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글 본문내용
|
|
다음검색
| 21세기 대한민국을 설명하는 열쇳말 중 하나는 이른바 '○빠' 현상이라고 불리는 극단적인 쏠림 현상이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를 막론하고 일단 "끌리고 쏠리고 들끓기" 시작하면 합리적인 토론은 불가능하다. 그 폐해가 수차례에 걸쳐서 드러났음에도 심지어 언론, 지식인, 정치인이 나서서 이런 "끌리고 쏠리고 들끓는" 현상을 부추기고 대중은 이에 반응한다. '프레시안 books'는 파시즘, 매카시즘 등 전체주의의 광기가 세계를 옥죄던 1951년 대중의 쏠림 현상의 위험을 경고한 에릭 호퍼의 <맹신자들>(이민아 옮김, 궁리 펴냄)에 주목했다. 열정과 연대에 기반을 둔 대중운동은 세상을 바꾸는 동력이지만, 맹신에 빠진 대중은 공동체는 물론이고 자기 파괴도 서슴지 않는다. 반세기 전에 나온 <맹신자들>을 어떻게 읽어야 할 것인가? 심리학자 김태형 씨, 문화평론가 이택광 경희대학교 교수가 다른 관점에서 안내자로 나섰다. (☞관련 기사 : 황빠, 노빠, ○빠…맹신자를 만드는 진짜 동력은?) |
| ▲ <맹신자들>(에릭 호퍼 지음, 이민아 옮김, 궁리 펴냄). ⓒ궁리 |
| ⓒ프레시안(손문상) |
|
|
첫댓글 원전 책 내용은 저도 공김하는 내용이지만,
문제는
'프레시안' <== 이것들 자체가 '빠' 인 걸요..
적반하장에 사돈남말 입니다
프레시안 저것들은 저런 소리할 자격이 없어요
황빠 매도 ? 황우석 까기 <== 프레시안의 씻을 수 없는 '과오' 입니다
서조위 = 서울대 의과대학의 오류까지 황우석에게 뒤집어 씌운 죄과,
황우석 밉다고 해서 그 특허까지 미국이 강탈해간 것에는 외면했던 프레시안 이야말로 외눈박이 빠돌이 들입니다
" 목욕물 버린다고 해서 목욕통의 아이까지 버리는 우를 범하지 말라 " <== 프레시안 에게 해주는 경고 입니다
위 본글인 에릭 호포의 [맹신자들]은 [개인과 집단]이라는 차원에서 인간 행동 양식을 상당히 날카롭게 지적해 냈지만 지나치게 개인의 경험과 감정이 들어있다는 생각합니다.
대신 이 책에 대한 평론에서 발견할 수 있는 점이 많아서 같이 읽어 보자고 퍼 왔던 글이거든요.
근데요, 아프로만님, '프레시안'에 대해서 굉장히 적대시하는 감정이 들어 있네요?
'황우석 건'은 '황우석 건' 일뿐, 프레시안이라는 사이트의 존재가치 자체를 부정할 필요까지 있을까요?
또, 미국의 섀튼이 황박의 특허를 욕심냈었던 건 사실이지만 특허가 미국으로 건너간 것이 아니잖습니까?
'아프로만'과 '유희'라는 두 캐랙터를 쉽게 비교하자면
언제 터질지 모르는 부글부글 끓고 있는 용암을 안고 사는 사람이 '아프로만'이라면
때때로 기분이 좋아서 놀자판이라면 작정하고 미친척하고 날라리 짓을 하지만
평상시 차거운 물속에 깊이 가라 앉아 있는 남극 빙산의 일부분만 내보이고 사는 '유희'
참 절묘한 인연이라는..낄낄~
삭제된 댓글 입니다.
빠나 까는 = 결핍과 보충의 작동기제 = 이다 .
탁견 !!!!! 입니다
빨간돼지님/
빠니 까니 하는 단어를 접한 것이 2006년 한국사이트 접하면서 들어 본 단어이고
처음에 뭔 말인지 알지 못했었는데, 알고 보니 비야냥거리는 뜻으로 쓰이더구만요.
