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서론 ........................................................... 1
1. 문제의 제기 .................................................. 1
2. 연구목적과 전개 방법 ......................................... 3
II. 동부 아프리카 선교현장 ........................................ 6
1. 일반적 상황 .................................................. 6
1) 지리, 역사적 상황 ........................................... 6
(1) 케냐 ...................................................... 7
(2) 우간다 .................................................... 9
(3) 탄자니아 ................................................. 10
2) 정치, 경제적 상황 .......................................... 12
(1) 케냐 ..................................................... 12
(2) 우간다 ................................................... 14
(3) 탄자니아 ................................................. 15
3) 문화 종교적 상황 ........................................... 17
(1) 케냐 ..................................................... 17
(2) 우간다 ................................................... 19
(3) 탄자니아 ................................................. 19
2. 문제상황 .................................................... 20
1) 제3세계의 특성 ............................................. 20
2) 문제상황 ................................................... 21
(1) 다양성 ................................................... 21
(2) 언어와 일반풍속 .......................................... 24
(3) 국민성과 의식구조 ........................................ 27
A. No problem .............................................. 29
B. Slowly, slowly. ......................................... 31
C. 식민지 피해의식과 배타성 ................................ 32
(4) 정치풍토 ................................................. 33
(5) 극심한 빈곤 .............................................. 35
(6) 인종문제 ................................................. 37
(7)질병과 제도 ............................................... 38
A. 종족주의 ................................................ 38
B. 일부다처제 .............................................. 39
C. 각종 질병들 ............................................. 41
(8) 신학의 부재 .............................................. 42
(9) 전통종교와의 혼합 ........................................ 42
III. 동부 아프리카 선교의 신학적 원리 ............................ 46
1. 왜 선교해야 하는가 ? ........................................ 46
1) 선교의 성경적 근거 ......................................... 47
2) 선교에의 시대적 요구 ....................................... 51
2. 동부 아프리카 선교의 신학적 원리 ............................ 54
1) 가난과 선교신학 ............................................ 54
2) 국민성과 선교신학 .......................................... 58
3) 정치와 선교신학 ............................................ 60
4) 인종 문제(종족주의)와 선교신학 ............................. 62
5) 결혼제도(일부다처제)와 선교신학 ............................ 64
6) 전통종교와 선교신학 ........................................ 68
IV. 동부아프리카 선교전략 ........................................ 74
1. 팀선교 ...................................................... 74
1) 팀사역의 정의 .............................................. 74
2) 성서에 나타난 팀사역 ....................................... 74
(1) 구약에서의 팀사역 ........................................ 74
① 모세 - 여호수아의 모델 ................................... 75
② 사무엘과 선지자의 모델 ................................... 75
③ 엘리야의 공동체 모델 ..................................... 76
④ 엘리사의 공동체 모델 ..................................... 77
(2) 신약에서의 팀사역 ........................................ 78
① 예수의 팀사역 모델 ....................................... 78
② 바울의 팀사역 모델 ....................................... 79
3) 팀사역 ..................................................... 81
(1) 팀사역의 필요성 .......................................... 81
(2) 팀사역의 유익점 .......................................... 84
(3) 팀사역의 문제점 .......................................... 85
2. 선교현장과 선교전략연구팀과의 연계활동 ...................... 87
1) 선교전략연구팀의 필요성 .................................... 87
2) 선교전략 연구팀의 구성과 조직 .............................. 88
(1) 선교회 ................................................... 89
(2) 선교전략 연구팀 간사 ..................................... 90
(3) 종합 기획팀 .............................................. 90
(4) 재무연구팀 ............................................... 90
(5) 신학 연구팀 .............................................. 91
(6) 사회사업연구팀 ........................................... 91
(7) 농촌개발 연구팀 .......................................... 91
(8) 경제개발 연구팀 .......................................... 92
(9) 선교전략 연구팀 .......................................... 92
(10) 컴퓨터통신의 활용 ....................................... 92
(11) 현지선교사 .............................................. 93
3) 선교현장과 선교전략연구팀과의 연계활동...................... 94
3. 제자 훈련을 통한 현지 지도자양성 ............................ 95
1) 제자훈련이 동부 아프리카 선교에 필요한 이유 ................ 95
2) 제자훈련 커리큘럼과 선교전략 연구팀 ........................ 97
3) 단기 평신도 선교사 파송과 제자 훈련 ........................ 98
4. 의식구조 개혁과 가난극복을 위한 전략 ........................ 98
1) 가나안 농군학교 정신의 이식 ................................ 98
(1) 복민주의 ................................................. 99
(2) 배경과 방향 ............................................. 100
(3) 교육정신 ................................................ 101
(4) 가나안 농군학교 정신의 아프리카 이식과 선교전략연구 팀 .. 101
2) 새마을 운동의 아프리카 부족전개 ........................... 102
(1) 새마을 운동 ............................................. 102
(2) 새마을 운동의 아프리카 부족전개 ......................... 103
3) 복민운동과 새마을 운동 .................................... 103
5. 신앙갱신운동을 통한 선교전략 ............................... 104
1) 부흥운동의 필요성 ......................................... 104
2) 초대교회의 부흥운동 ....................................... 106
3) 교회갱신 운동의 역사적 교훈 ............................... 108
4) 신앙갱신 운동의 아프리카 접촉점 ........................... 109
(1) 한국교회의 성장 ........................................ 111
(2) 한국교회 성장 방법과 동부아프리카 선교 .................. 112
V. 결론 ......................................................... 114
참 고 문 헌 .................................................... 116
한국교회의 해외선교에 대한 관심이 해마다 높아가고 있다. 1979년에 93명에 불과하던 해외 선교사가 89년에 1178명으로 늘어 났다면 실로 기하급수적인 증가라 할 수 있다. 불과 10년만에 선교 기관만도 13개교단의 선교기관과 110여개의 초교파 선교단체로 늘어났고, 선교사 파송국도 72개국으로 늘어 났다.1 1나일선, 「한국교회 선교단체, 선교훈련원 및 선교사 일람」 (서울:
바실래, 1989), pp. 1-203.
이러한 통계들은 한국교회의 해외선교에 대한 지대한 관심도와 열정을 단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라 하겠다.
그러나 이러한 긍정적인 면과는 달리 선교 현장, 선교사, 선교기관, 선교정책등 많은 문제들이 산재해 있는 것 또한 묵과 할 수 없는 현실인 것이다. 그 좋은 예의 하나로 해외 선교사들의 분포를 살펴보면 서독, 일본, 대만, 브라질,인도네시아,홍콩,필리핀등 선진국이나 아시아 인접국 또는 한국 이민들이 많이 있는 이민국등에 편중 되어있고(이상 7개국에 685명으로 총 파송된 선교사의 약 60%)2 2Ibid., pp. 201-203.
상대적으로 후진국, 비 이민국, 또는 원거리 국가에는 아주 적은 선교사들이 파송되어 있는 것이다.
본 논문에서 다루게 되는 아프리카는 지구상의 6대주의 하나이며 세계선교의 주력대상지가 되는 곳이다. 즉 지구의 6분의 1의 면적에 53개 독립국, 세계인구의 12분의 1 이나 되는 5억의 수많은 선교대상자들3 3유운영, 「아프리카 개론」 (서울: 명지 출판사), 1987, p. 1.
에게서한국 선교사는 겨우 우간다 2명, 기타 인접 아프리카에 6명, 케냐에 20명으로 전부 합해야 28명으로 독일 242명, 일본 105명, 필리핀 103명4 4나일선, pp. 201-203.
에 비하면 아프리카의 그 큰 대륙에 파송된 선교사의 숫자가 한 국가에 파송된 선교사 숫자와도 비교가 될수없는 소수의 선교사만이 파송 되어있는 것이다. 이는 아프리카 대륙이 한국의 세계선교에서 거의 외면된 상태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더우기 이 파송된 소수의 선교사들 마저도 그들의 선교활동을 돕기 위한 선교 후원기관이나, 체계적이고 조직적인 선교전략등이 미비된 상태에서 악전고투하고 있는 것이다. 기타 다른 지역에서보다 아프리카에서는 선교를 위한 학술적 연구도 조직적 전략회의도 사실상 거의 전무한 상태라 할수 있다.
미지와 미개의 나라, 기아와 가난에 허덕이는 지구촌의 한곳에 우리 선교사를 보냈다는 자부심 하나 만으로는 결코 아프리카 선교는 이루어질 수 없을 것이다. 이제는 우리도 보냈다는 유아기적 자부심의 꿈에서 깨어나서 정말 선교다운 선교의 장을 열어갈 때가 된 것이다. 우리가 보낸 선교사는 결코 팔방미인도 만능 해결사도 아니다. 그들이 할 수 있는 역량과 한계가 있는 것이다. 선교사를 보내고 선교비를 보내고 기도로 후원한다고만 해서 저절로 아프리카선교가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선교사의 역량으로는 어쩔수 없는 당면한 선교현장의 문제들이 수없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러한 선교현장의 문제들을 선교사들의 정확한 보고위에 문제상황을 정확히 파악하고 학문적으로, 조직적으로 후원하고 전략을 세워 선교에 필요한 해당 전문가를 파송지원하며 선교사와 끊임없이 연결되어 어떤 필요도 제공할 수 있는 전문적인 후원기관이 한국적 상황에 맞게 조직되어 적극적으로 이를 지원하여야 할 것이며, 한 분야 만이 아닌 전 분야의 총체적인 선교전략으로 이에 대처해야 할 것이다.
2. 연구목적과 전개 방법
본 논문의 연구목적은 동부 아프리카 선교의 구체적인 문제상황을 분명하게 파악하고, 그 문제상황을 해결하기 위하여 그 문제 상황에 맞는 성경적,신학적 기초를 마련할 뿐만 아니라 이러한 다양한 문제상황에 대응할 수 있는 총체적인 선교전략을 마련하는 것이다. 이러한 선교 전략을 수립함에 있어 아프리카 전역에 해당되는 Master Key같은 선교 전략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뒤에 언급 되겠지만 아프리카는 부족단위의 특수한 생활풍속, 문화, 언어, 종교등을 가지고 있는 다양성의 대륙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느 국가 하나를 선택하는 것도 사실상 적당하지 않다. 오히려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부족들의 단위로 전략을 수립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겠다. 그러나 문화나 언어,종교와 생활풍속이 같다하더라도 정치나 경제적 상황 또는 인종문제등의 복잡한 구조속의 오늘날 아프리카는 사실상 효과적인 선교 전략수립이 어려운 현실이다. 그렇다고해서 전혀 공통점이 없거나 접촉점 확보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우리가 세부적이고 구체적인 선교전략은 어차피 선교의 단위현장에 맞게 수립하여야 하지만 원칙적이고 공통적인 선교전략은 수립 가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본 논문에서는 동부 아프리카 선교의 교두보적 위치를 갖는 케냐를 중심으로 지리적 근접성으로 비슷한 생활 풍속과 공통적인 요소들이 비교적 많은 탄자니아와 우간다의 동부아프리카 3국을 대상으로 하려고 한다.
I부에서는 동부아프리카 선교에 대한 문제제기와 아울러 논문의 연구목적과 서술방법을 제시하였다.
II부에서는 동부아프리카 선교현장의 상황을 일반적 상황과 문제상황을 나누어 서술하였다.
III부에서는 동부아프리카 선교 현장의 상황에 맞는 성서적, 신학적 기초를 확립하여 제시하려고 한다.
IV부에서는 동부아프리카 선교의 구체적 선교전략 제시로서
제 1절에서는 가장 효과적인 선교 방법의 하나인 팀선교에 대하여 알아보고 팀사역의 필요성, 유익점, 그리고 팀사역의 문제점 및 그 해결점 모색의 한 방법으로 한국적 상황에 맞는 팀선교를 선교전략연구팀과의 연계활동안에서 찾아보고
제 2절에서는 총체적 선교의 가교 역할을 할 선교 후원 조직인 선교전략연구팀의 필요성, 조직, 연계활동들에 대하여 서술하며
제 3절에서는 현지에서 가장 시급한 문제중의 하나인 자국민 선교를 위한 현지 지도자 양성을 제자훈련과 단기 선교사 파송과 연관시켜 제시하고
제 4절에서는 아프리카 선교의 중요한 과제의 하나인 현지인 의식구조 개혁을 위한 전략으로서 가나안 농군학교 정신의 이식과 새마을 운동의 아프리카 전개 방법에 대하여 연구하며
제 5절에서는 아프리카 선교의 가장 큰 원동력이 될 부흥운동의 확산을 위해 전개할 신앙갱신운동, 특히 한국교회의 성장을 중심으로 한 동부아프리카 선교의 접촉점 및 전략을 모색코자 한다.
제 V부에서는 본연구의 모든 서술 내용을 요약 평가하려 한다.
끝으로 “아프리카에 대하여 알기 시작하는 것은 아프라카로 가고 있는 것이다”5 5김범일, 인터뷰, 1990.4.9. 신림 가나안 농군학교.
라는 김범일 가나안 농군학교 교장의 말처럼 이 연구가 바로 아프리카를 향해 꿈을 가지고 꾸준히 걸어 가고 있는 우리의 선교의지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II. 동부 아프리카 선교현장
1. 일반적 상황
1) 지리, 역사적 상황
일반적인 동부 아프리카 3국의 개황은 아래 표와 같다. 6 6「동아 원색 대백과 사전」 동아출판사편 (서울: 동아출판사, 1986)
제 22권, 27권, pp. 32(22), 306(27), 639(27).
분류\국 케 냐 탄 자 니 아 우 간 다
면 적 58만3000km2 94만5087km2 23만6036km2
인 구 1,715만 1,851만 1,322만
인구밀도 29.1인/km2 19.6인/km2 56인/km2
수 도 나이로비 다레스살렘 캄팔라
공용어 영어. 스와힐리어 스와힐리어.영어 스와힐리어.영어
통 화 케냐실링(KSh) 탄자니아실링(TSh)우간다실링(USh)
환 율
(1달러) 10.62실링 8.195실링 7.4242실링
국민소득총생산 66억3천만 달러총생산 47억8천만 총생산37억1200만
1인당 420달러 1인당 280달러 1인당 290달러
정치형태 대통령중심제.1당독재 좌 동 좌 동
정치이념 자본주의 사회주의 사회주의
수출: 10억3100만 달러수출:5억2300만 수출:3억7610만
무 역 수입: 16억 5700만달러수입:10억 8400만 수입:3억800만
(1) 케냐
케냐의 명칭은 케냐의 5대 부족의 하나인 키쿠유(Kikuyu)족의 言語인 「케레 니야가」 (KERENYAGA) 에서 유래하고 있다.7 7이일재, 「케냐와 선교」 (서울: 한국바울선교회, 1989), p.11.
이 케레 니야가의 의미는 “하얀산(White mountain)”인데 이는 케냐 중부 중
심부에 있는 케냐 산(Mt. Kenya)의 산정(山頂)이 항상 하얀 눈으로 덮여 있
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참조, 대한 무역공사에서 출판된 해외시장 「케냐」 에서는 Kamuba語의 키냐(
Kiinayae;무늬 있는산, 또는 타조를 의미)에서 유래한다고 한다.
케냐는 고고인류학에서 인류의 기원지로서 널리 알려져 있는데, 이는 인류의 역사를 나타내 주는 유적지와 고생 인류의 두개골과 뼈가 수차례 케냐에서 발견된 바가 있기 때문이다.8 8대한무역진흥공사, 해외시장 국별시리즈 29 「케냐」 (서울: 건문사,
1989), p. 7.
현재의 케냐 대표적 부족들도 대부분 11-15세기경에 이주하여 주로 해안 지방에서 정착을 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그 이후 16-17세기 경에는 포르투칼의 지배를, 18-19세기 경에는 오소만 왕국의 통치를 각각 받은 바 있다. 내륙지방에 본격적으로 정착이 이루어진 것은 19세기 중반으로 영국의 케냐진출과 거의 때를 같이하고 있다.
영국은 1895년 몸바사항과 Rift Valley 동부거점까지 보호령을 선포하고, 우간다행 철도건설을 착수하였으며, 이 과정에서 나이로비등의 신도시가 생겨났으며 백인들과 인도인의 대규모 이민이 유도 되었다. 또한 영국은 1920년 인도양 연안을 케냐 보호령으로, 그 모든지역을 케냐 식민지로 개칭하였다. 그후 영국은 우간다 및 탕카니카(현 탄자니아)에 공통의 통화를 사용하게하고 경제적으로도 긴밀한 관계로 묶어 한나라 처럼 통치하였다. 그후 30년대에 와서 키쿠유 족을 중심으로 독립운동이 빈번하게 일어 났으며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더욱 강화 되었다. 52년 10월에 시작된 마우마우의 투쟁9 9이일재, p. 14. 이 결과 1959년에 7900 여명이 투옥되고 3000 여명의
케냐인이 살해되었다.
은 56년까지 계속되는데 이는 유럽인에게 빼앗긴 농토를 되찾기 위한 민족운동이기도 하다. 조모 케냐타(Jomo Kenatta)가 독립운동의 지도자로서 세계에 널리 알려지게 된 것도 이 무렵의 일이다. 이윽고 1963년 12월12일 케냐는 독립을 성취하였으며 64년 12월 12일 공화국을 설립하였다.
지리적으로 케냐는 동쪽 해안 지방으로부터 내륙지방으로 들어오면서 준 사막인 건초지대를 거쳐 지세는 점차로 고원화 하고 있다. 남서부의 고지대는 케냐고원으로 불리는 곡창지대를 형성하고 있으며 활발한 농업생산을 통하여 케냐경제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 이 남서부 지역은 Great Rift Valley라고 부르는 지대에 의하여 동서 양편으로 분리되고, 이 지대를 중심으로 고지대는 비옥한 토양과 풍부한 강우량으로 인해 전 인구의 70% 정도가 밀집되어 있으며, 정치,경제,사회의 중심지로서 나이로비가 이곳에 위치하고 있다.10 10대한무역진흥공사, p. 8.
총면적의 5분의3을 차지하는 동북부 주변에는 거의 강우가 없는 황무지이다. 크게 보아 케냐의 지형은 시리아의 홍해, 이디오피아 및 케냐를 종단하여 탄자니아, 말라위 인도양으로 들어가는 4000mile에 이르는 大地溝帶의 일부인데, 이 대지구대의 폭은 40mile, 깊이 2300ft이며 지역에 따라 복잡한 지형들을 이루고 있다. 이 대지구대에 주요 산맥들이 분포 되어 있으며, 아프리카 대륙에서 두번째로 높은 해발 5197m의 케냐산이 위치하고 있다. 케냐의 기후는 지역에 따라 매우 다양하게 구분되고 있다. 먼저 저지대인 해안 지대의 기후는 불쾌지수가 80-90%의 고온 다습한 열대성 기후를 보이고 있고, 반면 고지대는 사람이 살기 매우 쾌적한 10C - 27C 의 서늘한 고산기후를 나타내고 있으며 연평균 850mm의 강우량을 나타내고 있다. 고지대에 위치한 나이로비는 연중 2회의 우기가 있는데 4-6월 의 대우기와 10-11월의 소우기로 나누어져 있다. 자연경관이 다양하며, 비옥한 고원이 넓게 펼쳐져 있어 농업적 여건이 풍성하다. 야생동물들의 천국으로 여러개의 국립공원과 동물 보호구역이 있다.
(2) 우간다
우간다는 예로부터 여러민족의 왕래가 빈번하였으나 이디오피아 방면에서 남하한 인종이 분뇨로, 부간다등의 왕국을 세운 것이 16세기 중엽이었고, 처음에는 분뇨로 왕국이 가장 강력하였으나 19세기에 들어와서는 부간다 왕국이 득세 하였다. 1844년 경부터 인도양 연안에서 진출해온 아랍 노예상인이 빅토리아 호수근처에도 넘나들었고 또한 수단 방면에서 온 노예사냥꾼을 선도하여 이집트의 세력도 침투해와서 1870년대에는 이지역의 지배권을 주장 하였다. 영국의 탐험가 J.H.스피크와 J.A.그란트가 북산다 왕국을 방문한 1862년, 영국이 이지역에 세력을 확립한 것이 89년인데 영국 동 아프리카 회사가 그 통치, 개발을 담당하였다. 90년에 독일령 동아프리카와 경계가 확정 되었으며 러가드 대위가 통치를 맡았다. 94년 부간다 왕국이, 96년에는 다른 우간다 지역들이 영국과 보호령 협정을 맺었다. 1901년 동 케냐 빅토리아 호안에 있는 키수무항과 인도양 연안에 있는 몸바사항을 잇는 철도가 개통되었고, 아프리카 농민에게 재배방법을 지도하여 생산된 목화를 수송하기 위한 철도도 부설되었다. 한편 10년경부터 백인 농장에 시작한 커피 재배가 아프리카인들 사이에도 널리 퍼져나갔다. 제1차 세계대전 후에는 그때부터 영국 위임 통치령이 된 탕카니카(탄자니아)를 더하여 세 나라가 공통의 통화.관세.교통.통신 등을 통하여 영국의 지배를 받았다. 독립운동은 52년에 결성된 우간다 민족회의(UNC) 활동이 최초였고 이는 다른 여러 아프리카 국가들 보다 상당히 뒤늦게 시작된 셈이다. 영국의 동아프리카 연방 구상에 반대하였던 부간다 왕국은 53년 11월 이후 한때 퇴위를 당하였으나 62년 10월에 독립되면서 헌법개정에 의해 특이하고 복잡한 연방형태의 대통령이 되었다.11 11「동아 원색 세계대백과 사전」, “우간다” 항목.
또한 지리적으로 우간다는 동아프리카의 대지구대에 중앙에 위치하고 있으며 영토의 대부분은 표고 1000m이상으로 적도 바로 아래이나 기온은 연교차가 거의 없고 수도 캄팔라의 연평균 기온은 21.9℃이다. 우기는 3-5월, 9-1월등 2회이며 빅토리아 호반의 연평균 강우량은 1800mm에 이른다. 살기 좋고 자연 환경이 무척이나 호조건이며 자연 자원이 많아 아프리카 53개 독립국 중 자원이 가장 풍부한 나라중의 하나이다. 많은 호수와 산, 소림지역은 자연 경관의 극치를 이룬다. 우간다는 사바나 기후로 많은 동물들이 살고 있으며 국립공원과 동물 보호구역이 많이 있다.12 12Ibid.
(3) 탄자니아
탄자니아는 15세기 말까지 아랍.페르시아.인도등의 이슬람 교도의 지배하에 있었다. 이슬람 교도는 내륙에 침입하여 노예사냥을 행하였고 잔지바르를 노예무역의 기지로 삼았다. 16-17세기에 일시적으로 포루투칼의 지배를 받았으나 18세기이후 동 아프리카의 해안 평야를 영토로 하는 잔지바르 왕국의 중심이 되었다. 19세기 후반부터 유럽 열강의 동 아프리카의 식민지화가 시작 되면서 탕카니카는 독일령 아프리카의 일부가 되었고 제1차 세계대전 후에는 국제연맹의 위임 통치지역 제2차 세계대전 후에는 국제연합의 영국 신탁통치령이 되었다. 1954년에는 탕카니카 아프리카인 민족동맹(TANU)이 조직되어 탕카니카 독립운동이 전개 되었다. 그리하여 61년 영국 연방내의 자치국으로 독립, 62년 12월 탕카니카 공화국을 선언하고 J.니에레레가 초대 대통령에 취임하였다. 한편 잔지바르는 1890년 이후 영국의 보호령이 되어 있다가 1963년 12월 술탄이 지배하는 입헌 군주국으로 독립하여 UN에 가입 하였다. 그러나 독립 1개월 뒤인 64년 1월 혁명이 발발하여 잔지바르 공화국으로 바뀌었으며 같은해 4월 27일 탕카니카 공화국과 연합 탕카니카.잔지바르 연합 공화국이 선포 되었고, 10월에는 탄자니아 연합 공화국으로 개칭하였다.13 13「동아 원색 세계 대백과사전」 27권, “탄자니아” 항목
지리적으로 탄자니아는 국토의 대부분이 산지로 구성되어 있어 북부에는 유명한 킬리만자로 산 (5895m)을 비롯하여 해발 4000m가 넘는 산이 많다. 서부는 동아프리카 대지구대의 빅토리아, 탕카니카,말라위의 세 호수가 국경선 상에 있다.14 14유운영, 「아프리카 개론」 (서울: 명지출판사, 1987), p. 359.
