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주차
희언, 말로 장난을 치자
1. 희언의 전통
희언, 언어희롱, 말재롱, 말놀이를 통한 재미의 방법을 먼 데서 찾을 필요도 없습니다. 우선 어려서 듣고 부른 자신의 고향 민요를 생각해보면 됩니다.
이게 무엇이요
옷이요
네, 옵니다
이게 무엇이요
잣이요
네, 먹습니다
이게 무엇이요
갓이요
네, 갑니다
-청양지역 민요, 「자음요」¹¹⁸⁾ 전문
필자의 고향인 청양에서 불리던 민요입니다. 옷이요와 오시오, 잣이요와 자시오, 갓이요와 가시오는 발음이 유사하지만 전혀 다른 의미입니다. 유사음 잇기이며, 수사법상 희언법입니다. 대답이 예상을 뒤엎고, 기대를 배반하여 재미를 줍니다.
송강 정철(1536~1593)과 진옥(眞玉)이라는 애첩이 주고받은 시에서 말놀이의 진수를 느낄 수 있습니다. 조선의 명재상이자 문학의 대가인 정철은 56세 때 왕권 문제에 연루되어 선조의 노여움을 사서 강계에 유배를 갑니다. 이때 진옥이라는 미모의 재기 발랄한 기생을 만나 함께 시를 읊었습니다.
옥이 옥이라커늘 번옥(燔玉: 인조옥)으로만 여겼더니
이제사 보아하니 진옥(眞玉)일시 적실하네
내게 살 송곳 있으니 힘차게 뚫어볼까 하노라
이에 대하여 진옥이 시로 대답을 하였습니다.
철이 철이라커늘 섭철(鍱鐵:불순물이 많은 철)로만 여겼더니
이제사 보아하니 정철(正鐵)임이 분명하네
내게 골불무(풀무) 있으니 한껏 녹여볼가 하노라
번옥/진옥, 섭철/정철을 대비하는 희언적 기지가 재미있고, 남녀의 성기를 ’송곳‘과 ’골불무‘로 비유하는 것이 웃음을 짓게 합니다.
진부령 까치마을 우리 처갓집
찾아들어 한 사흘 편히 쉬구려
떠나려니 이슬비가 축축이 오네.
“더 있으라 이슬비가 저리 온다”고
장모님은 좋아라고 만류하시네.
“가라고 가랑비가 내리는데요”
내가 살짝 한마디를 건네었더니
“진부령서 제일로 미련한 곰도
그런 소릴 않을 거다” 미소하시네.
진부령 처갓집에 있을 이슬비
-서정주, 「진부령 처갓집」 전문
서정주의 위 시는 ’있으라‘와 ’이슬비‘, ’가라‘와 ’가랑비‘'라는 유사음을 가지고 시의 재미를 유도하고 있습니다.
골목처럼 그림자진
거리에 피는
고독이 매독처럼
꼬여박힌 8字면,
청계천변 작부를
한아름 안아보듯
치정 같은 정치가
상식이 병인 양하여
포주나 아내나
벗과 살붙이와
현금이 실현하는 현실 앞에서
다다른 낭떨어지!
- 송욱, 「하여지향 5」 부분
김준오는 위 시를 말재롱(Fun)을 구사한 전형적 풍자시로 보고 있습니다.¹¹⁹⁾ 치정 같은 정치, 현금이 실현하는 현실 등이 말재롱, 즉 언어유희입니다. 이런 희극적인 말재롱을 통해 시인은 부조리한 사회현실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다음 시는 필자의 창작 실천의 사례입니다. 성을 제재로한 시가 아니어도 재미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제재를 어떻게 요리하느냐 하는 방법에 따라 다른 것입니다. 대화체를 사용하였습니다.
나를 마차에 태운 마부가 말했다.
“지금 마차는 사십오 세 역을 지나고 있습니다.”
나는 마부에게 항의했다.
“왜 이렇게 빨리 지나는 거요, 이건 내가 원하는 속도가 아니오.”
마부는 말했다.
“이봐요, 손님. 속도는 당신 주민등록증에 써 있소. 쯩을 까보시오.”
나는 쯩을 쥔 손을 부르르 떨며 마부에게 떼를 썼다.
“억울해요, 좀 천천히 가거나 마차를 멈춰주시오.”
마부는 근엄하게 말했다.
“이 마차는 멈추거나 속도를 늦추는 법이 없소. 내리면 다시 탈 수도 없구요.”
나는 더욱 놀라서 마부에게 졸랐다.
“그렇다면 시간을 파는 가게를 찾아주시오. 돈은 얼마든지 있어요. 몸과 영혼과 시간을 팔아서 번 돈 말이오. 시간을 살 수만 있다면 모든 걸 당신에게 주겠어요.”
마부는 심각하게 말했다.
“글쎄요, 나는 시간을 파는 가게가 있다는 얘기를 아직 들어본 적이 없소. 그러나 당신의 용기가 가상하니 찾아보죠.”
마부는 채찍을 마구 휘둘러대고, 마차는 더욱 빠른 속도로 시간을 파는 가게를 찾아서 달리고 달렸다. 마차 속도는 갈수록 더 빨라졌지만 시간을 파는 가게는 나타나지 않았다. 나중에는 너무 빠른 나머지 나는 겁이 나서 마부에게 소리쳤다.
“마부님, 여기서라도 당장 내려주시오, 어서! 제발!”
그러자 마부는 냉정하게 말했다.
“그러죠, 늙은이. 이 마차에서 내리는 순간 당신은 꽥이요!”
-공광규, 「시간의 마차 위에서」 전문
‘쯩’은 주민등록증의 줄임말 강조입니다. 술집이나 찻집에서 서로 주민등록증을 보여주면서 나이를 확인할 때 ‘쯩을 까볼까?’ 제안을 하는 현대 유행 속어입니다. 자립명사인 주민등록증의 음절수를 언어의 경제적 효과를 위해 줄이면서 ‘증’이라는 비자립명사가 되자, 그 음절 보상을 위해 경음화하여 강조하는 것입니다.
연극 대사 같은 빠른 대화법과 쯩, 늙은이, 꽥이요 등의 상말을 사용하여 재미있게 구성하려고 하였습니다. 독자는 이 시를 읽어가다 웃음 뒤에 숨어 있는 인생의 시간을 환기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처럼 웃음의 주요한 소재인 성적 언어를 사용하지 않고도 재미있고 의미 있는 시 쓰기를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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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8) 청양문화원, 『청양의 구비문화』, 「자음요 1」, 2001, 23~24쪽.
119) 김준오, 18쪽 참조.
공광규 『이야기가 있는 시 창작 수업』
2024. 4. 5
맹태영 옮겨 적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