짚신문학 수필:
제목: 꼭지이응(ㆁ)의 비밀
글쓴이: 최홍식
소속: (사)세종대왕기념사업회 대표이사
천지인발성연구소 소장
연세의대 이비인후과학교실 명예교수
올해 6월 20일 경 평소 잘 알고 지내는 모 신문사의 기자로부터 전화가 왔다.
“최 교수님, 아주 중요한 소식이 있어서 연락드립니다. 오는 6월 29일 오전 9시에 경복궁 고궁박물관 회의실에서 최근 발굴된 세종 시대의 엄청난 국보급 유물이 출토된 것에 대한 특별 기자회견이 열린다고 하네요. 공사 현장에서 우연히 발견된 유물의 발굴 및 보전 처리는 수도문물연구원 이라는 특수한 단체에서 하고 있는데, 제가 그 단체의 대표를 잘 알고 있기에 미리 연락을 드려 보았더니, 세종시대 훈민정음의 금속활자와 물시계 부속품 등 어마어마한 국보급 유물들이 쏟아져 나왔다고 합디다. 그런데, 그 말을 듣는 순간 최 교수님 생각이 나서 연락드리는 것입니다. 아직 세종대왕기념사업회 대표를 맡고 계시잖아요? 기자 회견 장에 일반인은 들어갈 수 없으나, 특별 초청 케이스로 입장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오실 수 있나요?”
이렇게 초청을 받아 설레는 마음으로 집사람과 함께 현장에 일찍 도착하였다. 사전에 발굴된 유물들을 정밀 조사하였던 전문가 분들의 간단한 발표가 있었다. 종로2가 뒷골목인 피맛골 공사 현장에서 큰 항아리가 출토되었는데, 그 안에 세종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많은 금속활자가 발굴되었으며, 가장 우수한 금속활자라고 하는 세종시대 한자 금속활자 갑인자로 추정되는 활자가 확인되었으며, 훈민정음 창제 직후 일정 기간 만 사용되었던 훈민정음 글자가 새겨져 있는 많은 수의 훈민정음 금속활자가 많이 발굴되었다는 것이었다. 금속활자 이외에도, 물시계의 부품과 일성정시의의 부품도 발굴되었고, 그 이외에 총통과 동종 등 정말로 어마 어마한 보물들이 출토된 것이었다.
발표회 후, 출토된 유물들을 자세히 관찰하면서 설명 들을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다. 많은 기자들과 참석자들에게 가장 관심이 많았던 것은 역시 훈민정음 금속활자였다. 나도 아주 관심이 많았기에 자세히 관찰하면서 출토 주관사 직원들에게 많은 질문도 하였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창제 당시에는 사용되다가 얼마 후 더 이상 사용되지 않고 사라지게 된 네 글자, 즉 아래(하늘)아, 꼭지이응(옛이응), 반치음, 여린히읗이 포함되어 있는 활자였다. 그 중에서도 꼭지이응이 포함된 활자들을 보면서 퍼뜩 옛 생각이 떠올랐다. 오래 전부터 훈민정음에 관심은 많았었으나, 공부를 많이 해 볼 기회는 없었었는데, 약 6년전 간송미술관의 배려로 훈민정음해례본이 복간되어 출간되게 되었고, 해설서를 직접 만들었던 훈민정음박사 김슬옹교수가 나에게 복간본 한 권을 선물로 주었기에 그 이후 훈민정음 복간본 원본과 해설서를 보면서 공부를 많이 하게 된 것이었다.
그동안 근 20년 세월 동안 의사로서 환자 진료와 의학적 연구를 수행하면서도, 여러 한글관련 단체에 연루되어 활동을 해 왔기에 많은 한글학자, 국어학자, 언어학자들과 만나고 학회 활동도 같이 하고 여러 한글날, 세종날 행사 등을 함께 치루면서, 잘 몰랐던 문과 계열의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계신 분들을 보면서 부럽기도 하고, 나 자신의 부족함에 민망함을 느끼기도 하곤 하였었다. 그러나, 훈민정음 원본과 그 안에 설명되고 있는 제자해에서 글자의 모양을 만든 과정이 ‘음성학’에 기초를 두고 만들어졌음을 확신하게 되면서, 발성기관과 조음공명기관에 대한 아주 자세한 해부학적 지식을 가지고 있고, 엄청나게 정밀한 ‘실험음성학 장비’와 CT, MRI, 초음파 등 발성, 조음, 공명등과 관련된 정밀한 영상을 활용할 수 있는 나 같은 사람이 훈민정음 제자해의 비밀을 풀어낼 수 있는 가장 준비된 사람일 수 있겠다는 자부심을 갖게 된 것이다.
일부 학자들의 말에 의하면, 세종대왕은 엄청난 수준의 ‘음성학자’였다고 주장한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세종실록에 의하면 세종은 어려서부터 책읽기를 매우 좋아하였다고 하니, 당시에 구할 수 있는 운서 등 중국 서적과 다른 나라 문자와 관련된 많은 책을 읽으며 독학을 했을 것 같다. 그런데, 어떻게 그렇게도 자세하게 발성, 조음과 관계되는 구강 구조와 공명강의 모습을 간략하게 도형화 하여 글자체를 만들어 갈 수 있게 된 것인지는 여전히 미지수이다.
