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창시선 60권. 김주태 시집. 시인의 시에는 근대문명에 의해 사라져가는 존재들에 대한 곡진한 서정이 담겨 있다. 그렇다고 감상에 빠져 있지도 않다. 시인은 자신이 살아왔던 자리, 즉 존재의 자리가 소멸하는 현실을 해학을 통하여 보여준다.
이 시집의 또 하나의 특징은 빼어난 서정적 시선을 들 수 있을 것이다. 김주태 시인은 짧은 서정시에 능숙한 시인이다. 자연 서정시는 자칫하면 정서의 이완으로 빠질 수 있는데 시인은 섣부른 감정을 내세우지 않고 대상의 현존을 부각시키거나 서사를 새겨 넣음으로써 그 함정을 피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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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김주태
경상북도 봉화에서 태어났다. 2000년에 [작가정신]과 2006년에 [시와 사상] 신인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사라지는 시간들』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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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시인의 말·5
제1부
상여가 간다·10
사라지는 시간들·12
뒤집어진 봄·13
곤줄박이·15
객토·17
허수아비·19
노갑 씨 가을이 간다·20
혹시나 하고 산다·22
여름밤·23
참한의원·24
장날·25
가을비·26
참나무골·27
부조·28
조용한 아침·29
지게 작대기·31
고드름·33
가을비 오는 밤·34
매운 가계(家計)·35
제2부
간이역·38
갈대·39
장릉 고모·40
화해·41
밤일·43
팔씨름·45
고마운 일·46
빚·48
사천 원·49
참나무를 베다·50
욕·51
파도·52
두부 하는 날·53
백년 의자·55
이별·57
힘·59
아버지·61
즐거운 이승·63
길우 형·64
오늘의 기도·65
제3부
출구·68
간간이 벌어 근근이 살아간다·69
고비·71
바퀴·72
천천히·73
바닥을 차고 오르는 셔틀콕·75
밀려나는 것들·77
빨간 공중전화기가 있는 골목·79
원 달러·81
비정규직·83
진눈깨비·85
소각 완료·86
압축·88
숟가락으로 두루치기를 먹다·90
순대 골목·91
날렵한 모기·92
운명·93
발문_‘흙’이 키운 능청과 해학의 리얼리즘·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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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김주태 시인의 시에는 근대문명에 의해 사라져가는 존재들에 대한 곡진한 서정이 담겨 있다. 그렇다고 감상에 빠져 있지도 않다. 시인은 자신이 살아왔던 자리, 즉 존재의 자리가 소멸하는 현실을 해학을 통하여 보여준다. 이는 마지막 남은 존재의 옷자락을 부여잡고 있는 형국과 비슷하다. 그 옷자락을 노래함으로써 독자의 시선을 더 오래 붙드는 효과를 주고 있다. 그러는 동안 독자들로 하여금 떠나온/버려진 존재의 자리를 다시 돌아보게 하는 힘이 있다. 예를 들면, 시집의 맨 앞에 실린 「상여가 간다」는 농촌 마을의 한 죽음에 대한 시인데, 시의 화자는 그 광경을 이렇게 노래한다.
모닥불 주위에 모인 사람들
수박 금 좋다고 히히덕
우물우물 문어를 씹는다
오래 잊었던 맛 씹고 또 씹는다
내년엔 수박 금이 어떨런고
해거리해야지
하느님도 해마다 복을 주시는 게 아닌 거라
솔가지 진물이 다 빠지도록
오지게 우네
상주가 저렇게 울어야지
상두꾼이 모이고
상여가 간다
집을 한 바퀴 휘돌아
거칠 것 없이 뒤돌아볼 것 없이
출렁출렁 잘도 간다
_「상여가 간다」 부분
죽음이라는 슬픔을 해학적으로 그림으로써 농촌 현실의 리얼리티를 단단히 움켜쥐고 있는 시인의 역량이 밝게 드러난다. 죽음이 준 슬픔을 “오지게 우네/ 상주가 저렇게 울어야지”라고 받아주는 마음은 그런데 어디에서 온 것일까. 아마도 그것은 시인 자신의 시간에 대한 긍정 때문일 것이다. 이 점은 또 한 편의 가작인 「상여가 간다」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이 작품에서는 과거의 시간이 현재를 아직도 “버팅기고” 있다는 통찰을 통해 우뚝하다.
