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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
김 동 리
노(櫓)를 저을 때마다 작은 나무배는 삐거걱 소리를 내며 검은 물 위로 미끄러져 흘러내렸다. 하늘에는 별들이 유난히 빛나고 있었으나, 동쪽 강 언덕의 울울한 숲그늘은 칠야같이 강면을 뒤덮어 있었다.
“물이 좀 흐르는가.”
경보(景甫)― 달이의 외삼촌 ― 는 머슴에게 이렇게 물었다.
‘예기소’에서 합친 서천(西川) 알천(閼川) 두 갈래 물은, 금장(金丈) 나루를 지나자 다시 두 줄기로 벌어져 흘러내리는 것이었다. 서쪽 넓은 바닥으로 퍼져 흐르는 것이 흐름의 줄거리로 보아서는 역시 형산강(兄山江) 본류로 되어 있었으나, 그 수심(水深)에 있어서는 동쪽 줄기에 비길 나위가 없었다. 동쪽 줄기는 본디 바닥이 깊고 언덕이 높은데다 두어 마장 아래는 울창한 고목숲이 가로놓여 있고, 그 숲 머리에다 보뚝을 막아서 짙푸른 물은 호수같이 언제나 고요히 담겨 있었다.
“흐르긴 좀 흐르는데…….”
한참 뒤에 앞집 머슴은 노 잡은 손을 잠깐 쉬며 혼자말같이 이렇게 중얼거렸다. 언팩 위 숲속에서는 비드득 비드득 밤새가 울었다. 윗머리 나루에서 멱을 감던 사람들도 거의 마을로 들어가 버린 모양으로, 강가 모래 위에 찬란히 오르던 모닥불도 어느덧 깜박깜박 사그라져 가고 있었다.
“뱃머리를 좀 둘리게.”
달이의 외삼촌은 장대로 물 속을 더듬으며 이렇게 말했다.
“뭐가 걸 리는교.”
머슴이 고개를 돌이키며 물었다. 그러나 갈퀴 끝에 걸려 올라온 것은 달의 시체가 ㅇI·니라, 썩은 나무토막이었다. 달이의 외삼촌은 나직하게 한숨을 내쉬며 담배를 피워 물었다.
“여기서 빠지는 걸 똑똑히 보긴 봤다는가.”
“글쎄요, 숙희가 봤다니까…….”
제 눈으로 못 보았기는 마찬가지였다.
어젯밤 그들이 물레방앗간 곁에서 막 첫잠을 한숨이나 자고 났을 때 보 위에서 처참한 계집아이의 비명 소리가 들려 왔다. 그들이 잠을 깨어 소리 나는 곳을 찾아 뛰어왔을 때는 이미 물 위에 빈 배 한 척만 덩그렇게 떠 있을 뿐이었다.
“아아, 달이 물에 빠졌다!”
“달이 빠져 죽었다!”
그들은 거의 직각적으로 이렇게 외쳤다. 머리 위에는 열이레 달이 거진 하늘 한가운데 와 있었다.
“숙희는 어디 갔어, 숙흰?”
그들은 조금 전 비명 소리를 낸 것이 숙희였음을 누구나 다 알고 있었다. 숙희는 제 눈으로 보았다고 하였다. 달이 그 작은 나무배를 타고 물 위에서 혼자 놀고 있다가 물 속에 비친 달을 들여다보며 웃는 얼굴로, 친구와 이야기하듯 무어라 중얼거리다 배에서 떨어져 버리더라는 것이었다.
그 길로 여태껏 배는 삐거걱 뻐거걱 소리를 내며 이 물 위에서 맴을 도는 것이나, 어찌 된 노릇인지, 물 밑에서 그 새하얀 얼굴에 웃음을 머금고 반반이 누워 있을 달이의 시체는 아직까지도 갈퀴 끝에 좀처럼 걸리지 않았다.
“아아, 물 속에 무슨 굴이 있나 보다. 굴 속으로라도 끌려 들어갔는갑다.”
