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거리>
1막 1-2장 -곰치는 부서떼를 발견했다는 기쁨에 뿌듯하여 어쩔 줄 모르고 마을 사람들도 모두 만선이 되어 신이 나서 춤을 춘다. 그러나 곧 곰치가 낚은 것이 모두 선주인 임제순에게 진 빚의 이자로 넘어가자 다들 억울해 하며 이를 간다. 이에 더하여 임제순이 빚을 빨리 갚지 못하면 배를 묶어 버리겠다고 말하여 분위기가 심상치 않게 된다. 범쇠가 능글거리며 빚을 대신 갚아 줄 테니 슬슬이를 자기에게 달라고 하나 구포댁과 도심은 범쇠의 말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배를 띄우지 못하게 된 것에만 화를 낸다. 곰치는 성수기인데도 불구하고 배가 없어 고기잡이를 못하게 되자 안타까워서 발을 동동 구른다. 그러나 간신히 그는 뱃삯을 이틀 후에 꼭 갚기로 하고는 배를 띄우게 된다.
2막 1-2장 -슬슬이는 연철과 만나 정을 나누지만 곧 범쇠의 일로 시무룩해 한다. 그런 슬슬이를 보며 연철은 절대로 범쇠에게 지지 않겠다고 말해 슬슬이를 다독거려 준다. 그리고서는 둘이 희망을 약속하며 힘차게 껴안는다. 곧 곰치는 자신감으로 가득 차서 연철, 도삼과 함께 바다로 고기를 낚으러 나간다. 도삼과 연철은 새로운 기술을 받아들이지 않고 원시적인 방법만을 고집하는 곰치를 보며 답답해하나 곰치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막무가내이다. 드디어 배는 바다에 오르고 구포댁은 남편과 아들이 무사히 돌아오기를 간절히 기도 드린다.
2막 3장 -다음날 초저녁. 바다에 나간 배가 돌아오질 않자 모두들 초조해 한다. 슬슬이가 무당을 데려와 굿을 하니 무당은 반드시 만선이 되어 돌아올 것이라고 말하고 이에 마을 사람들은 모두 안심을 한다. 그러나 곧 곰치가 실려 들어 오고 같이 따라온 어부는 배가 심한 바람에 떠밀려 갔는데 곰치는 건졌으나 도삼과 연철은 보지도 못했다고 말한다. 구포댁은 무리하게 배를 띄운 곰치에게 자기 아들을 어쨌냐며 달려들고 슬슬이 또한 대성 통곡하여 전체가 울음바다가 되고 만다.
3막 -구포댁은 실신 지경에 이르고 슬슬이도 애가 타서 어쩔 줄 몰라 한다. 그 때 임제순이 나와 밀린 뱃삯을 갚으라고 독촉을 하고 범쇠는 슬슬이를 넘어 보며 자기에게 팔라고 유혹한다. 구포댁은 도삼이 분명히 아직도 살아 있을 것이라면서 고집을 부리지만 익사했을 것이라는 순경에 말에 결국에는 미치고 만다. 그녀는 등에 업고 있던 갓난애마저 죽일 수는 없다며 배에 태워 바다에 띄어 뭍으로 보낸다. 이를 안 곰치는 구포댁을 죽이려고 하다가 그 배를 쫓아 나가고 이런 틈에 슬슬이는 목을 매어 자살하고 만다.
제1막 제1장 : 칠산 바다에 때아닌 부서 떼가 몰려드는 것으로 시작되는 발단부이다. 대대로 바다만 바라다보고 살아온 우직한 어부 곰치는 며칠만 부서를 더 잡으면 악덕 선주 임제순에게 지고 있는 배삯 빚 이만 원을 갚고 작은 배라도 한 척 장만할 수 있으리라는 꿈에 부푼다.
제1막 제2장∼제2막 제1장 : 그러나 그의 꿈은, 한껏 자기 이득을 챙기려는 임제순이 배를 묶어 버리려 하기 때문에 엉뚱한 방향으로 전개된다. 그리고 슬슬이와 연철이가 사랑하는 사이라는 것이 제시된다.
