竹 溪 別 曲
지은이 : 안 축
출 전 : 죽계지
竹嶺南 永嘉北 小白山前
千載興亡 一樣風流 順政城裏
他代無隱 翠華峰 天子藏胎
爲 釀作中興景 幾何如
淸風杜閣 兩國頭銜
爲 山水淸高景 幾何如
죽령남 영가북 소백산전
천년 흥망에 풍류도 한결같은 순정성이라
어디도 없는 취화봉 천자의 태를 묻어
아 중흥에 겨운 모습 그 어떠하니잇고
가문은 풍도 맑고 두 나라에 출사하니
아 산수 청고한 모습 그 어떠하니잇고
宿水樓 福田臺 僧林亭子
草菴洞 郁錦溪 聚遠樓上
半醉半醒 紅白花開 山雨裏良
爲 遊寺景 幾何如
高陽酒徒 珠履三千
爲 携手相從景 幾何如
숙수루 복전대 승림정자
초암동 욱금계 취원루 위에
취한 듯 깨인 듯 울긋불긋 꽃잎 물든 산에 비는 내리고
아 절따라 노니는 모습 그 어떠하니잇고
고양의 술꾼인양 구슬 신발 삼천객인양
아 서로 이끌고 따르는 모습 그 어떠하니잇고
彩鳳飛 玉龍盤 碧山松麓
紙筆峰 硯墨池 齊隱鄕校
心趣六經 志窮千古 夫子門徒
爲 春誦夏絃景 幾何如
年年三月 長程路良
爲 呵喝迎新景 幾何如
채봉이 나는 듯 옥룡이 서린 듯 솔잎 푸른 산기슭
지필봉 연묵지 가지런한 향교
마음은 육경에 노닐고 뜻은 천고를 다하는 공자의 문도들
아 봄에는 글 읽고 여름에는 노래하는 모습 그 어떠하니잇고
해마다 삼월이면 멀리 뻗은 길 위에서
아 소란히 새 손을 맞는 모습 그 어떠하니잇고
楚山曉 小雲英 山苑佳節
花爛熳 爲君開 柳陰谷
忙待重來 獨倚欄干 新鶯聲裏
爲 一朶綠雲垂未絶
天生絶艶 小桃紅時
爲 千里相思 又奈何
초산효 소운영 노닐던 그 동산 호시절에
꽃잎 불타듯 그대 위해 흐드러진 버들골짜기
애타는 기다림 홀로 기댄 난간에 꾀꼬리 울어예고
아 한줄기 녹운은 드리워 가이 없어라
하늘이 빚은 어여쁜 자태 복사꽃 망울지는 시절
아 천리를 두고 그리는 정을 또 어이하리잇고
紅杏紛紛 芳草萋萋 樽前永日
綠樹陰陰 畵閣沈沈 琴上薰風
黃菊丹楓 錦繡靑山 鴻飛後良
爲 雪月校光景 幾何如
中興聖代 長樂太平
爲 四節遊是沙伊多
살구꽃 흩날리고 방초 무성한데 잔 앞의 해는 길고
울창한 녹음 곱게 잠긴 처마, 거문고 위로 훈풍 일더니
황국 단풍 청산을 수놓고 기러기 날아 간 후에
아 눈빛 달빛 교차하는 모습 그 어떠하니잇고
중흥성대 장락태평이라
아 사시사철 노닐어 보사이다
〖안축(安軸)〗1287(충렬왕13)~1348(충목왕4)
본관은 순흥이며 자는 당지(當之), 호는 근재(謹齋)다. 아버지는 석(碩)이다. 시호는 문정(文貞)이며 소수서원에 배향되었다. 우리 지역 순흥에서 세력기반을 가지고 중앙에 진출했던 신흥 유학자층의 한사람으로 탁월한 재질로 학문에 힘써 당대를 대표할 만한 문명을 떨쳤던 인물이다. 특히 안축과 관련하여 주목해야 할 것은 〈죽계별곡〉,〈관동별곡〉과 같은 경기체가 작품을 남겨 우리 국문학사상 빼놓을 수 없는 위상을 이룩했다는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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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계별곡〉은 작자의 고향이자 현재 우리의 향토인 순흥을 노래함으로써 곧 우리 지역이 경기체가와 관련하여 매우 중요한 문학적 본향이라는 직접적인 가치를 제공해 주는 작품이다. 때문에 우리 지역을 대표하는 제일의 문학작품이 무엇인가 하는 물음에 대해 당연히 첫손에 꼽아야 할 작품이 바로 이 〈죽계별곡〉이다.