제가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삶의 자세는,
"어떤 사물,사태, 상황에서의 인간들의 호오(好惡)의 감정은 항상 가변적이다."
"선악의 문제 이건 원천적으로 우리들 내에 이미 잠재하고 있다"
"나와 다른 것은 선악의 문제가 아니고 인간들과의 사이 同과 異 일뿐 일 것 같다는 저의 생각,
同과 異를 처리하는 방법이 善惡으로 처리해서는 안 된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실제적인 예를 들자면, 작년부터 딴지에 드나들기 시작했었는데,
언뜻보니까 서프황토방에서 '황까의 대명사'라 불려도 무방한 사람이 딴지에서 서식을 하고 있더라구요.
근데,,, 언제 노무현에 관해서 거의 피를 또하는 가슴으로 쓴 글을 읽고나니
그 동안 제가 가지고 있었던 그 선입관 자체가 무너져 버리드라구요.
그래서 그 글에, 댓글을 " 어~ 너한테 이런 면이 있었냐? 몇년 전에 만났다면 머리털을 다 뽑아 버릴려고 작정하고 있었구만..." 그런 댓글을 달았더니, 그 넘이 "ㅎㅎ 너 황빠구나..히히" 그러더라구요.
"웃지마 이눔아, 정들라" 그러고 나왔는데요.
그런 사건을 접하고 배운 점:- 어떤 인간을 근접치나마 이해를 하기에는 '하나의 사안이나 사건'으로 평할 수 없다는 점.
'희노애락'의 기복을 겪는 시간이 필요하면서 여러 방면으로 접하면서 비로써 "그 사람은 이런 성향을 가진 사람이다"라는 평가를 내릴 수 있다는 걸 다시 깨닳았습니다.
동시에, 저는 어떤 사람을 예단하는 걸 자제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런 저의 자세는 "인간의 이성이 극히 불안전하다는 존재라는 사실,
내가 알고 있는 정보나 지식에 오류가 있을 수 있다는 전제를 깔고 있습니다.
또한 과학이니 진리니 철학이니 정보등이 계속 변화가 되고 있습니다.
'절대적'이라는 그 단어 자체가 부담스럽습니다.
저는 기본적으로 극단적인 '빠' '까' 기질이 부족합니다.
어떤사람을 봤을 때, 혹은 그 사람의 성향, 가치관, 선한 기질 혹은 남긴 업적을 보고
이런저런 이유로 좋아하는 정도 선이지만 '무조건 어떤 인간을 믿느다'라고 하기엔 제가 비판적 성향이 짙어서요.
초기의 일인데 열린게시판에서 누구를 '믿습니다!!" 하는 몇사람들한테 "기도는 집에서 혼자 해도 된다"
"여기가 개신교부흥집회장이냐"고 했다가 몇명이서 제가 한 말로 상처를 입고 떠나간다고 했던 사실도 있구요.
그 사건으로 초기에 미움을 왕창 받았었는데, 약 2년 정도 지나고 보니 제가 사람을 보는 기준에 대해서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공감을 하더라구요. 결론은 저는 '진실찾기'게임을 즐겨합니다. 새로운 걸 배우는 것 좋아합니다. 인간에 대한 편견을 줄일려고 노력합니다. 싸움을 즐기는 편이 아니지만, 부당하고 비겁한 방법으로 수모나 학대를 당한다고 생각하면 같은 방법으로 돌려준다. 이 정도 입니다요.
" 목욕물 버린다고 해서 목욕통의 아이까지 버리는 우를 범하지 말라 " <== 여기에 방점이 찍혀 있습니다
프레시안과 서울대가 저지른 잘못 입니다.
빠 와 까들이 저지른 잘못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프레시안이건 어디건, 근본적으로 저는 언론 그 자체를 '신뢰' 하지 않습니다.
또한 지식인 과 전문가를 신뢰하지 않습니다.
