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김씨 시조 김알지는 김수로왕의 아들?방계혈족?
2008/07/16 오후 1:51 | 천산역사연구원
휴도왕(休屠王, 金留)의 아들로는 김일제(金日제)와 금륜(金倫)이 있었고,
김일제의 아들로는 농아, 홍(弘=상賞), 건(建)이 있으며,
금륜의 아들이 안상(安上)이며,
안상의 아들이 상(常), 창(敞), 잠(岑), 명(明)이고,
창의 아들이 섭(涉, 삼(參), 요(饒)이며,
섭의 아들이 탕(湯)과 융(融)이고,
융(서기전30~)의 아들이 금관가야 시조 김수로왕이다.
수로왕의 자녀들로는
1.거등(태자), 2.알지(경주김씨 시조), 3.허석, 4.허명(이상 3,4는 김해허씨의 시조), 5.혜진, 6.각초, 7.지감, 8.등연, 9.두순, 10.정홍, 11.계장, 12.딸 옥환(영안공주), 13.딸 석태자비(신라 석탈해왕 왕비)가 있다.
경주김씨족보의 한 파보에는 휴도왕의 아들에 상(賞)이 있고 상의 아들에 당(當)이 있고 당의 증손자에 알지가 있다고 기록되어 있기도 한다. 이 상은 휴도왕의 아들 김일제의 아들이며, 당은 상의 조카이다.
경주김씨 고서에는 시조 알지가 수로왕의 후예라고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이상 대동방씨족원류사2, 성균관, pp554-573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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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경주김씨 시조 김알지는 김수로왕의 아들?방계혈족? |작성자 일발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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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께서 나에게 명하시길, 이곳에 와서 나라를 세우고 임금이 되라고 하셨다. 그래서 내려온 것이다. 너희들은 모름지기 산봉우리 위에서 흙을 파면서 노래하기를, ‘거북아 거북아 머리를 내어라. 만일 내밀지 않으면 구워서 먹겠다.’라고 하면서 춤을 추어라. 그렇게 하면 곧 대왕을 맞이하게 되어 기뻐 춤을 추게 될 것이다.”
구간들이 그 말처럼 모두 기뻐하면서 노래를 불렀다. 얼마 되지 않아 하늘을 우러러 보았더니 붉은 줄이 하늘로부터 내려와 땅에 닿았다. 줄의 끝을 찾아보니 붉은 보자기 속에 금상자가 있었고, 상자를 열어 보니 황금알 여섯 개가 있었다. 사람들은 모두 놀라고 기뻐하면서 그 알을 향해 수없이 절을 하였다. 그리고 다시 보자기에 싸서 안고 아도가의 집으로 가서 탁자 위에 두고는 모두들 흩어졌다.
12일이 지난 그 이튿날 아침, 사람들이 다시 모여서 상자를 열어보니 여섯 개의 알이 어린 아이로 변해 있었는데 그 모습이 매우 뛰어났다. 곧 평상에 앉히고 사람들이 절을 하며 축하하고 극진히 공경하였다. 아이들은 나날이 커졌는데, 십여 일이 지나자 키가 9척이나 되어 은(殷)나라의 탕왕(湯王) 같았고 얼굴은 용처럼 생겨서 한(漢)나라의 고조(高祖) 같았다. 여덟 가지 색깔의 눈썹은 당(唐)나라의 요(堯)임금 같았고, 눈동자가 겹으로 된 것은 우(虞)나라의 순(舜)임금 같았다.
그 달 보름에 왕위에 올랐다. 처음으로 세상에 나타났기 때문에 이름을 수로(首路)라고 하였는데, 혹은 수릉(首陵)[수릉은 세상을 떠난 뒤의 시호이다.]이라고도 하였다. 나라는 대가락(大駕洛)이라 불렀는데 가야국(伽耶國)이라고도 하였다. 곧 여섯 가야의 하나였다. 나머지 다섯 명도 각각 다섯 가야의 왕이 되었다. 동쪽으로는 황산강(黃山江), 서남쪽은 창해(蒼海), 서북쪽은 지리산(地理山), 동북쪽은 가야산(伽耶山), 남쪽은 나라의 끝이었다. 임시로 궁궐을 짓고 살았는데, 검소한 것을 바랄 뿐이어서 이엉의 끝도 자르지 않았고 흙으로 만든 계단도 3자밖에 되지 않았다.
[네이버 지식백과] 가락국기 [駕洛國記] (원문과 함께 읽는 삼국유사, 2012. 8. 20., 한국인문고전연구소)
皇天所以命我者 御是處 惟新家邦 爲君后 爲玆故降矣 爾等須掘峯頂撮土 歌之云 龜何龜何 首其現也 若不現也 燔灼而喫也 以之蹈舞 則是迎大王 歡喜踴躍之也
九干等如其言 咸忻而歌舞 未幾 仰而觀之 唯紫繩自天垂而着地 尋繩之下 乃見紅幅裹金合子 開而視之 有黃金卵六圓如日者 衆人悉皆驚喜 俱伸百拜 尋還裹著 抱持而歸乃我刀家 寘榻上 其衆各散
過浹辰 翌日平明 衆庶復相聚集開合 而六卵化爲童子 容貌甚偉 仍坐於床 衆庶拜賀 盡恭敬止 日日而大 踰十餘晨昏身長九尺 則殷之天乙 顔如龍焉 則漢之高祖 眉之八彩 則有唐之高 眼之重瞳 則有虞之舜
其於月望日卽位也 始現故諱首路 或云首陵[首陵是崩後諡也] 國稱大駕洛 又稱伽耶國 卽六伽耶之一也 餘五人 各歸爲五伽耶主 東以黃山江 西南以蒼海 西北以地理山 東北以伽耶山 南而爲國尾 俾創假宮而入御 但要質儉 茅茨不剪 土階三尺
[네이버 지식백과] 가락국기 [駕洛國記] (원문과 함께 읽는 삼국유사, 2012. 8. 20., 한국인문고전연구소)
융의 아들이 김수로왕인데, 융이 서기전 30년생이므로, 대충 생각해도 김수로왕의 서기전에 태어난 사람이며, AD42년 고구려왕의 명령을 받아 가야에 5명의 형제들과 진출한 것으로 보아서, 그가 장남이었다고 생각한다. 탕왕과 한나라 고조, 당나라 요임금, 우나라 순임금이 언급된 것으로 보아 중국에서 왔음이 확연히 드러나는 것이다. 큰 키는 그와 형제들이 북방족임을 나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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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는 왕이 신하들에게 말하였다.
“구간들은 모두 관리들의 우두머리인데도, 그 지위나 명칭이 모두 다 소인이나 농부들의 이름과 같아서 고관의 칭호가 아니니, 만약 외국에 전해진다면 반드시 웃음거리가 될 것이오.”
[네이버 지식백과] 가락국기 [駕洛國記] (원문과 함께 읽는 삼국유사, 2012. 8. 20., 한국인문고전연구소)
위의 글은 AD48년 이후의 일인데, 김수로왕의 견문이 많음을 알 수 있다.
서기전에 태어나 AD42년 무렵에는 45세쯤은 되었다고 생각한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01&aid=00026208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