 이름은 1945년에야 다시 찾게 되었다고 한다. 금 나라를 시작으로 만주제국에서 청대까지가 부흥시기였기에 이곳에 가면 만주시대의 유적들이 잘 보존되어 있다고 한다. 심양은 상해, 북경, 천진에 이어 중국에서 네 번째로 큰 도시라고 한다. ◆북릉공원 정문이 노란 색 지붕이었는데 노란 색은 황제의 상징이라고 하였다. 대보차를 타고 들어가 내부를 돌아보았다. 북릉공원에는 청나라 제2대 황제 황타이지의 릉이 있는 곳이다. 진산로에 위치하고 있으며 청나라 황가의 왕릉과 현대적 공원이 합쳐진 관광 명승지라고 한다. 공원의 중앙에 있는 소능은 원래 청의 2대 황제인 황태극 부부의 묘이며 묘소로 가는 길 양쪽에는 명13능, 명자능과 비슷한 말, 낙타의 석조성을 볼 수 있었다. 소릉의 부지 내에는 유리기와로 된 아름다운 건물이 줄지어 있고, 그것을 둘러싸고 있는 화랑의 맞은편에는 소산의 능이 보였다. 소릉은 청의 2대 황제 태종 황태극과 효단문 황후의 릉이 있는 곳으로, 심양의 북쪽에 위치하고 있다하여 북릉이라고도 불린다고 한다. 이 공원의 호수, 산, 들은 병자호란 때 잡혀 간 조선 사람의 땀으로 만들어 졌다고 하니 참으로 통탄스럽다. 명조 황릉을 모방하면서 만주족왕릉의 특징을 계승하고 있다고 한다. 소릉의 또 다른 특징 중 하나는 수없이 많은 고송으로 현존하는 고송 만하여도 2천여 그루이며 소나무의 나이도 300살이 넘는다고 한다. 무성한 솔잎으로 하늘을 가리며 우뚝 솟은 고송들은 황금색 기와와 붉은 색 담장 사이에서 고색이 창연한 경치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제2대 황제 황타이지의 묘 봉분 위에는 뽕나무 한 그루가 있는데 얼마전에 벼락을 맞았다고 한다. 나는 그 벼락이 소현제자의 원본이라고 생각했다.
세계 문화유산 청소릉 입구
청소릉
한이 맺힌 청 태종릉을 바라보며
◆소수민속촌 서탑가 현풍할매집곰탕, 칠성식당, 천익당약방, 칠색문신관 등 거의가 한글로 표기된 간판이 있는 코리아타운이었다. 서탑가는 옛날에 지어진 심양시의 동, 서, 남, 북에 위치하던 탑과 절에서 그 서쪽에 있는 탑을 중심으로 한 거리란 뜻으로 이름이 붙게 되었다고 한다. 현재 서쪽탑은 남아있지 않다고 하며 서탑가는 현재 많은 조선족들이 모여 살며 학교, 병원, 문화관을 지어 그들을 위한 행정, 상업의 주축을 이루고 있는 독특한 소수민족 촌의 거리라고 한다. ◆청나라의 고궁 이 고궁은 중국에 현존하고 있는 양대 궁전 건축군 중 하나이며 제3대 황제인 순치제가 만리장성을 넘어 중국을 통일하고 북경으로 천도하기까지 황궁의 역할을 했다고 한다. 건축물들의 배치는 크게 동로, 중로, 서로의 세 구역으로 나뉘어져 있어 동로에는 청태조 누루하치 시기 건조된 대정전과 십왕정이 있으며 중로에는 청태종 황타이지 시기에 지어진 대중궐을 비롯하여 대청문, 숭정전, 봉황루, 청녕궁 등이 있다. 후궁들이 살았다는 청년궁을 지나오다 봉황루 앞마당에는 신간을 보았다. 이는 장대 위에 모이통을 달아둔 것인데 까마귀가 누루하치를 구해 주었기 때문에 까마귀에게 밥을 주기 위한 시설이라고 하였다.
청 고궁 입구(우)와 안에서(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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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병자호란을 기억하는 우리들이 심양도 알아야하는데 유수가 다녀와서 기행문을 올려 주었으니 잘 읽었네. 남한산성에서 행사를 많이 하는 나야말로 청석령이나 심양을 꼭 가 봐야 하는데 못 가 봐서 유감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