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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보사개원 법회에 참석했던
전 헌법재판소 재판관 김진우 변호사
본지 맨 뒷 장에 삼보사 개원 사진을 내보내고 있었다. 이 사진속에는 운허, 구산스님과 함께 기념촬영을 한 사람이 있었는데 누군지 몹시 궁금 하였다.그런던차 어느날 l.A. 사시는 보살님한테 전화가 왔다. 그 분은 김진우씨로 헌법재판소 재판관이셨는데 그 사진을 구하고 싶다는 전화였다.
필자는 김진우변호사의 소재지를 알기 위하여 서울로 연락을 하였다.법무법인 삼흥종합법률사무소 대표 변호사로 강남 고속터미널 경부선 건물 5층에 사무실에서 그를 만날 수 있었다. 김진우 변호사는 자그마한 키에 30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사진으로 본 얼굴 모습이 그대로 였다. 김진우 변호사를 통해 개원식에 참석하게 된 연유를 들으면서 전에는 미처 몰랐던 많은 것들을 알게 되었다.
김 변호사는 충남 예산출신으로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였는데 재학중에 고등고시 사법, 행정 양과에 다 합격하였다. 그리하여 내무부 지방국에서 일하게 되었다. 당시는 내무부 산하에 지방국, 경찰국, 토목국, 통계청 등이 있었고 이 중에서 지방국에 인사권과 재정권이 있어 지방국이 단연 가장 좋은 자리였다고 한다. 1955년에는 군법무관을 시작으로 1960년 수원지방법원 판사, 대전지방법원판사, 1963년에 서울민사지방법원 판사, 서울형사지방법원 판사, 1966년 대법원 재판 연구원, 1969년 대전지방법원 부장판사, 서울민사지방법원 부장판사, 서울형사지방법원 부장판사 1975년 인천지원 지원장 1975년 서울고등법원 부장 판사, 1980년 서울가정법원 수석부장을 지내고 1981년 변호사 개업하였다, 그 후 1988- 1997년 1월 까지 초대와 2대의 헌법재판소 재판관(장관급)을 지냈다.
그리고 변호사협회에서 주는 오늘의 법관상인 <법률문화상>을 받았고 1997년에는 청조근정훈장, 황조근정훈장을 받은 것으로 되어있다. 법원에서 한평생을 지내면서 요직을 두루 거친 것으로 보였다. 김 변호사에 의하면 "헌법재판관으로 헌법재판소 기틀을 다졌고 위헌결정 판결을 많이 하였다"고 한다.
필자는 1973년 판사인 김 변호사가 어떻게 그 역사적 현장에 참석하게 되었는지가 궁금하였다.
김변호사에 의하면 그는 삼보사 설립자인 고 이 한상 거사가 초청하여 개원식에 참석하였다고 한다. 그와 이 한상 거사와 관계는 다음과 같다. 그가 젊은 시절에 그와 가까운 분들이 대한불교 달마회를 조직하였다. 이 달마회의 주요 멤버에 조병일 씨가 있었다. 그는 박정권 시절에 법무부 장관을 역임하였다고 한다. 김 변호사는 1군 사령부에서 대위 계급장을 달고 군법무관으로 근무할 때 조병일씨와 같이 근무하였는데 그의 계급은 대령이었고 박정희 전 대통령은 소장이었다고 한다. 조 대령이 아주 신심있는 불교신자여서 김 변호사와 조병일씨는 치악산 중턱에 있는 절에 매일 다녔다고 한다. 이 조병일씨와 행원 스님이 인연이 있어 일요일마다 화계사에서 달마회 법회를 하였다. 달마회는 자체 회관을 마련하여 화계사 옆에 있었으며 현재도 존손하는데 무슨 이유인지는 몰라도 달마회가 현재는 이용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조병일씨는 2대 회장이었고 이 달마회는 행원스님의 지도를 받았다. 이 달마회에 당시 불교신문 사장이었던 이 한상거사가 회원으로 가입하였다. 조병일회장의 뒤를 이어 이 한상 거사가 회장으로 활동하였다. 이 달마회에서 김 변호사는 이한상거사를 알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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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동수 (LA거주), 구산스님, 숭산스님, 김진우변호사(좌로부터)
이런 인연으로 이한상 거사 초청으로 삼보사 개원법회에 참석하게 되었다. 그런데 같이 갈 일행 중에 삼부토건 상무 아들이 있었는데 이 사람이 병역미필로 못나가게 되어 이 사람과 운허스님의 신원보증을 당시 김진우 판사가 하여 출국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미국에 도착하여 삼보사에 가보니 당시 건물이 완성되지 않아 한 달간 기다릴 수 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한국에서 간 운허스님과 김진우 판사를 비롯한 여러 사람들은 L.A. 뉴욕지역을 비롯하여 미국의 여러 지역을 여행하기도 하였다. 김변호사는 카나다 토론토까지 가서 나이아가라 폭포도 구경하였다. 운허스님은 워싱턴 국회도서관에 가서 찾아볼 것이 있다고 하여 같이 워싱턴 국회도서관에 가기도 하였다.
현재는 김 변호사는 절에 자주 나가지는 못하지만 아침에 108배는 매일 한다고 한다.
편집부/ 2004년 4월호 미주현대불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