제가 신뢰하는 것은 [보편성] 과 [상식] 입니다. 그러므로 '빠' 나 '까' 가 되기 어려운 기질입니다.
그럼에도, 저는 '유신론' 자 랍니다.
아프로만님이 유신론자?
저는 불가지론자- 신이 있느지 없는지 제 능력으론 알 길이 없습니다.
근데, 지난 몇년간 사이 자꾸 '무신론'쪽으로 기울어지고 있는 이유는
DNA 보다 RNA 입자가 증명된 이후부터입니다
황박 사건 발단이 워낙 얘견치 못했던 소스(피디수첩)에서 발생되어 수면위로 올라 온 이유이기도 하지만
제가 황박사에 관해서 처음 TV에서 접했을 때(시애틀 인터뷰) 정말 자랑스러웠고 한국인으로서 아마도 처음으로 자부심을 느꼈었는데, 그 이후 황박 사건을 전 세계적인 TV방송으로 접했을 때, 너무나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바람에 한국 인터넷에 들어오게 된 동기게 되었지만요.
물론 황박사의 잘못도 있었지만, 그 문제처리를 하는 과정에서
당시 정권차원, 서울대, MBC, 특히 진보시하는 언론들이 책임을 피할 수 없겠지요.
특히 서울대 측은 황박의 의견을 낼 수 있는 기회조차 박탈해버렸다는 점.
문제가 터지자 마자 연구실을 못을 박아버렸다는 사실, 학제간의 연구 관계의 결실이였다는 점을
일체 고려하지 않고 부당한 해임과절차를 밟았다는 점. 용서가 안되는 행위인데 그 꼭지에 정운찬이가 있었지요?
해도 소위 황빠로 자처하던 대부분(특히 여성분들)의 히스테리적인 반응들을 접해을 때, 쪼금 창피하기도 했습니다.
유신론자라고 했더니, 예수쟁이 뭐 그런 걸로 아시는 군요
저에게 있어서 '신' 이란 = 진리 = 진실 을 의미 합니다.
'진리란 없다' = 이꼬르 ==> ' 이말 도 진리가 아니다' <= 자가 순환 오류죠
논리적 모순에 빠지기 때문 입니다
유희님은 = '진실찾기'게임을 즐겨합니다.
여기서의 '진실' = '신' 의 영역 입니다.
불가지론 = 있는 지 없는지 모른다 = '진실 게임' 할 동기가 원천무효인 거죠 <== 논리적 모순에 빠지는 겁니다
무신= 즉 진실은 없다 ? == 그런데 진실 게임을 즐긴다? <== 논리적 엉터리 로 빠집니다 ㅋ흐~
이제 아셨죠? 제가 왜 유신론자 인지를 ....
점점 이 카페에 애정이 생길라고 하네. 이래도 될랑가?
토론장을 마련해 준 이곳저곳을 둘러봐도 토론은 없고 일방적인 감정배설, 스트레스 해소하는 공간 쯤으로 자리잡고 있는데 차분하게 생각을 정리하면서 공부를 하는 공간으로 자리잡아 가고 있는 이 곳. 좋습니다!
아프로만님/
님께서 쓰신 유신론(有神論)은 신학이나 종교적 '언어' 아닙니까?
유일신을 믿는 이슬람교도, 기독교 그리고 유태교 뿐만이 아니라 다신을 믿는 옛 그리스인, 인도인 그리고 일본들등
'유신자' 라 부르지 않는가요?
그리고 '신' 이란 '진리'라고 하셨는데, 님께서 말하는 그 진리는
요한 복음에서 나오는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라는 글귀와 연관성을 가지고 있는데
님께서 말하는 그 '진리'란 '무슨 진리'를 말씀하신가요?
이래서 한글로 대화하는 것(인문학적 분야)이 참 어렵게 느껴지는데,
님께서 쓰신 그 '진리 = 진실"을 같은 반열에 올리셨는데
진실(truth)이라는 단어 속에 층층 겹겹의 의미가 들어있는 거 알고 계시지요.
