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讀後感> 숯 굽는 미녀를 읽고
글-德田 이응철
프랑스 문학 3대 단편의 거장은 누구인가?
메리메, 모파상, 알퐁스도데이다.
비겟덩어리부터 쥐르삼촌, 목걸이,의자 고치는 여인, 달빛 미뉴에트 등 달콤한 모파상작품은 300여편에 이른다. 몇개 달착지근하게 그의 작품을 읽다가 우연히 며칠 전 변방의 생소한 작품 하나를 읽게 되었다.
-숯 굽는 미녀(美女)
전혀 생소한 지은이, 무엇보다도 숯을 굽는 미녀란 제목에 매혹되어 읽게 된 것이라고 고해성사한다.
세계 단편 29, 삼성출판사에서 나온 예전 월부 책장사에 의무적으로 떠밀려 오랜 세월 서재 한켠을 지키며 나와 동행한 책-.
글씨가 10포인트 아래 세로로 잔 글씨, 누렇게 퇴색된 구정물 속에서 휑구어낸 듯한 종이에 깨알같은 글씨가 시력을 자꾸 괴롭힌다. 왜 그래도 자꾸 읽고 싶을까? 미녀라는 유혹, 그저 남자로 미녀에 천착(穿搾)하는 편향을 고희(古稀)의 포구에서조차 모를 일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중세 방랑기사를 등장시켜 인적없는 고도에서 요녀(妖女)를 만난다.
백년을 살고도 아직 17세의 소녀모습을 하며 숯을 굽는 여인, 그는 혼자 두 강물 줄기 사이 중간에 우뚝 솟아있는 섬의 주인이다. 기사 임관식에도 참관했던 기사가 모처럼 여행중 어느 개인 초가에서 일박을 하면서
강건너 숯굽는 미녀 얘길 벽공(碧空)으로 전해 듣는다. 장인이 70일 때 그 여인을 보았는데 지금도 아름답다?
아침의 안개가 하얀 너울로 울타리를 친 듯이 드리워져 있는 새벽, 야성적인 여자를 만나기 위해 기사는
말을 채찍질해 강을 헤엄친다. 사내들의 로망인가? 기사 막쌍스는 늘 혼자 풀죽어 사기 저하된 사회의 기사를 노래한다.
-신앙도 잃고, 시종도 여자도 없는 나는 방랑기사(放浪奇士)라네-.
-내 영혼을 위해 기도해 주는 이 아무도 없는 난 초라한 기사라네
갑옷을 입고 긴 칼을 차고 산간지를 달려가 숯을 굽는 미녀 소문을 들은 주인공 막쌍스-. 전설적인 미녀 얘기, 홀로 숯을 구으며 살아가는 여인, 검은 머리, 살결 치아가 흰 아름다운 여인은 마냥 고혹(蠱惑)적인 신비감에 젖게 한다.
누구일까? 독자를 미지의 세계로 유인하는 소설-. 완전 몰입이다. 달콤한 스토리가 쥑여준다. 입추가 지나니 역시 긴바지를 입어도 덥지 않아 봉의산 곁에 노후된 소양 1교를 건너 신사우동에 산뜻하게 차린 도서관으로 향해 맛있는 인절미처럼 단박에 마셔버렸다. 몇번씩 안경을 다시 고쳐 올리고, 차마 돋보기는 챙기지 못했지만 아직은 하며 입추 첫날에 읽은 단편의 향은 제법 향기롭다.
추운 계절이 올 무렵 강을 건너 찾아간오두막집, 이가 떨리고 부딪쳐 견딜수 없이 추위에 떨 무렵 나타난 여인-. 약간 그으른 자국이 남이있는 반듯한 이마, 해맑은 얼굴, 청년기 꿈꾸던 환상의 얼굴이었다.
기억할 수 없는 낯과 밤이 수없이 교차하면서 여인의 간병을 받으며 외딴 섬에 기거한 막쌍스 기사-.
정말 소문대로 여인은 숯을 구워 간간이 사러오는 뱃사공께 넘겨주면서 섬을 지키며 살아간다.