나는 처음 훈민정음 해례본을 대하면서 몇 군데 내 무릎을 칠 정도로 놀랜 부분이 있다. 첫째로, 글자 28자 모두 조음시의 모습을 상형(象形)하여 만든 것이라는 설명이었고, 두 번째, 초성을 분류하면서 하는 설명에 아음(牙音, 어금닛소리)인 “ㄱ”의 설명이 어금니 부위의 혀가 목구멍을 막으며 조음되는 옆모습을 본떠 만들었다는 완전히 음성학적으로 들어맞는 내용이었으며, 셋째, 꼭지이응(ㅇ)을 아음(牙音, 어금닛소리)에 속한 글자로 분류하면서 글자 모양이 ‘ㄱ’이나 ‘ㅋ’과는 아주 다른 모습인 후음(喉音, 목구멍소리)의 대표소리인 이응(O)과 아주 유사하게 만들어진 설명이 아래와 같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었던 것이었다.
“아음자 ㅇ이 나타내는 소리는 혀뿌리가 목구멍을 막지만 소리의 기운이 코로 나와 그 소리가 불청불탁의 소리를 나타내는 후음자 O과 서로 닮았다. 운서에서는 초성에 연구개 비음[ŋ]을 가진 의모(疑母)와 초성의 음가가 없는 유모(喩母)가 서로 많이 혼용되고 있다. 아음(어금닛소리) 글자 ㅇ은 목구멍의 모양을 본뜬 것으로 불청불탁이지만 아음(어금닛소리) 글자를 만들 때에 기본으로 삼지 않았다. 후음(喉音, 목구멍소리)은 물에 속하고 아음(어금닛소리)은 나무에 속한다. 그러나 ㅇ이 비록 아음(어금닛소리)에 속하면서도 후음(목구멍소리) 글자 O과 모양이 비슷한 것은, 나무의 새싹이 물에서 생겨나 부드럽고 연약하면서 물기가 많은 이치와 같다.”
이러한 자세한 음성학적 설명은 글자를 만든 사람이 정말로 조음음성학적 지식이 특출했음을 의미한다. 현대 음성학적 자음(닿소리, consonant)의 분류를 조음의 위치(place of articulation)와 조음의 방법(manner of articulation)에 따라 비자음(nasal consonant)인 ㅁ(/m/), ㄴ(/n/), O(/ŋ/)을 각각 양순 비음, 치조 비음, 연구개 비음으로 분류하는 것과도 아주 부합하는 정말로 과학적인 조음시의 모양을 ‘상형(象形)’하여 만든 것이라는 확실한 증거가 되는 것이다. 즉, 꼭지 이응(ㅇ)의 O위의 작은 꼭지 모양은 ‘성대진동음이 비인강을 통하여 비강으로 통하여 공명되는 모습을 과학적이면서도 아주 간략하게 설명한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정말로 소름 돋는 전율을 느꼈던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의 숙제는 훈민정음 해례본에서 설명되고 있는 정음 28자 모두의 글자 모양이 어떤 조음 방법과 조음 위치를 가리키는 것인가를 확실한 과학적인 방법으로 설명을 해 가야 한다는 데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그래야만, 한글이 정말로 과학적으로 만들어진 최고의 문자라는 것을 설명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예를 들어, ‘ㄴ’은 비자음이면서 조음 위치는 잇몸(치조)부분에 혀끝이 닿는 모습의 혀의 모습을 본떠 만들어 진 것이라는 해례본의 설명을 우리가 이해한다면, 같은 위치에서 조음되는 ‘ㄷ’과 ‘ㅌ’이 ‘ㄴ’에 획 추가로 만들어진다는 정도에 그치고 있는 것에서, 발전시켜서 ‘ㄷ’은 ‘ㄴ’에 획 추가되어 ‘ㄷ’의 글자가 된 이유는 ‘ㄴ’에 획 추가된 위 작대기는 ‘입천장(경구개)’을 의미하며, ‘같은 위치에서 조음되는 파열자음입니다’ 라고 좀 더 과학적인 설명을 추가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중성자(모음)의 기본이 되는 ㆍ(천), ㅡ(지), ㅣ(인)도 삼재(三才)의 모양을 본뜬 것이라는 아주 추상적인 설명만 할 것이 아니라, 조음 시의 혀뿌리의 수축 정도, 소리의 깊고 얕음(흉성 혹은 두성)의 설명으로 보아, 조음 시의 공명강의 모양을 글자 모양으로 함축적으로 표현한 것이라는 해례본의 설명을 보다 과학적으로 구체화하여 설명하고자 하는 노력이 뒤 따라야 할 것이다. 꼭지 이응의 비밀을 잘 이해하여 보다 적극적인 훈민정음 혹은 한글의 과학적 탐구가 꼭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