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유마거사는 누구인가?
유마힐은 (Vimalakirti)를 음역한 것으로 앞에서 말씀드린 비마라힐(毘摩羅詰)로서 뜻으로 번역하여 깨끗한 이름, 때 묻지 않는 이름, 어디에 있든지 더러움에 물들지 않고, 악에 동화됨이 없는 이름이다.
유마힐은 이 경의 주인공으로 릿차비족(Licchavi)의 수도인 상업 도시로 번영했던 바이샬리(Vaisali)에 살고 있었던 부유한 거사로 설명되고 있다. 거사는 큰 부자, 덕이 훌륭한 사람, 인격과 교양을 갖춘 사람, 사회의 유지 또는 지도자, 서양의 개념으로는 길드(guild)의 지도자, 자본가를 의미한다.
이 유마거사는 출가 수행자가 아니고 부처님께 귀의하여 가족을 거느리고 상업에 종사하면서도 불법의 깊은 뜻에 통달해 있었으며, 보살행 업을 닦는 흰옷을 재가의 신자입니다. 그에게는 무구라는 아내와 선사라는 아들 월상이라는 딸도 있었다고 하며, 그러나 삼계에 대한 집착을 여의었고, 처자를 거느리고 있으면서도 욕망을 초월한 깨끗한 행을 닦는 일에도 게을리 하지 않고, 부처님의 큰 제자들과 보살들을 만나 진리의 대화를 통해 대승의 경지를 설명하였다.-중략-
유마거사는 세속의 티끌속에 있으면서도 결코 마음이 젖지 않고 물들었으면서도 물들지 않는 연꽃같은 모습으로 세속에서 세속을 벗어나고 세속을 영원한 평화의 세계로 자리하게 승화시키는 것이 불교가 참으로 힘써야 할 일이라고 가르치고 있다. 이 유마거사의 모습이 오늘의 우리 사회에 살아나야 하고 살려내야 할 재가불자의 이상적 모텔이며, 이 사화가 갈망하는 이상적 종교인의 모습일 것입니다.-중략-
3. 유마경의 성립 배경
부처님께서 열반하신 후 곧바로 행해졌던 제1 결집으로 교단은 말씀으로만 있던 교리(성전은 글로 기록하지 않고 오로지 구전(입으로)으로 암기하였다.)가 정비되고 그 전승에 노력하였다. 특히 교단의 발전과 함께 교단의 화합과 질서를 가져와 교권을 확립하기 위해 많은 계율을 만들어 갔다.-중략-
인도 불교사를 통해 보면 부처님이 열반하신 후 100년경에 바이샬리에서 야사 비구의 제의로 700명의 장노들이 모여 계율의 문제로 옳고 그름의 논의가 있었다. 그때 바이샬리의 비구들이 계율에 위반되는 열 가지 문제가 생겨 보수적인 장로들과 일반 비구들과의 사이에 의견대립이 있었다.-중략-
출가는 그러한 겉으로 나타난 형식적인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안으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 즉 깨달음을 구해 불도를 행하려는 마음을 일으킨 발보리심에 있다고 본 것이다. 불교란 깨달음의 마음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내면적인 마음이 문제이지, 겉으로 드러난 재가냐 출가냐의 겉모양을 가지고 논할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중략-
4. 유마경의 구성
이 경은 전3권 14품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1. 불국품
제2. 방편품
제3. 제자품
제4. 보살품까지를 상권
제5. 문수사리문질품
제6. 부사의품
제7. 관중생품
제8. 불도품
제9. 입불이법문품까지를 중권
제10. 향적품
제11. 보살행품
제12. 견아촉불품
제13. 법공양품
제14. 촉루품까지를 하권이라 한다.
1. 불국품, 부처님의 나라 46P
상적광토(常寂光土)
항상 고요하고 밝은 광명으로 빛나는 맑고 깨끗한 세계에 법신 부처님이 계시는 곳.
2. 실보장엄토(實報莊嚴土)
보살이 온갖 공덕과 수행을 닦아 부처가 되어 얻은 세계에 장엄한 보신 부처님이 계시는 곳.
3. 범성동거토(凡聖同居土)
범부와 성자가 함께 섞여 사는 세계를 화신 부처님이 계시는 곳.
부처님의 유교(遺敎)51P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시려 할 때 아난다가 부처님께 4가지 질문을 하였는데,
1.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시고난 뒤 저희들은 누구를 의지해 살아가야 합니까?
가. 자귀의(自歸依) : 자신을 의지하고, 다른 것에는 의지하지 말며,
나. 법귀의(法歸依) : 진리를 의지하고, 다른 것에는 의지하지 말라.