달이의 외삼촌 경보는 한숨을 지었다.
달이(達伊)는 달, 또는 달득(達得)이라고도 불렀다. 그 어머니 모랭이〔毛良〕 무당이 꿈에 달을 품고 낳은 아들이라 하여 그가 여남은 살 가까이 될 때까지 보통 ‘달아’, ‘달아’ 하다가 열 살이 넘어, 간신히 글방에 넣을 수 있었을 때부터 그의 외삼촌 경보가 달득이란 이름을 그에게 지어 주었던 것이었다. 달득이 역시 달님으로부터 얻은 아이란 뜻이었다.
무당 모랭이가 달득이를 배게 된 것은 지금으로부터 열여덟 해 전, 과부 된 지 오 년 만에, 그때까지 시름시름 까닭 없이 앓고 있던 병 끝에 우연히 무당 귀신이 들리어, 새 무당이 났다고 한창 소문이 자자했던, 그녀의 나이 갓서른 살 됐을 때였다.
나원당(동네 이름) 동네에서 굿을 마치고 물을 건너 숲속을 지나 올 때였다. 같이 굿을 마치고 돌아오던 화랑―그는 모랭이가 사는 봇마을을 지나서 또 십 리나 더 가야 할 사람이었다―과, 그 어두운 숲속에서 지금의 달이를 배게 되었던 것이었다. 풀밭에는 너무 이슬이 자욱하여 보드라운 모래 바닥을 찾아 그들은 자리를 잡았던 것이었다.
고목이 울창한 숲을 휘돌아, 봇도랑의 밝은 물은 흘러내리고, 쉴 사이 없이 물레방아 바퀴는 소리를 내며 돌아갔다. 여자의 몸에는 시원한 강물이 흘러들기 시작하였던 것이었다. 보름 지난 둥근 달이, 시작도 끝도 없는 긴 강물처럼 여자의 온몸에 흘러드는 것이었다. 끝없는 강물이 자꾸 흘러내려 나중엔 달이 실낱같이 가늘어지고 있었다. 그 실낱 같은 달이 마저 흘러내리고 강물이 다하였을 때 여자의 배와 가슴속엔 이미 그 달고 시원한 강물로 가득 차 있었던 것이었다. 여자의 몸엔, 손끝까지, 그 희고 싸늘한 달빛이 흘러내려, 마침내 여자의 몸은 달 속에 혼곤히 잠기고 말았고, 그리하여 잠이 들었던 것이었다.
‘아아, 신령님께서 나에게 달님을 점지하셨다.’
모랭이는 혼자 속우로 굳게 믿었다.
이리하여 낳은 아이의 얼굴은 희고 둥글고 과연 보름달과 같이 아름다웠다. 모랭이는 여러 사람이 보는 데서 자량삼아 그를 달아, 달아, 하고 불렀다. 그러나 이 달이는 열여섯 살 먹던 해 늦은 봄에 그만 글방에서 쫓겨나고 말았다.
글방의 사장(師丈)님에게는 그해 열일곱 살 나던, 정국(貞菊)이란 딸이 있었다. 그해 설에 달이가 흰 두루마기를 입고 사장님께 세배를 마치고 나오려니까, 뜰 앞의 짚둥우리 사이에 숨어 있던 정국이 그의 두루막 소매를 잡아당겼다. 놀라서 돌아다보니, 정국은 부끄러운 듯이 두 눈을 반쯤 내리감으며, 웃는 얼굴로, 새하얀 창호지로 조그맣게 싼 것을 달이의 손에 쥐어 주었다.
“가져가서 펴봐라.”
달이는 가슴이 와들와들 떨리어, 얼른 집으로 돌아와 그 종이에 싼 것을 펴보았다. 종이를 펴자 조그만 꽃주머니 하나가 나오고 꽃주머니 속에는 다시 첩첩이 접은 종이쪽지 하나가 나왔다. 종이쪽지에는 이렇게 씌어 있었다.
