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들강 솔밭유원지을 아시나요? 물이 맑아 전남 유일의 민물욕장으로 수많은 관광객이 찾아오던 드들강은 남평 읍민들의 자존심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예전의 아름다운 소나무 숲속 국민관광지 시민들의 아늑한 품속의 휴식처 드들강의 모습을 다시 찾아오는 곳으로 만들자는 목소리가 빗발친다. 이젠 남평읍의 소도읍사업으로 드들강이 새롭게 변하고 있으며 이젠 예전의 아름다운 소나무 숲속모습과 같이 국민관광지로 광주광역시와 인근도시에서 피서 인파들이 찾아주고있다 아직은 잔디를 심고 솔밭유원지를 아름답게 조성하는중에 있으며 모래백사장복원과 수영장과 테마공원이 조성되면 수많은 피서객이나 관광객이 이곳을 가족과 함께 나들이하며 휴식를 즐길수 있는 자연생태계의 강변으로 함께 해줄것이다 엄마야누나야 강변처럼 낭만과 추억이 깃든 아름다운 솔밭유원지로 기억될것이며 10월경 가을쯤엔 엄마야누나야 노래비도 건립될 예정이다 광주에서 찾아오는 외래 관광객을 비롯해서 찾아오는 이들로 들끓던 유원지가 황폐화된 데는 물의 오염이 가장 큰 원인이다. 시급한 이문제를 남평읍민이 함께 풀어나아가야 할 문제이다 지석강의 맑은 물에 투영되는 아름다운 남평 팔경중의 하나인 지석강의 물줄기는 유원지 중심부와 남평을 관통하며 흐르는 강물로 너무 푸르고 맑아 쪽빛처럼 푸른빛이 살아난다고 해서 남석(藍石)이라 했다. 남석이란 지명은 그래서 생겼는데 아쉬움이 많다. 마을 사람들에 의하면 인근에 있는 대규모 장어양식장에서 방출하는 물이 그대로 강으로 흘러들기 때문이라고 한다. 우리의 고전문학 심청전과 비슷한 전설이 담겨있는 남평의 드들강은 영산강의 대표적인 지류중의 하나이다. 공식 지명은 지석천이지만 이곳 주민들은 드들이의 전설이 서려있는 곳이니까 당연히 드들강으로 불러야 한다고 말한다. 먼 옛날 물 맑고 경치 좋은 이곳 마을에 일찍 어미를 여윈 드들이라는 소녀가 눈먼 아비를 뒷바라지하며 살고 있었다. “마님! 제가 일을 해 드릴 테니 쌀 한 되만….” 식량이 떨어진 드들이는 마을에서 잘 산다는 부잣집을 찾아 나선 것이다. “쯔쯔, 불쌍한 것. 그래 여기 있다.” 드들이의 치마폭에는 쌀이 가득 찼다. 이렇게 드들이는 비록 어린나이였지만 마을 사람들의 궂은일을 마다않고 열심히 해드리고 식량을 얻어 끼니를 근근이 이어 올 수 있었다. 그런데 이 마을에는 여름철에 홍수가 지면 강둑이 무너져 매번 농사를 망치는 것이 가장 큰 걱정거리였다. 마을 사람들이 한데 어울려 아무리 튼튼하게 둑을 쌓아도 무너져 버리곤 했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이상한 꿈을 꾼 마을사람이 해몽을 부탁하러 마을 어르신을 찾았다. “어르신, 어젯밤 제가 하도 이상한 꿈을 꾸어 해몽을 부탁하러 왔습니다.” “그래, 무슨 꿈이길래 그러는가?” “머리가 하얀 산신령이 나타나 둑이 무너지지 않게 하려면 처녀를 산채로 제물로 바쳐야 한다.” 