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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세시의 사랑] 유현미
씬1. 수 다실 (아침)
아찔한 미니스커트 속으로 쑤욱 들어가는 손
싫지 않은 투정과 함께 그 손을 빼내는 빨간 매니큐어의 손에서 화면 빠지면
미스 홍을 무릎에 안고 있다시피 한 영표, 모델 뺨치게 차려입었다.
미스홍 : (노란 목소리로) 진짜라니까, 오늘은 진짜 진짜 안돼에
영 표 : 은젠 달거리 하는 날 기냥 걸렀냐, (이뻐 죽겠다) 에구 요걸 기냥 . . .
얼릉 가 끊어오랑께, 나 시간읎어 야!
미스홍 : 마담 언니 나올 시간 다됐단 말야, 눈 도장이라도 찍구우~
영 표 : 시방 나 몸 꼬이는 거 안뵈냐? 엉?
달라붙는 영표, 간드러지게 웃어 재끼는 미스홍
그들 위로 사납게 겹쳐지는 오토바이 엔진소리
씬2. 거리 (아침)
쏜살같이 달려오는 공숙의 오토바이
뒷좌석에 "숙이네 건건이"란 깃발 바람에 사정없이 나부낀다.
씬3. 수다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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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펀하게 흐르는 가요 (ex : 이박사 노래쯤)
그 리듬에 맞춰 엉덩이를 흔들어 대며 카운터에서 전화를 거는 미스 홍.
이내 들이닥치는 공숙, 손에는 살벌한 망치 들려있다.
미스홍 : 어서오세 (하다가 사색이 되는) 어마!! (잽싸게 카운터 뒤로 숨는)
공 숙 : 어딨어? 어딨어, 이 인간!!
그 서슬에 수족관 위로 불쑥 솟아오르는 영표의 놀랜 얼굴
공 숙 : (그 얼굴을 향해 돌진하며) 이게 병원이야? 이젠 허다허다. . . 이 썩어
문드러질 종자야!
영 표 : 이 여편네가 환장을 했나, 하늘같은 서방한테 시방 이게 뭔 작태여?
공 숙 : 암만 없는 게 나은 애비라도 그렇지, 명색이 니 아부지고 우리 경노
할애비야, 그런 양반이 숨 넘어갈 지경이라는데, 여서 저딴 년 몸땡이나 쪼물락거려? 니가 사람이여? (달려드는)
꺄악 난리가 벌어지는 다방 안,
도망가고 쫓는 모습 여러 cut로 빠르게 보여주고
그 모습 위로 망치에 맞은 듯 떨어지는 타이틀 '오후 3시의 사랑'
씬4. 상가 건물 전경
'해피 결혼 상담소' (이층)
창문 활짝 여는 원소장 보이고, 그 바람에 유리창에 써진 글씨가
'피해 결혼상담소'가 돼버렸다. 그 앞으로 와서 멎는 준보의 1톤 트럭
원 : (e) 아니 이게 뭐예요?
씬5. 결혼상담소 안
책상 위에 턱하니 놓여지는 방울토마토 한 상자에서 화면 빠지면서
준 보 : 돈 벌려고만 농사짓나요, 나눠 먹는 것도 재미죠!
원 : (상자 속에서 토마토 한 알 꺼내 휴지로 닦으며) 이럼 내가 부담스러운데
준 보 : 근데 . . . 얼마나 더 기다려야
원 : 글세 알아는 보고 있는데요 . . . 그게 . . .
준 보 : 제가 좀 급해서요, 솔직히 마늘밭에서 깨라도 털 지경입니다.
원 : 요즘 세상에 농사짓겠다는 여자가 어디 흔해야 . . .
준 보 : 온순한 사람이면 . . . 더두 안 바래요
원 : (애써 웃으며) 아, 뭐 짚신도 짝이 있다는데 없기야 하겠어요, 그치만
준보씨 아버님 때문에 . . .오늘 낼 오늘 낼 하신다는데 돌아가신 담에 . . .
준 보 : 안됩니다. 아버님 생전에 어떻게든 며느릴 뵈드려야해요, 그래야돼요!
원 : (갑갑하고)
씬6. 숙이네 건건이 반찬가게
깔끔한 분위기
커다란 찬합 들고 진열된 반찬을 일일이 덜어 도시락을 싸고 있는 공숙
원 : 한번 연락해보라니까
공 숙 : 글세 싫어, 괜히 그런 자리 주선했다 뺨맞을 일 있어?
원 : 그래두 그 사람, 지금은 농사꾼이었지만 전직이 은행원이었다! 누가 아니?
여자가 원하면 농사 작파할지, 딱 한번만 만나보라 그래,
재미삼아, 딱 한번만!
공 숙 : 글세 싫대두. 영자 걔가 을마나 눈이 높은데 . . .
때마침 전화벨 울리면, 수화기 드는 공숙
공 숙 : 네, 숙이네 건건입니다. (사이, 반갑고 놀라운) 재미엄마?
원 : (대번에 호기심) 어머! (수화기에 자기도 귀기울이는)
씬7. 간이역, 플랫폼에 비치된 공중전화박스
커다란 가방 하나 들고 겁먹은 얼굴로 전화하고 있는 재미엄마
재. 엄 : (눈물이 쏟아지는) 우리 . . . 재식이, 재미 . . . 잘있지?
씬8. 반찬가게
공 숙 : (속상한) 그걸 왜 나한테 물어?
(팩) 거봐! 그러구 가서 두 다리 뻗구 살 줄 알았어?
원 : (입모양으로만) 어디래?
공 숙 : (아랑곳없이) 몰라, 내가 왜 재식이 재밀 챙겨? 개들이 내 자식이야?
그딴 소리 할거면 끊어! (수화기 끊어버리는)
원 : (황급히 수화기 들고) 여, 여보세요? 끊어졌네, (흘겨대며) 아, 그렇게 윽박지름
어떻게? 조근조근 달래서 어딨나 알아내야할거 아냐
공 숙 : 알아내긴 뭘 알아내, 지 발로 걸어 들오게 냅둬야지
원 : (기막혀) 너두 참, 딴 남자랑 눈 맞아 도망친 여자가 잘두 들오것다.
공 숙 : (속상하고 안쓰런) 모질게 맘먹고 갔음 잘 견디던가 . . . 독하지도 못한 게 . . .
원 : 바람이 나도 최소한 밑지진 말아야지, 덤프트럭 기사가 다 뭐야?
공 숙 : (마땅찮아) 그딴 생각으로 중매서?
원 : 애 좀 봐, 결혼은 비즈니스야,
재미엄마 남편, 늬 신랑이랑 동업이긴 해도 명색이 사장이다?
게다가 노후 대책되는 자식있지, 번듯한 집 있지, 그거 다 버렸어!
갖은 거라곤 달랑 두 쪽뿐인 트럭기사랑 바꾼거야, 그게 되는 장사니?
공 숙 : (단호한) 덤프 트럭 기사 아니라 거지 팔푼이래두 바꿀 수 있어
원 : (뜨악)
공 숙 : 자식 버린 거 , 그거 하나 괘씸하지 딴 건 이해 못 할 것도 읎어!
원 : (반짝 좋은 생각 떠올라) 얘, 공숙아, 니가 할래? 니가 해라
공 숙 : (보는)?
원 : 외간 남자랑 눈 맞아 야반도주하는 여자두 있는데,
너라구 맨날 이러구 살란 법있니? 아, 경노아빠만 재미보고 살란 법 있어?
공 숙 : (기막혀) 미쳤어?
원 : 어차피 딱 한번인데, 응? 생각해봐, 넌 바람쐬고 스트레스 풀고
난 골치 아픈 맞선 쫑이구, 누이 좋고 매부 좋고
공 숙 : 객쩍은 소리 작작하고, 할 일 없음 가게나 봐
원 : 봐줌 해줄 거지? 응? 해라!
보자기에 싼 반찬 통 들고 나가는 공숙
씬9. 거리
아름다운 음악이 울려 퍼지는 트럭 안, 행복한 얼굴로 엑셀을 밟는 준보
문득 맞은 편에서 달려오는 공숙의 오토바이,
그렇게 무심히 스치는 두 사람
씬10. 쓰리랑 씽크대 가게 안
토라져 있는 미스홍, 그녀를 달래기에 여념없는 영표
미스홍:이게 뭐야, 쉬는 날! . . . 영화보러 간다구 해놓구선!
영 표:가게가 비었으니 으쩌냐, 담에 날잡아서 너 좋아하는 내 오늘안으로 빚갚으리오
나오는 영화 하루죙일 봐뻔지쟈, 잉?
미스홍:(짜증) 내 오늘안으로 빚갚으리리오가 뭐야, 래오나르도 디가프리오지 이!
영 표:엎어치나 매치나 (하는데 전화벨 울리면) 쓰리랑 씽크댑니다.
워매 만섭이냐? 아따 헛고생 그만하고 돌아와라 잉, 너 땀시 답답혀 환장하것다!
