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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울뿐인 세계화** |
<2003년 여름>
제1장 진화가 아닌가요? (p. 21-30)
(1조 : 김원근, 김진보, 윤수진, 김태근)
“경제력 집중의 경향은 자연법칙이나 맹혹한 과학기술 규범에 따른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통제와 변화, 반전이 요구되는 제도적 폭력의 산물이다....”
(월터 애덤스, 『미국에서의 기업의 힘』)
북미의 주도 중에서 가장 작은 곳인 미국 버몬트주의 주도 몽펠리에는 맥도널드 햄버거 체인점이 없는 유일한 곳이다. 몽펠리에가 작은 주도로서의 명성을 쉽게 잃을 것 같지는 않지만 맥도널드가 들어서 있지 않은 곳이라는 지위는 심각한 위협을 받았다. 그래서 시내 한복판에 체인점을 열기로 결정하였으나 시민들은 자기 고장 특유의 개성과 경제를 간직하고자 하는 노력 속에 맥도널드를 상대로 길고 어려운 싸움을 벌여 끝내 맥도널드를 쫓아내는데 성공했다. 몽펠리에 상공 회의소 의장 켄트비글스톤은 대규모 기업을 좋게 볼 이유가 없다고 주장했다. 대규모의 기업으로 인해 조그마한 상점들이 위태로워진다는 것이다. 그는 전국적인 체인점들이 들어오는 것은 자연의 진화라고 하였다.
거대기업의 지배력 팽창을 두고 자연의 법칙이니 진화니 하는 사람들은 그만이 아니다. 아마도 한번이라도 생각해본 대다수의 사람은 무엇이건 규모가 큰 것이 작은 것보다 우월함을 타고났다고 믿을 것이다. 작은 도시와 시골마을이 위축되는 반면 큰 도시와 교외는 끊임없이 팽창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규모의 팽창 추세는 기업세계에서 특히 두드러져 보이는데, 엄청난 경제력이 소수의 다국적기업 이사회의 손아귀에 집중되고 있다. 한 거대기업이 다른 기업을 집어삼키고 자신 또한 더 큰 기업에 먹히는 기업 합병이나 인수 뉴스가 끊이는 날이 없다.
이것이 진행중인 진화라면 자연선택은 국민국가조차 너무 작은 단위로 볼 것이 분명하다. 무한한 경제성장과 국경 없는 자유무역의 조급증 논리에 사로잡혀 정부들은 무소 부재의 세계화 경제를 만들기 위해 지역 및 국가 경제 사이의 장벽을 계획적으로 없애고 있다. 이것이 세계 곳곳의 다채로운 지역경제와 작은 자립공동체들의 파괴를 의미한다면 이는 자연선택이 더 이상 쓸모 없는 퇴화기관을 제거하는 데 일조 하는 것일 뿐이다. 이 모든 것이 목표로 하는 진화적 귀결은 지구촌이다.
큰 규모를 지향하는 추세는 너무도 분명하지만 그 근본 원인에 대한 물음은 그것이 얼마나 자연스럽고 불가피한 일인지를 강조하는 거센 목소리에 묻혀버리고 만다. 결국 우리는 자연의 법칙은 본질적으로 작은 것과 지역적인 것을 거부한다는 말만 들을 수 있을 뿐이다.
경제의 세계화가 안정과 평화를 얻는 수단으로서 선전되어 왔지만 그것은 한나라의 경제적 격변이 순식간에 전 세계로 퍼져나가면서 통화의 평가절하, 파산, 실업 심지어 경제의 붕괴까지 야기하는 전염성 불안정을 낳았다. 이 모든 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성장을 제한할 방법을 찾도록 설득할 수 있을 것이지만 우리의 길이 인간의 통제를 벗어난 힘에 의해서 설정된 것이라면 토론은 침묵하고 이견은 질식할 것이며 적극적 행동주의는 싹을 못 내밀 것이다.
기본가정
세계화로 치닫는 경제의 장에서 활동하는 거대기업들의 성장이 자연과정이나 진화가정의 산물이 아니라 인간의 결정(특히 정부가 우리를 대신하여 선택하는 정책)의 결과라는 것이 이 책의 포커스이다.
그러한 결정은 바뀔 수 있고, 따라서 우리의 공동체적 삶과 경제적 삶의 과정 또한 바뀔 수 있다.
애초에 인간이 만든 ‘틀짜기 조건들’
‘틀’의 한쪽은 권력, 즉 사회전체를 대신해서 결정을 내리는 관리기관의 권력과 경제적 지위를 유지 및 강화하기 위해서 애쓰는 부유한 기업 엘리트들의 권력을 둘러싸고 있는 것이다.
틀의 또 한 부분은 이데올로기 또는 세계관의 축과 나란히 서 있으며, 경제와 과학기술에 대한 믿음과 태도로 이루어져 있다.
세계화와 기업의 성장이 불가피하고 자연스러운 과정이라는 생각 또한 이 같은 세계관의 일부가 되어가고 있다.
모든 문화의 사고체계와 마찬가지로 산업주의 세계관도 빈틈없이 자기충족적이다. 기술발전의 실질 가치와 경제성장은 이 세계관의 기본 토대이며 여기에는 의문이 있을 수 없다.
정부의 결정들은 엘리트의 경제적 힘이 커질 것인가 아니면 줄어들 것인가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기업 엘리트는 정부 결정들에 뿌리깊은 영향을 미치기도 하고, 주류 세계관을 교묘하게 조작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겉보기에는 중립적이지만 본질적으로 대규모 사업체를 편드는 정부정책들에 대해서는 논의가 활발하지 않은 실정이다. 특히 ‘인프라투자’의 경우 특히 그러하다.
인프라투자는 보통 경제 규모의 팽창을, 그리고 특히 대기업들의 발홍을 촉진하는 데 절대적인 역할을 해왔다. 이와 비슷하게 일반국민과 자연환경을 기업의 착취로부터 보호한다는 분명한 목적을 지닌 많은 정부 규제들은 오히려 체계적으로 작은 사업체들을 희생시켜 큰 사업체들을 지원하는 데 이용되고 있다.
정부의 역할을 이처럼 강조한다고 해서, 정부규정을 어설프게 고치거나 일부규제를 강화함으로써 기업 지배의 세계화 경제로 치닫는 추세를 뒤집을 수 없다. 그보다 훨씬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고, 이를 위해서는 풀뿌리 차원의 광범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즉 기득권 세력의 힘을 제거하고, 보다 지역적이며 지속가능한 공동체와 경제 건설을 위해 대중이 나서야 한다.
제2장 큰 것은 갈수록 커진다 (p.31-44)
(2조 : 배진성, 심재영, 이종효, 임산규)
경제라는 자기충족의 세계에서는 성장이 곧 성공의 척도로 간주된다. 이것은 보통 과거의 업적에 대한 찬사보다도 더 큰 소리로 미래의 성장 전망을 외쳐대는 기업들의 연례보고에서 가장 극명하게 나타난다.
세계경제의 규모가 지난 반세기 동안 두드러지게 성장했지만, 국제무역은 훨씬 더 빠르게 팽창했다. 1990년대 이르러 큰 회사는 모두 국제적인 기업으로 변모했는데, 이들의 주식은 세계 곳곳의 투자자들에 의해 소유되어 많은 주식 시장에서 거래되고 있다.
합병의 붐
덩치가 커지면서, 흔히 기업들은 시장의 크기에 의해서 결정되는 한계에 다가선다. 지속적인 성장을 유지하는 한 가지 방법은 경쟁 기업을 인수하거나 합병하는 것이다.
세계화 시장에서 경쟁하는 데 클수록 더 유리하다는 확신에서, 어떤 기준에서 보든 이미 거대한 기업들은 더 커지기 위해 온힘을 쏟고 있다. 이러한 합병과 관련된 금액은 너무나 엄청나서 상상하기조차 어렵다.
기업이 경제를 지배할 때
데이비드 코튼은 자신의 저서 기업이 세계를 지배할 때 When Corporations Rule the World'에서 우리를 정신이 번쩍 들게 하는 몇 가지 통계를 인용했다.
-오늘날 세계의 500대 기업이 전 세계 경제생산의 25퍼센트를 지배한다.
-(금융기관을 제외한) 세계 300대 기업이 전 세계 생산관련 자산의 약 25퍼센트를 소유하고 있다.
-세계50대 상업은행 및 다각화 금융회사가 전세계자본의 약 60퍼센트를 통제한다.
이 수치들은 시장과 생산관련 자산의 통제력이 갈수록 소수의 기업의 손아귀에 집중되고 있는 것이 분명한 세계적인 추세..라는 코튼의 지적을 뒷받침한다. 큰 것은 갈수록 점점 더 커지고 있다.
작은 것들과의 결별
규모의 다른 한쪽 끝을 보면 , 작은 사업체들이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지 알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생각만큼 쉽지 않다. 경제의 규모가 팽창함에 따라 작은 사업체의 정의도 확장되었기 때문이다.
이 거대한 사업체(작은 사업체)들은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매우 작은 사업체들의 희생 위에 성장해왔다.
소농 대 기업농
작은 것의 희생을 토대로 한 큰 것의 성장은 농업에서 특히 두드러진다. 소농들의 소멸은 대체로 농촌지역의 주변화와 함께 진행된다. 생계의 터를 잃은 많은 농촌사람들은 도시로 옮겨갈 수밖에 없었고, 이들이 떠난 농촌 공동체들은 문화적 및 경제적인 활력을 더욱 잃어갔다. 농촌의 경제적인 건강은 또한 기업 체인점들의 침입으로 손상을 입었는데 이는 체인점의 수입의 대다수가 그 지역 외로 빠져나가기 때문이다.
거대 도시의 증가
모든 산업사회에서 도시는 농촌지역의 희생을 딛고 성장해왔다. 제3세계에서는 인구의 대부분이 아직도 땅에 의존해서 살아가지만, 비슷한 추세가 이곳에서도 진행되고 있다. 이렇듯 제3세계 도시들의 인구팽창은 국가 전체의 인구증가보다 현대화 및 개발과 훨씬 더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농촌생활의 지속적인 붕괴와 함께, 20세기 말에는 인구 1,000만명이 넘는 거대도시가 1970년보다 20개나 늘어날 것이다. 그리고 그것들 모두 제3세계에서 나타날 것이다.
그러면 무엇이 작고 지역적인 것인가?
작고 지역이 적은 것들의 희생 위에서 크고 세계적인 것들이 성장한다. 인구가 거대한 도시집단으로 응집되고, 농촌 공동체들은 경제의 활력과 문화의 생명력을 잃어간다. 진짜 작고 진짜 지역적인 사업체들은 점점 희귀해지고 이러한 산업사회에서 특히 더 그러하다.
우리에게는 근본적인 방향 전환이 필요하다. 우리의 목표는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의 간격을 어떤 임의적인 거리로 좁히는 것도, 무역을 아예 없애버리는 것도 아니다. 그보다는 거대기업 대신에 소규모 생산자를, 세계화 경제가 아니라 지역경제가 아니라 지역 경제를 지원하자는 것이다.
제3장 성장의 토대 - 인프라와 규모 (p. 46-55)
(3조 : 권선희, 김대영, 박정제, 신정아)
이 장에서는 인프라 ,즉 우리가 쉽게 떠올릴수 있는 고속도로와 다리, 철도, 공항, 항구와 선박 터미널, 댐, 발전소, 통신시설, 병원, 대학, 나아가서는 ‘정보고속도로’ 등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오늘날의 무한한 성장과 지나친 무역 그리고 소비수준의 끝없는 상승에 의존하는 단선적인 세계화 경제는 환경적으로 지속가능하지 못하고, 사회적으로 안정되지도, 경제적으로 건강하지도 않다.
이러한 경제를 만드는데 공공자원을 쏟아붓는 것 보다 지역적인 경제들을 지원하는 것이 더 현명할 것이다. 즉 큰 규모가 아니라 작은 규모에 적합한 인프라에 대한 자원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 이러한, 거대기업 이외의 어떤 것을 돕기 위해 공공자금이 투자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더욱 나쁜 것은 지역에 알맞은 형태의 인프라가 아직까지 남아 있는 곳에서도 그것의 계획적인 파괴가 자행되고 있다.
(예) - 라다크 : 라다크에서 수백년간 지속되었던 인간적인 규모와 지역에 적합한 형태의 인프라는 사람들과 그들의 생태계에는 매우 유익하다.... 그러나 세계화 경제, 산업적인 기준에 맞추어 인프라가 강요됨에 따라 끝내는 망가지고 있다.
성장 맞추기
정부의 자금으로 이루어 지는 인프라 개발은 오랫동안 거대기업의 요구에 부응해왔다. 여기서 예로 든것이 월 마트 -세계에서 가장큰 소매업체- 이다.
'일년 365일 할인' : 통상 월마트는 주간 고속도로망이나 기타 출입제한 고속도로의 간선에 인접한 곳에 점포를 열어 먼 곳의 고객이 보다 쉽게 찾아오도록 만든다. 또 금전 등록기의 레이저 스케너가 상품의 바코드를 읽어 고객들의 계산대 통과를 빠르게 하고, 동시에 8만개에 달하는 판매품목의 재고를 파악한다. 이 컴퓨터는 위성통신을 통해 중앙본부로 판매와 재고를 파악하게 한다.
월마트에서 판매되는 거의 모든 상품들이 공공자금으로 건설된 고속도로를 통해 수 천마일 수송되는 것이다. 사실상 모든고객은 대규모의 공공 고속도로망 덕택에 쉽게 월마트를 이용할 수 있는 것이다.
생산자 역시 원자재와 완성제품을 똑같은 수송 인프라를 이용하여 운송하고, 비슷한 통신망을 통해 흩어져있는 자회사들을 조정한다.
다국적기업의 운영규모에 적합한 경제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산업인프라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이 인프라의 대부분의 부담은 국민이 부담해야 하는 것이다.
