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들아 사람이 만일 무슨 범죄한 일이
드러나거든 신령한 너희는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잡고 너 자신을 살펴보아 너도
시험을 받을까 두려워하라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갈6:1-2)
1.어느 중형교회의 목사가 가난한 성도를 심방하고
위로와 함께 기도를 하고 그 가난한 성도가 손에 쥐어
준 얼마의 돈을 뭉클한 마음으로 받았다고 하는 SNS의
글을 본 적이 있다. 나 참 잘했지 하는 글 같아 보인다.
1990년대 남미 아르헨티나에 선교여행을 갈 때 교회에
가난하고 연세 많은 여집사님이 악수하면서 2만원을 제
손에 꼭 쥐어 준 사건을 아직 잊지 못한다. 선교지를
향해 떠밀려 나갈 때에 가장 안타까웠던 분들이 강대상
바로 앞에 옹기종기 모이는 여남은 분의 노인 성도였다.
다른 성도들에게도 완성도가 없는 저의 설교로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지만 특히나 정부생활보호 대상이었던
그 분들이 늘 마음에 걸려있었다. 이젠 다 아버지집으로
가셨지만 내겐 오랜 짐이 되었다. 오늘은 바쁜 목사가
가난하고 늙은 성도를 심방하고 말씀으로 위로 한 것
그게 얼마나 잘한 건가 왜 시비를 걸고 나서는 걸까?
2.우리는 남을 위해 중보기도를 하라고 권한다. 그렇지만
그게 만만치가 않음을 본다. 친밀한 사이에는 잘 되지만
기도의 폭이 좀체 넓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목회는 선지자
사역보다 제사장사역을 잘해야 성공한다 말하는 거다.
설교는 본문과 그 내용을 잘 전달하면 되나 제사장사역은
그의 짐을 지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기 때문에 그리
만만치가 않다. 설교는 말씀만 잘 전달하면 박수를 받기도
하지만 제사장사역은 아무도 알아주는 이가 없다. 가난한
사람을 심방하고 위로하면 사람들에게 인정받기도 하나
그 가난하고 병들고 외로운 사람들의 짐을 지고 기도하는
것은 매우 고단할 뿐이다. 왜 제사장 사역이 선지자사역
보다 더 낫느냐 그건 자명한 일이다. 설교는 본문 내용만 잘
전하면 되지만 다른 사람을 위해 기도하는 건 자신이 기도할
수 있는 자격 곧 하나님과 관계설정이 돼야 하기 때문이다.
3.나는 다른 이들을 위해 기도는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를
구하지만 대면하면 따끔한 말을 하게 되어 늘 인심을 잃고
만다. 바울의 권면처럼 온유한 심령으로 바로잡아 줘야만
하는데 그렇지 못한 탓이다. 공부 안 하는 자녀들을 보는
것보다 ‘살기도 어렵군 죽으면 편하리 44번지’에 버티고
있으면서 자신의 믿음(to be)에 대해서는 전혀 근심하지 않고
무엇을 한 일만 열을 내며 자랑하는 모습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아 핀잔을 줘 기분을 엉망으로 만든다. 욥은 친구들과
잘 했냐 못했냐로 길게 논쟁을 벌이는데 하나님께서는 욥에게
대장부처럼 허리를 묶고 내 말에 대답하라(욥40:7) 호통치신다.
지금까지 욥처럼 나 괜찮지 무난하지 사람들에게 호평을 받을
만하지 한 자리에서 전능하시고 천둥소리를 내시는 하나님을
믿는 용사가 되라는 의미다. 제발 시시한 인생사로 노닥거리지
말라는 뜻이다. 그래서 너는 위엄과 존귀로 단장하며 영광과
영화를 입을 지니라(욥40:10) 하신다. 지금 SNS 상에 올라오는
글들의 대부분이 욥의 선행정도라 하면 너무 지나친 걸까?
4.내가 50키로를 질 수 있으면 50키로 이상은 감당치 못한다.
만일 자신의 짐이 있으면 다른 이의 짐은 질 수가 없다. 그러므로
바울은 자신이 사도라는 증거가 자유인과 주 예수를 본 것(고전9:1)
이라고 자신 있게 말한다. 만일 그리스도의 말씀 안에서 진리로
자유를 얻지 못하면 어찌 다른 이의 짐을 지고 주 앞에 나아갈
수가 있으리요. 자신이 죄인인지 의인인지 낑낑대며 욥과 친구들
처럼 장군멍군하고 있으면 누가 그들의 짐을 몽땅 싸 들고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을까? 욥과 세 친구들 가운데 그런 이가
없다. 서로 난 아니야 난 너와 달라 뿐이다. 그래서 약골들이다.
말로는 개혁주의 교회 성도는 다 왕 같은 제사장(벧전2:9)이라
한다. 그렇다면 주님이 온 세상의 죄를 다 감당하신 것처럼
어디 한 번 하나님 앞에서 제가 감당하겠다고 고백해보라.
완전히 망가지고 병으로 쓰러진 사람을 회피하는 건 강도를
만난 자를 피하는 제사장이나 레위인과 같다(눅10:31-32)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않고 능력에 있다. 그리스도의
비밀을 맡은 자가 구할 것은 충성이다(고전4:1-2,20) 제발 말
잔치를 벌여 도토리 키 재기를 하지 말자. 대장부 같이 되고
그리스도 안에서 위엄과 존귀를 입고 영광과 영화를 입자.
이는 귀로만 듣다가 계시를 받아 영의 눈으로 보는 순간에
이루어진다.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총에 의해 성령의 임재로
진리를 배워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로 긍휼하심을 얻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고 얻으면 드디어 나도 다른 사람의
짐을 하나님께 짊어지고 나아가는 제사장의 사역을 하게 된다.
그리스도의 법 곧 서로 사랑하라는 명령이 이루어 진다(요15:17)
첫댓글 아멘 감사합니다
아멘! 감사합니다. 너희가 서로 짐을 지라!
아멘! 감사합니다
구주와 함께 나 죽었으니 구주와 함께 나 살았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