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바닷바람으로 집을 지어 그곳에 홀로 머물렀다
발가락이 세 개 달린 빛을 엮어 만든 방화벽
그래도 한쪽 눈동자에 태양의 흑점을 숨긴
저주받은 새가 끊임없이 날아들었다
걷어올린 그물마다 납덩이를 채운 생선들로 가득했다
녹슨 나사로 주린 배를 조이고 있었다
경계 없는 수역을 넘나들며 고작 몇 바이트의 장물을 실어나르고
밤마다 불붙은 기름걸레를 물고 다녔다
밖으로 나가야 하는데 그만 원본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암호화된 나를 더 이상 밖으로 내보낼 수 없었다
며칠째 풀어놓은 전자 당나귀들이
은밀히 공개된 하라르 서버에서 디코더를 찾았지만
모래 바다를 채 건너지 못했다
허공 속에 빠지는 것보다 더 끔찍한 것을
아직 나는 보지 못했다
할 수 없이 훔친 구두를 신고 다녀야 했다
나는 그저 몇 광년을 건너온 빛으로 창문을 몇 개 열었을 뿐
이를테면 내가 대답할 수 없는 질문과도 같은 것이었다
창문 밖에는 또 다른 빈 화면이 떠 있고
파란 타일이 깔린 발코니 해안에 한 덩어리 버려진 바다는
먼지 묻은 검은 탯줄로 목을 칭칭 감은 채 뒤돌아 앉아 있다
[감상]--------------------------------------------------------------------------
<알파스캔>은 모니터 제조회사 이름 중 하나입니다. 이 시는 컴퓨터의 고장과 관련된 기술적 흐름을 일상의 삶과 연결시킴으로서 낯설면서 회화적인 이미지를 선보입니다. 바이러스로 컴퓨터와 모니터에 이상이 생기자 <당나귀> 등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고자 합니다. 실지로 <당나귀>는 유명한 인터넷 공유프로그램이지요. 아마도 그곳에서 시스템 문제를 해결할 프로그램을 다운 받아 처리코자 했던 것 같습니다. 마지막 부분의 이미지가 인상적인데, 모니터로 연결되는 전선과 전기코드 등이 <먼지 묻은 검은 탯줄로 목을 칭칭 감은 채>로 강렬하게 표현되었군요. 인터넷은 정보의 바다입니다. 그곳에서 모래로 만들어진 홈페이지는 허망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인생은 그저 시간이 불어가는 대로 무늬 졌다 바람처럼 흩어지기 때문입니다.
몇 가닥 가는 구리뱀들이 서로 뒤엉켜 제 몸을 파고 기어들어간 자리에 분명 심연이나 소용돌이로 바꾸어 불러야 할 그런 푸른빛이 새어나왔다. 내 어둔 방 안으로 프로메테우스의 불, 전기가 흐르고 있었다. 어떤 이들은 두 개의 콘센트 구멍 속의 탯줄이 콘크리트 벽을 뚫고 이어져 있어 그 먼 잠류와 복류의 끝을 따라가면 ‘혼돈’의 어원에서 파생된 전원電源에 닿는다고 믿었다.
그렇게 지하성소로의 내부순환 회로를 열어놓기 위해서는 검은 탯줄을 따라 들어가야 했다. 종종 그곳으로 한낮의 한가로운 편서풍이 흘러들고 둥근 물방울 속의 한 점 구름이 굳은 돌멩이처럼 고요하게 천둥을 머금고 있었다. 그곳으로 어느 순간 빛으로 이루어진 거울이 서서히 떠올랐다. 나는 홀린 듯이 출렁이는 거울 속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빛과 어둠이 리프레시되는 발광체, 모니터. 스스로 빛을 내는 장막 위에 어둠의 켜로 스며드는 탈육체성. 도피처도 은밀한 비밀결사의 장소도 아닌 바로 처음의 혼돈으로 들어가려는 저 입구. 반드시 송두리째 삼켜졌다가 다시 살아서 되돌아와야만 하는 괴물의 아가리였으며 빛의 동굴이었던 저 성소의 지하공간으로 나는 천천히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단속적으로 흘러나오는 빛과 어둠의 내부는 수은이 벗겨져 나간 깨진 거울 조각처럼 투명했다. 그 은빛 정원의 입구는 언제나 무수한 단면으로 겹쳐진 입방체와도 같아서 끊임없이 내부를 순환하는 듯이 보였다. 내 방에 링크를 하나 더 걸어놓았을 때, 그곳이 나가는 곳인지 들어오는 곳인지 나는 알 수가 없었다. 길고 어둔 터널을 향한 모태로의 귀환, 매트릭스, 그리고 움직이는 미궁. 나는 이 세계의 한쪽 후미진 곳에 빛으로 가득한 허공을 조금 더 열거나 닫아놓는 자일 뿐, 내 감각의 경험적 인식론이 단지 전기적 신호에 불과하다고 해도 나는 그다지 놀랍지가 않았다.