만 섭:(F) 너 나 없다구 가게 팽개치고 돌아댕김
영 표: 그케 걱정됨 싸게 돌아와! 딴 놈도 아니고 덤프트럭 기사랑 배맞은 걸 찾아서
워따 쓰게.... 여보쇼? 여보쇼?? (수화기 내려놓으면서) 새끼, 승질머리 하곤 ....
미스홍: (꿈에 젖어) 오빠! 우리두 만사 다 팽개치고 도망갈까? 멋지잖아, 영화처럼!
영 표: (장난으로) 까짓거 그래뻔지까?
미스홍: 진짜? (바짝 댕겨 앉으며) 경노두, 경노두 버리구??
영 표: (대번 표정 변해) 갱노? . . . 갱노야 피붙이니께
홍 : (도끼눈 뜨면)
영 표: (다소 결연히) 내가 말 안혔냐, 갱노 땀시 웬수같은 마누라랑 꾸역꾸역 사는
거라고. 앞으로 다시는 갱노 얘긴 꺼내지도 말어, 갱노는 나고 나는 갱노여!!
알긋냐?
씬11. 경노의 공부방 (밤)
바닥에 깔린 이부자리엔 이미 잠든 경노
그 옆에서 밥상 놓고 앉아 하루 매상을 계산기 두드리며 정리하고 있는 공숙
공 숙: 도합 칠만 공 팔백원, (흐뭇한) 우리 경노, 한 달치 학원 비 벌었네
(자는 아이의 머리카락 쓸어 주며, 사랑스러워 뽀뽀하는)
문득 현관문 열리는 소리 들리면, 얼른 장부에 열중하는 공숙
이내 벌컥 열리는 방문
영 표: (다소 취기 어린) 서방님 들왔는디 내다 보지두 않냐?
공 숙: (쳐다보지도 않고, 조용하란 뜻에서) 얘 자!
영 표: 밥 줘! (꽝 소리 나게 문 닫는)
공 숙: (얼른 경노 깰까 쳐다보고 열 불난 얼굴로 나가는)
씬12. 주방(밤)
식탁 위에 거의 매다 꽂다시피 하는 반찬 그릇들
그나마 김치, 콩자반, 단무지뿐이다.
외투 벗고 주방으로 나오는 영표, 식탁 의자에 앉다말고 대번 인상 구겨진다.
영 표: 너 시방 이걸 밥상이라고 채렸냐?
공 숙: (밥그릇 퍼담아 내려놓으며) 어차피 새는 쪽박, 흥청망청 같이 해봐, 그럼?
영 표: 매를 벌어라, 매를 벌어.
공 숙: (뽀드득 이 갈리는) 내가 하고 싶은 말일세!
영 표: 어이구 썩을 놈의 집구석! (의자 거칠게 집어넣고 나가려면)
공 숙: (대번에 반찬그릇 치우며) 재미엄마 못 찾았대지? 잘봐둬! 노름에 미치나
기집에 미치나 집구석 팽개친 건 마찬가진데, 도영표라고 그짝 나지말란 법 있어?
영 표: 뭐셔? 그 짝이 나야? (갈갈 웃는)
공 숙: (노려보면)
영 표: (다가와 공숙의 이마, 검지 손가락으로 콕콕 찍어대며) 누가 너 좀 델꼬 가믄
내 웃돈 쳐서 어이구 성님 하고 잪은디?
공 숙: (손가락 탁 쳐내고) 가시내들 데꼬 노느라 웃돈은 남어나시고?
영 표: 바람은 아무나 나는 줄 아냐? 아무나 찍히는 줄 알어? 너같이 학교댕길 때
투포환 선수나 혔던 건, 줘도 안가져. 손바닥이 발바닥 같은 걸 뭔 맛으루다?
공 숙: (충격인)!!!
영 표: 꼬추장 된장, 골딱골딱한 반찬 냄샌 또 어떻구!
너 옷 벳기믄 냉장고 냄새 나는 건 아냐? (캭 웃고) 뭐 바라암?
야도 가끔은 퍽 웃긴당께!
공 숙: (치욕) . . .
씬13. 안방 (침대방) (밤)
방으로 들어오는 영표.
영 표: 그짝이 나? (어림없다) 이 도영표 마누라가 바람이 나?
(방문 밖 쳐다보고) 죽을라면 뭔 짓을 못 허것냐 . . . (핸드폰 울리면) 여보쇼?
(사이,놀랜) 뭐셔? 아퍼? . . . 아까까지도 멀쩡허더니 . . . 시방? (꺼름한)
집에 들왔는디 . . .
씬14. 거실(밤)
경노의 방으로 가려다가 문득 빼꼼 열린 안방문에서 새어나오는 소리 듣는 공숙
영 표: (e)뭔 소리여, 사랑하지, 사랑하고 말구, 알았어, 알았당께!
공 숙: (무시하려해도 핏대서는)
영 표: (윗도리 걸치며 황급히 나오다가 당황하는) 거시기. . . 나 쪼께 나갔다 올께
쇳대 따고 들올 수 있게 잠그고 자.
공 숙: (매섭게 보는)
영 표: (슬금 눈치보며) 아, 자식. . . 동창회하믄 한다 미리 말을 해줬어야제. . .
이내 내빼듯 나가는 영표, 현관문 닫히면
입술 터지도록 악무는 공숙.
씬15. 아파트 단지 앞 (아침)
이제막 자신의 빨간 소형 승용차에 올라타는 원소장.
시동 걸다가 문득 저 앞에 세워진 공숙의 오토바이 봤다.
"여태 출근을 안했네? " 갸웃. . . 핸드폰 꺼내 전화를 한다.
씬16. 공숙의 아파트, 안방 (아침)
사람이 잔 흔적이 전혀 없는 침대.
그 앞에 분기탱천한 얼굴로 서있는 공숙. 그 얼굴 위로
영 표:(e)바람은 아무나 나는 줄 아냐? 아무나 찍히는 줄 알어?
손바닥이 발바닥 같은 걸 뭔 맛으루다? 뭔 맛으루다아?
치받치는 모멸감, 눈물이 쏟아지려는데 순간 울리는 전화벨
공 숙: 여보세요
원 : (f) 왜 여태 안 나갔어? 뭔 일 있니?
공 숙: (왈칵 눈물 쏟아지면 우악스럽게 손바닥으로 훔치고) 접때 얘기한 남자 . .
씬17. 단지 내, 승용차 안(아침)
원 : (반가운) 정말? 정말 할래? (문득 차 창문 넘어 그제서야 아파트로 들어서는 영표의
구형 그랜저 보인다, 외박하고 들어오는 영표를 눈으로 쫓으며)
잘 생각했다, 진짜 진짜 잘생각했어, 너라고 맨날 그러구 살란 법 있니?
사내자식들만 재미보고 살란 법 있어? 언제 만날래?
씬18. 국도 + 버스
들판을 시원스레 달리는 시외 버스
창 밖의 풍경을 암울한 얼굴로 쳐다보고 있는 공숙, 참으로 비장한 외출이다.
그 얼굴 위로
원 : (e)공숙이가 아니고 공주야, 천공주. 서른 한 살 노처녀 (속삭이는) 알았지?
착잡하다. 국도 변 간이 정류장에서 멈추는 버스. 내리는 쪽 문이 활짝 열린다.
암만해도 내려야 할 것 같다. 이건 영 아니다 싶다.
일어나려는데 불쑥 들리는 목소리
영 표:(e) 꼬추장 된장, 골딱골딱한 반찬 냄샌 또 어떻구! 너 옷 뱃기믄 냉장고 냄새
나는 건 아냐? . . . (캭 웃으며) 뭐, 바라암? 야도 가끔은 퍽 웃긴당께!
그대로 주저앉아 버리는 공숙,
결연한 표정으로 냄새를 없애버리기라도 할 듯 차 창문 거세게 열어 재낀다.
대번에 쳐들어오는 바람. 흔들리는 머리 칼 사이로 애연한 표정의 공숙 CU
씬19. 카페 (다른 도시에 있는)
동전을 가득 담은 비닐주머니를 만지작거리는 손에서 화면 빠지면
긴장한 채 앉아 있는 준보, 멀끔한 양복차림이다.
백원짜리 가득 든 비닐주머니를 만지작거리는데 생각나는 父
insert> 준보의 집, 안방 (병색이 완연한 70대 아버지) 준보에게 동전 주머니 내밀면서
준보부: 맛난 거 사멕여!
준 보: (가슴아프게 미소짓는데)
공 숙: 저어 . . . 황준보씨?
준 보: (고개 들고 / 첫눈에 반한, 벌떡 일어나는)
씬20. 동 카페 밖 + 카운터
카페 문 밖에 서있는 공숙, 안나온다 싶어 유리문 넘어 카운터를 쳐다보면
준보, 비닐주머니에 가득 든 동전을 꺼내 인상쓰고 있는 종업원 앞에서 계산하고 있다. 서두르다 주머니를 놓치는 준보, 와르르 쏟아지는 동전들, "아휴, 뭐야, 진짜!"