인도양안의 기후는 고온 다습하지만 그 밖의 지역은 변화가 많고 기온은 낮은 편이다. 인도양 상의 잔지바르는 펨파섬을 포함하여 면적 2500km2이며 산호초로 이루어진 평탄한 섬으로 계절풍으로 인하여 건계와 우계가 뚜렷이 구별된다. 이 잔지바르와 탕카니카를 합친 탄자니아 국토 총면적은 948,650Km2이며15 15Patrick Johnstone, Operation World (Herts: Nuprint Ltd, 1968), p. 402.
이는 남북을 합친 한국면적의 약 5배이다.
2) 정치, 경제적 상황
(1) 케냐
케냐는 헌법상 의회 민주주의를 채택하고 있으나 사실상 일당에 의한 대통령 중심 중앙집권식 국가이다. 현재 유일정당으로 케냐 아프리카 국민당(The Kenya Africa National Union, KANU)이 있다. 16 16대한무역진흥공사, p.11.
최초의 대통령은 케냐 독립의 아버지로 불리던 케냐타였고 78년 8월 케냐타가 사망하자 부통령이던 다니엘 모이가 후임 대통령으로 현재까지 재임하고 있다. 케냐는 온건비동맹 정책으로 67년 탄지니아 우간다와 더불어 동아프리카 협력기구를 결성, 정치 경제적으로 강력한 공동체의 수행을 표방하였으나 기구운영 문제로 3국관계는 순탄치 못하다. 한때 소말리아와 국경 분쟁이 있었으며 우간다와도 긴장 상태에 있었다. 비동맹노선을 지향한다고는 하나 영국, 미국으로부터 군비 원조를 받는등, 친서방, 반공의 색채가 농후하다.
정치적으로 비교적 안정되어 있으나 아직 성숙치 못한 정치 경제적 상황으로 일당 독재가 가져오는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즉 경찰,군인정치가 계속 되고 있으며 공무원들의 비리, 부익부 빈익빈의 악순환이 더욱 사회를 불안하게 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1990년 2월에 있었던 외무부장관 암살사건등이 그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겠다.17 17대외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았다. 필자가 현지에 있을때 신문, 방송으
로 아주 짧게 취급되었으나 현지 외국인들에게는 긴급 출국 대기령이 대사
관으로부터 연락되어 있었다.
또한 케냐의 경제를 살펴보면 독립후 4년간 케냐의 경제적 성장율은 연평균 7.4%,18 18동아 원색 세계 대백과 사전, 27권, p.307.
85년-88년에는 5.1%19 19대한무역진흥공사, p. 17.
로 동아프리카 국가 중에서는 가장 높은 성장율을 나타내고 있다. 산업별 비율은 농림, 수산업이 가장 높고 공업 서비스업등의 순이다. 주요 수출품은 커피,홍차등의 농산물이고, 주요 수입품은 각종 기계류,철강,자동차등 공산품이다. 최근에는 석유제품, 식육 가공품, 시멘트 등도 주요 수출품으로 등장하고 있다. 약 700만 의 노등인구 가운데 약 200만명이 농업에 종사하고 있는데 종래에 비하면 농업 종사자가 차지하는 비중이 훨씬 줄어들고 있는 것으로 보아 케냐의 산업화가 진행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60년대만 하더라도 노동인구의 대부분이 농업에 종사하고 있었다. 노동인구를 종족별로 보면 94%가 아프리카 인이며 아시아 4%, 유럽 2%의 비율이다. 교통은 약 2000Km의 철도가 부설되어 있고 대부분이 우간다와 탄자니아에 연결되어 있다. 차량 총 보유대수는 2만대 정도이며 몸바사항등 항만시설과 선박은 동아프리카 철도항만청에서 운영하고 우간다, 탄자니아와의 공동경영으로 동아프리카항공이 운영하고 있다. 케냐의 주요 경제는 농업이 주종이지만 현대에 와서 관광붐이 일어나면서 세계의 관강객들이 케냐의 국립공원과 몸바사항등 빼어난 자연관광과 동물관광을 즐기게 되면서 관광 산업이 새롭게 대두되고 있다. 다만 부정적인 측면으로서 공공지출 증대에 따른 재정적자와 약 45억불의 외채, 높은 인구증가율(4%), 외국 투자부진, 무역적자누중(88년 7억1천만불)등20 20Ibid., p.18.
의 반 문제점을 안고있는 것이다.
(2) 우간다
우간다는 1967년 10월9일 독립 5주년 기념일에 신헌법이 실시되면서 종래의 정치체제에서 탈피하여 공화국으로 변모하였다. 대통령은 원수,정부수반,군 최고사령관의 지위를 겸하는 등 강력한 권한을 행사한다. 의회는 단원제로 82의석인데 그중 27석은 대통령이 임명할 수 있다. 초대 대통령은 우간다 왕국의 무테사 2세였으나 66년 오보테 수상이 쿠테타로 정권을 장악, 좌경화 하였다. 71년 1월 오보테가 영국 연방수뇌회의 참석차 외유중 이번에는 이디아민이 구테타를 일으켜 정권을 장악,의회를 해산하고 정당활동을 금하였다.아민은 72년 8월 우간다의 경제를 주름잡던 주재 인도인에게 강제퇴거령을 내렸으며, 그후 반대파로 인정되는 국민의 대량학살을 감행하는 등 국제적 비난의 대상이 되었고 그의 폭정하에서 정치가, 실업가, 지식가의 대부분은 숙청되거나 망명하거나 하였다. 72년 이스라엘과 단교, 리비아와의 동맹관계를 맺는 한편 인접국가인 탄자니아.케냐와의 관계를 악화시켰기 때문에 우간다는 아프리카에서 완전히 고립되었다. 78년 10월 탄자니아와 군사충돌을 일으킨 아민은 79년 4월 탄자니아의 지원을 받은 반 아민파에 의하여 국외로 추방되었다. 그후 여러번 대통령이 바뀌면서 80년말 총선거에 의하여 오보테가 대통령에 복귀하였다. 아민이 축출되자 미국은 79년 5월 우간다에 대한 금수조치를 해제한 바 있다.21 21동아 원색 세계 대백과 사전, 22권, p. 33.
경제적인면에서 보면 우간다는 농업국으로 수출품의 90%가 농산물인데 1976년의 경우 수출총액중 커피가 82.7%, 목화 6.1%, 차 2.9%, 구리 2.2%를 차지한다.22 22Ibid.
우간다의 경제는 1920년 부터 탄자니아, 케냐와 밀접하게 결부되어 있었으며, 독립후 공동통화가 폐지된 후 공동조약을 맺고 경제,정치적 협력을 꾀하였으나 아민정권의 출범 후 마찰이 심화되어 결렬되기에 이르른다. 우간다의 산업경제는 탄자니아나 케냐와 마찬가지로 오랫동안 인도인, 파키스탄인들에 의하여 지배되어왔다. 72년에 아민이 강제퇴거를 명하였을 때 영국은 이를 반대하였으나 일반대중은 이를 환영하였다. 그러나 아시아인의 대부분이 떠나게 되자 우간다의 경제는 혼란에 빠지게 되고 부득이 아시아인들을 재입국시키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이와같은 혼란은 물자부족과 극도의 인플레를 유발하였다. 더우기 아민의 공포정치는 결국 우간다를 동아프리카의 가장 후진국으로 전락시키고 말게 된 것이다. 우간다는 비교적 교통은 편리한 편이며 빅토리아 나일강 유출부에 수력발전소를 건설하여(1954) 케냐, 탄자니아와 공동으로 전력을 사용하고 있다.
(3) 탄자니아
탄자니아는 대통령 중심제 국가로 대통령의 임기는 5년 이며 독립 이래 니에레레가 연임하여 현재에 이른다. 국회는 단원제, 임기 5년으로 대통령 선거와 동시에 선출된다. TANU 당과 초기에 이와 대립했던 잔지바르의 아프로시라지(ASP)당이 1977년 2월에 통합하여 결성한 카마 차 마핀두지(CCM) 당이 유일한 정당이며 이를 기반으로 하는 니에레레가 권력을 장악하고 있다. 77년 4월에는 새 헌법을 제정하였다. 그후 1983년 구테타가 실패로 끝나고 1984년 탕카니카와 잔지바를 대표하는 2명의 부통령제를 채택하고 1985년 총선을 실시 Mwinyi가 새 대통령으로 선출 되었다. 탄자니아는 아프리카 통일기구에 가입해 있고 다레스살렘에는 이 기구의 해방위원회 본부가 있다. 비동맹 반 식민정책, 반 흑백 차별주의 노선을 표방하고 있으나 중공과 유대가 깊고, 75년 6월 개통된 탄잠 철도는 중공의 원조로 건설 되었다. 71년 우간다의 오보테 대통령이 실각하여 탄자니아로 망명해 온 이래 우간다와의 관계가 악화 되었으나 79년에는 탄자니아 군이 우간다에 진공하여 반 정부군을 지원 아민정권을 쓰러뜨리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 로디지아(짐바브웨)문제에 대한 영국의 태도를 비난하여 한때 영연방에서 탈퇴 하기도 하였다. 사회주의 색체가 강한 국가로 사회주의 국가의 단점을 그대로 지니고 있으며 북한과의 수교(1965.1.4)로 한국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Visa발급이 허용되지 않았으나 1989년 3월 부터 사전 Visa로 입국할 수 있게 되었다.23 23산업연구원 편, 「탄자니아」 (서울: 산업연구원, 1989), p.21.
또한 탄자니아 경제는 제2차 석유파동 이후부터 1980년대 전반 까지는 저성장 내지는 貧의 성장을 하였으나, 그후부터는 3低效果, 주산업인 농업의 호조 및 3개년 경제 회복 프로그램의 적극 추진등에 힘입어 1988년 까지 연평균 4%정도의 성장율을 기록 하였으며, 1989년에는 이보다 다소 높은 성장율을 보여주고 있다.24 24Ibid.
탄자니아 정부는 그동안 견지해 왔던 사회주의 경제체제로 부터 공기업의 민영화 추진 및 국가 독점사업에의 민간인 참여를 허용 하는등 자본주의 경제체제로의 전환을 시도하고 있어 그동안 매우 위축되어 있던 민간 부문의 활성화가 기대되며 그동안 폐쇄적 입장을 견지해 왔던 외국인 투자에 대하여도 전 경제 분야에서 문호를 개방할 예정으로 향후 외국인 투자도 늘어날 전망이다. 과격한 농촌 집단화 정책과 대규모 농장의 국유화 조치로 농업 생산이 부진 했으나 근년에 와서 동 정책이 완화되고 외국인 투자법이 개정되어 농,철공업부문이 활성화 되고 있다. 또한 개발 잠재력이 높은 관광업은 케냐, 탄자니아 국경이 폐쇄된후 부진을 면치 못했으나 최근 도로등 관광 관련 개발이 실시되어 전망이 밝다. 그러나 수요에 못미치는 공급능력, 30-40%에 이르는 통화량 증가, 평가 절하에 따른 수입물가 상승등 여러가지 요인들로 인하여 소비자 물가는 년 30-36%의 높은 상승율을 나타내며 무역수지는 만성적자로 적자폭이 해가 갈수록 넓어지고 있으며 외채도 계속 늘어나 1989년 초에는 약 51억 달러에 달해 탄자니아 경제를 위협하고 있다.
3) 문화 종교적 상황
(1) 케냐
케냐의 사회는 여러 인종이 섞여 사는 다인종 사회의 특색을 지니고 있다. 즉 인도인.파키스탄인.유럽인.아랍인 등의 비 아프리카인이 도시지역에 집중하여 살고 있으므로 이들의 사회 경제적 영향력은 대단한 위치에 있다.(1988년말 총인구 2200만중 유럽인 4만, 인도인 5만, 아랍인 2만 기타 외국인 7만4천으로 총 18만 4천명)25 25이일재, p. 26.
70년대의 인구증가율은 연평균 3.5%로 매우높은 편이며 인구 도시집중율도 연간 9%에 이르러 도시빈민의 문제가 심각하다(도시인구 1979년통계:162만). 교육열이 높아 예산의 4분의1을 교육비에 쓰고 있으나 아직 교육적 수준은 미흡한 편으로 국민학교 교사의 96.3%가 아프리카인 이지만 중등교원 이상은 57.4%가 외국인인 실정이다.26 26동아 원색 세계 대백과 사전, p. 307.
한 케냐의 국어는 스와힐리어((Swahili)이며 공용어로 영어가 널리 쓰이고 있다. 이밖에 Bantu語, Nilotic語 및 Hamitic語등의 토착어가 있으나 도시지역에서는 거의 사용되지 않고 있다. 종족으로는 Kikuyu가 최대 인구를 구성하고 있으며, 그 다음으로 Luhya, Luo, Kalenjin등의 순으로 나타나고 있다. 현 모이 대통령은 Kalenjin출신이며 정치안정에 힘입어 부족간의 심각한 분쟁현상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27 27대한무역진흥공사, pp. 9-10.
종교 현황을 보면 아프리카인의 종교 신앙 및 예배의식은 인종 및 종족, 지역에 따라 다양하며 아랍인은 회교를, 인도인은 일부는 회교, 일부는 힌두교를, 유럽인 및 Goan인은 기독교를 각각 신봉하고 있다. 회교는 주로 해변지방에서 신봉하고 있으나 수도 나이로비 근처와 기타 지방 및 일부 북부 변방의 주민도 믿고 있으며 특히 기독교 교세는 활발하게 확장되고 있어 현재 케냐 아프리카인 중 25%가 기독교인인데 동부 아프리카는 Bahai신앙의 중심지 이기도 하다.28 28Ibid.
(2) 우간다
우간다는 아프리카에서 인구밀도가 가장 높은 나라의 하나이며, 계절적인 농업노동자가 대량으로 인접국가로부터 드나 들고 있는 나라이다. 종교는 그리스도교, 이슬람교가 가장 널리 보급되어 있지만 전통적인 부족종교도 무시할 수 없다. 언어는 전통적인 부족왕국이 근래까지 존속하였으며 또 반투계 이외의 다양한 주민이 살고 있기 때문에 다른 동아프리카 여러나라들 처럼 스와힐리어를 국어로 하지않고 영어를 공용어로 사용하고 있는데 이는 당분간 게속해서 존속될 것 같다. 성인 문맹율은 75%에 달하나 교육은 인접 국가보다도 널리 보급되고 있으며 국민학교 학생수가 약 80만, 그밖에 중학교, 직업학교가 있으며 기독교, 이슬람계통의 사립학교도 많이있다.29 29동아 원색 세계 대백과 사전, p. 34.
(3) 탄자니아
인구의 97.6%가 아프리카인이며 Sukuma족등 120여개의 소부족들로 구성되어 있어 기타 아프리카처럼 부족간의 대립이나 갈등이 심화되지는 않고 있다. 스와힐리어가 국어이고 영어를 공용어로 사용하고 있으며 도서지역에서는 이슬람교(30%)가 지배적이나 본토에서는 전통종교, 기독교(50%), 그리스 정교등을 믿는다.30 30Patrick Johnstone, p. 103.
초등교육은 무상이나, 문맹률은 80-85%로 추정된다. 아루샤 선언의 일환으로 교육제도의 개혁과 재편성이 이루어져 초.중.고등교육의 연속성이 부정되고 근로와 봉사를 위주로 하는 교육과정이 실시된 이래, 특히 대학생에게는 방학중 건설관계의 노동에 종사하는 의무가 부과되어 있다.31 31동아 원색 세계 대백과 사전, p. 640.
총인구는 1988년 2317만명이며 인구증가율은 1983-88년평균 2.6%, 인구밀도는 km2당 25명 이며 주요 도시의 인구는 달레스살렘에 110만명, Mwanza 에 25만, Tabora에 21만, Mbeya에 19만명으로 약 170만명에 이르고 있다.32 32산업연구원 편, p. 28.
2. 문제상황
1) 제3세계의 특성
제 3세계라는 용어는 1960년대 U.N 총회에서 사용된 용어이다. 그 정의는 “약소민족들의 단결을 통하여 서방세계 중에 구라파 지역과 미국, 소련, 동부 스칸디나비아 반도 일대의 과거 다른 나라를 침공, 적어도 하나 혹은 둘 이상의 식민지를 가진 강대국들에 대항하기 위해서 조성한 약소민족들의 연합체”33 33강문석, 「제 3세계 선교」 (서울: 기독교 문서 선교회, 1985), p. 20.
라고 하였다. 이 제 3세계는 분명한 범위나 한계를 정하기가 곤란하다. 와그너(A.D. Wagner) 교수는 제 3세계란 일반적으로 아시아, 아프라카, 라틴 아메리카를 가리키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문제는 이처럼 단순하게 말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제 3세계는 조직화된 어떤 구조를 가진 것이 아니고 구성 요건이나 정해진 범위, 또는 규정된 한계가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제 3세계는 그 특성으로 말하는 것이 타당성이 있을 것이다.
강문석 목사는 그의 저서 제 3세계 선교 에서 제 3세계(주로 아프리카를 중심으로)의 특성을
1. 정신적인 빈곤 2. 피해의식 3. 외래적 문화의 기피 4. 열등의식
5. 서구 문명에 대한 혐오심 6. 극심한 빈곤 7. 강한 민족주의 8. 다양성 9. 장기적 노예무역의 피해 10. 풍부한 자원 11. 불안한 정치
12. 빈번한 혁명 13. 비동맹주의 14. 다양한 종교 15. 폐쇄적 풍속과 언어 등을 말하면서
1) 오랜 식민지 생활에서 온 외래문화에의 거부와 불신
2) 산아제한과 인구정책이 아직 정착되지 아니함으로 오는 높은 출생률
3) 정치 훈련의 부족으로 오는 빈번한 구데타
4) 과학화되지 못한 영농으로 말미암는 식량부족
5) 공업생산의 부진에서 오는 생필품의 부족
6) 풍부한 자원의 개발을 위한 자본의 부족으로 생산성이 약함으로 인한 빈곤 들로 말하고 있다.34 34Ibid., pp. 44-139.
이러한 제 3세계의 특들은 아프리카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지니고 있는 공통적 특성들로서 우리가 선교 전략을 수립함에 있어서 간과하지 못 할 중요한 문제상황들이 될 것이다. 이제 이러한 문제상황들 중에서 동부 아프리카 선교 전략을 수립함에 있어 가장 먼저 검토되고 처리 되어야 할 중요한 문제상황 7가지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살펴 보고자 한다.
2) 문제상황
(1) 다양성
대개의 경우 아프리카 하면 검은 피부색의 사람들이 모여 사는 미개한 대륙 정도로 알고 아프리카 전역이 하나로 인식되어 버리는 경우가 많다.
세계 면적의 6분의 1, 53개 독립국에 지구 인구의 12분의 1 이 살고 있는 거대한 대륙을 하나로 인식한다는 것 부터가 문제가 될 것이다. 아프리카는 그 대륙의 방대함에 따라 그 기후도, 지형 조건도, 문화도, 풍속도 모든 여건이 아주 다양하다. 지형적으로는 사하라 사막을 비롯한 광대한 사막지대, 중부.서부의 열대 우림지대, 북서부와 동부 일대의 고원지대, 대호군 일대의 산악지대, 니제르,차드,콩고 등의 대분지, 나일강, 대호수,계곡등의 다양한 조건에 다양한 방법으로 살아가고 있어 획일적인 이해는 불가능한 것이다. 또한 아프리카 전체를 이해한다는 것도 사실상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이 다양성의 문제를 간과 하고서는 아프리카 이해가 어려울 것이며 선교 전략도 의미가 없을 것이다. 이러한 다양성이 나타나는 중요한 원인으로는 다음과 같은 강문석 교수의 말35 35Ibid., pp. 99-101.
로 약 할 수 있다.
먼저 식민 통치의 영향을 들 수 있다. 세네갈, 케냐, 앙골라의 삼개국을 예로 들면 이들은 공용어나 행정및 교육제도, 건축양식, 농작물의 종류등 모든 분야에서 각각 그들의 종주국이었던 프랑스, 영국, 포르투칼의 특징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둘째는 국가마다 추구하는 바가 다른 이데올로기적 형태에서 나타난다. 이는 지도자의 개성이나 국가의 경제적 현실, 혹은 식민통치에의 반발등에의해 형성 된 것으로 케냐는 자본주의, 우간다와 탄자니아는 사회주의를 지향하고 있다. 이러한 이데올로기는 동부 아프리카 3국의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집단에 깊은 영향을 끼치고 국가행위의 목표설정에도 중요하게 작용하고 있다.
세째는 아프리카 대륙의 지형이 다른 대륙에 비해 복잡하다는 점이다. 아프리카 대륙의 전역에는 부분적으로 평원이 발달해 있고, 중서부에는 500m 정도의 대지가, 동부와 남부에는 1,000m 이상의 고원지대가 펼쳐 있다. 또한 북부나 남서부에 대 사막, 이디오피아 고원에서 남부 니아사호에 이르는 대협곡과 대호수군, 중서부 카메룬 산맥, 북동부의 아틀라스 산맥, 남아공화국등의 산맥군, 대 분지를 포용하고 있는 나일강, 니제르강, 콩고강등 강연안 지역등 다양한 지형 조건이다. 따라서 기후도 사막 건조 기후부터 열대 우림 기후까지, 또 식물 분포도 지중해성 삼림지대부터 사바나의 관목지대까지 고루 분포하고 있다.
네째는 인구문제가 복잡하다는 점이다. 인구문제는 인구 규모, 인구 집중, 종족구성, 이주민등으로 나누어 말할수 있는데
인구규모는 7천 8백만의 나이지리아로부터 1백만 이하의 10여개국에 이르기 까지 다양하며 대부분 인구 5백만 이하의 국가들로 인구 과소로 인하여 경제적 정치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인구 집중은 도농간의 인구격차를 말한다. 나라마다 경우가 다르며 도시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정치 경제적 활동이 이루어지게 됨으로 도시화는 국가간의 차이로 관심이 집중되는 문제 이기도 하다.
종족 구성의 문제는 가장 큰 다양성의 원인이 되고 있다. 정확한 통계 마저 잡을 수 없을 만큼 수많은 종족들과 다양한 언어, 생활방식, 습관등의 차이에서 생성된 여러가지 이질감은 부족주의를 창출하여 아프리카 국가건설등, 근대화에 많은 영향을 주고 있다.
이주민 역시 아프리카 사회의 다양화를 촉진시키는 한 요소가 되고 있다.대표족인 이주민으로서는 유럽인들로 오백만이 넘는 그들의 존재는 수백년동안 아프리카 식민통치의 유산으로 볼 수 있다. 또한 인도인, 아랍인등 아시아인도 상당수 정착하고 있다. 우리가 선교 대상지로 다루게 되는 동부아프리카의 경우 인도인들이 경제권의 거의 대부분을 장악 하고 있어 국가 경제의 커다란 세력이 되어있다. 또한 이런 이주민과의 혼혈민족도 생기게 되었는데 보아인과 스와힐리인이 그 대표적 예라 할 수 있다.
이상에서 언급한 다양성은 아프리카를 이해하려는 시도에 대단한 장애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러한 장애물을 이해하려는 시도가 곧 아프리카를 이해하게되는 지름길이기도 한다. 따라서 우리의 선교는 결코 획일성을 지닐 수 없다는 분명한 결론으로부터 출발하게 되는 것이다. 선교전략 자체가 다양성을 지니는 총체적인 선교일 수 밖에 없게 된 것이다.
(2) 언어와 일반풍속
이상에서 언급한 다양성에서 우리는 쉽게 접근할 수 없는 아프리카를 생각하게 되었지만 막상 선교 현장에 뛰어 들어가 보면 가장 먼저 당하는 커다란 장애물은 무엇보다도 언어인 것을 쉽게 깨달을 수 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아프리카의 언어구성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아프리카 대륙에는 수천년동안 적어도 네개의 어군(language families)이 존재해 왔다. 이들은 니제르-콩고(Niger-Congo 혹은 Niger-Kordofanian)어군, 나일-사하라(Nilo-Sahara)어군, 코이산(Khoisan 혹은 Clik)어군,아프로-아시아(Afro-Asiatic)어군 등이다.36 36권명식, 「아프리카 학 입문」 (서울: 명지출판사, 1988), pp.95-202.
