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강스님의 벽암록 맛보기] <2> 들어가는 말
② 벽암록 소개
공부인이 벽암록 처음 대하면
고압전기 감전된 듯 충격 받아
공부하지 않고는 배겨내지 못해
그 충격은 사실상 엄청난 행운
벽암록은 총 10권의 선어록
간화선풍 가장 잘 드러낸 어록
수시, 본칙, 평창, 착어 등 구성
이 가운데 본칙과 게송만 다뤄
“직접 맛보지 않으면 소용 없어
의심 남겨둬서 화두참구 기회”
죽비 1타에 몰록 의심이 타파될 수만 있다면 목숨을 걸고 정수리를 내밀어도 좋지 않겠는가.
“무엇이 협산의 경치입니까?”
“원숭이는 새끼를 품은 채 푸른 산봉우리로 돌아가고(猿抱子歸靑嶂裏),
새는 꽃을 물어다 이끼 낀 푸른 바위 앞에 떨어뜨린다(鳥啣花落碧巖前).”
‘벽암(碧巖)’은 이 문답에서 유래했다.
공부하는 사람이 <벽암록(碧巖錄)>을
처음 대하면 대개 고압 전기에 감전된 것과 같은 충격을 받는다.
그 충격은 사실 엄청난 행운과 만났음을 뜻한다.
제대로 충격을 받은 사람은 공부하지 않고는 배겨내질 못한다.
만약 그 길로 선(禪)과 담을 쌓게 되는 사람이 있다면
충격을 어설프게 받았기 때문이다.
간화선(看話禪)이라고 하면 참 어렵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은 것 같은데,
그것은 공부법을 몰라서 그럴 뿐이다.
그리고 대개는 의심하는 것 자체를 잘 모르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의심’을 다른 교학에서는 번뇌로 보는데,
그때의 의심은 끝없이 흔들리는 생각을 말하는 것이다.
간화선에서의 의심은 ‘본체(主人公)’에 대한 의심이다.
이 의심은 생각으로 헤아리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마주대함’을 뜻한다.
면벽(面壁, 벽을 마주함)이라고 할 때의 ‘벽’이 화두라면
‘면(面, 마주함)’이 곧 간화선에서의 의심이다.
그러니 의심만 제대로 된다면 그 어떤 공부보다도 수월한 것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교학을 통한 공부는 나아갈수록 복잡해지는 경향이 있어서,
나중에는 이론에 갇혀 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반면에 화두공부는 진행될수록 단순해진다.
그런데 옛 수행자들도 이 공부에서 어려움을 느낀 것은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역대 고승들은 후학들을 위한 지침서를 만들려고 무진 노력을 했던 것이다.
바로 엄청난 분량의 선어록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다.
그 수많은 선어록 가운데 정수라고 할 수 있는 것이 벽암록이며,
우리는 이 벽암록을 통해서 이제 선(禪)의 세계로 들어갈 것이다.
벽암록이 만들어진 내력
설두중현선사의 송고백칙(頌古百則)
벽암록은 설두 중현선사에게서 비롯된다.
설두 중현(雪竇重顯)선사는 지문선사의 법을 이어받아
소주(蘇州) 취봉사(翠峰寺)와 항주(杭州) 영은사(靈隱寺)에서 머물다가,
만년의 31년간은 명주(明州) 설두산(雪竇山) 자성사(資聖寺)에 주석하였다.
스님의 법호는 바로 이 설두산에서 비롯된 것이다.
선사는 처음 <경덕전등록>의 1700고칙(古則) 가운데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 100가지를 가려내고, 여기에 송고(頌古)를 더했다.
이를 <설두송고(雪竇頌古)>라고 하며, 뒷날 벽암록의 모체가 되었다.
원오 극근선사의 수시·평창·착어
송대(宋代)의 원오 극근(圜悟克勤)선사는
설두 중현선사의 송고백칙에 다시 수시(垂示)·착어(着語)·평창(評唱)을 붙여서
후학들을 가르쳤는데, 그 장소에 대해서도 여러 설명이 있다.
종합해보면, 성도(成都)의 소각사(昭覺寺), 호남의 협산사(夾山寺)와
도림사(道林寺) 등에서 지도한 것 같다.
보조국사의 후서(後序)에는 협산의 영천원(寧泉院)에 머물면서
수시·평창·착어를 붙였다고 하였다.
원오선사의 지도를 받은 문인들이 뒷날 그 강의록을 모아 벽암록이라고 이름 붙였는데,
‘벽암(碧巖)’은 협산의 영천원 방장실(方丈室) 편액이었다.
이 편액을 법문집의 제목으로 쓴 것은,
원오선사가 이 방장실에 머물면서 가르침을 편 것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협산의 영천원은 선자 덕성선사(船子德誠禪師)의 법을 이은
협산 선회선사(夾山善會禪師)가 창건하여 초대 방장으로 주석했던 곳이다.
선사는 당나라 말기의 혼탁한 사회상을 싫어하여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
농사와 참선수행을 겸한 것으로 유명하다.
영천원에 머물던 어느 날 한 스님이 찾아와 문답을 하게 되었다.
“무엇이 협산의 경치입니까?(어떤 것이 스님의 경지입니까?)”