제2막 제2장∼제3장 : 눈 앞에 부서 떼를 두고도 묶인 배 때문에 미칠 듯한 곰치는 임제순이 요구하는 대로 다음 날까지 빚을 갚겠다는 각서에 손도장을 찍고는 바람을 무릅쓰고 바다로 나간다. 곰치는 그가 갈망하던 대로 만선의 꿈을 이루지만 거센 바람 때문에 배가 뒤집혀 잡은 고기는 물론 아들과 아들 친구인 연철이마저 잃고 자신만 겨우 구조된다.
제3막 : 임제순은 빚을 갚으라고 곰치를 위협한다. 곰치의 아내는 미쳐서 마지막 남은 갓난 아들을 배에 실어 육지로 떠나 보낸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늙은 범쇠에게 팔리다시피 시집가야 할 처지에 놓인 슬슬이마저도 목을 매어 자살하고 만다.
시간:현대, 여름
장소:남해안에 있는 조그만 어촌
<---등장인물--->
곰 치 (49세. 어부)
성 삼 (47세. 곰치의 친우, 어부)
구포댁 (48세. 그의 아내)
연철 (28세. 도삼의 벗, 어부, 슬슬이의 애인)
도 삼 (30세. 그들의 아들)
임제순 (60세. 선주)
슬슬이 (19세. 그들의 딸)
범 쇠 (50세. 주막의 주인)
마을 어부 A
<---갈등 구도--->
-----인간과 자연의 대결 구도
-----빈부간의 갈등(어민의 비참한 삶)
-----운명과 의지와의 갈등
-----곰치와 구포댁의 운명을 대하는 태도 차이로 인한 갈등
곰치-----바다에 대한 집념
---------어부 생활에 대한 집념
---------자연과 싸우는 부성의 억셈
구포댁---바다를 벗어나고자 하는 집념
---------후손에 대한 집념
---------죽음의 숙명에서 벗어나려는 모성의 몸부림
<---간단 정리--->
갈래 : 희곡. 비극. 장막극. 사실극
배경 : 현대 남해안의 어촌
표현 : 사실적 표현, 방언 구사 - 어민들의 일상 용어와 전라도 사투리를 통해서 향토색과 현실감을 드높이고 있어.
성격 : 향토적, 사실적
구성 : 3막 6장
주제 : 어부들의 비참한 현실과 이상과의 갈등. 어민들의 삶의 의지와 좌절
작품의 특징
-----내용 : 어부 곰치와 그의 아내 구포댁을 중심으로 한 인간과 자연의 대결, 부성과 모성의 갈등 속에서 인간의 도전과 한계, 희망과 비극을 그려 내고 있어.
-----구성 : 곰치의 굽힐 줄 모르는 집념과 강인한 의지가 오히려 파멸의 원인이 되는 비극의 구성 방법을 취하고 있다. 이를 성격 비극이라 한어.
-----표현 : 억센 사투리로 절묘한 대사가 인물의 우직한 성격과 잘 결합되어 짙은 향토성을 보여 주며, 어부들의 꿈과 좌절이 사실적으로 형상화되고 있어.
<해설>
희곡 <만선>은 어민들의 언어와 삶을 재현한 작품으로서, 1960년대의 희곡으로는 토속성이 가장 강한 작품의 하나야. 특히, 곰치를 통해 집념과 의지의 인간형을 보여 준 점은 주목할 만한 것이야. 남해안의 작은 어촌을 무대로 바다의 험난한 조건과 대결하는 한 어민의 끈질긴 삶의 의지와, 이에 맞서 아들의 목숨을 지키려는 그 아내의 집념이 향토색이 물씬 풍기는 사투리로 그려져 있어. 험난한 자연과 싸우는 부성(父性)의 억셈과 죽음의 숙명을 벗어나려는 모성(母性)의 몸부림이 갈등을 이루다가 마침내 두 자식의 죽음으로 파국에 이르는 비극적인 삶을 1960년대 리얼리즘극의 최고봉이라 할 만한 사실적 기법으로 형상화한 작품이야. 세 자녀를 한꺼번에 잃고 아내마저 미쳐 버리는 참담한 비극, 그런 주인공이 어린 아들을 찾겠다고 뛰어나가는 것으로 막이 내리는 이 희곡 <만선>은, 대자연과 싸워 나가는 어민의 끈질긴 삶의 의지를 그린 것으로 전형(典型)의 창조에 성공한 작품이지. 주인공인 곰치는 바다 그 자체라 할 만큼 끈질기고 억세며 순수해. 이 작품이 돋보이는 것은 바로 곰치와 같은 독특한 유형의 인물을 창조해 놓았다는 데 있을 것이야.