신통방통한 꿈은 마을사람 모두가 똑같이 꾸었던 것이다. 지금부터는 오로지 제물로 바칠 처녀를 구하는 것이 문제였다. 몇날 며칠을 두고 마을 사람들은 이 문제로 고심했지만 답답하기만 하다. 마지막으로 이같은 딱한 고민을 전해들은 드들이가 제물을 자처하고 나섰다. 마을사람들의 은혜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그는 은혜를 갚을 수 있는 길이 이 길임을 알았고 혼자 남을 아버지를 동네사람들이 모두 보살펴주기를 바랬다. 결국 드들이를 제물로 받쳐 둑을 완성한 마을 사람들은 이듬해부터 홍수가 나도 아무런 피해를 입지 않고 피할 수 있었다. 그러나 비가 내리는 밤이면 ‘드들 드들’ 애절하고 가냘픈 드들이의 울음소리가 둑에서 들려왔다. 그래서 그 후부터 마을사람들은 이 강을 드들강이라 불러오고 있다는 것이다. 시인 묵객 즐겨찾던 ‘탁사정’ 청산녹수의 맑은 산수가 좌우로 펼쳐졌다. 물고기 뛰노는 맑은 경관이 길손들의 정신을 빼앗는다. 송림이 울창한 곳에 아담한 정자가 있었다. 윤선기가 지은 단층 팔각 골기와 건물로 대청형의 탁사정이다. 경승에 반한 시인 묵객들이 즐겨 찾던 곳으로 술을 마시고 시를 읊었다고 한다. 오늘날에도 드들강 유원지를 찾는 사람들은 정자에 올라 즐겨 논다고 한다. 강과 정자하면 나주출신의 나덕명이 떠오른다. 그는 임진왜란 시에 함경도 변방으로 피난 간 두 왕자 임해군, 순화군을 적지에서 구출해낸 인물이다. 임진왜란이 평정되고 난 다음 높은 벼슬길에 오를 수 있었지만 정자를 짓고 시를 쓰며 자적했다. 순수한 자연을 찬탄한 그의 시가 드들강과 잘 어울린다. 강정즉사(江亭卽事) 강가 정자에서 풍정강미초(風靜江湄草) 바람 자니 강가 풀 조용 해 지고 어경월하파(魚耕月下波) 고기는 달 아래 물결을 가르도다. 야한수불매(夜寒愁不寐) 밤이 추워 근심에 잠 못 이루는데 연외기어가(烟外起漁歌) 안개너머에서 어부의 노래 소리 들리네. 남평에 있는 고려시대의 것으로 여겨지는 석등이 있어서 지나온 역사를 증명해 주고 있다. 석등은 남평초등학교 교정에 있는데 이곳은 원래 조선시대 남평 관아의 객사인 영평관이 있었던 자리라고 한다. 동사(東舍)리라는 지명도 동헌의 동쪽에 객사가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송림이 울창한 곳에 아담한 정자가 있었다. 윤선기가 지은 단층 팔각 골기와 건물로 대청형의 탁사정이다 경승에 반한 시인 묵객들이 즐겨 찾던 곳으로 술을 마시고 시를 읊었다고 한다. 하천 기능을 되살리고 친환경적인 자연 공원으로 가꿔야할 것이다. 자연이 본래의 기능을 상실했을 때 그것을 복원하기란 몇 십배 몇 백배의 노력과 돈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나마 차일피일 미루고 하지 않으면 더 큰 대가를 치르게 된다. 드들강변의 하얀 모래둔덕이 아직은 살아 숨쉬며 사람들을 유혹한다. 모래 뒤쪽의 푸른 솔밭이 물빛과 함께 초록을 띤다.
드들강 솔밭유원지을 아시나요?
