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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 느림 주역 읽기 모임이 있던 날 나온 점 괘이다.
학교에서 가르치는 아이 문제에는 뇌천대장괘가 나왔고
올 후반기 운의 흐름에 대해서는 중지곤괘가
남편과의 관계에 대해서는 산풍고괘가
7월 운의 흐름에 대해서는 지뢰복괘가 나왔다.
이 운의 흐름들 가운데서 중지 곤괘를 함께 읽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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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지 곤괘나 중천 건괘가 점을 칠 때 자주 나오지는 않는다. 이런 면에서도 이런 괘가 나왔다는 것 자체가 특이하다 할 수 있다. 하늘을 상징하는 건괘와 땅을 상징하는 곤괘는 만물을 형통하게 하는 바탕이 될 것이다. 그러니 근원 자체를 상징하는 괘 앞에서 어떤 말을 해야 할까.
곤은 만물을 시작케하는 근원이고, 만물을 형통하게 성장시키고, 만물을 촉진시켜 이롭게 하고, 만물을 완성시키는 암컷 말의 올바름이다.
곤괘는 건괘의 짝이다. 원형이정 元亨利貞 이라는 네 가지 덕은 같지만, 올바름 貞의 형체가 다르다. 건괘는 강직하고 굳센 것이 올바름이지만, 곤괘는 유순하면서도 올바름을 굳게 지킨다. 암컷말은 유순하면서도 강건하게 달리므로, 그 모습을 취하여 암컷 말의 올바름이라고 했다.
곤괘도 좋다. 암컷 말의 올바름 牝馬之貞에 대해 많은 상상력이 필요하다. 중지 곤괘의 핵심은 강인한 포용력이다. 타자를 포용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보통의 강인한 정신과 즐거운 놀이 정신이 아니고는 타자와 즐겁게 소통하며, 타자를 흥겹게 하는, 즐겁게 하는 포용력을 발휘하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 포용력도 올바름이 있어야 한다.
여성들과 이야기를 하다보면, 이런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어떤 놈이 그럴듯하고 좋아서 연애를 시작하는데, 꼭 앓는 소리를 하면서 이 놈이 돈을 빌려 달라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돈 문제를 들고 나오는 놈들과는 거의 끝이 안 좋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연애를 하고 좋아하고 하는데, 어느 정도의 주고 받음도 애교로 받아줄 수는 있겠지만, 그냥 확 주어 버리는 것 아니라면, 무슨 계약 조건으로 돈을 주고 하다보면, 결국에는 그나마 즐기던 사랑마저도 깨지고 마는 경우를 많이 본다.
서로 독립해서 쿨하게 즐기는 것이 결코 쉽지가 않을 것이다. 어느 한 쪽은 어느 한 쪽으로 기대고 싶어하고, 살다보면 찌그러지는 경우를 겪게 되어서, 이럴 때 기대려고 앤애를 하는 것이지, 그럼 왜 연애를 하는가 하는 마음도 들고, 그래서 먼저 약한 놈이 틈을 타서 돈문제를 꺼내면 '그래 가지고 가라' 하면서 주는데, 아마도 이럴 때 이후가 좋지 않은 것 같다. 관계는 영원하지가 않아서 돈을 돌려주고 받는 과정에서 이중의 고통을 겪는가 보다. 나는 돈이라고는 있어 본 적이 없어서, 수 천만원씩 빌려주고 하는 경우를 겪어볼 기회가 없었다. 하여튼 이것도 있는 사람들 이야기려나.....
강인한 포용력이란 말을 하려고 하다가 이렇게 까지 왔다. 강인한 포용력이란 어떤 것인지 중지 곤괘를 읽다보면 많은 상상력을 얻을 수가 있다.
중지곤괘는 음만 여섯이다. 음으로 꽉차 있는 것이다. 이렇게 음으로 꽉 차 있으니까 이 괘는 나약한 상태를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하늘과 땅은 약하지 않다. 우주의 두 기둥이지 않는가. 성격이 부드럽게 포용할 뿐이지 매우 강한 양의 기운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자, 포용력을 상징하는 중지 곤괘가 드러내는 여섯 가지의 경우가 있다. 하나 하나 살펴보자. 매우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아주 많다.
초육효는 서리를 밟으면 단단한 얼음이 된다.
음이 처음 생겨나서 응결되면 서리가 된다. 음의 세력이 점점 생겨나면 나중에는 강대해져서 얼음이 된다. 여기서 얼음을 잘 생각해야 한다. 음의 성격이 강한 사람들, 음의 기질이 강한 사람들의 가장 큰 맹점이 얼음처럼 차가워지는 것이다.