짜증을 부려대는 종업원. 허겁지겁 동전을 줍기에 여념이 없는 준보.
그 모습이 . . . 가슴 아리게 다가오는 공숙.
씬21. 거리
나란히 걷는 두 사람,
동전쪼가리로 계산하는 걸 들키다니 얼마나 근천스럽다 할까 마음 쓰이는 준보
준 보 : 이대로감, 1년 수입 1억은 너끈해요, 물론 농약값, 비료값, 기계값 그런 거 다
제해야하지만 . . . 그래도 연봉 삼 사천 할 때랑 비교가 안돼죠
공 주 : . . .
준 보: (공숙의 눈치를 살피며) 울 아부진 (손으로 둥그런 원을 그리며)
이만한 함지박에다 동전 모으는 게 취미세요. 어렸을 때 함지박에 가득 든 동전 보여주시면서 봐라, 우린 이렇게 부자다. . . 덕분에 형이랑 나랑 동전만 돈이고 지폔 돈 인줄 몰랐다니까요
공 주 : (미소 짓는)
준 보 : (그제서야 덩달아 웃으며) 아부지가 아침에 공주씨 맛있는 거 사주라고. . .
(비닐주머니 내보이며) 주셨어요
공 주 : (가슴 아프고)
준 보 : (진땀으로) 왠지 이 돈을 써야 잘 될 것 같았어요. . . 잘 되고 싶어서 . . . .
공 주 : (안쓰럽다) 제 손 한번 잡아 보실래요?
준 보 : ?!
공 주 : (손 내밀면)
준 보 : (긴장하는)
공 주 : (먼저 잡으며)발바닥 같죠, 저. . . 이런 여자예요, 산전수전 다 겪은.
준 보 : !!
공 주 : 아버님께 세상에서 가장 맛난 커피였다고 전해드리세요
준 보 : (행복한)
씬22. 몽타주
붕어빵과 오뎅 국물이 있는 따뜻한 포장마차 앞
갓 구워진 붕어빵을 호호 불어서, 공숙에게 건네는 준보.
받아 쥐고 물끄러미 보는 공숙.
이내 종이컵에 오뎅 국물 덜어서 후후 식으라고 마냥 불어대는 준보
그 모습에 . . . 가슴이 일렁이는 공숙
터미널, 차표를 손에 쥔 공숙과 그녀 옆에 서있는 준보.
버스가 와도 넋 나간 사람처럼 앞만 보고 서있는 공숙, 그런 그녀를 보는 준보.
벌써 여러 대 그들 앞을 그대로 스쳐가 버리는 시외버스.
씬23. 동, 터미널 (시간 경과)
자세 여전하게 나란히 서있는 두 사람.
준 보 : . . . 이번에 오면 열대째예요
공 숙 : . . . 이번 거 말고, 그 다음 꺼 탈께요.
준 보 : (용기 내서) 우리 또 만날 수 있을까요? 또 뵙고 싶은데요, 전.
공 숙 : (빤히 보는)
준 보 : (마주 보는)
공 숙 : . . . 오늘 . . . 저 하자는 데루 해주실래요?
씬24. 여관 방
삐죽이 열린 창문으로 커튼 하늘거리고,
분홍빛 벽지 위엔 낡은 괘종시계 걸려있다.
시계 오후 3시경 (3시 3분 전쯤)을 가리키고 있고.
그 옆, 방문 끝에 참으로 당혹스런 얼굴로 서있는 준보
그의 시선 쫓다보면 침대 끝에 걸터앉아 있는 공숙. 어색하고 낯설긴 마찬가지다.
그러나 내친 김이다. 어렵사리 브라우스 단추 하나 풀면
준 보 : (황급히 달려와 막으며) 공주씨, 왜 이러세요. 전, 정말 . . .
공 숙 : (보는)
준 보 : (마주보는)
공 숙 : (가라앉은) 저 좀 안아주세요
준 보 : (당황) 공주씨!
공 숙 : (깊고 암울하게) 부탁해요.
준 보 : (그 기세에 엉거주춤 안으면)
공 숙 : (안긴채 두 눈 감는)
준 보 : (안은채 두 눈 감고)
공 숙 : . . . 저한테 냄새 나죠?
준 보 : ?
공 숙 : . . . 안 좋은 냄새 나죠?
준 보 : (당치않다) 왜 그런 말씀을 . . . (숨 들이마쉬고) 이렇게 좋은데.
공 숙 : (눈물 그렁해) 정말 좋아요 . . . 정말?
준 보 : (꼬옥 끌어안으며) 처음 만났는데 정말 첨 만난 사람 같지 않아요.
아까 카페서 공주씨 첨 보는 순간, 전에 분명 만났었다, 이 사람이다,
무조건 그런 생각 들었어요
공 숙 : (쏟아지려는 눈물 삼키려 안간힘인)
준 보 : 허수아비 알아요, 허수아비? 암만 꼿꼿하게 서 있어도, 누군가 뽑아다 밭에다 심고
논에다 심고, 심지언 창고 속에다 팽개쳐 놓아도, 암소리 못하고 (더욱 끌어안으 며) 이제 걱정 말아요, . . . 아무도, 함부로 뽑지 못하게 내가 지킬거야,
내가 지킬께요.
공 숙 : (주루루 눈물 흘러내리고)
준 보 : (안았던 손 풀어 공숙의 눈물 닦아주며) 우리 . . . 이제 나가요, 공주씨!
공 숙 : 전 공주가 아닌 공숙이예요, 천공숙!
준 보 : !!
공 숙 : 잘 들어요. . .전, 준보씨와 결혼할 맘 없어요, 어차피 할 수도 없구요.
이번이 우리 처음이자 마지막이예요
준 보 : (당황) 그게 무슨 . . .
공 숙 : 오늘 정말 고마웠어요. (고개 꺾고) 남자한테 대접 받아본 게 . . . 난생
첨이라서 . . . 뭐든 주고 싶어요.
준 보 : (혼란스런) 공주씨, 아니 고, 공숙씨! (벌떡 일어나며) 전, 정말 . . .
공 숙 : 아무도 뽑지 못하게, 함부로 뽑지 못하게. . . 지키신다고 했죠?
준 보 : (보면)
공 숙 : (진정이다) 그보다, 아무 데도 가지 않게, 제 자리 지킬 수 있게
(눈물 그득한 눈으로) 절 좀 안아줄래요?
준 보 : (뜨악, 혼란, 모호) !!!!
정확히 오후 3시를 가리키는 괘종시계 cu
왔다갔다하는 시계추 사이로 공숙과 준보의 입맞춤, 그들의 아름다운 섞임이
언뜻언뜻 겹쳐지고 . . .
씬25. 자동차 극장 (밤)
영표의 구형 그랜저 안에서 키스하는 미스홍과 영표.
홍에게 몸이 단 영표와는 달리 두 눈 반짝 뜨고 영화에 푹 빠져 있는 홍
그렇게 각자 몰입한 대상에게 서로 바쁜 두 사람.
어느 순간 홍의 좌석을 뒤로 확 제껴 버리는 영표
꺄악 놀래며 발딱 일어나려는 홍, 그 위를 덮치는 영표의 달디단 목소리
영 표 : (진심이다) 사랑한다, 사랑해, 사랑해, 홍아!
씬26. 공숙의 방 (심야)
잠든 경노와 나란히 누워 있는 공숙, 마치 '사랑한다'는 말에 놀란 듯 번쩍 눈을 뜬다.
그 얼굴 위로 암만 잊으려해도 집요하게 파고드는 영상.
insert>불면 날아갈세라 쥐면 깨질세라 사무치게 따뜻했던 준보와의 입맞춤 ....
그 따사롭던 감촉이 되살아나 몹시도 괴로운 공숙.
온 몸을 공처럼 접었다 폈다 일어났다 앉았다 . . . 그래도 미칠 듯 파고드는
그 느낌. 마침내 자신의 마음을 단도리하듯 잠든 경노 으스러지게 끌어안는다.
씬27. 준보의 집, 마당 (새벽)
평상 위에 메리야스 차림으로 누웠다 벌떡 일어나 머리맡의 물병, 병째로 들이키다
숫제 머리에다 들어붓는 준보. 도저히 어제, 자신에게 일어난 일이 믿기지 않는다.
물이 떨어지는 얼굴 들어 희뿌연한 하늘을 올려다보면 암만 지우려해도 보이는 얼굴
insert>공 숙:잘 들어요. . .전, 준보씨와 결혼할 맘 없어요, 어차피 할 수도 없구요 이번이 우리 처음이자 마지막이예요
insert>공 숙:오늘 정말 고마웠어요. (고개 꺾고) 남자한테 대접 받아본 게 난생
첨이라서. . . 뭐든 주고 싶어요.
그 몰골 그대로 뛰쳐나가는 준보
씬28. 해피 결혼상담소 (이른 아침)
창가에 놓인 앙증맞은 화분에 물을 주고 있는 원소장.