仙桃山月 半輪秋 影入兄山江水流 日夕貞兒向書冊 思君不見使人愁(선도산은 하도 높아 달도 반만 둥근데, 그림자는 형산강 물 속에 흐르는구나. 정국은 날마다 책을 펴놓고 앉아 있지만 머릿속엔 그대 생각만 가득하여 애닯을 뿐이다).
이백(李白)의 아미산월가(我嵋山月歌)를 딴 것이었다. 달이는 별안간 정국이 왈칵 그리워졌다.
그는 기쁨에 못 이겨 그 꽃주머니를 허리끈에 차고 밖으로 나갔다.
“꽃주머니 그거 어디서 났노.”
숙희가 대뜸 이렇게 물었다. 그해 열다섯 살 나던 숙희는 집이 바로 달이네와 앞뒤에 있었고, 또 어렸을 때부터 유달리 달이에게 따르던 터이라 외사촌간이라 해도 친누이동생처럼 그와는 가까이 지냈던 것이었다. (정국은 달이보다 한 살이 더하여 그해 열일곱이었던 것이다.)
“저기, 누구한테 얻었어.”
달이는 얼굴을 붉히며 이렇게 어물거렸다.
“저기, 어디서?”
숙희는 갑자기 두 눈에 광채를 띠며 바짝 대들었다.
“저기, 누구 누구한테…….”
달이는 숙희의 손을 뿌리치고 달아나 버렸다.
글방 앞 우물가에 살구꽃이 허옇게 핀 봄날 밤이었다. 선도 산마루에는 파란 초생달이 걸려 있었다. 달이는 정국과의 약속에 의하여 남몰래 혼자 글방에 나와 있었다. 조금 있으니 정국이 사뿐히 방문을 열고 들어왔다.
“사장어른 계시나?”
달이는 숨을 죽여 가며 들릴 듯 말 듯한 낮은 목소리로 먼저 이렇게 물었다. 정국은 고개를 끄떡하였다.
“사모님도?”
정국은 고개를 돌렸다.
“어디 가셌노?”
“저어기 양산 좀 가셌다.”
“그럼 꽤 오래되겠구나.”
“…….”
정국은 또 고개를 끄덕였다.
“사장님 지금 뭘 하고 계시노?”
달이는 한참 뒤에 숨을 쌔근거리며 또 이렇게 물었다.
“주무신다.”
정국은 의외로 침착한 목소리였다. 정국의 이 침착한 목소리에 용기를 얻은 달이는 그때야 비로소 정국의 얼굴을 바로 바라다보았다. 다음 순간 그들은 어떻게 해서 입술이 닿게 되었는지도 깨닫지 못했다. 다만 간이 얼어붙는 것같이 시리기만 했다. 정국은 눈을 사르르 내리감으며 반듯하게 드러누워 버렸다. 달이는 정국의 가슴 위에 손을 얹었다. 그는 숨이 차서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았다.
달의 손이 들석들석하도록 정국의 가슴도 뛰고 있었다.
‘아아, 이것이 무서운 꿈속이 아닐까.’
달이는 괴로움에 못 이겨 문득 이런 생각도 해보았다. 앞골목에서 개가 쿵쿵 짖었다. 구름이 지나가는지 방문에 검은 그림자가 비치었다. 달이는 정국의 가슴 위에 얹고 있던 손끝을 부르르 떨며 비실비실 방문 앞까지 와·서는 뿌시시 방문을 열었다. 정국은 그새 잠이나 든 것처럼 꼼짝도 하지 않고 가만히 누워 있었다. 달이는 무슨 도망질을 치듯이 어두운 골목을 한숨에 달아나 버렸다.
이튿날 밤도 그들은 또 그 자리에서 그렇게 만났다. 정국의 연꽃 같이 슬프고 아름다운 얼굴에는 어젯밤보다도 더 황홀한 미소가 떠돌고 있었다.
“늬 울 아부지가 그렇게 무섭나.”
정국이 어젯밤보다는 훨씬 대담한 태도로 이렇게 물었다.
“늬는 괜찮나?”