경기체가는 고려 말에 형성되어 조선조로 이어지며 후에 가사문학으로 대체되는 국문학 장르다. 현재까지 확인된 경기체가 작품은 불과 이십 몇 수에 지나지 않으며 그나마 고려조 형성기의 작품은 한림별곡, 죽계별곡, 관동별곡 등 단 세 수에 불과하다. 그 중 한림별곡은 비록 경기체가를 가장 대표할 만한 작품으로 인정 받고는 있으나 당시 한림의 여러 학자가 공동으로 지은 노래이기 때문에 특정 작자에 대해 전문적인 가치를 부여해 줄 수 있는 것은 죽계별곡과 관동별곡이라 할 수 있는데, 이 두 작품 모두 안축의 작품이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로 보건데 안축은 가히 경기체가의 가장 독보적인 작가로 인정받아 마땅한 일일 것이다.
따라서 죽계별곡이 우리 지역과 관련하여 지니는 의미는 매우 각별한 것으로 다른 무엇보다도 우선적으로 가치조명이 이루어져야 할 유산이다.
그러나 학계는 죽계별곡에 대해 그리 후한 가치를 부여해 주고 있지는 않다. 그 이유는 내용이 다소 향락적이고 퇴폐적이라는데 있다. 죽계별곡을 이렇게 인식하게 되는 단서는 바로 4장에 있다고 볼 수 있다. 4장은 초산효, 소운영과 같은 중국의 유명했던 기생을 등장시키면서 남녀간의 상사심을 노래하고 있으며 이 것은 사시사철 태평성대를 즐기자는 5장의 내용으로 이어진다. 이러한 기조는 경기체가 작품에 전반적으로 나타나는 경향이다. 여기에 대해 일찍이 퇴계가 방탕하고 남녀가 어울린 점이 못마땅하다는 이유로 비판을 가한적이 있다. 조선조 주자학적 도덕관에 입각한 관점에서는 못마땅할 수도 있다는 가정도 해 볼 수 있다. 그러나 보다 탄력적인 사고가 요구되는 오늘날의 학계에서조차도 그것을 비판의 근거로 활용하고 있다는 점은 대단히 유감스러운 일이다.
이런 정도의 기풍을 퇴폐적이라 말한다면 송강 정철의 〈장진주〉는 어떻게 될 것이며, 〈춘향전〉은 또 어떻게 평가해야 될 것이가. 더구나 당대를 대표하는 인물들로서 한림제유나 안축의 명망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그보다는 4,5장의 내용은 실로 태평성대를 구가하는 지역의 생활상을 보다 솔직하고 화려하게 설명하고자 하는 작자의 의욕과 고향에 대한 자부심으로 평가해야 마땅한 일일 것이다.
《고문진보》에 보면 중국 송대 구양수의 〈취옹정기(醉翁亭記)〉라는 작품이 있다. 고을 태수가 잔치를 배풀어 백성들과 교외에서 하루종일 흐드러지게 논다는 내용이다.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다름아닌 태수와 백성들간의 교감과 그 조화로 인해 백성들이 태수를 신뢰하며 태평성대를 향유하는 모습을 솔직하게 표현하고자 하는데 있을 것이다. 관리의 가장 큰 보람은 바로 백성들의 태평스러움에 있는 것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차원에서 본다면 죽계별곡의 이와같은 내용은 고향을 찬양하기 위한 최선의 선택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우리 지역은 보다 적극적으로 죽계별곡에 대한 가치조명에 나서야 할 것이며, 아울러 경기체가의 본향으로서의 위상을 확보하기 위한 최선의 노력을 경주해야 할 것이다.
첫댓글 귀중한 자료 잘 보았습니다.
말로만 듣던 죽계별곡 잘 감상하고 갑니다.!~~~~
^^감사드립니다. 조은날되세요 ^^ 온고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