한편, 좀 다른 각도에서 음미될 수도 있어. <만선>이란, 바로 인간 본연의 삶의 욕망이며 지향하고자 하는 가치를 상징해. 따라서, 곰치의 행동과 의지를 통해서 역경을 딛고 운명과 싸워 나가는 인간의 모습을 볼 수가 있어. 그러나 구포댁의 마지막 행동에서 우리는 이와는 다른 또 하나의 삶의 측면을 볼 수가 있어. 숙명의 굴레를 벗어나려는 인간의 욕망과 자기의 비극을 자기 것으로 끝내 버리려는 모성애가 바로 그것이야. 따라서, 이 작품의 진정한 주제는 '집착'과 '벗어남'이라는 삶의 두 양태(樣態)라고도 할 수 있어.
<---작품 읽기--->제 3 막
무대 : 무대 오른편에 낡은 초가. 몇 해 동안이나 이엉을 얹은 듯 거무스름하게 퇴색한 지붕이 군데군데 움푹 꺼져 있어 허술하기 짝이 없다. <중략> 무대 안쪽 멀리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가로질러 난 뚝길, 평지보다 높다. 그 뒤론 바다, 먼 섬들의 산봉우리들이 배경이 된다. 막이 오르면 저녁, 우편 방 추녀 끝에서 좌편 방 추녀 끝으로 긴 빨랫줄에 보잘 것 없는 옷가지가 널려 있고, 마당 한가운데 높은 장대줄엔 잡생선 몇 마리가 널려 있다. 세간 하나 없는 마루가 훵하다.
(이때 구포댁 터벅터벅 걸어 들어온다. 안은 갓난애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마당을 빙빙 돈다. 한눈에 미친 것 같다.)
곰치 : 으디를 쏴댕겨?
구포댁 : (여전히 갓난애의 얼굴에 눈길을 박은 채) 모실 갔다 왔소!
곰치 : 모실? 아니 믄 청승에 모실이여?
구포댁 : (하늘을 쳐다보며) 그냥 구경하고 댕겼제 머…….
곰치 : 슬슬이 년은 으디 갔어?
구포댁 : (고개를 살래살래 내젓는다.)
곰치 : (마루 위에 벌렁 드러누워 버리며) 이고, 도삼아아---
구포댁 : (무표정한 얼굴)
곰치 : (드러운 채) 아무 말도 아니여! (처절하게) 그래 뱃놈은 물 속에서 죽어사 쓰는 법이여……. 그것이 팔짜니라아―― (열을 올려) 나는 안 죽어! 그여코 배를 부리고 말 것이여! 돛 달 때마다 만선으로 배가 터지는 때가 반다시 있고 말고!
구포댁 : (마당을 서성대며) 흥! 그 꼴로 에미를 보다니, …… 눈은 희멀겋게 뜨고는 머리는 산발하고는, 옷은 믓을 입었드라? 옳체! 생모시 저고리 바지를 입고는…… 그 옷을 해 주지도 않었었는디 으디서 빌려 입었단 말잉가? 연철이 옷이등가?
(성삼 들어오다 허겁지겁 달려나가는 구포댁의 뒷모습을 의혹에 찬 눈으로 쳐다보다가 불안한 얼굴로 곰치에게 다가선다.)
성삼 : (어리둥절해서) 아니, 갑자기 믄 일잉가?
곰치 : (퉁명스럽게) 내버려 둬!
성삼 : 얼굴이 사색인디?
곰치 : (침통하게) 미쳤어…….
성삼 : 믓이 아니, 믓이라고?
곰치 : 미친 것! 흥! 곰치는 안 죽어! 내가 죽나 봐라!
성삼 : 자네 그 소리 좀 고만 허게! 아짐씨도 오죽허먼 저래? 시상에 하나 남은 도삼이까지 물 속에다 처박었으니……(손바닥을 털며) 말이 아니여!
