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식년 휴가에서 얻은 것"
사제품을 받은 지 20년 만에 안식년의 휴가를 가졌다. 휴가를 시작할 때만 하더라도 1년이라는 기간은 꽤 길 것이라 생각하였으나 다 지내놓고 보니 꼭 그렇지만도 않았다. 보람있는 시간을 많이 가지지 못한 아쉬움이 크기 때문이다. 한 해 동안 본당의 사목생활을 떠나 체험한 이런저런 일 가운데 지난 6월에 지도신부로 함께하였던 성지순례 얘기를 나누어보고자 한다.
묵주기도를 사랑합니다
세례를 받고 사제가 되기까지 늘 내 옆에 있는 성물 가운데 하나를 꼽으라면 당연히 묵주다. 신학생 때 늘 주머니 속에 넣고 다니며 함께 또는 개인적으로 자주 바쳤던 기도 또한 묵주기도이다.
성모님은 1858년 프랑스 루르드에서, 1917년 포르투칼 파티마에서 각각 발현하시어 묵주기도를 열심히 바치라고 당부하셨다. 그런데 누군가가 “신부님은 묵주기도를 사랑합니까?”라고 묻는다면 얼른 대답하기가 어렵다. 묵주기도를 자주 하면서도 ‘간절하게 바친 적이 과연 몇 번이나 될까?’ 하고 가만히 되돌아보니 송구스럽기 짝이 없다.
파티마를 떠나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에 도착한 바로 그날 성모님 발현 산에서 내일 새벽녘에 묵주기도 15단을 봉헌하는 시간을 갖는다는 안내자의 말을 듣고 좀 힘들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날 새벽 4시 발현 산에 도착하니 현지 안내자가 대뜸 나를 가리키며 묵주기도를 주도하라는 것이었다. 나는 그냥 다른 사람들과 함께 따라가려고만 생각했는데…. 남들이 이런 내 생각을 알고 있는 듯해서 얼굴이 붉어지고 가슴이 뛰었다.
아니나다를까, 우리가 들은 대로 ‘묵주기도의 길’은 자갈과 바위로 만들어져 있어 너무 험했지만 그 길에 있는 돌들은 반질반질하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길에서 기도를 바쳤는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그래도 걷기에는 불편하다. 한 단 한 단을 바칠 때마다 숨이 차올랐다.
걸어가면서 소리를 내어 기도를 하니 더 숨이 막혔다. 그렇다고 교대하자는 말도 하지 못한 채 묵주기도를 계속하였다. ‘평소에 성모님을 사랑하는 길인 묵주기도를 얼마나 잘 바치지 않았으면, 성모님께서 현지 안내자를 통하여 묵주기도 15단을 바치는 주도자로 나를 선택하셨을까?’ 묵주기도 한 단 한 단을 바치면서 예수님의 구속사업을 묵상하였다. 나는 성모님처럼 주님 구속사업의 도구가 되어 얼마나 헌신적으로 동참했는지 생각하니 너무나 부끄러워 눈물이 앞을 가렸다. 특히 ‘고통의 신비’를 묵상할 때는 가슴이 더욱 저렸다. 사제가 된 뒤 어떻게 하면 고통과 시련은 멀리하고, 그저 안위와 편안함을 추구하려 했던가. 그리고 주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리기보다는 불평과 불만 속에서 살았던 나 자신이 아닌가.
‘이제는 당신의 도구답게 성모님처럼 살아가려고 노력하겠습니다.’ 하고 주님과 성모님께 약속을 드렸다. 이때 “사랑하는 나의 아들아, 과거를 깊이 뉘우쳤으니 이제부터는 진정한 사제로서 열심히 살아다오.” 하는 마음의 음성이 나를 일어서게 하였다. “주님, 성모님! 사랑합니다.”라는 말씀을 드리는 순간 말할 수 없는 평화와 기쁨이 다가왔다. 그 뒤로는 묵주기도 바치는 것이 즐겁다.
부끄럽습니다
성지순례 동안 “그대는 말에나 행실에나 사랑에나 믿음에나 순결에 있어서 신도들의 모범이 되시오. 내가 갈 때까지 성경 읽는 일과 격려하는 일과 가르치는 일에 힘쓰시오.”(1디모 4,11-13)라는 말씀을 묵상거리로 자주 떠올렸다.
누가 나에게 말과 행동으로 무례하게 대하면 마음이 몹시 상하면서도, 나는 미처 그것을 의식하지 못한 채 신자들에게 말과 행동을 함부로 했다. 또한 성경 읽는 일과 격려하는 일과 가르치는 일에도 게으른 생활을 했다. 강론을 준비할 때만 성서를 읽고, 신자들을 격려하기보다는 꾸지람을 더 자주 하고, 오히려 내가 칭찬 받기를 좋아했다. 가르치는 일에 있어서도 ‘적당하게’ 준비하여 ‘적당하게’ 가르쳤다. ‘외유내강(外柔內剛)’이 아니라 ‘외강내유(外剛內柔)’의 삶을 살아온 것이다.
“하느님께서 여러분에게 맡겨주신 양떼를 잘 치십시오. 그들을 잘 돌보되 억지로 할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을 따라 자진해서 하며 부정한 이익을 탐내서 할 것이 아니라 기쁜 마음으로 하십시오. 여러분에게 맡겨진 양떼를 지배하려 들지 말고 오히려 그들의 모범이 되십시오”(1베드 5,2-3).
이러한 가르침에 따라 살지 못한 내 자신이 너무도 부끄럽다. 하느님께서 나에게 맡겨주신 양떼를 하느님의 뜻에 맞갖게 돌보기보다는 내 기분대로, 그리고 억지로 할 때가 많았고, 신자들이 좋은 의견과 충고를 받아들이기보다는 면박이 앞섰다. 모든 사람을 섬기고 너그러운 마음으로 대해야 하는데도 오히려 그들 위에 군림하면서 지배하는 가운데 섬김을 받는 것이 생활화되었다.
더욱이 사제가 되면서 “그분은 더욱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한다.”(요한 3,30)는 말씀을 좌우명으로 삼았음에도 주님을 드러내기보다는 나를 드러내어 인정받고 칭찬 받기를 좋아했다. 그래서 기쁜 마음으로 사목을 하지 못했다는 것이 참으로 부끄럽다. 이렇게 내 자신을 돌아보는 동안 주님께서는 다시 용기와 힘을 주셨다.
성지순례 동안 “주님! 감사합니다.”를 얼마나 반복했는지 모른다. 사제로서의 부족했던 삶을 돌아보게 되었고, 또한 매일의 삶을 성실하게 살아갈 수 있는 깨우침의 은혜를 주신 데 거듭 감사드릴 따름이다.
-인터넷에서 복사한 오 요안 신부님 글입니다-
첫댓글 성서백주간 20주년 기념으로 이집트 요르단 이스라엘 성지를 순례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춘천교구 김 안젤로 신부님의 미사 강론으로 "자기 사는 곳을 거룩한 성지로 만들지 못하면 성지순례는 별 의미가 없다"는 말씀. 안식년과 성지순례를 통해 아름다운 고백을 나누어 주신 이름모를 신부님을 기억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