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8.17.
작가 정지아
재미있는 책 한 권을 읽었다. 해방과 혼란, 남북 분단, 사회주의 사상으로 인한 좌우 갈등과 투쟁, 민간인 학살 등과 같은 어두운 역사 속에서 녹록하지 않은 가족 간의 갈등을 읽기 쉬운 간결한 필체로 쓴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정지아 작가의 수작이다. 아픔과 슬픔을 생생하게 나열하면서 웃음을 양념처럼 뿌려 넣은 재미있는 책이다.
동생이 온라인상에서 책을 읽는다. 장편소설 <채식주의자>에서 작가 한강의 상상력과 글의 구성이 탄탄하고 정교하여 친구에게 추천했다고 한다. 상처받은 영혼의 고통을 식물적 상상력의 아름다움으로 연결한 섬뜩하고 충격적인 작품이다. 등장인물의 갈등이 더 큰 아픔으로 전개되어 읽기 힘들었던 기억이 있다. 아마 동생만큼 섬세하게 정독하지 않은 탓이리라.
소장용 책 한 권을 만지작거렸다. 어느 날 갑자기 현실에서 도피해 버리는 50대 가장의 이야기를 담은 박범신의 소설 <소금>을 끄집어내 건넸다. 책장에서 족히 10년은 곰삭았을 책이다. 쉰의 나이에 나도 주인공처럼 가족을 떠날 수 있을까 하는 물음의 답을 찾기 위해 읽은 책이다. 동생은 분석학적 눈으로 구조적 얼개를 꿰맞춰 가며 정독하기 시작했고 공감하는 눈치였다. 누나는 그 영향을 받아 책을 챙겨가 버렸다. 소중한 내 소장품을.
여러 권의 책을 소장하고 있다. 모두가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미심쩍은 나를 대변하거나 뭉그적거리는 어눌함을 통쾌하게 해소해 주는 작품들이 대부분이다. 꼬집어 말하자면, 책이 던지는 질문에서 내 삶이 왜소하고 보잘것없어 보이면 나에게는 그 책은 명작이다. 흐름이 지루하면 읽다가 포기한다. 내용이 지나치게 꼬였거나 문체가 딱딱하고 어려운 단어가 잦으면 온갖 치사한 핑계를 불러와 책장을 덮어버린다. 그래도 읽을 책은 무수히 많기 때문이다.
정지아 작가는 구례 출신이다. 아버지의 죽음으로 시작하는 3일간의 이야기를 위트가 넘치고 유머가 적당하게 섞인 어법으로 써놓아 존경스러웠다. 내 주변에도 흔히 있을 법한 개성 넘치는 인물을 통해 밝음과 어둠이 뒤섞이고 갈등과 해소를 빠른 속도로 전개하여 지루함을 느낄 짬이 전혀 없었다.
그녀가 궁금했다. 문척면 반내골로 갔다. 정지아 작가의 방 두 칸 부엌 하나짜리 집을 찾았다. 할아버지의 죽음을 봤을 정자와 나무도 만났고 작은아버지가 말한 끝이 없다는 861번 지방도를 터벅거리며 걸어봤다. 빨치산의 딸이라는 작가의 굴레를 이해할만했다. 시대의 질곡 속 고단했던 삶을 글로 되살려낸 용기도 대단하다. 동생에게 읽어보라고 권했다.
누나에게 전화했다. “누나! <아버지의 해방일지>도. 이번엔 도서관 가서 빌리세요.”
첫댓글 김기현
2024.08.31.
<아버지의 해방일지>를 읽고
“천수관음 보살의 팔이 천 개인 것이 아니다. 사람에게도 천 개의 얼굴이 있다.”
그래 맞는 말이다. 그래서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고 하지 않더냐. 자원봉사를 생업처럼 마다하지 않았던 치과의사의 성추행 사건, 국민의 안녕을 위한 정치인의 부정부패, 간디와 아인슈타인의 부도덕성, 피카소의 변태 행위 등등 우리는 존경받던 위인들의 민낯에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그래서 심지어 우리는 우리가 누구인지를 알지 못한다.
아버지! 나에게 아버지는 어떤 존재였을까? 집에서 학생들의 시험지와 성적표를 정리하던 모습이 떠오른다. 늘 남을 배려하고 그들보다 뒤서기를 좋아한 아버지. 그래서인지 승진보다 세평을 얻었고 교장은 그저 사막의 신기루였을 뿐이었다. 34년 교직을 마감하면서 수많은 학생의 다정다감한 선생님이었을지는 모르겠으나 나에게는 무서워서 불편한 존재였다. 아마도 선생님이란 타이틀을 가진 아버지라서 더 그랬을 거다. 철이 들고 나이를 더 먹으면서 아버지를 이해하게 되었다. 선배처럼 친구처럼 농담도 던지며 더 가까이 다가가게 되어 선생님이란 직분의 아버지가 아니라 기현이의 아버지가 되었다
역으로 나도 그렇게 되었다. 다 세월의 덕분이었다고 생각한다. 서로가 몰랐던 모든 걸 세월이 밝혀낸 셈이다. 미움과 질투가 사랑이라는 걸, 무시가 배려라는 것을.
세월이 흘러 누군가의 단품이 아닌 종합세트를 발견하고 그 누군가의 삶을 재조명한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가 알고 있던 우리가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안다.
“우리가 우리를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긴 세월이 필요하다.”라는 게 <아버지의 해방일지>가 나에게 전한 강한 메시지였다.
공감하는 정지아의 메시지 적어 본다.
“쉰 넘어서야 깨닫고 있다. 더 멀리 더 높이 나아가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행복도 아름다움도 거기 있지 않다는 것을, 성장하고자 하는 욕망이 오히려 성장을 막고 있다는 것을.”
생각을 하고 그때 느끼지못한걸 마침내 깨우치게 되고 ᆢ
아버지의 해방일지 월요일 빌리러 간다
읽고 쓴다면 물개 박수를 보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