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 오아하까(Oaxaca) 여행
인야는 오랜만에 학교에 가서 벽화 하나를 마쳤다.
삐메가 가져온 코코아를 처음으로 맛보며 어느 정도 긍정적인 하루를 보냈다.
그런데 그날은 또 무슨 날인지, 집에 돌아와 보니 역시 오랜만에 K씨의 편지가 와 있었다.
모처럼 기분이 가벼운 날이었다.
살다 보면 이런 날도 있는 거겠지 싶었다.
그렇지만 종일 그림에 매달렸더니 몹시 피곤해, 무덤덤하게 밤을 보내고... 허전한 마음으로 잠자리에 들었다.
요 며칠, 인야는 자신이 자신이 아닌 것만 같았다.
모든 게 귀찮고 마음도 무거웠다.
멕시코에 온 지 네 달이 되어가는데, 자신이 하는 일은 무엇이며 무슨 가치가 있는가도 싶었다.
혹여 이렇게 사는 게 그나마 가지고 있는 젊음을 허비하고 있는 건 아닌지 불안이 엄습했다.
'나는 예술가인가? 내가 남들에게 내 자신을 소개하듯 아티스트인가? 다른 일 하는 게 없이 그림 그리는 일로 살고 있기 때문에 예술가인가?'
그러면서도 돈이 다 떨어졌기에, 시내에 나가 환전을 했다.
백화점에 들러 바지 하나를 샀는데, 마음에 드는 옷은 다 비싼 것이어서... 유혹에 빠지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먹을 것도 다 떨어져, 돌아오는 길에는 슈퍼마켓에 들러 비닐봉지가 터질 것 같이 채워 두 손 가득 사들고 돌아왔다.
그리고 마땅히 한 일이 없었다.
단조로운 생활이 계속되고 있었다.
역시 종일 학교 실기실에 있었고, 밤엔 사진 인화 작업을 했다.
그다음 날 학교 ‘스승의 날’ 축제가 있다는데, 주변에서 같이 가자고 들 했지만 인야는 안 가기로 했다.
어차피 가봤자 이들은 춤을 출 것인데, 혼자만 꿔다 놓은 보릿자루 신세가 될 터라... 그러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게 집에 돌아와 보니 방이 말끔히 정돈돼 있었다.
침대 시트도 새로 갈아져 있는 등, 흠잡을 데 없게 라우라가 청소해 놓았던 것이다.
지난번에 선물했던 사진에 아주 흡족해했었는데, 그 효과도 큰 듯했다.
아무튼 깨끗한 방이 좋아, 그날 밤에는 좋은 잠자리에서 좋은 꿈을 꾸었으면 싶었다.
일요일 새벽 깊은 잠 속에서 희미하게 전화벨 소리를 들었다.
인야는 어쩌면 자신의 전화일 수도 있겠다 싶었는데, 곧이어 주인의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바쁘게 일어나 슬리퍼도 찾지 못한 채 맨발로 나가 전화를 받으니 바르셀로나의 J사범이었다.
그도 다시 스페인으로 간 뒤 새로운 일을 시작한 모양이었다.
지난밤 꿈엔 화려한 금색 무늬의 새를 보았는데, 그 때문인지 G의 짧은 엽서도 도착했다.
'그녀는 나를 잊지 않은 모양이네. 아니, 나보다 그녀가 나를 더욱 잊을 수 없을지도 몰라......' 하면서, 갑자기 그녀가 그리워지기도 했다.
점심 무렵엔 '차가운 빗방울(La Gota fria)' 등 인야가 좋아하는 중남미 노래 몇 곡을 녹음하러 삐메 집에 갔다.
이미 약속이 돼 있던 터였다.
그런데 전날 밤을 새운 그들 일당이 거기에 모여 한 시까지 계속 마셔대며 음악에 맞춰 춤을 추고 있었지만, 인야는 그저 그들을 지켜보았다. 이들이 흥겹게 노는 게 신기할 뿐 불만은 없었다.
인야 자신은 춤을 못 추어서 그렇지, 이런 흥겨운 멜로디의 노래를 분명 좋아하는 사람이었으니까.
결국 피로에 지쳤는지 얼마 뒤에는 각자 돌아가기에 인야도 돌아오려고 했더니, 삐메가 자기 누나 집에 함께 가자는 것이었다.(그는 별로 취한 것 같지도 않았다.)
인야가 난색을 표하자,
"인야, 오늘은, 우리 가족이 모여 식사하는 날이거든? 그리고 니가 여기까지 왔는데, 헛걸음시킨 것도 미안하고 해서 그러니... 나랑 함께 가자."고 잡아서... 그러기로 했다.
