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미가 필요해
권 혁찬
뙤약볕 오후
호미를 사러간다
시장 어디쯤엔가 아버지가 사다주시던 할머니의 호미가게를 찾아 헤매다
기생집들만 잡초처럼 더부룩한 골목을 지나며
호미의 흔적을 놓치고 돌아서는 미물
좌판이 흐트러진 월요일오후
휴지조각처럼 구겨진 뒤 울 안 엉성한 고추밭에
쓰다 만 이력서처럼 던져놓은 거름들이 마르고 있다
콩밭 언저리에 유기됐던 유년
할머니의 무기는 호미였다
해가 기울도록 할머닌 그것을 놓지 않은 채 노을들을 배웅했고
굽은 허리로 호미와 나를 업고 늦은 사립문을 여시곤 했다
거름을 이고 앉은 초라한 고추밭 언저리에 걸터앉은 무명초 같은 하루
할머니의 호미소리가 머릿속을 쪼아 대고 있다
일렁이는 두통을 재우려 호미를 찾아 나섰던 일이 허사가 되고
스므포기의 고추들은 오후의 역사를 모른 채
호미처럼 내 눈언저리를 쪼아대고 있다
이제 젖은 이력들을 정리할 나의 호미가 필요해.
“현대시학” 2011. 10월호
첫댓글 유년의 할머니 호미는 세월이 흐른 뒤 나의 젖은 이력을 정리할 호미가 되고
그러나 겹치는 그것은 다시 오지 않을지도 모를 시간이 되지만
그래도 좋지 않은가요?
젖은 이력을 떠올리고 호미를 떠올릴 수 있는 사유의 지금이....
즐감했습니다.
그럴군요~
아직도 마르지않은 축축한것들 투성이인 지금 필요항것이 호미란걸...
문득 문득~~"
감사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