“울 아부진 저녁에 내가 술상만 보아 들여놓으면 혼자서 부어 잡숫고 새벽까지는 아무 말씀도 없이 주무신다.”
또 한참 동안 침묵이 흘렀다.
“늬 어젯밤에 개 짖는 소리 들었나?”
“…….”
정국은 대답 대신 달이의 머리카락을 만지고 있었다.
봇머리 숲속에서는 밤 뻐꾸기 우는 소리가 들려 왔다. 방문에, 또 어젯밤과 같은 검은 그림자가 비치었다. 달이 지는지도 몰랐다. 달이는 그만 돌아가리라 생각했다.
“난 물에 빠져 죽어 버릴 게다.”
정국은 달이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며 이렇게 속삭였다. 그러나 달이는 정국의 속삭임엔 지극히 무심한 얼굴로,
“늬는 글재주가 있으니까.”
엉뚱스레도 이런 말을 불쑥 했다.
“늬는 내가 죽으면 좋지?”
정국은 또 이렇게 물었다.
“늬는 너의 어머니가 가라면 시집가서 아이 낳고 살겠나.”
“늬는?”
“나는 싫다.”
“나도.”
정국은 달이의 손목을 잡은 채 또 어젯밤과 같이 눈을 사르르 내리감으며 반반히 드러누워 버렸다. 달이는 자기 자신도 모르게 정국의 가슴 위에 손을 얹었다. 순간 가슴은 또 걷잡을 길 없이 뛰기 시작하며, 끙끙 신음 소리를 내도록 숨결도 괴로워졌다. 앞 골목에서 개짖는 소리가 들리었다. 달이는 또 어젯밤과 같이 방문 있는 곳으로 비실비실 달아나려 하였다. 그러나 정국은 달이의 손목을 꼭 잡은 채 놓지 않았다. 정국은 자기 손에 힘을 주어서 달의 손으로 자기의 가슴을 누르게 하였다.
“내가 꼭 죽을 걸 늬는 모르나.”
정국은 또 이렇게 물었다.
“늬는 그걸 어떻게 알어?”
“저절로 알아졌다.”
“언제부터?”
“금년 설에, 늬가 우리집에 세배를 다녀갔을 때부터…….”
“그 시를 지어 준 땜에?”
“아니 벌써 늬가 첨으로 우리집에 글 배러 왔을 때부터 난 어쩌면 그런 생각이 들었을 거다.”
순간 달이는 정국이가 와락 무서워졌다. 그는 힘을 다하여 정국의 손을 뿌리쳐 버리고는 또 어젯밤과 같이 어두운 골목으로 달아나 버렸다.
이튿날 저녁때 숙희가 와서,
“득이 오빠, 너 정국이 즈 엄마 돌아온 거 아나?”
하였다.
그러나 정국이의 어머니가 그 친정집으로 다니러 갔었다는 것을 숙희가 어떻게 알고 있는지 그것부터 이상스러웠다.
“모른다, 왜?”
“아까, 저녁때 돌아왔다.”
하고 숙희는 너희들의 비밀은 내가 다 알고 있다는 듯이 생글생글 웃는 얼굴로 달이의 얼굴을 쳐다보고 있는 것이다.
“너 그럼 모다 엇들었나?”
달이의 약간 떨리는 목소리였다.
숙희는 잠자코 고개를 수그려 버렸다. 순간, 달이의 머릿속에는, 어젯밤, 그리고 전전날 밤에도, 방문에 비치던 검은 그림자가 떠올랐다. 그러면 그것은 그때마다 구름이 지나간 것이 아니라 숙희의 그림자였는지도 모른다고 헤아려졌다.
“너 아무한테도 말 내지 마라.”
“저번때 그 꽃주머니 날 주믄…….”
“그래.”
달이는 정국으로부터 얻은 꽃주머니를 숙희에게 주었다. 그러나 바로 그 이튿날엔 달이와 정국과의 사이가 온동네에 알려지게 되었고, 그런 지 다시 한 달 뒤엔 정국이가 봇머리 깊은 물 속에 몸을 던지고 말았던 것이다.