이 가운데 니제르-콩고 어군은 가장 넓게 퍼져 있으며, 북아프리카 거의 전역에서 사용되는 언어들을 포함하고 있다. 이 어군에는 하나의 커다란 준어군(sub-division)이 존재하는데 그것은 반투(Bantu)어계이다. 반투어계에서 가장 널리 쓰이고 있는 말은 스와힐리어로 대륙의 동,중,남부일대에서 사용되고 있다. 그밖에 잘 알려진 것으로 니제르-콩고 어군에 속해 있는 하우쟈어, 요루바어, 이보어 등이 있다.
나일-사하라 어군은 대부분 나이지리아, 챠드,수단,우간다,케냐등에서 사용되고 있는 소규모 언어들로 구성된다. 이는 나이지리아의 송가이(Songhai)어, 수단의 누비아(Nubia)어,케냐의 루오(Luo)어등이 해당된다.
코이산 어군은 대부분이 딸각음을 많이 내기 때문에 클릭(Clik)어군이라고도 한다. 이 특징이 가장 두드러진 것은 코이산어이며, 남부 아프리카의 부쉬맨, 호텐토트족들에 사용되는 말들도 이에 속한다.
마지막으로 아프로-아시아 어군은 서 아시아 언어와도 관계가 깊으며, 아랍어,암하릭(Amharic)어 등의 셈(Semtic)어 계와 버버(Berber)어, 쿠쉬(Cushitic)어등, 함(Hamitic)어의 언어들을 포함하고 있다.37 37강문석, pp. 104-105.
그밖에 아프리카 대륙에는 과거 2천년에 걸쳐 외국으로부터 수입된 언어들이 존재하고 있다. 마다가스칼인들은 인도네시아어와 비슷한 말라야-폴리네시아 계통의 언어를 사용하고, 동남아프리카의 소위 아시아인들은 인도대륙의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 또한 더욱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것은 인도-유럽 어군으로 영어,불어,포르투칼어, 그리고 아프리칸스(Africaans)등이 있다.38 38Africaans : 화란어와 아프리카어와의 혼합어로 남아공화국의 아프리카너들이 사용하는 언어.
이들 유럽의 언어들은 식민 통치기간 중에 공용어로 정착되었으며 독립후에도 대부분의 국가들은 종주국의 언어를 그대로 공용어로 사용해 교육받은 계층이나 상인층에서 널리 사용되었다.
한편 일부 국가에서는 아프리카의 토착어를 공용어로 채택하기도 했다. 북아프리카 국가들에서의 아랍어, 탄자니아와 케냐의 스와힐리어, 소말리아의 소말리아어, 이디오피아의 암하릭어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같은 토착어의 공용어 채택에도 불구하고 영어,불어등 유럽언어들도 그대로 사용되고 있다. 또한 아프리카인의 대부분은 여러개의 언어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많은 언어의 혼합어가 생성되었다. 서 아프리카의 하우사어, 밤바라어(Bambara), 콩고의 링갈라어(Lingala), 우간다의 루간다어(Luganda), 잠비아의 벰바어(Bemba)등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동부 아프리카 뿐만 아니라 아프리카의 언어는 고유부족의 언어 외에도 외래어, 또한 외래어 합성어등 정말 복잡한 언어세계가 존재하는 것이다. 심한 경우에는 이웃한 부족간에도 언어 소통이 되지 않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프리카에서 가장 어려운 문제는 언어의 혼잡으로 인한 의사소통의 결여인 것이다. 이러한 언어의 장벽이야 말로 동부아프리카 선교에 있어 가장 먼저 넘어야 할 문제 상황인 것이다. 보통의 어떤 국가이든 1-2개국어의 습득만으로 언어문제는 해결이 되는데에 비하여 동부 아프리카의 경우 공용어나 국어 이외에도 각각의 부족어들을 모두 배워야 하기 때문이다. 탄자니아 120개부족, 케냐 30여개부족, 우간다 60여개의 부족 모두가 각기 다른 부족어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39 39Andrew Fedders, Cynthia Salvadoria, People and Cultures of Kenya (Nairobi: Transafrica Book Distributors, Kenwood House, 1979), pp. 162-163.
다 이 탄자니아나 케냐의 경우 공용어인 스와힐리어와 영어가, 우간다에는 영어가 식자층에서 사용되고 있으나 성인 문맹률 약80%의 현실에서는 아직도 언어의 문제는 매우 심각한 문제상황인 것이다.
언어뿐만 아니라 풍속도 그 종족마다 전통적인 의식과 형식이 있어서 서로 다르다. 그러면서도 이들은 서로 가지고 있는 전통들을 매우 중요시하기 때문에 개종이란 극히 어려우며 이를 강요하게 될 때는 결사적으로 싸우게 되는 특징이 있다. 그들은 오랜 옛날 자기들의 조상이 섬기던 신들에 의해 탄생하였기 때문에 자기들이 섬기던 신들을 바꾼다는 것은 곧 그들의 존재와 정신의 죽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여기는 것이다. 따라서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신개념과 거기에 따르는 종교의식이나풍속은 거의 절대적으로 지켜져야 할 하나의 타부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동부 아프리카의 경우 많은 기독교 인구가 있다. 이는 지금까지 피눈물로 선교에 앞장서 왔던 헌신적이고 양심적인 선교사들에 의하여 얻어진 값진 결실이다. 그러나 그들 모두가 성서적 그리스도인들이 아닌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는 식민지에서 종주국에 대한 반갑지 않은 반응일 수도 있고, 자기들의 종교적 행위에 기독교적 껍질을 씌운 혼합된 종교적 표현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들이 전혀 기독교에 대해서 모르거나 배타적인 타 부족 보다는 훨씬 접근하기 쉽고, 명목상의 그리스도인이 아닌 진실한 그리스도인으로 변화 시킬 수 있는 접촉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동부 아프리카 선교에 있어서 좋은 청신호가 아닐 수 없다.
(3) 국민성과 의식구조
독일의 저명한 철학자 헤겔(1770-1831)은 그의 「역사철학 강의」 서문에서 “검둥이들은 전적인 野蠻性과 奔放함에 있어 자연적인 인간상태를 내보여 주고 있다. 그들을 정당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품위라든가 인륜이라든가 혹은 대체로 감정이라 불리어 합하는 그 어떤 것도 찾아 볼 수 없다.”40 40Hegel, G. 1821. “Der Neger stellt den naturlichen Menschen in seiner ganzen Wildeheit und Unbandigkeit dar : von aller Ehrfurcht und Sittlichkeit, von dem, was Gefuhlheit, muss man abstrahieren wenn man ihn richtig auffassen will ; es ist nichts an das Menschilc-he anklingende in diesem Charaker zu finden.” 김종호 역(1982) p.182 참조.
라고 아프리카 흑인들에 대하여 말하고 계속해서 “아프리카는 역사적 세계에 속하지 않는다.”41 41Ibid.
라고 단정하면서, 그곳에는 ‘운동과 발전’이 결여되어 있는 대륙이라고 결론 짓고 있다. 이와 같은 헤겔의 사고 방식은 이후 구라파의 인식세계를 장악하여 아프리카-유럽 관계에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 더우기 현대에 와서 까지 이러한 부정적 사고 방식은 계속되고 있기 때문에 더더욱 큰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다.
더우기 아프리카에 파견 되었던 서구 선교사들이 본국으로 보내는 편지에 ‘ 게으르고 더러우며 부정직하고 책임감도 없어 신뢰할 수 없는 사람들’이라고 혹평42 42강문석, p.171
한 은 이러한 인식을 씻을 수 없도록 유지 시키고 말았다.
물론 이러한 주장들이 모두 근거없는 낭설만은 아니다. 그들에게 그렇게 보일만한 충분한 근거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모든 것을 그렇게 일방적으로 일축해 버리는 것은 잘못된 우월감에서 이거나, 그들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사랑하려는 기독교적 자세가 없는 것이라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그들을 바로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고,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 변화 시키기를 원한다면, 틀림없이 그들의 국민성이나 의식구조,생활 양식등에 대한 정확하고 객관성이 있는 전이해가 올바로 되어야 할 것이다. 이러고 나서야 그들에게 적절하게 적용될 수 있는 선교전략을 수립할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의식구조에 대한 연구나 국민성에 대한 연구는 아직 선행된 전례가 없다. 전문적인 설문조사나 현지에서 연구된 연구 결과는 없으나 현지인과의 생활속에서 선교사들이 그들을 이해한 문서들과 대화록, 그리고 현지에서 살고 있으면서 그들과 함께 생활을 영위해 나가는 현지 한국인 교포들과의 대화록, 그리고 직접 만나보고 대화하면서 필자가 느낀 사실들을 토대로 아프리카 선교를 위한 아프리카인들의 국민성과 의식구조에 대하여 약술하고자 한다.
A. No problem
김성환 목사가 쓴 「케냐와 선교」라는 책에서 김목사는 아프리카인들을 아래와 같이 표현하고 있다.
하루 한끼를 먹어도 불평이 없고 월 20불 정도의 생활을 감당해 가는데도 언제나 태평스럽다. 그리고 우는 것을 잘 모른다. 우리가 생각해 볼때는 현실이나 자녀문제나 모든것이 문제 투성이인데도 “하바리”(Habari;How are you?) 하면 대답은 언제나 “무주리”(Muzuri) 혹은 “살라마”(Salama)- 좋읍니다.평안합니다.- 이다. 그것도 몇번씩이나 반복한다. -중략- 앉으면 앉은대로 하루종일, 서면 서서 그냥 멍하니 하루종일, 일년이고 이년이고 변화가 없다. 그들에게 시간이 돈이라는 생각은 아예 없다.43 43이일재, pp. 78-79.
필자가 아프리카 여행을 하는 한달동안 그들과의 대화 속에서 아주 자주 그리고 무척이나 흔하게 듣던 말이 바로 “No problem” 이란 단어이다. 분명히 염려가 되고 걱정스러운 일임에도 불구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아주 쉽게 ‘No problem’ 이라고 대답하는 것을 너무 흔하게 들었기 때문이다. 한 예를 들면, 자동차가 작은 고장이 나서 정비공장에 들렸었을 때 일이다.( 공장이라야 우리나라의 튠업같은 시설도 못되는 작은 곳이었고, 연장이라고는 드라이버와 스페너, 망치가 고작이었다.) 그 젊은 정비사는 한참 고장난 설명을 듣고서 “No problem” 이라고 시원하게 대답하였다. 나는 속으로 “이런 형편없는 공장에 그래도 일류 기술자가 있는 모양이다.”하고 대단하게 생각 했었다. 그런데 이러한 기대는 금방 어그러져 버렸다. 왜냐하면 뜯어논 부속조차 제대로 조립하지 못하는 그 기술자를 보았기 때문이다. 더우기 이 자동차가 조그만 고장을 수리하는데(우리나라에서 고치려면 10분이면 끝날 고장이었다.) 자그마치 1주일이 걸렸으며, 그것도 상당히 빨리 고친것 이라는 데에 어이가 없었던 것이다. 고치치도 못하면서 ‘No problem’ 을 천연덕스럽게 연발하던 그 엉터리 기술자에게서 그들에게 문제의식이 없다는 엄청난 문제상황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44 44박희권, 동부 아프리카 순회 선교 일지, 1990년 2월.
만나는 동부 아프리카인들의 대부분이 그랬기 때문이다. 분명히 문제 투성이고, 구멍난 부분이 보이는데도 ‘No problem’ 이라는 것이다. 일찌기 문제의식이 발전된 사람들은 위대한 인물들이 되었다. 위대한 철학자나 발명가, 과학자들이 모두 문제의식이 뛰어났기 때문에 그러한 위대한 업적을 이룰수 있었기 때문이다. 일반인들도 문제의식을 가질때 성장한다. 문제의식이 없는 사람은 성장이나 변화가 있을 수 없다. 부족한 것,잘못된 것,개선할 것을 느끼고 깨달을때에야 고치고 변화하고 성장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들 동부 아프리카인들에게는 문제의식이 없다. 아예 문제를 삼으려고도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생각하기조차 싫어한다. 어떻게보면 낙천적이고 긍정적인 사람들이라고 좋게 볼수도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에게 있어서는 우리들이 보통 느끼는 그러한 낙천적,긍정적 생각이 아니다. 해결하려는 의지가 없다. 문제 자체를 느끼려고도 하지 않는다. 그저 좋은게 좋은 것이다. 불평도 없다. 그렇다고 해서 미안해 하지도 않는다. 사과는 절대 안한다. 그리고 쉽게 잊어버린다. 집착력도 없고 끈기도 없다. 따라서 모든 것에 의욕이 있을리 없다. 정말 이런 사람들에게 무엇이 문제가 되겠는가? 그들이 느끼는 죄의식은 과연 있는 것일까 ? 아마도 있다면 그것은 불과 찰라일 것이다. 탄자니아에서 만난 김경림양이 ‘그들을 이해할 수가 없어요 미안한 줄을 몰라요, 돈을 빌려가고 왜 안주냐고 하면 돈 많이 가지고 있으면서 왜 가난한 나에게 달라고 하느냐고 오히려 반문을 해요. 여지껏 빌려 준돈을 돌려 받아본 적이 없어요”45 45김경림, 인터뷰, 1990년 2월 (탄자니아)
라고 하던 말에서 그들의 의식구조를 단면적으로 발견할 수 있다. 오랜 식민지 생활이 그들을 이렇게 만든 것인지 아니면 민족성 자체가 그런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이들의 이러한 문제의식 자체를 느끼지 못하는 이러한 성품을 문제의식을 바로 느끼고 알게 해주기 전에는 그들에게서 변화와 성장을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B. Slowly, slowly.
마뭉구목사46 46탄자니아 현지인 선교사, 한국에서 공부하고 한국인 아내와 한국에서 결혼하여 탄자니아달레스살렘으로 파송받는 현지인 선교사이다.
는 동부 아프리카인의 특징을 말하기를 ‘폴레 폴레’(Pole Pole: slowly slowly)라고 말한다. 아프리카 사람처럼 모든 일을 천천히 하는 국민은 흔하지 않다는 뜻이다. 그는 한국인의 부지런함과 열심을 이들 동부 아프리카인들이 배웠으면 얼마나 좋겠느냐고 한다. 그만큼 동부 아프리카인들에게는 일에 대한 열정이 적으며 모든일에 게으르고 느리다. 이러한 ‘폴레 폴레’의 특징은 앞서 말한 ‘no problem’과도 연관성이 있다 하겠다. 문제의식이 없는 사람들이 부지런해야 할 이유도, 급할 이유도 없기 때문이다. 한 예로 아프리카 탄자니아 달레스살렘에서 케냐 나이로비로 가는 버스여행을 하던 한목사님이 버스고장으로 초원 한 복판에서 시간을 보내게 되었는데 그 버스기사가 고장을 고치려 버스밑에 들어가 고치려다 그냥 잠을 자더라는 것이다. 어이가 없어 하는 목사님을 오히려 의아해하는 그들의 눈초리에서 그들의 이해하기 어려운 국민성을 생각하게 되었다고 한다. 필자가 달레스살렘 우체국에 들렸을때 그늘 밑에서 한가로이 낮잠을 자고 있던 사람들을 보면서 정말 여유가 있고 마음이 편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하였는데 이제는 그들의 국민성에서, 의식구조에서 그러한 행동이 나타났음을 생각하게 되었다. 바쁜 것이 없는 낙천성 바로 이것이 동부 아프리카인들이 이제껏 살아온 생활의식인 것이다. 따라서 이들에게 급하게 무언가 결과를 기대하고 얻으려 한다면 그것은 어리석은 생각일 것이다.
C. 식민지 피해의식과 배타성
앞서 말한 동부 아프리카인들의 의식구조는 그들이 선천적으로 지녀온 의식구조 일수도 있지만 후천적으로 오랜동안 식민지 생활을 계속해 오면서 변화된 구조일수도 있다. 따라서 자연환경이나 오랜 전통과 풍속, 그리고 식민지 생활등의 복합적 원인에 의하여 조성된 복합적 의식구조라는 해석이 정확할 것이다. 그만큼 식민 시절은 동부 아프리카인들에게 강한 영향을 준 것이다. 더우기 식민생활이 가져다준 피해의식은 동부 아프리카와 세계와의 거리감을 더해준 하나의 원인이다.
피해의식은 단지 동부 아프리카 만이 아니라 제3세계 어느 나라든지 가지고 있다. 그것은 오랜 점령과 속박과 지배 아래서 겪었던 뼈아픈 과거 때문이다. 더우기 아프리카의 경우 지배나 압박 뿐만 아니라 1518년 기니아 해안에서 시작47 47강문석, p. 106.
된 예무역에 의한 피해만해도 실로 엄청난 것이었다. 그들로 인해 부부가 갈라지고,부모와 자녀들이 뿔뿔이 헤어지며,한가족이 흩어져 원망과 눈물의 삶이 계속되었던 것이다. 이런 피해의식이 쉽게 사라지겠는가? 따라서 이런 피해의식의 결과로 외래문화에 대한 기피,열등의식,배타성을 강하게 지닐수 밖에 없게 된것이다. 따라서 힘에 의한 강요로 시작된 모든 것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거부를 당하게 되었으며 기독교 신앙 역시 오늘에 와서는 그 뿌리가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한 예를 들어보면 (어느선교사의 이야기)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현지인을 20년간 애지중지 키우며 모든 것을 돌보아 주었던 어느 선교사는 자신이 아끼고 사랑했던 그 현지인 때문에 법정에 서게 되었다. 그이유는 그에게 20년간 봉급을 한푼도 지불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물론 그 선교사는 20년동안의 봉급을 일시불로 지불하고 그 선교지를 씁쓸하게 떠났다.....후략48 48이일재, P. 85.
이들은 식민지 피해의식에서, 선교사들은 식민지 수탈과 연관되었기 때문에 선교사들의 것은 무엇이나 가져도 죄가 되거나 거기에 감사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며 상대를 이용해서 자신의 이익을 보려고 한다. 너무나 받는데 세련되어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고자 하면 그들에게 민감한 반응을 주는 외래적 성격을 지양하며 토착적 활동을 중심하고 가급적 피해의식을 불러일으킬 요소들을 배제하고 선교사에 대한 그들의 고정관념을 변화시켜야 할 것이다.
(4) 정치풍토
아프리카 국가들의 독립은 1957년 부터 시작되었다. 1957년 3월 가나의 독립을 시작으로하여 유럽 열강들에게 시달리던 그들이 독립을 얻게 된 것이다. 이들의 독립은 세계 제2차대전의 피해로 자국의 피해복구를 위해 힘쓰던 영국,프랑스등의 영향력이 감소된 시기여서 손쉽게 이루어 졌다. 그러나 아프리카의 진출을 꾀하던 신흥 강대국들인 미국, 소련등이 이런 기회를 타서 그들의 독립을 위해 경제적, 군사적지원을 하면서 새로운 영향력으로 등장하게 된 것은 더더욱 아프리카를 복잡하고 다양하게 만들어 버리고 말았다. 민족주의, 범아프리카주의등의 독립 당시의 순수한 정치적 정신들이 희박해지면서 자본주의,민주주의,공산주의,사회주의, 비동맹주의 노선등 복잡 다양한 정치형태를 가지게 되었고 정치권력을 쥐기 위한 빈번한 구데타와 내분등은 결국 아프리카를 더 말할수 없는 빈국으로 몰고갔으며 아프리카의 발전은 더욱 뒤떨어지고 말았던 것이다. 본 논문에서 다루는 동부아프리카 3국은 앞서 서술한대로 서로 다른 정치 형태를 이루고 있다. 케냐는 표면상으로는 자본주의적 형태를 띠고 있는 민주주의 국가이다. 그러나 일당 독재의 국가이며 정치권력을 위해 폭력과 군인,경찰을 사용하는 경찰 국가이고, 탄자니아는 사회주의 국가로 역시 일당독재의 국가이며 공산주의 노선이 뚜렷하여 경제적 발전이 뒤떨어져 있고, 우간다는 탄자니아와 같이 사회주의 노선을 걷고 있으나 빈번한 구데타로 아직까지 내전중에 있는 혼란한 나라이다. 이렇게 독재, 혼란, 경찰정치, 무지, 경제적 위기등에서 우리는 동부 아프리카의 정치적 현실의 문제상황을 쉽게 알 수 있다. 마치 우리나라의 1950년 6.25동란을 전후해서 어지럽던 자유당 정권하의 혼란시대에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정치 프락치, 정치깡패, 살인, 사사오입개헌, 공무원의 공공연한 비리, 부패하고 썩어버린 일당 독재의 결과를 우리는 잘알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정치적 혼란이 동부아프리카 3국에서도 일어나고 있으며, 더우기 우리보다 더욱 복잡한 상황속에서 허우적 거리고 있는 것이다. 이들에게는 진실하게 사심없이 같이 울어주고 기도해주며, 그들의 고난에 동참해 줄 참 친구가 필요한 것이다. 공무원이나 국가 정책의 공공연한 비리를 알 수 있는 한 예를 들면, 케냐에서 탄자니아로 국경을 육로를 이용해서 넘어갈때, 분명히 탄자니아에서는 미화를 사용할 수 없으며 환전한 탄자니아 실링만을 사용할 수 있다고 하여 환전을 하였는데, 막상 5-6Km마다 받는 도로세를 탄자니아 실링으로 주면 안받고 미화를 요구하여 받았다. 탄자니아에서는 탄자니아 실링만을 사용해야 되지 않느냐고 항의하자 여기는 그렇지 않다고 능청스럽게 말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비단 도로세만이 아니라 여관비도 식대도 마찬가지 였다. 케냐 공항에서 직행료 10불을 쥐어주자 곧바로 비자를 손쉽게 받을 수 있었던 것 과도 같다 할 것이다. 우간다의 상황은 더하였다. 직행료를 쥐어주면 못하는 것이 없었다. 49 49박희권, 「아프리카 순회선교 일지」 1990. 2.
아무튼 이렇게 부정,부패,빈곤,무지의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는 곳이 아프리카인데 우리는 이렇게 복잡다양하고 혼란한 상황의 아프리카에서 복음을 전하려고 하면서 너무나도 안이하고 꿈에 젖은 유아기적 환상에 사로잡혀서는 안될 것이다. 더더욱 철저하고 정확하고 분명한 분석과 함께 개개의 문제상황에 맞고 능동적으로 대처할수있는 선교전략이 수립되어야 할 것이다.
(5) 극심한 빈곤
대체로 제3세계 사람들은 가난하다. 그 가난도 보통 가난한 것이 아니라 너무나 가난하다. 강문석교수는 이들의 가난의 이유50 50강문석, p. 67.
를
1.직업이 없다. (농민이 농토가 없고 근로자가 직장이 없다. 사람은 있으나 생산성이 없으니 노동력이 남는다.)
2.높은 출산 율 (제3세계:연간 73%)
3.문맹(문맹률 : 평균 70%이상)
4.타부(그들의 미신으로 아무것이나 하지않으려 한다.)
5.게으름(아무리 노력하고 애써도 나아지지 않는다는 고정관념에 묶여 진취성을 상실하였다.)
등으로 말하고 있으나 이 외에도 기후, 자연환경, 정치등의 외적인 원인도 무시할 수없다. 1990년 2월 K.B.S 에서 방영한 ‘아프리카 아프리카’라는 프로그램에서 1987년과 1988년의 대기근때에 이디오피아에서는 한해에 30만명이 죽어 갔다고 한다. ”적당한 물과 설탕만 있어도 살릴수 있는 아이들이 수없이 죽어간다.”51 51K.B.S. 아프리카 아프리카, 1990년 2월 방영.
는 아나운서의 말이 아프리카의 극심한 빈곤을 단적으로 표현해주고 있다. 그 아나운서는 “제3세계의 불행을 정서적으로 말하지 말자”52 52Ibid.
는 말로서 우리의 허구적 실상을 지적하고 있었다. 비단 극심한 빈곤은 아프리카 만이 아니다. 방글라데쉬에 나가 있던 장순호 선교사가 귀국해서 어느 음식점에 들어가 음식 대접을 받다가 먹다 남은 음식들을 바라보면서 “저 음식만 있으면 그곳의 아이들이 굶지않고 죽지 않아도 될텐데...”53 53장순호, 인터뷰, 1989년 4월.