진실과 사실(truth and fact)와 허구와 부정확함(거짓)을 어떻게 인지할 수 있습니까?
인간은 자체의 능력으로 절대로 '완벽한 진실'을 알 수 없다!
다만 객관적인 팩트, 정황, 상황이 나타났을 때, 우리는 그 토대를 바탕으로 그 진실에 가까운 유추를 할 수 있을 뿐이다!
예를 들자면, 유희 집에 어떤 분이 방문을 했는데 보니, 탁자 위에 커피잔 두개가 있었다.
화장실에 들어 가 봤더니 덮개가 올라가 있었다. 어라~ 안 보였던 술 병도 있네?... 아하~ 엊저녁 남자가 왔었구나!!
그 사람이 다른 집에가서 제 얘기를 하면서 아마도 유희가 누구를 사귀고 있는 모양이다. 궁금타! 누구일까?
이런 얘기는 금방 소문으로 퍼져나갑니다. 인간,사물 혹은 사태에 관한 '인식의 과정'이 보통 이런 식으로 전개됩니다.
허지만 제 입장에서는 그게 엉뚱한 얘기일 뿐입니다.
커피잔이 두개가 되었던 세개가 되었던 평상시 유희의 습관으로 커피를 대여섯 잔 마시는데 매번 커피를 만들 때
커피잔 자체를 따뜻하게 만들어서 커피를 타는 이유로 커피잔이 계속 쌓입니다.
화장실 덮개가 올라가 있었던 이유는 화장실 청소를 하고 나서 그대로 두었을 뿐입니다.
평소 보이지 않았던 술병이 있었다고? 얼마전에 갔었던 술집에서 친구가 주문하던 그리스산 리큐어를 처음 마셨느데
그 독특한 아로마와 특이한 감칠맛을 좀 더 알고 싶어서 그 술 이름을 알아가지고 한병 사왔습니다.
손님으로 왔던 분의 생각과 본 사실이 실체적 진실하고는 완벽하게 틀려버리지요
'불가지론'이라는 단어 쓰임이 오해를 일으키고 있는 사례를 자주 접하게 되는데요.
이 말이 주로 종교문제에 국한 되어 쓰이고 있고, 제가 위 대목에서 말한 '불가지론자'라는 단어는 아프로만님의 '유신론자'라에 대한 저의 입장 (즉 님께서는 종교적 입장이 아닌 철학적 언어라고 말씀을 하셨기에 추가합니다)이 분명합니다.
그럼에도 이 단어는 근본적으로 철학적 사유이자 물리학적 측면에서 나온 언어입니다.
“나는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안다”고 한 소크라테스의 사상적 자세는 모든 과학과 철학의 출발점을 만드는 것입니다. 과거 만이 아니라 현대의 많은 학문과 학자들은 세계를 밖에서 관찰한 경험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안으로부터 관찰한 세계가 마치 모두인 것으로 착각하고 주장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불가지론' = '모른다' 그러하기에 '절대 진실'은 아닐지라도 근접치나마 '눈에 보이는 현상에 대한 사실'에 접근해 보고 싶다.
즉, 맨 마지막 부분에 남긴 님의 논리는 비약이 심합니다!!! 땅땅땅..^^
진실true과 사실fact의 개념관계는 유희님 언급사례가 적절하게 맞는 개념 입니다.
부정명제와 불능명제도 사례를 드셨군요
소크라테스 ==> 모른다는 것 =0 을 안다=1 <== 이것은 불능명제 이지 부정명제는 아닙니다.
이것을 불가지론이라고 하는 거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크라테스는 진리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았습니다. 부정명제는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단지 모른다는 것이지요. 모른다는 것이 없다는 것은 아니지요.
절대치를 모른다일 뿐이지, 절대치가 없다는 아니지요. 절대치가 없다면 근접치라는 개념조차도 성립이 안되기 때문 이지요.
그래서 여전히 유신론은 유효 하다 입니다 캬하하하~~
저의 유신론이 반드시 철학적 사유의 논리영역으로만 한정 되지는 않습니다.
