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닫이문처럼 열고 닫으며 보던 텔레비전, 1을 누르면 1인분 2를 누르면 2인분씩의 쌀이 나오던 쌀통, 뜨겁게 달궈진 난로위에 하도 데워먹어 구멍이 난 양은도시락, 그 시절 우리가 당연하게 보고 만지던 손때 묻은 것들은 다 어디로 간 것일까? 수십 년의 세월이 훌쩍 흐르는 사이 사라지고 만 것들. 그것들을 누구는 추억의 소품이라 말하고, 누구는 근대사가 남긴 문물이라 말한다.
11월 11일 오후 두시에 개관식을 하는 ‘여미녹거근대사박물관’에 가면 우리가 까마득하게 잊고 지냈던 물건들이 1,322㎡ 그 넓은 부지 곳곳, 집안 곳곳에 가득하다. 처음 보는 물건인 것 같아 가만히 들여다보면 손잡이가 있던 아이스깨끼 케이스이고, 무슨 용도인지 몰라 살펴보면 어릴 적 신기하게만 보였던 빙수 만드는 기계이다. 만나는 물건마다 그 시절의 추억과 이야기들이 넝쿨처럼 딸려 나오며 웃음도 주고, 그리움도 주는 이곳 ‘여미녹거근대사박물관’은 6년 전부터 비어있던 옛 절과 낡은 건물을 뜯지 않고 그대로 활용하며 박물관으로 살려냈다. 칠이 벗겨지고 낡아 고색창연한 느낌이 완연한 터가 근대사박물관이라는 이름과 만나니, 제법 어우러지는 공간이 된 것.
이곳 ‘여미녹거근대사박물관’은 크게 1관부터 5관까지로 나뉜다. 건물과 구역을 나눠 테마를 정하고 컨셉에 맞게 프로그램과 이야기까지 곁들인 이곳은 각 관마다의 개성과 쓰임도 다 다르다.
인지면의 가정집 전부를 녹거박물관으로 꾸미고 살며 16년 세월을 수집가로 살아온 조성훈 ‘여미녹거근대사박물관’ 관장은 이 박물관으로 이전하는데 꼬박 1년 2개월의 세월을 쏟았다. 16년 가까이 모아온 온갖 귀중한 수집품들을 다 끌어 모아 이곳 여미리로 이사하며 ‘여미녹거근대사박물관’이라는 곳을 개관할 수 있었던 세월에는 그의 눈물과 땀이 서려 있다. 아무도 살지 않는 폐가에 살다시피 하며 세월의 묵은 때를 벗겨내고 보수하며 한 차 한 차 수집품들을 나르느라 바친 세월동안 그는 가정도, 아내도 돌보지 못했다. 둘을 취하면 결국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는 마음에 결국 박물관 하나에 모든 것을 걸고 살아온 세월도 모자라 박물관을 꾸미면서도 뭔가 필요한 게 있으면 또 몇 푼이라도 들고 가 원하던 물건을 기어이 사오곤 하던 그는 결국 폐허위에 추억의 보물창고 라는 멋진 탑을 세웠다.
혼자 끌어안고 준비하는 세월이 너무도 힘들고 외로워 몇 번이나 무릎이 꺾였지만, 중도에 포기할 수 없었던 그는 결국 11월 11일 오후 두시 개관식을 앞두고 있다. 아직 흡족하지는 않지만, 보다 넓어지고 커진 터에 테마와 공간을 나눠 꾸민 이 박물관에서 더 많은 사람들이 오랜 추억을 끄집어내고 이야기하며 그리워하기를 그는 바란다. 그래서 단순히 물건만 전시하는 것으로 끝내지 않을 생각이다. 틈틈이 DJ를 보며 신청도 받아 음악도 틀어줄 생각이고, 추억의 영화들도 상영할 계획이다. 한 켠에는 달고나 만들기 체험장도 만들고, 추억의 민박집도 운영한다.
옛날 물건에 빠져 지게차 정비업을 하며 버는 족족 옛물건을 파는 경매장으로 달려간 16년 세월에 수억원의 돈을 바친 그를 두고 사람들은 말한다. ‘옛물건에 미친 사람’이라고. 이제는 그 본업도 그만두고, 택시일을 틈틈이 하며 박물관 개관에 매달려온 그는 이제 택시일도 그만두고 아예 박물관에 깃들다시피 하며 살고있다. 그런 스스로를 그는 이렇게 표현한다. ‘행복한 미친놈’이라고. “미쳤으니 하는 것이고, 이 분야에 오로지 미쳐야만 할 수 있다”는 그는 가진 것 하나 없는 빈손이지만, 어느 누구보다 부자이다. 남들에게 전해줄 추억이 많고, 갖고 있는 추억이 많은 ‘추억 부자’. ‘여미녹거근대사박물관’은 그가 16년 세월을 바쳐 수집해온 추억을 입장료 단돈 3천원에 실컷 나눠갖고 올 수 있는 그런 곳이다.
<배영금 기자>
●●● 여미녹거근대사박물관 개관식
- 2017년 11월 11일 오후 2시
- 운산면 여미리 유기방 가옥 앞 삼거리에서
여미도예 가는 방향으로 2백여 미터 앞