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 히가시노 게이코

[키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히가시노 게이코 / 현대문학

'기적과 감동을 추리한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역자가 <옮긴이의 말>에 단 이 한 줄은, 작가 히가시노 게이코와 작품의 메시지를 가장 압축적으로 정리한 대목이라 할 것이다. 히가시노 게이코, 그는 현존하는 일본 추리소설계의 제왕이다. 「방과후」로 '에도가와 란포'상을,「비밀」로 일본 추리작가협회상을, 마침내 그의 이름 앞에 최고의 역작이라는「용의자 X의 헌신」으로 본격 미스터리 대상과 나오키상을 거머쥐었다. 무라카미 하루키와 쌍벽을 이루는, 아니 수식이 무의미할 뿐인 최고의 스타작가.

개인적으로 그의 책이 출간된다는 기사가 대문짝만하게 실리면 꽤 흥미로운 소제목들이 따라붙는 것으로 기억한다. '출간 즉시 000 기록' 이라거나 '일본 추리소설계 역대 최고의...' 같은 종류의 '역대급' 문구들이 대부분이었던 것 같다. 그것들은 은연중에 그가 일본만이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가장 잘나가는 작가라는 소문을 입증하는 듯했고, 이 책을 읽지 않으면 그 진기록을 확인하지 못한다는 조급증을 주기 충분해보였다. 이때 그의 「용의자 X의 헌신」을 읽고, 그의 명성만큼이나 어딘지 우수에 찬 분위기에 반했던 독자라면 기대보다 좋았을 리 없는 높은 기대치에 스스로 배신당한 후, 한동안 그의 책에 미련을 두지 않은 독자가 될 가능성도 높다. 물론 나의 경우이다. 그때서야 그의 이름 뒤에 따라붙는 일부 작품에 대한 저평가를 새삼 확인하기도 하겠지만, 호불호는 모든 사람에게 따라붙는 현상이니, 현상을 지켜보는 신중함도 자신의 몫일 것이다. 그는 그런 경우의 수도 충분할 만큼 넘치는 창작열의 작가이기도 했다. 지상에 존재하는 몇 안 되는 중노동급 소설노동자? 

그런 의미에서「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은 지나치게 신중을 기한 것이 티가 날 만큼 뒤늦게야 읽은 책이다. 그의 이름이 걸린 책을 가족이나 지인에게 퍼뜨린 개인적 팬심이「용의자 X의 헌신」에 버금간다는 찬사를 수긍하게 된 것이다.「용의자 X의 헌신」은 대다수의 평가처럼 추리소설의 고전으로 남을 가치가 있는 작품으로 진심어린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사회파 추리소설의 여왕 미야베 미유키의 명성을 넘어설 중대한 획을 그은 작품으로 평가한다.

이 책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은 히가시노 게이코에 따르는 수식에서 상당히 이례적인 작품으로 분류될 것 같다. 우선 그의 이름에서 자연 떠오르기 마련인 범죄의 현장 대신 신비스러움이 느껴지는 잡화점을 등장시켰다. 나미야, 라는 이름과 잡화점,이라는 공간적 배경에 기적이라는 신비스런 조합까지 버무려졌다. 그것도 너무나 착하게 인간에 대한 따스한 발견을 심어놓았다. 생각해보니 기존의 작품에서도 인간미를 지닌 탐정이었던 것 같다. 유독 여성 팬층을 많이 확보한 작가에게 그리 낯선 소재가 아니라는 생각이 뒤늦게야 들었다.  옮긴이의 말에서 밝혀놓은 것처럼, '주위의 친지 모두에게 선물하고 싶은 책'이라는 생각이 저절로 수긍이 되었다. 실제로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망설임 없이 추천할 수 있는 책이 의외로 많지 않은'것을 실감하는 독자라면 이 책이 지닌 전방위적 기적에 마음을 놓을 수 있을 것이다. 마치 히치콕이 해리포터 류의 영화를 만든 것 같은 느낌이랄까. 전성기의 추리대가가 신비스런 작품인들 못할소냐, 라는 느낌이었다.

인가도 드문 어느 한적한 교외에 30여년 간 비어있던 잡화점으로 삼인조 좀도둑들이 들어서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우연인지 운명인지 나미야 잡화점 앞으로 날아든 과거의 편지를 받게 되면서 그들은 얼떨결에 인생 상담사 역할을 하게 되는데... 소위 가방끈도 짧은 좀도둑 신분이지만, 인간에 대한 따뜻한 본성을 잃지 않았던 청년 백수들의 언어로 하룻밤의 기적이 되살아나는 것이다. 히가시노 게이코는 가진 것 없는 사회적 약자들의 상담이라는 설정에 이렇게 말했다.