중앙집중적인 인프라는 대규모 산업계획의 요구에는 부응하겠지만 현재 지역적인 경제에서 자신들의 필요를 만족시키고 있는 사람들의 생계를 갉아먹을 것이다.
작은 규모 , 인간적인 규모
세계화 경제(기업)들에게는 산업 인프라가 필요하다면, 소규모 경제들에게 필요한 것은 매우 다를 것이다.
사람의 노동력에 더 크게 의존하는 한편 에너지는 적게 소비할 것이다. 통신은 더 이상 우선순위를 차지하지 않을 것이며 지역의 독특한 지식을 축척하고 제공하는데 가장 많은 노력을 기울일 것이다.
정부는 이러한 작은 규모의 선택들의 비용이 훨씬 적게 들어감에도 불구하고 이것들을 계획적으로 무시해왔다. 투자하는 인프라의 종류에 대한 결정도 본질적으로 정치적인 것이다.
사용자 요금의 신화
인프라 개발에 관련한 주장으로 ‘스스로 비용을 치른다’는 것이다. 돈의 대부분이 사용자 요금 -연료세금, 자동차 등록세 등등- 에서 나오기 때문에 이 같은 인프라에 실제로 보조금이 제공되는 것은 아니라는 주장이 흔히 제기 된다.
반론 1. 사용자 요금으로 감당할 수 있는 비용은 기껏해야 직접비용뿐이다. 지구온난화에 따른 장기 비용, 환경피해, 중동지역으로부터 석유를 안정적으로 공급받기 위한 군사지출 등 그 밖의 간접비용은 간단히 무시되고 있다.
반론 2. ‘스스로 비용을 치른다’는 사실이 투자를 통해 사회가 한결 나아진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유곽이나 마약판매점을 정부가 건설해서, 사용자요금을 통해 그 비용을 걷어 들일 수 있다는 것만으로는 투자를 정당화시킬 수 없다.
한 사회의 미래의 모습은 부분적으로는 오늘 어떤 종류의 인프라에 투자하는 가에 달려있다.
시민들은 자신이 원하는 미래에 대해 먼저 결정해야 한다.
제4장 장거리 수송 보조금 (p. 57-70)
(4조 : 고영주, 윤세나, 이성수, 정성헌)
광활한 국토를 가진 미국이 미국경제라는 단 하나의 국가 경제를 이룰 수 있는데 기여한 수송망의 허와 실에 대하여 말을 하자면,,,,,,,
"우리나라는 어디에나 있을 것이오“
첫째로 철도 수송이다.
최초의 철도노선의 대부분은 오로지 지역주민들을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19C 중반 이후 인간과 자연의 관계에 관한 통속적인 계몽주의 태도와 경계 없이 맞물린 정치적이고 상업적인 대륙을 뒤덮은 미국의 명백한 운동으로 미국 각지에 분산된 지역경제들을 단 하나의 국가 경제 통합을 위한 전국을 망라하는 수송망이 필요했다. 그래서 대륙을 가로지르는 철도의 광적인 지지가 시작되었다. 철도사업이 추진되면서 정부에서는 이 막대한 보조금을 제공하게 된다. 미국 최초의 거대사업인 철도는 개별기업이 취한 이익이 아닌 미국 시장의 전체적인 확장이었다. 곧 철도덕분에 광범위한 원자재와 제조품 및 농산품을 한결 빠른 시간에 장거리 운송을 할 수 있게 되었고 시장의 지리적 확장과 함께 기업들의 규모도 팽창되었다. 그러나 이렇듯 미국산업경제가 그 규모가 지리적 범위를 확장하는 동안 무수한 토착문화가 희생되어 그 생활양식의 대부분이 말살되는 단점도 있었다.
길, 길, 길
두 번째는 고속도로망의 건설이다.
1994년 미국 연방정부 관리하의 고속도로가 17만 5천마일, 주 정부관리하의 ‘주요간선’ 도로가 9만 7천마일에 달한다. 1994년의 도로망 유지비용은 550억 달러가 넘었다.
제네럴 모터스에 좋은 것
미국의 도로 대부분이 20C에 들어서 상당기간동안에도 포장되지 않았고 지역 내에서의 매우 짧은 여행에만 적합했다. 또한 전차 노선의 범위가 넓고 신뢰할 수 있어서 대부분의 도시 안에서는 싼값으로 어디나 오고갈 수 있었기에 대다수의 사람들이 자동차의 절대적인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1920년대 중반 이후부터 자동차 관련 기업협회가 이러한 전차노선을 사들여 계획적으로 파괴했다. 이에 대중교통은 점차 체계적으로 불충분한 것이 되어갔으며 자동차는 더 이상 사치품이 아닌 필수품이 되었다. 이렇게 도로교통이 발전하는 과정에 지역교통망의 파괴 등에 대해 고발되는 등 책임을 묻는 소리가 높아졌다. 하지만 도로교통체계의 책임있는 기업들은 겉으로 드러나는 도로교통발전 때문에 크게 책임을 물거나 그러진 않았다. 점점 전국도로 사용자협의회를 포함하여 몇몇 로비단체들의 새 도로의 건설지지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이러한! 노력으로 주정부들의 자금으로 건설되는 도로망 역시 빠르게 늘어났다. 또 도로건설이 가장 큰 후원을 얻은 것은 GM사장(찰스윌슨)이 국방장관에 임명되었을 때이다. 윌슨은 국가안보에 결정적으로 중요하다는 구실로 전국적인 고속도로망의 건설을 끈질기게 요구함으로써 이 같은 자신의 믿음을 실행에 옮겼다. 자동차 운전이 증가할수록 도로건설의 자금은 늘어났고 궁극적으로 운전은 더욱 증가했다. 장거리 철도가 대체로 대규모 기업의 이익에 기여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도로수송체계도 그것을 가장 적극적으로 촉진했던 도로건설 기업과 자동차 회사, 석유회사에 가장 큰 이익을 주었다. 이렇듯 도로건설은 도로가 미국전역에 걸쳐 도시와 쇼핑몰들이 교외로 마구 뻗어나가게 마들고 도시 중심지의 소매상점들에 해를 입히고 건설사업을 살찌우고 자동차 판매를 증가시키고 트럭수송이라는 하나의 산업으로 짐배와 철도를 몰아내고 상품수송 및 배금비용을 급격히 떨어뜨릴 수 있게 된다.
기업과 친한 하늘
세 번째로는 항공수송이다.
국제무역이 증가하면서 항공수송의 중요성도 빠르게 커 갔다. 미국의 항공사들은 다른 덜 산업화된 세계의 대부분 항공사와는 달리 줄곧 민간기업이었다.
그렇지만 이런 항공수송에 필요한 투자에서 납세자들이 큰 비중을 차지했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모든 주요 항공사는 정부자금으로 운영되는 항공교통 관제망에 의존한다. 이것은 기술인프라인데 이런 보조금들은 항공 우주기업들에게 이익을 주고, 모든 주요 항공사에 비행기를 공급한다. 또한 비행조종사를 양성하는 데에도 쓰인다. 공군 조종사 한명을 9년간 양성하는데 590만 달러가 든다고 추산한다.
공항을 키우는 보조금
상업과 기업 및 교통부분에 매달 엄청난 수입을 가져다 줄 것이라는 명목으로 공항을 여는데, 여기에는 엄청난 희생이 요구된다. 큰 기업들에 혜택이 가는 건 당연한 일이고, 문제는 정작 지역 내 수송인프라는 붕괴된다. 뉴욕의 수많은 시민은 일자리가 없고 심지어 집조차 없다.
9만 3,000명에게 자전거를
이런 세계화 경제가 수많은 다양한 지역경제를 황폐하게 만들었다. 일부 지역사회에서는 오래 전에 현대화를 추구하며 내버렸던 수송수단을 다시 살리고 있다. 마차로 지역을 순회하는 쓰레기수거 계약을 한다. 마차는 수입 기름 대신에 지역의 재생가능한 자원인 건초와 귀리를 연료로 사용한다. 거기에서 발생되는 유일한 폐기물인 분뇨도 생물분해되고 게다가 인근농가에서 귀중한 유기비료로 사용 될 수 있어서 오염요소라고는 전혀 없다.
(이렇듯 철도, 도로, 항공수송의 발전으로 경제가 성장하고 모든 면에서 이점이 많지만, 장거리 교역보다 지역경제에 필요한 것에 우선순위를 부여한다면, 그리고 지역에서 필요한 자원을 충분히 활용한다면, 수송체계는 지역마다 크게 다른 모습을 띠게 될 것이다. 장거리 수송의 엄청난 보조금을 적절히 잘 이용하여, 국제경제 수준에 맞는 지역경제를 살려서 균형을 이룰 수 있다면 그것이 더 완벽한 경제성장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제5장 세계화를 전파한다. (p. 71-83)
(5조 : 김미희, 이명훈, 현성호)
현대의 통신네트워크는 사들을 한데 묶는 수단으로서 공공연히 조작되고 있다. 광고들은 전화 덕분에 우정을 돈독하게 유지할 수 있다거나, 텔레비전 타큐멘터리 프로그램이나 인터넷을 통해서 어린이들이 멀리 떨어져있는 곳에 대해서 배운다는 것을 끊임없이 보여준다. 하지만 이러한 것들이 가장 중요한 효과라면 통신네트워크에 수십억 달러의 엄청난 돈이 투자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은, 그것을 통해서 산업경제와 다국적기업 그리고 정부들의 힘이 미치는 범위를 넓힐수 있다는 사실이다.
우주를 무대로
통신 인프라가 대부분 민간 기업의 손아귀에 들어있는 미국 같은 나라에서도 그것의 성장과 확장에 필요한 연구개발비의 상당부분을 국민이 제공해왔다. 이와 관련된 보조금의 원리를 알고자 한다면, 산업국가들이 다양한 우주 프로그램에 쏟아 붓는 돈이 얼마나 엄청난가를 생각해보면 된다. 이러한 프로그램들이 없다면, 궤도를 선회하는 통신위성은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 대표적인 예가 해양발사로 불리는 프로젝트인데, 적도에 설치된 석유시추 플랫폼을 개조한 시설에서 위성을 발사한다는 계획이다.
지구 주위를 도는 상업위성은 1996년 말에 이미 200개에 다가섰다. 그러나 세계의 거대한 통신회사들은 앞으로 몇 년 안에 그 수를 1,000개 이상으로 늘릴 계획이다.
기업을 위한 방송전파 관리
정부들은 또한 기업이 주도하는 통신사업이 번창 할 수 있는 규제 환경도 만들어 놓았다. FCC(연방통신위원회)는 대부분의 관리 기관과 마찬가지로 크고 세계적인 것에 심하게 치우쳐있다. 예를 들어 FCC의 규정은 100와트 이하 출력의 라디오 방송국을 금지하고 있다. 이같은 꼬마 라디오방송국이 비용이 적게 드는 탈 중앙의 지역위주 방송에 더없이 적합하지만, FCC는 기업광고가 계속해서 전파를 지배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 무슨 짓이든 해왔다.
FCC는 지역의 작은 비영리 방송은 금지하지만, 이들을 몰아낼 권리를 거대한 방송회사 들에게 주기 위해서 온갖 짓을 다한다. 모든 상업 텔레비전방송국은 2002년까지 디지털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고 규정한 FCC는 적어도 350개에 이르는 방송국이 높이 300미터에서 600미터에 이르는 통신탑들을 새로 세워야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러한 탑이 세워질 예정인 많은 지역사회가 격렬하게 반대하고 있는 것은 당연하다. 이에 대응하여 FCC는 통신회사들이 자신이 원하는 곳에 통신탑을 세울 수 있는 권리를 지역의 기획 및 개발위원회들이 제한할 수 없게 만드는 규칙의 제정을 고려하고 있다.
공익이냐 상업적 이익이냐?
라디오방송 초기에는 방송전파가 상업적으로 사용되어야 하느냐, 아니면 공익을 위한 사용으로 제한되어야 하느냐를 놓고 건전한 공개 논쟁이 벌어지곤 했다. 문론 기업들의 궁극적인 승리가 굳어졌다. 최근 미국 의회에서 통과된 법령은 통신 산업에 대한 모든 규제를 사실상 철폐하고 통신 인프라가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공익이 아니라 시장이 결정하도록 허락함으로써 기업들의 승리를 확인시켜주었다. 미디어 전문가 로버트 맥체스니는 이법이 현재세대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연방법의 하나로 간주되고 있다고 말했다.
기업과 통신 인프라
작은 사업체에게는 대륙간 즉시 통신능력이 거의 필요치 않다. 하지만 널리 퍼져 있는 사업들을 중앙에서 빈틈없이 통제해야 하는 거대한 다국적기업에게는 전세계를 엮는 첨단의 통신 인프라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모든 다국적기업은 본부에서 내린 결정을 많은 나라에 흩어져 있는 자회사와 지점에 전달해야 하며 자본을 신속하게 이리저리 옮겨야 한다.
위성 통신망에 연결된 고속컴퓨터는 은행, 금융서비스회사, 통화 투기꾼 및 그 밖의 세계적인 투자자들이 컴퓨터 키 하나를 누름으로써 거대한 자본을 이 대륙에서 저 대륙으로 옮길 수 있게 해준다.
그러나 작은 상점 주인이나 작은 가족농 혹은 지역시장을 상대하는 생산자에게는 그처럼 고도로 발달한 통신 인프라는 필요치 않다. 이들은 오히려 인프라를 이용할 수 있는 사업체들에 의해 생계를 위협받고 있다.
이것은 하나의 문화 전체가 겪는 것이기도 하다. 치아파스에서 동티모르에 이르기까지 작은 지역경제들은 세계화 경제에서 좀더 나은 위치를 차지하고, 국민의 생활을 더욱 획일화시키고, 세계시장을 위한 생산에 더 많은 토지를 투입하려고 애쓰는 정부들에 의해서 위협 받고있다.
