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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지기 비유
누가복음 16장 1-15절 / 1모든 세리와 죄인들이 말씀을 들으러 가까이 나아오니 2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수군거려 이르되 이 사람이 죄인을 영접하고 음식을 같이 먹는다 하더라 3예수께서 그들에게 이 비유로 이르시되 4너희 중에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의 하나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것을 찾아내기까지 찾아다니지 아니하겠느냐 5또 찾아낸즉 즐거워 어깨에 메고 6집에 와서 그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나의 잃은 양을 찾아내었노라 하리라 7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8어떤 여자가 열 드라크마가 있는데 하나를 잃으면 등불을 켜고 집을 쓸며 찾아내기까지 부지런히 찾지 아니하겠느냐 9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리하면 없어질 때에 저희 가 영원한 처소로 너희를 영접하리라 10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 11너희가 만일 불의한 재물에 충성치 아니하면 누가 참된 것으로 너희에게 맡기겠느냐 12너희가 만일 남의 것에 충성치 아니하면 누가 너희의 것을 너희에게 주겠느냐 13집 하인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길 것임이니라 너희가 하나님 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
본문은 설교하시는 분에 의해서 ‘불의한 청지기 비유’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제목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그냥 ‘청지기 비유’라고 말함이 더욱 적절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불의한 청지기’를 가지고 비유를 들거나, ‘불의한 청지기의 삶’ 또는 ‘불의한 청지기의 지혜’를 가지고 불의한 청지기의 지혜를 따라서 살아야 할 것을 가르치시는 것에서 하시고 있는 말씀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 비유는 주인의 집 재산을 맡아 관리하는 청지기가 불의의 재물로 발휘한 지혜를 가지고 이 세상의 아들들이 자신들의 세대에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보다 더 슬기롭다는 것을 통해서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신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여 배척함에 있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지혜롭지 못한 어리석음을 꾸짖으시면서, 이들은 단지 돈을 좋아하는 탐심이 가득 찬 자들이기에 그 마음에 하나님을 공경함이 없으므로 하나님의 율법에 나타내신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따름에는 관심이 없고 사람들 앞에서 스스로를 의롭다고 하는 외식에 있어 하나님이 그들을 가증히 여기시니 결코 하나님의 나라에서 하나님을 주로 섬김에 있지 못할 것임을 알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께서 말씀하신 ‘청지기 비유’의 내용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부자가 있는데, 그는 청지기를 한 사람 두었다. 이 청지기가 재산을 낭비한다는 고발이 들어왔다. 그러자 주인이 그를 불러놓고 말하였다. ’자네를 두고 말하는 것이 들리는데, 어찌된 일인가? 자네가 맡아 보던 청지기 일을 정리하게. 이제부터 자네는 청지기 일을 볼 수 없을 것이네.‘ 그러자 그 청지기는 속으로 말하였다. ’주인이 내게서 청지기 직분을 빼앗으려 하니 어떻게 하면 좋을까? 땅을 파자니 힘이 없고, 빌어먹자니 부끄럽구나. 옳지, 좋은 수가 있다. 내가 청지기의 자리에서 떨려 날 때에 나를 자기네 집으로 맞이해 줄 사람들을 미리 마련해야 하겠다.‘ 그래서 그는 자기 주인에게 빚진 사람들을 하나씩 불러다가 첫째 사람에게 ’당신이 내 주인에게 진 빚이 얼마요?‘ 하고 물었다. 그 사람이 ’기름 백 말입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청지기는 그에게 ’자, 이것이 당신의 빚 문서요, 어서 앉아서 여기에다가 쉰 말이라고 적으시오!‘ 하고 말하였다.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당신의 빚은 얼마요?‘ 하고 물었다. 그 사람이 ’밀 백 섬입니다.‘하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이번에도 청지기는 그에게 ’자, 이것이 당신의 빚 문서요. 그러니 얼른 받아서 여기에다가 여든 섬이라고 적으시오!‘ 하고 말하였다. 주인은 그 청지기가 지혜롭게 하는 일을 보고 칭찬하였다. 그것은 그가 슬기롭게 대처하였기 때문이다. ’이 세상의 아들들이 자기네끼리 거래하는 데에는 빛의 아들보다 더 슬기롭다.’ ”
예수님은 이와 같이 청지기 비유를 말씀하시고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래서 그 재물이 없어질 때에 그들이 너희를 영원한 처소로 맞아들이게 하여라. 가장 작은 일에 충실한 사람은 큰일에도 충실하고 가장 작은 일에 불의한 사람은 큰 일에도 불의하다. 너희가 불의의 재물에 충실하지 못하다면 누가 참된 것을 너희에게 맡기겠느냐? 또 너희가 남의 것에 충실하지 못하다면 누가 너희의 몫을 너희에게 내주겠느냐? 한 종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한다. 그가 한 쪽을 미워하고 다른 쪽을 사랑하거나, 한쪽을 떠받들고 다른 쪽을 업신여길 것이다. 너희는 하나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 그러자 돈을 좋아하는 바리새인은 이 모든 말씀을 듣고서 예수를 비웃었습니다.