'남의 고민을 상담해주는 일은 대개 분별력 있고 지식이나 경험이 많은 분이 해야 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일부러 미숙하고 결점 투성이인 젊은이들로 했습니다. 타인의 고민 따위에는 무관심하고 누군가를 위해 뭔가를 진지하게 생각해본 일이라고는 단 한 번도 없었던 그들이 과거에서 날아온 편지를 받았을 때 어떻게 행동할까, 우선 나부터 무척 궁금했습니다.'

마치 그들이 오기를 기다렸단 듯 과거의 문이 열리는데, 가게 앞 셔터의 우편함과 가게 뒷문의 우유 상자는 비밀의 통로 역할을 한다. 편지들은 30여년 전, 나미야 잡화점 할아버지 앞으로 온갖 고민을 담아 전하던 그대로 과거 속 인물들이 보내온 것이다. 자신의 고민거리를 보내면 성실히 답장을 해준다는 소문 그대로 나미야 할아버지는 작고 사소한 고민거리에도 성실함과 따스함을 담아 고민을 상담했던 것이다. 물론 지금의 현실에서는 삼인조 좀도둑이 그 할아버지의 대역을 하지만, 시간은 놀라운 힘으로 연결되고 마침내 그들의 현실 또한 과거와 조우하도록 기적을 베푼다. 과거의 누군가가 우편함에 편지를 넣으면 지금 이곳의 우유상자로 편지가 들어오는 발상부터 신선하고 착하다. 그리운 이름들이 세월을 뚫고 한 발짝씩 걸어나올 것만 같다. 소통의 매개체가 편지라는 것은 그리운 정서에 적절하게 어울려 보인다. 

올림픽 출전을 앞두고 애인의 암선고에 괴로워하는 '달토끼', 자신의 재능과 현실의 어려움 사이에서 방황하는 '생선가게 뮤지션', 유복한 환경에서 살았으나 부모의 사업실패로 야반도주 하게 되고 새로운 인생을 맞아야 했던 '폴 레논', 성공에 대한 확신이 필요했던 '길 잃은 강아지' 등, 살다보면 만나게 되는 여러 선택의 문제들이 깊이를 더한다. 우리는 과연 어떤 인생의 조언을 듣고 싶어하고 또 누군가에게 내 생각의 정수를 나누어줄 수 있을까. 여기에 한번 손에 잡으면 한꺼번에 읽게 하는 작가의 노하우가 더해져 책을 읽는 일이 감동을 만나는 일 같았다.

히가시노 게이코에게 2012년 '중앙 공론 문예상'을 수상하게 만든 이 작품에서, 어렸을 때 책 읽기를 무척 싫어했던 자신의 경험을 풀어놓는다. 오죽했으면 담임선생님이 어머니에게 책을 읽을 수 있도록 지도를 해달라는 충고를 했을까. 그는 자신처럼 책 읽기를 싫어했던 독자를 상정하고, '그런 내가 중간에 내던지지 않고 끝까지 읽을 수 있는 이야기'를 쓰기 위해 노력해왔음을 밝혔다. 한번 손에 쥐면 끝까지 읽게하는 이야기의 힘에 그런 경험담이 있으리라곤 생각지도 못했다. 어쩌면 쉽게 유추할 수 없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잘하는 것을 키워주는 동기부여는 흔하지만, 잘 하지 못하는 것을 잘하도록 이끄는 것이 의외로 어렵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것이 이 책 속의 삼인조 좀도둑이 행하는 인생의 반전 혹은 기적의 일 같다고 생각해보았다.

나미야 할아버지처럼 누군가의 고민을 상담하는 자의 편지로는 확실히 부족하겠지만, 삼인조에겐 그들만의 순수한 언어들이 있었다. 오히려 직설적 투박함이 인간적인 예언으로 이어지고, 그것은 또 얼마나  감동적 장치로 연결되던가. 그들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심정을 대변한 백지 편지에 나미야 할아버지가 쓴 답장은 이 소설의 백 마디 몫 같았다.

'백지이기 때문에 어떤 지도라도 그릴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이 당신 하기 나름인 것이지요.... 이것은 멋진 일입니다. 부디 스스로를 믿고 인생을 여한없이 활활 피워보시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마지막으로 멋진 난문을 보내주신 점, 깊이 감사드립니다.'

누군가 제 아픔을 토로하는 인생의 편지를 보낸다면, 그 아름다운 보상을 받을 자는 결국 나 자신일 것이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편지 대화와 심심찮게 끼어드는 비틀즈 해체 소식 등에서 어딘지 모르게 하루키를 연상했던 것은 나 뿐일까. 

[남강]

결국 기적의 끝은 백지인가. 미어터지려는 항칠이 결국 백지라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