감나무 돌아 나올 때까지
뒤따라오던 지게 작대기
학교 늦는다고 다그치던 지게 작대기
중간고사 성적이 떨어져 춤추던 지게 작대기
나무 한 짐 지고 능선 넘다 쓰러지면
일으켜 세워주던 지게 작대기
책 몇 권 이불 하나 지고 자취방 골목 오르던 지게 작대기
객지 떠돌다 마당에 들어서니
자꾸만 기울어져가는 담벼락을
꼿꼿이 버팅기고 있네
_「지게 작대기」 부분
서사가 배어 있는 서정시
이 시집의 또 하나의 특징은 빼어난 서정적 시선을 들 수 있을 것이다. 김주태 시인은 짧은 서정시에 능숙한 시인이다. 군말이나 허언 없이 대상의 특징을 순간적으로 잡아채는 능력이 뛰어나다는 것이다. 이 또한 어릴 때부터 몸에 각인된 자연의 감각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러한 자연 서정시는 자칫하면 정서의 이완으로 빠질 수 있는데 시인은 섣부른 감정을 내세우지 않고 대상의 현존...(하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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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펼쳐보기
책속으로
봄보다 가을이 고운 가시리골
홀로 걷는 들길
복숭아 때깔이 작년보다 더 고우냐고
겨울에 저세상 간 박 씨에게 묻고 싶고
보름 전 요양원에 간 이 씨에게
감자 잘 여물고 있느냐 물어보고 싶다
가물어도 다들 시퍼렇게 버티고 있는데
모두 떠나고
사라지고
굽어지고
보이지 않네
오솔길은 없어졌는데
신작로만 시커멓게 넓어지고 있네
--- 「사라지는 시간들」
――――――――――――――――――――
혹시나 하고 사는 인간들이 주위에 많다
올해는 고추 금이 좀 괜찮을까
있는 밭 없는 밭 고추만 심고
작년에 생강 좋았다고 올해도 혹시나 싶어
논을 밭으로 바꿔 생강만 심고
혹시나 해서 논밭 팔아 주식 하다 다 털어 소식 끊기고
혹시나 싶어 송아지 왕창 들였다가
사룟값만 올라 날품 팔러 다니고
쉰 넘어 장가가서 혹시나
늘그막에 대 이을 아들 하나 보나 했는데
바다 건너온 색시는 이틀 만에 사라지고
아들 대학 졸업하고 살림이 좀 펴지려나 싶었는데
방에서 뒹굴고 있고
혹시나 농협 빚 더 낼 수 있을까 싶어
아침 먹고 부리나케 일어선다
혹시나, 혹시나 하는 사이에 세월만 간다
--- 「혹시나 하고 산다」
――――――――――――――――――――
한파가 오면 긴 겨울잠에 든다
간간이 벌어 근근이 또 며칠 버티기 위해
두더지같이 차가운 이불 속으로 파고든다
등에 얼음꽃이 파스처럼 피어오르면
몸을 더욱 웅크리고 죽은 듯 꼼짝 않는다
아픈 곳을 찾아 어루만지는 손길이
깊은 상처에 오래 머문다
문밖에는 바람이 차갑게 흩어지고
내일 일거리를 기다리는
밤 아홉 시와 열 시 사이
기별이 오기를 입술이 마르고 목이 타게 기다리다
불러주는 꿈을 꾸며 잠이 든다
몸을 일으키지 못하는 절망의 새벽
어금니 꽉 깨물고 벽을 짚고 일어서면
나를 파고 나를 메꾸는 일들
까마득히 떨어져
한 발 빼면 또 한 발 빠지는
참 징한 펄 한가운데서
이 악물고 버틴다
간간이 벌어 근근이 살아가기 위해
--- 「간간이 벌어 근근이 살아간다」
――――――――――――――――――――
어두워진 빙판길
일 마치고 집으로 오는데
먼 집의 불빛
너무 밝아 발길 돌린다
바람에 날리는 비닐 문 사이
나뭇가지에 박혀 우는 별아
눈 아프도록 밝은 달아
안주 한 접시
국물에 소주 한 잔 받아놓았다
이 세상에
내 이름 불러주고
주민번호 불러주고
사유서 쓰고
도장 찍고
손에 묻은 인주 닦고
탁 손 털어버렸다
마음도
폭포와 같아서
아무리 높은 곳에서 뛰어내려도
바닥에 와서는 잔잔해지는데
나 돌아가야 할 곳이 너무 밝아
길을 잃고
마른 나무 등걸처럼 서 있다 --- 「비정규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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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평
임꺽정도 울고 갈 엄장 좋은 사내지만 눈시울은 늘 젖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시집을 읽다 보니 그 연유를 알겠다. 소년의 눈망울에 마음 또한 해맑은 소년의 정서 그대로다. 험한 세상에서 몸으로 밥을 빌어 목숨 부지하고 가족 건사하면서 그 소년의 마음은 얼마나 부대꼈을까. 이 시집은 누구에게나 가슴속에 살고 있을 그 어린 왕자의 마음으로 현실의 사막을 건너가면서 던지는 수많은 의문과 모름에 관한 ‘눈시울 붉’은 고백이다. 요컨대 정서적 자아와 사회적 자아가 충돌하면서 생겨난 상처의 흔적에 관한 기록이다.
안상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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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아모르에 오랜동무 김주태(설매)시인의 첫시집 발간을 축하합니다
아모르 친구들 축하해주세요.
설매님,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예상하지 못했는데, 직접 저자 사인본을 보내주시고요.
제가 주위에 추천해 서점에서 10부 이상 팔아드리겠습니다.
겪어온 시절이 현의 진동처럼 마음에 울립니다.
시작에 많은 도움을 될 듯 합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