곰치 : 일일이 눈물 쏟음시러 살려면 한정 없어! 뱃놈은 어차피 물 속에 달린 목숨이여!
성삼 : 자네도 그만 고집 버릴 때도 됐어!
곰치 : (불만스럽게) 고집?
성삼 : (못을 박아) 아니고 믓잉가?
곰치 : (꼿꼿이 서선) 나는 고집 부리는 것이 아니다! 뱃놈은 그렇게 살어사 쓰는 것이여! 누구는 아들 잃고 춤춘다냐? (무겁게) 내 속은 아무도 몰라! 이 곰치 썩는 속은 아무도 몰라……(회상에 잠기며) 내 조부님이 그러셨어. 만선이 아니면 노잡지 말라고……. 우리 아부지도 만선 될 고기 떼는 파도가 집채 같어도 쌍돛 달고 쫓아가라 하셨어! (쓸쓸하게) 내 형제가 위로 셋, 아래로 한나 남은 동생놈마저 죽고 말었제…… 어…… (허탈하게) 독으로 안 살먼 으찌께 살어?
성삼 : 그래, 조부님이나 춘부장 말씀대로만 하실 참잉가?
곰치 : (단호하게) 내일이라도 당장 배 탈 참이다! 흥! 임 영감 배 아니면 탈 배 없어?
성삼 : 도삼이 생각도 안 나서?
곰치 : (격하게) 시끄럿! (침착하게) 또 있어! 아들은 또 있어…….
성삼 : 갓난쟁이? (고개를 설레설레 내저으며) 후유――지독한 놈!
곰치 : ……그놈도……그놈도……열 살만 묵으면 그물 말어…….
(이때 어부A 숨이 차서 들어온다.)
어부A : 곰치! 크, 큰일났네!
곰치 : 아니, 믓이 큰일 나?
어부A : 배가 떴어!
두사람 : (영문을 몰라) 배가 떠?
어부A : 자네 안사람이 우실이네 배를 띄웠단 마시!
곰치 : 믓이라고?
어부A : 벌써 한가운데 만큼이나 떠밀리고 있을 것이여!
곰치 : (말문이 막혀 혼을 빼고 서 있다.)
성삼 : 이것이 또 믄 소리여?
어부A : 돛까지 올려 띄웠으니 잡을 수도 없고, 그나저나 바람이 웬만해사 잡을 엄두라도 내제? 또 으디로 떠밀릴지 알기나 해서?
곰치 : 아니, 믄 일로? 응?
어부A : 내가 알어? 진작 봤드라먼 내가 배 띄우게 놔 둬? 배삯도 못 치르는 판에 배 하나 또 부서지게 생겼으니……(쓴 입맛을 다시며) 자네도 큰 일이여!
성삼 : 대체 믄 곡절일까?
어부A : (입에 손을 갖다 대며) 쉬잇! (사립문께를 힐끗 하고 나선) 물어 보게나! 나, 가네! (급히 퇴장)
(구포댁 뭐라 중얼대며 들어온다. 그네의 등엔 애기가 없다.)
곰치 : (와락 달려들어) 아니, 으쨌다고 남의 배를 띄웠나? 엉?
구포댁 : (실실 웃으며) 나 배 안 띄웠어! 참말!
곰치 : (목을 움켜쥐고) 말을 햇! 어서! (구포댁의 등을 보곤 기겁해서) 아니, 애기는? 애기는 으따 뒀어? 엉?
구포댁 : (손을 내저으며) 몰라! 나는 몰라! 숨줄이 끊어져도 참말로 몰라!
곰치 : 믓이? 말 안 해? (목을 바싹 졸라대며) 이래도? 이래도?
성삼 : (황급히 곰치의 손을 떼어놓으며) 이라먼 못써! 물어 봐사제, 이라먼 못써! (구포댁에게) 아짐씨, 나 성삼인디 나 알지라우?
구포댁 : (연방 고개를 내저으며) 애기는 몰라! 나는 몰라!
곰치 : (다시 구포댁의 목을 졸라 잡고) 이것을 나 죽이고 말거여! 말 안 할래? 애기 으따가 뒀어? 응? 어서 말을 해!