익은 오디와 생선을 정성껏 기사에게 권하며 여인은 급기야 갑옷을 벗기고 손수 지은 사아지 옷을 입혀주면서 섬은 두 사람의 낙원이 되지만, 고백이나 언약이나 달콤한 사랑이야기는 절제된 채 해가 가고 달이 뜬다.
정사(情事)-. 자연스럽게 하나가 되지만, 섬 이야기나 자신의 일생애 대해선 일체 함묵이다.
가끔 창을 열고 섬을 두리번거리며 등뒤에 숯굽는 여인에게 말한다.
-둘 중 한사람이 없어도 이 세계는 사막이겠지요. ㅎ
-아니예요. 당신에게 이 세계를 사막처럼 만들 수 있는 게 나겠지요.
알 듯 모를 듯한 남녀의 대화였다. 진심은 감추어두고 형식적인 한 몸뚱이가 된 느낌을 독자에게 무언(無言)으로 일러준다. 사랑이 없던 작은 섬에 향(香)을 피우며 하나가 됨이 얼마나 다행일텐데-.
힘껏 껴안으면 다스한 열이 배어들 정도, 정사를 치루고 여인은 다시 사라지고 일을 하고 다시 나타나는
그녀-. 읽으면서 내내 나는 백년 묵은 여우가 아닐까 하는 의구심머저 들 정도-. 푸하하-.그렇게 작가는 독자를 신비의 세계로 이끌어간다.
결국 어느 겨울 그 새벽, 기사는 회생되어 갑옷, 쇠투구를 쓰고 마구(馬具)를 달고 섬을 몰래 빠져 나온다.
3일간 눈이 내리니 강물은 사라지고 새로 결빙되어 길이 열린다.
그러나 아뿔싸! 언젠가 숯굽는 여인은 일러주었다. 섬을 떠난다면 길을 찾지 못할 것이라고!
결국 여인이 일러준 것처럼 결빙된 눈을 밟고 가다가 빠지고 쓰러지고 말은 혼비백산이 되어 저대로 가고,
힘없어 무릎 꿇고 사방을 두리번거리는 막쌍스 눈엔 두그루의 떡갈나무마니 보일 뿐 초가집도 샘물도 어디론가 사라져 보이지 않는다. 내리는 눈에 홀린 게 아닐까? 여전히 아름답고 젊고 용감한 여자는 어디서 지켜보는 것일까?
이 글을 맺는 마지막 글 한줄이 생각난다.
-첫번째 눈송이가 움직이지 않는 오른 쪽 눈꺼풀 위로 내려 앉는다. 그리고 수많은 눈송이가 떨어진다.
커다랗게 벌려있는 입에 눈이 가득 찬다.
소박한 단편소설이다. 무릎과 무릎사이의 뜨거운 사랑이야기는 절제되어 있다. 인적없는 고도에서의 사랑, 꽃피어나다가 주저앉는다. 당시 프랑스문예지에서는 단편의 새로운 경향이라고 추켜 세운 작품이다. 복고적인 취향, 진실한 사랑, 여인의 묵지(默識)-. 계속 이어지는 의구심들이 역시 인색하게 끝을 맺으며 독자들 몫으로 남고 나같은 여인편향에 젖은 사람은 그을린 미녀를 계속 떠올리겠지-.
그래, 신비감 속에 그을린 야성적인 미녀의 등장이 사랑과 매치되다가 주저앉은 프랑스 소설-. 밑줄을 긋고 퇴색된 마지막 장을 덮는다. 나의 경우였다면 천년만년 그 섬의 주인으로 남았을까 왜 기사는 떠나야만 했을까? 미녀(美女)일까? 마녀(魔女)일까? 입안에 계속 남아 언젠가 마신 당귀차처럼 오래 남는다.(끝)
첫댓글 판타지 소설로 어찌 이리도 소박할까? 몰입한다. 나도 모르게 요괴이든 구미호이든-.그 속에 파묻혀 섬의 주인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