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합을 통한 결과물의 존재가치에 무게중심을 두거나 지속성을 유지하는 통섭이나 컨버전스에 비해 크로스오버와 콜라보레이션은 다분히 일회성 이벤트나 기법 자체를 의미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결혼을 거부하는 싱글족들의 데이트라고 불러도 무방하다.
크로스오버(Crossover)는 장르의 넘나듬을 의미한다. 시기적으로 볼 때 컨버전스의 먼 조상격인 크로스오버는 본래 음악이나 공연에서 많이 사용되는 개념으로 특히 재즈와 록, 팝 등 여러 가지 스타일의 음악을 혼합한 음악 연주 형식을 지칭하는 것으로 출발했다. 크로스오버 음악의 시작은 1969년 재즈 음악가인 트럼펫 연주자 마일스 데이비스가 재즈와 록을 결합하여 시도한 ‘재즈록’ 또는 ‘록재즈’라고 일컬어지는 퓨전재즈다. 80년대 초 컨트리 음악과 팝 음악을 결합한 양식이 큰 인기를 끌면서 크로스오버 음악의 대표 격으로 각광받았다. 크로스오버 음악은 대중음악과 클래식 음악의 결합도 시도하여 1980년대 중반 성악가인 플라시도 도밍고와 미국의 포크 음악 가수인 존 덴버는 〈퍼햅스 러브(Perhaps Love)〉라는 곡을 함께 불러 커다란 인기를 얻었다. 국내의 경우 1990년대 국악을 이용한 크로스오버 음악이 시도되기도 했다. 서태지의 〈하여가>는 국악과 랩을 조화시킨 크로스오버 음악으로 많은 호평을 받았다. 이 밖에도 김덕수 사물놀이패와 오케스트라의 협연, 가곡과 대중가요의 결합으로 탄생한 <향수> 등 음악, 공연계에서는 수없이 많은 크로스오버를 통해 서로에게 자극을 주고 영감을 주고 받았다. 영화나 뮤지컬, 오페라에서도 크로스오버는 꾸준히 시도되는 추세다. 오히려 크로스오버 공연이 아니라는 정통 뮤지컬, 정통 오페라라는 표현이 등장할 정도로 장르간의 교류는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미술 분야에서도 크로스오버의 사례는 적지 않다. 서양화가가 동양화 기법을 차용해 작품을 완성하거나 동양화 수묵 담채화에 서양 미술 기법이 등장하기도 한다.
산업계에서의 대표적인 크로스오버 사례는 멀티샵의 형태로 등장했다. 북카페나 멀티미디어 카페 등 의 점포컨셉이 그것인데, 매출의 극대화를 위해 시도한 측면이 크다. 각각의 매장 의 장점을 살리면서 고객들에게 시간과 비용을 절감해주는 윈- 윈 전략의 사례라고 할 수 있다. 크로스오버 형태의 점포를 컨버전스로 포장해 마케팅으로 활용하는 기업도 늘고 있다. 콜라보레이션은 산업계가 예술계에 구애를 던지는 형태로 출발했다. 콜라보레이션(Collaboration)은 우리 말로 협업이라고 풀이된다. 각각의 분야에서 장점을 지닌 전문 영역 두 개가 만나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콜라보레이션의 실전 사례는 주로 소비자들에게 애용되는 레디메이드 제품에 아티스트의 창의적 아이디어가 결합되어 나타난다. 시각적 작품를 극대화시키는 구현 사례가 많고 산업계에서 널리 애용되는 시도다. 구체적인 예를 살펴보면 코카콜라의 용기 디자인에 패션디자이너 장 폴 고티에의 작품이 덧칠해진 경우를 들 수있다. 우리나라 한국야쿠르트에서도 영국의 일러스트레이터 산드라 이삭슨의 작품을 빌려와 평범한 유산균음료 제품이 난데없이 예술작품으로 재탄생되기도 했다. 프리미엄 가방 브랜드 샘소나이트도 소나무 사진으로 유명한 사진가 배병우와 함께 콜라보레이션을 시도해 관람객들의 눈길을 끌었다. 메르세데스 벤츠와 패션디자이너 이상봉, 샘소나이트가 함께 어울려 다중 콜라보레이션 시도로 신제품 발표 효과를 극적으로 연출한 사례도 눈에 띈다. 이밖에도 독일의 명차 브랜드 BMW는 팝아트의 거장 앤디워홀과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작품에서 영감을 받은 콜라보레이션 시도로 트렌드에 민감한 자동차 애호가를 열광시킨 바 있다. 휴대전화 제조업체 팬텍에서도 자사의 스마트폰 브랜드 베가에 사진작가 김중만의 예술적 이미지를 결합시켜 젊은 사용자들의 눈길을 끌었고, BMW에서 만든 자동차 브랜드 미니에서도 팝아트 작가 김일동과 콜라보레이션을 시도했으며 현대자동차에서는 타이포그래피 디자이너 스테판 사그마이스터의 작품을 자사 제품에 차용하기도 했다.