세계여 노래하라(기업의 장단에 맞추어)
세계적인 통신망은 또 다른 이유에서 기업에게 매우 중요하다. 기업들이 지구 구석구석의 수많은 사람들에게 밤낮으로 광고방송을 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광고는 그 자체로서 산업경제 팽창의 산물이다. 그러나 최대 구매량이 수천 개에 지나지 않는 시장에서만 팔릴 수많은 품목을 대량생산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이리하여 기업가들은 제품을 팔 시장을 크게 확장해야만 했다. 이것은 부분적으로는 작은 지역경제들을 합병하여 훨씬 더 큰 것들로 만듦으로써 이루어질 수 있었는데, 이미 팽창 중이던 수송 인프라에 힘입어 가능했다.
광고는 또한 산업이 대중의 이데올로기와 세계관을 광범위하게 변화시킬 수 있게 해주었다. 갈수록 광고의 기교는 발전하고 효과는 커졌으며, 그것이 미치는 범위는 넓어졌다. 미국인은 하루 평균 1만 6,000개의 광고에 노출된다고 한다.
그러나 실로 소비주의가 미국 천체를 뒤덮는 데는 한 세대도 걸리지 않았다. 현대의 삶이 가져다준 서글픈 기적의 하나는 어린이와 십대 청소년, 성인을 가릴 것 없이 기업의 로고가 노골적으로 새겨진 옷을 입음으로써 자기 정체성을 표현하고자 한다는 것이다.
소비주의의 전파
오늘날 텔레비전은 개인의 욕구를 가장 효과적으로 조작할 수 있는 매체이다. 그리고 각 기업주들은 광고를 통해 어린아이한테도 그 영향을 미치려고 애를 쓴다. 즉 텔레비전은 똑같은 이미지를 수백만 명의 머리속에 주입할 수 있는 능력을 통해 사람들의 시각과 지식, 취향, 욕망을 균질화시켜 이미지를 전파하는 자들의 취향 및 관심사와 닮은 것으로 만들 수 있다.
우리가 사는 이 세계에서 이미지의 전파자는 바로 기업들이다. 그리고 위성통신은 최근까지도 이러한 공격에서 벗어나 있던 지구 구석구석까지 텔레비전의 위력에 굴복시키는 과학기술 장치다. 텔레비전의 노골적인 광고방송만이 이처럼 멀리 떨어져 있는 지역들을 공격하는데 매우 효과적인 것은 아니다. 소비문화 또는 광고들 사이사이에 보여지는 광고, 영화, 대중가요, 잡지, 만화, 및 그 밖의 미디어를 통해서 만들어지는 사고방식 혹은 생활양식으로 다른 이들의 생활에 손쉽게 침투하여 시장 확장을 위하여 취향을 균일화 시키고자 기업들은 미디어의 위력을 이용한다. 미국의 MTV나 CNN 혹은 베이워치 같은 인기프로그램이 사람들에게 잘못된 생각을 심어주고 기업이 원하는 욕망으로 사람들을 인도한다.
텔레비전의 보급은 인종, 문화, 출신 구분없이 이처럼 많은 사람에게 똑같은 것을 원하게끔 기업들의 메시지를 간접적으로 주입시키고 위성통신은 위성방송이나 유선방송으로 문화를 접하기 힘들던 지구촌 오지까지도 광고를 볼수 있거나 미디어를 접할수 있게끔 그 활동영역을 넓혀 새로운 소비자 시장을 창출하고 있다. 근래에 급속도로 보급이 되고 있는 인터넷이 사람에 의해서 그리고 사람을 위해서 운영되는 세계적 매체가 될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은 다시 생각해야 한다. 아마 머지않아 인터넷이 최고의 광고매체가 될지 모른다.
장사를 위한 언론의 자유
오늘날의 현대적 통신 인프라는 정부, 군대, 금융계와 기업들의 필요에 맞추어 건설되었지만, 정작 그것이 미치는 범위를 제한하는 것은 흔히 '개인의' 권리에 대한 도전으로 간주된다. 이처럼 뒤틀린 논리를 통해 광고는 '언론의 자유'가 되어 버리고 제 3세계에 무차별적으로 퍼부어 문화를 오염시키는 것이 '자유로운 정보의 흐름'으로 간주되고 휴대전화, 팩스, 호출기 등에 얽매인 사람들이 '편리한 현대생활'의 본보기로 묘사된다. 같은 논리에 의해서, 흔히 순전한 개인의 결정에 의한 선택이 가능한 것으로 간주된다. 어떤 면에선 분명히 개인 차원의 결정도 있어야 하지만, 다른 면에서는 공공정책이 진정한 선택의 기회를 전혀 갖지 못하게 되는 변화를 대중에게 강요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산업모델을 얼마나 신뢰하고 있는가? 기업은 방송 주파수역을 이용할 수 있는 절대적인 권리를 갖고 있는가? 통신위성을 어디에나 띄울 수 있는 권리를 그들에게 주어야 하는가? 개인들에게 기업들의 광고방송 금지를 선언할 수 있는 권리가 있는가? 이러한 물음에 대한 답은 우리가 만들어갈 세계의 본질과 깊은 관계를 갖고 있다.
제6장 에너지를 찾아서 (p. 85-98)
(6조 : 김남홍, 윤장섭, 한고은)
매년 태양은 인류가 현재 사용하고 있는 것의 1만 5000배에 달하는 에너지를 지구에 퍼붓는다. 상당 부분이 반사되어 우주로 되돌아가지만 나머지는 태양에너지 자체로 직접 공급되는 것은 물론 광합성과 물의 순환 및 기후체계를 작동시키고 그럼으로써 풍력과 수력, 바이오매스 연료, 사람의 식량과 축력같은 재생가능한 에너지 공급원들을 만들어 낸다.
만약 인간의 에너지 수요가 대체로 주택의 조명과 난방, 작은 농장과 제조설비에 필요한 동력의 제공 같은 것에 국한된다면 아마도 다양하고 탈중심적인 재생가능한 에너지공급원들로 충분할 것이다. 사실상 화석연료 시대에 들어서기 전 만해도 어디에서나 그랬다. 일찍이 유럽의 전원에는 물을 퍼올리고 여러 농사일에 이용된 풍차가 점점이 들어서 있었다. 이러한 경제들에서 에너지의 수요는 공급만큼이나 분산되어 있었고, 지역에서 얻을 수 있는 에너지로 그 대부분을 감당할 수 있을 만큼 작았다. 그러나 산업화된 경제는 그보다 엄청나게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국제무역과 장거리 운송에는 무수한 수송수단이 동원되는데 트럭, 기차, 선박, 비행기 등 모든 것들이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실로 산업경제 들어서 수송은 가장 에너지 집약적인 부문이다. 산업경제들의 경우 사용할 수 있는 에너지의 종류가 훨씬 더 제한되어 있다. 결국 도시들은 화석 연료나 핵에너지 또는 수력을 배급이 용이한 전기로 전환시키는 집중화된 발전소들에 크게 의존할 수밖에 없다.
재생가능 에너지는 전세계에 다양한 형태로 비교적 고르게 분포되어 있다. 그러나 산업화와 도시화에 필요한 형태의 에너지는 매우 불균등하게 분포되어 있다. 이것이 국제적 분쟁의 두드러진 원인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엄청난 규모의 에너지 무역을 가져왔다.
화석연료 보조금
산업경제들이 팽창하고 남쪽 국가들이 '개발'됨에 따라 세계의 에너지 사용량은 꾸준히 증가해 왔다. 1996년 석유와 천연가스 그리고 석탄의 사용량이 모두 최고치를 경신했고 산업화의 길을 걷고있는 나라에서 GDP의 증가와 에너지소비 증가의 상관관계는 자명하다. 수송이나 통신과 마찬가지로 에너지는 산업화와 관련하여 빼놓을 수 없는 요소이기 때문에 많은 나라가 에너지 인프라의 상당부분을 공공자금으로 건설해 왔다. 그리고 거의 모든 제3세계 국가들의 에너지 인프라는 정부에 의해 지배되고 있다.
미국의 경우 에너지부문이 대체로 인간 기업들에 의해 운영되고 있지만, 이들 기업이 이익을 남기고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엄청난 보조금을 제공해왔다. 미국의 석유회사들은 해외민간투자협회를 통해서 궁극적으로 납세자들의 부담으로 그들의 해외활동에 따르는 위험으로부터 보호받고 있는가하면, 나아가서 미국 군대는 석유가 풍부한 지역에서 미국의 이익에 우호적인 정권이 권력을 잡고 유지할 수 있도록 이끎으로서 기업의 위험부담을 최소화시키고 있다. 그러나 때로는 외부화된 비용이 그보다 훨씬 더 크다. 걸프전은 쿠웨이트와 사우디 아라비아의 유전으로부터 필요한 에너지를 지속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게 하기 위한 싸움이었는데 작전을 위해 지출한 직접비용만 해도 600억달러가 넘었고 이런 군사적 비용은 석유가격에 조금도 반영되지 않는다.
다른 에너지원에 대한 보조금.
미국 정부는 석유산업뿐만 아니라 다른 에너지 보조금을 제공하고 있다. 현재 미국에서 판매되는 전기의 대략 4분의 1을 정부기관이나 협동조합들이 공급하는데, 이들 생산자들에게 제공되는 간접적인 보조금이 연간 22억달러에 달한다. '좌초비용', 이는 산업규제의 철폐가 진행됨에 따라 납세자와 소비자에게 전가될 것으로 보인다. 연방정부가 집중화된 에너지 인프라에 보조금을 제공하는 또 다른 방식은 에너지 생산을 위한 공유지 이용을 보장해주는 것이다. 1993년 한 해에만 1억 2,500만 배럴의 석유와 1조 7,000억입방피트의 가스가 연방정부 소유지에서 생산되었다.
미국정부는 에너지부가 추진하는 25억달러 규모의 청정석탄 기술 사업과 국립과학재단에서 국방부에 이르기까지 정부기관들도 석탄산업을 위한 연구를 지원했다. 1989년 한 해만 1억 3,800만달러를 제공했다. 또한 지표채광에 따른 피해를 줄이기 위해 연간 8억달러에 달하는 공공비용이 지출되고 있다. 이러한 보조금에는 석탄의 채굴과 석탄을 태움으로써 발생하는 비용도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 1977년까지만 해도 광산업자들은 환경을 원래대로 되돌려놓는 것과 관련하여 아무런 요구도 받지 않았고, 그에 따라 환경이 많이 파괴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비용들은 석탄가격에 하나도 포함되어 있지 않았고, 그것들이 포함된다면 석탄가격은 현재의 10배로 치솟을 것이다.
원자력산업 - 숨겨진 비용들
산업 에너지원들 가운데 원자력발전이야말로 정부 지원의 가장 직접적인 산물이다.
2차대전중 맨해튼 프로젝트의 원자폭탄 연구에서 태어난 원자력은 미국 원자력위원회(AEC)가 그것의 상업적 응용을 촉진하기 위해 힘을 쏟기 시작한 1950년대까지만 해도 군대의 손아귀에 있었다. "1950년대부터 70년대 초까지 연방정부의 가장 크고 가장 중요한 에너지 프로젝트"로 추진된 것은 AEC의 노력과 함께 원자력이 미국 에너지정책에서 높은 순위를 차지한 때부터이다. 이후 민간기업들이 원자력 연구에 참여시키기 하기 위해 미국 정부가 지원을 계속했다.
그러나 원자력에 대한 보조금이 항상 직접적인 것은 아니다. 이는 원자력 사고 발생시 그 처리비용이 크기 때문이다. 미국은 1959년에 프라이스-앤더슨 법을 제정하여 원자력발전사업체들이 져야하는 책임의 최대 한계를 정함으로써 그들의 부담하는 보험료를 크게 줄여주었다. 미국 연방정부는 원자력 사고에 대한 진정한 해결책이 아직 없음에도 불구하고 방사성 폐기물이 "안전하게" 처리될 것임을 보장하는 책임도 떠맡고 있다. 방사성 폐기물을 처리할 적절한 방법이 없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그러나 전 세계적으로 약 460기의 상업발전 원자로가 건설되었고, 정부는 37기의 원자력발전소 건설계약을 맺었다.
세계적으로 원자력발전에 대한 정부의 지원은 재생가능한 태양열 온수기 같은 에너지에 주는 보잘 것 없는 보조금과는 큰 대조를 이룬다. 이는 원자력이 대규모 산업경제의 요구를 만족시키는 에너지원이기 때문이다.
개발을 위한 에너지
남쪽의 국가들이 산업화를 위해 부정적인 영향에도 불구하고 에너지 프로젝트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 한예로 한국은 세계적으로 원자력발전소 건설을 주도하고 있는 국가의 하나인데, 이미 11개가 가동되고 있고 9개가 건설중이다. 그러나 이처럼 원자력 중심의 에너지 정책을 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정부는 방사성 폐기물을 처리할 적당한 장소를 찾지 못하고 있다.
에너지 프로젝트의 부정적인 영향중 하나는 인근 주민들의 삶과 생계를 파괴한다는 것이다 -주민의 상당수는 삶터에서 영원히 쫓겨나 그들 나라에서 산업 난민으로 떠돌 것이다. 대부분의 에너지 프로젝트는 대도시들을 위한 것이다. 결국 시골사람들은 그들의 생활수단을 빼앗는 개발사업들에 의해 도시로 내몰리고 또한 전기가 있어야만 지탱되는 기술의 활기로 가득찬 도시생활에 유혹되어 도시로 몰려든다.
또한, 프로젝트들은 주변의 생태계에 돌이킬 수 없는 손상을 입힌다. 큰 댐들의 기대수명은 비교적 짧지만, 그것들이 하천 생태계에 입히는 피해는 영구적이다. 그리고 원자력발전소들은 수천년 동안이나 위험한 방사성 폐기물을 만들어내며, 전세계 생태계에 방사성 입자들을 방출한다.
