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80] 무르다 (기업 무를 자 “도로 찾다”, 보수자, 구속자) : Kinsman Redeemer
* 시간 & 기회 ~ 그리스 동상 예화!
- 역사적 배경 : 죄의 악순환 , 사사통치 시기 , 룻~ 시련과 역경 속에서 하나님의 진 리를 굳게 지키고 시모에게 헌신하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다윗 왕가의 일원이 됨.
- 룻1:8 어머니의 집 돌아가라 & 룻1:15 룻 ? 동서를 따라 돌아가라
백두산 ~ 압록강 & 두만강 (세상 & 영생) ; 지옥과 천국
《오르바;그녀의 뒤(배신) & 룻;목자를 가진다》
*부귀와 쾌락과 고생할 필요가 없는 생활? *딤후4:10
*미래가 보장되어 있는 확실한 믿음의 생활 (이삭줍기!)
- 룻1:14~18 (룻2:11) (룻2:13) & <눅15:18~19> 시녀와 품꾼의 의미?
『룻의 생활』~ (이삭줍는 일을 택한 룻 ~ 하인 ⇒“종”)
★히11:15~16 하늘에 있는 “성” & 아브라함=약속의 땅!
- 룻2:2 보아스의 눈에 뜨임 (룻2:5) ???
- 룻2:10 이방여인인 룻 ? ※히13:14 , 빌3:20
*마15:26 “개” 이스라엘 집 잃은 양 외에는 ....... *눅18:10~14 세리의 고백 ⇒ “죄인”
- 룻2:12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받으러 온 룻을 이해해 주는 보아스와 룻 ~ 인격적인 만남
(요6:37) & (눅15:18~19) ~ 아버지의 사랑과 아들의 마음(태도)?
- 룻2:20 기업 무를 자의 자격?
*혈연자 , *자원해야 하며(요10:18 스스로...) , *고엘로서 능력을 구비하여야 함.
- 룻3:13 기업을 무른다는 의미? [룻4:3]
♥고엘 ; 친족 (룻2:1,3 & 3:2, 12) ~ 혈연&친족 (히2:11) 속량(贖良)하는 사람, 회복 자
1.레25:24~25 잃어버린 기업을 도로 찾아주어야 함
2.민35:24~28 보수자 (살해당한 죽은 이의 복수를 하여야 함) → (신19:6)
3.신25:5~6 아들을 낳아 주어야 함
4.레25:47~50 종에서 해방 시켜 주어야 함. ▶죄의 종~ 롬6:16~17 (롬6:22) 해방(解放)
- 룻3:9 “시녀” ~ 룻의 고백?
- 룻4:10
- 룻4:13 *룻의 변화? ⇒㉠선민 ~ 이스라엘 백성의 일원 ㉡라합,다말과 더불어 다윗의 계보 즉, 그리스도의 계보에 오르는 영광을 갖게 됨. ㉢모압 백성이 섬기는 신 “그모스”를 버리고 하나님을 순종한 결과 하나님의 은총을 입음
- 룻4:11&15&17 오벳 [갈4:7] & 갈3:26~29 ⇔ 엡1:7 ⇔ [롬3:23] ⇔ [요5:24]
*** 도로찾은 아이와 배 (예화)
▼ 돌아간 오르바 의 의미? ▼
오르바(그녀의 목 ; 그녀의 뒤~하나님을 버림) 그녀에게서 우리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그녀는 마7:24~25 모래 위에 집을 지은 사람과 같은 모습이다. 어느 순간까지는 그리스도를 따라 나온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리스도를 따른 것이 아니요. 인간적인 어떤 정이나 이해관계를 따랐던 것이다.
그녀에게 논리적인 설득(나오미의 권유)이 닥쳤을 때 그녀는 계산을 하게된다.
(나오미의 권유가~ 확실한 믿음을 바라보지 못하였던 잘못도 있었던 게 사실이나?)
이스라엘 땅으로 가는 것이 그녀에게 아무런 이득이 되지 않는 다는 것을 듣게 되고 결국 그녀는 그것을 받아들이고 어둠의 땅으로 돌아가게 되는 것이다.