좌중을 따뜻하게 포용하지 못하고 자기가 상처 입을까 긴장해 있는 모습으로 보이기 쉽다. 그래서 자신 몸 자체가 너무 음한 나머지 얼음처럼 굳어버리는 것이다.
음으로만 꽉 찬 괘애서 자칫 남을 포용한다고 나선 사람이 이렇게 얼음처럼 굳어 있다면 말이 안 될 것이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이런 경우를 많이 본다.
자신은 매우 부드럽게 남을 배려하고 포용한다고 하는데, 실제 옆에 있는 사람은 어찌나 사람이 맥이 없고 가라앉아 있는지, 배려하는 말 자체에 에너지가 느껴지지가 않는 것이다.
중지 곤 괘는 아주 강한 에너지가 작동하는 때이다. 점을 쳐서 이 괘가 나오면 일단 맨 첫 효인 얼음처럼 굳어지면 안된다는 걸 명심해야 한다. 자칫 잘못하면 굳어질 수가 있다. 포용력과는 거리가 먼 상태에 스스로 갇혀있게 되는 것이다.
강인한 포용력의 때에 두 번째 경우의 수가 있다.
육이효는 곧고 강하고 크니, 익히지 않아도 이롭지 않음이 없다.
아, 이 두 번째 경우의 수는 참 좋다. 그냥 있어도 세상 만사를 다 포용할 수가 있다는 것이다. 가만히 있어도 존재감이 드러나서 따뜻하게 주위를 녹여내는 그런 부드러운 카리스마, 포용력을 가진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런 경우를 많이 보지는 못했는데, 분명 있을 것이다. 사람은 다 상태가 좋았다 안 좋았다 하는 것이니, 우리들 보통 사람도, 어떤 경우 상태가 좋을 때는 이렇게 가만히 있어도 주위를 따뜻하게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익히지 않아도란 말은 " 억지로 하려고 하지 않아도 저절로 그렇게 되는 것"(103쪽)을 말한다. 저절로 그렇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강인한 포용력을 가진 사람의 힘이다. 포용력이란 무얼 배워서 되는 문제가 아닌가 보다.
다시 강인한 포용력을 가진 사람이 드러내는 세 번째 경우의 수이다.
육삼효는 안으로 아름다움을 머금어 올바름을 굳게 지킬 수 있으니, 혹 왕의 일에 종사하더라도, 자신의 공을 자랑하지 않으면서 끝마침이 있어야 한다.
강인한 포용력이 있는 사람은 자신의 공을 자랑하지 않으면서 끝까지 갈 수 있어야 한다. 이게 핵심이다. 자신의 공을 드러내는 순간, 포용력은 물거품이 되기 십상일 것이다.
그래서 강인한 포용력이라 말하는 것이다. 보통 사람의 내공으로는 자신의 공을 드러내지 않으면 끝까지 가기가 쉽지가 않다.
유종의 미를 거둔다는 건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본중말 本中末에서 말의 중요성을 늘 말하는 것이다.
삶도 이럴 것 같다. 죽음의 때인 말년이 어떤가도 제대로 봐야 할 것이다. 죽음을 공부해야 한다. 죽음 공부를 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누구에게 보이기 위함이 아니라, 내가 즐겁게 죽는 방법을 연구해야 할 것 같다.
점을 친 사람은 3, 6번째가 동하였다.
육삼이 동하였다면, 일단 포용력을 발휘하는데, 자신의 공을 내세우면 안된다. 포용력을 발휘하는 때를 맞이하는 사람은 일단 무얼 자기 공으로 내세우지 않아야 한다는 걸 명심해야 한다. 반대 급부의 떡고물을 바라지 않는 사람만이 타자를 포용할 수가 있다.
타자의 욕망을 있는 그대로 인정할 수 있는 사람만이 포용할 수가 있는 것이다. 타자를 내식대로 만들려고 하는 것은 강인한 포용력이 아니다. 빈마지정이 아닌 것이다. 그래서 진정한 사랑은 부드러움이 위로 올라가지 않는가. 진정으로 타자를 사랑하는 사람은 포용력이 있는 사람이다. 타자의 욕망을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여주고 같이 놀아주는 사람인 것이다.
내가 잘나서 니가 즐길 수 있다고 나오면 그때부터 포용력은 없어지고 권력이 작동하기 시작한다.
네 번째 강인한 포용력의 때에, 군주 자리에 점점 가까이 가는 사람들은
주머니를 묶으면 허물이 없고, 영예가 없다고 말한다.