벌컥 열리는 사무실 문.
획 돌아보면 물에 젖은 몰골로 성큼 다가오는 준보.
뜨악한 원소장 얼굴 위로
공 숙 : (E,두렵고, 두려운) 미쳤어?
씬29. 숙이네 반찬가게 (아침)
공 숙 : 누구 죽는 꼴 보구 싶어?
원 : 어지간했음 내선에서 끝냈지 너한테 벙긋이나 하겠니?
공 숙 : (가슴이 두방망이질 치고 있다)
원 : 너한테 부탁할 게 있대, 너라면 들어줄 것 같다고 하루죙일 붙박이야.
공 숙 : (실은 보고싶다, 그래서 더 펄펄뛰는)붙박이든 망부석이든 그건 그쪽
사정이야, 난 몰라!
원 : 어떻게 행동했길래 널 술집 여자루 착각하니?
공 숙 : !!!
원 : (e)술집 아니라 더한데 있었대도 상관없대. 그러니 한번만 만나게
해 달래.
공 숙 : !!!!
원 : (핸드백에서 쪽지 꺼내며) 그쪽 연락처야. (내밀면)
공 숙 : (질겁, 한걸음 물러서며)딱 한번이랬지? 마지막이랬지? 절대 안봐, 죽어도 안봐!
원 : 너 왜 그래? 지금 준보씨가 너랑 사귀재? 한번 더 만나달라는데,
이렇게 까지 펄펄 뛸 일 뭐 있어?
공 숙 : (뜨끔하고) . . .
원 : 그래 뭐, 한번이 두 번 되고 두 번이 세 번 되다 정들 수도 있겠지.
그치만, 천공숙이 재미엄마 짝이야 나겠니? 차라리 지구가 두 쪽 나는 게 쉽지! (연락처 카운 위에 놓고 나가면)
공 숙 :(그제서야 쪽지를 쳐다보는 깊은 눈길) . . .
씬30. 도로 + 그랜져 안
운전하는 영표, 핸즈프리로 연결해 조수석의 미스홍도 다 듣게 통화하고 있다.
영 표 : 나주? 거까장 가서 놓쳤단 말여?
만 섭 : (f, 지친) 제수씨 한티는 간간히 연락하는 모냥인디, 워디로 퉜나 쪼께 알아봐
영 표 : (뜻밖이다) 그려? 난 참말로 금시초문인디?
만 섭 : (f)제수씨한티 면목이 읎다, 참말로 고마워, 짬짬히 애들 건사하시는 모냥인디
나가 은혜 잊지 않것다고 전혀.
영 표 : (흐뭇한) 공숙이 고게 소갈딱지가 드러서 그렇지 정은 깊응께
미스홍 : (눈 흘기며) 오빤! (영표의 허벅지를 꼬집으면)
영 표 : (터져나오는 비명) 으, 따거!
만 섭 : (f)(열불난) 너 . . .여태 그 지랄이냐? 속이 썩다썩다 문드러지는 꼴 보고도
여태 그 지랄여?
영 표 : (아랑곳없는) 내가 뭐얼? (홍의 허벅지 쓰윽 더듬는)
만 섭 : (f) 제수씨 한티 잘혀 임마. 너까지 셋트로 내짝나지 말구!
영 표 : (호기롭게) 너나 잘혀 마, 너나! 내 마누란 끄떡 없응께!
씬31. 반찬가게
공숙의 반찬가게, 하도 만지작거려 날긋날긋해진 쪽지,
그 속의 전화번호 널뛰는 심정으로 쳐다보고 있는 공숙, 마침내 수화기 집어든다.
씬32. 준보의 집, 마당
햇살이 쏟아지는 마당.
보자기 두른 채 까막까막 졸고 있는 준보부의 수염을 정성껏 면도해 주고 있는 준보.
마루에 놓인 핸드폰 울리면 다급하게 핸드폰 들고
준 보 : 여보세요?
씬33. 반찬가게
공 숙 : . . . 저예요
씬34. 준보의 집, 마당
준 보 : (코끝이 다 찡해지는) 많이 기다렸어요, 아주 많이. . . 잘 있어요?
씬35. 반찬가게
공 숙 : (흔들리는, 그래서 차디차게) 저 바빠요, 부탁할 게 뭐죠.
씬36. 몽타주
면도를 했는데도 병색이 완연한 준보부를 부축해 안방에 눕히는 준보,
그 위로.
준 보 :(e)병원선 길어야 석달이랬어요. 벌써 두달이 지났는데,...며느리감 보고 싶어하셔요
이대로 가시면 . . .어떻게든 맘 편케 해드리고 싶어요.
공숙의 반찬 가게, 예쁜 찬합에 반찬거리 이것저것을 싸고 있는 공숙
손끝에 정성이 담뿍 담겨있다. 마지막에 분홍빛 보자기로 꽉 동여매는 그 위로
준 보 : (E) 정말... 맹세코 더는 안 바랠께요, 이번 한번만, . . .한번만 부탁해요.
씬37. 들길
무릎 위의 분홍빛 보자기로 싼 반찬 통에서 화면 빠지면
푸른 들길을 공숙을 뒤에 태우고 달리는 준보, 그 얼굴에 만발한 햇살
둘 다 참으로 오랜만에 티없이 행복한 얼굴이다.
씬38. 준보의 집, 안방
기름을 발라 반들거리는 머리, 한복차림으로 한껏 모양을 낸 채 벽에 기대앉은 준보부
준 보 : (e)아부지, 즤이 왔어요
준보부 : (설레여서, 손에 침 묻혀 반들거리는 머리 한번 더 만지며) 잉, 그려. 어서 들와
준 보 : (문 열고 들어오며) 들오세요, 공숙씨! (하다가 흠찟 놀래) 이게 뭔 냄새예요?
공 숙 : (들어오고)
준보부 : (당황) 애기가 온다는디, 원체 머리카락이 심란혀서 말여, (민망해서 준보에게) 넌 워째 머릿지름 떨어진 것도 몰러?
준 보 : (준보부 옆의 반밖에 안 남은 기름병보고, 황당) 아부지, 그렇다구 참기름을 . . .
공 숙 : (그 정성이 가슴아프고)!!
준보부 : (공숙에게 떠듬대는) 나는 . . . 암시랑토 않은디 . . . 냄새가 심헌감?
공 숙 : (웃는) 아뇨, 저도 아무 냄새 안나요. (준보 보며) 괜히 준보씨가 . . .
준 보 : (고마워 보는)
공 숙 : 절 받으세요. (절을 하는)
준보부 : 절은 무신, (하면서도 좋아서 공숙을 보는)
준 보 : (보자기 내보이며) 공숙씨가 아부지 드시라고 맛난 반찬 싸왔어요.
씬39. 들길 혹은 전원풍의 어디든.
나란히 걷고 있는 준보와 공숙
공 숙 : 아버님 생각하면 참 잘 내려오셨네요
준 보 : 솔직히 퇴출당하고 막막하니까 내려온거죠.
공 숙 : . . . .
준 보 : (씁쓸히) 십 년을 은행에 있었는데, 공과금 납부창구가 젤 맘 편했어요
돈 굴리는 재준 꽝인데 돈 세는 건 정말 잘했거든요
공 숙 : (미소 짓는)
씬40. 시골 버스정류장 (칠성리 ←잔저리→끝막리) 란 글자 써있는
저만치 자전거 있고, 간이 의자에 나란히 앉아 있는 두사람
준 보 : (쑥스런) 사귀던 여자가 있었는데. . . 시골 살겠다니까, 안되겠다데요. . .
이젠 정말 이곳을 떠나선 살수가 없을 것 같애요. (눈치보며 어렵게 꺼내는)
내 년 쯤엔 하우슬 두 동쯤 더 늘릴 거예요. . . 그러자면 일 손이 필요한데. . .
공 숙 : . . .
준 보 : 여기선 베테랑 일꾼 일당이 이만이천원이거든요. . . (짐짓 가볍게)
삼만원 처드릴께요, 대신 평생 고용되는 조건으루다. 어때요, 공숙씨?
공 숙 : (차갑게 보며) 딱 한번 뿐이랬죠? 더는 안바래신댔죠?
준 보 : 하지만 공숙씨!
공 숙 : (외면하며) 준보씬 저보다 훨씬 좋은 여자 만나실거예요
저만치서 달려오는 버스
준 보 : (절실한)전 아무래도 좋습니다. 공숙씨가 어떤 상황이래도
공 숙 : (벌떡 일어나며)결혼할 수 없다고 말씀 드렸잖아요, 할 수 없다구요!!
준 보 : (절규)왜 할 수 없다는 겁니까? 왜요?
공 숙 : (말 문 막힌) . . .
준 보 : (절절한) . . .
때마침 버스 와서 멎으면, 성큼 나가려는 공숙. 그 팔 나꿔채는 준보
준 보 : 그 날, 그 일 . . . 공숙씬 그게 아무 것도 아닌가요? 그래요? 암것도 아니예요?