2. 거칠은 비구가 와서 괴롭게 하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말없이 너희 할 일만 하여라.
3. 비구가 여자를 대할 때 어떻게 하여야 합니까?
나이가 많으면 어머니같이 대하고, 나이가 어리면 누이동생같이 대하고, 나이가 비슷하면 남매나 진리의 벗과 같이 대하여라.
4. 경전을 편찬할 때 처음에 어떤 말을 써야 합니까?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언제 누구에게 어디서 누구와 함께 들었다. 쓰도록 하여라. 하시었다.
이와 같은 부처님 유교의 말씀에 따라 경전을 편찬할 때는 반드시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이 문구를 첫머리에 두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경전의 내용을, 누가 들었는데(아문), 때는 언제이고(시), 말씀 한 분은 누구이고(주), 어느 곳에서 설법이 이뤄졌고(처), 청법 대중은 누구를 비롯해서 어느 정도 되었다는 것(중)을 경전 성립의 여섯 가지 조건 또는 원칙(육성취)라 하는데,
1. 신성취(여시)
2. 문성취(아문)
3. 시성취(시)
4. 주성취(부처)
5. 처성취(재모처)
6. 중성취(비구, 대중)
오늘날 신문기사나 방송의 보도자료를 쓰거나 사건 사고의 보고서나 고발 고소장의 형식도 다 이 여섯 가지 기본형식에 따라 언제, 어디서, 누가, 무엇을, 어떻게, 왜라는 원칙을 쓰고 있다.-중략-
2. 청법 대중의 덕행을 찬탄함
그들은 세상의 많은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진 존경받는 사람들로서 부처님께서 갖추신 지혜를 얻기 위한 수행을 다 이루었는데, 그것은 많은 부처님의 불가사의한 힘에 의해 가르침을 받고 보호를 받아 이루어진 것이다. 그들은 대승의 가르침(진리의 성)을 지켜가기 위하여 부처님의 바른 가르침을 받들어 믿고 실천하며 뭇짐승의 왕인 사자가 포효하듯이 위엄있게 널리 진리를 설하여 그 이름이 시방세계에 널리 알려져 있는 사람들이었다. -중략-63p
중국의 승조 스님의 말씀과 같이 부처님의 뛰어난 덕은 넓지만 없는 뿌리를 나게 하지는 않으며 무에서 유를 나게 하는 즉 없는 것을 있게 하지는 못한다. 그러므로 보살은 스스로 부처님의 가르침 그대로 최선을 다하여 수행하고 거기에 부처님의 위신력에 힘입어서 마음이 번뇌의 티끌이 단 한점도 없이 깨끗하게 맑아졌을 때,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큰 지혜를 성취하게 되는 것이다. 중생이 비록 생사유전의 세속생활에 물들어 있는 마음이라 할지라도 인간의 마음은 본래 깨달음으로서 진여법 자체가 본래 갖추어 있다. 마음속 깊은 곳에 있는 마음의 작용에 망녕된 생각이 끼어드는 것을 물리쳐 덜어 없애고 끊임없이 이어져 나타나는 생멸심을 죽여가면 그 결과로 본래의 근원으로 돌아가 마침내 진여법신을 나타내고 있다.-중략-70p
어떤 선각자는 ”깨달음을 얻으면 만물과 하나가 된다.“고 했습니다. 깨달음 그 속에는 무조건적인 사랑(무연자비)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이 사랑은 개달은 지헤의 작용인 삶의 몸짓으로 나타나 중생을 이익되게 하고 행복하게 한다. 보살의 지혜와 자비가 중생구제의 구체적인 몸짓으로 살아날 때 스스로도 보람을 느끼고 즐거워한다.-중략-72p
부처님을 따르는 사람들이 기본적으로 모범을 삼아야 할 대상이 부처님이라고 할 때 그들 역시 의지해야 할 곳은 부처님처럼 바른 법(정법) 밖에 없다. 남전상응부 경전과 한역 아함경에 의하면 보리수 아래서 깨달음을 성취한 부처님도 깨달은 자의 독백(소위 정각자의 고독이라 불리워지는)이 있다.