정국이 죽은 뒤 한 해가 가까이 되도록 달이는 집 안에서 시를 짓고만 처박혀 있었다.
“정국이 죽은 데 시묘(侍墓)살이를 하나?”
하고 숙희가 이따금 와서 이죽거리곤 해도, 달이는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달이의 정신이 이상해진 것이라고 숙희는 생각하였다. 허구한 날을 어쩌면 그렇게 방 안에만 드러누워 배기는지 야릇한 노릇이라 하였다.
정국이가 죽은 지도 두 해가 지난 뒤였다. 마을에는 골목마다 살구꽃이 허옇게 피어 있고, 하늘에는 초여드레 새하얀 조각달이 걸려 있었다. 달이는 하늘의 달이 아주 기울 때까지 혼자서 휘휘 봇둑에 오르내리고 있었다. 솔솔 부는 저녁 바람은 찔레꽃 향기를 풍겨 오고 언덕 위 어두운 숲속에서는 비드득비드득 하고 밤새 우는 소리가 들려 왔다. 그때 물 속에 비친 달그림자를 들여다보던 순간, 달이는 우연히 가슴이 찌르르 아픔을 깨닫게 되었다.
이튿날도 사흘째도 마찬가지였다. 상현(上弦) 달이 하현으로 이울 때까지 그는 하늘에 달이 걸린 밥이면 언제나 강가에 나와 있게 되었다.
숙희가 어두운 숲그늘에 숨어서 달이의 동정을 살피며 따라다닌 것은, 처음엔 그가 혹 물에 몸을 던질까 보아 그걸 지키느라 했던 것이라 하였다.
“오빠, 너 요새도 정국이 생각을 하나.”
어두운 강가에서, 스무날 달이 뜨기를 기다리고 서 있는 달이에게 숙희가 이렇게 물었다.
“아아니.”
하고 달득은 의외로 경쾌한 목소리로 고개를 흔들었다.
“거짓말.”
“아아니.”
달이는 역시 아까와 마찬가지로 도리질을 하였다.
“그럼 왜 밤마다 혼자서 강가에만 나와 어정거리노.”
“달을 볼라구.”
“거짓말.”
“…….”
달이는 잠자코 고개만 돌렸다.
“그렇지만 정국이 살았을 땐 요새처럼 안 그랬지 뭐.”
숙희의 이 말엔 달이도 별로 아니라 하지 않았다. 그러나 달득은 달을 보고 반드시 정국을 생각하는 것 같지도 않았다. 그저 달을 보는 것만이 즐겁고 자꾸 그리운 것 같았다.
열아흐레 스무날 즈음하여 하늘의 달이 이울기 시작하면 그의 가슴은 그지없이 어둡고 쓸쓸하여졌다. 스무사흘, 나흘 즈음에, 밤도 이슥하여, 동쪽 하늘 끝에 떠오르는 그믐달을 바라볼 때엔 자기 자신이 임종이나 하는 것처럼 숨이 가쁘고 가슴이 답답했다. 한 달에도 달을 못 보는 한 열홀 동안, 그는 동면하는 파충류처럼 방 한구석에 이불을 뒤쓴 채 낮이고 밤이곤 잠으로만 세월을 보내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초사흘 초나흘께부터 다시 서쪽 하늘가에 실낱 같은 초생달이 비치기 시작하면 날로 더 차가는 달의 얼굴과 함께 그의 가슴은 차츰 부풀어 오르며 숨결도 높아지는 것이었다. 이리하여 초아흐레에서 열아흐레까지 한 열흘 동안이 그에게 있어서는 행복의 절정인 듯했다. 무엇에 홀린 사람처럼 입맛도 잃고, 정신도 어리뚱해진 듯, 숙희의 얼굴까지 피해 가며 온 밤을 이술에 함뿍 젖어 다니다 날이 부옇게 새어 갈 무렵에야 휘휘한 걸음으로 돌아오곤 하였다.