종교적으로도 저는 유신론자 입니다
DNA와 RNA를 언급하셨는데요, 스티븐 호킹스 같은 우주 물리학의 석학도 신을 부정 했는데요..
과학은 말입니다. '어떻게 how' 를 규명하고 탐구할 수는 있습니다. 우주의 비밀까지 남김없이 규명할 수도 있겠지요.
그런데 말입니다. 왜why 는 규명 못합니다. 우주가 왜 생겼나요? 생명이 왜 생겼나요 ? <= 과학으로도 영원히 못 풀어 냅니다.
도대체 왜 생겼냐? 그냥 우연히? <== 이것은 영원한 숙제이거든요 .
과학은 질서와 법칙을 규명하는 영역입니다. 그런데 그 질서는 '왜why 생겼냐? <== 원천적 의문에는 답을 할 수 없습니다.
" 세상이 왜 생겼냐? " = Why <== 논리적으로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당췌 이유를 찾을 수 없거든요
'키에르 케고르' 는 그래서 '태초에 권태가 있었다' 라고 합니다.
조낸~ 심심했나부다 세상을 만들게,,, <== 존재론의 역설적인 강한 긍정입니다
다신론에 관하여 ...
다신론은 그래서 유희님이 언급한 '근사치' 입니다. 우리는 근사치에서 살아가는 것이지요.
근사치를 존중해야 합니다
절대치 = 일신론 입니다
절대치가 있다는 전제가 없으면 근사치도 개념무효 인 거죠. 그래서 절대치는 인정해야 합니다
* 근사치 = 존중영역, * 절대치=인정영역 입니다
이쯤되면 저의 '유신론' 이라는 '논리기제' 에서는 철학과 종교의 경계가 거의 없어집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그노시스' 입니다. '크레도' 가 아닙니다.
또한 '일신론' 입니다. 저의 일신론에는 기독교 와 불교가 모두 '일신론' 입니다.
완전체라는 절대치가 둘이상이면 그건 이미 절대치가 아니기 때문이지요
종교와 철학의 차이는 고로 '논리영역' 에서는 저에게 차이가 전혀 없습니다.
그러나 '체험영역' 에서는 차이가 있습니다
체험영역에서 비로서 종교 와 철학은 분리됩니다.
종교는 체험으로 특화된 철학영역입니다
여기서 철학이 빠지면 그것은 신앙영역 입니다.
오로지 체험만 남는 것은 무속 입니다 = 샤먼 이지요
종교와 철학의 근본적인 영역차이는 고로 *거룩함 vs * 삿됨 입니다.
*거룩함 vs * 삿됨 을 구분하는 기준은 그래서 결국 ==> '체험' 일 수 밖에 없습니다.
종교는 그래서 '체험' 입니다. 체험의 긍극적 경지가 그래서 '수행' 입니다.
철학의 긍극적 경지가 '실천' 이듯이...
1. 예수 붓다 공자 한자리에 앉을 수 없나 / 길희성 : 노하우업 카페주소
http://cafe.daum.net/knowhowup/Dnry/177
2. 류가미의 환상여행 : 노하우업 연재 코너
41회 보편사속의 한국
http://cafe.daum.net/knowhowup/Dnrv/42
상기 1 과 2 의 칼럼들 ==> 기독교 불교, 동양과 서양 의 '일원론' 흐름과 맥락의 시원과 공통점을 찾아낸 칼럼 들 입니다
님의 첫번째 반론에서 소크라테스의 말을 언급하면서
그 아래 '불가지론'에 대해서 띄어쓰지 않은 이유로 오해가 생긴 것 같습니다.
유희의 불찰입니다.
소크라테스가 이 말을 하게 된 맥락을 살펴보면 '학문을 하는 자세'에 대한 경고차원이였지
우주의 생성론이나 생명발생학에서 나오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그 시대, 즉 소크라테스, 아리스토텔리스, 플라톤이 살았던 그 시대엔 '불가지론'이라는 단어 자체가 없었지요.