마지막으로 에너지 프로젝트는 가정과 지역공동체를 붕괴시키고 범죄, 폭력, 경쟁 및 인종분쟁의 증가를 가져오고 있다. 게다가 소비수준의 상승은 지구온난화를 야기하는 화석연료의 소비 증가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방향 전환-부드러운 에너지 길
막대한 양의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산업체계는 갈수록 중앙집중화 되고 있다. 집중화된 에너지 공급원들에 대한 지원을 중단하고 재생가능 에너지원들의 개발에 힘을 쏟으려는 변화가 일어나려면 먼저 미래에 대한 정책입안자들의 비전이 바뀌어야만 한다. 그리고 문제의 근본 원인들을 찾아내지 않는 한 영구적인 해결은 불가능하다. 마지막으로 재생가능 에너지장려 전략들은 산업 '개발'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노력, 그리고 세계화 경제에 대한 의존 대신에 자립을 추구하는 노력과 함께 나아갈 때 가장 성공적일 수 있다.
제7장 세계화 시장에 봉사하기 위한 배움 (p. 99-115)
(7조 : 강은희, 박영민, 연제율)
대중은 특히 교육 투자에 갈채를 보내고 있고, 교육은 사회복지에 더없이 중요한 것으로 간주되고 있다. 현대사회가 교육에 중요성을 부여한다며, 그 기능이 무엇인가를 묻는 것이 합당할 것이다.
우선 현대 교육체계는 어린이들이 닮은꼴이 되게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는 균질로이다. 인류학자 마거릿 미드는 교육을 "새로 태어난 개인을 특정 인간사회의 완전한 구성원으로 탈바꿈시키는 문화적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여기서 '특정' 인간사회라고 한 점이 매우 중요한데 이것은 각 사회에 적합한 교육은 당연히 서로 다를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단 하나의 사회모델이 지구의 모든 곳에 강요되고 있고 누구에게나 맞게 만든 속옷 같은 교육과정이 획일적으로 적용된다. 웬델 벨리의 말대로 학교를 "공항이나 모텔과 같이 점점 더 서로 닮아가는 기관"으로 만드는 것이다.
이것은 제3세계에서 특히 더 파괴적이고 수세기에 걸쳐 축적된 지역 고유의 지식을 지워버린다.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는 아이들이 부모나 조부모로부터 그들 특유의 환경에서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는 라다크의 전통교육을 이렇게 설명했다. "교육은 지역마다 특수한 것이었으며 살아있는 세계와 친밀한 관계를 맺어주고 나이가 들어서 자원을 효과적으로 그리고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사용할 수 있게 한 직관적인 깨달음을 아이들에게 주었다."
반면에 현대화는 아주 다른 형태의 교육을 가져왔다. "현대적 학교교육은 눈가리개의 역할을 하고 라다크의 것은 거의 아무것도 없다." 현대의 학교교육은 세대에서 세대로 전해온 지식의 연결고리를 끊어버리지만 기업들의 필요에는 잘 들어맞는다.
산업주의 세계관 배우기
전세계 어린이를 획일화시키는 것은 산업주의 세계관으로 물들인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세계관은 경험적 '사실'에 높은 가치를 부여한다. 데이비드 오어는 "셀 수 없는 것은 가치가 없었다."라고 말한다. 이 같은 것은 자연을 물리학 법칙에 종속되어 되는 대로 상호작용하는 물질 덩어리들로 전락시킨다. 자연은 오직 사람에게 어떤 쓸모가 있는가에 의해 평가받는다. 이것은 계몽주의적 태도이다. 과학 교육계의 베이컨 이데올로기의 계승자들은 그 목표를 오늘날에도 추구하고 있다.
현대적 세계관을 견지하는 교육은 따로따로 분리되었고 겉보기는 독립적인 학문들로 나뉘어 있다. 문제들은 각기 고립된 증상으로 보인다. 그리고 근본 원인들은 감추어진다. 에드워드 골드스미스는 이렇게 주장한다. "현대사상의 세계관은 자연세계의 파괴를 가져오고 있다." 조각난 좁은 시각은 개인들이 그들 자신의 행동의 결과와 맞서는 것을 회피할 수 있게 만들고 자신들이 하는 일의 광범위한 영향을 보지 못할 수 있다.
과학기술에 대한 사랑 배우기
현대 교육체계는 또한 존립가능한 사회는 반드시 산업모델에 바탕을 두어야 한다는 믿음을 강화시킨다. 산업모델은 근본적인 결함들을 갖고 있지만, 그것이 과연 '정상인가 '하는 의문이 교육체계에 의해 제기되는 경우는 아주 드물다. “자신에게는 정상으로 보이는 것이, 인류가 지구에서 축적해온 경험에 비추어 볼 때는 전형에서 크게 벗어나 있다는 생각이 많은 학자들에게는 전혀 떠오르지 않는다."
현대교육은 생물권의 작용보다 인간중심 과학기술의 작동에 초점을 맞춘다. 그래서 예일대학의 한 경제학자는 “기후는 발전한 산업사회의 경제에는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으므로" 온실효과가 미국에 미치는 영향은 없다고 주장했다. 이렇게 볼 때, 산업화된 국민들이 살아가는 세계는 생물권에 커다란 붕괴가 일어나더라도 거의 알아채지 못할 것이다. 반면 인간중심 과학기술에 붕괴가 일어나면 엄청난 재앙으로 인식될 것이다.
과학기술에 대한 절대적 믿음은 "진보 관념의 맹목적인 수용의 하나로서 교과과정의 거의 모든 부분에 자리잡고 있다." 하지만 기업들 또한 자신들이 지배하는 특정 기술의 호의적인 수용을 이끌기 위해서 교육 인프라를 이용한다. 이것은 특히 미국에서 두드러지고 미국 기업들은 학교들에게 친기업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는 학습재료와 교사용 장비를 무료로 제공한다.
기업경제를 위한 훈련
현대 교육체계의 또 한가지 기능은 기업이 지배하는 세계화 경제 안에서 일자리를 얻을 수 있도록 어린이와 청소년을 준비시키는 것이다. 기업들 역시 자기들이 노동력을 대량생산하기 위해 교육 인프라에 의존한다는 사실을 스스로 인정한다.
많은 국가정부보다 더 부유해진 기업들이 교육 인프라를 자신들의 특정한 필요에 맞출 수 있는 권리를 얻기 위해서 기꺼이 비용을 지불하는 경향이 점차 뚜렷해지고 있다. 기업들은 대학에 의자를 기증하고 건물과 연구시설 건설비용을 부담하며 심지어 자신들의 사업에 유용한 분야의 경우에 학과들의 운영비용을 지원한다.
기업들이 교육체계에 바라는 것은 뚜렷하게 드러난다. "고용주들이 가장 흔하게 구체적으로 요구하는 기능에 대해서 객관적으로 측정하고 평가한다."는 영국의 한 대학졸업자 고용자격 시험은 “업무에 관한 지식"과 “개인의 일하는 방식” 그리고 "컴퓨터 기술", 세 가지에만 초점을 맞춘다. 오늘날의 잘 훈련된 노동자는 지역 생태계에 대해서는 무지해도 상관없지만 컴퓨터기술은 일정 수준에 이르러야 한다.
이 같은 생각 덕분에 산업화된 세계의 어린이들이 컴퓨터단말기 앞에 앉는 나이가 갈수록 낮아지고 있다. 미디어의 호들갑과 일자리에 대한 자신들의 불안에 자극되어, 부모들은 정규 교육체계에 들여보내기도 전에 자녀를 기업의 요구에 맞추기 위해 애쓴다. 물론 모든 어린이가 컴퓨터에 매달려 일하거나 기업왕국을 관리하는 보수좋은 일자리로 나아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기업에게는 저임금의 서비스부문 종사자들도 필요하며 현대 교육체계는 이러한 노동자도 대량생산해낸다.
소비하기 배우기
기업경제는 소비자도 필요로 한다. 그래서 현대 학교교육에서는 어린이들을 그들이 장차 살아갈 소비자세계에 친숙하게 만드는 역할이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다.
현재 많은 학교에서는 기업들의 광고가 복도와 식당, 학교버스, 컴퓨터 스크린 따위를 장식하고 있다. 교실에서 방송되는 상업텔레비전의 부정적인 영향은 광고메시지 자체를 훨씬 넘어선다. 학생 대다수가 학교에서 보았기 때문에 이 프로그램의 광고 상품은 틀림없이 자신들에게 좋은 상품일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연구도 발표되었다. 그것은 텔레비전이 신뢰할 수 있는 정보 제공원이며 실용적인 교육수단이라는 생각을 어린이에게 주입시키기 때문이다. 자기 아이의 생활에서 텔레비전을 제거하고자 하는 학부모는 자녀 또래 아이들의 압력뿐만 아니라 교육기관의 이같은 묵시적인 권장과도 맞서 싸워야 한다.
기업의 '학습 지원'
오늘날 기업들은 교실에서 사용되는 많은 공짜 재료를 '후하게' 제공한다. 이것들은 기업 메시지의 전달수단으로서는 매우 효과적임에 틀림없다. 훨씬 더 교활한 음모가 숨어 있는 경우도 있다. 노동문제에 관한 프록터&갬블의 수업보조자료 '성장에 맞서다'는 본질적으로 어린이들로 하여금 기업 규칙을 사회질서의 박애적인 일부분으로 받아들이도록 부추긴다.
『마케팅 광기 Marketing Madness』의 공동 저자 마이클 제이콥슨과 로리 앤 마주르에 의하면, 산업계 홍보기관들도 비슷한 학습재료를 만들어 배포해왔고 거래 기업을 유혹할 때 목적을 노골적으로 내세운다고 지적한다. 기업들의 이러한 공격에는 취학 전 어린이라고 해서 안전할 수 없고 현대교육은 어린이를 수동적인 소비자이자 노동자인 어른으로 만드는 데 기여한다.
어린이들이 기업경제에서 맡을 역할을 위한 모든 것이 교육체계의 합리작인 기능으로 간주되고 있다. 반면 매우 온건한 환경 프로그램조차 기업이 주도하는 세력의 공격을 받아왔다. 그들은 "환경교육은 학생들에게 자신의 태도를 변화시키고 나아가 사회의 태도를 변화시키도록 분명히 부추기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학생들에게 그렇게 하도록 부추기는 것은 대부분의 학교교육이지 환경교육이 아니다.
지역을 위한 교육으로 되돌아가기
교육체계는 기업의 요구가 아니라 지역사회의 필요에 기여하고, 또한 개인으로 하여금 세계화 경제의 폭좁은 사고를 지닌 전문화된 한 개체가 아니라 다양한 지역경제의 참여자가 될 수 있게 교육하는 체계로 전환할 수 있다. 여기에 필요한 것은 교육의 다양화이다. 즉 지역의 상황을 반영하고, 가까이 있는 자원을 사용해서 지역의 필요를 만족시키는 방법을 가르치는 학교교육을 추구해야 한다.
교육체계의 일부는 매우 간단하게 전환할 수 있다. 여러 학년의 아이들이 함께 공부하는 학급으로 되돌아가는 것이 바람직하고 자택학습을 가로막는 많은 규제를 없애는 것 또한 유익할 것이다. 이러한 전환은 어린이를 지역경제에 중요한 일원으로서 전통과 만나게 할 뿐만 아니라 어릴 때부터 그들에게 책임감을 심어줄 것이다.
산업주의 세계관에 대해 문제를 제거하는 것이 당연하다. 세계관에 기초한 교육체계의 산물은 우주적으로도 골칫거리가 되고 있다. 대신에 인류와 모든 생명체 사이의 뗄 수 없는 관계에 큰 가치를 부여하는 세계관을 심어주는 것이 사람에게나 지구에게나 훨씬 더 유익할 것이다. 하지만 교육은 특정 형태의 사회를 영속시키는 기능을 한다는 것을 고려하면, 사회의 전체 우선순위들은 본질적으로 재조정하지 않고도 교육의 근본적인 변화를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너무나 단순한 사고일 것이다. 존테일러 가토는 현대교육은 어린이가 충분히 책임감 있고 자립적인 성인으로 자라는 것을 허락하지도, 그들의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는 이렇게 덧붙인다. "학교교육을 다시 인간적인 것으로 만들려면, 경제를 다시 인간적인 것으로 만들고 우리의 제국에의 꿈을 버려야 할 것이다."
제8장 연구-누가 씨를 뿌리고 누가 거두는가? (p. 117-128)
(8조 : 김민구, 손정일, 염명섭)
산업의 성장은 부분적으로 끊임없는 기술혁신에 의존한다. 기업의 기술혁신은 공공자금으로 이루어지는 연구에 크게 의존한다. 기술혁신의 근원에 관한 한 최근 미국 보고서는 정부가 주도하는 연구가 "산업 발전의 대들보"임을 증명했다. 이 보고서는 대체로 기업들이 그들의 성장을 밑받침하는 연구를 자신의 힘에 의존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산업국가 정부들은 연구개발 자금의 가장 큰 원천이다. 미국, 일본, 독일 등 7개 국가는 1990년대 초에 연간 1,700억 달러가 넘는 공공자금을 연구개발에 쏟아 부었다. 이 지출의 대부분은 소규모 생산자나 지역에 기반을 둔 경제에 정말로 쓸모 있는 것들을 만들어내기는커녕 농촌의 생활토대를 갉아먹는 기술의 힘을 강화시킨다.
농업과 보건 부문에서는 연구자금의 상당 부분이 생명공학에 집중되고 있다. 미국은 정부가 30억 달러를 쏟아 붓는 인간 게놈 프로젝트 외 공공자금이 제공되는 프로젝트는 이밖에도 많다. 이러한 연구는 궁극적으로 제약 및 농업관련 생명공학 기업들에게 이익을 줄 것이다. 영국은 한 해에만 750만 파운드를 생명공학 연구개발 보조금으로 제공했다. 이는 생명공학자산 프로그램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졌고, 독일은 첨단기술 연구에 엄청난 공공자금을 제공했다. 이와 같이 연구개발에 대한 공공투자는 기업들에게 상당한 이익을 안겨준다. 그것 덕분에 기업은 비용을 거의 들이지 않고 효율성을 향상시키고, 시장성 높은 기술혁신을 이루어낼 수 있다.