물이 맑아 전남 유일의 민물욕장으로 수많은 관광객이 찾아오던 드들강은 남평 읍민들의 자존심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예전의 아름다운 소나무 숲속 국민관광지 시민들의 아늑한 품속의 휴식처 드들강의 모습을 다시
찾아오는 곳으로 만들자는 목소리가 빗발친다. 이젠 남평읍의 소도읍사업으로 드들강이 새롭게 변하고 있으며
이젠 예전의 아름다운 소나무 숲속모습과 같이 국민관광지로 광주광역시와 인근도시에서 피서 인파들이 찾아주고있다
아직은 잔디를 심고 솔밭유원지를 아름답게 조성하는중에 있으며 모래백사장복원과 수영장과 테마공원이 조성되면
수많은 피서객이나 관광객이 이곳을 가족과 함께 나들이하며 휴식를 즐길수 있는 자연생태계의 강변으로 함께 해줄것이다
엄마야누나야 강변처럼 낭만과 추억이 깃든 아름다운 솔밭유원지로 기억될것이며 10월경 가을쯤엔 엄마야누나야 노래비도
건립될 예정이다 광주에서 찾아오는 외래 관광객을 비롯해서 찾아오는 이들로 들끓던 유원지가 황폐화된 데는
물의 오염이 가장 큰 원인이다. 시급한 이문제를 남평읍민이 함께 풀어나아가야 할 문제이다
지석강의 맑은 물에 투영되는 아름다운 남평 팔경중의 하나인 지석강의 물줄기는 유원지 중심부와 남평을 관통하며
흐르는 강물로 너무 푸르고 맑아 쪽빛처럼 푸른빛이 살아난다고 해서 남석(藍石)이라 했다.
남석이란 지명은 그래서 생겼는데 아쉬움이 많다. 마을 사람들에 의하면 인근에 있는 대규모 장어양식장에서
방출하는 물이 그대로 강으로 흘러들기 때문이라고 한다.
우리의 고전문학 심청전과 비슷한 전설이 담겨있는 남평의 드들강은 영산강의 대표적인 지류중의 하나이다.
공식 지명은 지석천이지만 이곳 주민들은 드들이의 전설이 서려있는 곳이니까 당연히 드들강으로 불러야 한다고 말한다.
먼 옛날 물 맑고 경치 좋은 이곳 마을에 일찍 어미를 여윈 드들이라는 소녀가 눈먼 아비를 뒷바라지하며 살고 있었다.
“마님! 제가 일을 해 드릴 테니 쌀 한 되만….”
식량이 떨어진 드들이는 마을에서 잘 산다는 부잣집을 찾아 나선 것이다.
“쯔쯔, 불쌍한 것. 그래 여기 있다.”
드들이의 치마폭에는 쌀이 가득 찼다. 이렇게 드들이는 비록 어린나이였지만 마을 사람들의 궂은일을 마다않고 열심히
해드리고 식량을 얻어 끼니를 근근이 이어 올 수 있었다. 그런데 이 마을에는 여름철에 홍수가 지면 강둑이 무너져 매번
농사를 망치는 것이 가장 큰 걱정거리였다. 마을 사람들이 한데 어울려 아무리 튼튼하게 둑을 쌓아도 무너져 버리곤 했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이상한 꿈을 꾼 마을사람이 해몽을 부탁하러 마을 어르신을 찾았다.
“어르신, 어젯밤 제가 하도 이상한 꿈을 꾸어 해몽을 부탁하러 왔습니다.”
“그래, 무슨 꿈이길래 그러는가?”
“머리가 하얀 산신령이 나타나 둑이 무너지지 않게 하려면 처녀를 산채로 제물로 바쳐야 한다.”
신통방통한 꿈은 마을사람 모두가 똑같이 꾸었던 것이다. 지금부터는 오로지 제물로 바칠 처녀를 구하는 것이 문제였다.
몇날 며칠을 두고 마을 사람들은 이 문제로 고심했지만 답답하기만 하다. 마지막으로 이같은 딱한 고민을 전해들은
드들이가 제물을 자처하고 나섰다.
마을사람들의 은혜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그는 은혜를 갚을 수 있는 길이 이 길임을 알았고 혼자 남을 아버지를
동네사람들이 모두 보살펴주기를 바랬다. 결국 드들이를 제물로 받쳐 둑을 완성한 마을 사람들은 이듬해부터 홍수가
나도 아무런 피해를 입지 않고 피할 수 있었다.
그러나 비가 내리는 밤이면 ‘드들 드들’ 애절하고 가냘픈 드들이의 울음소리가 둑에서 들려왔다. 그래서 그 후부터
마을사람들은 이 강을 드들강이라 불러오고 있다는 것이다.
시인 묵객 즐겨찾던 ‘탁사정’
청산녹수의 맑은 산수가 좌우로 펼쳐졌다. 물고기 뛰노는 맑은 경관이 길손들의 정신을 빼앗는다.