공 숙 : (왜 아무것도 아니겠는가 하지만 매몰차게, 팔 뿌리치며) 준보씬, 대단할 지 몰라도 저한텐 그저 '하룻밤'일 뿐이에요.
준 보 : (충격이고)!!!
그대로 올라타 버리는 공숙.
한 대 맞은 듯 멍한 채 그대로 서있는 준보,
버스 안의 공숙, 외면하고 있다가 덜컹 버스 움직이면 눈물 가득한 눈을 들어
준보를 본다. 그제서야 제 정신이 든 준보, 후다닥 버스를 타려지만 이미 출발한 버스. 준보, 터질 듯 애타는 가슴으로 자전거 집어탄다.
씬41. 도로 + 버스안 + 트럭안
사력을 다해 패달을 밟아보지만 점점 멀어지는 버스.
문득 맞은편에서 트럭을 타고 오던 친구, 자전거 타고 달리는 준보를 보고
반가워 차창문 내리고 빵빵대면, 황급히 차 세우라고 손짓하는 준보.
자전거 팽개치고 트럭에 올라타곤 이미 멀어지는 버스를 쫓아가라고 소리지르는 준보. 엉겁결에 중앙선 넘어 출발하는 트럭.
씬42. 공숙의 아파트 단지
심란한 마음을 지우려는 듯 뛰다시피 단지 안으로 들어오는 공숙 "경노야!"
다급하게 부르면, 브레이드 타며 놀고 있던 경노, "엄마!" 뛰어가고
두 팔 벌려 그 아일 하나 가득 안고, 으스러지게 껴안는 공숙.
씬43. 동 일각, 트럭 안
그 광경을 벼락맞은 듯한 얼굴로 쳐다보는 준보.
운전석에 탄 친구, 공숙 한번 쳐다보고 넋 빠진 준보 한번 쳐다보고
"왜그려?" 준보 툭 치면,
바보처럼 헝 웃으며 친구를 보는 준보, 그 눈에 그득한 눈물 . . .
(F.O)
씬44. 상가 통로
(F.I)
화장품 가게, 숙이네 반찬가게, 비디오 가게가 일렬로 늘어선 상가.
모퉁이서 숙이네 가게를 가슴 져미는 시선으로 쳐다보고 있는 준보
장바구니 든 손님 나오면 따라 나오며 인사하는 공숙.
이내 몸을 감추는 준보.
언뜻 준보를 본 공숙, 설마 아니겠지 하면서도 철렁 가슴이 내려앉고.
씬45. 공숙의 아파트 복도
느닷없이 열리는 507호 현관문. 동시에 밖으로 던져지는 말린 호박고지, 가지, 기타
등등의 나물거리. 엉엉 울면서 뛰쳐나와 501호 현관문 탕탕 두들겨대는 경노.
"아줌마, 아줌마, 울엄마 죽어요, 아줌마!"
저만치 복도 끝에서 그 광경, 가슴 아프게 쳐다보고 있는 준보
이내 501호 현관문 열리고 "뭐, 또오?" 사생결단낼 기세로 507호를 향해 뛰는 원소장.
507호 공숙의 집으로 들어가자 마자 산발한 머리칼, 맞아서 엉망인 공숙을 끌고
나오는 원소장. 그 모습, 미어지는 가슴으로 쳐다보는 준보.
501호 원소장의 집으로 들어가려다 말고 무춤 서는 공숙, 얼핏 보이는 준보.
화들짝 놀래 황급히 501호로 들어갔다가 두려움에 휩쌓인 얼굴로 현관문 밖,
빼꼼 다시 한번 내다보는 공숙.
그러나 텅 빈 저 끝 . . .
씬46. 숙이네 반찬가게 안
소파에 넋 놓고 앉아 있는 공숙
찬거리를 고르는 손님, 그 옆에서 참견하고 있는 화장품가게 여자.
손 님 : (까만 색깔의 고추장보고) 어머 색이 왜이래요? 이거 상한 거 아니예요?
공 숙 : (못 듣고) . . .
화장품 : 요즘 젊은 사람들 몰라두 넘 몰라, 햇볕에 잘 말리면 이렇잖아요, 색이
손 님 : (찍어 먹어보는)
화장품 : (자기도 먹어보고 진저리치며) 아우, 이 햇빛의 맛! 죽인다아!
입맛 없을 때 요거 한 숟가락 넣고 참기름 한방울 똑 떨어뜨려서 썩썩
비벼먹음, 한그릇 기냥 뚝딱이겠네
손 님 : (웃으며) 좀 줘봐요.
화장품 : (공숙보고) 아, 뭐해? 경노엄마!!
공 숙 : (화들짝 놀래) 어? (일어나 가게 앞으로 오는)
화장품 : 요새 왜그래?
공 숙 : (무시하고 손님에게) 뭐 드릴까요?
화장품 : 고추장!, 이거 팔려고 여태 주둥이 품 판 것도 못 들었단말야?
경노엄마 진짜 이상해! 뭔 일 있지? 그지?
영 표 : (e)그러엄!
씬47. 영표의 씽크대 가게
핸드폰 통화중인 영표, 저만치 소파에 앉아 있는 준보
영 표 : (노래부르는) 앉으나 서나 당신 생각, 앉으나 서나 당신생각 . . . 더혀?
준 보 : (지갑에서 돈을 꺼내 세면서 통화중인 영표를 보는)
영 표 : 나 쪼께 먼디루 배달가야 허니께, 응댕이 흔들지말고, 문단속 잘허구 있어!
쪼물락거려서 봉창에다 넣구 댕겨야 쓰것는디 . . .
핸드폰에 쪽 소리나게 뽀뽀하고 끄는 영표, 돌아서다 자신을 쳐다보는 준보를 보면
히죽 웃는다. 그 시선 황급히 피하는 준보.
씬48. 들길
앞서 달리는 준보의 트럭.
그 뒤를 따라가는 씽크대 한 짝 실은 영표의 트럭.
그렇게 푸른 하늘 속으로 사라지고 . . .
씬49. 준보의 집, 마당
부엌 쪽에서 땀을 뻘뻘 흘리면서 나오는 영표.
수돗가에서 아버지의 똥기저귀를 빨고 있는 준보
준 보 : 수고하셨어요 (대야에다 물 퍼주면)
영 표 : (씻으려다 말고, 빨랫감보고) 뭐요, 이게?
준 보 : (멋적은) 아버님이 편찮으셔서 . . .
영 표 : 형씨도 신세가 노랗구만
준 보 : (보면)
영 표 : 여태 장가도 못하고 뱅든 아부지 수발이나 드니 . . . 안그러요?
준 보 : (정색으로) 그러니 불효지요
영 표 : ?
준 보 : 온종일 곁에서 지켜드리지 못하니 . . . 얼마나 불편하실지, 애가 탑니다.
(똥기저귀 맨손으로 썩썩 문질러대는)
영 표 : (뜨악한) !!!
씬50. 공숙의 주방 (저녁)
공기에다 밥을 푸다말고 멍 해 있는 공숙
insert>가게 통로에서 설핏 본 준보/ 복도에서 얼핏 보였던 준보
영 표 : (식탁으로 오면서) 재미네 댕긴다매?
공 숙 : (못 듣고) . . .
영 표 : (의자에 앉아서 젓가락으로 반찬 지분대며) 만섭이 처랑 연락돼제?
공 숙 : (자세 여전하고)
영 표 : (버럭) 귓구녁이 맥혔냐?
공 숙 : (화들짝 놀래, 손에든 밥공기에다 밥 퍼서 식탁에 가져가 앉으면)
영 표 : (열받지만 참고) 만섭이 처, 워딨는지 알제? 왜 숨기고 있어?
공 숙 : (대꾸하기 싫은) . . .
영 표 : 집구석이라고 일찍 들와봤자 . . .
경 노 : (눈치보며) 난, 아빠 일찍 들 오는 거 참 좋은데 . . .
영 표 :(피식 웃고, 갑자기 생각난) 도갱노, 시방은 아빠 좋지만 늙고 병들어두 좋아할겨? 늬 색시가 아빠랑 안산대두?
공 숙 : 애 데꼬 벨 소릴 다하고 있네
영 표 : (마땅찮아) 진지나 드셔! (경노에게) 아빠가 오늘 잔저리란 디를 댕겨왔는디 말여 공 숙 : ?! (질겁)
영 표 : (먹으며) 은제 아빠랑 거 한번 가자. 거 감 토마토 하우스도 귀경할 수 있고,
참 좋은 아저씨두 있어!
공 숙 : (후들거리는)!!!
경 노 : (e) 어떤 아저씬데요?
영 표 : (밥 먹으며)아빠보다 나이두 많은디, 여태 장가도 못가구 자기 아부지 똥
오줌을 다 받어.
경 노 : (못 알아들었다) 그 아저씨 디아블로 할 줄 알아요?