돈독한 관계
오늘날 기업의 필요에 맞춰진 많은 연구가 대학캠퍼스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대학은 공공자금으로 수행한 연구의 결시에 대해서 보상받음으로써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둘 수도 있다. 로렌스 솔레이는 약간을 돈을 낸 약 300개의 기업은 MIT의 연구 보고서를 제공받으며, 심포지엄과 세미나에 초대되고 MIT의 능력을 개별적으로 이용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밀위키의 위스콘신대학도 기업들에게 연구결과물을 제공하며, 제품개발에 직접 참여하기도 한다. 이 대학 산업연구의 목적은 "기업 및 산업이 대학의 연구결과를 상업 제품과 공정 및 서비스로 전환시킬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기업들은 때로 그들에게 필요한 연구에 대해 특별 할인가격 이상의 대가를 지불하기도 한다.
하버드대학 의학연구소의 한 연구센터는 그 공간의 절반 가량을 기업들의 사무실 및 연구시설에 할애하고, 이 연구소에서 얻어지는 모든 연구결과들에 대한 특허권을 소유하며, 기업은 그것들을 상업화하는 권리를 얻을 것이다.
유럽의 대학과 기업도 이와 유사하게 얽혀 있지만, 유럽공동체위원회는 이 둘의 관계가 밀접하지는 못하는지 우려하고 있다. 그래서 "새로운 과학적 발견과 기술적 성취를 산업 및 상업적 성공으로 전환시키는데 있어 유럽의 제한된 능력은 아직도 대학과 기업의 결합이 불충분하고, 또한 기업과 대학, 공공기관 사이의 조화된 전략이 부족하다는 사실에서 비롯한다..."고 말한다. 앞으로 유럽은 "대학 실험실로부터 기업으로의 기술이전"을 더 한층 촉진하기 위한 조치를 취할 것이다.
첨단기술, 대규모
이러한 추세가 우려되는 것은 그것이 기업 이익의 또 하나의 보호막을 의미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특히 공공자금으로 탄생되는 과학기술의 근본 특성 때문이다. 대체로 연구 인프라는 거대한 기업의 필요와 목적에만 알맞은 기술을 창조하고, 이로써 사회를 대규모 및 세계화를 향하여 몰아가고 있다.
첨단기술 분야의 응용연구는 거대기업조차 혼자 힘으로는 그 비용을 감당하기 어렵게 되었다-이것은 기술관련 기업 사이에 많은 합병 및 제휴가 이루어지고 있는 이유를 설명해준다. 기술의 규모 확대는 동시에 경제 규모의 확대를 요구한다. 소니의 모리타 아키오 회장은 기업들이 성장곡선을 유지하려면 "발전된 세계 전체를 본질적으로 하나의 거대 시장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이것은 기술의 비중이 갈수록 커지는 제조업 부문에서 특히 분명한데, 제조업의 막대한 투자의 필요를 정당화하려면 시장의 세계화가 반드시 필요하다."라고 덧붙였다.
공공자금으로 이루어지는 연구가 낳는 기술의 주요 수혜자는 기업이다. 고학기술 자체는 기업의 손아귀에 둥지를 틀고, 기업세계에 대한 다른 모든 것의 의존이 심화될수록 그 지배력을 키워간다. 일부 기술혁신은 대규모 경제에 필요한 인프라의 제공에 도움이 된다. 더 효율적이고 더 빠른 수송수단, 더 빠르고 더 믿음직한 통신망, 땅에서 에너지를 빼내는 새로운 방법 따위가 그렇다. 그밖에 제약 및 생물의학 제품이나 농업 화학물질 및 기계류, 건축자재 같은 분야의 연구는 사람들에게 일상적으로 필요한 것들에 대한 기업의 지배를 더욱 강화시킨다.
어떤 연구는 단지 기업이 소비자에게 새 상품을 사도록 부추기는 것을 도울 뿐이다.-그리고 새로운 필요를 창출함으로써 높은 소비수준을 지속시키는 '언제나 새롭게 개선된' 기술의 쳇바퀴에서 한몫을 한다.
소규모 갉아먹기
대부분의 새로운 기술은 작은 사업체를 희생시키고 대규모 사업체에게 이득을 주게 마련이다. 생태경제학자 리처드 더스웨이트는 저서『성장의 환상 The Growth Illusion』에서 인도의 한 작은 마을에 들어온 디젤-전기 관개펌프가 그것에 투자할 돈을 가진 농부에게 어떻데 혜택을 베풀었는지, 전통방법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농부에게 어떻게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입혔는지를 설명했다.
일찍이 산업국가들에서도 이와 비슷한 일들이 벌어졌다. 기계류와 화학물질에 집중된 새로운 기술들은 노동생산성을 향상시켰지만, 소규모 생산자에게 피해를 입혔고 결국 농촌의 활기를 사그라뜨렸다. 예를 들어 버몬트주의 대형 냉장탱크 출현으로 1950년대에 낙농가의 절반이 생산을 포기했고, 1970년대 캘리포니아에서는 토마토 따는 기계가 이와 비슷한 영향을 미쳤다.
무상 토지불하 대학
미국에서 국가 차원의 농업연구 대부분은 무상으로 토지를 불하받은 대학기관들에서 이루어진다. 이들 기관은 특히 소규모 농가와 농촌생활을 튼튼히 하고 돕기 위해 만들어졌다. 이 인프라를 들여다보면 공공자금으로 수행되는 연구들의 영향에 대해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 일련의 법안에 의해 탄생한 무상 토지불하 제도는 농과대학과 시험장, 지원시설 등을 포함한다. 이 제도를 밑받침하는 법령들을 보면, 이것이 농촌의 생활양식과 농촌경제의 유지를 돕기 위한 것임을 분명히 알 수 있다. 이 제도는 "농업부문의 연구를 산업연구와 똑같은 지위에 올려놓음으로써 농업과 다른 경제부문 사이의 공평한 균형의 유지를 보장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또한 "농업 킻 가정경제에 관한 유용하고 실용적인 정보"의 전파를 돕기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 제도는 농업을, 전체생산의 증대와 낱낱의 노동생산성 향상을 첫째 목표로 하는 다른 산업부문과 똑같이 다루었을 뿐이다. 이 제도에서 이루어진 의미 있는 연구와 교육의 대부분은 결국 기술혁신-주로 농기계와 화학물질-에 바쳐졌고, 이로써 농부의 대다수가 잉여노동력으로 전락할 만큼 '효율'을 향상시켰다.
지역경제를 위한 지역의 지식
웬델 베리는 이들 연구기관이 작은 농장과 지역 및 농촌경제를 돕기 위해서 할 수 있는 역할의 일부를 지적했다. 가족 농에 적합한 소규모 기술 및 방법의 개발, 작은 농장을 기업적인 공급자 및 구매자로부터 보호하는 협동조합과 그 밖의 수단의 장려, 몇몇 농산물의 지역시장의 활성화 그리고 이러한 시장을 파괴했던 법규를 뒤집기 위한 활동 등이 그것이다.
농업연구자 잭 클로펜버그와 베스 버로우스는 "사람을 먹여 살리고 농촌사회와 지역경제의 활기를 되찾고 생태계의 안정을 유지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면, 농업연구를 위한 공공자금은 젖소의 순환 방목이나 암만파 농법의 연구 같은 소규모 영농기술 연구에 투입될 것이다."라고 지적한다. 반면에 기업의 성장 필요에 부응하는 것이 첫째 목표라면, 연구자금은 세계의 식량공급을 한층 더 지배할 수 있는 힘을 기업들에게 제공할 유전공학 같은 기술에 바쳐질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생활에 직접 관련된 다른 분야의 연구에도 들어맞는다.
정부의 선택은 분명히 대규모에 치우쳐왔고, 지역환경과 조화를 이룰 수 있는 소규모 기술들에게 상당한 지원이 이루어진 적이 없다. 진정으로 지속 가능한 소규모 영농과 농촌생활전반의 미래에 대해서는 모두 입을 다물고 있다.
제9장 팽창하는 인프라-끝없는 경주 (p. 129-140)
(9조 : 김경래, 김준환, 이식렬)
정부들은 작은 사업체들의 희생 위에서 거대기업들에게 이익을 주는 대규모 인프라를 지원해왔다. 하지만 성장의 규모는 냉혹하며, 현대적인 인프라조차 끊임없이 개선되어야 한다. 미국의 교통부장관 로드니 슬레이터는 5년 동안에 1,750억 달러를 지출할 육상수송 예산을 의회에 제출하면서, 이 엄청난 규모를 귀익은 주장으로 정당화시켰다. “우리의 경제는 빠르게 변화하고 있으므로 우리의 수송체계도 그래야만 합니다. 이제 세계의 시장은 옆집처럼 가깝습니다. 우리는 전세계 시장에 접근하는 수단을 개선함으로써 미국 기업들이 21세기에 번영할 수 있는 토대를 제공할 것입니다. 전세계의 나라들이 수송 인프라에 대규모 투자를 하고 있는데, 종종 미국을 따라잡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기도 합니다. 이 거세지는 도전에 대응하지 못한다면 우리의 경제성장은 느려지고 효율적인 경쟁력은 저하될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는 "전세계 시장에 접근하는 수단을 개선하기"위해 다음과 같은 새로운 인프라 투자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 워싱턴 디씨와 보스턴 사이의 고속철도 서비스를 위한 투자(2억 9천만 달러) : 고속철도체계의 비용을 1마일당 200~3000만 달러로 줄이기 위한 철도수송에 대한 투자.
● 새 공항의 건설과 기존 공항의 개선을 위한 투자(13억 5천만 달러) : 항공기의 구조 및 자재 연구를 위한 투자, 인공위성을 이용한 지리정보시스템을 위한 투자, 영공 관리 체계의 인프라를 현대화하기 위한 투자
● 연방 보조 고속도로 프로그램을 위한 투자(170억 달러) : 주간 및 국제무역 통로 같은 국가적 중요 사업에 주정부를 끌어들이기 위한 투자, 인공지능 수송체계 연구를 위한 투자, 간선도로 보수사업을 위한 투자
● 조선소 현대화 사업을 위한 투자(15억 달러) : 수출선박 건조를 위한 대부보증비용을 포함하는 다양한 무역관련 사업에 대한 투자
경주는 계속된다
슬레이터 장관의 이런 "대규모 투자" 는 유럽연합 국가들을 염두에 둔 것이다. 미국이 그렇듯이, 유럽의 장거리 수송망 역시 정부 보조금 덕분에 이미 고도로 발달해 있다. 예를 들어 영국 정부는 1919년이래 모든 간선도로의 건설비를 부담했고, 수로와 운하, 철도 건설에 막대한 보조금을 제공했다. 그리고 유럽 기업들은 세계화된 시장과 확대된 무역을 위해서 더 빠르고 더 광범위한 수송망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유럽공동체위원회와 각 유럽국가 정부의 의제에서 수송이 높은 우선순위를 차지하게 만들기 영향력을 미쳐왔다.
이러한 기업 로비활동의 대부분은 유럽의 가장 힘센 기업의 최고경영자와 간부로 구성된 유럽 기업가원탁회의(ERT) 맡고 있다. ERT의 노력은 수송망의 개선에 그치지 않고 분리된 국가시장들은 많은 기업이 "비유럽 경쟁자의 압력에 대항하는데 필요한 규모를 성장하지 못하게 가로막는다"는 구실을 내세워 유럽 국가경제들의 완전한 통합을 위해서도 노력했다. ERT의 목표는 북미나 일본의 시장보다 규모가 크고 이로써 세계화 경쟁에서 유럽 기업들에게 우세한 지위를 보장해줄 단일 유럽시장이다. 이 목표를 이루는 수단에는 엄청나게 광범위한 수송망과 통신망, 유럽 국가간의 모든 무역장벽을 제거하기 위해 필요한 정치 및 통화 개혁이 포함된다.
인프라의 추가건설 요구는 "빠진 고리" 라는 보고서에 나타나 있는데, ERT는 유럽 곳곳을 이어주는 수송망을 완성시킬 300억달러 상당의 새 고속도로 및 고속철도 건설을 요청했고 네트워크 디지털 통신시설 고용량 광학섬유네트워크를 포함한 통신 인프라의 확장도 요청했다. ERT의 권고에는 이같은 인프라 투자가 이러어지지 않으면 유럽의 기업들은 산업투자를 세계의 다른 지역으로 돌리 가능성과 함계 기존의 장기적 전략을 다시 생각해야 할지 모른다고 경고하고 있다. 그리고 유럽공동체위원회가 대체로 ERT의 확대 권고를 수용하고 있다.
유럽공동체위원회는 유럽횡단(TEN)의 기본 계획을 마스트리히트조약 안에 짜 넣었다. TEN은 유럽의 기존 수송 인프라 상당 부분과 아울러 철도와 고속도로에서 공항과 천연가스 수송관에 이르는 약 200개의 신규사업을 품고 있다. TEN에는 또한 인공위성을 이용한 유럽 트럭소송용 이동통신망, 유럽의 통일된 항공교통 관세 시스템 그리고 40개가 넘은 에너지 인프라 사업이 포함되어 있다. 통틀어 볼 때TEN은 미국의 주간 고속도로망의 세계 최대의 공공사업으로서의 지위를 위협하는 거대한 사업이다. 그 비용은 15년동안 4,650억달러에서 5,800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유럽연합이 많게는 비용의 10%를 제공하고, 실행가능성 연구와 대부보증 및 금리 보조를 떠맡을 것이다. 일부 최우선 사업의 경우에는 유럽경제공동체의 재정 지원이 전체 비용의 90퍼센트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나머지 사업들은 궁극적으로 국가정부들의 책임이다. 우럽공동체위원회는 대다수 사업이 민간부문에서 나올것으로 주장하지만 가능해 보이지 않는다 TEN이 얼마만큼 실현되든 아마 낡은 방식으로, 즉 공공자금 투입으로 건설될 것이다.