송림이 울창한 곳에 아담한 정자가 있었다. 윤선기가 지은 단층 팔각
골기와 건물로 대청형의 탁사정이다. 경승에 반한 시인 묵객들이 즐겨 찾던 곳으로 술을 마시고 시를 읊었다고 한다. 오늘날에도 드들강 유원지를 찾는 사람들은 정자에 올라 즐겨 논다고 한다.
강과 정자하면 나주출신의 나덕명이 떠오른다. 그는 임진왜란 시에 함경도 변방으로 피난 간 두 왕자 임해군, 순화군을 적지에서 구출해낸 인물이다. 임진왜란이 평정되고 난 다음 높은 벼슬길에 오를 수 있었지만 정자를 짓고 시를 쓰며 자적했다. 순수한 자연을 찬탄한 그의 시가 드들강과 잘 어울린다.
강정즉사(江亭卽事) 강가 정자에서
풍정강미초(風靜江湄草) 바람 자니 강가 풀 조용 해 지고
어경월하파(魚耕月下波) 고기는 달 아래 물결을 가르도다.
야한수불매(夜寒愁不寐) 밤이 추워 근심에 잠 못 이루는데
연외기어가(烟外起漁歌) 안개너머에서 어부의 노래 소리 들리네.
남평에 있는 고려시대의 것으로 여겨지는 석등이 있어서 지나온 역사를 증명해 주고 있다.
석등은 남평초등학교 교정에 있는데 이곳은 원래 조선시대 남평 관아의 객사인 영평관이 있었던 자리라고 한다.
동사(東舍)리라는 지명도 동헌의 동쪽에 객사가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송림이 울창한 곳에 아담한 정자가 있었다. 윤선기가 지은 단층 팔각 골기와 건물로 대청형의 탁사정이다
경승에 반한 시인 묵객들이 즐겨 찾던 곳으로 술을 마시고 시를 읊었다고 한다.
하천 기능을 되살리고 친환경적인 자연 공원으로 가꿔야할 것이다. 자연이 본래의 기능을 상실했을 때
그것을 복원하기란 몇 십배 몇 백배의 노력과 돈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나마 차일피일 미루고
하지 않으면 더 큰 대가를 치르게 된다.
드들강변의 하얀 모래둔덕이 아직은 살아 숨쉬며 사람들을 유혹한다. 모래 뒤쪽의 푸른 솔밭이 물빛과
함께 초록을 띤다.
드들강솔밭유원지는 남사모가 있었기에
새로운 솔밭유원지로 변모하게되었다
지금의 솔밭유원지는 예전의 아름다웠던 추억의 향수가 깃들인 옛모습이
2004년도에는 이곳에 장사를 하기위해 세워진 불법건축물들과 더럽혀진 솔밭유원지가
2006년 남평을사랑하는사람들의 모임(2006년회장:신기복)회원들과 아침7시부터 풀베기
노력봉사와 옛모습을 복원하는데 많은 심혈을 쏟아왔기에 소도읍사업의 일환으로 드들강이
새롭게 변모되고있으며 이젠 예전의 모습과 같이 국민관광지로 광주광역시와 인근도시에서
피서 인파들이 찾아주고있다
아직은 솔밭유원지를 아름답게 조성하는중에 있고 수영장과 테마공원이 조성되면 수많은
피서객이나 관광객이 찾아줄걸로 확신하고있다 엄마야누나야 노래비도 건립될 예정이며 가족들이
함께 나들이하기에 편한것일 수 있다
첫댓글 정말 좋네요, 잘 보았습니다
고마워 그래도 동생밖에 없네
정말 좋습니다. 하루빨리 완공 되었으면 좋겠네요
고향 지석강을 이곳에서 보니 정말 좋네요 지석강 많이 달라 졌구요
남사모의 활동에 감사드립니다.
남사모
첫댓글 정말 좋네요, 잘 보았습니다
고마워 그래도 동생밖에 없네
정말 좋습니다. 하루빨리 완공 되었으면 좋겠네요
고향 지석강을 이곳에서 보니 정말 좋네요 지석강 많이 달라 졌구요
남사모의 활동에 감사드립니다.
남사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