다양한 형태의 인격화 된 신이 존재했었고 (근대<17세기>에서부터 오늘 날에는 신화로 넘겨졌지만요)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의 인식구조를 오늘(현재)을 살고 있는 우리들의 인식구조로 대치할 수 없겠지요.
즉 아프로만님 견해의 논점인 '불능명제'나 '부정명제'는 소크라테스의 언어에 적용되지 않습니다.
대신, 임마누엘 칸트가 인식이란 경험의 영역 안에서만 가능한 것이라고 말하며,
우주, 영혼, 신 등과 같이 이성 (理 性, rationality) 에 의해 이루어지는 관념은 경험의 영역을 벗어나며,
따라서 과학적으로 입증 될 수 없다는 말을 했었지요.
근다고 꺄하~ 하고 좋아하시긴..
하~ 카페의 댓글란에서 이런 문제를 논하기가 어렵습니다.
아프로만 님, 님은 아직도 서프에서 차단 당한 상태입니까?
이런 대화는 문예방의 철학논쟁 코너에서 할 수 읶는 성격인데...
우주의 본질, 그 발생과 과정 그리고 숨은 의도 등은 우리 인간의 감각 체계를 벗어 난 것이며,
그것을 표현하는 방편이 신학이든 철학이든 이론 물리학이든,
감각 체계의 인식능력에 구속되는 언어를 사용하는 한, 영원히 한계가 존재하겠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50여년 사이에 물리,과학의 발전은 인간들이 가지고 있었던 많은 질문에 대해서
합리적인 결론을 이끌어 내고 있습니다.
기독교 발생지인 유럽 쪽에서는 현실적으로 기독교관의 세계나 우주관은 이미 폐기처분된지 반세기 이상이 되고 있는데
아시아권내에서 유독 한국에서만 기승을 부리는 이유가 참 요상합니다.
철학이란 단어 자체가 말하듯이 '종교'' 과학' 내지 다른 학문을 굳이 구분 지을 수 없습니다.
인간 삶과 앎에 관해서 다루는 문제를 공부하는 걸 '철학'이라고 부르는데,
이 단어를 고상하고 접근하게 어렵게 만든건 전적으로 먹물들이 먹고 살기 위해 만든 인위적 결과라고 생각함다!!
지네들 바끄럭 지키기 위한 '철학교수'들의 구라에 물든 결과물!
님께서 쓰시고 계시는 '철학'과 '종교'의 개념은 제가 쓰는 '철학'의 개념과 많은 차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종교'의 문제는 너무 방만해서 언급하기가 어렵습니다만
한가지 제가 확신하고 있는 사실은 인간이 '사회라는 속에 귀속'되면 그 어디를 가도, 그 어느 시기를 막론하고
존재할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인간이란 존재가 '죽음' 의 문제를 인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종교는 체험'의 결정체라기 보다는 '권력구조'에서 나온 또 다른 '권력'이라고 생각합니다.
단,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체험 - 하나님과 만남-을 간증이라는 형식으로 말하고
특히 신흥 개신교(전 세계에 약 55,000개 종파 중)의 특징의 하나인데 자신의 체험이 꼭 다른 사람과 나눌 수 있는가?
즉 전인류의 보편성을 가지고 있는가 하는 질문이 남습니다
'류가미의 환상여행' 연재물은 공장히 많은 시간과 정성이 든 게시물이고 건질 것이 많은데,
제가 읽을 때 어려움을 느끼는 점이 한글(한자가 빠짐) 작성이 되어서 단어나 용어의 정확한 의미를 찾기 힘듭니다. 특히 신화를 다루는 면에서 지역이름, 인물등과 같은 대명사에는 영어나 한자를 넣어 주었다면 학문적인 가치가 있을 것 같은데 그 점이 참 아쉽습니다.
다른 표현으로 한글로 쓴 영어가 무슨 단어인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읽고 나서 머리에서 정리가 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