이 내용을 보면, 1-8절에서 ‘청지기 비유’를 말씀하신 예수님은 9-13절에서는 앞에서 말씀하신 청지기 비유를 들어 말씀하신 이유가 무엇인지를 알게 해주시기 위해서 이것을 가지고 말씀하신 의미를 설명해 주십니다. 여기 9절에서 예수께서는 청지기가 맡아 관리하고 있는 주인의 재물을 가리켜 '불의의 재물'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청지기가 주인의 재물을 가지고 주인 몰래 온갖 불법을 저지르며 온당치 못한 방법으로 취득한 재물인 부당한 재물, 정직하지 못한 재물이라는 말이 아닙니다. 예수께서 여기서 말씀하시는 것에서 '불의의 재물'이라는 것은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공통되게 재물에 갖고 있는 생각을 잘 알고 계시는 것에서 하시는 말씀입니다. 어느 시대에나 그렇지만, 초대교회 당시에도 사람들이 재물을 벌고 재산을 모으기 위해서는 옳지 않은 일을 행하는 것에 있기 때문에 재물을 불의한 것으로 간주하였습니다. 그러니 예수님이 비유로 말씀하신 청지기에서의 ‘불의의 재물’이란 표현은 온 세상에 있는 재물 전체를 의도하는 것에서 하신 말씀입니다.
이어서 예수께서는 이 ‘불의의 재물’로 “친구들을 사귀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은 자기가 가진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는 말입니다. 이 말은 사람이 자기가 갖고 있는 재물로 가난하고 궁핍한 사람들을 도와주라는 말입니다. 여기서 가난하고 궁핍한 사람들이란, 도움을 받았으되 그것을 되갚을 수조차 없는 그런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예수께서 이처럼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구약 시대의 배경을 가지고 하시는 말씀이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택한 백성인 이스라엘을 약속의 땅에 들이시고 그곳에서 하나님의 복 주심에 의해 살게 하시는데, 세월의 흐름 속에서 여러 상황으로 과부와 고아가 발생하고 가난하고 궁핍한 자들이 있게 됨에서 하나님의 자비로 안전히 지켜지며 보호와 살핌을 받게 하실 것에 이웃이 그 역할을 하게 하셨습니다. 이 하나님의 자비로 있는 것이 ‘약자 보호법’이며, 어것에 의하여 유여한 자는 자신과 함께 하나님의 한 백성인 가난하고 궁핍한 자에게 하나님의 자비를 따름에 있는 베품에 있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배경에서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는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이는 달리 표현하면 “너희는 너희 가진 재물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주고 나를 따르라”는 말씀에 다름 아닙니다.
이어서 예수께서는 이렇게 친구를 사귀면 "저희가 영원한 처소로 너희를 영접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라고 하신 대로 이렇게 하면, "저희가 영원한 처소로 너희를 영접하리라."(9절)고 예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이는 무슨 뜻이겠는지요. 가난한 사람들이 자기들을 도와 준 사람들을 천국으로 인도한다는 말일까요? 이 말은 그런 뜻이 아닙니다. 여기에 등장하는 '저희가…영접하리라'는 “만일(너희가 재물이 없어질 때/너희가 죽을 때) 그들이 너희를 (영원한 처소로/영원한 집으로)영접할 것이다.” 또는 “(너희가 죽을 때) 너희는 영접을 받을 것이다. (그래서 영원한 처소로/영원한 집으로 들어갈 것이다).”라고 하는 의미로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따라서 여기서의 ‘저희’는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귄 자의 재물이 없어질 때, 곧 그가 죽을 때, 그를 그가 머물 영원한 처소인 하나님의 나라/하늘나라로 맞아들일 분을 의미하는 것으로, 일차적으로는 그 일을 하여 하나님을 수종 드는 '천사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만, 이 일을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이기에 ‘저희’가 뜻하는 본의는 하나님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리하면 없어질 때에 저희가 영원한 처소로 너희를 영접하리라”는 말은 “너희가 재물로 하나님의 보살핌에 있는 가난한 자들을 도와 자비에 부요하신 하나님의 품에 있게 하면 너희의 재물이 떠날 때/너희가 죽을 때 너희로부터 도움을 받은 자들이 너희가 하나님을 사랑하며 그와 같이 또한 이웃을 사랑함으로 율법을 온전히 이룸에 있은 일을 아뢸 것이니 하나님께서 너희를 하나님의 나라로 인도하실 것이다”는 것을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이 율법을 온전히 이룸에 하나님의 백성들이 있게 하기 위하여 하나님은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주셨습니다. 그에 따라서 예수님은 자신을 보내신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하나님의 율법을 온전히 성취할 대속주가 되시는 그리스도의 사역을 수행하여 자신에게로 나아오는 모든 자들을 모아 자신과 같은 율법을 온전히 이룸에 있는 복 있는 하나님의 아들이 되게 하는 일을 하십니다.
