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생 한국 아이
임병식rbs1144@hanmail>net
세상을 살면서 사람의 목숨을 구할 기회가 얼마나 있을까. 남의 목숨을 구하는 일은 경찰관이나 소방관, 의료기관 종사자처럼 위급한 일을 처리하는 것을 본업으로 한다 해도 그런 기회를 만나기는 썩 쉽지 않을 것이다.
에로부터 활인공덕(活人功德)의 일은 하늘이 내려준 기회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어렵다는 말이다. 그런데 나는 얼마 전 한 아이를 살려낸 일이 있다. 스스로 생각해도 기념비적인 일로서 아주 보람된 일을 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한 일이었다. 그렇지만 나는 아무에게도 그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다만 가슴에 새겨두고자 이름과 나이, 다니는 학교만 알아내어 일기장에 기록해 두고 있다.
그 일은 실로 우연한 기회에 이루어졌다. 시내 외곽에서 모임이 있어 나섰던 길인데 시간이 남았다. 그래서 소일삼아 가까운 바닷가로 나갔다. 그런데 거기서 절체절명의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다.
한 아이가 호기심이 발동하여 매둔 남의 전마선에 올라 밧줄을 푼 것 같다. 밧줄을 풀린 배는 대책 없이 떠내려갔었다, 나는 그 광경을 처음에는 보지 못하고 다른 꼬마 아이가 새끼줄을 주어 내닫는 것을 보고서 위기상황을 직감했다.
“왜 그러냐?. 무슨 일 있어?”
물으니 친구가 배를 타고 떠내려가고 있다는 것이었다.
“침착하고 상세히 말해봐”
그러니 대충 이야기를 해주었다. 호기심이 발동하여 남의 전마선을 훔쳐 탔다는 것이다.
말하는 그때 썰물에 떠밀려가는 전마선이 산모퉁이를 돌아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손으로 나팔을 만들어 외쳤다.
“그대로 가만히 있어! 움직이지 마!”
우선 안심부터 시켰다. 아이와 나와의 거리는 약 30 미터 정도. 그러니까 전마선은 바닷가에서 30미터쯤 떨어져 급한 물살에 빠르게 흘러가고 있었다. 아이는 뱃전을 붙들고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움직이면 안 돼. 걱정하지마 아저씨가 구해 줄 테니.”
안심을 시키고 다른 아이가 주워온 새끼줄을 막대기에 연결하여 힘껏 던졌다. 그 막대는 다행히 배 안으로 떨어졌다. 그러면 일단은 인심이다. 이후부터는 아이를 안심시키는 가운데 서서히 노를 저게 하면 된다.
“이쪽으로 노를 저어봐.”
시키는 말을 얼른 알아듣고 아이가 힘을 냈다. 간격이 상당히 좁혀졌다. 이번에는 다시 줄에다 돌을 매달이 던져서 움켜쥐도록 했다.
“서서히 당겨봐. 그렇지. 그렇지.”
아이가 줄을 당기니 간격이 좁혀지면서 뭍으로 닿았다. 마침내 구출된 것이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두 아이는 이웃에 사는 친구로 바닷가로 놀러 왔다고 한다. 한 아이가 호기심에 끌려서 정박해 놓은 전마선(傳馬船)에 올라 닷 줄을 풀어헤친 것이다.
그 상황은 내가 도착하기 훨씬 전에 벌어진 일이었다. 아이는 거의 넋을 놓고 있는 생태였다. 그런 아이를 극적으로 구출하게 되었으니 얼마나 큰 행운인가.
만약에 내가 그때 발견을 못 했다면 어떤 끔찍한 일이 일어났을지 모른다. 하염없이 넓은 바다로 떠밀렸을 것이다. 그 시각은 대략 오전 11시 30분경. 주변에 성인 한 사람 없는 상태였다.
내가 구조했던 상황이다.
나를 보자 이이가 외쳤다.
“사람 살려”
그 말에 구조 후 내가 말했다.
“아까 뭐라고 했냐. 사람 살려 했지?”
“네”
“짜식”
내가 군밤을 먹이는 시늉을 하자 아이가 씩 웃었다.
“어째서 그런 말을 했어?”
“나도 몰래 입에서 그 말이 나와 버렸어요.”
내가 말했다.
“짜식, 너도 천상 한국 아이구나.”
내가 그렇게 말한 이유가 있다. ‘사람 살려’라는 말은 한국 사람만이 쓰는 고유어라고 한다. 서양인은 ‘도와주세요.’라고 말하고, 일본인은 ‘나 좀 살려줘요’라고 말한단다. 나는 아이에게는 다시 한번 그런 일을 하지 말라고 주의시켰다.
신원을 파악해 보니 아이는 이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다니는 초등학교 학생이었다. 여수 동백초등학교 4학년생 정해용(11세) 어린이였다. 집도 부근에서 가까운 청솔 일차 아파트에 살았다. 한편, 새끼줄을 들고 뛰어간 아이도 같은 학교로 한 학년 위인 박광범 어린이였다.
나는 그날 아이를 구출한 것을 큰 행운으로 생각한다. 누구라도 그런 상황에 처하면 도움을 주었겠지만 그런 기회가 어디 흔한 일인가.
일찍이 공자님은 어린이가 물에 빠지는 것을 구해주려는 마음은 사람의 본성으로서 인(仁)의 발현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나는 인을 실천한 셈인가.
나는 그냥 천진난만하게 뛰어가는 아이의 뒤통수에 대고 큰소리로 다시 외쳤다.
“앞으로 남의 배는 함부로 타지 마, 알았지?”
“네”
아이는 크고 낭랑한 목소리를 남기고 쏜살같이 뛰어 내달았다. (2005)
첫댓글 길을 걷고 일을 하고 운전을 하며 살아가는 하루 하루를 돌아보면
죽을 뻔한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는 걸 발견합니다.
구사일생한 사람은 '천우신조'라,
죽을 뻔한 누군가를 살려내는 사람은 신의 일을 대신 한 셈이니
얼마나 크고 보람스러운 사건이겠는지요.
"사람 살려!"
"아이구, 하느님!"
한국사람의 염색체에 각인된 신앙의 불씨인 듯합니다.
어린 아이가 "사람 살려!"하고 소리를 치는데 위급한 상황을 보면서도 웃음이 나오더군요. 아니 입에서 "구해주세요"않고 그런 말이 튀어나오니 천생 한국아이라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15년 전 일이니 지금은 26살 청년이 되었겠군요. 한 사람의 생명을 구한 일보다 값진 일이 어딨겠습니까. 아주 소중하고 잊지못할 기억이겠습니다. 그 아이도 평생 선생님을 생명의 은인으로 기억하겠지요. 꼬마아이의 입에서 '사람 살려!'그런 소리가 나왔다니 상상만해도 웃기네요 ^^
아마 그때 신은 나더라 사람을 살리라고 그곳에 가게 만들었던 것 같습니다. 생각하면 아찔 한데 그때 나를 만나지 않았다면 거의 십중팔구 표류하다 뒤짚혀서 죽고 말았을 겁니다. 그일을 생각하면 인명을 살렸다는 생각에 뿌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