”존경할 곳도 없고 공경할 사람도 없는 삶은 괴롭다. 나는 어떤 수행자와 바라문을 가까이서 존경하며 살아야 좋을까.....“ 그리고 부처님은 다시 여러 가지 생각을 한 끝에 새로운 생각을 해냈습니다. 경전에 의하면 ”나는 오히려 내가 깨달은 법, 이 법을 존경하고 그 곁에 사는 것이 좋으리라“ 하고 누군가 사람에 의지할 것이 아니라 자신이 깨달은 법이야말로 자신이 의지하고 존경하며 살아갈 의지처였음을 토로하셨다. 이때의 가슴속으로부터 확립된 결심은 부처님이 임종하면서 남긴 ”자신에 귀의하고 진리에 귀의하라. 자신을 등불삼고 진리를 등불삼으라“는 유교에서도 나타난다. 훗날 부처님의 이러한 태도를 ”법에 의지하되 사람에 의지하지 말라“는 말로 정리됩니다.-중략-77p
초전법륜
녹야원에 이르러 5명의 수행자를 놓고 설법하신다. 이렇게 법을 전하고 가르침을 펴기 시작하여 오늘의 불교가 있고, 우리가 부처님의 가르침을 만나 따르는 불자가 되었으며, 그 후 5비구를 상대로 포교를 시작 한지 얼마되지 않아서 바라나시의 장자의 아들 야사를 비롯한 젊은이들의 귀의를 받아 60명의 제자가 생겼을 때 널리 가르침을 펴고 전할 포교의 선언을 하신다. 이 전도선언은 교단 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사건이었다.
부처님은 ”비구들이여, 나는 모든 속박과 얽매임의 인연을 벗어났고, 그대들도 모든 속박과 얽매임을 벗어나 자유로워졌다. 이제 길을 떠나라. 모든 사람들이 이익과 행복을 위하여 세상을 불쌍히 여기고, 그리고 세상에서 구하는 미래의 이익과 행복을 위하여 가르침을 전하러 가라. 다른 마을로 갈 때 같은 길을 두 사람이 가지 말고 혼자서 가라. 처음도 좋고 중간도 좋고 마지막도 좋게 이치에 맞게 조리 있는 표현으로 잘 알아 들을 수 있도록법을 설하라. 그리고 진정으로 원만하고 청정한 수행을 가르치는 것이 좋으리라. 사람들 가운데는 아직 때묻지 않은 사람도 있지만, 그들이 가르침을 듣지 못한다면 악에 떨어질 것이나 가르침을 들어면 곧 깨달을 것이다. 비구들이여, 나도 역시 법을 널리 전하기 위해서 우루벨라의 세사니마을로 가서 설법할 것이다.“ 하신 것이 부처님의 유명한 포교선언이다.-중략-80p
선지식(스승)
사람들이 청하지 않아도 스스로 나아가 사람들의 무거운 짐을 대신 받아 짊어지는 친절한 좋은 벗을 여러분은 선지식이라는 말씀으로 친숙하게 알고 있습니다. 간단히 말해서 좋은 친구,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 마음의 벗입니다. 부처님의 바른 가르침을 설명하고 깨달음의 길에 들게 하는 사람으로 가르쳐 이끄는 사람, 바른길로 이끌어주는 훌륭한 지도자의 뜻입니다.
법화경 묘장엄왕품에 의하면 ”선지식은 큰 인연이다. 가르치고 인도하여 부처님을 볼 수 있도록 하며 깨달음의 마음을 내게 한다.“고 하였으며, 화엄경 입법계품에서는 ”선지식을 가까이하고 공양함은 온갖 지혜를 구족 하는 인연이다.“ 하면서 선재동자가 53선지식을 만나는 것을 설하고 있듯이, 어떤 모습으로 무슨 일을 하고 있더라도 부처님의 길, 깨달음의 길로 인도하는 사람은 다 선지식이다. 깨달음을 향한 구도의 길에서는 그 길을 바르게 인도해 줄 좋은 벗, 선지식을 만나야 한다.
부처님은 잡아함경에서 착한 벗 좋은 벗은 수행의 전부라고 하시면서 훌륭한 스승과 같다고 하였다. 그러나 좋은 벗은 찾기 어렵고 만나기 어렵고 같이 하기 어렵다. 대승본생심지관경에 의하면 ”중생에게 본래 깨달음의 씨앗이 아라야식 가운데 갖추어져 있으니 깨달음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그 길을 열어주는 스승 만나기가 어렵다. 모든 보살이 부처의 길을 가는데는 네 가지 인연이 있어야 함을 알아야 한다. 첫째는 좋은 스승 만남이고, 둘째는 정법을 듣는 것이고, 셋째는 이치답게 생각함이요, 넷째는 법대로 실천함이다.
시방의 모든 부처님은 이 길 따라 깨달음을 얻었노라.“ 하였다. 좋은 스승은 부처의 길, 깨달음의 길을 열어줍니다. 불자 여러분 참 삶의 길로 이끌어 주고 참 삶의 지혜를 일러주는 부처님이 하셨던 일을 받들어 실천하는 좋은 선지식을 찾고 만나 가까이 하십시오.-중략-86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