그녀는 믿음의 모험을 할 만한 이유를 스스로 갖고 잊지 못한 모든 사람을 대표한다. “영생이라는 보이지 않는 열매”를 위해 세상이 주는 부귀 영화를 포기할 만한 아무런 이유와 증거를 갖지 못한 사람이다.
그녀는 아브라함의 발걸음을 결코 이해하지 못한다. “보지 못하는 땅”, 알지 못하는 미지의 땅을 향해 나아갈 만한 믿음이 그녀에게는 없었다.(히11:15~16)
시련이 오자 그녀의 집은 떠내려갔던 것이다. 그녀(오르바)는 교회 중에 있어서 어느 순간 세상이 주는 유혹을 감당치 못해 떠나간 “데마”(딤후4:10)나 다른 양떼를 상징한다.
시련이 올 때 그 믿음은 시험될 것인데 그때 그것은 가라지(마13:25, 29~30)로 판명될 외적 신앙인 것이다.
나는 왜? 그리스도를 따르는가? 인간적인 이유 때문인가? 아니면 정말 내 속에서 확실한 이유와 , 고향을 등지고서라도 따를 만한 분명한 이유가 있는가?
목숨을 걸고 따라야 할 확실한 이유와 증거가 있는가? (요6:63)
오르바가 모압 땅으로 돌아가 버렸다고 하여 룻이 위축되거나 영향받을 아무런 이유가 없다. 비록 그녀는 같은 나라의 사람이었고 육신적으로는 동서지간으로 가까운 사이였으나 믿음의 선택을 통해 서로 정 반대의 길을 가게 된 것이다.
이제 그들은 서로의 생각을 공유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을 아쉬워할 필요가 없다. “룻” 에게는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믿음의 길이 있는 것이다.
비록 그것이 이삭을 주우며, 연명하는 시련과 어려운 환경의 연속이라도 그래서 모압 땅에서 풍족히 먹고 있을 오르바로 인해 시험이 될지라도, 믿음의 눈으로 보았을 때
“영생이 약속하는 엄청난 미래”는 잠깐의l 삶이 보여주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것이다.
룻은 메시야의 조상이 되었다. 영원한 하나님의 말씀에 자신의 이름을 남기게 되고 칭찬 받는 여인이 된 것이다. 이것이 믿음의 선택의 영원한 가치인 것이다.
이제 우리의 친구들이나 심지어 가족들까지도 불신의 선택을 하면 우리와 정반대의 길을 갈 것이다. 그러나 동요되지 말고 하나님의 땅을 바라 보아야 한다. 낯설고 험한 삶이 놓여져 있는 것처럼 보여도 단호히 “성도와 함께 죽겠다!”고 룻 처럼 고백해야 하는 것이다. 또한 룻 처럼 맡은 바 책임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아름다운 삶이 요구되는 것이다.
【유다;찬송, 베들레헴;양식의 집(떡집), 엘리멜렉;나의 하나님은 왕이시다. 나오미;희락
말론;노래(상실),기론;완전함(질병)】
- 보아스가 룻을 위해 기업무르는 자가 됨은 그리스도께서 이스라엘을 회복하셔서 그들을 천년왕국(이스라엘의 남은 자)으로 맞아들이심을 상징하고 있다. 그러나 룻기는 결코 이스라엘 민족에 한정된 하나님의 구원의 경륜을 담은 책은 아니다. 그 메시야적 구원의 경륜은 모든 이방인들도 포함되어야 마땅하다고 분별되며, 근본적으로 룻기는 그러한 목적을 위해 기록된 책인 것이다.