영 표 : (답답) 자식이 그저 게임만 . . . (정색으로) 너, 딴 건 다 아빠 닮어두 좋은디,
아들 노릇한 건 아빠 닮음 안되야. 아들 노릇은 그 아저씨가 정답여,
(혼잣말로) 은제 꼭 데꼬 가야쓰것구만
공 숙 : (하얗게 질리는)
경 노 : 엄마두 같이 가. (툭 치면)
공 숙 : (놀래서 벌떡 일어나는)
영 표 : (의아)?
씬51. 경노의 방 (밤)
잠든 경노, 방안을 왔다갔다하면서 심란하고 불안해서 어쩔 줄 모르는 공숙
문득 방문 열리고 들어오는 영표, 얼른 옷장 열어 베개 꺼내서 눕는 공숙
영 표 : 오늘도? 오늘도 갱노랑 주무시것다?
공 숙 : . . .
영 표 : (다가와 모로 누운 공숙의 엉덩이 쓰다듬으며) 니가 이러니께 (내가 딴 맴을)
공 숙 : (탁 쳐내고) 불꺼.
영 표 : 내가 모를 줄 알어? 잔저리 말여
공 숙 : (긴장) !!
영 표 : 존 말 할 때 털어놔 . . . .
공 숙 : (초긴장) !!!
영 표 : 등잔 밑이 어둡다고, . . . 거 있지? 재미엄마 거 숨었지?
공 숙 : (휴우, 안도감과 함께 불현듯 화가 치밀어 벌떡 일어나며) 심심해?
나, 같이 놀아줄 맘 눈곱만치도 없으니까 가서 자!
영 표 :(은근슬쩍) 요상허네, 그럼 뭣땀시 그리 놀랬으까? 잔저리란 말에 진저릴 치던디?
공 숙 : (당황) . . . 내가, 내, 내가 은제에? (방을 나가버리는)
영 표 : (찜찜한) 저게 시방? . . . (문득 가당찮다) 벨 잡생각이 다 드네!
허구헌날 반찬 가게에 처박혀 있는 것이 뭔 재주루? (피식 웃는)
씬52. 도로
"숙이네 건건이" 오토바이 타고 맹렬히 달리는 공숙
씬53. 공터 (공숙이 사는 도시/ 건설 현장이나, 사람 없는 곳)
마주 서 있는 공숙(두렵고 화난)과 준보(그리움에 사무친)
공 숙 : 씽크대 주문했죠?
준 보 : . . .
공 숙 : 일부러 남편 가게에서 . . . 지금 뭐하자는 거예요?
준 보 : (고개 떨구고) 미안해요.
공 숙 : (너무도 두려운) 도대체 왜. . . ? (마음 가다듬고) 잘못했어요, 남편있고,
애 있는 여자가, 처녀처럼 준보씨 만난 거 . . . 미안해요. 하지만, 준보씨 이러는 거. 나 . . . 무서워요. 왜 이러는지
준 보 : (애타는) 모르겠어요? 정말 몰라요??
공 숙 : (불현듯 눈물어리고)
준 보 : 공숙씨 그렇게 다녀가고 . . . 날마다 기다리셨어요. 싸오신 반찬 드실 때마다
언제 또 오냐고 . . . 짜증나 견딜 수 없게.
공 숙 : (가슴 아픈)
준 보 : 그러더니 씽크댈 들여놓으라고 성화셨어요
공 숙 : !
준 보 : 근천스런 부엌서 며느릴 맞을 수 없다고, (욱해서)예, 그래요, 그렇잖아도
핑계 거리가 필요했는데, 잘됐다 싶었죠, 그래서 갔어요.
공 숙 : (절규) 그래서 어쩌려구요?
준 보 : (질세라)나두 참으려고 했어요. 가정 있는 여잔데. . . 아니다, 아니다, 골백번도
더!! 하지만, 그날, 그 일이. . . 그 날의 당신이 너무도 생생해서 . . .
공 숙 : (가슴 저미고, 그러나 최선을 다해 야멸차게) 나, 유부녀예요. 그까짓
하룻밤 얼마든지 표 안나는 유부녀. 다신 내 앞에 얼씬거리지 말아요
(돌아서려면)
준 보 : (폭발) 당신, 행복하지 않잖아!!
공 숙 : (질겁한 얼굴로 보는) !!!
준 보 : (울음으로) 당신 없인 안되겠어, 정말 . . . 당신 없인 . . .
공 숙 : (온 몸이 녹아 내릴 것 같다/ 그렁해지는 눈가)
준 보 : (와락 껴안으며) 나랑 . . . 나랑 다시 시작해요
공 숙 : (그대로 안긴채/아. . .이 품에서 빠져나가야 하는데 . . ./눈물 쏟아지고)
준 보 : 당신 냄새, 이 냄새. . . 밤마다 미칠 것 같았어. . .
공 숙 : !!!!
공 숙 : (늘어져있던 팔, 자기도 모르게 올라가 준보를 끌어안으면)
준 보 : (더욱 껴안으며) 사랑해요, 사랑해요 공숙씨!
공 숙 : (순간, 세차게 준보를 밀치고) 나, 우리 경노없인 못살아요!
준 보 : (진심으로) 좋은 아빠 될께요, 자신있어요. 공숙씨!
공 숙 : (충격이고)!!!!
준 보 : (애간장이 타는) 정말 잘 할 자신있어요, 믿어봐요, 어떻게 할까요?
내가 어떻게함 공숙씨가
공 숙 : (두렵다, 그대로 냅다 도망쳐 버리는)
준 보 : (추락이다) . . . 공(숙. . . 부르려다 목메는)
씬54. 도로 +영표의 트럭안
불에 덴 듯 달리는 공숙의 오토바이.
문득 맞은편에서 배달이라도 다녀오는 듯 마주 오는 영표의 트럭.
전혀 알아보지 못하고 질주하는 공숙의 오토바이 의아해서 보는.
씨55. 한적한 곳
오토바이 저 혼자 세워져 있고,
저만치 나무 밑둥에 앉아 얼굴을 가린 채 엉엉, 엉엉 울고 있는 공숙.
동 일각,
울고 있는 공숙을 황당하고 어이없고, 기막힌 얼굴로 쳐다보고 있는 트럭속의 영표.
씬56. 씽크대 가게
담배를 피우며 핸드폰 든 채 가게 안을 왔다갔다하다 하는 영표, 불안, 초조.
만 섭 : (f)절대 윽박지르지 말어, 낌새 챘다싶어 조졌다간 그날로 도루묵이니께.
눈치 못채게 살피란말여. 너. . . 진짜 승질 죽여라, 승질 죽여!!.
영 표 : (열 불이난, 피우던 담배 사정없이 바닥에 패대기질하며) 낌새? 뭔 낌새?
야이 새끼야, 길 바닥에 오토바이 세워놓고 눈물 짜고 있음 다 그 과여?
너, 한번만 더 내 마누라 가지고 그딴 소리혀봐! 너 죽고 나죽는 겨!!
(꽥) 너 죽고 나 죽어!!! (핸드폰 집어 던져 버리는)
이 황당한 상황이 해석도 접수도 안돼 씩씩대는 얼굴 cu
씬57. 결혼상담소 안 (밤)
소주잔 앞에 놓고 마주 앉은 원소장과 공숙, 둘 다 어지간히 취해있다.
금방 감동적인 영화한편 본듯한 표정의 원소장.
진이 다 빠진 얼굴의 공숙.
원 : 가.
공 숙 : (보면)
원 : 팔자 고쳐 버려
공 숙 : (주루루 흘러내리면 손바닥으로 닦는)
원 : 자고나니 삼십이고 밤새 눈 온 듯 사십이더라. 인생 짧어.
공 숙 : . . . 겁나.
원 : 등신, 겁날거 뭐있어. 경노까지 책임지겠다는데.
공 숙 : 우리 경노, 지 아빠 좋아해.
원 : (기가 찬) 좋아해? 허구헌날 지 엄마 두들겨 패는 애비, 참 잘두 좋아하것다!
공 숙 : . . . 그러지마. 경노아빠, 가구공장 전전함서 번 돈, 울 엄마 입원비하라고 내준
사람이야, 그러구 자긴 베니어판서 잤던 사람이라구.
원 : 그런 놈이 왜 허구헌날 딴 짓이야?
공 숙: . . . 내가 막무가내였어. 이웃사촌으로 정든거 빼곤, 피 한 방울 안섞인 남인데 빚진 기분 땜에 견딜 수가 없었어. 그래서 . . .
원 : (기가 찬) 너라도 주자. 저당잡히듯 니 몸땡이라도 주자? . . . 그래서
저는 싫었는데 경노 생겨 억지루 산다 이거야?
공 숙 : (고개 떨구고) 경노 아빠, 잘못 없어. 인심쓰고 인생 조졌단 말. . .얼마간 이해해
원 : 조져?
