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11.8
다음 글은 조선일보 [독자 칼럼] (2002.11.06)에 실린 대전 월평중학교 전광희선생님의 글입니다.
[수능시험을 마친 딸에게] 주는 어머니의 간절한 마음이 여러분의 가슴에 닿기를 빕니다.
- 얘야, 너 기억 나니? 그 날도 학원을 마치고 밤 12시 가까이 파김치가 되어 돌아온 너에게 아빠가 “얼마나 힘드니? 세상이 너희들에게 너무 가혹하구나”고 했더니, “아니에요. 아빠 고3은 우리 시대의 성인의식인걸요”라고 했던 말 말이다.
그래, 그때 네 말은 참 대견스러웠다. 어른이 된다는 것이, 그것도 훌륭한 성인이 된다는 것이 어디 그리 수월한 일이겠니. 요즘 너희들 사이에서도 ‘데미안’을 얘기하면서 알을 깨고 나오는 아픔 없이 성숙은 없다고 하는지들 모르겠다.
너희들의 수능은 네 말대로 우리 사회의 성인의식과 같은 것이겠지. 그런 시련의 과정을 1년, 아니 그 이상의 기간 동안 견뎌내 온 어머니들 모두에게도 감사와 격려, 축복의 박수를 보내고 싶다.
이제 수능은 끝났다. 긴장과 흥분으로 가슴 졸이던 너희들의 성인의식은 일단 끝났다.
그러나 수능시험의 의미가 단지 대학에 지원하기 위한 점수에만 있겠느냐.
그동안 공부하느라 감내했던 자기절제, 인내, 갈등, 세상 모순에 대한 인식들은 어느 사이에 내면세계가 부쩍 큰 어른으로 성장시켜 주지 않았겠니.
너희들의 고3 수능은 아프리카 어느 부족의 소년들이 정글 속에서 겪는 성인식보다 더 혹독하고 가혹하면서도 세련된, 성인을 향한 종합의식이었던 것이다.
그러니 수능을 치르기 위해 너희들이 겪은 고뇌와 오랜 시간의 수양, 쌓아올린 지식이야말로 점수와 관계 없이 너무도 가치있는 것이었음을 잊지 말았으면 한다.
혹여 수능의 결과에만 너무 집착함으로써 점수로 나타나지 않는 너희들의 성장을 결코 무시하거나 간과하지 말아라.
이제 수능이 끝났으니 좀 쉬렴. 머리를 쉬면서 가슴의 인간, 근육의 인간으로 스스로를 다시 보강해 보렴.
못 보았던 책과 영화도 보고 헬스클럽이나 새벽의 도로 위도 뛰어 유약해진 몸을 단단하게 만들어 보거라.
하고 싶고 보고 싶었던 무엇엔가 도전해 보아라.
내일은 엄마와 함께 예쁜 옷도 한 벌 사러 가자.
다만, 술·담배·머리염색은 안 된다. 성인의식이 끝났다고 성인이 된 것은 아니다.
정글을 다녀온 자랑스럽고 대견한 우리 고3들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