구포댁 : 갔다! 가 부렀어!
곰치 : 믓이? 가?
구포댁 : 쩌그 뭍으로 갔다! 가 뿌렀어!
곰치 : 배에다 실어 보냈구나! 응?
구포댁 : 아문! 뭍으로 가야 안 죽어! 지 명대로 살라먼 뭍으로 가야 해! 좋은 사람 좋은 부모 만나서 호강하고 크라고! 그래사 지 명대로 살 텡께! 쩌그 뭍으로 배타고 갔다!
곰치 : 이런 육실헐! (살기 등등한 눈으로 사정 없이 목을 조른다.)
구포댁 : (숨이 막혀) 오냐아, 오냐, 주 죽여라아--- 어서어--- 내 새, 새끼는 갔다! 무, 뭍으로 가 뿌렀어---
곰치 : (절규하듯) 이 미친 것아! 몇 년 있으면 그물 손질할 내 새끼를 으따가 띄워 보냈어 어엉? (미친 사람처럼 살기 등등해서 구포댁에게 달려든다.)
구포댁 : (훌훌 도망쳐 다니며) 갔어! 갔어어--- (찢어지듯 날카롭게) 쩌그 뭍으로 갔당께에? (손을 입에 모으고 부르는 시늉) 슬슬어으! 슬슬어으! (우편 방 속을 향해서) 니도 얼른 범쇠한테 시집 가! 범쇠 맘 변하기 전에 싸게 싸게 가랑께? (혼자 샐쭉해선) 바보 같은 가시네, 아 범쇠는 배가 두 척이야, 두 척(훨훨 활개를 치며) 어서 이렇게 걸어가란 말이여! 어서!
곰치 : (살기 찬 눈으로 구포댁을 바라보고 서선) 저 육실헐 것을! 그냥…… (성삼에게 급하게) 성삼이! 얼른 가 보세! 붙잡어사제! 엉? 어서!
성삼 : 이 바람통에 으뜬 미친놈이 배를 내줘? 코딱지만한 동네 나루로 배가 밀리는 판에?
곰치 : (나가려다) 헛간에 널쭉 있네! 그놈이라도 타고 쫓아가사제!
성삼 : 널쪽? 배가 부서지는 판에 널쪽을 타고 쫓아?
곰치 : 배보다도 널쪽이 더 나어! 널쪽만 안 놓치면 집채 같은 파도 속에서도 널쪽은 안 부서져!
성삼 : 글씨 안 돼!
곰치 : 안 될 것이 믓잉가? 곰치는 해! 어서! 어서! (나간다.)
구포댁 : (곰치의 가랑이를 쥐어잡고) 못 가! 못 간다! 내버려 둬! 뭍에 가서 지 명대로 살게 내버려 두어--- 못 간다아--- 못 가아---
곰치 : 이것 안 놔? 안 놀 것이여? (사정없이 발로 차버리곤 부리나케 나가 버린다.)
구포댁 : 못 가! 못 간다는디! 내버려 두어!
(구포댁, 허겁지겁 곰치를 쫓아 나가 버린다. 무대엔 침통한 얼굴의 성삼이 혼자 한동안 넋을 빼고 서 있다가 불현듯 바삐 헛간 쪽으로 간다.)
성삼 : (처절하게) 기가 막혀! (꺼질 듯) 후유--- (헛간 속에 발을 들여 놓으며 고개를 설레설레) 이럴 수가! 이럴 수가! (헛간 속으로 들어가 버린다--- 사이--- 기겁해서 뒷걸음질쳐 나오며) 엉? 스, 슬슬이가 모, 목을 매고 죽었구나! 슬슬이가 죽었어! 슬슬이가 죽어! (신음 처럼) 허어--- 슬슬이가 죽다니--- (성삼, 감전당한 듯 그 자리에 넋빼고 서 있다간 미친 듯이 달음질쳐 나가 버린다.)
성삼 : 곰치야아--- 이놈아아--- 이 만선에 미친 놈아---
단말마의 울부짖음 무대에 번져 온다. 기세 좋은 바람, 마당을 휩쓸고 지나간다. 긴 장대가 건들건들, 널린 보잘 것 없는 생선들이 따라 건들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