하면서 울먹이던 모습에서 우리는 제3세계의 어느곳에서나 이런 비참함을 쉽게 발견할 수 있음을 알 수 있었던 것이다. 본 논문의 대상지인 동부 아프리카 3국도 예외는 아니다. 케냐의 수도 나이로비 빌딩숲 외곽에있는 빈민가 ‘꽝과레’는 가난에 허덕이는 케냐인들의 비참한 모습을 단적으로 나타내 주고 있다. 또한 탄자니아에서 불과 100원에 불과한 물건을 팔기위하여 십리나 되는 거리를 차를 따라오며 애걸하던 그 소년의 땀방울이 탄지나아의 가난을 말해주었고, 내전중의 우간다는 폐허가 된 쓰레기더미에서 먹을 것을 찾던 어린이들의 움푹들어간 눈망울이 그들의 쓰라린 고통을 말해주었다. 우리가 이들의 빈곤을 무시하고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문제상황을 무시하는 것이 된다. 이들에게 전하는 복음은 결코 가난을 간과하는 것이 아니라 가난을 극복할 수 있는 복음이어야 한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도 똑같이 복을 주신다는 것을 믿고 확신하며 가난을 극복할 수 있도록 선교전략을 세워야 할 것이다.
(6) 인종문제
앞서 아프리카의 다양성을 말하면서 인종문제를 일부 다루었다. 정말 아프리카야 말로 다양한 인종들이 모여 사는 곳이다. 특히 케냐와 같은 나라는 세계의 인종 전시장이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 정도이다. 그러나 많은 인종이 모여 산다고 해서 반드시 문제상황이라고 말할 수 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동부 아프리카의 경우 원주민을 제외한 유럽인, 아시아인등 타 인종들은 아직도 식민지적인 종주관계를 형성하고 경제권을 쥐고 있으며 소수의 인종들이 다수의 원주민을 지배하고 있음이 문제상황일 것이다. 특히 동부아프리카의 경우 인도인과의 관계는 너무나 심각하다. 동부 아프리카의 거의 모든 상권을 이들이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 인도인들은 영국이 동부아프리카 종단 철도를 부설할 때 원주민들을 부리는 중간계층으로 인도에서 이주시켰다.54 54강인중, 인터뷰, 1990년 2월.
그러면 이들이 자연 영국인들을 등에 업고 원주민들을 부리며 그들을 이용하여 자신들의 배를 불리고, 드디어는 그들 인도인들이 상권을 쥐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이들과 원주민 사이에는 씻을 수 없는 배척관계를 가지게 되고 종주국이었던 영국인보다 오히려 더심한 원망상대가 된 것이었다. 따라서 같은 식민지 경험을 가진 인도인들에게서 당한 설움때문에 그들은 아무도 믿지 않는 것이며 동화되기가 어려운 것이다. 우리 한국도 같은 동질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동질성 때문에 그들과 함께 할 수 있고 그들이 우리를 쉽게 받아 주리라는 생각에 빠지면 안된다. 이것은 환상이다.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인도인과의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상황은 다른 제 3세계국가 선교에서는 유리한 점이 오히려 불리한 점이되는 역설적 결과이다. 따라서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전통적인 방법으로는 불가능하다 할 것이다. 이런 복잡한 문제상황에서 우리는 겸손히, 보다 적극적인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는 것과 그들의 문제 상황에 알맞고 적절한 전략 수행에 의해서 이루어 질 수 있을 것이다.
(7)질병과 제도
아프리카 선교에 문제가 되는 또 다른 상황의 하나는 그들의 질병과 제도이다.이 중에서 질병외에 우리가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다루어야 할 풍속이나 제도는 역시 종족주의와 일부다처제 일 것이다.
A. 종족주의
종족주의는 사실 아프리카 대륙 전역의 문제이며 동부아프리카 역시 예외는 아니다. 원래 식민지 종주국들이 자기들의 이권에 따라 국경선을 그어 놓았기 때문에 종족의 분포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 국가의 운영도 종족의 안배를 해야할 정도로 종족주의는 국가 의식보다도 강하다. 예를들어 탄자니아와 케냐에 걸쳐있는 맛사이 부족의 경우, 그들에게는 국경이 이웃집 울타리에 불과하다. 그들은 여권이나 통행증 없이도 이무 스스럼없이 국경을 넘나든다. 왜냐하면 그들에게 있어 국경은 무의미한 것이며 오히려 이웃의 같은 종족이 더 큰 비중을 가지는 것이다. 케냐 현지인 교회에서도 현지인들 사역자들 중에 캄바목사가 부임하면 캄바 부족만 모이게 된다. 키쿠유 목사가 부임하면 키쿠유 교인들이 모여든다. 동부 아프리카는 정치뿐만 아니라 생활, 종교, 풍속 어느것 하나에라도 종족주의가 뿌리내리지 않은 곳은 없다. 따라서 이 종족주의가 교회에 뿌리내리지 않도록 하는 것도 선교의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다.
B. 일부다처제
아프리카 전역에서 선교를 하는데 가장 큰 문제점으로 대두되는 것중의 하나가 일부다처제이며 동부 아프리카 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이것은 국가적으로 공인되어 있는 것이며 또 종교적으로도 무슬림권에서는 인정하고 있을뿐만 아니라 이것을 이용하여 기독교의 전도 활동을 방해하고 있다. 케냐의 주요 부유층들은 모두 2명이상의 아내를 거느리고 있으며 국회의원 같은 고위 관직에 있는 자들은 6-7명이상의 아내와 30-40명의 자녀를 거느리고 있다. 국민들이 국회의원을 선출할 때에 아내와 가족이 많은 자들을 적은 자보다 더 선호하여 뽑는다고 한다. 이유인즉 많은 가족을 거느릴 수 있는 자가 더 능력이 있는 자라는 것이다. 능력이 있어야 2,000만이 넘는 국민들을 먹여 살릴 수 있다는 것이다. 웃을 수도,욕할 수도 없는 매우 난처한 입장이며 이러한 사고를 가진 이들에게 일부일처제의 기독교 사상을 전한다는 것은 대단히 큰 어려운 문제이다. 실제로 결혼한 케냐 현지인에게 복음을 전하여 예수를 믿게 되었을 때, 2명 이상의 아내를 가진 자들이 문제이다. 이들에게 일반적으로 첫번째 부인을 제외하고는 다른 아내는 내어 쫒도록 했다. 지금도 이 방법을 주장하는 교단이 있다. 대표적으로 AIC교단이다.55 55이일재, p. 90.
하지만 사회적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내어 보냄을 받은 여자들은 그 사회에서 전혀 살아갈 방도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떤 여자들은 다행히 다른 남자와 재혼을 하여 다시 새로운 삶을 살지만 어떤 여자들은 아예 매춘부로 변신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사회적으로 큰 문제로 제기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기독교 복음 전파에도 문제를 낳는다. 남편이 예수를 믿으면 제2의 부인부터는 모두 쫓겨나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철저하게 반대하거나 또는 쫓겨난 이후는 기독교를 악평하고 또 철저히 증오하여 다시는 제2의 부인과 그의 자녀들이 예수를 믿을 기회를 잃게 된다는 점이다.
이러한 문제들로 선교를 하는 선교사들은 갈등하고 있다. 성경과 현실과의 관계이다. 아직 이 점에 대해 분명하게 태도를 취하는 선교부는 AIC뿐이다. 나머지는 모두 선교사나 단체장의 재량에 따르고 있는 것이 일반적이다. 현재 한국의 선교사들이 취하고 있는 일반적인 형태는 일부다처제를 택하고 있는 자가 예수를 영접하면 세례를 베풀지만 교회의 직분은 주지 아니한다. 만일 그가 교회의 직분을 맡길 원하면 본부인을 제외한 나머지 부인과는 관계를 정리할 것을 요구한다. 두번째로는 일부일처제를 택하고교회의 직분을 받은 자가 한 명 더 부인을 얻었을 경우 그 자를 처리하는 것이 일반적인 관례이다. 이러한 일부 다처제에 대한 것 뿐만 아니라 전통종교와 세계관, 풍속등에 내포되어있는 신앙등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를 분명히 하여주는 신학적 입장을 해결하여주는 것도 선교전략의 중요한 요소가 될 것이다.
C. 각종 질병들
케냐의 모기 종류만해도 1985년 현재 51종으로 보고 되어 있다. 하지만 아직 이것에 대한 예방약이 개발되지 않아 많은 사람들이 희생 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선교사들이 입국전에 2-3개월전 부터 말라리아 예방약인 키니네를 먹어도 한두번씩은 반드시 걸린다고 한다. 실제로 전세계의 아열대 지방의 인구중에 1년에 적어도 2억 5천만 명이 말라리아 병에 걸리고 있으며 그중에서도 아프리카만 1년에 백만명씩 죽어가고 있다. 말라리아 뿐만 아니라 각종 질병에 엄청난 치사율은 아프리카를 암울한 대륙으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역사기록에 1835년부터 15년동안 감리교에서 파송 선교사로 부인을 포함한 78명의 선교사를 보냈는데 30명은 도착 1년내에 생명을 잃었다고 한다.56 56Ibid., p. 89.
현지인들의 질병은 더욱 심각하다. 아이를 잃은 한 부인에게 슬프지 않느냐고 묻는 질문에 또 낳으면 된다고 대답을 한다.57 57K.B.S. 「아프리카 아프리카」 1990년 2월 방영.
정말로 그들이 얼마나 죽음에 가까이 있는지, 비참한 현실에 처해 있는지를 단번에 잘알수 있는 좋은 예가 될 것이다. 지난 2월 동부 아프리카 3국을 여행 할때 파리에 의한 눈병인 ‘트라코마’에 걸려 실명한 사람들을 쉽게 찾아 볼 수 있었는데 이런 질병은 동부아프리카 어디에서나 발견되는 것이다. 이렇게 의료 선교사가 가장 필요한 대륙은 바로 아프리카인 것이다.
(8) 신학의 부재
신학이 어느 정도 확립되어 있는 교파들은 대부분 서구 선교단체와 관계를 맺고 있는 교파들이다. 또 한편으로는 스스로 그들과 손을 끊고 자립해 가는 교파도 있다. 대표적으로는 성공회와 일부 장로교파이다. 하지만 이들 교파들은 신학적으로 좌경화의 길을 걷고 있으며 어떤 장로교단에서는 선교사 추방운동까지 벌이고 있다. 약 20%정도의 교파나 교단이 서구 교회와 연관을 맺지 않고 있는데 이들은 신학적으로 매우 빈약하며 그들 나름대로의 토착화 과정에서 비 성경적 윤리나 교리등이 많아 이단화 되기 쉬운 상태가 많다.58 58참조, 이일재, pp. 89-90.
이들에게 신학적으로 정립할수 있는 배경을 모색해 주는 것도 아프리카 선교의 한 장이 될 것이다.
(9) 전통종교와의 혼합
아프리카의 전통종교에 대하여는 여러 보고들이 있지만 최근 1989년에 케냐에서 발행된 Richard J. Gehman 의 「African Traditional Religion in Biblical Perspective」라는 책59 59Richard J. Gehman , African Traditional Religion in Biblical
Perspective 1st ed, (Nairobi: Evangel Publishing House, 1987), pp. 15-300.
을 파약하여 이해하고자 한다. 여기에서 Richard J. Gehman 은 아프리카의 전통종교를 3가지 근본요소들을 설명하면서 소개하고 있다. 아프리카의 전통종교는 1.초월적 존재(최고신)를 믿고 2.영혼의 세계를 믿으며 3.신비적인 힘들에 대하여 믿음을 가지고 있다. 는 것이다. 여기에서 초월적 존재는 최고신을 말하며 Akamba에서는 “Mulungu”이란 이름이 가장 전통적인 이름으로 kiswahili의 神인 “Mungu”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데 그 속성으로는 1) 초월적이며 신비적이다. 2) 전지 전능하다. 3) 무소부재하다. 4) 도덕적으로 선하다(친절, 사랑). 5)영원한 영이다. 6) 거룩하고 유일하다. 등이 있으며 구체적인 신의활동으로는 세계창조와 인간창조,그리고 인간세계의 보호와 구원이다.
이러한 최고신은 기독교의 하나님과 매우 유사한 점이 많다. 그러나 유사하기 때문에 기독교와 전통종교가 혼합될 여지가 많은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아프리카 선교에 있어서 이런 유사한 최고신의 개념은 기독교 선교에 매우 많은 도움이 될수 있는 것 또한 간과 할수 없는 좋은 조건이 되는 것이다.
두번째 영혼의 세계는 영적 존재에 대한 실존을 인정하는 것이다. 이 영적 존재는 최고신 보다는 조금 못하지만 영적인 능력을 가진 존재들이 있는데 여기에는 인간존재로 태어났던 유령들과 영들로 창조되었던 영들이 있는데 대부분의 영은 지나간 인간존재의 영들로서 대부분 조상들의 영을 의미한다. 이 조상들의 영에 의해 가뭄,질병,죽음등이 찾아온다고 생각하며 그 원인은 조상들의 유전을 지키지 아니하고 관습을 거부할 때 이러한 위기가 찾아 온다고 믿는다. 또한 처음부터 영으로 창조된 영들은 인간존재의 유령이 아닌 영들로 나무,산,강등 자연의 힘있는 것에 거주한다고 믿는다. 이들은 질병의 원인일 수도 있고 위기의 주역일 수도 있다. 이런 모든 영적 존재들은 모든 인간세계에 현존하며 아캄바부족들은 아침 저녁으로 그 영들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영들을 인정하기는 하지만 남부 수단의 Murle부족등과 같이 이 영들을 무시하며 두려워 하지도 않고 축복이나 도움을 구하지 않는 부족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아프리카 부족들은 이런 영적 존재들의 현존을 믿으며 이들이 위기의 원인으로 생각하며 이들의 소리를 듣는다고 한다. 이런 영적 존재들과의 교통은 유령,꿈,불등에 의하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되어지고 있지만 특히 주술하는 사람들을 통하여 언제든지 자유롭게 할 수 있다. 이 주술하는 사람만이 조상의 요구를 아는 권리와 권위를 가지기 때문에 주술사들은 아프리카에서 상당한 지위와 권위를 누리고 있다.
또한 세번째로 아프리카에는 신비적인 힘이 존재한다고 믿는데 이 힘들은 비인격적인 것으로 선,악을 모두 위해 사용될 수 있다. 이런 신비적인 힘을 움직이는 것에는 마력,마술, 부적, 주술, 점 등이 있다. 이러한 힘들의 조정은, 인간이 자기목적을 위하여 자연의 힘을 이용하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며 상당히 위험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 문제상황이 될 것이다. 마술에는 선한 마술과 악한 마술이 있는데 선한 마술은 악한 힘들에 대항하여 방어하기 위해 사용되는 것이고 악한 마술은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기 위한 것으로 마법과 연합하여 요술과 함께 가장 두려운 존재가 되었다. 또한 부적은 주술하는 사람이 풀잎,뿌리,나무껍질,곤충,뼈,뿔등으로 만들었으며 이들은 주술처럼 마술로부터의 보호, 풍성한 수확,부의 축적,질병보호등의 목적으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엄밀하게 말하면 부적은 마술로부터의 보호목적으로 주술은 마술로부터의 치료를 위해 사용되었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 일 것이다. 따라서 이렇게 부적을 만들어 주거나 주술을 하는 사람들은 자연히 최고의 존경의 대상이 되었음과 동시에 두려움의 대상으로 최고의 권위를 가지게 된 것이다.
이상에서 간략하게 살펴본 동부 아프리카의 전통종교는 기독교의 토착화에 지대한 공헌을 하여줄 수 있는 중요한 요소들을 포함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기독교적 요소들만을 반갑게 여기고 독소적인 요소들을 간과 함으로서 오늘날 동부 아프리카 선교에 커다란 걸림돌이 되고 있는 종교 혼합주의가 동부 아프리카의 현지 교회에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혼합주의야 말로 동부 아프리카 선교의 커다란 문제상황이 아닐 수 없다.
III. 동부 아프리카 선교의 신학적 원리
1. 왜 선교해야 하는가 ?
아프리카 케냐의 한경철 목사는 그의 책 「한국교회와 한국선교사」에서 선교지에서 당하는 고통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지도자 교육을 위해 학교를 시작해서 3번째 학기가 되던 때 부터 주말만 되면 아내는 극심한 위경련을 일으켜 밤을 새며 2-3일을 딩굴곤 했다. 병원에 갈 여유란 생각할 수 없었다. 그 당시는 남의 집을 빌려서 현지 학생들과 한 집에서 함께 우갈리, ...... 등의 현지 음식을 맨손으로 먹으며 함께 기거했었고, 아내는 평균 식수 인원 13-15명의 매일 3끼 식사와 커피시간, 강사 접대, 학생들의 숙소와 청소까지 다 혼자 담당 해야만 했다. - 중략 - 그러던 어느날 학기가 중반 쯤 되던 수요일밤 아내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목사님 저는 선교가 중요하다고 믿고 해야 한다고 압니다. 사명도 중요하고 영혼구원도 참으로 시급합니다. 일은 해야 하겠고 분담할 일꾼은 오지 않고 어쨌든 희생하며 살아야 합니다. 다좋습니다. 그러나 주말이되면 그 엄청난 고통이 시작될텐데 ... 주께서 오늘밤 나를 불러가 주신다면 더없이 고맙겠어요....” 60 60한경철, 「한국교회와 한국 선교사」 (서울: 생명의 말씀사, 1986),
pp. 14-15.
또한 한목사는 “양키여 돌아가라” “선교사여 돌아가라” “선교는 좋으나 선교사는 싫다.”는 John Gatu와 Nacpil의 말을 인용 61 61Ibid., p. 16.
하 아프리카 현지에서의 선교사 반대 운동에 대하여 말하면서 선교사들의 고충을 토로하고 있다. 또한 강인중 선교사도 “할일이 없는(국가에 유익한 것) 선교사라고 판단이 될때는 어김없이 출국을 시키고 있읍니다.”62 62강인중, 인터뷰, 1990. 2. 케냐 나이로비.
라고 말함으로서 아프리카 현지에서의 선교사들의 아픔과 남모르는 고통을 말하였다. 그렇다면 왜 이런 반대를 받고 고통을 받고 희생을 하면서, 젊음을, 인생을, 생명까지 바치면서, 그것도 감사나 보람도 쉽게 얻지 못하면서 무엇때문에 선교해야 하는가?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명령이기 때문이라는, 성경이 강력하게 선교를 명령하기 때문이라는 답변을 부인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렇기 대문에 반대와 저항 속에서도, 그처럼 커다란 희생을 감수 하면서도 선교는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1) 선교의 성경적 근거
성경은 예수님 자신이 “이방을 비추는 빛”(눅 2:32) 이셨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요20:21) 고 하셨다. 또 이방 모든 족속에게 복음이 전파되어야 당연한 것으로, 그래야만 하나님의 구속사역이 완성되는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또 “동서로부터 많은 사람이 .....천국에 앉으려니와”(마 8:11)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마 24:14) 고 기록하고 있다. 또한 바울은 ‘이방에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택한 그릇’(행 9:15) 이었으며 사도들의 대부분이 이방인이나 유대인이나 상관없이 복음을 전하였고 바울,실라,디모데,바나바,도마,빌립 등 많은 사람들이 선교사로 생명을 아끼지 않고 복음을 전하였다. 바로 이러한 생생한 선교역사의 기록이 성경이고 그 성경이 가르쳐주는 예수님의 지상최대의 명령 또한 선교인 것이다. 이와같은 성경의 말씀들이 우리가 선교해야만 하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가 될 것이다.
신구약을 막론하고 성경 전역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의 의지와 역사를 찾아볼 수 있다. 아브라함의 선택도,이스라엘 민족의 선택도, 하나님의 이런 구원의 역사를 위한 것이었고 이스라엘 민족의 수난은 이런 사명을 망각 하였을때 찾아온 하나님의 징벌이었다. 구약은 이스라엘의 역사가 아니라 하나님의 선교의지의 역사인 것이다.
창세기의 아브라함의 선택에서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해 복을 받으리라”(창 12:3) 한 말씀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선교의지를 알 수 있고 시편기자는 세상 만민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을 말하면서 ‘온땅’‘열방’‘만물’‘이방’이 하나님을 찬양하고 섬길 것을 말하여 선교가 이루어 질 것을 예언하고 있다. 또한 이사야서의 중심사상은 ‘이방인은 무익하나 하나님만 섬기라’는 것이다. 구원은 어떤 한 민족에게만 극한된 것이 아니고, 여러 민족 가운데서 구원할 자를 구원하시며,(사 52:10, 44:1-2) 이스라엘은 열국 가운데서 하나님의 증인으로, 종으로(사 44:10) 부르셨다.
이스라엘이 이방 민족과 차이가 있다면 그것은 이스라엘이 이방민족이 구원을 받게 하는 도구라는 것 뿐이다. 즉 “이스라엘의 선택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목적(하나님의 구원역사)을 위한 수단이었다.”63 63헐버트 케인, “선교의 성서적 기초”, 「선교의 성서적 기초」
김명혁 편역 (서울: 성광문화사, 1985), p. 53.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자신들의 사명을 망각하고 선교적 명령을 거부하였을 뿐만 아니라 특권의식에만 사로 잡혀 오히려 이방 민족을 무시하고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받을 수 없도록 방해 하였던 것이다.
또한 요엘서는 “그후에 내가 내신을 만민에게 부어주리니”(욜 2:28) 라고 했고 “열국에 광포할 것”(욜 3:9) 을 말했다. 에스겔은 이스라엘 백성을 파수꾼으로, 그래서 깨우지 않으면 피값을 찾게 될 것을, 스가랴는 이스라엘은 복음의 설복자로서 이방이 하나님을 믿도록 할 책임이 있는자로, 말라기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이름을 이방에 크게 해야할 자로 하나님이 부르셨음을 말하고 있다. 그러나 요나서에서 나타나는 것 처럼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이러한 뜻을 순종치 않았고 급기야 하나님께서는 강제로 구원의 역사를 이루시기 위하여 이스라엘을 흩으시고, 촛대를 옮기셨다. 이스라엘 민족을 포로로 붙잡혀 가게 하시고, 여러 민족에게 정복당하게 하심으로 이스라엘 민족을 세계 어느나라에서도 찾아 볼 수 있도록 하셨다. 이런 디아스포라들을 많이 만드신 것은 그들이 있는 곳에서 이방의 개종자를 얻고 나아가서는 하나님의 선교 역사를 이루어 가게 하신 것이다.64 64헐버트 케인, p. 65.
또한 “하나님의 나라를 너희는 빼앗기고 그 나라의 열매 맺는 백성이 받으리라”는 마21장 43절의 말씀처럼 이제 구원의 역사는 이스라엘 민족이 중심이 아니라 이방인들이 영적 이스라엘이 되어 이스라엘을 대신하게 된 것이다. 예루살렘에서 안디옥으로, 안디옥에서 아시아와 북부 아프리카로, 그리고 로마와 유럽, 그후 미국을 비롯한 신대륙으로, 그리고 이제는 복음이 제3세계와 아시아에서 불붙고 있는 것이다.
신약에서는 예수님 자신이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요 3:16)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눅 2:10) 으로 오셨다. 예수께서 친히 이방 여인인 사마리아 여인에게 권고 하셨고 많은 사마리아 사람들이 믿었으며(요 4:39-42) 두로, 시돈, 갈릴리, 데가볼리등 요단강 건너 편에 복음을 전하셨으며 백부장의 하인을 고치고,(마 8:5-13) 거라사에서 귀신을 쫒아 내시며(막 5:3-18) 수로보니게 여인의 딸을 고쳐 주심(마 15장) 으로 이방인을 위한 사역에도 많은 비중을 두셨음을 알 수 있다.
요한 복음에 ‘세상(Kosmos)’이란 말이 109번, 신약에 187번 나오는데 이는 예수님이 세상 모든 민족의 구주되심을 의미한다. 또 하나님의 나라 개념에서도 그 범위는 분명히 보편적이고(마 25:31-36) 그 구성은 범 세계적이며(마 8:11) 그 기간은 영원한 것이고(눅 1:33) 그 성격은 영적(롬 14:17) 임을 볼 수 있다. “세상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요 1:29) 으로 오신 예수님은 제자들과 믿는 우리들에게 선교사역을 명하셨다.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막 16:15)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요 20:21)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마 28:1920) 고 명하셨다. 우리는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게(빌 2:10-11) 할 사명이 있다. 주께서 믿는 자들에게 이방에 복음을 전할 것을 가장 중요한 명령으로 명하셨고 , 이 복음전파는 우리교회가 존재하는 중요한 이유중의 하나이다. 그래서 복음전파를 주 내용으로 다룬 사도행전은 세 부분으로 {예루살렘(1-7장) - 유대와 사마리아((8-12장) - 땅끝(13-28장)}기독교의 확산과정을 증거하고 있다.65 65헐버트 케인, p. 95.