“오빠, 너 달한테 씨이는 게지.”
“씨이다니?”
“몰라.”
“듣기 싫어!”
“…….”
달이는 숙희를 바로 보지 않으려고 외면하였다. 그러나 숙희는 숙희대로 달이의 얼굴을 아무리 들여다보아도 자꾸 더 보고 싶기만 했다.
‘나도 정국이처럼 달이한테 상사병이 들렸는감다.’
숙희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고, 하루라도 속히 잊어야 되겠다고 하면서도 좀처럼 잊혀지지가 않아, 그 많은 사람들의 눈을 피하느라고 캄캄한 숲속 첩첩이 엉기인 찔레 가시를 헤쳐 가며 그의 뒤를 밟아 다니곤 하였다.
“오빠, 너 정말 크럴래.”
“무얼 그러노.”
“너 사람을 너무 괄시하지 마라.”
“…….”
달이는 말없이 숙희의 손목을 잡았다. 캄캄한 숲속이었다. 어느 나무에선지 부엉이가 워헝 워헝 울었고, 찔레꽃이 만발한 봇도랑가 숲속에서는 비둘기들이 푸드득푸드득 쉴 새 없이 댓가지를 흔들었다. 아직도 달이 뜨려면 한 시간 가량이나 기다려야 하였다. 울울한 나뭇잎 사이사이로 내다뵈는 하늘에는 파란 별들이 숲속의 비밀이나 엿보려는 듯 반짝이고 있었다.
“한 달에 사홀 밤씩만 내가 이 배를 빌리기로 했다.”
달이는 나무 둥우리에 매어 둔 뱃줄을 풀며 이렇게 말했다.
“이렇게 어둔데 오빠 너 배를 타나.”
“타면 어때.”
“여기 너 몇 걸 서는 줄 아나.”
“두 길.”
“그러지 말고 너 달 뜨거던 타라.”
“그럼 잘 가거라.”
그는 한시라도 바삐 숙희의 곁을 떠나려는 듯이 줄을 끌르자 곧 배에 올라 뻐거걱 하고 노를 짓기 시작하였다.
언덕 위로 숲 사이로 허옇게 피어 있던 찔레꽃도 거의 다 지고, 밤이면 마을 여자들이 냇물을 찾아 나오게 되는 한여름이었다.
낮에 그 삼촌 경보와 함께 고모(모랭이 무당)네 보리 타작을 해주고 난 숙희는 저녁을 마치자 곧 동무들과 더불어 냇물에 멱을 감으려 나와 있었던 것이었다.
“야, 빨리 씻고 나오너라, 달 뜨면 머슴아들한테 욕묵는다.”
한 아이가 숙희더러 하는 말이었다.
“아이들도, 달 뜨도록 더 감지 와 그래.”
숙희는 그냥 물 속에 남아 있였다.
“숙희 늬는 밤마다 멱을 감으러 댕기면서 뭘 그리 오래 감노.”
또 다른 아이가 이렇게 말하자, 그녀들은 한꺼번에 깔깔깔 웃어 대었다.
“가스나도, 지가 밤마다 멱을 감고 다니면서.”
숙희는 그 아이에게 눈 홀기는 시늉을 해뵈며 물 밖으로 나왔다.
윗머리에는 사내아이들이 모래 위에 모닥불을 놓고 둘러 서서 떠들고 있었다. 그들도 낮에 타작을 한 모양으로 옷을 벗어 불 위에 대고 있었다.
“숙희 느의 달득이 오빤 낮에 멀 하노?”
한 아이가 이렇게 물었다.
“하긴 멀 해? 왼종일 죽은 것같이 늘어져 자기만 하지.”
“밥도 안 먹고?”
“밥이라니, 얘, 저녁때나 돼·서 일어나면 겨우 미음 한 그릇밖에 못 먹는다.”
“그래도 즈이 작은아부지들이 그대로 보고 두나.”
“그렇지만 어쩌겠노. 제절로 마음이 고쳐질 때까지 그냥 두고 보지, 그것도 병이라는데.”