- 룻의 선택? 회개한 죄인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인자와 진실을 미약하게나마 목격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경험) (룻1:14)
- 고엘; 이처럼 주 예수께서도 죄(罪)로 인해 기업이신 하나님을 잃고 죄의 속박 가운데 사는 인간들을 구속(救贖)하시기 위해 고엘이 되셨는데 그분은 고엘의 자격을 획득하기 위해 인간들의 친족이 되었다. 다시 말해 그분은 성육신을 통하여 그분은 인간의 친족이 되셔서 가장 가까운 친족의 자격을 획득한 것이다.(룻2:10)【룻3:9】
- 주 하나님의 은혜를 받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 오직 지극히 낮아진 마음으로 그 은혜의 땅에 머물기만 하면 된다는 것이다.
* 자신의 신앙 경력, 교회적 위치, 성경지식 등을 내세워 하나님과 일종의 거래를 하려한다면 그 분의 은혜를 경험할 여지는 조금도 없다.
(처음에는 주님으로부터 “개”로 일컬음 받아도, 그것을 겸손히 인정한 수로보니게 여인이 주님의 전격적인 은혜를 받았듯이...말이다.)(마15:26)
* 자신이 완전히 무가치한 자임을 고백하는 “룻” 룻2:13 시녀의 하나와 같지 못하오나
* 비록 아버지는 아들이 어떠한 잘못을 저질러도 그것을 용서하고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만, 아들은 자신이 잘못하였을 때 반드시 아버지께 겸손히 나아가 낮아진 자리에서 잘못을 자백 해야한다. ~ 인격적인 만남) [눅15:18~19]
- 볶은 곡식? 이제 갓 추수한 첫 열매를 볶은 것인데 아주 맛이 좋다고 한다.(룻2:14)
이 볶은 곡식은 우리를 위해 고난을 받으시고 첫 열매되신 주님을 상징하는 것이다. 그 날 곡식이 불에 볶아져서 사람들에게 맛있는 음식이 되었듯이, 주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불같은 진노의 고난을 우리 대신 받으셔서 우리에게 달고 오묘한 생명의 양식이 되셨다.
- 보리 한 에바(약22리터) ? 우리의 은혜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룻2:17)
* 주 예수께서는 원래부터 우리의 친족이요 기업 무를 자 이셨으나 우리가 스스로 부유하고 높아져 있을 때는 그분이 전혀 인식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가 죄(罪)와 실패로 넘어져 가장 낮아지고 곤고해 있을 때 그분은 우리의 가장 가까운 친족으로 우뚝 부각되는 것이다.(마9:12~13)
* 주님의 편에서 볼 때 유업은 이미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지만, 그것을 받아 누리기 위해서는 우리의 적극적인 행동이 필요함을 본다. 그것은 집나간 탕자가 아버지의 유업을 받기 위해서는 집으로 돌아오는 의지를 발휘해야 하는 것과 같다.(룻3:9 덮으소서~ 잠8:17) 아래 참조...
- 참 안식은 우리의 구속자 되신 예수 그리스도, 즉 룻기에서 보아스로 상징되는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할 때만 가능하다. 그분만이 우리에게 안식을 주시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진실로 세상의 그 어떤 것을 남편으로 삼아도 그것은 우리에게 안식을 주지 못한다. 그들은 우리가 겪고 있는 다음과 같은 두가지 문제를 해결해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룻3:1 안식)[레25:8~12] 희년?
* 그들은 우리의 잃어버린 기업을 회복하여 주지 못하며,
* 우리들을 죄와 어둠의 속박에서 자유케 해주지 못한다.
우리를 그렇게 해 주실이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 뿐이시다.
* 주 예수는 우리를 속량(贖良)하시기 위해 죽으셨을 뿐만 아니라 우리의 영원한 살아있는 희년(稀年)이 되기 위하여 부활하셨다.(엡2:6)
- 어떤 불쌍한 사람이 그의 가장 가까운 친족에게 고엘의 의무를 행해 달라고 요청할 때, 그것은 법에 호소하는 문제가 아니라 그 친족의 마음에 호소하는 문제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경우에는 이기적인 친족으로 인해 그 불쌍한 사람이 낭패와 망신을 당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고엘이 예수 그리스도 이신 이상 그러한 염려를 한다는 것은 완전히 기우에 불과하다.