“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 1:8) 고 했다. 성도들의 또 다른 이름하나는 ‘증인’이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성경은 선교사역을 빼버리면 아무것도 남을 것이 없다. 하나님께서는 선교사역을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고 예수 그리스도는 친히 실천으로 보이시고 명하셨으며, 사도들이 행한 주 사역이 선교였고, 바울서신은 선교편지요, 사도행전은 선교사역의 기록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선교의 성경적 근거란 성경 그 자체인 것이다.
2) 선교에의 시대적 요구
오늘날 세계의 교회는 점차 다양화 되어 가고 복잡해짐으로서 선교에 대한 관심이 점차로 식어 가며 교회의 존속마저 위태로운 지경에 접어 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요청이라면 그것은 바로 선교일 것이다. 다시 말하면 시대가 선교를 요청하고 있는 것이며 선교사를 부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43억이 넘는 인류를 대상으로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의 수는 45,000명에 불과한데 그중에서도 겨우 55%만 복음주의 선교사들이고 45%가 에큐메니칼에 반대하지 않는 입장이다.66 66한경철, p. 25.
뿐만 아니라 18세기 말부터 아프리카, 아시아등 제3세계의 여러나라들이 식민 지배로 부터 독립하게 됨으로 강한 민족주의가 일어나고 서방국가에 대한 반감이 고조 되면서 서양 선교사에 대한 반감도 강하게 작용하여 “선교사여 돌아가라”는 구호가 계속되고 이제 점차로 선교사를 거부하는 제3세계 국가들이 늘어가고 있는 현실이다. 나이제리아는 새로운 선교사를 허락하지 않고 이디오피아,수단에서는 선교가 어렵게 되었고, 많은 국가에서 많은 선교사들이 방출되고 있는 것이다. 인도의 경우 과거 수천명에 달하던 선교사가 이제는 겨우 200명에 불과하고 그것도 선교가 아닌 다른 명목으로 비자를 받아 머물고 있는 현실이다.67 67Ibid., pp. 25-26.
남미의 경우도 반미,반 서방 감정,정치적 악순환,신구교간의 갈등 등으로 선교의 문은 점차로 좁아져서 선교현장은 암울해져 가고 있다. 제3세계 여러나라에서 선교사들은 쫒겨나거나 제한된 일터에서 일할 수 밖에 없게 되었고, 따라서 제 3세계인들은 사상적 빈곤을 메꿀 길을 찾게 되었다. 반 백인 감정에 존폐마저 위협을 받게된 선교, 그것을 피해서 일할 새로운 색깔의 선교사를 필요로 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다 급증하는 세계인구(하루15만,한달6백여만,한해 7억)에 비해 기독인 증가율은 이것의 1/5도 되지 못하고 있으며, 여기에다 오일달러의 위력을 등에 없은 모슬렘의 확장은 기독교 선교의 위기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외적인 요인에만도 위기의식을 느끼지 않을 수없는 현실인데다 기독교 내적인 문제들 또한 위기의식을 가중 시키고 있다. 19세기 이후 급진 주의적 교회관이 등장하고 윌링켄 회의(1952) 이후에 등장한 ‘하나님의 선교’, 읍살라 대회(1968)의‘선교는 곧 인간성의 회복이다.’, 1975년 5차 W.C.C 나이로비 대회의 ‘해방신학’등, “이러한 자유주의적 선교신학들은 생명을 버리며 수고하던 선교사들과 후원기관들에게 엄청난 충격과 회의와 상처를 가져다 주었다.”68 68Ibid., p. 27.
결국 그들의 주장 대로라면 교회가 하는 모든일이 선교이며, 인간성 회복이 영혼구원보다 중요시되며, 눌림에서의 해방이 선교의 개념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이로써 문화적 차이의 악조건 속에서 막대한 재정을 들여 생명까지 바치며 실적도 크지 못한 선교를 해야되는지 하는, 전통적 선교에 대한 짙은 회의의 분위기를 만들게 되고 이로 인해 매년 거의 1천여명의 선교사들이 철수하게 되었으며 전 세계교회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 것이다.
이러한 위기는 분명히 선교에의 시대적 요구를 분명히 말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 세계의 위기 현실은 분명히 그리스도의 재림을 요청하고 있으며, 임박한 그리스도의 재림에 앞서 마지막 남은자, 사명자, 신실한 일꾼으로서 선교사역에 동참할 선교사들이 요청되고 있는 것이다.
2. 동부 아프리카 선교의 신학적 원리
동부 아프리카라는 특수한 상황에 적용되는 선교의 신학적 원리는 현지 선교사들이 당면하는 문제상황들을 중심으로 정립되는 것이 바람직 할 것이다. 따라서 본 논문에서는 일반적인 선교의 신학적 원리를 논구하는 것이 아니라 동부 아프리카 선교의 중요 문제 상황들을 중심으로 그 상황에 적용되는 선교의 신학적 원리들을 찾아 보고자 한다.
1) 가난과 선교신학
“우리는 약 8억의 사람들 또는 인류의 5분지 1이 빈곤하며 생존을 위한 기본 필수품이 부족하며 또 그들 중에 수 천명이 매일 굶어 죽어간다는 것을 알고 간담이 서늘해 진다.”69 69죤 스토트 편, 「복음전도와 시회적 책임」 한화룡 역 (서울:두란노서원, 1988), p. 24.
는 음전도와 사회적 책임과의 관계에 관한 국제 협의회70 701982년 6월 9일 부터25일까지 미국 미시간주 그랜드 래피드즈에서 열린 국제회의, 죤 스토트목사가 위원장으로 로잔 위원회가 후원하였다.
회의 의 기록은 결코 단순한 보고서로 취급될 내용이 아니다. 그 실제적 현상이 아프리카등 제 3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앞서 문제상황에서 언급한대로 아프리카의 사람들은 대부분 가난하다. 그 가난도 상대적 가난이 아니라 절대적 가난이다. 선교사들이 선교 현장에 도착하여 제일 먼저 부딪히는 문제중의 하나가 바로 이들의 경제적 빈곤을 어떻게 극복하게 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할때는 이런 가난에 대한 분명한 신학적 해석과 이해가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가난하게도 부하게도 하실 수 있는 전권을 가지고 계신다.(삼상 2:7) 그러나 가난하게 사는 것이 하나님의 뜻은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복을 받기 원하시며 또한 그 복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기를 원하신다.(창 12:1-3) 가난은 결코 숙명적인 것은 아니다. 가난은 극복 되어질 수 있으나 그렇다고 해서 부가 선이 되고 가난이 악이 되는 것은 아니다.71 71신인현, 「빈곤에 도전하는 기독교」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1986),
p. 90.
구약 서 보면 다른 사람이 가난하길 바라는 것은 가장 나쁜 저주였다.(삼하 3:29, 시 109:9, 10) 그러나 가난이 사곡한 부보다 낫다.(잠 28:6, 전 4:13, 14) 고 말한다. 이는 가난 그 자체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아니나 그렇다고 해서 부한 생활을 영위하는 것을 권장하는 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부한 생활에 목적을 두다보면 더 귀한 영적인 삶에 관심을 잃어버릴 수가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오히려 어떤 사람들은 자의적으로 가난하였던 사람들도 있다. 구약의 레위족들과 쿰란종파, 탁발승들은 자의적으로 가난하였으며 마태도 ‘스스로 가난한자가 복이있다’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의 경우에는 특별한 목적 때문에 최소한의 생활을 선택 한 것이지 누구에게나 가난한 것이 좋다는 것은 아니다. 결국 가난은 극복되어져야 하는 것이며 부 또한 가난을 극복시켜주기 위한 도구로서 만이 가치를 갖는 것이다. 따라서 선교사들은 가난을 극복할 수 있도록 그 원인을 알게 하고 (일반적으로 나태와 게으름,(잠 6:10, 19:15, 24:30) 술취함,연락,(잠 21:17) 방탕과 훈계를 듣지않음,(잠 13:18, 28:19) 억압과 욕심,(출 1:13, 삼하 12:1, 렘 22:13) 피할수 없는 재앙, 역병, 전쟁, 사기, 고리대금 (출 1:4, 5, 민 11:4, 5, 삿 10:8, 시 105:34) 등이다.) 이러한 가난이 숙명이거나 운명지어진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알게 해야 할 것이며, 가난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여 가난을 극복 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것으로 만족하지 말고, 나아가 부 보다 영적인 삶에 대한 관심을 더 가질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가난 극복은 궁극적인 삶의 목적이 될 수는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더우기 이러한 사회적 문제들은 인류의 심원한 죄악성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72 72죤 스토트, p. 24.
따라 가난극복은 일시적인 것이요, 죄에서의 영혼구원은 영원한 것임을 깨닫게 하고 가난극복에 치중하거나 이에 머무르지 않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73 73참고성구, 잠 30:7-9.
그러나 경제부국에 살고있는 그리스도인들은 이러한 제 3세계의 가난한 형제들에게 무관심해서는 안될 것이다. 이에 대하여 로날드 J. 사이더 교수는 “미국시민들은 가난한 나라의 10억인을 먹일 수 있는 양식을 동물들을 먹이기 위하여 소비하고 있읍니다.”74 74로날드 J. 사이더, 「기아와 빈곤으로부터의 해방」 권명달역 (서울: 보이스사, 1990), p. 31.
고 하며 미국인들의 낭비와 무관심을 지적하고 있다. 또 그는 “ 재분배 전쟁이야말로 빈국들이 자기네 어려움을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지도 모릅니다.”75 75재인용, Ibid., p. 25.
라고 한 헤일 브로너 교수의 말을 인용하여 가난의 문제 때문에 전쟁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오늘날 이라크의 쿠웨이트 점령 역시 이러한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작금의 이라크사태는 같은 한 형제국인 쿠웨이트가 이라크의 상대적인 가난을 무시하고 ‘부의 과시’를 나타낸 결과 인 것이다. 따라서 전 세계의 견고성과 안정을 위협하는 가장 큰 위협은 기아인 것이다. 이 기아는 강대국들이 소유하고 있는 원자무기 보다도 더욱 무서운 것이며 절망에 빠진 사람들이 절망적인 일을 서슴없이 자행할 수 있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이러한 경고를 한 로날드 J. 사이더 교수는 경제 부국 국민들의 낭비와 사치를 줄일것을 권고하고 특히 그리스도인들에게 성경의 ‘가난한 자에 대한 하나님의 관심’(잠 19:17, 암 2:7, 호 8:1-6, 미 2:2, 사 10:1-4, 렘 5:26-29, 눅 4:18-19, 마 25:31046)을 상기 시키며 이렇게 말하고 있다.
가난한 자에 대한 하나님의 관심은 놀랍고 한이 없읍니다. 계시의 역사를 통하여 여호와께서는 압제당하는 자를 자유케 하시려고 역사하셨읍니다. 우리는 그분의 성육신을 통하여 나타난 가난한 자와 동등됨을 취하셨다는 것을 측량할 수가 있읍니다. 가난한 자들은 특별히 그의 구원과 계시의 도구로 택하심을 받는 경우가 많읍니다. 공의에 대한 그분의 열성은 가난한 자를 압제하며 궁핍한 자를 못본척하는 부유한 사회와 부자들의 길을 막으시는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의 사람들, 진정으로 하나님의 백성들이라면 가난한 하나님의 발자취를 좇을 것입니다.76 76로날드 J. 사이더, p. 114.
이어서 그는 희년, 안식년, 십일조, 이삭줍기등의 구약의 가난구제 방법을 언급하고 초대교회의 사랑의 공동체 제시하며 세계의 부유한 그리스도인들에게 “우리는 교회의 가난한 사람들과 조금도 나누어 가지려고 하지않고 자기네 끼리 잔치를 벌이던 부유한 고린도 교인들과도 같읍니다.”77 77Ibid., p. 150.
라고 말하며 올바른 경제관을 갖고 세계 선교에 거침돌이 되지 말 것을 호소하고 있다.78 78Ibid., pp. 115-152.
이상 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이미 가난과 기아는 어느 한 나라 한세계(제3세계나 제 4세계이나)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이는 전세계의 문제이요 우리 모두의 과제인 것이다. 여기에서 경제적으로 부유한 기독교인들은 ‘가난한 형제’들에 대하여 관심을 갖고 돌아보는 마땅한 도리를 다하여야 됨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한 구체적인 전략은 뒤에 의식구조 개혁및 가난퇴치를 위한 전략에서 취급하기로 한다.
2) 국민성과 선교신학
일반적으로 아프리카인들이 문제의식이 없고 바쁜것이 없는 낙천성은 그들의 자연환경이 가져다 준 결과일 수 도 있을 것이며, 아니면 문제들에 대한 빠른 체념이나 천성적인 낙천성일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후천적으로 오랜 식민지 생활에서 갖게 된 자포자기 일수도 있다. 하지만 원인이 어디에 있든지 대부분의 아프리카인들에게서 이러한 국민성을 계속하게 한다면 그들의 장래는 암담한 것이며 선교 또한 막대한 지장을 초래할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국민성을 성서적, 신학적으로 수정하여 주며, 좋은 점은 선교의 접촉점으로 활용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할 것이다.
성경에서 나타나는 신앙의 사람들을 살펴보면 모두가 믿음과 소망의 소유자들이다. 그들은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와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을 소망으로 바라보며 일생을 그 꿈을 이루기 위하여 살아간 사람들인 것이다. 그들은 어떠한 문제에도 굴하지 않고 끈기와 인내로 꿈을 이루어내는 용기의 사람들이다. 아브라함,야곱,요셉,모세,여호수아,다윗,바울,베드로등 모두가 소망과 믿음의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아프리카 사람들에게서는 이 꿈과 믿음을 기대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그들에게는 바람직한 소망을 찾아 보기가 어렵다. 설사 한가지 희망이 있었더라도 이제까지의 경험과 환경때문에 쉽게 포기해 버리고 만다. 또 그일을 위해 열심히 노력할 의욕을 갖지 못한다. 너무나 엄청난 세월의 식민지 생활과 그들의 환경, 여건들이 그들을 체념과 자포자기의 사람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이러한 사람들에게 선교를 한다는 것은 밑없는 독에 물붓기와 같을 것은 뻔한 일이다. 아무리 주어도 감사의 말을 듣지 못하며 그들의 멍한 시선은 달라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하나님께서 주시는 소망이다. 바로 예수그리스도를 통한 믿음의 길과 하나님 나라의 약속을 주는 것이다. 이들의 세계관을 기독교적 세계관으로 변화 시키는 것이다. 즉 원초적이고 근본적인 변화를 이루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은 신학적으로 ‘중생’으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중생을 J. T. Marshall은 “케리그마를 통해 그리스도와 만남으로 필사(必死)의 생을 뛰어 넘는 것”79 79「기독교 대백과 사전」 J. T. Marshall, “중생” 항목.
이라 말하며 바클레이는 “ 다시난다는 것은 오직 거듭난다는 말과 재창조란 말로만 설명될 수 있을 만큼 변화되는 것이다.”80 80바클레이, 「 요한복음 상」 성서주석 시리즈, 5권, 황장욱 역, p.
198.
라고 말하였다. 이처럼 사람의 근본적인 변화를 표현하는 성경구절 중에 ‘거듭난다’, 즉 중생만큼 확실한 용어는 없다. 따라서 아프리카인의 국민성의 변화는 역시 중생으로 만 가능할 것이며 그리스도와의 만남으로 새로운 인생을 새출발 하는 중생이후에 교육적인 변화를 시도하여야 할 것이다. 이 중생은 그 동인(動因) 으로 ① 성령의 능력 ② 회개와 믿음을 들수 있다.81 81J. T. Marshall, pp. 220-222.
이것 사람의 근본적인 변화란 ’위로부터 나는 것‘(요 1:13, 3:6) 이라는 것을 분명히 하는 것이다. 우리는 아프리카 선교 뿐만 아니라 모든 선교에 있어 성령의 역사를 간과 하여서는 안된다. 이런 성령의 역사에 대하여 한철하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세계선교가 예수님의 분부를 받는 사도들이 제각기 흩어져서 자기 힘을 다해서 선교사업을 함으로서 된 것이 아니고 교회로 모여서 “마음을 같이하여 전혀 기도에 힘쓸때”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그가 말하게 하심을 따라 각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함으로써 진행되었던 것이다......82 82한철하, “선교 2세기를 향한 한국교회 신학” 「성경과 신학」 한국복음주의 신학회 편 (서울: 엠마오, 1989), p. 21.
즉 성령의 역사를 선두로 한 선교가 참된 그리스도의 뜻을 이루는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그들의 안타까운 국민성을 내가 변화시켜 보겠다는 생각을 버리고 겸손하게 기도를 통하여 성령의 도우심 속에 이루어 가야 함을 알 수있다.83 83참조, 죤. 스토트, 「현대기독교 선교」 김명혁 역 (서울: 성광문화사, 1989) pp. 168-173.
이러 성령의 사역을 통하여 변화된 그들에게 제자훈련이나 가나안 농군학교 교육등을 통하여 새로운 기독교적 의식구조를 심어 주어 계속적인 변화를 도와야 할 것이다.
3) 정치와 선교신학
국가의 정치적 현실과 선교와의 관계는 기독교 선교역사에 많은 문제를 가져다 주었다. 사실 정치적 상황에 따라 국민의 생활이 좌우되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아프리카만 하여도 정치인들이, 공무원들이 자행하는 폭정과 비리만 없어도 오늘날같이 비참하지는 않을 것이다. 따라서 몇몇의 선교사들은 이러한 정치권에 반발하다가 축출되는 경우도 있어 왔던 것이다. 이에 대하여 한경철 선교사는 아래와 같이 선교사의 입장에서 선교사 정치참여 절대 불가론을 펴고 있다.
선교사는 현지에서 종교적 분야에 한해 일하도록 비자를 얻었다. 그러므로 ① 현지의 정치문제에 관해서는 관여할 법적 권한이 없다. ② 특히 제 3세계의 정치란 서구식으로 잘 안정이 되어 있지도 못하고 인권문제, 소득분배 문제, 부정부패 문제등 수없는 문제를 지니고 있고 또 외국인들의 정치 관여문제에 몹시 민감하다. 특히 종교지도자의 정치간섭에 신경을 쓰는 경향이 많다. ③ 정치에 관한 발언이나 활동을 하게 되면 선교의 문을 막게 되고 국가간의 관계도 이간 시킬 수가 있다. 그러므로 선교사는 정치에 무관해야 하고 중립을 취해야 한다..... 84 84한경철, p. 253.
사실 때로는 어처구니 없는 부정 부패의 현실85 85“금전수수나 뒷거래, 뇌물을 주는일 없이 선교하기가 어렵다는 말을 듣는다” 한경철, p. 255.
이나 정치적 잘못들을 그냥 간과할 수없는 그런 경우가 있을 수도 있다. 그래서 선교사는 정치참여의 문제에 신학적 입장을 분명히 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정치참여의 문제에 대한 교회 성장학자인 피터 와그너 교수의 의견을 들으면 다음과 같다. 그는 정치참여(사회정의의 실현)의 문제를 문화위임으로 부르면서 복음전도위임과 함께 교회가 이루어가야 할 과제로 설명한다. 이어서 그는 아래와 같이 주장함으로서 선교에 있어 복음전도가 최우선 순위에 있음을 분명히 한다.
그러나 봉사가 죄인을 구원하지는 않는다. 복음전도가 죄인을 구원한다. 전체론적 복음전도(복음전도와 사회사역은 구분될수 없다는 입장)는 복음전도의 우선 순위성을 배제하는데 이것은 가치관이나 성서적으로도 타당하지 않다. 물론 문화위임은 선택적이 아니라 명령이며 선교의 일부이다. 그러나 복음전도위임의 우선순위는 성서적이다. 영혼을 구원하는 일보다 더 중요한 일은 있지도 않고 있을 수도 없다. 맥가브란 역시 문화위임을 믿으나 사회운동은 선교 그자체는 아니라고 한다....86 86피터 와그너, pp. 120-140.
따라서 선교사가 정치에 참여하여 얻을 유익도 있겠지만 잃어버리는 영혼에 더 관심을 가져야 함을 분명히 알 수 있다.
4) 인종 문제(종족주의)와 선교신학
아프리카의 선교에 있어 선결되어야 하는 중요한 문제 중의 하나가 바로 인종 문제와 종족주의이다. 인종문제는 다윈의 진화론에 근거한 특수인종우월론에 취해 버린 인종주의자들에 의하여 발생되었다. 인종문제의 가장 비참한 참극이라면 노예제도와 히틀러의 유대인 학살일 것이다. 또한 최근 변화를 보이기는 하지만 현대에 까지 계속되고 있는 남아공화국의 인종차별정책, 그리고 유럽이나 미국등 서구,호주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있는 백호주의는 뿌리깊은 인종문제를 유발하고 있는 것이다. 아프리카에서는 백인들과의 뿌리깊은 반감만이 아니라 황인종 특히 인도인들에 대한 반감이 큰것을 간과 해서는 안된다. 이런 피부색의 문제 뿐만 아니라 아프리카에는 종족주의가 세계 어느 곳 보다 강하다. 그들은 같은 종족이 아니면 거의 상대를 하지 않는 경우도 있을 정도로 종족만의 생활에 익숙해져 있다. 도시에서 교육을 받은 아프리카인들을 제외한 대다수의 아프리카 부족민들은 모두 이런 종족주의에 젖어 있는 것이다. 아니 교육을 받은 엘리트 계층이라 하더라도 뿌리깊은 종족주의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그 한 예로서 이런 일이 있었다.
케냐에서 제일 이름난 변호사 오티에노(S. N. Otieno) 씨는 1986년 12월에 갑자기 죽게 되었다. 이 사람의 부족은 케냐의 5대 부족중의 하나이며 의사와 변호사들을 많이 배출하는 두뇌가 좋은 부족인 루오족이었다. 이사람이 죽은 후 부인과 자녀들은 자신들이 30년 이상 살았던 나이로비에 남편이었고 사랑하는 아버지였던 오티에노씨를 묻으려고 했다. 그런데 느닷없이 루오족의 부족위원회에서 루오족은 전통적으로 루오땅에 묻어야 한다는 주장을 들고 나와 법정투쟁을 벌렸다. 시체를 나이로비 시체 안치장에 놓아둔 채 4개월 동안의 엎치락 뒤치락 하는 끝에 루오족 부족위원회가 승리하여 니알궁가라는 리프트벨리(Rift Valley:중앙 협곡) 지역에 부인과 자녀의 참여 없이 장례를 치루었다....87 87이일재, pp. 85-86.
이러한 인종문제,종족 문제는 상호간의 불신이나 파벌을 쉽게 만들어 버리고 싸움이나 분쟁이 끊이지 않게 하는 원인이 되는 것이다. 성서는 이러한 인종문제등에 분명한 대답을 하고 있다.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주자나 남자나 여자없이 다 그리스도 예수안에서 하나이니라”(갈 3:28) 즉 하나님앞에 모든 사람은 똑같은 대우를 받아야 할 하나님의 자녀인 것이다. 이러한 인종적, 종족적 편견에 대하여
기독교적 입장은 선천적인 것도 아니고 순진하게 가르침을 받은 것도 아니라고 본다. 그것은 불가피한 운명적인 것도 아니며 고의적인 선택도 아닌 「죄악의 신비」에 속하는 것이다. 따라서 교회는 화해의 교훈에 충실한 한 인종간의 소원(疎遠)을 극복할 수있다. 교회는 신앙 공동체로서 인종적 차이를 초월하여 단결한다. 교회는 또 선교 공동체로서 모든 인종간의 거룩한 화해를 도모하고 있다.88 88「기독교 대백과 사전」 Roger L. Shin, “인종” 항목, p. 273.
는 견해와 함께 성경 속에서 증거하는 복음의 보편성으로 선교사는 대처해야 할 것이다. 창세기에서 우리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창조로 같은 한조상을 가지고 있음을 말한다.(창 1:1-28) 피부색은 달라도 모든 인간은 한 하나님이 창조하신 한조상의 자녀들이라는 성경의 선언은 모든 피부색과 종족주의를 종식시키는 선언인 것이다. 따라서 선교사는 이러한 성경의 선언에 합당한 태도로 살아가며 피 선교지의 모든 사람들을 대하여야 할 것이다.