무라카미 타카시를 일약 스타로 만든 루이비통 무라카미 콜라보레이션은 업계 안팎에서 손꼽는 성공사례다. 아티스트가 직접 제작에 참여하며 패션과 미술계에 파장을 몰고 온 무라카미 라인은 루이비통의 오래된 매너리즘을 타파하는 시도로 각광받앗다. 쿠사마 야요이와 루이비통의 콜라보레이션도 세간의 관심을 모은 사례로 꼽히고 미술계의 악동 데미안 허스트는 리바이스와 협업을 진행하며 여전히 화제의 중심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모았고 레이시 에민은 롱샴과 만나 트레이시 에민다운 가방을 발표했다. 앱솔루트 보드카는 팝아트 거장 앤디 워홀, 키스 해링 등과 콜라보레이션을 진행했으며, 와인 샤토무통로칠드는 니키드 생팔, 프란시스 베이컨, 발튀스, 베르나르 브네 등 인기 작가들의 작품이 담긴 레이블을 선보였다. 스포츠 분야도 콜라보레이션 열기가 식지 않는다. 아티스트와 협업한 트로피, 골프공을 보는 것도 어렵지 않게 됐으며 ‘넵스 마스터피스’에서는 각 홀마다 작품을 전시하는 방식으로 스포츠와 예술의 인터렉티브한 만남을 선보여 왔으며 공간과 미술, 음악과 미술 등 다양한 콜라보레이션 사례들이 속속 선보이고 있다.
이종 기업들간의 업무제휴도 넓게 보면 크로스오버와 콜라보레이션의 활용 사례에 속한다. 지난 해 기아자동차와 SK이노베이션이 맺은 ‘전기차 보급 및 개발 협력’을 위한 양해각서(MOU)는 전기차 상용화라는 공생의 길을 지향한 것으로 양사는 협력을 통해 친환경 신성장 분야의 기술혁신을 이루고 업무 제휴를 통한 투자자와 시장에 대한 홍보효과까지 거두고 있다.
제휴에 따라 두 회사는 각자 전문 분야의 강점을 결합해 시너지를 극대화, 전기차 상용화를 앞당기는 계획이 진행 중인데, SK이노베이션은 일반 기업 최초로 레이 전기차를 업무용 차량으로 활용하고 기아차는 SK네트웍스가 계획 중인 제주도 전기차 렌터카 사업에 ‘레이 EV’를 우선 공급하기로 한 것이 주 내용이다. 배터리 분야에서도 양사는 전기차 렌터카 운행을 통한 실증 데이터와 배터리 성능에 대한 정보 등을 공유해 오는 2014년 출시 예정인 준중형 전기차에서 한 단계 높은 수준의 기술력을 선보일 예정이다. 지난 해 현대자동차와 KT·삼성전자가 맺은 ‘트리플 넘버1 공동 마케팅 업무협약’도 3개 대표업종 기업 간 크로스오버 협력으로 관심을 모았다. 현대차 구매고객이 삼성전자의 태블릿PC나 휴대폰을 사은품으로 받은 후 이를 KT의 이동통신 서비스로 이용하는 방식이다. 대한항공의 경우 식품업체인 SPC와 손잡고 동남아시아 노선 항공권 할인 혜택을 SPC 해피포인트 우수회원에게 제공하고 대한항공 이용객 및 스카이패스 고객에게 SPC 매장 이용시 할인 혜택을 주고 있다.
Editor 이종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