그렇게 계획에도 없는 삐메 가족 식사자리에 끼게 되었고,
스무 명도 넘는 두 누나 가족이 다 모여 화목한 분위기에서 일요일 점심식사를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물론 예기치 않았던, 먼 동양에서 온 손님이었던 인야는 친절한 그들의 정을 느끼며 포근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던 것인데,
모처럼 가족간의 정을 느껴본 좋은 자리였음은 분명했다.
돌아오는 길에 편지를 부치러 중앙우체국에 갔으나 문이 잠겨 있어 소깔로 광장 주변을 배회하다 집에 돌아왔다.
이튿날 인야는 아침 일찍 학교에 가서 ‘이방인’ 작업을 시작했다.
그리고 그 다음 날, 조그만 여행(오아하까)을 떠나기로 했다.
이 학생으로서의 일상에서 조금 벗어나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새벽에 일어나 주인 부부를 깨우지 않으려 조심조심 준비하고 집을 나섰다.
고속버스엔 승객이 단 네 명뿐이었다.
수도를 벗어나 '뿌에블라(Puebla)'로 가는 사이엔 '뽀뽀까떼뻬틀(Popocatepetl)'과 또 다른 화산 둘의 위용에 (둘 다 5000m 이상)마치 유럽의 어느 산악국에 온 듯한 느낌도 들었다.
멕시코가 왜 가난한 나라인지는 자연에 있는게 아니고 인간에 있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들의 사는 모습이나 주거환경 등이 가난함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산과 숲을 지나며, 인야는 잘 떠나왔다는 생각을 했다.
졸다가 눈을 떠보면 평원이 나왔고, 또 졸다가 눈을 떠보니 길다란 선인장들이 마치 바닷속 물풀처럼 덩어리져 솟아나온 황무지로... 그러다 또 웅장한 계곡으로 바뀌었다.
자연이 무궁무진하게 변해갔다. 그걸로만으로도 이 나라가 크다는 걸 절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오아하까(Oaxaca)'에 도착하여 호텔을 찾다가 웬 젊은이가 무엇을 찾느냐고 묻기에 말이 시작됐는데,
'아르뚜로(Arturo)' 란 그는 인야를 관광안내소, 네 군데의 호텔로 안내하며 결국 호텔 잡는 것까지를 다 도와주었다.
설사 그가 '삐끼'라 해도 그 친절이 너무 고마웠는데, 그는 즐겁게 하는 일이라며 개의치 않았다.
너무 고마워 인야는 식사초대를 했으나, 그는 겨우 쥬스 한 잔을 마시고 돌아갔을 뿐이다.
이들의 일면이었다.
이곳 오아하까의 '소깔로(Zocalo: 중앙 광장)'에 있는 중앙 돔에서는 매일저녁 7시부터 한시간 가량 밴드가 음악을 연주한다고 해서, 인야는 슈퍼마켓에 들러 간단한 저녁거리를 사들고 지나다 음악이 들리기에 비어있는 벤치에 앉아 그걸 바라 보았다.
언제나 그렇듯 관악기의 음은 슬픔을 담고 있었는데,
스페인 냄새가 나는, 마치 투우장에서 나옴직한 음악이 해질 무렵의 도심을 울렁이게 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잠깐 '여수'를 느끼기도 했는데, 이번엔 '찌고이네르바이젠(Zigoinerweizen)이 나오다 보니,
인야는 자신이 자꾸만 나그네가 되는 기분에 젖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땅거미는 지고 있었는데,
'누구, 나에게 술 한잔 권할 사람 없소? 누구 나와 이 밤을 함께할 이 없소?' 하는 생각만 들었다.
아쉽게도 음악은 8시가 되자 뚝 끊겼다.
도심의 관중들은 미련없이 뿔뿔이 흩어져 돌아갔는데, 광장의 가로등은 이미 들어와... 밤이 돼 있었던 것이다.
무거운 가방을 더 이상 짊어지고 다니기 싫어서 마지막으로 본 호텔을 정했었는데,
‘싼게 비지떡’이라고 인야의 맘에 들지 않았다.
'돈도 없는 주제에, 나는 돈 없는 떠돌이가 되기는 힘든 떠돌이다.'
이튿날 아침에 일어나 바삐 시골장이 열린다는 '에뜰라(Etla)'에 갔다.
그러나 너무 일찍 도착한 나머지 아직 장이 열리긴 했어도 초장이었고, 별 특별한 게 보이지도 않아... 그 곳 성당에 들어가 앉아있다 10시 넘어 돌아왔다.
