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어떤 그림은 안락하게 꾸며놓은 카페 화장실이나 살림집의 화려한 거실, 침실이나 부엌 벽 등, 곳곳에 두루 어울립니다. 그런가 하면 대기업 로비, 사장실, 혹은 종교적 성소에만 딱 맞는 그림도 대략 정해져 있습니다.
반면 어떤 그림들은 ‘어쩐지’ 미술관에서만 소화될 수 있을 것 같은데, 프리다 칼로의 그림들이 바로 그런 유형이라 생각됩니다. 왜? 너무 개인적이고, 너무 유혈이 낭자하고, 기괴하고, 또 너무 아픈 그림이라, 사적으로 소장하기보다는 공적인 전시에서 오히려 이해되기 쉽기 때문이지요.
책 이야기인줄 알고 있는데 웬 그림이냐구요? 둘 다에 관한 것이지요. 소설가이자 평론가, 조지타운 대학의 스페인어 교수인 바버라 뮤지카의 ‘소설 프리다’에 관해 쓰다보니 그림 이야기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주인공 프리다 칼로(1907∼1954)는 멕시코의 여류화가로, 1920∼40년대에 주요 작품들을 제작했습니다. 그 시대의 멕시코는 우익과 좌익의 유혈 혁명이 번갈아 일어나는 복잡한 시대였지요. 게다가 프리다는 소아마비에 걸려 다리를 절게되는 불운을 맞기도 했고, 18살인 1925년에는 교통사고로 자궁이 박살나기도 했어요. 그래도 이듬해, 이미 좌익 계열에 섰던 멕시코의 ‘국보급 화가’ 디에고 리베라와 결혼에 골인합니다.
어찌 보면 부부의 모습은 한 편의 희극이었습니다. 21년이나 연상인 남편 디에고는 185cm에 135kg의 거한이며, 다리를 저는 프리다는 작은 여인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중에도 프리다는 2∼3번에 걸쳐 아이를 갖게 되었지만, 모두 유산했습니다. 남편의 외도는 습관이었고, 척추까지 상해버린 프리다는 자신의 고통을 모두 그림에 털어놓았습니다. 그녀의 그림은 상징적인 구상화로서, 자신과 남편인 디에고, 출산, 정체성과 일상에 대한 그리움, 증오, 온갖 역겨움을 화판에 토해낸 것이었습니다. 프리다는 그런 행위로서 삶을 이어나갈 수 있었습니다.
자, 이런 치열한 삶과 그 분출물인 그림들을 외면하고 싶지는 않을까요? 너무 고통스런 광경이기에?
작가인 뮤지카는 동생 크리스티나가 정신과 의사에게 털어놓은 형식으로 고통에 찬 프리다의 삶을 풀어놓습니다. 작가가 고백하듯 이 책은 소설이며 많은 부분이 허구입니다. 그러나 위트 넘치는 필체와 사건의 전개는 ‘너무나 비극적이라 어쩌면 눈 돌리고 싶은’ 독특한 엘리트의 삶을 다시금 내 안에 포용할 수 있는 기회를 줍니다. 그런 것이 바로 문학의 힘이겠지요.
예전에 서양인들은 시와 그림을 같은 것이라 보기도 했습니다. 프리다 칼로의 그림들이 보기 어렵고 민망하신다면, 그녀의 삶을 애정으로 바라본 ‘소설 프리다’를 권합니다. 그림이 아니라면, 글로써 한 여성화가의 인생과 작품 세계를 이해하기는 더 쉬울 지도 모르겠습니다.
홍진경 서양미술사가
덧:
게바라 요즘 미술에 빠져 있지요
얼마전 고갱의 그림 <망고의 여인>을 살수는 없구..쩝
하여튼 프린터로 출력은 해서 거실 풍경화 사진 빼어내고
대신 끼워넣었습니다.
근디요 분명 컴으로 볼땐 그 여인의 나상이 분홍색 톤이었는디
쩝..푸르딩딩하게 누워있는 꼴이란..요염해서리..
하여간 요즘 그런 생각도 드네요 돈많이 벌어서 그림좀 팍팍사고 싶다는..
또하나 녹차잔 모으는게 취미인데 그것도 지금 안되니 음..
프리다 칼로.. 미술 좋아하시는 분은 그녀를 아실겁니다.
제가 멕시코에서 태어났다면 청혼이라도 한번 했을텐디..
제 어렸을적 꿈이 있어요 아니 중학생 때였구나.
노을지는 강가에 집을 짓고 저의 부인은 소아마비인데 대신 얼굴은 무지 이쁘고 그녀는 검은색 드레스를 즐겨 입으며 시를 씁니다.
전 그 옆에서 그녀의 조수노릇하는거..
프라다를 품어주지 못했던 디에고. 음 짜슥ㅡ..ㅡ
Re:프리다 칼로와 디에고 리베라(퍼옴)
번호:6030 글쓴이: 게바라
조회:41 날짜:2002/10/27 22:49
프리다 칼로 & 디에고 리베라
불꽃같던 두 화가
르 클레지오 지음ㆍ다빈치 발행
이제 누가 그들처럼 사랑하며 살아갈 수 있을 것인가. 사랑과 예술, 그리고 혁명의소용돌이를 함께 헤쳐갔던 격정의 삶.