공 : 경노아빠 . . . 첩들 치맛폭에서 자식 문전박대한 아버지땜에 고생고생
자란 사람이야, 그 사람 . . . 자기 아부지 같은 애비 안되는거, 그게
소원이래. . . 말루만이라도 난 . . . 그런 소리 들을 때가 젤 행복해.
원 : (열통 터져) 새끼 없는 년 이해 못할 소리 작작하고, 가!
어쨌거나 너랑 사는 게 인생 조졌단 놈하고 널 미친 듯 사랑하는 사람하고
비교가 돼? 뭘 망설여? 뭘!
공 숙 : (너무도 괴로운) . . .
씬58. 공숙의 아파트 (심야)
시계, 밤 12시를 넘어섰다.
좌불안석, 화가나 어쩔 줄을 모르고 있는 영표.
구석에서 그런 영표의 눈치를 살피며 잔뜩 겁먹고 있는 경노.
때마침, 현관문 열쇠 돌아가는 소리 들리면 후다닥 현관으로 내달리는 영표.
씬59. 복도식 아파트 (심야)
501호 현관문 벌컥 열리고 잠옷차림으로 엉엉 울면서 뛰쳐나오는 경노.
507호 원소장의 현관문 탕탕 두들겨 댄다. 이내 벌컥 열리는 현관문.
"울 엄마, 죽어요, 죽어요, 빨리요 아줌마" 손잡아 끄는 경노.
걱정스런 얼굴로 아이손 잡고 501호 향해 가다가 우뚝 서는 원소장.
들리는 영표의 화난 목소리 "여편네가 오밤중이 다 되서 들와? 것도 술처먹구?"
던지고 깨지는 소리 들리고.
'그래, 패라, 패, 패서 등 떠밀어라' 싶은 심정인 원소장.
원소장 : (키높이 낮추고)경노야, 엄마 안죽어. 걱정말고 오늘밤은 아줌마랑 자자
경 노 : (울면서) 안돼요, 울 엄마 죽어요, (손 잡아끌며) 빨리요, 빨리요, 아줌마!
원소장 : (경노 꼭 껴안고) 아니, 엄마 안죽어, 오늘은 엄마 . . . 하나도 안아퍼. 걱정하지마
씬60. 몽타주(심야)
공숙의 거실.
엉망으로 깨지고 부서지는 세간, 그 한쪽에 '날 잡아 잡 수' 죽은 듯 앉아 있는 공숙. 지쳐 헉헉대다 반응없는 공숙을 겁먹은 얼굴로 쳐다보는 영표.
경노의 방.
엉망으로 깨지고 터진 공숙을 덮치려는 영표.
전혀 반응없는 공숙. 문득 떨어져나가, 정말 두려운 표정으로 공숙을 쳐다보는 영표cu
씬61. 씽크대 가게, 사무실
거의 제정신 아닌, 아니 두렵고 주눅든 얼굴로 통화중인 영표
만 섭 : (f, 열받친)팼냐? 팼어? 야이 새끼야, 내 마누라두 늑신 두들겨 맞고 튔어.
만약 제수씨까지 퉜다간 우리 마누라 못찾아. 어떡할래? 어떡할텨?
영 표 : (당황)왜 사람 겁주고 그래 마, 아직 몰러, (거의 울상인) 공숙이 그거
심지 하난 땅꿀여, 그런 여자 아녀, 아니란 말여
만 섭 : (f)야이 새끼야, 바람든 무가 표나데? 표나??
더 듣고 싶지 않다, 핸드폰 꺼버린다. 그러나 불안하다. 정말 바람든 무라면?
맞다면?? 그렇다면??? . . . 냅다 뛰쳐나가는 영표.
씬62. 들길 (석양)
마치 . . . 저 죽는 줄 모르고 불꽃 속으로 달려드는 불나방처럼
지는 석양 속으로 돌진하는 준보의 트럭. 짐칸에 커다란 트렁크 두어개 실려 있다.
씬63. 공숙의 반찬가게 + 상가통로
아직도 멍이 가시지 않은 얼굴로 넋놓고 앉아 있는 공숙, 그렁한 눈물.
성큼 가게 안으로 들어오는 준보. "공숙씨!" 부르면
돌아보고 심장이 멈춘 듯 굳는 공숙.
준보, 멍든 공숙의 모습이 제 살 찢긴 듯한 통증이다.
공 숙 : (긴장하는)
준 보 : (다가오는)
화장품 : (e) 아휴, 장사하기 싫다.
준 보 : (우뚝 서는)
화장품 : 뭐 재미난 일 좀 없으까 (준보 보고 뜨악하는)
준 보 : (얼른 마음 추스리고) 저, 무짱아찌 좀 . . .
공 숙 : (반찬통 쪽으로 가면서) . . . 얼마나요?
준 보 : 한 근만 . . .
화장품 : (이내 심드렁해지고)
공 숙 : (무짱아찌 푹 퍼서 저울에 단다. 3kg도 훨씬 더 넘는 저울. 그러나 전혀
눈금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대로 비닐 봉지에 싸서 내밀면)
화장품 : 엥? 경노엄마, 저기 저울 . . .(준보 한번 눈치보고)
준 보 : (받으며) 깻잎두. . .
공 숙 : (외면한채) . . . . 얼마나요?
준 보 : 것도 한근만 (애타는 마음으로 보는)
공 숙 : (깻잎 푹 덜어 이번엔 아예 저울도 달지 않고 비닐에 싸면)
화장품 : 경노엄마! 그게 한근이야?
준 보 : (봉지 받으며 공숙의 손 스치면)
공 숙 : (바람처럼 빼내고)
준 보 : 저. . . (갈급하게) 파김치두 . . .
화장품 : (기막혀)아저씨, 한꺼번에 달라 하세요, 한꺼번에!
준 보 : (아랑곳없이 공숙만 애타게 쳐다보는)
공 숙 : (외면하고 파김치 담는)
화장품 : (그제서야 이상한) 엥?
공 숙 : (재빨리 봉지 내밀며) 구천원예요.
준 보 : (호주머니 뒤져 만 원짜리 한 장 내밀면)
화장품 : (노골적인 관심을 드러내고 두 사람 번갈아 보는)
공 숙 : (받으며, 당황하는)
준 보 : (할 수없이 나가는) 많이 파세요. (그대로 봉지 들고 돌아서 가면)
공 숙 : (그런 준보의 뒷모습, 미어지게 쳐다보는)
화장품 : (공숙의 눈빛마저 예사롭지 않다. 얼래?? 요상타 싶은데)
공 숙 : (터질듯한 가슴 어쩌지 못하고 냅다 뛰는)
화장품 : (놀래) 경노엄마!!
준 보 : (그 소리에 뒤돌아보면)
공 숙 : (달려와/눈물 그렁한) . . .
준 보 : (역시 목에 찬) . . .
공 숙 : (허리에 찬 전대에서 천원짜리 내밀며) 거스름 돈을 . . .
내민 공숙의 손 CU
아 . . . 이 마지막 기회, 와락 그 손 부여잡고 뛰는 준보.
그대로 상가를 빠져나가는 공숙
화장품 : (기겁)어머머머, 경노엄마, 경노엄마아! (주위 상가 사람들 고개 빼꼼 내밀고)
씬64. 동 상가통로
총알처럼 상가통로로 뛰쳐 들어오는 영표.
웅성웅성 모여있던 상가 사람들 중에 영표쪽으로 쪼르르 달려오는 화장품
씬65. 도로 + 준보의 트럭안 (석양)
엑셀레이터를 밟아대는 준보, 옆자리에서 차 세우라고 소리 지르는 공숙
공 숙 : 차세워요, 준보씨, 차세워요!!!
준 보 : 이대로 가는 거예요, 어디든 당신만 있다면
공 숙 : 난 떠날 수 없어요. 안떠나요!!!
준 보 : 경논 내가 담에 데려올께요
공 숙 : (사력을 다해) 우리 경노, 도경노지 황경노 아니예요, 차 세워요!!!
준 보 : (눈물을 흩뿌리며 미친듯) 그럼 버려요, 우리끼리 가는거예요, 당신과 나
공 숙 : 미쳤어요? 난 경노 버릴 수 없어요!!! 죽어두
준 보 : (폭발) 왜 못 버려! 난 아부지도 버렸는데, 낼 모레면 죽을 아부지도,
아부지도 버렸는데에!!! (끼익 브레이크 밟는)
씬66. 몽타주 (네온싸인이 켜질 무렵)
다방이란 다방, 심지언 여관, 모텔등을 뒤지고 다니는 영표, 제 정신 아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 그 앞을 스쳐가는 "잔저리 행" 시외버스.
섬광처럼 스치는 장면.
insert>씬47 핸드폰에 쪽 소리나게 뽀뽀하고 끄는 영표, 돌아서다 자신을 쳐다
보는 준보를 보고 희죽 웃으면 그 시선 황급히 피하는 준보
이제서야 감잡힌다, 눈에 불을 켜고 냅다 트럭 집어타고 달리는 영표.
도로를 질주하는 영표의 트럭.
