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꽁뜨6] 새
1
딸아이는 새를 좋아한다. 새 하면 히치코크 감독의 동명 영화가 생각난다.
이 영화에서는 이층 창밖 나무에 새가 하나, 둘 날아들기 시작하여 나중에는 엄청난 수가 운집하고 마침내는 유리창을 뚫고 사람을 공격한다는 섬찍하고 미스테리한 공포영화이다. 그런데 딸아이가 좋아하는 새는 이런 새가 아니고 닭, 오리, 거위, 십자매 같이 집에서 사람이 가꾸고 보살펴주는 새를 말한다. 딸아이는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 부터 집에서 십자매를 키웠다. 모이도 주고 물도 갈아 주고 가끔 새장 바닥도 청소하고 모래도 갈아주곤 했다. 어느 해 인가 아들 녀석이 초등학교 정문 앞에서 어떤 아줌마가 파는 병아리 두 마리를 사 들고 온 일이 있다. 부랴 부랴 닭장을 만들어 그 안에 넣어 놨는데 얼마 못가서 시름시름 앓다가 죽었다. 십자매는 죽지 않고 몇 년씩 키웠다. 어느 날 잘못하여 십자매 한 마리가 밖으로 날라 마당에 있는 감나무에 앉아 있는 것이었다. 딸아이는 십자매 새초롱을 들고 이층으로 올라가 창문을 열고 새초롱 문을 열고 기다리니 마침내 십자매가 초롱 안으로 날라 들어왔다. 그런데 또 한번은 밖으로 날라간 십자매가 다시 집으로 돌아오지 않고 영영 잃어버린 일도 있었다. 집에서만 키우고 야생이 아니므로 아마 십중팔구 굶어 죽었을지 모르겠다.
어느 해 인가 십자매가 알을 낳았다 그것도 모두 네 개를 낳았다. 그리곤 알을 품었다. 얼마 후 알에서 새끼들이 부화했다. 모두 네 마리, 어미는 부지런히 모이를 물어 씹어서 새끼들 부리에 넣어 준다. 아마 어미는 자기 먹을 틈도 없는 것 같다.
새끼들은 무럭무럭 자랐다. 어느 틈에 몸집이 거의 어미만 해졌다. 어미 둘 새끼 넷 모두 여섯 마리가 둥지에 바글 바글 했다. 둥지에 자리가 없어 새끼들은 어미 등위로 올라 타 자곤 하였다. 마침 여동생 부부가 찾아와 두 마리를 분양해 주었다.
2
딸아이가 초등학교 때 녹번동 집에서 닭을 키웠다. 닭의 날개며 털이 마치 뭉게구름이 피어나듯 하여 딸아이는 닭 이름을 뭉게구름이라 지었다. 마당 한구석에 닭장을 지었다. 닭장에 문을 만들었는데 안으로 열리게 되어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뭉게구름이 닭장 밖으로 나왔다. 이 녀석은 부리로 문을 잡아당겨 열고 나온 것이다. 그리고 집으로 들어오는 계단을 올라와 문을 부리로 똑똑 노크하는 것이었다. 문을 열어주니 현관 안으로 들어 오는게 아닌가. 보통 닭은 집안으로 들어 오지 않는데 말이다. 하루는 뭉게구름이 안 보여 어디 갔나 찾아보니 웬걸 떡하니 빨래걸이에 올라 앉아 있는 게 아닌가? 한번은 집에서 먹다 남은 잡채를 주었다. 뭉게구름은 좋다고 달려들어 잡채에 섞인 고기부터 쪼아 먹는 게 아닌가? 이 녀석도 고기 맛을 아는가 보다. 한번은 밤에 벌레가 생겨 통째로 주었더니 밤벌레를 맛있다는 듯이 다 쪼아 먹지 않는가. 그런데 무슨 잡곡에 벌레가 생겨 먹으라고 주었다. 무슨 딱정벌레같은데 시커멓고 보기 흉하다. 그런데 이번에는 안 벅는다. 먹일려고 몇 번 갔다 대 주어도 보기만 하고 안 먹는게 아닌가. 뭉게구름도 싫은 게 있는가 보다.
불광동으로 이사 와서는 집에 닭 두 마리와 거위 두 마리를 키웠다. 모두 새끼 때 금촌 우시장에 가서 사 온 것이다. 닭은 병이라 때도 귀여운데 거위 새끼는 털이 미처 안 나와 보기 흉했다. 얼마 지나 털이 모두 자라니 예뻐졌다. 아침에 닭장 문을 열면 네 마리가 모두 밖으로 뛰쳐 나온다. 제일 먼저 빨간 닭, 다음은 주홍색 닭, 다음은 작은 거위, 그리고 큰 거위 이런 순서로 나온다. 그런데 이 순서는 한 번도 바뀐 일이 없다. 딸 이이는 특히 거위를 좋아했다. 한번은 수돗가에 풀어 놓고 수도 호스로 물을 뿌려주니 고개를 좌우로 흔들면서 마치 샤워하듯 하였다. 어느 날 거위 두 마리가 수돗가에서 학이 덩실 덩실 춤추듯 원무를 하는 게 아닌가! 딸 아이는 거위 두 마리를 데리고 밖으로 산책을 갔다 왔다고 한다. 조그만 부지깽이 하나 들고 몰고 가려는데 좀처럼 말을 안 들어 무척 애먹었다고 한다. 닭은 두 마리가 다 암탉이었다. 닭이 자라서 알을 낳기 시작했다. 두 마리가 거의 매일 알을 나으니 집에는 달걀이 넘쳐났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지 닭 알이 보이지 안었다. 이상하다 생각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집 담장 근처 덤불에서 닭이 나오는게 보였다 그래서 덤불속을 살펴보니 저런! 달걀이 한 여나믄 개 수북이 쌓여 있는게 아닌가! 닭이 알을 낳기 시작한 얼마 후 거위도 알을 낳았다. 거위는 작은 놈이 암컷이고 큰 놈은 수컷인지 작은 놈만 알을 나았다. 거위 알은 오리 알 비슷하고 달걀보다는 컸다. 거위알은 달걀보다 고소했다. 알을 여러 개 낳더니 거위 배가 홀쭉해졌다. 아마 알 낳기가 힘들었나 보다. 우리 집 사람은 닭이고 거위고 똥냄새가 난다고 이런 짐승을 싫어한다. 어느 날 보니 모두 없어 졌다. 누군가에게 주었다고 그런다.