주머니를 묶는다는 말은, 지혜를 어둡게 감추고 드러내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당연히 이렇게 지혜를 드러내지 않으니 영예도 없다. 떡고물도 없다는 말이다. 무슨 직위도 없게 되는 것이다.
포용력은 끝까지 가 봐야 하고, 결국 개인의 명예나 이익으로 작동하는 것이라면 포용력의 올바름이 왜곡될 수도 있을 것이다.
포용력을 발휘하려면, 일단 마음을 비울 수가 있어야 한다. 가지려는 소유욕 자체도 버려야만 이런 경지에 다다를 수 있을 것이다. 이건 어려운 일이다.
네 번째 효도 육삼과 마찬가지로 공을 내세우지 말라고 한다.
어디 가서 포용력이 있는 사람으로 자리 매김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그는 자신의 공은 포기해야 할 것이다. 떡고물도 받을 생각은 말아야 할 것이다.
무슨 모임이나, 아니면 사회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자신이 떡고물을 챙기려고 하면서 포용력이 있는 리더까지 되려고 하면 나중에는 반대에 부딪히게 될 것이다. 어려운 일이다. 강인한 포용력은 그러니 아무나 하는 일이 아니다.
건괘외 곤괘는 그래서 점을 쳐서 나오면 쉽지 않은 때임을 알아야 한다.
다섯번 째 경우의 수는
육오효는 노란 치마라면 크게 좋고 길하다고 하였다.
노란치마 黃裳에서 상은 신체 아래를 가리키는 옷입니다. 옷을 의상 衣裳이라고 하는데 의는 윗도리이고 상은 아랫도리를 말합니다. 육오가 상괘의 중을 얻기는 하였지만 땅은 본래 하늘 아래에 있으므로 치마로 표현하여 겸손히 아래에 처함을 말한 것이죠. 대산주역강의 233~234쪽
象曰 黃裳 元吉, 文在中也
이 말이 참 어렵다.
문재중야, 문채가 가운데 있다는 말이 무슨 의미일까.
아래 설명을 좀 들어보자.
육오 또한 육삼의 '含章可貞(빛나는 것을 머금고 있어 가히 바르게 한다)'과 마찬가지로 양자리에 음이 있는 효이므로 음 속에 양을 내포하고 있다는 뜻에서 문채있는 무늬가 속에 들어있다(문채중야)라고 하였습니다. 다만 육오가 육삼보다 윗자리이고 중덕을 얻고 있으므로 '빛날 章'의 의미보다 더 크고 근본적인 뜻인 '무늬 文'을 말하였습니다. 본래 文은 양과 음이 만나서 문채를 이루는 것입니다. 검은색이든 하얀색이든 한 가지 단색으로는 무늬를 이루지 못합니다. 육오가 비록 음이지만 안에 양을 내포하고 있으므로 文이 되는 것이죠. 육삼의 章도 마찬가지입니다. 대산주역강의 234~235쪽
<춘추전>에 보면 다음과 같은 점례가 있습니다. 남괴라는 사람이 장차 배반을 하려고 하면서 점괘를 얻어보니 '坤之比'를 만났습니다. 곤괘의 육오가 변해서 지괘가 비괘가 되는 것이죠. 남괴가 곤괘 육오에 나온 '황상원길'을 보고는 자복혜백이라는 이에게 '누런 곤룡포를 입고 용상에 앉는 임금이 되는 것이므로 내가 도모하는 일이 성사되어 크게 길한 것이 아니냐?'고 물어보자, 자복혜백이 답하기를 '충신의 일에는 옳지만 그렇지 않을 때 반드시 패하리라'고 하였는데, 과연 뒤에 남괴가 역모를 꾸미다가 결국 패해서 죽고 말았다고 합니다. 대산주역강의1 235~236쪽
-점괘에 대한 해석은 참 어렵다. 무슨 남이 해석해주는 답이 옳다고만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본인이 깊은 사유를 하고, 본인이 마음이 편한 방향으로 해야 한다. 자기 한테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만 생각해서는 곤란하다.
여섯 번째 강인한 포용력의 예를 보자.
상육은 용이 들에서 싸우니, 그 피가 검고 누렇다.
이 말 또한 어렵다.
본래 곤괘에는 양이 없으므로 용이라고 할 수 없는데, 용을 말한 것은 땅의 음이 극성하여 하늘의 양을 부르므로 하늘에서 땅으로 양이 내려온다는 뜻입니다. 수컷이 암컷을 찾아가고 벌나비가 꽃을 찾아가는 것이죠. 옛날에는 '男先於女', 남자가 장가갈 때 먼저 여자의 집에 가고 여자는 '待男而行이라', 남자를 기다려 자기 집에서 혼례를 치르고 첫날밤을 잔 뒤에 시댁으로 신행을 갔습니다.