5) 결혼제도(일부다처제)와 선교신학
앞서 문제상황에서 언급한 것처럼 동부 아프리카만이 아니라 아프리카 전역에서 선교를 하는데 가장 큰 문제점으로 대두되는 것이 일부다처제이다. 이것은 국가적으로 공인되어 있는 것이며 또 종교적으로도 무슬림권에서는 인정하고 있을뿐만 아니라 이것을 이용하여 기독교의 전도 활동을 방해하고 있는 현실이다. 더우기 강경하게 일부일처제를 고집할 경우 수많은 사회문제를 야기 시킬뿐만 아니라 선교활동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선교현장에서는 이의 적용에 신축성을 두어 대처하고 제자훈련이나 다른 교육기회를 통하여 점차 스스로 깨달아 정리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 결혼 제도에 대한 분명한 신학적 이해는 선행 되어야만 한다.
여기에서 구약성경에 나타나는 이스라엘의 결혼 풍습에 대하여 살펴보면 최초의 창조에서는 일부일처제가 하나님의 뜻에 부합된것으로 나타나며(창 2:20-24) 일부다처제는 타락한 가인의 계열에서 나타난다.(창 4:19) 그러나 족장시대에 이르러서는 일부일처를 원칙으로 하면서도 부인이 수태치 못할 때 또는 자녀가 있더라도 한사람의 첩은 둘 수 있었다. 그러나 본부인이 모든 권리를 가지고 있었다.89 89R. 드보, 「구약시대의 생활 풍속」 이양구 역, (서울: 대한 기독교 출판사, 1988), p. 56.
그후 사사시대와 왕조시대에서는 이러한 제한들이 모두 사라졌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가정에서 지배적인 것은 일부일처 제도였다. 그리고 이러한 결혼에서 부인은 남편에게 종속된다. “부인을 데려오는 남편은 처가에 ‘모하르’를 주는데 이는 몸값이 아니라 처가에 주는 보상금의 의미를 지닌것으로 일정한 돈을 지불하거나 이에 상응하는 대리행위(노동등)를 하는 것이다.”90 90Ibid., p. 60.
그리 결혼후에 딸에게 종이나 토지등 결혼선물을 줄 수 있으나 혼수를 장만 해주는 풍습은 이스라엘에는 없다.91 91Ibid., p. 62.
또한 배우자 선택에서 당사자의 선택권한은 없었고,부모의 전권이었으며, 사촌끼리의 결혼은 자주 있었고(종족보존,재산보존이유)형제자매나 사돈간의 결혼은 엄금되었다. 특히 제사장은 창녀나, 남편에게서 쫓겨난 여인,과부(제사장의 과부는 제외) 와는 결혼이 허용되지 않았으며 대제사장은 이스라엘의 숫처녀에게만 장가를 들어야 했다.92 92Ibid., pp. 64-68.
또한 이스라엘에 있어서 약혼은 결혼과 같이 취급되었으며 약혼후 모하르의 액수가 결정되면 즉시 신랑은 처가에 이를 지불 했으며 사실상 결혼 인정은 결혼 초야 이후 신부의 순결이 확인된 이후였다. 또한 신약시대의 결혼 제도도 일부일처제도로 분명하게 제시되고있다. 이혼에 대한 규정은 신명기 24장 1절에서 “남자가 여자에게서 결점을 증명할 수 있는 것” 으로서 랍비 시대에 와서는 본문의 범위에 대하여 논쟁이 구구 하였다. 엄격하게 본문을 고수하는 샴마이 학파에서는 간음과 나쁜 행실만을 아내 추방의 원인으로 허용하였으나, 이에 반하여 비교적 자유주의적인 힐렐 학파에서는 임의적인 원인으로도, 심지어는 사소한 일을 가지고서도 아내를 충분히 추방할 수 있는 원인으로 삼았다. 예를 들면 아내가 요리를 잘못하였다든지, 단순히 자기 아내보다 다른 여자가 더 마음에 든다든지 할 때도 추방의 원인으로 간주 되었던 것이다.93 93Ibid., p. 73.
이 을 하는 절차는 간단하게 ‘그녀는 나의 아내가 아니며 나는 더 이상 그녀의 남편이 아니다’(호 2:4) 라고 선포 하기만 하면 되었다. 그리고 이혼증서를 주어 재혼할 근거를 만들어 주었다. 이에 비해 남편들의 권리는 약간만 제한 되어 있었는데 즉 자기 아내와 결혼할 때 숫처녀가 아니었다고 부당하게 허물을 씌운 경우나, 처녀를 강간하였다가 꼼짝없이 결혼한 경우에는 아내를 추방할 수없었다.(신 22:13-19, 창 22:28이하)
신약에 와서는 간음의 연고 외에는 이혼이 허락되지 않았다. 이에 따라 세계의 교회들은 대부분 일부 일처에 간음의 연고 외에는 이혼을 허락하지 않는 신약의 규범을 따르고 있다. 그러나 아프리카와 같은 특수 상황에서는 이러한 입장을 고수하기가 어려운 상황에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왜냐하면 아프리카의 교회들이 일반적으로 일부다처주의를 인정하고 독립교회들은 일부다처주의를 공인 하고 있기 때문이다.94 94한경철, Ibid., p. 287.
이런 문제 뿐만 아니라 일부일처주의를 강조하면 기독교는 가정을 파괴하는 종교로 인정될 뿐만 아니라 이혼당한 여자들은 생활 때문에 매춘을 하게되는 경우가 빈번하기 때문이다. 또 이혼과 함께 자녀들의 문제도 심각하게 되었고, 일부다처제도 죄이지만 이혼도 죄이므로 이혼을 가져오게 하는 일부일처주의 강조도 문제시 되는 것이다. 따라서 세계 선교의 전례를 거울 삼고, 이러한 분명한 성서적인 입장과 신학적인 이해 앞에, 선교사의 기도를 통한 현명하고 지혜로운 판단과 적용이 조화를 이루어가야 할 것이다. 선교역사에 나타난 전례들을 보면 “한국에서는 교회가 이 문제에 대하여 강경한 입장을 취하였던 바 이런 관계를 완전하게 청산한 자에 한해서만 세례를 받고 입교인이 될 수 있는 자격이 있는 것으로 간주 하였다.”95 95T. S. 솔토우, 「현대 선교 전략」 신홍식 역 (서울: 크리스챤비젼하우스, 1990), p. 121.
아프 카에서는 앞서 말한대로 일부다처 주의를 공인하는 입장과 일부일처를 고수하는 AIC 교단이 있고, 한국 선교사들은 여러 부인을 가진자가 예수를 영접하면 세례는 베풀지만 교회의 직분을 주지않고 있다. 만약 이런 자가 교회의 직분을 맡기 원하면 본부인 이외의 부인과는 관계를 정리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리고 일부일처의 교회 직분자가 부인을 더 얻으면 그자를 치리하는 것이 일반 적인 관례이다. 이런 예들을 살펴보면 일부일처가 분명한 성서적인 입장임을 분명히 알면서도 선교에 주는 막대한 지장과 여파에 의한 문제야기 때문에 애매한 절충식 방법을 쓰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문제 상황에 적합한 신학적 해석이 아직도 마련되어 있지 못한 것이 안타까운 일이다. 하지만 한가지 감히 제언을 한다면 예수님께서 하신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라’(막 2:27) 는 말씀을 근거로 상황윤리가 말하는 ‘사랑’의 원칙으로 부끄럽지 않게 최선을 다해 처리하는 것이 일리가 있을 것이다. 즉 일부일처의 제도는 인간을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인간을 위하여 제정하여 주신 법이다. 따라서 인간을 사랑하시기 위하여 주신 법이 인간과 하나님과의 화해를 가로막고 오히려 가장 값진 영혼구원을 받지 못하게 된다면 이는 하나님의 가장 큰 뜻을 이루지 못하는 것이 된다. 따라서 법에는 위반되는 일이지만 우선순위를 영혼구원에 두고 그때 그때의 상황에 따라 하나님앞에 기도하여도 부끄럽지 않게 최선을 다한 ‘사랑’으로 처리하는 것이 합당하다 할 것이다.
6) 전통종교와 선교신학
칼빈은 “종교 없이 출발하는 세계에는 나라도, 시도 심지어 집도 존재하지 않았다.”96 96재인용, J. H. 바빙크, 「기독교 선교와 세계문화」 권순태 역 (서울: 성광문화사, 1987), p. 103.
고 하면서 하나님께서 어느민족 어느나라에도 그 심성에 종교의 씨를 뿌리실 뿐만 아니라 자연환경에서도 하나님을 계시하셨다고 말하는데 이는 세계 어느나라에도 하나님께서 자신을 계시하지 않은 곳이 없다는 지적으로 아프리카에서도 실제 사실로 입증되고 있는 것이다. 즉 아프리카의 전통종교는 기독교의 여러면과 유사한 점이 많아 선교에 좋은 접촉점이 된다. 특히 신개념은 한국에서 ‘하나님개념’이 쉽게 기독교의 ‘여호와’와 동일시 되었던 것 처럼 아프리카의 최고신인 ‘mungu’ 역시 기독교의 ‘여호와‘와 동일시 되고 있다. 이는 신개념의 유사점 때문인데 ‘Mungu’는 1) 초월적이며 신비적이다. 2) 전지 전능하다. 3) 무소부재하다. 4) 도덕적으로 선하다(친절,사랑) 5) 영원한 영이다. 6) 거룩하고 유일하다.는 속성과 세계창조와 인간창조,그리고 인간세계의 구원과 보호가 그 구체적인 활동을 가지는데 이는 기독교의 하나님과 거의 동일시 될만큼 유사점을 가지고 있다.97 97Richard J. Gehman, pp. 189-194.
뿐만 아니라 영적세계의 영적 존재인정, 악령의 실재등은 모두 기독교 선교에 많은 접촉점을 주는 요소들이다. 그러나 신학적으로 이들에게 확실한 차이점과 다른점을 지적해 주지 못한다면 지금 아프리카에서 악순환 되고 있는 종교혼합은 계속될 것이다. 즉 영적 세계에서 조상의 영들이 질병이나 가뭄,죽음들을 가져다 준다는 생각이나 비인격적인 신비한 힘(주술,부적)이 존재한다는 다분히 민간신앙적인 요소들을 분명히 배제하여야 할 것이다. 한국교회의 선교사들은 이문제에 있어 세계 다른 나라의 선교사들보다 더 현명하게 대처할 수 있으라라고 본다. 왜냐하면 한국에 기독교 선교가 시작되고 지금까지 이 전통종교와의 혼합문제(특히 민간신앙적인 요소들과)가 신학적으로 연구의 대상이 되어왔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아프리카의 전통종교와 한국의 민간신앙의 유사점을 찾아 보고 한국에서의 기독교 토착화 수행중 문제가 되어 왔던 점을 조명하여 아프리카에서의 혼합주의를 방지하고 기독교 토착화를 이룰수 있는 신학적 원리를 찾아 보고자 한다.
앞서 문제상황에서 언급한 것 처럼 최고신 개념은 한국의 하나님 개념, 그리고 기독교의 여호와 개념과 매우 유사한 점이 많이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의 하나님 개념은 초월신으로, 모든 신령위에 군림하는 신으로서 사실상 인간의 삶과는 밀접한 관련이 없는 것으로 나타난다. 오히려 인간에게 길흉생사화복을 가져다 주는 것은 신령들에 의한 것으로 이 신령들에의 대접 여하가 곧 인간의 길흉생사화복을 좌우하게 되기 때문에 이에 대한 대처를 더욱 주의하고 있는 것이다.98 98문상희, “한국의 샤머니즘”, 「종교란 무엇인가 ?」 분도출판사 편 (서울: 분도출판사, 1975), p. 163.
따라 한국인에게는 기독교의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것이다. 아프리카 역시 마찬가지다. Mungu (最高神)는 초월적 신으로 오히려 관심 밖이고 자신들에게 생사화복을 주장하고 길흉을 좌우하는 조상들의 유령이나 , 나무, 산, 강등 자연의 힘있는 것에 거주하는 영, 그리고 신비적인 힘 즉 마술이나 부적, 주술등에 더 주의를 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99 99G. H. 무조레와, 「아프리카 신학」 조동호 역 (서울: 한국신학연구소, 1987), pp. 29-41.
또한 한국 민속종교의 무당과 같은 매개인이 아프리카에도 주술을 하거나 부적을 만드는 사람으로 나타난다. 이들은 신령들과 교통하며 사람들에게 그 뜻을 전달하고 질병이나 가뭄, 죽음등에서 피할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며 주술이나 부적등으로 이를 방지하고 퇴치한다. 또한 아프리카 인들이 즐겨하는 노래와 춤은 바로 이런 전통 종교 의식에서 유래하고 있기 때문에 이것 또한 한국의 굿과 매우 유사하다. 여기에서 한국의 민간신앙과 매우 유사한 아프리카의 전통종교의 장점과 문제점을 한국 민간 신앙의 문제점과 장점을 통하여 살펴 보면 다음과 같다.
* 민간신앙의 장점100 100유동식, 「한국종교와 기독교」 (서울: 한국기독교서회, 1976), pp. 37-39.; 참조, 문상희, “한국의 샤머니즘” 「종교란 무엇인가 ?」 분도출판사 편 (서울: 분도 출판사, 1975), pp. 180-181.
가. 민간신앙의 강점은 대중성이다. 어느 누구와도 친근해질 수 있는 지극히 인간적인 신령들은 무식한 서민들에게 거리감이 없었다. 따라서 그렇게 끈질긴 생명력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이다.
나. 그리고 또다른 강점은 민간신앙의 투사성이다. 이는 자기의 잘못이나 문제까지도 신령의 책임이라하여 운명론에 빠짐으로서 문제와 한을 가질 수 밖에 없었던 역사적 상황속에서 그 한풀이와 책임을 벗어나게 하는 수단과 도구가 되었던 것이다. 결국 근심이나 한심,걱정,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었던 것이다.
다. 마지막으로 민간신앙의 강점은 오락성이다. 특별한 서민 오락이 발달되지 못한 때에 무당의 춤과 가락은 서민들의 애환을 달래주고 그 엑스타시속에 동참함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가지게 되었다. 즐거움이 없고 기쁨이 없고 근심 걱정의 세월속에 무당의 푸닥거리는 결국 민중의 애환을 달래주는 오락이요 기쁨이 되었던 것이다.
* 민간신앙의 문제점
그러나 이러한 민간신앙의 강점도 있지만 민간신앙이 우리 민족에게 유익을 준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우리 민족의 의식 구조속에 수정하기 어려운 질 나쁜 고정관념을 심어준 것은 커다란 문제점인 것이다. 문상희 교수는 그의 논문 "한국의 샤머니즘"101 101문상희, p. 183.
속에 다음과 같은 7가지의 문제점을 제시하고 있다.
가. 귀신 신앙: 귀신에 대한 강조로 귀신에 대한 공포심을 불러 일으키고 불안을 조성하여 이성의 힘을 마비시킨다. 결국 나약해진 인간이 샤먼의 말을 감지 덕지 하는 그런 속에서 권위에 맹종하는 의타심, 줏대없는 심성, 비판 정신없는 맹목적 신앙,사대주의를 싹트게 만들었다.
나. 운명신앙: 샤먼의 운명관념은 체념과 나태심을 심어준다. 만사를 신령탓으로 돌리기 때문에 무책임성,도피주의,패배주의가 되고 결국 인간의 죄의식이나 창조성을 말살해 버린다.
다. 요행주의: 신령의 비위만 맟추면 만시해결이라는 사행심이 민간신앙으로부터 발생한다.
라. 윤리의식 결여: 민간신앙에서 권선징앋의 요소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의 신관에서 선악이 구분이 분명하지 않고 모든것이 신령의 비위를 맟추면 되기 때문에 윤리의식이 싹틀수 없다.결국 죄의식없는 무책임한 인간을 양성하고 만것이다.
마. 역사의식 결여: 샤먼에게는 발전이란 없다. 다시말하면 역사의식이 없는 것이다. 똑같이 반복되는 '굿'으로 모든것이 해결되기 때문에 역사적 발전을 기대하기도, 목적이나 꿈을 기대할 수는 더더욱 없는 것이다. 결국 민간신앙의 역사는 역사없는 역사인 것이다.
바. 주술신앙: 민간신앙은 종교라기 보다는 주술에 가깝다. 결국 주술에 모든것을 의지하기 때문에 사고방식의 합리화나 과학정신은 생겨날 수 가없다. 결국 우리민족의 과학발전을 저해시킨 온상이 바로 민간신앙이라 할수 있다.
사. 혼합주의: 민간신앙이 종교를 수용하기는 하였지만 올바로 이해 수용한 것은 아니다. 자기 편리에 따라 적당히 수용하는 퇴행적 혼합주의 였다. 따라서 비슷하기만 하면 된다는 형식주의, 적당주의의 온상이 된것이다.
이제까지 우리는 한국교회가 어렵게 극복해 가고 있는 한국 민간신앙의 무서운 존재 양태를 살펴보았다. 결국 민간신앙은 그 자체가 가졌던 수용성, 대중성, 투사성, 오락성 등의 강점을 가지고, 그 오랜 역사를 가지고 한국민족의 의식구조 속에 역사적 상황과 야합하여 뿌리내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 결과 우리 민족의 고질적 문제인, 사대주의, 운명론, 요행주의, 적당주의, 무책임성, 비합리성, 혼합주의 등의 뿌리가 된 것이다. 따라서 아프리카에서 나타나는 국민성의 문제가 바로 그들의 전통종교에서 기인함을 쉽게 짐작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전통종교에 대한 분명한 이해를 바탕으로 아프리카 선교의 올바른 정착에 힘써야 할 것이다. 이 전통종교적인 요소에 혼합되지 않고 좋은 접촉점을 잘 이용하여 이루어지는 기독교 고유의 신앙정착이야 말로 아프리카선교의 중요한 과제중의 하나가 될것이다.
IV. 동부아프리카 선교전략
1. 팀선교
1) 팀사역의 정의
앞서 말한대로 선교란 결코 혼자할 수 없는 협력으로만 가능한 일이다.
팀사역은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고 이루어나가는데 있어서 여러 지체들이
그들의 다양한 은사와 부르심과 직임대로 함께 공동체를 이루어 동역하는 것을 의미한다. Webster's New Collegiate 사전에는 팀사역을 ”각자가 한 부분씩을 담당하되 전 구성원이 개별적으로 독특한 중요성을 지니면서 전체 일의 능률에 종속되어 있는 여러사람의 연합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일“102 102리로이 아임스, 「제자들의 사역」 (서울: 네비게이토, 1986), p. 212.
이 고 정의되어 있다. 그러므로 팀사역을 철저하게 공동체 사역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이 선교 공동체는 한 개인과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과 전략이 된다. 하나님도 독립적이지 않으시고 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 성령 하나님인 삼위일체 하나님이 서로 섬기시면서 동역하심을 볼 수 있고 예수 그리스도 삶의 방식 또한 철저하게 공동체 안에서의 팀사역이 셨다.
2) 성서에 나타난 팀사역
(1) 구약에서의 팀사역
성경 전체에 걸쳐 팀윅(Team Work)에 대한 원리가 흐르고 있음을 볼 수 있는데 때로는 두 사람이, 어떤 때에는 적은 무리로 또 어떤 경우에는 큰 무리가 함께 팀사역을 하였다.103 103Ibid., p. 211.
구 에는 아브라함이나 이삭이나 야곱의 가족과 같은 가족 단위의 연합 형태가 많이 나타나 있으며 모세나 솔로몬, 느헤미야 같은 사람도 그들 주위에 함께 일할 동역자들의 무리를 이끌었다.(출 7:8, 12, 왕상 2:4)
① 모세 - 여호수아의 모델
모세는 율법을 주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성별하여 부르신 산 위에까지 여호수아와 함께 간다. 출애굽기 24:13에 보면 ”모세가 그 종자 여호수아와 함께 일어나“ 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여기에서의 종자는 단순한 종이 아니라 조력자(assistant)를 의미한다.여호수아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하나님의 백성을 가나안으로 인도하는 모세의 사역을 돕고자 백성의 상황을 보고하여 주는 사역보조자의 역할을 했다.(출 32:17-18) 또한 회막에서 모세와 함께 있어 여호와를 섬기는 일을 했다.(출 33:11) 그리고 모세가 죽은 후에는 모세를 대신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였다. 이밖에도 이스라엘의 르비딤에서 아말렉과 싸울때, 모세의 손을 붙들어 올린 아론과 훌의 조력은 승리의 큰 몫을 담당했던 것이다.(출 17:8-16) 또한 출애굽기 18:13-27에 보면 그 모든 백성들을 모세 혼자 처리할 수 없게 되자 천부장과 백부장, 오십부장, 십부장을 세워서 백성을 돌보는 일을 분담하여 함께 동역했던 것을 볼 수 있다.
② 사무엘과 선지자의 모델
구약의 예언자들은 하나님의 소명을 받은 자들로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기 위해 파견된 자들이었다. 이러한 에언자들은 고립된 상황에 있지 않고 예언공동체라고 할 수 있는 집단을 중심으로 공동사역을 하였다.104 104전재옥,“ 선교 전략으로서의 선교 공동체”, 「복음선교」 (서울: 엠마오, 1985), p. 54.
무엘 11세기의 이스라엘 왕 사울과 다윗시대의 선지자인데 이 사무엘시대로 부터 “선지자의 무리” 또는 “선지자의 생도”로 알려진 예언자의 집단이 존재하였다.(삼상 10:10-12, 삼상 19:20) 이 선지자 학교는 두 곳에 있었는데 한 곳은 선지자의 고향인 ‘라마’에 있었고 또 하나는 ‘기랏여아림’에 위치해 있었다. 이 예언자 공동체에서의 교육내용은 인격완성을 위한 정신적인 교육과 자활을 위한 실제적인 과목을 배웠다. 정신적인 과목은 하나님의 율법과 모세의 교훈, 역사, 음악, 시가였고 직업훈련을 위한 실제적인 과목들은 농업 및 기계에 관계되는 과목들이었는데 그것으로 교사와 학생들이 자활하는 한 수단이 되었던 것이다.105 105엘렌 G. 화잇, 김동기 역 「부조와 선지자」 하권 (서울: 시조사, 1974), p. 275.
사무 과 그의 선지자 공동체는 율법을 지키고 하나님을 경배하는 강력한 영적 집단이 되었고 선지자의 무리들은 그의 제자가 되어 라마나욧에서 공동체 생활을 영위하며 그당시 우상숭배의 종교풍토에서 순수한 여호와 중심의 신앙을 지켜나가는 중대한 사명을 감당했던 것이다.106 106원종국, “제자양성의 성서적 이론과 실제에 관한 연구” (박사학위 논문, 아세아 연합신학대학원, 1987), p. 19.
③ 엘리야의 공동체 모델
디셉사람 엘리야는 B.C.9세기 이스라엘 북왕국 아합왕 때 이스라엘의 길르앗에서 활동했던 예언자로 그는 사무엘의 선지자 공동체가 이스라엘의 배도 기간에 무너진 다음 다시 청년들을 훈련시켜 이스라엘의 타락과 패망으로 부터 건져낼 인물을 양성하기 위해 선지자 학교를 다시 설립하였다.107 107엘렌 G.화잇, 「선지자와 왕」 김동기 역 (서울: 시조사, 1974),
p. 217.
이 공동체는 벧엘(왕하2:3), 여리고(왕하 2:5) 길갈(왕하 3:38) 에브라임 산지(왕하 5:22)등에 있었다. 이 공동체에서의 교육내용은 하나님의 율법을 순종할 것과 생활에 있어서 단순성의 중요함을 강조했고 인격의 완성자이신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했다.108 108엘렌 G.화잇, 「복음 사역자」 김동기 역 (서울: 시조사, 1974),
p. 102.
러한 교육의 결과로 그 당시의 배도와 타락 가운데에서도 하나님께 충성을 다하고 우상숭배와 타락의 물결 속에 빠지지 않은 순결하고 경건한 의인 칠천명의 증거를 볼 수 있었다.109 109엘렌 G. 화잇, 「선지자와 왕」 p. 217.
④ 엘리사의 공동체 모델
엘리사는 B.C.9세기 북왕국 이스라엘의 아합왕 통치 말년에 살았던 선지자로 엘리야의 제자이며 후계자이다. 엘리사가 엘리야의 제자로 되면서 엘리사는 그를 섬기는 자로 정해졌을뿐 아니라 그 스승의 직무도 계승받게 되며 스승과의 공동생활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리고 엘리야의 승천 직전에는 그를 좇아 스승이 마지막으로 순방하는 선지학교 길갈, 벧엘, 여리고 등지를 철저하게 따라 다니면서 긴밀한 공동생활과 동역이 있었음을 알게된다.110 110원종국, p. 23.