그런 다음 또 딸 아이가 졸라 이번에는 토끼 새끼 두 마리를 사왔다. 하얀 털에 빨간 눈이 아주 귀여웠다. 그런데 집에 온지 얼마 안되어 이중 한 마리가 갑자기 한 눈이 퉁퉁 부어 올랐다. 걱정이 되어 불광동 네거리 동물 병원으로 안고 갔다. 수의사가 진찰해보더니 무슨 감염이 된 것 같다며 주사를 놓아 주었다. 주사 값이 만 팔천원이란다. 토끼 한 마리에 오천원 주고 사왔는데 말이다. 그런데 이 녀석은 얼마 후 결국 죽고 말았다. 토끼 한 마리 남았는데 아이들 인기 독차지다. 토끼를 먼저 닭장에 넣어 기르는데 안에다 자그만 개장 같은 걸 넣어 주었다. 어느 날 이 녀석이 개장 지붕에 올라 퍼드러져 누운 후 코를 골면서 잠을 자는 게 아닌가? 그런데 이 녀석이 처음에는 사람을 피하여 개장 뒤로 숨곤 하였는데 어느 때부터 사람이 가면 글쎄 무슨 짐승 같이 으르렁 거리는게 아닌가? 별 일 이 다 있다. 토끼는 아카시아 잎사귀도 좋아 하지만 특히 칡넝쿨을 좋아한다. 집 동네에는 야산에 칡넝쿨이 많아 이걸 따다 주면 좋아라고 잘 먹는다. 토끼는 굴을 잘 판다. 어느 날 이 녀석이 제집 밖으로 나왔다. 글쎄 바닥에 굴을 파고 닭장 밖으로 굴을 파고 나온 것이다. 결국 토끼도 애들 엄마가 누군가에게 주고 말았다.
3
세월이 흘러 딸 아이가 미국 유학 갔다가 거기서 주미대사관에서 직장 생활 하다가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지금 직장이 성남이라 집에서 다니기가 불편하여 분당에 원룸을 하나 얻어 혼자 자취한다. 직장 갔다 집에 오면 아무도 없는 집이 썰렁하게 느껴 졌는지 날 보고 십자매 한 쌍을 사다 달란다. 동대문 운동장 근처 새 시장에 가서 십자매 한 쌍을 사 들고 와 딸아이네 집에 가져다 주었다. 한 마리는 희고 또 한 마리는 짙은 갈색이다. 그런데 같은 십자매라도 성질이 다 다르다. 검은 놈은 매사 아주 적극적이어서 상치를 주면 쪼르르 나와서 열심히 쪼아 먹는데 흰 놈은 한 참 뜸을 들이다가 나중에 와서 먹는다는 것이다. 딸 아이는 새를 만지고 싶어 조롱을 열고 밖으로 꺼내 손에 올려 놓는다. 검은 놈은 쉽게 잡혀 여러 번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사진도 찍고 하였다. 그런데 흰 놈은 사람을 피하여 잘 잡히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계속 검은 놈만 데리고 놀곤 하였는데 어느 날부터 인가 검은 놈이 상태가 안 좋아져 날개가 처지고 꾸벅 꾸벅 졸고 하더니 마침내 죽고 말았단다. 딸 아이는 너무 슬퍼 눈물을 글썽이면서 나에게 전화 했다. 그런데 난 들 무슨 뽀족한 수가 없으니 어찌 하겠는가. 죽은 새를 수습하여 양지 바른 곳에 묻어 주라고 할 수 밖에...지금도 딸 아이는 남은 흰 놈 데리고 지낸다. 먼저 검은 놈이 너무 만져 손 독이 올라 죽었는 지 모른 다며 그냥 보기만 한단다. 그래도 저녁 늦게 집에 돌아 오면 반기는 게 바로 이 흰 새임으로 딸 아이는 여기에 정을 주고 지낸단다. 이 제 사십이 넘어 남 들 같으면 시집가 애 낳고 기르기 한 창 바쁠 나이에 새 만 갖고 좋아 하니 이 일을 어쩌면 좋다는 말인가?...
첫댓글 동암,대기만성이라 했던가?
이젠 원숙한 꽁드작가의 역량까지...
늘 감탄하며 읽고 있네요
은둔하던 무림고수가 드디어
나타난듯 하오
삼십육계중에 어느것일지? ㅎ ㅎ
따님보러 이쪽에 오실 때라도
오랜만에 한번 회포 풀어보세
건강제일! 무봉
원숙한 꽁드작가의 역량이라니요 과찬이십니다.
코로나 지나면 한 번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