씬67. 준보의 트럭 안
흥분이 가라앉은 두 사람, 앞만 바라보고 있고
공 숙 : 저 . . . 준보씨 좋아해요, 하지만 난, 천공숙이기 전에 도영표 마누라고
우리 경노 엄마예요
준 보 : . . . .
공 숙 : 죽어도, 경노 엄마 자리 버릴 수 없어요, 그래서 도영표 마누라 자리 역시 못
버려요. . . (눈물 그렁한) 버릴 수 있는 건 천공숙, 그거 하나예요
(황급히 내려버리는)
준 보 : . . .
씬68. 국도
국도를 터벅터벅 걷는 공숙, 저만치 고집스럽게 서있는 준보의 트럭.
시동 거는 소리 들리지 않으면, 당당하게 걷던 발자국에 점점 힘이 풀린다.
제발 어서 떠나줬으면,
아니, 이대로 . . . 이대로 다시 . . . 돌아갈까? . . . 허물어지는 걸음걸이 . . .
획 돌아서는 순간,
재미엄마: (e) 경노엄마!
돌아보면, 커다란 가방 하나 들고 저만치 간이정거장에 추레하게 서있는 재미 엄마.
눈물 그렁한 눈으로 재미엄마 쳐다보는 공숙.
마침내 출발하는 트럭, 부웅 떠나는 소리 들리면 와락 눈물이 쏟아지는 공숙.
떠난 트럭에 튕겨지듯 달려와 재미엄마를 끌어안으며
공 숙 : (마치 다짐하듯) 잘했어, 정말 잘했어, 잘왔어 . . . (하염없이 울어대는)
그 두 여자를 스쳐 쏜살같이 달리는 영표의 트럭
씬69. 준보의 집 앞 (밤)
끼익, 멈추는 영표의 트럭
황급히 대문 들어서려는데 들리는 준보의 피를 토하는 절규.
준 보 : (E)아부지!!
영 표 : (멈칫하는)
이내 안방문 벌컥 열리고 축 늘어진 준보부를 엎고 나오는 준보
씬70. 도로 + 영표의 트럭안
황당한 얼굴로 운전하고 있는 영표, 준보부를 끌어안고 조수석에 탄 준보
준 보: (제정신아닌, 준보부의 뺨을 두들겨대며) 아부지, 아부지, 정신 좀 차려요, 아부지
이대로 가심 안돼요, 아부지!! (영표에게, 미친듯) 밟아요, 더 밟아요!! 더!!!
영 표 : (놀래 엑셀레이터 더 밟아대고)
씬71. 응급실
병상 위의 준보부, 의료진들의 빠른 손놀림, 촉박하고 긴박하게 . . .
그러다 멈추는 심장 파동. . . 침상 위의 아버지를 흔들어대며 절규하는 준보.
암만 발광을 해도 너무도 순한 아버지 . . . 의료진들 침상에서 그를 떼내려하면
"나도 데리고 가"라고 "저도 죽여달라"고 아버지 부여잡고 울부짖는 준보.
보다못해 버둥대는 준보를 질질 끌고 응급실 밖으로 나가는 영표
씬72. 응급실 밖
준 보 : (광기)놔, 이거 놔! 울 아부지 따라갈거야, 울 아부지 . . .
영 표 : (준보의 멱살을 쥐고/험악한) 작작 좀 혀, 난!! 울 아버지 숨 넘어간다는
디두 안가봤어. 자식 노릇 한번 지대루 못헌 놈 염장 지르지 말구
준 보 : 울 아부지 내가 죽였어!! 내가 죽였다구!!!
영 표 : (뜨악)
준 보 : (오열)아부지 땜에 되는 일이 없다구, 떠날 거라구, 여자에 미쳐서, 도망치겠다고 붙잡는 손 걷어차고. . . 걷어찼어 . . 울 아부지, 내가 죽였어!! 내가!!!
영 표 : !!!!
씬73. 시골 마을 전경
한 폭의 동양화같이 아름다운 시골길을 소리 없이 달리는 엠블란스
씬74. 준보의 집
대문 앞에 걸려있는 謹弔燈
마루에 탈진한 얼굴로 앉아 있는 준보. 저만치 지친 얼굴로 앉아 있는 영표.
모른 척 앉아있지만 둘 다 서로의 마음을 읽고 있다.
영 표 :(어렵게 말 꺼내는) 그란디, 그란디말여 . . . 왜 그 여자랑 안 도망치구 도로
왔댜?
준 보 : . . .
영 표 : 그대로 가 뻐렸음, 이 꼴 저 꼴 안보고 속 편혔을틴디. . .
준 보 : . . . 난 아부지마저 버렸는데, 그 여잔 . . . 아무것도 버릴 수 없다더군
영 표 : !!
준 보 : 아니, 버릴 수 있는 건 오로지 자기 자신뿐이래.
영 표 : (그제서야 보는) !!!
준 보 : (너무도 쓸쓸하게) 이제야 알 것 같애, 떠나지 않기 위해,
자기 자릴 지키기 위해, 날 만났단 말 . . .
영 표 : (왠지 먹먹해지고) . . . 그랑께, (관심 없는 척 벌떡 일어나며) 여자두 . . 여자두, 형씨따라 떠나고 싶어하긴 했수?
준 보 : . . .
영 표 : (대답 없자 돌아서 보면)
준 보 : (눈물 그득한) 죽어도 . . . 죽어도 같이 갈 수 없다더군!
영 표 : !!!!!
씬75. 몽타주
공숙의 아파트, 주방/ 경노 밥그릇 위에 조기살점 발라서 올려놔 주는 공숙
그렁한 눈물 애써 감추는 얼굴이 꺼질 듯 애처롭다.
포장마차/ 폭음을 하고 있는 영표, 술잔을 물 마시듯 들이붓는 그 얼굴에서
자신에게 죽어라고 얻어터지던 공숙의 모습(씬60정도) 여러 cut
겹쳐지면서 들리는 준보의 목소리
준 보 : (E) 죽어도 . . . 죽어도 같이 갈 수 없다더군
씬76. 동, 공숙의 아파트 거실
술병이 난 영표, 큰 대자로 거실 바닥에 누워 "갱노야! 갱노야!!" 불러대면
방에서 나오다 그 꼴을 보고, 속에서 불덩이 치솟는 공숙
공 숙 : 학교 간 앤 왜 자꾸 찾어?
영 표 : (웅얼웅얼) 우리 갱노 . . . 내 새끼 . . .
공 숙 : 도대체 왜이래? 출근도 않고, (뼈있는 진심이다) 살겠다고 버둥대는 내가
미친년이지, 용쓰는 내가 미친년이야!! 어이구 무녀리같은 년!
영 표 : (벌떡 일어나 앉아, 공숙을 보는)
공 숙 : (맞 보며) 왜? 미스홍이 말 안들어? 당신, 싫어졌대?
영 표 : (이제서야 이쁘다. 헝 웃고) 못 생겨가지구.
공 숙 : (뜨악) 뭐?
영 표 : (도로 누우며) 외상값이나 받어와!
공 숙 : 그걸 왜 내가 받어.
영 표 : 나 아직 술 안 깼어, 음주 운전혀?
공 숙 : 어딘데 . . .
영 표 : . . . 잔저리
공 숙 : !!
영 표 : 거 감, 상당한 집 하나 있을겨, 니미 외상값 받으러갔다 부조만 허구 왔네
공 숙 : !!!
영 표 : (버럭)아, 뭐혀?? 싸게 안가구! (그대로 돌아눕는 생각 깊은 얼굴 CU)
씬77. 시외 버스 정류장
가야할지 말아야 할지, 가고싶기도 하고 안 가고 싶기도 하고, 복잡한 얼굴로 서 있는
공숙. 때마침 정류장 쪽으로 한껏 차려입고 달려오는 화장품 여자, 공숙을 보더니 당황.
화장품 : 어머, 경노엄마! 괜찮아? (공숙을 요리조리 살피더니, 안도감) 말짱하네!
난 또 괜히 오금저렸잖아.
공 숙 : (보면) 왜그래?
화장품 : 경노엄마, 그 남자랑 그렇게 나가구, 금새 경노아빠 처들왔었어, 그래
뭔 일 난 줄 알고, 웬 남자가 독수리 먹이채듯 경노엄마 데꼬 나갔다했지
공 숙 : !!!!!!!!!
쇠망치로 한 대 맞은 듯한 표정의 공숙에게서 화면 빠지면서
화장품 : (e) 어휴 증말 다행이네. . . 어머머머! 세시 약속인데 늦겠다아!
출발하려는 버스에 황급히 올라타는 화장품 여자 보이고
씬78. 동 시외버스 터미널
잔저리 행 버스 와서 멎고,
내리고 타는 사람들 보이고, 이내 버스 다시 출발하면
정류장에 . . . 표류하듯 홀로 서있는 공숙 . . .
그녀 모습, 가만가만 지켜보다 . . . 무심히 떠오르는 . . . ending tit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