리야가 승천한 뒤에 바로 그는 스승이 설립한 선지자 학교를 이어받아 계속 그 공동체를 운영하면서 이스라엘의 번영의 기초를 놓는데 큰 역할을 했다.(왕하 2:3-4)그는 백성들과 개인적으로 접촉을 하고 선지자의 생도들과 함께 생활을 하면서 이적과 봉사로 기쁨을 누렸다.111 111엘렌 G.화잇, 「선지자와 왕」 p. 227.
열왕 하 4:38에 보면 선지자의 생도들이 엘리사 앞에서 공부하는 모습이 나오는데 그들은 엘리사에게 하나님의 교훈들을 배웠고 육적인 양식보다는 영적인 양식의 중요성을 배웠다.
(2) 신약에서의 팀사역
① 예수의 팀사역 모델
“이에 열 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 귀신을 내어쫓는 권세도 있게 하려 하심이러라”(막 3:14-15) 예수는 그의 선교적인 필요성에 의해서 열 두제자를 택하여 세우셨으며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주권적인 소명에 대한 응답으로 모인 공동체였다. 예수는 제자가 되고자 하는 자들을 개별적으로 만나셨으며 그들이 가성과 결단의 과정을 거치도록 유도하셨다. 예수는 그의 공생애 기간의 대부분을 이 열 두제자들과 함께 생활하시고 이들을 훈련시키셨다. 구원 받고 하나님을 섬기며 훈련받는 이 모든 것의 긍극적인 목적은 모든 족속에게 복음을 전하며 그들을 제자로 삼도록 하는 것이었다. 예수 공동체는 예수와 같이 고난을 겪을 각오를 가진 자들이었다. 제자들은 예수와의 교제를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했으며, 바로 그 사랑이 자기들을 적대시하고 핍박하는 이들까지도 섬길 수 있는 근거가 된 것이었다. 또한 이들은 다양한 배경과 성격과 은사를 지닌 사람들이었다. 어부들 세리 그리고 로마 정부에 항거하는 열심당원도 있었으며, 성격도 각각이어서 지나치게 급한 자가 있는 반면 지극히 신중한 자가 있고 외향적인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내향적인 사람도 있었다.112 112원종국, p. 65.
예수 서는 이 다양한 사람들, 부족한 점이 많은 사람들을 은혜로 택하시어 한 형제의 공동체로 만드셨으며 헌신적인 사람들로 양육하셨다. 열 두제자는 영적 이해력의 부족으로 영적인 진리를 잘 깨닫지 못했지만 주님께서는 여러가지 비유를 들어 가르치심으로 이 부족한 부분을 해결하셨다. 또한 서로 첫째가 되고자 하는 교만과 시기로 가득찬 제자들의 인격의 미성숙함에 대해서 스스로 종이 되시어 그들의 발을 씻기시며 섬기셨고 계속적인 사랑과 용서로 허물을 고쳐 나가셨다. 또한 이들은 먹을 것과 입을 것에 대해 걱정하고 바람과 파도를 두려워하는 믿음이 적은 자들이었지만 예수는 능력과 기적을 일으키심으로 믿음을 갖도록 하셨던 것이다. 이들은 무기력하고 연약했으며 여전히 예수 그리스도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었지만 예수는 성령을 보내주시고 충만케 하심으로 초대교회에서 능력있게 사역하는 전도자들로 만드셨다.113 113조규용, “제자훈련과 교회성장과의 관계 고찰” (석사학위 논문, 침례신학대학원, 1987), p. 48.
② 바울의 팀사역 모델
바나바는 다메섹에서 예수를 만난 후 고향 다소에서 14년동안 은거하고 있던 바울을 불러내어 예루살렘 공동체와 연결해주고 안디옥교회에서 같이 동역하였다. 바울을 중심으로 한 이방선교는 선교 공동체의 모형을 보이면서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바울의 선교 비젼은 문화적, 지리적, 인종적 경계선을 넘어서는 것이었고 그는 이러한 세계 선교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홀로 활동하지 않고 함께 선교하는 동역자들과 작은 선교 공동체를 형성하였다. 이 공동체는 세계를 위해 세계 속으로 들어가는 적극적인 집단이었으며 그들이 함께 모여 생활한 것은 세계에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기 위한 방법이 되었다.114 114Ibid.
사도 전에서의 선교도 철저하게 동역원리(Team Work Principle)에 근거하고 있다. 사도행전을 보면 “우리”라는 표현을 많이 발견할 수 있으며 영웅주의적인 선교나 개인위주의 선교활동이 아니라 팀사역임을 알게 된다.115 115전호진, 「선교학」 (서울: 개혁주의 신행협회, 1985), p. 72.
바울 바나바는 안디옥교회에서 사역하고 있는 동안에 하나님에 의하여 특별한 사명에 부름을 받았다. 안디옥 교회는 기도하면서 바울과 바나바를 같이 파송했으며 제 1차 선교 여행시는 바울과 바나바는 한 팀으로 선교사역을 했다. 그 후 마가의 문제로 인해 바울과 바나바 간에 불화도 있었지만 그러한 다툼 때문에 팀활동을 포기하는 일은 없었다. 후에 바울은 루스드라에서 디모데를 기용했고 누가는 드로아에서 연합하였다. 그밖에 다른 동역자로서 아시아까지 함께 간 “베뢰아 사람 부로의 아들 소바더와 데살로니가 사람 아리스다고와 세군도와 더베사람 가이오아 및 디모데와 아시아 사람 두기고와 드로비모”(행 20:4) 가 있었다. 이처럼 바울은 선교단의 지휘관으로서 확장되어가는 선교사역에 주도적인 지도력을 행사하면서 사역을 감당했다. 바울의 선교단(Missionary Band)은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았으며 필요할 때에는 경제적으로도 자급자족하였다. 이들은 대부분 바울의 전도로 복음전선에 앞장서기로 결심한 그리스도인들로 구성되었으며 특히 의사 누가와 디모데는 팀의 핵심인물로서 바울의 선교를 뒷받침했는데 그들의 봉사로 말미암아 바울의 선교는 깊게 뿌리를 내릴 수 있었으며 풍성한 열매를 맺을 수 있었다. 이들은 각자의 은사와 직임에 따라서 공동체 안에서 서로를 섬기며 폭넓은 선교활동을 했던 것이다.
3) 팀사역
전 장에서는 팀사역의 정의를 내리고 구약성서에 나타난 팀사역의 모델들과 신약에 나타난 팀사역을 살펴보았다. 본 장에서는 그러면 왜 이러한 팀사역이 필요한 것인지, 그 유익점과 문제점은 무엇인지 살펴보기로 하겠다.
(1) 팀사역의 필요성
앞서 본 바와 같이 아프리카의 상황은 다양성 그자체이다. 따라서 선교는 한가지 일만 감당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상황에 적응하기 위하여 다양하게 대처해야 되는 것이다. 즉 총체적인 선교를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선교는 동시에 두가지를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 즉 영혼을 구원하는 일뿐만 아니라 모든 정신적, 육체적, 물질적인 결핍과 부족을 채우는 것에도 먼저 믿은 그리스도인의 책임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것을 어떤 한 사람의 힘으로는 수행하기가 도저히 불가능한 것임을 알게 된다. 전문 사역자나 목사, 전도자, 의사, 상담자 개개인의 사역만으로는 인간의 다양한 필요와 요구를 다 채울 수가 없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점이 팀사역을 요청하게 되는 이유이다. 선교역사를 살펴보아도 말씀 선포와 봉사가 함께 했음을 볼 수 있다. 서구선교는 부흥운동의 소산이라고 할 수 있는데 부흥운동가들은 전도뿐만 아니라 사회봉사에도 적극적이었다. 영국에서는 노예제도 등 사회악을 폐지하는데 앞장섰으며, 마이어 목사(F. B. Meyer)와 스펄젼목사 등은 선교회, 고아원과 구호소 설치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116 116전호진, p. 281.
국교회에서도 교회 지도자들과 평신도들이 사회를 변화시키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이처럼 선교는 가는 곳마다 봉사와 개발에 크게 기여하였다. 초기 서구선교는 직접 전도만 하는 목사들만을 선교사로 파송했던 것이 아니라 의사, 간호사, 농업기술자, 학자 등 여러분야의 평신도 선교사들도 함께 파송하였다.117 117Ibid.
19 6년 영국의 런던선교회 (London Missionary Seciety)에서는 30명의 선교사들을 파송했는데 그 중에서 네명만이 목사였고 그 나머지는 목수, 대장장이, 직조공 등 기술자였던 것이다.118 118Ibid.
초기 모라비안 교도들이 선교를 시작할 때도 그들은 자신의 은사와 직임에 따라 말씀을 전하는 자와 자기의 직업을 가지고 자비량으로 선교비를 대는 선교사들이 함께 동역하였다. 언제든지 선교에 의해 교회가 설립되면 보건, 교육, 농업, 정의, 자유분야에 있어서의 개선이 뒤따랐음을 볼 수 있다. 또한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주신 은사와 부르심이 다르기 때문에 팀사역이 필요하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3:5-8에서 고린도 교회에게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자라나게 하시는 하나님뿐이니라. 심는 이와 물 주는 이가 일반이나 각각 자기의 일하는 대로 자기의 상을 받으리라”라고 말했다. 바울은 여기에서 자신을 선교에 있어서 ‘심는 이’라고 하며 아볼로를 ‘물 주는 이’라고 하여 각자의 일하는 분야가 다름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마치 교회를 하나의 몸으로 비유하는 것과 마찬가지인 것이다.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몸은 한 지체뿐 아니요 여럿이니...발...손...귀...눈...듣는 곳...냄새 맡는 곳...하나님이 그 원하시는 대로 지체를 각각 몸에 두셨으니...몸 가운데서 분쟁이 없고 오직 여러 지체가 서로 같이하여 돌아보게 하셨으니...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고전 12:12-27)
이 말씀에서 증언하듯이 주님은 선교하기 위해 한 사람을 부르시지 않고 팀으로 부르셨으며 각각 몸 안에서 자기의 기능을 다하도록 한가지 혹은 그 이상의 은사를 받았다.119 119피터 와그너, 「기독교 선교전략」 잔호진 역 (서울: 생명의 말씀사, 1978), pp. 66-67.
그러 로 마땅히 자기의 은사를 활용하여 자기의 기능을 적절히 발휘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기능은 다른 지체와 협력해야 하는 것이다. 은사는 청지기의 역할을 잘 감당하고 덕을 세우기 위해서 주신 것이다. 그러므로 신령한 은사는 전체인 몸을 떠나서는 적절히 사용되지 못한다.120 120Ibid., p. 69.
그러 로 서로가 협력할 때에만 전체의 몸으로써 효과적인 사역을 감당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은사와 그 활용은 모든 선교 사역에 있어서도 중요하다. 선교사역을 할 때에도 말씀과 기도를 통한 순수한 복음 사역자인 목사도 필요하고, 가난과 질병문제를 위하여 각종 기술자와 의사, 간호사, 사회봉사를 위한 사회 사업가등 각종 전문가들이 다 함께 모여서 팀사역을 하게 될 때에 선교현장에 대한 총체적인 선교(Total Ministry)가 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한 팀이 집중적으로 사역하는 효과는 한 전문가가 사역하는 경우와는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크고 영혼들의 다양한 요구도 잘 충족시켜 줌으로써 다각적으로 복음을 전하는 통로를 마련케되는 것이다. 또한 한가지 목표와 비젼을 가지고 팀 구성원들이 한마음으로 함께 참여할 때 혼자 하는 것보다 훨씬 큰 영적인 힘을 가질 수 있게 된다. 그러므로 팀사역이야말로 ‘전인을 위한 전복음(The Whole Gospel For the Whole Man)’에 합당한 선교전략이 된다.
(2) 팀사역의 유익점
① 아프리카와 같은 선교현장의 다양성에 다양하게 대처함으로 총체적인 선교(Total Ministry)가 가능하게 된다.
②팀사역이 훨씬 능률적이며 대단히 효과적이고 몇배의 성과와 열매를 거둘 수 있다. 전도서 4:9에 보면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저희가 수고함으로 좋은 상을 얻을 것임이라“로 되어있다. 팀의 힘을 모아서 인적, 재정적인 단결로 일정한 목표를 달성해 나가면 기하급수적인 효과를 내고 그 성취감을 통하여 기쁨을 맛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③ 서로에 대한 책임이 있으며 공동체 생활을 통해서 상호 영성훈련을 해가면서 도전을 주고 자기 성숙을 추구할 수 있다. 또한 각자의 장. 단점을 서로 보완해 나가고 상호 견제함으로서 보다 건전한 치유사역을 할 수 있다. (전 4:12; 렘 26:8) 팀으로 사역을 할 때에는 강한 힘이 나와서 영적인 전쟁에서 능히 승리할 수 있게 된다.
④ 많은 업무량을 팀의 다양한 구성원들이 분담하여 잘 처리해 나갈 수 있으며 어떤 일에도 잘 적응해 나갈 수 있게 되어 동시에 많은 일들을 성취할 수 있게 된다.
⑤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때 혼자 사역할 때보다 더 좋은 해결책과 방안이 모색될 수 있다.(잠 15:22)
⑥ 서로 보호를 받을 수 있다. 사역을 하다보면 어려움이나 침체 가운데 빠질 수 있다. 그럴 때 같이 일하는 사역자들과의 교제를 통해서 서로가 위로하고 격려함으로써 힘을 얻을 수 있다. (전 4:10)
⑦ 여러사람이 함께 모여서 같이 사역하는 것을 통해서 자신을 넓힐 수 있으며 큰 안목을 키울 수 있다.
⑧ 팀사역을 하면서 함께 계획을 세우고 협력하며 지도하는 일 등을 통해서 좋은 리더쉽을 계발하고 지도자로 육성될 수 있다.
⑨ 팀 구성원 중 어느 누군가 떠나게 되거나 다른 곳으로 옮겨가는 경우에라도 계속 사역을 할 수 있으며 잘 조정하여 지속적인 결실을 볼 수 있다.
⑩ 각 사람의 은사를 따라 한 몸을 이루어 나가며 제한된 개인의 은사나 지식, 능력으로 인한 편파적인 실수를 범하지 않고 폭넓고 건전한 치유선교상을 심어줄 수 있다.
(11) 팀의 특성을 잘 살리게 되면 홍보의 효과가 크고 신뢰감을 얻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많으며 많은 기도와 후원을 받을 수 있다.
(12) 혼자서 많은 일들을 해나갈 때에는 상식적인 수준을 넘기 힘들지만 팀을 통해 각자 맡은 분야에 더 많은 연구와 시간을 투자할 수 있기 때문에 전문가가 되어 영혼들을 더 깊이 도와줄 수 있게 된다.
(3) 팀사역의 문제점
팀사역은 성서적이며 실제적으로 보다 효과적인 훌륭한 선교사역의 방법이다. 그러나 현대에 와서는 이런 고전적인 팀사역에는 한계가 있으며 문제점이 있다는 것을 실제 선교현장의 사례를 통하여 찾아 볼수 있다. 강인중 선교사는 케냐 현지에 와있는 한국인 선교사들과의 관계가 외국인 선교사들과의 관계보다 낫지 않으며 함께 하는 팀사역을 시도하기란 하늘의 별따기와 같다는 말을 하였다. 차라리 어떤 경우는 혼자 일을 처리하는 것이 협력하기를 시도하는 것보다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같은 선교의 목적을 가지고 현지에 와있는 선교사끼리 팀을 이루어 일을 분담하고 효과적으로 협력하여가면 훌륭한 선교사역을 이룰 수 있음에도 이렇게 협력관계가 이루어지지 않는 것은 여러가지 원인이 있을 것이다. 그것은 ①서로다른 선교기관에서 보냄을 받은 것 ②실적 위주의 선교활동 ③선교사간의 불화 ④서로 다른 선교계획 ⑤공명심 ⑥ 견해차이등을 들수 있는데 현지 선교사들에게는 심각한 문제중의 하나가 되는 것이다.121 121한경철, pp. 209-211.
이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한 선교회가 모든 선교사를 보내거나 모든 선교사를 한 선교회가 관장하여야 하는 데 이는 시도되고 있기는 하나 사실상 한계에 부딪히고 있다. 그것은 한 선교회가 모든 방면의 전문가인 선교사를 모두 선교현장에 보낼 수 있는 여건이 성립되기란 결코 쉽지 않기 때문이며 또한 서로 다른 선교회에서 보낸 선교사들을 정책적으로 일원화 한다는 것도 사실상 어려운 것이다. 왜냐하면 선교비를 보내는 선교회와 선교사를 관장하는 조직과의 갈등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더우기 한국교회와 한국의 선교회들과 같이 선교역사가 짧고 선교비 보조에 있어 미약하고 열악한 환경에서는 무척이나 어려운 문제이다. 그러나 언젠가는 이루어야 할 한국교회의 과제임에는 틀림이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이제 겨우 활발해지기 시작한 선교에의 열정들을 식혀버릴수는 없는 것이며 이러한 과도기적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방안의 하나로 본 논문에서는 다음장에서 선교전략 연구팀을 다루고자한다.
2.선교현장과 선교전략연구팀과의 연계활동
1) 선교전략연구팀의 필요성
이제까지의 모든 선교에서 공통적으로 발생하는 중요한 문제중의 하나는 현지에 파송된 선교사만으로는 처리 할 수 없는 일이 많다는 것이다. 즉 전문인이 필요한 일이라든지 또는 특수분야 종사자들이 있어야 하는 경우등이다. 이런 문제들 때문에 전문인 선교사,평신도 자비량선교사,단기 선교사등의 해결방안이 있었지만 이런 방안들도 많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어 바람직한 해결 방안은 되지 못하였다. 전문인 선교사(의료 선교사,특수분야 전문인)인 경우, 자원자가 흔하지 않으며, 또한 막대한 선교비가 요구되기때문에 파송하기가 심히 어려웠고, 자비량 선교사도 현지에서 자신이 가진 직업때문에 사실상 선교에 도움을 주기란 쉽지가 않으며, 단기 선교사들은 현지 적응이 어렵고 시간적인 제약을 받아 활동이 원할하지 못하였다. 이러다 보니 선교사 한사람이 감당해야 할 분야가 너무 많아져 선교사가 되려면 팔방미인이 되어야만 하게 된 것이다.
할일은 많고 일할 사람은 없고 의욕과 열심은 있는데 방법이나 선교비문제로 미루어지는 일이 많았던 것도 사실이다. 앞서 말한대로 이런 문제들의 해결을 위해 여러나라의 선교사들이, 또는 한 나라에서, 한 선교단체에서 보낸 여러 선교사들이 팀으로 일하려고 노력도 해 보았으나 여러가지 문제들에 부딪혀 실효를 거두지 못하였다. 더우기 앞서 약술한 바와같이 아프리카의 상황은 다양성과 현지의 배타성, 그리고 산재해 있는 정치,경제,사회,문화,종교등 복잡한 현실의 문제들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 빠진 선교사가 감당 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허탈에 빠져 기도할 뿐인 것이다. 따라서 이런 문제상황에 가장 적절한 선교는 총체적인 선교일 것이다. 이런 총체적인 선교 전략 중에 선교사에게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여 주며, 지원하고 도울수 있는 조직적이고 체계적이며 학문적인 선교전략연구팀이 필요하다 할 것이다.
2) 선교전략 연구팀의 구성과 조직
선교 전략 연구팀은 세계선교를 위한 자국의 보조지원 조직이다. 이들은 선교사를 파송한 자국의 선교회에서 위촉한 각계의 전문인들로 구성된다. 이들은 기독교인으로서 세계선교의 꿈을 가지고 조직적으로 선교사를 지원한다. 이들의 지원 체제는 먼저 현지 선교사들이 현지의 시급한 문제(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한)들을 의뢰하여 오면 이 문제들을 위한 담당 전문가 위원들의 회의를 통하여 그 문제 해결을 위한 기초 조사를 선교사에게 담당케하고 그 이후에 그 기초조사를 바탕으로 전문적인 해결 프로젝트를 만들어 현지 선교사에게 보내는 방법이다. 그 프로젝트에는 모든 지원체제, 가장 경제적이며 효과적인 방법등을 제시하고, 인적 물적 지원을 가장 효과적으로 할수 있는 방법등도 제시된다.
선교회는 선교사를 파송하고 기도와 선교비로 최선을 다해 후원하는 기관이다.
이는 개 교회에서 조직될 수 도 있고 선교를 원하는 뜻있는 기독교인들이 모여 조직할 수도 있으며 교단적으로 조직 될 수 도 있다. 이 선교회들은 합력하여 필요한 능력만큼의 선교사들을 파송할 수도 있고 선교 전략 연구팀의 자문역으로 위원들을 약간명 둘수 있다.
(2) 선교전략 연구팀 간사
현지인 선교사를 돕기 위해 자원 선발된 내국인 선교사이다. 이는 해외선교의 경험이 있는 자로 선교사의 필요를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선교 사명자이어야 하며 선교회에서 선발 임명한다. 선교 전략연구팀의 유일한 유급 직원이다. 간사의 할일은 현지 선교사와의 긴밀한 연락속에 현지 선교사의 필요에 따라 필요한 프로젝트를 우선 순위에 따라 각 연구팀에 개발을 의뢰하고 이에 따른 종합기획을 주도하여 현지선교사의 손발이 된다.
(3) 종합 기획팀
이는 선교사가 요청한 프로젝트를 각 연구팀에 분산 의뢰한 것을 종합하여 합리적이고 체계적인 전략을 수립하여 현지 선교사에게 제공하며 이의 책임은 선교전략 연구팀 간사가 맡는다. 연구원은 자원 또는 위촉한 기독교인 기획실무자로 한다.
(4) 재무연구팀
이 연구팀은 해당 프로젝트에 필요한 가장 경제적인 소요재정의 수립과 재정지원방안을 마련한다. 아울러 선교비책정 및 선교전략연구팀의 재정적 지원책도 수립한다. 연구원은 자원 또는 위촉한 은행및 금융기관에 근무하는 기독교인 실무자들로 구성한다.
(5) 신학 연구팀
현지에서 문제가 되기 쉬운 신학적 문제들을 토의 검토하고 바람직한 신학적지원을 하는 연구팀이다. 이들은 현지 선교사가 감당하기 어려운 신학적 문제들을 해결하여 줄뿐만 아니라 현지 목회자들의 신학교육을 위한 방안도 수립한다. 특히 아세아 연합 신학대학에서 시도하고 있는 것처럼 현지인 목회자나 평신도 지도자들을 선발 초청하여 신학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함으로서 한국교회의 부흥과 성장을 배우고, 신학 부재의 아프리카에 신학적 기초 확립을 시도하게 한다. 연구원은 해당 선교회소속 신학대학 교수나 자원 또는 위촉한 신학대학 교수로 구성한다.
(6) 사회사업연구팀
이 연구팀은 선교지의 사회사업 즉 선교사가 필요하다고 인정 요청한 의료봉사및 육영사업,고아원,양로원,등의 구체적 실현을 위해 연차적이고 지속적 계획을 수립지원하는 연구팀으로 자원 또는 위촉한 기독교인 의료인과 사회사업의 실무자들로 구성한다.
(7) 농촌개발 연구팀
아프리카의 가장 큰 문제인 농촌문제를 계획적 과학적으로 해결하고 지원하는 연구팀이다. 지원 가능한 부분부터 농촌 경제및 농촌의 자생력개발을 위해 선교사의 요청에 따라 필요한 부분의 전문가가 적절하게 연구하고 계획하여 지원한다. 이의 구성은 농업부문 전문가나 농촌운동 경험자 중에서 자원하거나 위촉한 기독교인들로 한다.
(8) 경제개발 연구팀
아프리카의 암담한 경제 현실을 좀더 나은 방향으로 개선할수 있도록 지원하는 연구팀이다. 이 팀에서는 도시빈민들의 경제력 향상문제, 정치적 노력을 배제한 순수한 자생 경제능력향상을 위한 연구팀이다. 연구원은 경제분야 전문가중에서 자원하거나 위촉한 헌신적인 기독교인들로 구성한다.