소규모 파괴하기
TEN이 완전히 실현된다면, 대기업의 성장을 도울 뿐만 아니라 대도시의 팽창을 촉진할 것이다. 최우선 사업들의 절반을 차지하는 고속철도망을 예로 보면 고속철도는 소도시들에는 멈추지 않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왜소해진다. 동시에 자원과 일자리 그리고 경제력은 도시화가 심화된 지역에 더 한층 집중된다.
계획되어 있는 다차선의 출입 제한 고속도로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 고속도로의 출구가 만들어지지 않은 소도시나 마을은 상거래에서도 제외될 것이다 새로운 개발은 고속도로 출구 주위에 집중되어 이루어질 것이면 이로써 이 고속도로의 편의를 제공받는 도시들도 도심지의 활력을 잃어버릴 수 있다. 대규모 소매상은 더 먼 곳의 고객을 끌어들일 것이고, 자동차의 의존은 더 커질 것이다. 그리고 이로 인한 교통량의 중가는 새로운 도로의 건설을 가져 올 것이다.
미국 사람들은 이같은 전개를 알고 있다. 자동차문화의 파괴적 영향을 이미 격은 미국의 도시계획가와 환경운동가들은 미국의 스프롤 현상을 조장한 기업 이익에 의해서 유럽에서도 똑같은 일이 벌어지는 놀라움 속에서 바라보고 있다.
정부들의 TEN 투자를 정당화하기 위해 내세워지는 근거는, 경제성장에는 무역이 필요하면 따라서 장거리 수송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같은 성장은 유럽 횡단 무역에 참여할 정도로 규모가 큰 사업체에 주로 제한될 것이다 따라서 작은 지역 사업체들은 아무런 이익을 얻지 못할 것이다.
국가의 주권 및 정체성의 침식은 물론 환경, 권력의 거대기업 집중, 지역경제의 활력 상실 등에 대한 지극히 마땅한 우려는 사람들에게 그들의 진정한 이익은 이러한 인프라 사업들에 의해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일깨워줄 수 있다. 기업의 계획 입안자들은 이것을 알고 있기에 "시민의 컨센서스를 얻기"위해 상당한 힘을 쏟고 있다. ERT의 경우 이같은 노력은 기업의 의제를 지지하는 "권위있는 견해"를 제공해줄 중심세력을 후원하는 것을 뜻한다. 첨단기술로 인해 없어질 일자리에 대한 우려는 유럽공동체위원회는 철저히 무시한다. 어쨋든 산업혁명이 처음 일어났을 때 그랬던 것처럼 기계시대에 관한 설익은 논쟁에 휩싸이는 것은 쓸데없는 일이다. 신기술이 전세계로 퍼져나가는 것은 불가피하다.
이와 같이 환경을 내세워 반대하는 사람들은 전혀 거부권을 인정받을 수 없다고 ERT는 주장한다. 유럽이 근거가 빈약한 거부의 영향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한다면, 환경적인 시민권을 주장하는 자들의 점점 커지는 조직에 대해 변화와 적응, 성장을 지지하는 사람들의 보다 효과적인 조직으로 맞서야 한다.
"변화와 적응 그리고 성장,"이 진화의 언어가 기입에 의해 기업을 위해서 의도적으로 계획된 변화를 옹호하는데 이용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진화보다는 군비경쟁이 더 적적한 비유일 것이다. 유럽의 국가와 시민들은 그들 주권의 포기뿐만 아니라 산업 인프라의 엄청난 확충을 위한 비용의 부담을 강요받고 있다. 그래야만 유럽의 기업들이 세계적인 경쟁에 필요한 규모로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유럽공동체위원회는 미국과 일본 같은 나라를 비교로 내세워 이 엄청난 새로운 투자의 요구를 정당화시킨다. 그리고 싱가포르와 대만, 중국의 일부지역, 아르헨티나 등 최신 기술들을 통합시킨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는 신흥공업 세력들의 위협도 다가오고 있다고 덧붙인다.
모든 곳에 인프라들
인프라 경쟁은 미국과 유럽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오늘날에는 실질적으로 모든 나라가 세계 무역의 촉진을 위해 인프라를 확충해야 한다는 압력을 받고 있다. 제3세계 국가들에서는 산업 인프라의 건설이 그들의 경제가 산업국가의 풍족한 소비문화를 따라갈 수 있는 길로 간주되고 있다.
● 남미(브라질, 아르헨티나, 파라과이, 우루과이, 몰리방) 지배의 운항을 편리하게 하기 위해 2,100마일에 달하는 강줄기를 넓히거나 깊이 파거나 곧게 펴는데 10억달러를 투자하고 있다. 히드로비아 파라과이-파라나로 불리는 이 사업은 세계에서 가장 큰 습지대인 판타날을 위협할 것이다.
● 중국은 많은 에너지 인프라 사업과 더불어 도로 인프라도 확장하고 있다. 예를 들어 세계은행은 진쥬고속도로 건설을 위한 4억 달러 차관을 제공하면서 이 고속도로가 장거리 이동을 향상시키고 무역을 촉진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 인도의 마하라슈트라주는 다하누 탈루카에 거대한 국제항구를 건설하기 위해 호주의 P&O사와 협력하는데 이곳은 생태적을로 파손되기 쉬운 지역으로 인도가 개발에서 제외시킨 세 지역 가운데 하나이므로 분명한 위법 행위이다.
● 인도 정부는 거대한 테리댐 건설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이 댐은 2만 7,000헥타의 질좋은 농경지를 수몰시키고 10만명의 지역주민을 고향에서 몰아낼 것이다.
다볼 전력사업 또한 최우선 사업의 하나인데 이사업은 인근주민들의 생계를 위협한다. 그러나 마쓰씨타와 후지쓰는 공장을 짓고 있다. 그러고 보면 다국적기업들의 에너지 필요가 토착 주민들의 생계보다 더 중요한 것이 분명하다
● 최근 아시아개발은행과 세계은행은 라오스 정부에게 문강의 수력발전댐 건설자금을 빌려 주었다. 이 댐이 이 지역의 생태계와 사화 경제를 해칠 것이라는 연구 결과는 무시되었다.
● 네팔은 거대한 아룬Ⅲ 수력발던댐 사업과 관련하여 세계은행의 지원을 받고 있는데 이 댐은 히마랄야 산맹의 마지막 처녀림 강누데 하나를 위협할 것이다.
이러한 대규모 사업은 거의 모든 인근 지역사회에 해를 입힌다. 인프라 사업은 사회 전체를 볼 때 이롭고, 다만 운 나쁜 몇몇만이 부정적인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 주류를 이루는 시각이다. 그러나 이러한 대규모 사업들은 경제 규모를 크게 팽창시키는 것이 주된 목적이기 때문에, 그것들의 영향이 미치는 모든 지역사외와 지역경제를 서서히 갉아먹는다. 그리고 그것들로 인해 가능해진 소비의 증가는 지구의 환경 부담을 가중시킨다.
불행하게도 지역사회 엘리트와 정부, 기업 그리고 미디어는 살아가는 데 기본적으로 필요한 것들이 세계화 경제의 테두리 안에서만 충족될 수 있다고 사람들을 설득하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이러한 인프라를 요구하는 기업들이 오늘날 초국가적인 존재가 되어 그 비용을 지불하는 국가나 시민들에 대해 아무런 충성의 의무를 지지 않는다는 것은 엄청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지역에 뿌리를 둔 사람들이 뿌리도 없는 기업이 필요로 하는 것을 위해 돈을 내야만 할 때, 그들은 이미 기업들만이 승자가 될 수 있는 경주에 뛰어든 셈이다.
<용어정리>
인프라 : 본래는 하부구조․하부조직 등의 일반적 용어이지만 오늘날에는 경제활동의 기반을 형성하는 시설․제도 등의 의미로 사용된다
스프롤현상 : 도시의 급격한 발전과 지가(地價)의 앙등 등으로 도시 주변이 무질서하게 확대되는 현상.
제10장 게임의 규칙- 자유무역 (p. 141-155)
(10조 : 김기태, 이호희, 장성국)
사실상 모든 나라가 국가경제를 다국적기업의 경영 규모에 맞추고 있다. 이러한 개조와 관련된 숨겨진 보조금에 힘입어 기업들은 그들의 경제적 힘을 엄청나게 키워왔다. 이제 모든 나라는 그들이 아낌없이 성장을 지원했던 바로 그 기업들에게 그들 자신이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일찍이 1994년 브레튼우즈 회의에서 기업의 목표들은 북쪽 국가정부들의 우선과제들과 상당한 부분에서 합쳐졌다. 이 회의에서 체결된 협약으로 인해 세계은행과 국제통화기금 그리고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이 탄생했다. 제3세계의 개발을 산업-소비주의 노선을 따라 장려하는 것이었다.
최근에는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과 GATT의 우르과이라운드 협상 그리고 마스트리히트 조약이 정부와 기업세력의 이 같은 동맹을 강화시켰다. 브레튼우즈에서 만들어진 뼈대에 최근 더해진 것이 현재 기업세력의 중심 구실을 하는 세계무역기구(WTO)이다. 주로 기업계 인물로 구성되는 비선출 무역전문가 집단이 기업의 활동을 제한하는 정부 결정에 대해 무역장벽 이라는 판정을 내릴 경우 WTO는 그러한 정부 결정을 무력화시킬 수 있다. 경제의 세계화 과정의 다음 단계는 다자간투자협정(MAI)으로서 국가경제의 나머지 모든 부문을 다국적기업들에게 개방하는 것이 그 목표이다.
브레튼우즈 기구들과 WTO 그리고 특히 MAI는 사람들 스스로 지역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결정하고 그들이 생각하는 대로 지역사회를 운영할 수 있는 능력을 제거한다는 분명한 목적을 갖고 있다. 이들이 일단 자리를 잡으면서 지역법규와 심지어 국가법률도 점점 더 국제상업의 요구에 따르는 종속적인 지위에 놓일 것이다. 기업의 행동규칙 이 세계 전체를 통치하는 법칙이 될 것이다.
기업에 대한 의존
정부들은 오랫동안 경제의 활력은 대규모 산업의 성장에 달려 있다는 믿음에서 행동해왔다. 이 믿음이 가장 극적으로 나타난 곳은 국가가 사실상 모든 산업을 관리하고 지원해온 공산주의 세계였지만, 자유시장 국가들도 그와 유사하게 산업 지원을 중요하게 생각했는데, 기업 자체가 대부분 민간의 손아귀에 있을 때에도 그랬다.
공산주의 세계 바깥의 많은 나라는 산업발전에 극히 중요한 분야 -에너지, 수송, 통신, 선진기술 등-의 기업을 직접 소유함으로써 이 같은 정부와 기업의 결합을 공식화했다. 기업들의 전체 혹은 일부가 국가에서 소유하지 않았을 때도 정부가 대규모 산업을 위해서 개입하는 것은 오랜 관행이었다.
그러한 자원이 자유기업들의 게임규칙에 위배되는 것임에도 그랬다. 존 케네스 갤브레이스는 25년 전에 이미 이것들을 지적했다. 기업이라는 존재의 전통적인 이미지에서는, 개념적으로 매우 명확하고 심지어는 변치 않는 하나의 경계가 기업과 국가를 갈라놓는다. 정부가 있고, 민간기업이 있다. 이 둘은 마주치지 않는다. 부자연스러움을 잘 직감하는 사람들만이 대부분의 사업에 있어서 정부와 거래하고, 정부 소유의 시설을 두루두루 사용하고, 정부로부터 운전자본을 제공받고, 초과비용을 정부가 알아서 사회에 떠넘겨주는 록히드나 제너럴 다이내믹스 같은 회사는 도저히 순순한 민간기업이랄 수 없다는 생각을 한다. 초국가적인 기구들도 대규모를 지향하고 보조한다.
예컨대 세계은행의 자금제공은 체계적으로 대규모 사업에 치우쳐 있다.
세계화 경제가 카드로 짓는 집처럼 위태롭게 커짐에 따라 IMF는 그것이 흔들거릴 때마다 받쳐주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 그래서 자유무역과 시장 자유화 그리고 첨단기술이 맞물려 1998년에 태국, 한국, 인도네시아, 러시아를 순식간에 집어삼키고 (연이어 전 세계 주식시장을 혼란에 빠뜨린) 경제위기를 가져왔을 때 수십억 달러의 IMF자금이 긴급 투입되었다. 이 자금은 여러 나라의 국고로부터 나온 것으로, 궁극적으로는 납세자의 호주머니에서 나왔다. 이로써 국제시장에서 활약하는 은행과 기업 그리고 투기꾼들이 구제받았다.
기업을 살찌울 더 푸른 초원
기업들은 정부의 지원 덕택에 살쪄왔지만, 그들의 예법에 충절이라는 덕목은 없다. 무역규칙은 기업들이 생산기반을 이 나라에서 저 나라로 마음대로 옮길 수 있는 권한을 부여했고, 그들은 어떤 진정한 의미에서도 더 이상 국가적 인 존재가 아니다. 낮은 임금과 느슨한 환경법규 그리고 더 많은 보조금을 찾아서 세계를 누비는 무리일 뿐이다.
자유무역 규칙에 의해 야기되는 이러한 밑바닥을 향한 경주는 지역에 뿌리를 둔 작은 기업보다 대규모 기업에게 훨씬 더 유리하다. 정부들은 그들에게 막대한 보조금을 제공한다. 하지만 작은 상점과 소규모 농장, 지역 생산자들을 그만큼 지원하는 정부는 어디에도 없다. 대기업들에게 주어지는 보조금과 세금특혜는 나머지 모든 사람들의 세금 부담을 가중시킨다.
