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 유향이 간언을 하다가
결국 받아들여지지 못한 채 숨을 거두고
그 13년 후인가에 왕씨의 신나라가 들어서게 되는데.
이 대목 강하시다 선생님 하시는 말씀.
"여자는 자기를 좋아해 주는 사람을 위해 화장을 하고
선비는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죽기도 하능겨.
선비나 충신의 말이 쓰이지 못하면 그게 망하는 시대여."
이 사람 귀에는 첫 대목만 들어온다.
요즘 화운데이션은 사양한 채
눈썹과 입술만 칠하는 데 재미가 붙은 참.
그런데 요렇게 하는 것도 남을 위해 하는 것이라니.
그냥 나서기엔 너무 숭악하니 예의상 하는 것이지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을 위해 하는 것은 아니다.
(좋아해 주는 사람도 없거니와!~)
그 말이 그 말인가?
아무튼 심사가 꼬일락말락 한다.
(옛글 읽다 보면 이렇게 여성을 비하하는 듯한 발언이 꽤 많다.
이런 거에 하나하나 대응하다가는 글을 못 읽는다.)
..............
어찌되었든 수업은 끝나고
점심을 먹으러 간다.
문형당 형님이 하는 말.
"봄이 왜 이리 자주 오는지 모르겠어요."
선생님께서 빙그레 웃으신다.
"세월이 그런 거여. 돌아서면 낙엽 질걸."
총무를 맡은 강림 형님이 결석이다.
들리는 말이 '회갑 기념 여행'을 떠나셨단다.
그러자 누군가 또 한 마디.
"선생님, 제자들이 회갑인 줄 모르셨지요?"
"나이는 드는 거여.
아, 이금희도 나이 드는 거 부아."
잠시 띠융~
아니, 이금희가 뭐라도 되나?
보아 하니 선생님 옆자리에 앉은 화순씨,
대전에서 공주로, 조치원으로, 청주로
거의 날마다 선생님 기사 노릇을 하는,
막둥이 예쁜이 표정이 샐쪽해진다.
"선생님, 이금희 팬이신가 보다."
"얼굴이 풍후하잖여. 점잖고.
그라고 목소리도 순하고 편안하잖여.
그런 이도 인제 나이가 들어 보이더만.
시집도 못 가고 그러고 있는 거 보면 영 안 됐어."
"아유, 선생님이 좀 젊으셨어야 되는데......"
(아무리 청춘이 지났기로서니 명색이 여잔데,
여자들 앞에서 딴 여자 칭찬하는 거 아닙니다요.
특히 젊은 여자 미색을 칭찬하는 거,
이거 조심하셔야 됩니다.~
안 그러면 다음과 같은 사태 발생하고 맙니다.~)
선생님은 이금희 얘기하라 그러구
우린 남자들 이야기나 하자구.
그려. 잉. 그려그려. ㅋㅋㅋ
부여 헝님이 먼저 말문을 트신다.
-나는 최무룡이니 신영균이니 해싸도
신성일 이상 가는 얼굴은 본 적이 없어 야.
-그래요?
저는 남궁원이 참 잘 생겼던데.
-차인표 처음 나왔을 때도 괘안았어.
지금은 좀 아니지만.
브래드피트니
키아누 리브스는 꺼낼 계제가 못 된다.
나잇살 지긋한 여제자들이
모른 척하고
이 남자 저 남자 주워 섬기고 있는데
선생님, 주책맞게 끼어 드신다.
-뭐래도 엄앵란이여.
그때는 아무리 연예인이라 해도
보고 들은 게 있었어.
말 한 마디도 점잖게 하잖여.
화순씨가 어이없는 표정으로 반격에 나선다.
-엄앵란요?
지금은 너무 아니잖아요.
그러거나 말거나 선생님은 계속하신다.
-우리 이우제 사는 냥반이 젊어서 엄앵란이를 보고
너머 좋더란겨. 요즘 말로 하면 한눈에 반한겨.
그래가 무작정 만나 본다고 서울로 올라갔어.
그런데 그 냥반이야 뭐, 배운 게 있어, 돈이 있어,
그냥 핫바지 입은 촌사람이지 무어.
가 보니께 사는 집이 기냥 으리으리한 게
고대광실도 그런 고대광실이 없더라는겨.
그걸 보고서는 기가 팍 죽어서는
만나 보도 못하고 기냥 내려왔디야.
-선생님과 동년배시겠네요.
-그렇지.
내가 스물이고 그 냥반이 스물한 살 땡게.
지금은 죽었어.
이쁜 여배우를 보고서
무작정 상경했다는 시골 총각의 순정이
투박하고 촌스럽다 못해
울컥스럽기까지 하여
그래그래, 젊은 한때 그럴 수 있지,
꽃 보고 이뻐하듯
젊은 여자 보고 정신이 휘딱 나갈 수 있지 뭐,
이해한다고, 이해해~
마음이 태평양 바다같이 넓어만 지는데
어라, 벌써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고~
그렇게 한눈에 반했던 엄앵란은
노익장을 과시하며 아직도 건재한데
참 무정한 게 세월이고
야속한 게 젊음이로다~
이금희로 시작되어
엄앵란으로 이야기는 끝나고,
점심 잘 자시고 식당 밖으로 나온
사오륙십 대 아줌마 아홉과
칠십대 노인 한 분,
나이를 잊고 햇볕 아래서 깔깔껄껄 웃으며
다들 의아해한다.
마음아, 어찌 너는 늙을 줄을 모르나뇨.
(2009. 3. 17.)
2009. 홍차 |
첫댓글 에구 서러워라
서러운 속에도 즐거움이 있답니다.~
늙어짐을 어찌 수용 할려할가요? 마음이..매일 청춘 이지요...글이 너무 재미나 자주자주 들어옵니다.
고맙습니다. 재미없는 세상에 조금이라도 재미를 주었다니, 아니 재미나게 보아 주시니 고맙습니다. (마음은 언제나 열아홉이지요?!!!)
스무살 땐 서른만 넘으면 다 똑같은 사람으로 뵈더만, 서른 넘고도 한참인 지금, 누가 몇 살이라도 깎아보아주면 좋아서 히죽하니...참말로 마음은 나이를 안 따라가네요.
몸은 늙어지고 마음은 어려지고, 한데 뭉뚱그려 나누면 딱 열아홉살!!! ㅋ
50이 넘어서 나무심는다고 40대 후반 후배들이 약올립니다. 겨우 서너살 차이인데..ㅎㅎ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