강인한 포용력을 가진 사람이 용을 불러 싸움을 벌이는 이 형상을 어떻게 봐야 할까. 쉽지가 않다.
이런 해석을 보자.
상육이 들에서 용과 싸우는 것은 음의 도가 다하여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막다른 데까지 이른 것입니다.(其道窮也). 궁은 궁극에 달한 상태로 <계사전>에 '궁하면 변하고 변하면 통한다'고 하였습니다. 밤이 다하면 낮으로 변하여 주야가 통함과 같이 음양의 두 기운이 서로 교통하여 '용전우야'가 되는 것이죠.
중지곤괘인 음력 10월 전후로 서리가 내리는 상강절기의 9월과 얼음이 어는 동지 절기의 11월이 있습니다. 9월괘인 산지박은 마지막 남은 종자인 양 하나가 음에 의해 깍여 떨어지는 것이고, 11월 괘인 지뢰복은 떨어졌던 종자가 다시 땅 속에 회복하여 생명이 잉태되는 것입니다. 음력 10월을 양월(陽月)이라고 하는 것도 음양이 교전하여 생명이 잉태되는 중간과정이 되기 때문입니다. 대산주역강의1 237쪽
음효는 유순한데 곤은 전부가 음효이므로 지극히 유순한 상입니다. 그러나 곤이 발동하여 움직일 때는 강합니다. 남자가 강건하게 보여도 속은 오히려 부드럽고 여자가 유순해 보여도 속은 오히려 강한 면이 있기 때문에 양 속에 음이 있고, 음 속에 양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로부터 전해지기를 '男七女九'아, 남자를 굶기면 이레를 넘지 못하고 여자를 굶기면 아흐레를 간다고 하죠. 대산주역강의1 239쪽
약함이 극에 달하면 중천건괘로 변해버리는 것이다. 이걸 제대로 알아야 한다.
점을 친 사람도 육효가 변하였다. 내면에 양을 내포한 존재라는 것, 매우 강건한 중천 건괘와 통하는 지점이 있다는 것, 본인 내면의 용기나 내공을 잊지 않는 것도 필요할 것이다. 그런데 이 말은 명심해야 할 것이다.
음의 세력이 성대해져서 궁극에 이르면, 반드시 싸워서 상하게 된다. 정이천.110쪽
이 점은 조심해야 할 것이다.
아래 말을 더 보자.
주: 그렇습니다. 곤음이 유순하게 건양에게 순종하던 본성을 버리고 건양과 향쟁하니 양쪽 모두 상처를 입고 선혈이 온 들판에 흘러 넘칠 겁니다. 하늘은 현(玄)이고 땅은 황(黃)이니, '현황'은 음양의 쟁투가 천지의 혼란과 건곤의 혼돈을 조성했음을 상징하는 것으로 이보다 더 큰일은 없겠죠. 건양의 도가 극도로 발전하여 '높디 높이 극점까지 날아 오른 용은 반드시 회한이 있을 것이다(亢龍有悔)고 했듯이, 곤음의 도 역시 극도로 발전하여 '용이 들판에서 싸움'을 벌여 음양의 구분조차 없어지는 참으로 어지러운 지경에 이른 것이죠. 곤음의 도를 행하는 보좌인은 자신을 낮추어 낮은 자리에 머물며 조용히 처신해야 하는데, 그 업적과 영예가 절정에 달하면 반드시 건양과 다투게 되는 국면이 나타남을 특히 경계해야 합니다. 이것이 상육의 효사가 말하는 경계의 메시지 입니다. 현암사. 7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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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을 친 사람은 후반기 운의 방향을 물었다. 강인한 포용력을 발휘할 시점인 것은 분명하다. 어떻게 상대를 포용할 것인가?
강인한 포용력이 필요한 싯점에서는 육사에서 말하는 허물도 없지만, 명예도 없다는 말이 가슴에 남는다.
내가 무얼 바라고 한다면 강인한 포용력으로 타자를 받아들이고 소통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금방 들키게 될 것이다.
보통의 경지가 아니다.
꽁꽁 얼어붙지 않으면서 흘러갈 수도 있어야 한다. 음의 물이 얼어버리면 얼음처럼 차갑다. 그런 사람이 포용력을 발휘할 수는 없는 것이다. 역시 쉽지 않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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