20세기의 전반의 미술사, 혁명의 역사를 애증의 연인이자 예술적 영감의 상호 원천, 그리고 투쟁의 동지로서함께 했던 멕시코 부부 화가 프리다 칼로(1907~1954)와 디에고 리베라(1886~1957)의 그런 삶 말이다.
해마다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명되는 프랑스 작가 르 클레지오(61)가 쓴 ‘프리다칼로&디에고 리베라’는 이 비범한 두 인간에 관한 빼어난 평전이자, 억압받는제3세계 민중의 예술과 혁명에 대한 갈증의 기록이기도 하다.
1970년대 멕시코의 대학에서 불문학을 가르치면서 프리다와 디에고의 삶을 알게 된르 클레지오는, 서구 문명에서 볼 수 없는 라틴 아메리카의 원시적 생명력을 접하고 그들의 평전을 통해 어떤 존재의 대안을 추구한 듯하다.
“…이런 까닭에 그들 부부의 이야기가 놀라운 것이다. 삶의 우여곡절이나 비루함, 실망은 그들의 관계를 끊어놓지 못했다. 그들은 의존적인 관계가 아니라 끊임없이 소통하는 관계,마치 몸 속을 흐르는 피와 같고, 호흡하는 공기와 다름 없는 관계였다…
프리다는 고대의 멕시코였다.그녀는 아메리카 원주민의 창조적 영혼 그 자체였다. 신화의 피를 뒤집어 쓰고 지칠 줄 모르는 기억의 파도에 흔들리는 그녀의 영혼은 서구 세계에서무언가를 배워오는 것이 아니라, 마치 자기 살 속에서 뽑아내기라도 하듯 스스로의 내부에서 아주 옛날부터 존재해 온 정신의 편린을 길어 올렸다.”
르 클레지오는 이런 시적이고 투명한 문장으로 프리다와 디에고의 삶을 한 권의 책으로 완성해냈다.
둘의 만남을 르 클레지오는 ‘비둘기와 식인귀(食人鬼)의만남’으로 표현한다. 몽마르트르에서 피카소와 모딜리아니 등 큐비즘의 대가들을 만나는 유학 생활을 하고 돌아온 디에고는 1922년 공산당에 입당한이듬해 멕시코 최고의 명문 국립예비학교의 벽화를 그린다.
그와 스물 한 살 차이인 프리다는 이 학교 학생이었다. 예술과 혁명을 향한 열정은 물론,평생에 걸쳐 그 열정만큼이나 여인들을 탐닉한 욕망의 화신이기도 했던 디에고는 “무희처럼 발랄하고 날렵하며, 장난기에 넘치면서도 진지하고, 절대적인것을 향한 불길로 타오르던 비범한 소녀를 보았다”고 훗날 회고한다.
6년 후 프리다는 디에고의 세번째 부인이 된다.
토착문화에 기반을 둔 프레스코 벽화운동의 기수로 멕시코 현대미술 최고의 거장인디에고와, 20세기 초현실주의 미술의 대표적 화가이자 페미니스트의 우상인 프리다는 이렇게 결합했다.
이후 공산당 입당과 탈당, 미국 생활과 환멸,트로츠키와의 교유, 프리다의 다리 절단과 3번의 유산, 수차례의 별거와 재결합, 그럼에도 변치 않는 멕시코 사회변혁운동의 중심에 함께 있었던 그들의애증을 르 클레지오는 소설보다 더 드라마틱하게 재현했다.
책에 실린 196컷의 컬러ㆍ흑백 도판은 마치 그들의 삶을 눈 앞에 보는 듯 생생하게 전해준다.
프리다 칼로의 생애는 80년대 중반 이후 전기나 영화를 통해 국내에도 비교적알려진 편이다.
이마에 난 제3의 눈, 화면에 낭자한 음산한 피투성이 등으로 특징지어지는 그녀의 작품들은 르 클레지오에 따르면 “이보다더 사람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고 당황하게 만드는 그림은 현대 미술사를 통틀어서도 찾을 수 없는 것”이다.
혹자는 그녀의 그림을 ‘폭탄에 둘러진 리본’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어릴 적의 소아마비, 설상가상의 교통사고로 척추가 으스러진 불구의 신체적 고통 속에서 꽃핀 그녀의 예술과 사랑은 처절인동시에 영광이다.
프리다의 베갯잇에는 디에고와의 사랑을 암시하듯 ‘행복한두 심장’이라는 말이 수놓아져 있었다고 한다. 그녀는 일기장의 마지막 페이지에 이런 구절을 써 놓고숨을 거두었다.
‘이 외출이 행복하기를. 그리고 다시 돌아오지 않기를.’ 디에고는 여전히 반핵운동 등으로 혁명가들의 대변인 역할을 하다 3년 후 사망했다.
그는 프리다와 재로나마 영원히 결합하기위해 자신을 화장해 달라고 했지만, 멕시코 현대 미술에 1,000여 점의 걸작을 남긴 공로로 시민공원 유명인사 묘역에 안장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