그러니 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로 나와 주로 오시는 분이심을 시인하고 영접함에 있는 지혜의 믿음에 있어야 합니다. 여기에 가장 앞에 있는 첫 번째 사람이어야 할 자들이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요 대제사장이요 장로들이어야 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율법을 맡은 자들로서 유대인들의 지도자들이니 말입니다. 하지만 그러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자신들도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을 주로 시인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이웃들도 그리고 그들의 가족이요 형제요 자매인 세리들과 죄인들을 예수님께서 함께 하시는 것을 멸시하며 배척함으로 자신들도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고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을 막아 나섰습니다.
이들은 말이죠. 다만 돈을 사랑하는 탐심이 가득 차 있을 뿐입니다. 이러한 그들은 마음에 하나님을 공경함이 없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율법을 멸시하는 행동에 있으니 스스로를 의롭다 여기며 사람들에게 칭찬을 들으며 높임을 받고자 외식함에 있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을 하나님은 그들이 하는 행위를 참으로 가증히 여기시며 역겨워하시니, 하나님 나라의 문은 그들에게는 굳게 닫혀 있습니다. 11절에서 “지극히 작은 것에도 충성치 않는 자에게 어찌 참된 것을 맡기겠느냐?”는 것에서 말씀해 주시고 있는 ‘참된 것’이 의미하는 바인 '복된 것, '하늘에 속한 것', '영원한 것'은 ‘지극히 작은 것에도 충성하는 것’인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을 주로 받아 따름에 있는 자에게 맡겨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청지기 비유에서 말씀되고 있는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귐에 있는 지혜에서 보는 바인 자신의 장래를 대비함에 있은 참으로 지혜로운 자들을 봅니다. 사도행전에서의 스데반에 대한 이야기에서 보는 바이거니와 히브리서 11장에 나오는 ‘믿음으로’에 있은 인물들을 열거하며 말씀해 주시고 있는 “세상이 이들을 감당치 못한다”는 것은 이미 이들은 하늘의 세계의 참된 생명을 소유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죽음을 무서워하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는 그 마음은 이미 자신들이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통해서 하늘의 세계에서의 생명을 얻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청지기 비유에서의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귐에서 말씀해 주시고 있는 지혜에 있지 못하는 것은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을 믿음으로 따름에 있는 것이 지닌 하늘의 보배로움을 알지 못하고 바리새인들에게서 보는 바인 오직 돈을 사랑함에 있는 탐심이 가득하며 그 마음에 하나님을 공경함이 없어 스스로를 의롭게 여기며 사람들에게 높임을 받기를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이는 오늘날에 우리네 주변의 교회에서 본문을 ‘불의한 청지기 비유’로 삼고서 흔히 설교하는 내용인 마치 개처럼 돈을 벌어서 정승처럼 돈을 쓰면 된다는 식의 사고를 심어주어 성도들이 돈을 부정하게 벌지라도 이 돈으로 친구를 사귐에 있는 선행을 베풀고 하나님을 위해서 쓰면 된다며, 땅에서 불의하게 번 돈으로 하늘의 창고에 쌓으면 그것이 자신에게 하늘의 보물이 될 것이라는 생각으로 교회에 연보하면 불의하게 번 돈도 의로운 행위가 되는 것인양 하는 따위로 신앙생활을 하게 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으니, 이 얼마나 잘못된 것이며, 큰 악행인지요.
하지만 말입니다. 이러한 설교나 이것에 의한 신앙은 참으로 얼토당토 않은 것입니다. 참으로 가당치 않습니다. 우리는 그동안 늘 ‘불의한 청지기 비유’로 의식해 오고 있었던 것에서 가진 궁금함을 해소할 뿐만 아니라, 본문에 대한 바른 이해를 가져나가야 합니다. 누가복음 16장 1-15절은 ‘불의한 청지기’를 말하는 비유가 아닐뿐더러, 이곳에서의 비유는 일반적인 세상 기준의 논리에서 말씀해 주신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 그러한 식으로 풀어 해석하고 설명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하늘나라/하나님 나라를 가지고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주로 받아들임에 있는 믿음의 지혜에 있어야 할 것이나 그렇지 못한 바리새인들의 어리석음을 드러내시는 것에서 말씀해 주시고 있는 비유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비유를 통해서 우리가 믿음의 주로 섬기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이해를 보다 더 잘 가져나가는 것이 되어서 그분께 대한 믿음이 더욱 견고함에 있어 나가는 것이 되어야겠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복음인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진리를 앎에 있는 유익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