“원숭이는 새끼를 품은 채 푸른 산봉우리로 돌아가고(猿抱子歸靑嶂裏),
새는 꽃을 물어다 이끼 낀 푸른 바위 앞에 떨어뜨린다(鳥啣花落碧巖前).”
‘벽암(碧巖)’은 바로 이 문답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한다.
원오 극근선사는 어려서 출가하여 뒷날 오조 법연(五祖法演)선사의 법을 이었다.
불과(佛果)라는 법호는 생전에 북송의 휘종황제로부터 받았고,
원오(圜悟)라는 법호는 입적 후 남송의 고종황제로부터 받은 것이다.
문하에는 항상 1000여 명의 수행자가 있었으며,
그 중 대혜 종고(大慧宗杲)스님과 호구 소륭(虎丘韶隆)스님이 유명하다.
벽암록의 전승
원오선사가 입적한 후에 그 문인들이나 후학들이
이 벽암록을 그대로 암송하여 마치 자기의 경지인 것처럼 흉내를 내는 등,
벽암록을 악용하여 궤변을 일삼는 일이 벌어졌다.
이를 안타깝게 생각한 원오선사의 수제자격인 대혜 종고선사가
근본종지에 위배된다고 하여 벽암록을 불살라버렸다.
그로부터 200여년이 지나 원(元)의 장명원(張明遠) 거사가
여러 곳에 비밀리 전해오던 것들을 모아 참작하여
다시 ‘종문제일서 원오벽암집(宗門第一書 圜悟碧巖集)’으로 간행하였다.
벽암록의 구성
벽암록은 총 10권으로 된 선어록(禪語錄)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내용을 기록한 것이 경(經)이고(육조단경 등의 예외도 있음),
훌륭한 스님들 말씀을 기록한 것이 어록(語錄)이다.
이 어록 중에서 특히 참선 수행에 지침이 되는
선사들의 가르침을 모은 것이 선어록(禪語錄)인데,
벽암록은 선어록 중에서 간화선풍(看話禪風)을 가장 잘 드러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벽암록은 다음과 같이 구성되어 있다.
고칙제목(古則題目) 벽암록은 여러 판본으로 전하는데,
세밀하게 분석하면 약간의 차이점이 있다.
그러나 그것은 본질적인 문제가 아니므로 종합적으로 받아들이면 좋을 것이다.
그 대표적인 것이 각 칙(則)의 이름인데, 본래 제목이 없던 것을
편의상 본칙에서 뽑은 것이니만큼 어떤 이름이라도 상관이 없는 것이다.
예컨대 제1칙의 이름이 판본에 따라 ‘달마확연무성(達摩廓然無聖)’,
‘달마불식(達摩不識)’, ‘무제문달마(武帝問達摩)’ 등으로 전하는데,
그 내용은 동일한 것이다.
수시(垂示) 본칙(本則)에 들어가기 전에 행한
일종의 문제제기이면서 인도하는 말이라고 할 수 있다.
보통 큰 스님들이 법문을 하실 때, 그날 법문의 방향을 잡아가는 내용으로도 볼 수 있다.
‘수시운(垂示云)’으로 시작한다. 원오선사의 기질을 엿볼 수 있는 곳이다.
본칙(本則) 공안 백칙은 벽암록의 핵심이다.
깨달음의 경지를 바로 보여주는 곳이다.
설두 중현선사가 탁월한 안목으로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의 방대한 분량 중에서
가려 뽑은 백 가지가 소개된다.
평창(評唱) 본칙(本則)과 송(頌)에 대한 원오선사의 자세한 설명이다.
원오선사의 해박함이 잘 드러난 곳이다.
송(頌) 설두 중현선사가 본칙에 대한 자신의 지견을 바로 보인 곳이다.
착어(着語) 원오 극근선사가 벽암록 공부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경각심을 갖게 하기 위해 한두 마디 말을 붙인 것이다.
원오선사의 날카로움이 보이는 곳이다.
벽암록 맛보기의 방향
불교신문에 연재하는 ‘벽암록 맛보기’에서는
설두 중현(雪竇重顯)선사가 뽑은 100개의 ‘본칙’과 선사가 직접 지은 ‘게송(頌)’만을 다룬다.
선어록은 지식전달을 위한 책이 아니다.
읽는 사람이 직접 동참해야 하며, 직접 맛보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는 뜻에서
‘맛보기’라고 하였다. 해설도 너무 자세히 들어가는 것을 지양(止揚)하고,
독자가 스스로 의심할 부분을 남겨둠으로 해서 화두참구의 기회를 만들고자 한다.
[불교신문3669호/2021년6월8일자]
송강스님 서울 개화사 주지
첫댓글
송고(頌古)
‘송고(頌古)’는 당대 선승들의 언행과 선문답의 취지(趣旨)나 어기(語氣)에 대하여
게송이나 송으로 간결하게 독자적인 해석을 하여 선종의 의미를 표방해 널리 알리는 것이다.
송고는 선문학의 내면성을 깊이 표현한 것으로 훌륭한 문학이 선에 연결되고,
선수행이 훌륭한 문학을 탄생시킬 수 있다는 것을 작품으로 보여주었다.
[출처] [인물로 읽는 선이야기]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