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주신문이 내게로 왔다!
아침 햇살보다 눈부신. 신문의 잉크 냄새가 무주의 남대천 물줄기만큼이나 싱그럽다. 활자 하나하나에 남대천의 야생화 향기가 물씬거린다. 적상산의 바람난 붉은 치맛자락이 나를 유혹하는 듯싶다. 새벽 다섯 시 향로산 정상에서 바라본 앞섬의 꿈 같은 풍경이 다시 깨어난다. 작은 섬을 휘감은 안개 속에서 반딧불처럼 떠돌던 민가의 불빛이 가슴 안쪽에 다시 불을 지피고 있다.
그곳에서 2년을 살았다. 셀 수 없이 많은 시간을 남대천에서 보냈다. 남대천 물소리에는 내 발자국 무늬가 새겨져 있고, 내 호흡의 몇 조각은 아직도 한풍루의 용마루 속에서 숨쉬고 있다. 남대천을 걷는 꿈을 자주 꾼다. 그곳 사람들이 그립다. 형 같고 아저씨 같고 누이 같은 수더분한 인정을 잊지 못한다. 읍내의 저잣거리에서 먹었던 순대국밥과 막걸리 한 잔은 지금도 나의 퇴근길을 쓸쓸하게 한다. 삼도 사투리가 어우러진 장날의 왁자지껄했던 풍경이 내 가슴속에서 풍물놀이패처럼 놀고 있다.
그곳의 모든 소식을 껴안은 무주신문이 오늘 내게로 왔다. 반갑다!
사괏값이 폭락하여 울상이라는 1면 머릿기사 옆에 설천초등학교 어린이들이 단체 줄넘기하는 화보가 실렸다. 엇박자인 듯하면서도 천진난만한 동심이 어른들의 힘겨운 세상살이를 응원하는 것 같아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대덕산 품에 안겨 아홉 가구가 오손도손 모여 사는 오동마을을 소개한 신주혁 편집국장의 '마을 탐방 시리즈'도 살갑게 눈에 들어온다. 한국 전쟁 때 인민군들도 비켜갈 만큼 오지인 그곳에서 ''채소나 가꿔 먹고, 자식들이 보내주는 용돈하고, 노인연금으로 살고 있다''는 최고령 서정수 어르신을 비롯한 몇몇 이웃들의 소박하고 애틋한 삶의 이야기가 잔잔하게 펼쳐지고 있다.
늘 감성 가득한 글로 무주신문을 아름답게 수놓는 박도순 공진보건진료소장님의 간호일기도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 중 하나. 이번 호에는 가슴이 무너질 듯 애잔한 '가을 편지'가 실렸다. 어느 육십을 넘긴 노년의 어르신이 소장님에게 보낸 첫사랑을 고백하는 편지글. 그야말로 ''더운 심장에서 소용돌이치다 손끝을 타고 흘러내렸을 육필'' 앞에서 누구든 눈물을 훔치지 않을 수 없겠다.
이밖에도 ''손자손녀 재롱보다 탁구 재미가 더 꿀맛''이라는 무주종합복지관의 탁구동아리 이야기도 가슴을 통통 뛰게 하고, 무주중학교 2학년 빈승현 군의 재기발랄한 '2분'짜리 시도 박장대소를 멈출 수 없게 한다.
그 곁에 나의 졸작 '화장실, 평등의 미학'이 웅크리고 있다. 독자들에게 펼쳐놓기에는 부끄러운 졸작. 그런데 이 글을 무주신문에 싣게 된 작지만 따뜻한 사연이 있다. 무주신문 이진경 기자 때문이다. 실은 나는 그녀의 얼굴을 모른다. 무주에 있을 때 몇 건의 투고를 했는데, 그 과정에서 한두 번의 통화와 카톡으로 나눈 몇 번의 대화가 전부일 따름이다. 누구나 그렇듯 그곳을 떠나면 그곳은 점차 잊히기 마련이다. 무주를 떠나면서 나는 무주신문과 연을 다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난데없이 그녀의 전화를 받았다. 페이스북에서 내 글을 읽었다며, 무주신문에 내 글을 실어도 되겠냐는 뜻밖의 질문이었다. 기쁘고 반갑고 너무나 따뜻한. 그녀로 인해 100km도 넘는 아득한 거리에 있는 무주가 일순간 내 눈앞으로 육박해 왔다. 무주, 자연과 생명이 한 폭의 그림처럼 어우러진 아름다운 고장. 우주에서 내려온 천혜의 땅, 무주가 내 심장 가까운 곳에서 살아 숨쉬고 있었다. 무주는 이제 내 생애에서 잊지 못할 몇 곳 중 하나로 각인되었다. 감사한다. 얼굴 모르는 이진경 기자에게. 또 내 2년의 삶과 추억이 고스란히 담긴 무주에게. 정 깊은 무주 사람들에게.
첫댓글 안이나 밖이나 평등해지는 날을 기다려 봅니다. 요원한 일이겠지만~
깨달음을 안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