어떠한 영혼이 그분께 나아가 자신을 구속하고 회복시켜 달라고 호소해도 그분은 기꺼이 응하신다. 아니 누구라도 다가와서 그렇게 요청하기를 그분은 갈망하신다.
* 그것은 (룻3:9) 덮으소서 ... 고엘 즉, 속(贖)하는 사람이 과부에 대하여 결혼해 주고 보호해 주겠다는 상징적인 행위이다.
* 요컨데 자신의 처지를 솔직히 인정하고 주님께 나아가는 것은 우리의 책임이지만...
우리가 모든 실패와 약함을 주님께 내려놓는 순간부터 주님께서는 그 모든 상황을 자신의 책임으로 떠맡으시는 것이다.
- 룻4:1 아무여 & 보아스 = 두 언약 즉, 율법과 은혜를 예표 함.
* 롬3:20 율법을 완전히 지킬 자는 누구인가??? 율법은 정죄(定罪)할 수 있을 뿐이지 자유케 해주지는 못한다. (갈3:13) ~ 율법의 저주에서 속량(贖良) 하심.
* 룻4:6 나는 무르지 못하겠노라... 하는 것은 얼마나 율법이 우리의 회복과 자유를 위하여는 무력한지를 단적으로 상징해 준다.
* 룻4:8 신을 벗는지라... 이 율법은 그 자신의 모든 권리를 예수 그리스도께 넘겨 드렸다. 그래서 성경은 율법은 사람을 그리스도께 인도하는 몽학선생 이라고 말한 것이다.
(갈3;24) [행10:42] 【그리스도의 세계?】
*** 오벳 : “종”이란 뜻 [막10:45] 족보? 룻기 & 마태복음 (마1:5) 죄인들의 세계?
<순서>
1.룻1:15~18
<룻1:7~10, 14> 백두산(압록강 & 두만강)
그녀의 뒤~ 하나님을 떠남
롬6:23 & 살후1:8~9 & 막9:48
2.룻2:10~13
<룻2:1~2 & 5> *요6:37
3.룻3:9 구속(救贖) & 고엘
<룻2:20 & 룻3:13>
4.룻4:5~6 & 8
<룻4:1 아무여? 율법과 은혜>
5.룻4:10 & 13
<룻4:17 & 22>
▼ 돌아간 오르바 의 의미? ▼
오르바(그녀의 뒤~하나님을 버림)
그녀는 사상누각 .
인간적인 어떤 정이나 이해관계를 따름
어둠의 땅으로 향함
믿음의 모험을 할 만한 이유를 스스로
갖고 잊지 못한 모든 사람을 대표한다.
“영생이라는 보이지 않는 열매”를 위해
세상이 주는 부귀 영화를 포기할 만한
아무런 이유와 증거를 갖지 못한 사람이다.
그녀는 아브라함의 발걸음???
시련이 오자 그녀의 집은 떠내려갔던 것이다.
“데마”(딤후4:10)나 다른 양떼를 상징한다.
가라지(마13:25, 29~30)로 판명될 외적 신앙인 것이다.
나는 왜? 그리스도를 따르는가?
인간적인 이유 때문인가?
아니면 정말 내 속에서 확실한 이유와
고향을 등지고서라도 따를 만한 분명한 이유가 있는가?
목숨을 걸고 따라야 할 확실한 이유와 증거가 있는가?
어두움의 땅! 하나님을 버림과 그모스??
히9:27 롬6:23 나훔1:3 살후1:8 막9:48
[룻]
믿음의 선택을 통해 서로 정 반대의 길을 가게 된 것이다.
그들은 서로의 생각을 공유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룻” 에게는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믿음의 길이 있는 것이다.
믿음의 눈으로 보았을 때
“영생이 약속하는 엄청난 미래”는
잠깐의 삶이 보여주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것이다.
룻은 메시야의 조상이 되었다.
영원한 하나님의 말씀에 자신의 이름을 남기게 되고
칭찬 받는 여인이 된 것이다.
이것이 믿음의 선택의 영원한 가치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