열려라 시장
자유무역 규칙은 기업들이 판단하기에 가장 유리한 곳이면 어디에나 생산설비를 세울 수 있게 해주었을 뿐만 아니라 세계 어느 곳에서든 판매활동을 할 수 있게 해주었다.
미국의 정부관리들은 무역장벽 철폐라는 구호 아래 미국 담배회사들한테 아시아의 시장을 비집어 열어주기 위해서 10년 넘게 힘을 쏟았다. 그 결과. 일본, 한국 시장을 강제로 개방시켰고 대만,태국. 중국의 시장도 열렸다.
보스턴에 자리한 한 연구기관의 발표에 따르면, 1991년에 이르러 자유무역을 내세운 미국 정부의 덕분에 이들 아시아 국가에서의 미국산 담배의 판매량이 600퍼센트 증가했다.
기업규제하기
최근의 자유무역 협정들은 다국적기업의 이익을 위해서 국가법이나 국제법을 고쳐 써온 추세를 보여주는, 아마도 가장 터무니없는 예일 것이다. 공공정책에 필요한 가장 중요하고 가장 건설적인 잔환은 말할 것도 없이 이들 협정을 다시 협의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번에는 기업의 이익이 아니라 국민과 환경의 이익을 맨 앞에 내세워야 할 것이다.
세계적으로 통합된 경제체제가 기업들에게 제공하나는 엄청난 힘을 승인하면서도 기업들은 ‘ 제’ 하려고 한다. 불행하게도 이러한 접근은 실제로는 기업 의제의 진전을 거들고 있다. 그것은 사람들을 달래어 기업의 헤게모니를 지향한피할 수 없는추세에 맞서서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한편,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역사회와 환경은 보호될 것이라고 거짓 안심시킨다. 이것은 NAFTA의 경우에서 분명히 드러났다. NAFTA의 목표는 북미의 더 많은 사람들을 산업-소비주의 울타리에 끌어들이고, 그럼으로써 국제무역에 참여할 만큼 큰 기업들에게 시장을 넓혀주자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환경단체는 기업의 환경관련 행동을 감시하고
규제한다는 몇 가지곁다리 합의가 추가되자 NAFTA를 지지했다.
이제 경제의 세계화를 전제로 받아들이고 (실직자재교육 프로그램이나 환경관련 곁다리 합의또는 다국적기업 공장의 작업환경에 대한 외부감시자’를 통해서) 그것이 미칠 최악의 영향을 누그뜨리기 위해서 애쓰는 대신에 법규 자체를 다시 써야 할 때다.
제11장 많은 규제, 작은 효과 (P. 157-172)
(11조 : 구자영, 김광우, 박순애, )
전체적으로 볼 때, 환경 규제들은 대체로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1995년 워싱턴의경제 및 안전보장 대안센터의 연구결과를 보면 지난 25년간의 규제에도 불구하고 9개의 산업국가 모두의 환경 건강이 악화되었음을 보여주었다. 자유무역 규칙이 기업들에게 적합한 어느 곳이든 생산설비를 세울 수 있는 폭넓은 자유를 부여함에 따라 북쪽 나라들의 강력한 규제는 많은 극심한 오염산업이 남쪽 나라들로 이전하는 결과를 낳았다. 이들 산업은 북쪽의 시민의 눈이나 관리기관의 힘이 미치지 않는 곳으로 옮겨갔다.
북쪽 국가들의 규제 시스템을 신뢰하는 사람들은 제3세계에서 개발'이 방해받지 않고 진행된다면, 단기적으로 상황이 악화되고 소수의 불행한 문화는 파괴된다고 하더라도 궁극적으로는 제3세계 국가들도 북쪽 국가들처럼 엄격한 환경기준을 제정하고 집행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아무리 강력한 규제를 실시한다고 해도 제3세계의 산업화가 미칠 전체적인 영향을 감당할 수는 없다. 예를 한가지 들면 중국의 경우 자동차 생산을 1994년 140만대에서 2000년까지 300만대로 늘리고, 베트남은 자동차 수입량을 늘리는 등 아시아 전체에서 개인승용차를 강조하는 교통체계로의 전환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물론 이러한 전환은 정부의 정책과 공공 보조금에 의해서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촉진되고 있다. 개인승용차가 늘어남에 따라 정부는 그에 따른 환경 피해를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엄격한 규정을 만들 것이다. 그리고 세계의 산업-소비체계의 주도자들은 자기들의 성장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다른 어느 곳에선가 자동차시장을 확대하려고 애쓸 것이다.
가능한 가장 강력한 규제를 전제한다고 해도, 산업화가 환경에 유익하다는 주장은 어떤 고도의 심리적 책략 내지는 속임수를 필요로 한다. 또한 지구가 관연 제3세계가 산업-소비주의의 길을 따라 발전할 수 있는 충분한 자원을 갖고 있는가 하는 문제를 애당초 회피하려면 교활함도 필요하다.
규제의 신화
미국의 경우 연간 예산이 10억 달러가 넘는 식품의약국과 60억 달러가 넘는 환경보호청의 존재가 대다수 미국인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건강과 국가의 환경이 충분히 보호받고 있다는 확신을 갖게 한다.
환경연구재단의 피터 몬테규의 연구결과 의하면 미국에서는 약 7만 종류의 화학물질이 사용되고 있으며, 새로운 기술이 해마다 1,000종이 넘는 화학물질을 상업시장에 선보이고 있는데 사람들의 대부분은 정부가 이모든 화학물질의 안전성을 시험한다고 생각하지만, 1년에 불과 25종의 화학물질에 대해서 발암가능성에 대해서만 검사하고 나머지 부분에 대해서는 무시된다. 더구나 두세 가지의 일반 살충제를 혼합하여 사용하더라도 인간 건강의 피해가 어느 한가지를 사용했을 때보다 무려 1,600배 증가한다는 사실을 밝혀졌음에도 불구하고 각각의 화학물질을 개별적으로 조사한다.
이러한 제약들을 고려하면 NTP가 21년 동안에 겨우 9종의 화학물질을 시장에서 제거했다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결국 그 어떤 기관도 해마다 쏟아져 나오는 1,000종의 새로운 화학물질의 위험성을 제대로 평가할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지 못하다. 이러한 화학물질을 혼합하고 개별적으로 검사하고 매년 새로운 물질을 검사하려고 해도 걸리는 시간은 180년이 넘는 시간이 걸리게 된다. 그런데 현재의 산업발전 속도가 지속된다면 그 동안에 대략 18만종의 새로운 화학물질이 시장에 들어올 것이다.
정부가 화학산업을 통제하고 있다는 생각은 분명히 하나의 신화에 불과하다. 미국 기업들의 새로운 화학물질 생산은 대체로자율규제에 내맡겨져 있다. 생산한 화학물질이 인간의 건강이나 환경에 상당한 위험을 끼칠 수 있음을 나타내는 관련 정보를 EPA에 제출할 의무를 지니고 있다. 이 의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처벌을 가하게 되어 있지만, 대부분의 기업은 법규를 준수하지 않으며 전부 또한 준수를 강제할 능력을 갖고 있지 못하다.
몬테규에 따르면 화학제조업혐회와 EPA는 협상을 통해 기업들이 보류했던 자료를 제출할 경우 처벌하지 않는다는 데 합의했다. 그러자 120여 개 기업이 이미 시장에서 판매되고 있는 화학물질들의 건강 위해성에 대한 엄청난 보고서를 제출했다.
물론 이것들은 화학관련 간행물에 한번도 실린 적이 없는 것이다. 산업계와 관리기관들 사이의회전문은 많은 규제결정들의 효력에 대한 의문을 야기하지만, 이 경우 EPA의 불법행위만이 그것들의 무력함의 원인은 아니다. 몬테규는 이렇게 덧붙였다.
EPA는 화학기업들에 비해 힘이 없다. 화학기업들은 EPA보다 훨씬 많은 연구자를 거느리고, 더 많은 예산을 집행하며, 더 많은 법률가를 고용하고 있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이것은 오늘날 공공정책의 어리석음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실례이다. 기업의 부와 권력이 정부의 그것을 능가하고 있는 때에 정부들은 계속해서 기업의 성장을 지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기업의 실험실에서 끊임없이 만들어지는 제품을규제하는 데 수십억달러를 지출하는 동시에 기업의 신제품개발을 돕기 위해 역시 그만큼의 돈을 쓴다. 그리고 국민은 이 모든 비용을 부담하는 것은 물론 건강과 환경에 대한 위협도 감수해야 한다.
커지는 규모 늘어나는 규제
거대기업들의 불만 중에 가장 흔한 사례는 규제가 기업들에게 많은 비용의 부담을 강요하고, 그들의 활동을 간섭한다는 것이다. 나아가서 완전한 자유시장 시스템의 원활한 작동을 방해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산업 자체의 규모와 그것을 집행하는 기관이 불필요하다는 사실은 결코 인정하지 않는다. 기업 자체의 이득이 되는 사항을 정부가 규제할 수도 있는 것이니까.
이런 의미에서 관리기관에 소요되는 예산은 대규모 산업에 제공되는 간접적인 보조금이다. 다른 많은 대규모 활동들은 단지 그 규모 때문에 문제를 일으키고 이로써 정부의 규제가 필요해진다. 관리기관들은 기업들의 활동을 방해하기는커녕 그들에게 상당한 이익을 주고있다. 실로 EPA나 FDA 같은 기관의 인증마크는 대중에게 진정제와 강은 역할을 한다. 핵기술, 살충제, 식품첨가물, 유전공학 등과 관련한 기업활동에 대한 대중의 불안감을 가라앉혀 준다. 산업활동에 대한 정부의 오랜 감독은 미국의 대중에게 일종의 마취제와 같은 역할을 해왔다.
소규모를 희생시키면서
정부의 규제는 거대한 사업체를 간접적으로 지원할 뿐만 아니라 작은 사업체들을 궁지에 몰아넣고 있다. 늘어만 나는 규제조항들을 충족시키는 비용은 흔히 너무나 큰 부담이기 때문에 자본이 많은 거대기업을 제외한 모든 기업의 진입을 가로막는 장벽이 될 수 있다.
많은 규제들은 대규모 생산 때문에 필요하지만, 그것들은 정작 소규모 생산자들에게 상대적으로 더 큰짐을 지운다. 예를 들자면 식품가공은 공장설비에서 이루어지고 그 식품들은 많은 인공방부제와 향료 및 색소, 심지어는 잔여 살충제를 품고 있다. 또한 그것들은 운반하는 데에는 시간이 걸리므로 위생상태나 소비자의 건강이 우선적이다. 이러한 식품들에 대한 실질적인 감시와 규제가 필요한 것이다.
기업활동 제한의 재정의
기업활동의 영역을 규제하려는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다. 이것은 특히 기업들이 로비스트, 선거운동 기부금, 두뇌집단, '회전문'등을 이용하여 그들을 규제해야 하는 정부 조직들에게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기업들을 다시 정의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모든 산업 독물과 독성폐기물 그리고 치명적인 생산품 하나 하나와 힘든 전투를 해온 것처럼 기업들의 모든 침입에 한번에 맞서는 어려운 싸움을 계속해야 할 것이다. 기업의 힘은 중역실을 벗어나 선출직 관리들의 사무실까지 미치고 있기 때문에, 그들로 하여금 많은 선거운동 기부금을 내거나 능란한 로비스트를 고용하는 이들만이 아니라 유권자 모두의 이익에 관심을 쏟게 만들려면 매우 큰 풀뿌리 압력이 필요하다.
우리가 탄생시킨(기업을 포함한) 모든 기관에 대해 주권적 권한을 행사하는 것이 실제로 생각하고 실천할 수 있는 것이라고 처음부터 동의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기업계의 권력을 극적으로 제한하는 조치 없이는, 그들의 제품과 활동을 규제하려는 시도는 대부분 실패로 돌아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수도꼭지는 너무나 오랫동안 틀어져 있고, 대걸레와 양동이는 넘쳐나는 물을 감당할 수 없다. 이제 수도꼭지를 잠궈 우리가 제정신임을 보여주어야 할 때이다.
제12장 그렇다면 그들은 왜 계속하는가? (P. 173-195)
(12조 : 김영주, 신우근, 임선주)
앞의 장들은 정책입안자들이 어떻게 작고 지역적인 것 대신에 크고 세계적인 것을 지원하기 위해 그들의 관리영역, 즉 물리적 인프라, 교육 및 연구기관, 무역규칙, 법과 규정 등을 조정해나가는가를 부분적으로 살펴보았다. 더 크고 보다 세계적인 규모를 지향하는 추세는 인간의 선택의 산물일 뿐이므로 불가피한 것도 뒤집을 수 없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우리의 나아갈 길을 바꾸고자 한다면, 어째서 정책입안자들이 그 같은 선택을 그처럼 자주 하는지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가장 분명한 이유는 돈과 관계가 있다. 세계무역과 경제적 중앙집중화는 거대한 돈 흐름의 원천이고, 정부 안이나 바깥의 힘센 엘리트들은 이러한 흐름의 일부를 개인의 이익을 위해 쉽게 바꿔놓을 수 있다. 반면에 보다 지역적인 경제는 넓게 흩어져 있는 수많은 작은 상점과 농장 그리고 지역생산자들로 이루어져 있고 흔히 돈과는 그다지 관계가 없기 때문에 힘있는 자들이 자신들의 부를 키울 기회는 휠씬 더 적다. 예를 들자면, 모부투 세시 소코나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같은 독재자들이 엄청난 돈을 착복할 수 있었던 것은 어디까지나 개발 프로젝트와 외국인 직접투자로 막대한 금액이 그들 나라로 흘러 들어갔기 때문이다.
