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서 유엔 부대행사…韓유엔대사 "北인권과 북핵은 밀접히 얽힌 이슈"
미국 뉴욕에서 열린 탈북 여성 증언 행사© 제공: 연합뉴스 (뉴욕=연합뉴스) 강건택 특파원 = "형기를 마치고 나오는 날, 고문으로 다친 다리를 절며 기차역으로 갔는데 '김정은 동지를 위해서는 슬픔도 고난도 행복이다'라는 구호가 적혀 있었습니다. 정말 가슴이 끓어오르는 분노를 누를 길 없어서 죽을지언정 다시 탈북하기로 결심했습니다."
끔찍한 인권 침해를 겪은 탈북 여성 4명이 16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에서 자신들의 고초를 생생히 증언하며 북한 인권 문제의 쟁점화를 호소했다. 미국 민간단체 북한자유연합이 뉴욕시 구세군강당에서 '굴하지 않는 북한 여성들의 역할'이라는 제목으로 주최한 제67차 유엔 여성지위원회(CSW) 부대행사 자리에서였다.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나 교화소(교도소)에서 직간접적으로 체험한 참상을 담담히 풀어놓을 때는 청중 사이에서 탄식과 한숨이 터져나오기도 했다.
탈북 여성 지한나씨는 1996년 남편이 세상을 떠난 뒤 당시 6살, 4살 아들을 먹여살리기 위해 중국과의 장사로 제법 돈을 벌었지만, 2009년 북한의 화폐개혁으로 재산이 100분의 1토막 나자 첫 번째 탈북을 결심했다고 한다.
중국에서 밀고로 공안에 잡혀 화장실도 없고 간수들이 먹다 남긴 음식을 하루 한두 끼만 먹는인간 이하의 대우를 받다 북송된 그는 뇌물을 주고 풀려났다. 그러나 북한 보위부에서 감시하던 친구를 숨겨줬다가 자신의 재산까지 빼앗기자 2차 탈북을 시도했다. 다시 중국에서 잡혀 북송된 지씨는 "감방에서는 간수들이 냄새가 난다고 자기 근무 시간 중에는 변을 못 보게 하는 말도 안 되는 고문을 했다"고 전했다. 개천 1교화소에 투옥된 지씨는 교화소 직원들이 매일 죽어나가는 수형자들의 시신을 웅덩이에 묻어놓고 그 위에 농작물을 심는 끔찍한 장면을 목격했다며 "농사가 잘된다고 이야기하더라"고 말했다.
미국 뉴욕에서 경험담 증언하는 탈북 여성 지한나씨© 제공: 연합뉴스 또 다른 탈북 여성 이하은씨는 북중 무역에 종사하던 2015년 한국에 사는 탈북민의 부탁으로 북한의 가족에게 돈을 보내주려다 보위부 감청에 걸려 양강도의 한 집결소에 갇혔다고 밝혔다. 이씨는 "감방 안에서 10시간 동안 말도 못하고 무릎에 두 손을 얹고 앉아 있어야 하는데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철창 밖으로 손을 내밀라고 하고 사정없이 때린다"면서도 "제가 당한 고통은 다른 여성들보다 약소하다"고 말했다. 그는 "지현 엄마라는 30대 여성은 친구들과 한국에 가려다 감시망에 걸려 함께 체포됐는데 정말 많이도 맞았다"라며 "노동교화 3∼4년이면 풀려날 거라고 생각했는데 2015년 9월 초 그 4명과 다른 사건으로 잡힌 2명 등 6명이 비공개 총살당했고, 그들을 취조하던 보위부원들은 승진했다"라고 전했다.
이씨는 "다시는 기억하고 싶지도 않은 이야기다. 3년 전만 해도 우리가 사는 세상은 다 그런 줄 알았지만 자유 대한민국에 와서야 여성도 인권을 누릴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라고 덧붙였다. 북한의 가부장적 사회와 가정폭력 등을 고발한 서른살 탈북 여성 한송미씨는 증언 내내 울먹거리면서 "탈북하다가 잡히면 남은 가족들이 고초를 당한다. 그래서 잡히면 자살하기로 결심하고 나섰다"고 전했다. 이날 행사를 주최한 북한 인권 운동가 수잰 숄티 북한자유연합 대표는 "인권 이슈가 북한 문제의 전면에 등장해야 한다. 그것이 이 잔혹한 독재를 끝내는 열쇠"라면서 "인권이 바로 김씨 독재의 아킬레스건"이라고 강조했다. 이 자리에는 황준국 주유엔대사가 참석했고, 이신화 북한인권 국제협력대사는 영상 메시지를 보냈다. 황 대사는 "북한 인권 상황의 시각성과 시급성이 핵 이슈에 가려져서는 안 된다. 사실 두 이슈는 밀접히 얽혀있는 것"이라며 북한이 주민들의 삶을 희생해 대량살상무기를 개발하고 있음을 상기시켰다. 그러면서 "인권 상황에 대한 대처 노력 없이는 우리는 핵 이슈 해결을 기대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미국 뉴욕에서 증언하는 탈북 여성 한송미씨© 제공: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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