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후 무엇을 할 것인지 노후대책을 세워두라는 말은 귀가 따갑도록 들어온 말이다. 그러나 현역 시절에는 도저히 그럴 시간도 여유도 없다. 그저 마음 한 구석에 무엇인가를 준비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나를 괴롭힐 뿐이다. 그러다 실제로 끈 떨어지고 나서야 이거 큰일 났구나 하고 때 늦은 후회를 하게 된다.
운이 좋아 한 회사에서 31년을 넘게 일하고 또 다시 분에 넘치게 계열사 대표이사로 가게 되었지만 그때 사실상 일선에서 밀려 났다고 보면 된다. 장차 머잖아 백수가 되리라는 것은 이미 예견된 수순이었다. 그러고도 2년 후 막상 백수생활이 시작되고 보니 생각했던 것 보다 더 상실감이 크다. 이제 돈 되는 일은 나한테 까지 순서가 돌아오지 않을 테고 돈쓰는 일만 내 차례로 오지 않을까? 제 분수도 모르고 돈 되는 언저리에서 어슬렁거리다가는 전문가한테 걸리면 사기당하기 딱 좋은 먹이 감일 뿐이다.
마침 집 앞에 있는 방송통신대학교를 무심코 지나치다가 이곳에서 공부를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사람은 목표를 가지고 살아야 희망도 생긴다. 일이 아니더라도 취미 생활이든 무엇이든 해야 할 것을 찾아야 한다. 무슨 과목을 선택할 가를 한참 고민하였는데 아무래도 중국어가 괜찮을 것 같아 보였다. 지난 시절 대만, 홍콩 그리고 싱가포르 등 중화권나라에서 근무한 적이 있고 어차피 중국은 역사적으로 우리나라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이웃 나라이며 앞으로 서로의 관계가 더 밀접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참에 중국어를 배워 두면 하다못해 중국 여행을 가더라도 도움이 되겠지 하는 생각으로 중어중문학과에 등록하게 되었다.
올해 2월 오리엔테이션 받으며 시작한지 엊그제 같은데 벌써 한 학기가 훌쩍 지나 가버렸다. 방송통신대 수업과정이 그리 만만하지 않다는 주변 이야기를 많이 들어 알고는 있었지만 직접 부딪혀 공부해보니 정말 쉽지는 않았다. 온라인 수업으로 모든 강의가 진행되기 때문에 일반 학교의 대면수업과는 달리 만나는 사람이 없으므로 우선 학사 정보에 어둡다. 그래서 학교 홈페이지와 각종 중문과 관련 사이트에 부지런히 들러 공지사항을 챙겨보았다. 특히 튜터 지도 홈페이지를 빠짐없이 들어가 보았다. 학사관련 정보는 물론이거니와 재미있고 유익한 정보가 많이 있기 때문이다. 자주 글도 올리면서 최대한 적극 참여하였다.
매 학기마다 6개 과목을 수강 신청하여 온라인 강좌를 통하여 혼자 독학하는 것이 기본 과정이다. 내가 신청한 과목은 1학년 두 과목 (기초한자, 초급중국어), 2학년 세 과목 (초급한문, 중급중국어, 중급회화), 3학년 한 과목 (집중중국어) 등 모두 6개 과목이다. 한 과목당 대부분 15개 챕터로, 모두 약 90개 챕터로 구성되어 있다. 3월부터 6월 중순까지 매일 한두 챕터씩은 공부해야 전 강의를 겨우 한번 들어 볼 수가 있다. 매일 공부하지 않으면 도저히 수업을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빡빡한 일정이다.
그리고 직접 학교에서 강의를 듣는 출석 수업은 공식적으로는 과목당 한번이지만 신. 편입생 지도 튜터 선생님이 중간에 불러 모아 수업을 한다. 그러면 거의 한 달에 한번 정도 학교에 가서 출석 수업을 하는 셈이 된다. 시험은 1학기에 두 번 있는데 4월에 중간시험, 6월말에 기말고사를 친다. 한 학기동안 온라인으로 수업하고, 또 스터디에 나가 강의 듣고, 과제물 제출하고, 학교에 가서 출석 수업하고, 중간시험 치고, 또 기말시험까지 한 학기 전 과정을 마쳤다.
시험 준비 하느라 스트레스 받아 가면서 열심히 책을 읽어 보고 베껴 쓰기도 하며 죽으라고 외워 보지만 돌아서면 까먹어 버리기 일쑤였다. 예순이 훌쩍 넘은 나이에 깜박거리는 기억력으로 기출 문제까지 풀어 보면서 나름대로 성의를 다하여 시험에 대비하였다. 6월 30일 기말시험을 마지막으로 이번 1학기가 완전히 끝이 났다.
방송대 수업은 아시다시피 온라인강좌 형태이므로 혼자 공부하는 데에 어려움이 많이 따른다. 그래서 스터디그룹이 전국적으로 활성화되어 있다. 서울에는 12개 지역별로, 또 각 지방별로 스터디그룹이 있어 편리한 곳에서 공부를 하면 된다. 특히 중국어 같은 어학 공부를 하는 데에는 스터디그룹이 필수적이다. 공부시간은 주로 밤에 하지만 주간반도 있고 주말반도 있다. 나는 집 가까이 있는 동틈아리 스터디 그룹에 등록하였다. 새로운 사람을 사귀면서 공
부를 하게 되니 지루하지 않게 공부를 할 수가 있다.
나는 5월에 뜻하지 않은 불의의 교통사고로 무릎을 다쳐 몸과 마음이 많이 힘들어지는 시기가 있었다. 건널목을 무심코 걷고 있는데 갑자기 무엇인가에 받치면서 정신이 아찔해진다. 정신 차려 보니 커다란 SUV 차가 뒤에 서 있고 나는 길바닥에 넘어져 있다. 갑자기 무슨 날벼락인가하고 상황을 정리해 보았다. 큰 도로를 따라 가는 인도에서 골목도로로 연결 되어 있는 보행로를 걷고 있는데 골목에서 급하게 나오려던 차가 사람을 못보고 받아 버린 것이다. 혼자서 일어나려 해 보았지만 다리가 아파 제대로 일어설 수가 없다. 왼발이 앞으로 걸어 나간 상태에서 오른쪽 대퇴부에 받혔고 순식간에 상체가 휘며 왼쪽으로 넘어지면서 도로에 무릎을 박았기 때문에 왼쪽 무릎에 심한 통증이 왔다. 결국 좌측 무릎 슬관절 후방 십자 인대 파열로 전치 10주 진단이 1차적으로 내려졌다. 수술을 하네 마네 우왕좌왕 하다가 기브스를 착용한 채 3개월 동안 안정 가료한 후에 재진을 받아보는 것으로 결정하였다.
이러한 교통사고 후유증을 견뎌내는 혹독한 시련을 겪으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침내 해냈다는 생각에 가슴이 뿌듯하기도 하다.
2학년에 편입하여 한 학기가 종료되었으니 졸업하려면 아직 2년 반이 더 남아 있다. 괜히 중국어 공부 시작하여 한 학기 동안 사서 고생했지만 그러나 공부는 아직 시작에 불과하다. 이제 2학기가 시작된다.
知之者, 不如好之者. 好之者, 不如樂之者.
아는 것은 좋아 하는 것만 못하고, 좋아하는 것은 즐기는 것만 못하다.
有夢 有情 有學 長是靑春.
꿈이 있고 열정이 있고 배움이 있으면 영원한 청춘이다.
첫댓글 감사님의 열정에 박수를 드림니다. 저도 무엇인가 도전하면서 생활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뜻이 있으면 길이 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