손끝으로 더듬어 들어가는 그곳은 끊임없이 움직이는 큐브와 같이 무한대를 이루는 공간이며 시간이었다. 미노타우로스가 웅크려 잠들어 있는 미궁이 날카로운 이빨을 가진 자궁으로서 끊임없이 폭발하는 우주였다면 테세우스의 손에 쥐어진 실타래는 생성하는 우주의 축에 닿아 있는 새로운 탯줄이었다. 그러나 푸른빛의 육각형의 방은, 실은 열고 들어가는 방이었지만 수없이 많은 다른 방으로 연결된 문을 통해 정작 스스로는 고립되어 닫히는 방이기도 했다. 출렁이는 거울, 빛의 동굴 속에는 재현된 현실이 음습한 어둠처럼 들어서 있었다. 나의 손끝은 어떤 빛의 실끝을 따라 그 환한 어둠 속으로 빨려들고 있었다.
그 중 어떤 방에 들어갔을 때 어디선가 온갖 푸른 소음으로 가득한 작은 수신음들이 이어지고 있었다. 기다림은 어떤 의미들로 가득한 소음과 같아서 좀체 푸른빛의 깊이를 열어 보이지 않았다. 들을 수 없는 낮은 음역의 주파수대를 더 끌어내려, 둥근 귀는 너무 작아 들리지 않는 미세한 휘파람 소리를 따라가고 있었다. 투루판의 마른 포도알들이 그 속에서 모래소리를 내고 있었다. 가청주파수 바깥의 수신음들은 비선형적 궤도를 그리며 귀밑 작은 웅덩이에 고였다 곧 어둠으로 돌아갔다. 안쪽은 가득 찬 듯 비어 있었다.
여러 방에 나뉘어 올려진 수많은 별들의 조각파일을 내려받고 있었는데 몇 개의 조각이 빠져 있었다. 나는 서둘러 이가 빠진 조각들을 찾아다녔다. 그러다 우연히 회원제로 운영되는 은밀한 어떤 사원에 들어가게 되었다. 대화주의자들의 공동체, 혼돈의 상호텍스트성으로 그 신성한 내부를 가득 메우고 있는 곳이었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게시물마다 일련번호를 매기고 있는 그들의 사원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몇 가지 인증이 필요했다.
내 나이를 이진수로 표기한 ‘100001’을 아이디로 쓰고 문서의 마지막 확인 버튼을 눌렀는데 데이터베이스 오류가 나왔다. 할 수 없이 나는 날카로운 거울 조각을 집어들어 내 얼굴을 사선으로 그어야 했다. 내 몸에서 이상한 형광벌레들이 기어 나오기 시작했다. 그제야 나는 액세스가 허락되었다. 그곳의 사원에서는 은밀하게 다른 ‘얼굴’들이 공유되고 있었다. 나는 이중에서 내가 찾는 이 빠진 조각파일 하나를 찾아낼 수 있었다. 내려받은 파일들을 하나로 합치고 나니 그것은 곧 자동으로 삭제되었다.
내가 가진 것은 출렁이는 거울과, 그리고 부분의 합이지만 전부는 될 수 없는 한 권의 백과사전뿐이었다. 색인 목록만으로 가득한 이 한 권의 책을 따라가다 보면 링크는 어디선가 반드시 끊어져 있었지만 그것은 단지 내부순환 회로를 구성하는 일부일 뿐이었다. 그러한 상징들의 푸른 더듬이가 대상의 의미를 향해 뻗어나가고 있었지만 그것들이 재현하는 것은 오로지 자기 자신이었다.
모든 것의 반영이며 대칭인 나는 같은 방식으로 언제든지 이곳에서 현실로 복제될 수 있었다. 그 환상의 미메시스를, 황홀한 ‘변신’의 서사를 향해 금속성의 차가운 문장들이 매운 먼지처럼 모여들었다가 곧 사라지고 있었다. 내가 허구이며 내가 모든 것인 곳에서만 내 마음이 나를 현실로 불러낼 수 있었다. 어느덧 내부순환 회로를 끊임없이 돌고 있던 한 가닥 가는 빛의 문이 서서히 닫히고 있었다.
그 앞에 대신 내가 번역할 수 없는 문자들의 모든 집합이며 정교한 배열인 바빌로니아의 토판이 놓여 있었다. 키보드였다. 명사가 없고 오로지 형용사로만 존재하는 고유한 개별성의 세계와 같이 때때로 생성과 동시에 소멸하는 불꽃의 문자들이었다. 보르헤스가 찾아낸 ‘틀뢴’의 언어 체계는 이곳에서 소통되는 유일한 방식이었다. 그것은 변형된 형태인데, 가령 자기를 규명하는 언어를 쓰면서 지워나가는 것이었다. 자기 자신은 늘 부정됨으로써만 존재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거듭 새롭게 불러야 하는 다른 이름들만이 가능할 뿐이었다. 나는 가만히 웅크리고 앉아 누군가 나를 불러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