숙희는 이런 말을 하며 그녀들과 함께 마을로 들어오는 체하다가 물레방앗간 곁에서 혼자 숲속으로 빠져 들어와 버렸다.
낮이라도 사람 하나 겨우 지나다닐 만치 뚫려 있는 숲속 길이라 나뭇가지와 가시덤불이 낯을 긁고 머리를 찌르곤 하였다.
‘득이가 아직 있을까, 벌써 어디로 배를 저어 가버렸을까.’
숙희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눌러 가며 달이의 조그만 배가 매어 있는 곳을 찾아갔다.
“철버덩.”
물소리가 들리었다. 그리고는 잠잠하였다. 나무에서 무엇이 떨어지는 소리였다.
“끼엇…… 까르르 끼릭!”
하고 까치가 놀란 듯이 두어 소리 지저귀곤 다시 잠잠해졌다. 까치둥우리가 헐 리어지는 소리였는지도 모른다고 숙희는 생각하였다.
“철버덩!”
또 물소리가 났다. 그러자 분명히 그 늙은 감나무에서 풋감이 떨어지는 소리임을 깨달았다.
물 위로 기다랗게 뻗쳐 나가다 반쯤 썩어서 분질러진 늙은 감나무가지 위엔 새파란 별들이 반짝이고 있었다.
‘풋감이 떨어지는구나.’
숙희는 혼자 속으로 중얼거렸으나, 그 늙은 감나무 둥우리에 매어두었을 달이의 조그만 나무배는 이미 거기 있지 않았다.
‘아이도, 그새 배를 끌러 갔구나.’
숙희는 그 먹탕같이 새카만 강물을 바라보며 혼자 속으로 이렇게 중얼거렸다. 이날따라 달이가 한결같이 더 야속하기만 했다. 앞 숲에서 뼈꾸기가 울었다.
“풀꿀, 풀꿀.”
다람쥐처럼 나무에 오르내릴 수 있으면, 하고 숙희는 생각하였다.
그녀는 저 까치 둥우리가 있는 높은 나뭇가지 위에 올라가 달이 돌아올 때까지 숨어서 기다려 보았으면 싶었다. 나뭇잎을 한잎 두잎 따서, 나중 달이 오거든 달이의 머리 위에 떨어뜨려 봤으면 싶었다. 달은 놀라서 나무 위를 쳐다볼 것이다. 그러면 자기는 나뭇가지에 앉아서 내려다보고 있을 것이다. 아아, 그렇게 달의 얼굴을 바라볼 수 있으면 얼마나 즐거울까, 숙희는 가만히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다, 강가로 나왔다.
열이레 달이 하늘 한가운데 나와 있을 때였다. 숙희는 어두운 숲그늘을 타고 강가를 오르내리고 있었다. 강물 위에는 달이가 작은 배 위에서 조용히 노를 젓고 있었다. 그의 얼굴은 달빛에 반사되어 거울같이 희고 둥글며 아름다워 보였다. 그는 빙글빙글 웃는 얼굴로 물 속에 비친 달을 들여다보며 무어라 중얼중얼 혼자서 중얼거리고 있었다. 흡사 누구와 무슨 정다운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듯 그의 얼굴은 어떤 즐거움에 빛나고 있었다. 달득이 시방 꿈을 꾸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고 숙희는 생각하였다. 꿈속에서 정국이와 만나 저렇게 이야기
를 하고 있는 겐지도 모른다고 숙희는 생각하였다.
달이는 물을 들여다보고 무엇을 묻고 있는 모양이었다. 오냐, 하고 고개를 끄덕끄덕하는 것이었다. 바로 그러는 순간이었다. 달이는 배에서 물 속으로 떨어지며 있는 것이었다. 숙희는 마치 꿈속에서와 같이 소리를 지르려고 무진 애를 썼으나 한참 동안은 숨이 막힌 채 틔어지지 않았던 것이었다.