배가 고팠으나 음식이 맞지 않아 굶기로 했다.
다시 오아하까에 돌아와 호텔을 바꾸고, 그 옆에서 파는 '또르띨랴(Tortilla)'를 하나 사먹었다.
그리고 '알반 산(Monte Alban)'으로 향했다.
'알반 산(Monte Alban)' 역시 이들의 중요한 문화재로 산 꼭대기에 여러개의 피라밋과 고분이 있었다.
그런데, 피라밋이 보이는 건너 마을에 산다는 젊은이 하나가 밭농사를 하다 주운 토용 머리라며 사라고 조르기에,
인야는 설마설마하다가, 그의 끈질긴 공세에 가지고 있던 100 뻬소를 보여주며 두상 두 개를 샀다. 그러면서는 그에게 고마움까지 느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가짜였다.
인야는 묘한 배신감과 자신의 어리석음에 자책했지만, 더 큰 사기를 당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으로 여기기로 했다.
시내에 돌아와 현대미술관과 '베니또 후아레스(Benito Juarez: 멕시코 유일의 인디오 출신 대통령)' 집을 보고, 소깔로에서 연주하는(오늘은 오아하까 전통 음악을 연주) 콘서트를 보고, 호텔 돌아오는 길을 잃어 헤매다가... 다행히 비가오기 전에 도착했다.
원래는 2- 3일 더 묵을 예정이었으나, 썩 감동적이거나 자신을 잡아끄는 매력이 없어... 다음 날 '미뜰라(Mitla)'를 돈 뒤,
일정을 앞당겨 돌아가기로 했다.
다음 날 밤 차로 돌아가면, 금요일 사진 수업을 들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마지막 날, '미뜰라(Mitla)' 유적에 갔다.
다른 곳에 비해 그리 규모가 크지 않은 유적엔 기하학적이면서 톱니 모양의 무늬로 장식된 벽면이 오랜 세월을 견디며 존재하고 있었다.
인야는 공예품 가게를 돌다가 남방 하나를 샀고, 어머니 옷을 고르다 수공으로 짠 여름 반팔 셔츠 하나를 사니... 부자가 된 느낌이었다.
돈도 없으면서 옷까지 사 보냈다고 어머니께선 핀잔을 하시겠지만, 또 다른 한 편으론 자신의 마음을 접하시며... 좋아하실 거라며 위안을 삼고도 있었다.
돌아오는 길에는 2만 3천 년 되었다는 거대한 뚤레 나무를 보았다.
인야는 속으로 나무에게 물었다.
'2만 3000년을 살았다는 Tule 의 나무여! 너는 그동안 무엇을 보아왔느냐? 네가 본 가장 착한 이는 누구였더냐? 네가 본 가장 악한 이는 또 누구였더냐? 네가 겪은 가장 감동적인 일은 무엇이더냐?' 하다간,
'그런 질문을 던지는 내가 바보인지도 모르겠구나. 너는 수 많은 세월을 수 많은 사람들과 같이해 왔을 터라, 인간들의 짧고 영악한 생각들에 이미 지쳐있는지도 모르겠구나. 그래서 너는 몇 개의 가지를 말려버리고 있는지도 모르겠구나. 그래서 말도 없이, 네 몸체 만큼이나 무겁게 입을 다물고 있구나.' 하면서도 마지막으로,
'내가 너에게 부탁하노니, 잘 기억해 놓았다가... 혹 누군가 너에게, 네가 본 가장 아름다웠던 인간의 일이 무엇이었는지 묻걸랑, 어느 한국인도 그것을 알고 싶어했다면서... 바록 나에겐 대답을 하지 않았지만, 그 사람에겐 꼭 들려주지 않으련?'
인야는 그토록 오랜 세월 살아온 나무에 경의를 표하며 발길을 돌렸다.
그리곤 별 생각없이 오아하까에 돌아왔는데, 갑자기 밤차를 타는 것 보다 낮에 차를 타고 밤에 멕시코시티에 도착하는 편이 나을 것 같다는 판단으로... 바로 버스터미널로 향했다.
그렇게 다소 싱겁게, 만 사흘을 채우지 못한 여행이 끝났다.
멍하니 돌아온 집에는 기다리던 편지는 없었지만 훨씬 반가운 소식이 기다리고 있었다.
안주인 라우라가 메모로 적어놓았던데,
'산 까를로스(San Carlos: 도심의 대학 본부)' 전시장, 6월 20일부터 7월 11일까지 전시' 라는 내용이었다.
인야는 기쁘지 않을 수 없었다.
다음 날 학교에 가면 더 정확한 내용을 알 수 있을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