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방5 / 수필 / 신영미
장애인 이야기
한번도 보지 못한 눈 속에 담아도 한 아름 먹어버릴 거 같은 햇살이 구름을 통
해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공기 안의 수중기를 통해 상큼한 냄새가 난다. 바람이
살랑살랑 분다. 바람의 강도를 보니 날씨가 제법 좋아졌다. 언제 추웠냐는 듯이
콧방귀를 뀌며 바람이 봄을 따라왔다. 버스 정류장 앞에 그가 서 있다. 나이는 알
수 없지만 그 나이 또래보다 키가 작고 머리는 감았지만 마르지 않은 수분이 아
직도 그대로이다. 아직 이른 봄이라 감기에 걸릴 텐데 말이다. 젊잖은 난방에 짙은
색 청바지를 입고 있다. 바지의 단은 더럽히지 않기 위해서 단정하게 접혀 있었
다. 그의 시선은 아까부터 한곳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의 시선을 따라 갔다. 그
의 시선이 멈춘 곳은 봄 결 따라 냄새를 따라나선 노란색의 나비였다. 그느 노란
색 나비를 신기하기도 한지 어린아이처럼 손가락을 편 채 나비가 가는 방향대로
손가락을 이리저리 바쁘게 움직였다. 나비는 꿀을 찾고 있는지 길가에 핀 작은
꽃의 가장자리에 앉았다. 잠시 앉아서 일어날 줄 몰랐다. 나비도 봄이 온 것을
피부로 느꼈나 보다. 옆의 꽃에도 앉았다가 후르르 날더니 그의 짙은 색 청바지
에 안착했다. 그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번졌다. 어린아이 같은 해맑은 웃음이다.
어른의 모습에서는 쉽게 보이지 않는 선한 웃음이다. 눈가에도 어떤 움직임 같
은 것이 보였다. 꿈틀거리는 살아 있음...... 역동감.....
그는 정신지체 장애인이다. 아니 사람들이 그를 장애인이라 부른다. 태어났
을 때부터 장애인이라고 불이어진 것은 아니다. 그도 장애인이 아닌 어엿한 이
름석자가 있다. 단지 그를 모르는 사람은 장애인이라 부른다. 그가 다섯 살 때였
다. 그날도 나비가 날아다니고 지금처럼 겨울이 봄을 부를 때였다. 봄이 얼은 강
을 녹이고 나무가 새싹을 깨울 때 그는 남과 달리 정신이 잠들었다. 매번 봄이
오지만 한번 잠든 정신은 늘 그대로였다. 그는 아침마다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
거 버스를 탄다. 한번쯤은 늦을 법도 한데 그 기산에는 늘 그가 있다. 버스,를 힘
겹게 오르는 그는 매일 회사에 가는 것 같다. 평소에는 말도 없고 그냥 조용히
잠을 자거나 혼자만의 공상에 잠겨있다. 어쩌다 조용히 모기만한 목소리로 중얼
거리기도 하지만 들리지는 않는다.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성격이다. 가끔 잠
을 자다가 미쳐 깨지 못해 정거장을 지나치기 한두 차례 있었을 뿐 차분한 성격
이다. 몇 일전에 그를 볼 때는 같은 정신지체 장애인의 친구와 함께였다. 둘은
두 명이 앉을 수 있는 좌석에서 어느 때와 다름없이 창 밖을 보고 자신들만의 세
계에 집착했다. 하나가 아니고 둘 일뿐 대화는 없었다. 그 뒤로 종종 같이 버스
를 타는 일이 생겼다. 둘이서 자로 맞춘 듯 시간이 일치했을 때 말이다. 같은 버
스를 타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버스는 한산했다. 누구 하나 시끄럽게 떠드는
사람도 이어폰을 크게 틀어서 방해하는 사람도 껌을 크게 씹는 사람도 없었다.
버스는 한산했기에 어제도 그랬고 그제도 그랬고 늘 상 같은 자리에 그는 자리
를 잡을 수 있었다. 그는 항상 같은 자리에 앉는다. 아마도 자리에 이름을 새겨
놓은 듯싶다. 그렇지 않고서는 그 자리만 고집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가끔은 멍
하니 창 밖을 보고 창 밖의 물건을 놓치기라도 싫은 듯 허공을 잡으며 공기를 잡
았다. 창 밖의 물건이란 풍경이다. 봄이 오고서 부쩍 손놀림이 바빠졌다. 잡으려
면 버스는 저 멀리 가 있기에 더 잡고 싶은 게 많은가 보다. 그가 무엇을 좋아하
는지는 모르겠다. 웃음을 보인 건 나비를 보았을 때 빼곤 거의 없었다. 버스는
삼십 분은 쉬지 않고 달려야 다다를 수 있다. 멀리 가는 사람은 일찌감치 잠 손
님을 맞이하고 있을 때쯤 그때였다. 갑자기 우당탕탕 우직한 목소리와 함께 그
의 말문이 트이기 시작했다.
“돈 내놔”
“지각하면 월급 없어”
“택시 타, 사장 너 버스 못 타”
“택시 타고 가”
“짜증나”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 굉음과 함께 퍼즐 맞추기 놀이에 들어갔다. 그가 무슨
말을 토해 내는 걸까. 한마디 한마디가 평범하지 않은 단어들이 튀어나온다. 그
의 입에서 나온 말들이 낯설다. 도마 위에 갓 잡은 생선들이 파닥이는 모양새다.
죽기를 거부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몸통이 나부낀다. 몸통이 바닥을 치면 아픈지
도 모른 채 쉴 새 없이 움직인다. 그의 머릿속에 무엇이 자극했는지 손으로 머리
를 움켜쥐고 있었다. 제법 큰 손으로 머리를 심하게 흐트러트린다. 머릿속에 큰
문제 거리가 깃들어 있어 끊임없이 갈등을 빚고 있다. 아직 그의 심리와 행동 패
턴을 깊숙이 인지하지 못한 상황에서는 어떻게 무슨 방법으로 헤쳐 나갈지 모른
다. 버스 안에 순간 정적이 흐른다. 모두 숨죽이고 있다. 그의 목소리만 격하게
떨림이란 표시를 만든다. 언젠가 바보상자를 통해 장애인들을 고용하는 회사의
비인간적이고 이기적인 모습들을 잠깐 떠올려 본다. 모멸감이란 하나의 감정이
죄를 중폭시켜 되뇌게 했다. 지금 험하게 흥분하고 있는 그는 뇌에 있는 세포를
움직여서 사고하게 한다. 문제점으로부터 정열적으로 몸을 반응시키는 것이다.
단순한 단어들이 내뱉는 부조리로 버스 안의 사람들은 아따끔씩 거북한 눈살을
내비치는데 누구 하나 다가가는 이는 없었다. 버스는 그렇게 각자의 종착지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