배는 어젯밤 달이가 떨어졌다는 자리에서 다시 맴을 돌았다. 그 위치에서 아래로 몇 번이나 갈퀴를 넣어 보았으나 헛일이었다.
“여기서 위로 거슬러 올라갔을 리는 만무지.”
하면서 역시 위로도 갈퀴를 넣어 보지 않은 데가 없었다.
“김도령…… 김도령.”
보 아랫머리에서 무당 모랭이가 횃불을 쳐들고 그들을 찾아 올라오고 있었다.
“아직 나오지 않나?”
무당은 강 언덕에서 소리를 질렀다.
배는 말없이 언덕에 닿았다.
“자, 이걸 잡고 내려오소.”
달의 외삼촌 경보는 언덕에서 배에 올라타려는 무당에게 장대를 건네주었다. 세 사람을 태운 배는 아까보다 좀더 삐거걱 소리를 내며 물 위로 미끄러졌다.
“여기는 물이 몇 길이나 서노.”
무당은 횃불로 물 위를 휘휘 비쳐 보며 이렇게 물었다.
“두 길은 설걸.”
동생이 대답했다.
“횃불을 두르니 더 어둔 것 같소.”
머슴이 중얼거렸다.
“횃불을 꺼버릴까.”
무당이 물었다. '
“꺼버리이소.”
머슴이 대답했다.
“열여드레니까 달이 곧 뜨겠지.”
경보가 이렇게 중얼거리자, 무당은 또,
“숲에 가려 그렇지, 열여드레 달이 여태 있을라꼬.”
횃불가지를 물 위에 던져 버리며 이렇게 말했다.
“그해 조 아래서 정국이가 빠졌을 때는 한 시간도 못 돼서 시체를 건져 냈지요.”
머슴이 또 이런 말을 했다.
“그러니 말이지, 물 속의 무슨 이무기 굴 속으로나 끌려 들어간 것 같애.”
경보가 알 수 없다는 듯이 또 한번 한숨을 내쉬었다.
“얄궂다, 얄궂지요.”
머슴도 이상해 못 배기겠다는 듯이 또다시 고개를 기웃거렸다.
무당은 말없이 검은 물 위만 멍멍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지 말고 굿을 한번 해주이소.”
머슴이 또 이런 말을 했다.
“굿을 하재도 시체를 먼저 건져 놓아야지.”
동생이 무당의 대답을 가로 맡았다.
“그럼 정국의 굿을 먼저 해주이소.”
머슴이 또 이렇게 말했다. 그러자 경보도,
“참 정국이가 데려갔는갑다.”
하며 무당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무당의 얼굴에는 숲 위를 솟아 오르는 달빛이 비치기 시작하고 있었다. 그녀는 그렇게 넋나간 사람처럼 숲 쪽으로 얼굴을 쳐들고만 있었다.
“아니 누님, 정국이 굿을 먼저 해주면 어떨까.”
무당을 보고 경보가 또 한번 이렇게 물었다. 그러나 무당은 고개를 저었다. 그녀는 아까부터 갑자기 무슨 귀신에라도 홀린 듯한 얼굴이었다. 갑자기 그녀는 아무것도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채, 어떤 한 가지 생각에만 정신이 팔려 있는 모양이었다. 숲 위를 둥실 올라온 달이 그녀의 얼굴을 정면으로 환하게 비쳤을 때였다. 그녀는 갑자기 놀란 듯이 배에서 왈칵 뛰어 일어나며,
“아아, 저기 달이!”
하고 목이 터지도록 고함을 질렀다.
두 사람도 손에서 갈퀴와 노를 놓아 버리고, 무당이 손을 들어 가리키는 쪽을 얼빠진 사람들처럼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 바다같이 깊고 어두운 수풀 위에 주름살 한 가닥 없이 활짝 핀 달의 얼굴은 과연 떠올라 있는 것이었다. 세 사람은 물 속의 달을 아주 잊은 것처럼 하늘의 달만 쳐다보고 있었다.
(『황토기』, 인간사, 19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