1달러 1표
'자유선거'를 실시하는 국가에서는 정치지도자들에게 제공되는 돈이 그들의 주머니로 직행하는 일은 드물다. 그보다는 그들의 정치운동 자금원인 은행계좌로 들어간다. 이제 많은 나라에서는 텔레비전 광고가 투표에서 승리를 거두기 위한 필요조건이 되었다. 이러한 양상은 정치논쟁을 단순화한 인터뷰와 잘게 나눈 주제들로 제한시킬 뿐만 아니라 선거를 막대한 자금을 이용할 수 있는 자들만이 경쟁할 수 있는, 많은 돈이 드는 과정으로 만들어버린다. 그 결과 '1인 1표'라는 원칙은 '1달러 1표'에 빠르게 밀려나고 있다.
이러한 경향은 미국에서 오랫동안 심화되어왔는데, 선거운동 기부금이 바로 기부하는 기업들을 위한 보조금과 사이좋게 나란히 간다는 점에서 잘 드러난다. 1996년 선거에서의 돈의 역할을 다룬 책인 『그 대가가 무엇이든』의 저자 엘리자베스 드류는 선거자금 남용에 관한 미국 상원위원회 청문회에서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돈은 접근 기회를 살 수 있다. 그러나 거래는 거기에서 멈추지 않는다.… 접근은 영향력으로 이어질 수 있고, 영향력은 정책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그것은 수정안의 추진일 수도 있고, 규제관련 결정이나 계약 혹은 대통령고문단 관리의 특별한 관심이 될 수도 있다."
회전문
선출직 관리뿐만 아니라 임명 관리들도 기업부문의 부에 영향을 받는다. 한쪽으로는 정부 직위로, 다른 한쪽으로는 기업의 보수 많은 일자리로 통하는 '회전문'은 관리기관들에 팽배한, 거대기업을 편드는 정책 성향을 설명하는데 도움이 된다.
공통의 세계
정부와 거대기업 사이의 회전문은 단순한 경제적인 차이를 넘어서는 것들이 보통시민과 세계화 경제를 촉진하는 무리를 구분짓는다는 사실을 드러내 보여준다. 정치가들과 기업 엘리트들은 종종 비슷한 배경의 출신이고, 비슷한 교육을 받았으며 비슷한 사회집단들을 거친다. 그 결과 이들의 한결같이 현대적이고 산업적인 세계관은 서로 밀접하게 결합되어 있다. 따라서 정치가들에게는 공동체의 필요 혹은 자연의 본질적인 가치를 토대로 한 정책보다는 경제성장에 기초한 정책을 이해하고 추진하는 것이 휠씬 쉬운 일이다. 다른 문화들이 관련될 때, 예컨대 정책이 제3세계 토착주민들의 생계를 위협할 때 엄청난 세계관 차이를 메우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일반적으로 정책입안자들과 기업 엘리트들은 자신들의 정책이 낳는 문제들로부터 충분하게 차단되어 있다. 이들이 살고 있는, 출입이 철저히 통제되는 보호된 동네에는 대체로 범죄가 없고, 고용된 정원사들은 잘 자란 나무와 잡초 한포기 없는 잔디밭과 꽃이 만발한 화단이 언제나 '자연'을 대표하게 만든다. 이들이 자기 동네나 자기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 근처에 들어선 위험천만한 화학공장이나 핵시설과 싸워야 할 일은 없을 것이다. 그들의 특별한 소비생활이 만들어내는 온갖 쓰레기는 도시의 다른 곳이나 세계의 다른 지역으로 너무나 효율적으로 보내지기 때문에 마치 그들의 동네에서는 재활용이 쓰레기 및 오명문제를 해결한 것처럼 보이기 쉽다. 그들이 농약과 식품첨가물의 위험을 잘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알고 있다고 해도, 그들은 더 비싼 유기 식품을 얼마든지 사먹을 수 있다. 그러면서 보통시민이 값싼 유해식품을 사먹을 수 있도록 해주는 '소비자 선택의 풍부함'을 줄곧 찬양할 것이다.
오로지 산업적인 해결책
현대교육의 뚜렷한 특징인, 사물들을 상호관계를 고려하지 않고 따로따로 떼어놓고 사고하는 훈련과 결합된 산업적인 세계관은 선택들을 산업모델의 팽창을 조장하는 것들로 효과적으로 제한한다. 이런 과정은 어디에서나 진행되고 있다. 미국을 예로 들면, 십대 자살률이 1950년대 이래로 3배나 높아졌다. 또 5세에서 12세 사이 어린이의 5퍼센트, 사춘기 청소년의 10퍼센트가 심각한 우울증에 걸린 것으로 추정되며, 휠씬 더 많은 수가 활동과다와 주의력결핍 장애 같은 정서질환을 갖고 있다. 만약 이러한 문제들이 미국 아이들 사이에 그렇게 흔한 것이라면, 근본적으로 무엇인가 잘못되어 있음에 틀림없다. 어쩌면 아이들이 자라온 환경에 넘쳐나는 산업 화학물질들이 절대적으로 중요한 태아 및 유년기 발달과정을 방해했을지 모른다. 어쩌면 대가족의 붕괴가 텔레비전이나 컴퓨터게임도 채울 수 없는 정서적 공백을 남겼는지 모른다. 혹은 일찍이 공동체가 제공했던 혈육의 역학모델이 어떤 아이도 따라 행동할 수 없는 미디어의 이상화된 이미지에 의해 밀려났는지 모른다.
이와 비슷한 많은 설명을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같은 방향의 탐구는 산업체계 자체를 문제삼을지 모르고, 그렇기 때문에 좀처럼 힘있게 추진되지 않는다. 그 대신 산업적인 해결책이 찾아지고 장려되고 널리 사용된다―미국 어린이들의 경우 행동을 변화시키기 위한 약물이 이 같은 해결책이다. 현재 125만명에 달하는 학령기 사내아이들이 활동과다를 '억제하기' 위해서 리타린을 복용하고 잇는 것으로 추산된다. 그리고 프로작, 조로프트, 팍실 같은 선별적인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가 60만명이 넘는 아이들에게 우울증과 '싸우도록' 처방되어왔다. 제약회사들은 아이들을 대상으로 완전한 테스트를 거친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 같은 항우울제의 유년기 사용에 대한 정부의 암묵적인 승인을 공식화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제약회사들은 확대된 시장을 찾고 있다"고 설명하면서, 산업체계가 얼마나 철저히 아이들마저 또 하나의 판매시장으로 전락시켜왔는가를 폭로하였다.
인구과밀의 문제도 이들은 산업화의 길에서 찾고자한다. 즉, 산업화의 초기에는 어느 국가나 다 인구가 팽창하며, 산업화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었다는 것이다. 1950년 이래 세계 인구는 2배 늘었지만, 자동차는 10배나 늘어난 것이다. 어느 것이 더 큰 문제인가?
시대는 변했다
아담 스미스는 “국부론”에서 분업의 효율성을 통해 생산이 확대되며, 확대된 생산이 시장을 확대시킨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200년 후의 지구는 자원의 낭비를 줄여야 할 정도로 변하였다.
비교우위
데이비드 리카르도는 비교우위의 생산특화를 통해서 양국이 모두 무역에서 이익을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지금은 자본과 노동이 모두 이동할 수 있으므로 국경의 의미가 아주 약한 상태이다. 존 메이나드 케인즈는 “나는 국가간의 경제적 얽힘을 최대화하려는 사람들보다는 최소화하려는 사람들에게 공감한다. ...... 특히 금융은 근본적으로 국가적인 것으로 하라”고 경고하였다.
숨겨진 비용
GDP가 사회복지의 척도로서는 너무도 부적절 하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GDP를 일련의 보다 현실적인 지표들로 대체하려고 애쓰는 '발전의 재정의'라는 단체는 이렇게 주장한다. "GDP는 단지 시장활동, 즉 임자가 바뀌는 돈을 측정하는 엉성한 척도일 뿐이다. 이것은 바람직한 것과 바람직하지 못한 것, 혹은 비용과 이득이 무엇인지 전혀 구별하지 않는다. 게다가 GDP는 경제학자들이 인정하기로 결정하는 일부분의 현실만을 본다―바로 금전 거래와 관련된 부분이다. … 결국 두가지 커다란 영역을 고려하지 않는다. 하나는 가족과 공동체의 기능이요, 다른 하나는 자연 서식지이다. … 20세기 동안 경제학자들의 일부 가정은 갈수록 변호 할 수 없는 것이 되어버렸다. 근래에 서식지와 사회구조 모두 심각한 침식을 겪어온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것들은 18~19세기 가정들이 국가의 복지를 평가할 때 제외시켰던 영역이다―이는 자본주의 경제나 사회주의 경제나 마찬가지다."
생물권이 제공하는 서비스가 평가에서 제외될 때, 지구 기후변화에 관한 적극적인 행동에 반대하는 기업들의 주장이 어째서 인간중심의 과학기술에 갇힌 정책입안자들에 의해 받아들여지는지 보다 쉽게 알 수 있다. 석탄을 연료로 사용하는 발전소나 장거리 상품수송의 경제적 '기여'는 평가에 포함되는 반면, 휠씬 더 중요하지만 돈으로 환살할 수 없는 건강한 생태계의 기여는 무시된다. 이런 산업적 세계관은 매우 독립적이기 때문에 기후변화 비용에 금전적 가치를 부여할 때에도 이 가치들을 첨단기술 영리사업체들이 개발할 새로운 수지맞는 특정시장으로 판단할 수 있다―그리고 이것은 GDP에 더해질 것이다. 이런 산업모델 속에서는 '수도꼭지를 잠금'으로써 근본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해도 그것은 대걸레와 양동이를 더 많이 사는 것보다 덜 바람직하다.
해체되는 민주주의
"탈중심의 촌락 규모의 경제에서 개인들은 자신들의 삶과 관계가 있는 중요한 결정들에 대해 실제로 영향을 미쳤다. 그들은 자신들이 알고 있는 사람들을 의지했고, 자신들이 직접 관리하던 지역자원에 의존했다. 오늘날 그들이 인도의 사회경제적인 구조 속으로 갈수록 깊숙이 끌어들여지면서, 각 개인은 8억 인구의 한명에 지나지 않는 존재가 되고 있다. 그리고 세계화 경제의 요소로서 50억이 넘는 인구 가운데 한명으로 전락하고 있다. 자신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정치적 및 경제적인 세력에 대한 그들의 영향력은 너무나 줄어들어, 이제 그들은 본질적으로 무력하다."
오늘날 '민주적'이라고 말해지는 현대 통치체계들조차 팽창된 경제 규모와 경제를 지배하는 기업들에 의해 파괴되고 있다. 선거운동 기부금과 거대기업들의 로비조직이 공공정책을 결정한다면, 이것이 진정 민주주의인가? 브뤼셀에서 은밀히 만나는 비선출직 관료들로 구성된 WTO가 국가나 지역의 환경, 보건 및 노동 기준을 뒤집을 수 있다면, 주권국민들의 의지가 진정 대변되는 것일까?
광범한 대기 및 수질 오염은 공기정화기와 병에 든 식수를 판매하는 회사들에게는 수지맞는 특정시장으로 보인다. 범죄가 늘어나면, 교도소 건설업체와 민간 경비회사, 도난경보기나 방범장치들을 판매하는 회사들의 수입도 늘어난다―이것들 모두 경제 성장에 한몫 하게 된다. 미국에서 우울증은 점점 심각해지는 문제일지 모르지만, 프로작이라는 '해결책'은 미국 GDP에 17억달러를 더해준다. 암관련 산업은 연구, 약품 개발 및 판매, 병원 및 진료소, 자가-치료 도서들, 비영리기관과 그밖의 많은 분야의 상업시장을 제공함으로써 산업화된 국가들의 경제에서 너무나 큰 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에 암의 '예방'은 엄청난 경제적인 손해를 가져올 수 있다. 그러나 '치료'는 의약산업에게 막대한 매출을 안겨주며 전혀 새로운 수익원을 제공하고, 이로써 경제에 큰 혜택을 베풀 것이다.
미래를 기대하며
지금까지 공공정책들의 목표가 일관되게 크고 세계적인 것들을 지향하는 것에 대한 부분적으로 기술했고, 작고 지역적인 것들을 지원할 수 있는 방법들을 조심스레 제시했다.
처음에 밝혔듯이, 그러한 변화들을 가져오려면 힘센 기득권 세력을 극복하고 산업주의 세계관을 근본적으로 재고해야 할 것이다. 이것은 우리의 의욕을 꺾을 만큼 힘겨운 과제로 보일 수 있다. 특히 기업의 세계화를 추구하는 이들이 깊숙이 뿌리내린 엄청난 힘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그렇다. 그러나 거대한 산업 괴물은 모두를 위협하고 있다. 외부세계와 차단된 부유한 자들의 공동체도 파괴된 생물권의 영향이나 사회 붕괴로부터 그들을 영원히 보호해줄 수는 없다.
보다 작은 규모를 지향하는 많은 대안들은 소소하고 보잘것없어 보일 수 밖에 없고, 그러한 대안들은 거대한 산업 괴물의 행진을 멈추게 하기에는 언제나 불충분하게 보일 것이다. 문제는 더 큰 규모와 경제의 세계화를 향한 현대사회들의 전진이 체제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정책을 변화시키기 위한 일치된 노력을 가정한다면, 작고 지역적인 조처들은 매우 큰 의미를 가질 수 있다. 풀뿌리단체들은 전세계적으로 협력하여 대표를 선출하고, 정부들로 하여금 무역협정을 다시 협의하게 만들 수 있다. 이러한 노력들을 통해서 지역공동체들은 지속가능성과 평등을 지향하는 나름의 공동체를 이루고 세계적인 기업에 의존함이 없이 스스로를 지탱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 수 있다. 그리고 국가들이 연대하여 기업들이 넘어설 수 없는 한계를 정한다면, 기업들의 환경 약탈은 멈춰지고 생태계는 회복할 기회를 갖게 될 것이다. 기업들로부터 그들이 가져서는 안되는 권리를 박탈한다면, 정치적 삶을 좀먹는 그들의 영향력도 제거될 것이며 상업주의의 끊임없는 굉음도 잦아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