(9) 선교전략 연구팀
자칫 잘못하면 국력배양이나 정치 문제화, 또는 사회봉사로만 흘러가기 쉬운 선교 전략연구팀의 모든 연구들을 선교를 위한 방향으로 우선순위를 결정하여 전체적으로 조절하며 구체적 선교전략을 효과적으로 수립하여 선교사를 지원하는 연구팀이다. 선교사의 경험이 있거나 안식년, 공부, 질병등으로 귀국한 선교사들을 중심으로 선교문제 전문가들로 구성하되 자원하거나 위촉한 기독교인들로 한다.
(10) 컴퓨터통신의 활용
사실 위와같은 활동들은 신속성이 뒤떨어지면 그 효과를 기대하기가 어렵다. 왜냐하면 현지의 상황이 급변할 수 있고 오늘 필요한 것이 일정기간이 지나면 의미없는 프로그램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며 선교사가 한가지일을 의뢰하여 놓고 그 답이 올때까지 선교활동을 쉬고 기다릴수는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가장 빠르고 손쉬운 것이 전화를 연결만 할 수 있으면 되는 컴퓨터 통신이야 말로 가장 적당한 연결 방법이 될 것이다. 이 방법으로는 선교사가 부재시나 담당 간사의 부재에 관계없이 정확하고 신속하게 필요한 모든 것이 전달될 수 있다.우편이나 팩시밀리로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만 컴퓨터 통신은 불과 수초동안에 두툼한 한권의 계획서 하나를 보낼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팩시의 기능도 대신하며 그림등의 전송도 가능하기 때문에 이 이상의 효과적인 통신 방법은 없다. 뿐만 아니라 국내의 전산업계 발달로 호환성이 훌륭하고 선진국에 버금가는 개인용 컴퓨터들이 개발되었으며 더우기 우리 기독교인들이 경영하는 컴퓨터업체가 있어 많은 지원을 받을수 있다. 뿐만아니라 교회정보센터 등 국내의 기독교정보 기관들을 통하여 국내의 기독교계 정보및 최근의 모든 자료들을 제공받을수 있어 선교사의 활동은 범세계적 지원을 받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11) 현지선교사
아무리 후원 기관이 훌륭해도 현지 선교사가 잘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기 때문에 선교사가 가지는 비중은 무엇보다도 큰것이다. 따라서 선발된 선교사는 필요한 훈련의 과정을 거친 사람으로 사명감이 투철하며 일생을 선교사로 헌신할 사람이어야 한다. 또한 이 선교사는 안식년이나 장기 귀국시 선교전략연구팀의 간사로 일하며 일시로 필요에 따라 교환 선교사로 간사와 교체될수 있다. 현지 선교사는 현지인 목회자와 긴밀한 관계를 가지며 충분한 필요를 함께 느끼고 현지에 파송된 타 선교회 소속 자국 선교사와도 긴밀한 관계를 가지며 필요하다면 외국 선교사들과도 연결이 되어야 한다. 오늘 현대의 선교는 한사람의 선교사로 이루어지는 선교가 아니라 총체적인 선교이기 때문에 필요에 따라서는 선교전략연구팀을 통하여 타 선교사의 프로젝트로 마련하여 줄 수 있어야 한다. 또한 현지 선교사는 선교전략연구팀에서 계획 파송한 자원 선교사팀이나 자비량선교사, 단기선교사들과도 유기적인 관계로 선교사업을 이루어 가야한다. 이러한 선교활동이 체계적으로 이루어져 갈때 바람직한 선교가 이루어지며 현지인들에게도 값진 열매를 얻게 될 것이다.
3) 선교현장과 선교전략연구팀과의 연계활동
선교전략연구팀은 선교현장의 필요에 따라 구성이 되고 동원이 되는 조직이다. 따라서 선교전략연구팀과 선교현장과의 연계활동이란 모든 활동을 다 포함한다. 선교현장에서 선교전략연구팀에 요청하는 어떤 일과든지 그 일이 바로 선교전략연구팀의 최대과제가 되는 것이다. 선교현장이 없으면 언제든지 해체될수 있는 것이 바로 선교전략연구팀인 것이다. 즉 선교전략연구팀과 선교현장과의 관계는 바늘과 실이다. 그러므로 선교전략연구팀과 선교현장과의 연계활동은 보다 유기적이고 체계적이어야 한다. 선교현장에서 요청하는 어떤 과제라도 선교사의 필요가 있다면 최선을 다한다는 자세가 선교전략연구팀에 필요하다. 선교현장에서 가장 필요한 과제를 제일 잘아는 것은 현지 선교사이다. 현지 선교사가 필요한 연구와 프로젝트를 요청할 때 가장 빠르고 완벽한 계획으로 이를 수행하여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선교전략연구팀과 선교현장의 연계활동으로 선교현장의 모든 선교활동은 활발하여 지며 효과적으로 수행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연계활동이 보다 유기적,헌신적이지 못하다면 기대한 만큼의 효과는 없을 것이다. 이 연계활동을 원할히 하기위한 방법이 바로 컴퓨터 통신인데 이러한 빠르고 편리한 계속적인 연락을 통하여 선교전략연구팀과 선교현장과의 긴밀한 연계활동은 지속적이며 효과적으로 진행될 것이다. 또한 이런 연계활동은 현지선교사와 선교전략연구팀의 간사 사이의 유기적 관계도 매우 중요하다.
3. 제자 훈련을 통한 현지 지도자양성
1) 제자훈련이 동부 아프리카 선교에 필요한 이유
데이빗 왓슨은 그의 책 「Discipleship」 에서 이렇게 말한다.
서구의 기독교는 사양화의 길을 걷고 있다. 그 이유는 그리스도의 제자가 된다는 것을 전적으로 무시해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제자도의 참 의미를 배우기 원하고 또 실제적으로 제자가 되고자 한다면 서구의 기독교는 변할 것이다. 제자도는 한마디로 세상을 위한 그리스도의 계획이다.122 122데이빗 왓슨, 「제자도」 문동학 역 (서울: 두란노 서원, 1987),
pp. 13-14.
이것은 현대교회들이 대위임령의 제자삼기를 얼마나 등한히 하여 왔는가를 단적으로 표현해 주는 말이다. 비단 이것은 서구의 기독교 뿐만 아니라 오늘의 한국교회도 예외는 아니다. 사실 한국교회가 「제자화」에 관심을 갖게 된것이 불과 10여년 밖에는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도 일부 선교 단체들에서 먼저 운용되다가 교회로 흘러들어오게 된 서글픈 현실인 것이다. 다행인 것은 일부의 교회라도 이제 제자화 또는 제자훈련에 관심을 갖는 교회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교회가 필요는 느끼지만 구체화 시키지 못하고 있는 것이 한국교회의 현실인 것이다.
제자화 또는 제자훈련은 평신도훈련이다. 이제까지 교회는 이 평신도들의 역할이나 지위에 대해 축소시키거나 아예 무시해 버리는 것이 보통이었다. 한국교회가 서구교회들의 전처를 밟지 않으려면 목사들이 권위의식에서 내려와 평신도를 깨워서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그들이 주체가 되어 봉사의 일에와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일에 완전해지도록 훈련시키고 무장시켜야 한다. 이일은 제자삼는 훈련으로 가능한데 이일이 현실화되면 제2의 종교개혁을 이룰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아프리카에 복음을 전하기 원한다면 선교의 가장 앞선 방법으로 제자훈련을 선택하여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선교사역의 성공실패는 오직 지교회 평신도 지도자들의 질적성장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123 123Andrew D. MacRae, Your Church Must Choose (London: Picker
-ing and Inglis, 1982), p.40.
이 자훈련은 세계선교를 위하여 예수그리스도께서 친히 사용하신 방법이며 초대교회의 사도들도 이를 준행하여 왔다. 제자훈련이란 복음을 받아들이고 거듭난 소수의 무리를 집중적으로 훈련시켜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 성장 시킬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을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여 또다시 재생산 할수 있는 제자로 성장시킬 수 있도록 하는 과정을 말한다.124 124참조, 변재창, 「작은목자 훈련」 (서울: 두란노 서원, 1988), pp.
79-80.
특히 아프리카와 같이 독특한 민족적 특성을 가진 현장을 선교하려면 새로운 삶의 태도와 자세를 이식시키는 것이 요구 되기 때문에 제자훈련과 같은 방법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하다 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의 근본적인 국민성을 변화시키지 못하면 우리가 하는 선교의 노력은 서구 선교사들이 하여 왔던 명목상의 그리스도인들만 확장시키고 오늘날의 아프리카교회와 같은 마음 아픈 현실이 언제나 계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더우기 민족주의 같은 선교의 장애를 뛰어 넘을 수 있는 자립성장, 자전도,등의 원동력이 될 현지인 지도자를 양성하는 데는 가장 훌륭한 방법이 될 것이다.
2) 제자훈련 커리큘럼과 선교전략 연구팀
제자훈련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역시 현지 상황에 맞는 가장 적절한 커리큘럼과 제자 훈련을 모범적으로, 인격적으로 시킬수있는 선교사의 역할이 다. 선교사는 본국의 선교전략 연구팀에게 선교현장의 자세한 상황을 분석 전달하여 그 상황에 맞는 커리큘럼을 제공 받는다. 그후에 이 커리큘럼을 연구 검토하여 수정하고 실시 하면서 가장 상황에 적절한 커리큘럼으로 만들어 계속 진행함으로 훌륭한 평신도지도자를 계속 양성한다. 그리고 이들을 통하여 선교 프로그램들을 서서히 실시 함으로서 아프리카 선교의 중심기지를 만들고, 계속하여 아프리카 선교를 진행 시켜야 할 것이다. 처음 제자들을 양성할때는 예수님처럼 뼈를 깎는 아픔과 고통이 뒤따르겠지만 성령의 도우심과 하나님의 역사로 평신도 제자들이 양성되었을때 한층 아프리카 선교는 그 장래가 밝아질 것이다. 따라서 제자 훈련은 아프리카에 선교의 강한 뿌리를 내리는 열쇠가 되기 때문에 선교사는 제자 훈련에 관하여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며, 이에 따른 훈련을 받는 것도 게을리 하여서는 안될 것이다. 안식년이나 일시 귀국 보고시 이에 따른 전문서적과 성공적인 제자 훈련의 case 들을 살피고 배워야 할 것이다. 아울러 선교 전략 연구팀 역시 선교사에게 이런 일련의 자료제공을 수시로 하여 선교사를 도울 수있어야 할 것이다. 또한 이러한 제자훈련은 현지 목회자, 평신도 지도자, 또는 장래성 있는 평신도, 청년등 계층별로 실시함으로 그 계층의 지도자로 삼아 선교사역을 이루어 가야 할 것이다.
3) 단기 평신도 선교사 파송과 제자 훈련
제자 훈련 커리큘럼에 전문적인 부분을 훈련받고 일시적으로 대중을 가르칠 필요가 발생할 때 단기 선교사를 파송하여 이를 돕도록한다. 이들은 각 분야 전문가 중에서 자원하는 이로 여비및 숙식제공 정도로 헌신할 수 있는 독실한 기독교인 중에서 선발 되어야 한다. 이들은 현지에서 가르치며, 상황과 문제들을 몸에 익히며 체험하고 본국에 돌아와 선교전략 연구팀의 연구원으로 봉사하며, 선교사를 적극적으로 도울 수 있는 재원이 된다. 이러한 단기 선교사 파송은 점차로 선교 전문가로서 성숙해 가는 전문 요원을 확보하게 되며, 보다 효과적인 선교지원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단기 선교사의 파송으로 선교사는 자기 분야가 아닌 분야에서 값진 지원을 받을 수 있고 제자들을 훌륭하게 양성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4. 의식구조 개혁과 가난극복을 위한 전략
1) 가나안 농군학교 정신의 이식
가나안 농군학교는 일가 김용기장로의 사상, 인생이 담겨있는 생의 현장이다. 우리민족의 가장 고통스럽고 격변하는 시기에 태어나 가난하고 무지하며 생의 의욕을 잃었던 한국 농촌에 새 바람을 일으켰을 뿐만 아니라 농민운동을 통하여 의식의 개혁을 이루고, 경제적 자립, 자활의 의지를 심어주고 새마을 운동의 효시가 된 김용기 장로의 교육현장인 것이다. 원래 가난안 농군학교는 김용기 장로가 경기도 광주에 성공적인 개척사업을 이루어가자 많은 사람들이 그 방법과 기술을 습득하기 위해 자진하여 모여들어 배우게 된것이 시작 이었다.125 125김용기, 「가나안으로 가는 길」 (서울: 규장문화사, 1989), pp.
214-234.
따라 가나안 농군학교의 정신은 김용기 장로의 정신이며 한국의 농촌을 새롭게 부활시킨 부활의 힘인 것이다.
당시 김용기 장로가 본 우리 민족의 병폐 일곱가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① 창조주 신을 믿지 않는다. ② 일하기 싫어하고 나태하다. ③ 경제생활을 할 줄 모른다. ④ 계획성이 없다. ⑤ 의타심이 많다. ⑥ 단결성이 없다. ⑦ 봉사정신이 없다.126 126김용기, 「나의 한길 60년」 (서울: 규장문화사, 1980), pp. 151
-152.
이런 지적은 앞서 말한 동부 아프리카의 민족적 상황과 매우 유사하다. 따라서 김용기 장로가 실천하였던 가나안 농군학교 정신의 이식이야 말로 아프리카인의 의식구조를 개혁하는 값진 방법이 될 것이며 가난극복의 출발점이 될 것이다. 일반적으로 아프리카 사람들은 기독교에 대하여, 특히 선교사에 대하여 식민지적 의식을 가지고 대하기가 쉬운데 이런 농군학교 정신이식은 그들에게 사회개혁의 의지를 불러 일으킬뿐만 아니라 경제난 타개등의 방법을 제시하기 때문에 많은 호감을 가지고 접근할 수 있게 된다. 또한 이를 통하여 기독교 정신에 입각한 농촌 지도자들을 양성함으로서 선교의 새로운 장을 열 수가 있게 되는 것이다.
(1) 복민주의
가나안 농군학교의 정신을 한마디로 말하라면 ‘복민주의’라고 할 수있다. 김용기 장로는 “가나안이란 남들이 하기 싫어하는 일, 버려진 땅을 찾아가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복지로 만드는 것이다.”127 127김용기, 「가나안으로 가는 길」 p. 238.
라고 말하는데 이런 복지를 만드는 정신이 바로 복민주의인 것이다. 복민주의를 단적으로 정의하면 하나님의 통치에 의한 이상적인 삶을 추구하는 것이다.128 128김용기, ‘가나안 편지’, 1985년 9월호.
것은 인간이 타락한 존재로 개인에 있어서나 사회에 있어서 윤리적인 실체가 될수 없으며, 윤리와 가치의 절대적 주체가 되는 하나님의 통치를 떠나서는 자아실현이 불가능한 존재로 이와같은 인간이 하나님의 통치 안에서 개인적 사회적으로 이상적인 자아실현을 하는 것이 곧 복민주의의 내용이다. 이 복민주의는 결코 죄악성이나 모순이 없는 절대 선의 사회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와같은 제 요소들이 내재해 있지만 존재의 의미를 부여하는 절대 초월자의 계시를 이루며 사는 책임있는 인간들로 구성된 사회가 곧 복민 사회이며 이 운동이 곧 복민주의 운동이다. 여기서 책임있는 인간이란 ① 본분의식을 가진자 ( 하나님 앞에서 가지는 윤리적 자각) ② 사명의식을 가진자 (인간이 무엇을, 누구를 위해 사는가 하는 가치인식 ③ 목적의식을 가진자 (왜 사는가하는 가치 추구의 기초) 등의 세가지 의식을 가진 인간이 책임성있는 인간으로 복민사회의 기본 단위가 된다.129 129김용기, 「가나안으로 가는 길」 pp. 331-340.
(2) 배경과 방향
복민 운동에는 두가지 측면 즉, 온 국민이 주체성을 확립하고 뚜렷한 이념을 정립시키려는 정신 운동과, 빈궁과 기아로부터의 해방을 추구하는 경제 운동이 포함된다. 복민 운동은 단순히 추상적이고 막연한 운동이 아니라, 개인의 영육생활로부터 나아가 가정,국가안에서 건실하고 행복한 생을 영위하여 복받는 백성이 되고자 하는 운동이다. 그러므로 복민운동은 결코 이권운동도, 정권운동도 아니다. 그것은 오직 하나님께는 영광이요, 사람에게는 은혜가 되게 하는 것,또한 이웃을 거짓없이 사랑하며 모든 인간들이 복되게 살고자하는 운동이다.130 130가나안 복민 연구소 편, 「가나안 복민운동 1」 (경기: 가나안 농군학교, 1990), p. 65.
(3) 교육정신
복민운동의 교육정신은 독특하다. 김용기 장로의 교육 정신은 이론가 보다는 실천가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었다.131 131김용기, 「가나안으로 가는 길」 pp. 207-209.
신학 나 농사기술을 가르치는 학교는 많이 있으나 그 배운 것을 실천할 수있는 실천가를 만드는 학교, 즉 체험으로 배우고 몸으로 익혀 나갈 수 있는 학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가나안 농군학교에서는 무엇보다도 정신이 중요하게 취급되고 언행일치의 행동이 중요시 하게 된다.132 132가나안 복민연구소, pp. 83-95.
아무 훌륭한 기술이나 지식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근본 정신자세가 바르지 못하면 오히려 악용될 수 있기때문에 새로운 기술이나 지식, 고도의 과학이나 부를 가지기 이전에 올바른 인간됨이 필요하다고 전제하면서 바른 인간, 즉 인격형성에 농군학교는 교육목표를 두고 있다. 또한 그인격에 걸맞는 행동이 강조 되면서 강력한 언행일치의 실천가를 양성하는 것을 그 목적으로 하는 것이다. 이러한 교육정신과 실천 방향은 오늘날 아프리카에 새바람을 불러 일으킬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정말 바람직한 지도자들을 양성할 수 있는 귀한 방법이 될 것이다.
(4) 가나안 농군학교 정신의 아프리카 이식과 선교전략연구 팀
이러한 훌륭한 정신과 교육이념은 가난에 찌들고 무력해진 대륙의 90%나 되는 아프리카농촌을 새롭게 변화시키는 귀한 방법이 될 것이다. 따라서 선교전략 연구팀은 가나안 농군학교와 연계를 갖고 아프리카에 이러한 교육을 실시하기 위한 방안을 마련하여 선교사에게 제공하며 현지에서 제자훈련으로 교육받는 현지 지도자들을 한국으로 불러 가나안 농군학교 정신을 배울수 있는 프로젝트를 개발해 나가야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가나안 농군학교에 협조를 얻어 농군학교 교관들을 단기 선교사로 파송하여 현지에서 직접 훈련받을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여 줌으로서 의식구조 개혁 뿐만 아니라 가난을 극복해 나가는 새로운 전기가 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2) 새마을 운동의 아프리카 부족전개
(1) 새마을 운동
새마을 운동은 한국의 박정희 대통령이 1970년 4월 22일 열린 지방장관회의에서 제창함으로 시작된 관민군 합동의 잘살기 운동이다.133 133문화 공보부, 「새마을 운동」 (서울: 대한 공론사, 1973), p.7.
처음 는 관 주도의 운동이었으나 곧 이어 국민들의 호응을 받을 수 있게 되었고 막대한 물량의 재정지원과 인력,장비 지원으로 한국의 농촌을 새롭게 변화시킨 운동이다. 이 새마을 운동은 글자 그대로 살기좋고 잘사는 마을을 우리힘으로 만들자는 운동이다. 또한 살기좋고 잘사는 마을을 만들기 위해 근면, 자조, 협동의 정신을 기르고 생활환경을 개선하고 소득을 늘리는 운동이다. 따라서 정신계발, 환경개선, 소득증대는 새마을 운동의 내용과 방법이 된다. 새마을 운동은 「잘살기 운동」이며 「새 사람」 「새 마을」 「새 사회」 「새 나라」만들기 운동인 것이다.134 134Ibid.
이 동은 짧은 시간에 전국으로 퍼져 나갔고 10여년 동안 놀라운 경제 발전을 이루며 「하면된다」 「우리도 잘살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도록 하였다. 한국의 기적을 이루는 초석이 된 운동이 바로 이 새마을 운동인 것이다.
(2) 새마을 운동의 아프리카 부족전개
앞서 말한대로 아프리카는 부족 중심의 단합이 잘되며 모든 생활이 전체 부족의 향방에 좌우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따라서 어느 한 부족이 변화될 수 있다면 연쇄적으로 부족단위의 변화를 모색할 수 있게 된다. 한국에서는 마을 단위로 이런 운동이 확산되어 새마을 운동이 되었지만 아프리카에서는 새부족 운동이 될 것이다. 앞에서 언급한 복민운동을 근간으로 해서 한국을 변화시킨 운동이라고 해외에도 널리 알려진 새마을 운동을 아프리카 관의 협조를 받으며 새부족 운동으로 전개 시켜 나간다면 아프리카를 새롭게 변모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다. 또한 이러한 운동의 전개는 단순히 선교사 일인의 노력 보다는 한국 대사관의 협조를 얻어 양국 관계를 개선시키며 정부의 인정을 받고 전개 시키면 효과적일 것이다. 그러나 이 운동이 한국에서도 관주도 운동이었기 때문에 많은 문제를 야기 시켰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3) 복민운동과 새마을 운동
한국 강산을 기독교 정신으로 변화시키고 한국 농촌의 근대화에 앞장서며 한국의 농촌을 경제적으로 도약하게 만든 새마을 운동의 근본이 된 가나안 운동, 즉 복민운동은 우리 민족의 커다란 힘이었고 근간이 되었다. 그러나 복민운동은 그 정신이 가장 핵심임에도 불구하고 새마을 운동에서는 정신 보다는 밖으로 보이는 외형적인 면에 치중함으로서 정신은 퇴색하고 가난 퇴치와 경제적 안정만이 주 목적이 되어 변색이 되어 버리고 만다. 사실 복민운동은 민 주도운동이었으나 새마을 운동은 관 주도운동이었다. 따라서 복민 운동은 새마을 운동처럼 외형적인 힘을 가지고 출발하지는 못하였지만 정말 민족을 깨우치고 변화시키는 점진적이고 계속적인 운동이 되었고 새마을 운동은 정치적 주체가 누구냐에 따라 커다란 굴곡과 변화를 거치면서 현대에 이르렀다. 이 두 운동은 겉으로 보면 매우 비슷한 것 같지만 근본에 있어서는 매우 다르다. 그것은 복민운동은 하나님 중심의 운동이지만 새마을 운동은 인간 중심의 운동인 것이다. 역사의 교훈이 그러하듯이 인간 중심의 운동은 쉽게 소멸되거나 기복이 심하다. 그러나 하나님 중심의 운동은 계속해서 성장하여 나아감을 볼 수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아프리카 선교에 있어 복민주의 운동을 근간으로 하는 새부족 운동을 전개해 나가야 하겠다. 아직은 아프리카 현지에서 이런한 새마을 운동과 복민운동을 구별할 능력은 없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복음을 전하면서 사회봉사를 할 수 있는 값진 기회로 이 복민운동을 전개해 나아가야 할 것이다. 더우기 우리는 이러한 복민운동으로 거부감없이 복음을 전하며 아프리카인들의 잘못된 의식구조를 변화시키며 가난을 극복하게 할 뿐만 아니라 국민성의 개조를 이룰수 있게 되는 것이다.
5. 신앙갱신운동을 통한 선교전략
1) 부흥운동의 필요성
기독교의 발전은 어떤 시기를 막론하고 거의 한결같은 적이 없었다. 개인에게 있어서나 공동체 안에 있어서의 기독교의 발전은 대단히 분명한 흥망성쇠에 의해서 특징 지어진다. 이 세상의 모든 일이 그렇듯이 기독교도 계속 변화할 수 밖에 없고, 아주 다양하고 절대적인 요소들의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다. 어느 때 기독교는 죄악된 성향과 죄악된 발전과 투쟁하는 가운데서 급속한 발전을 이룬다. 그런가 하면 또 다시 기독교는 현저하게 기독교의 계속적인 발전을 가로막는 그리고 영적인 타락을 가져오는 장애와 퇴보에 빠져든다. 은총 가운데서의 성장은 끊임없는 경성, 지칠줄 모르는 근면, 끈질긴 투쟁, 기회들을 신앙적으로 이용하는 것 등에 의해서 얻을 수 있다. 도덕적인 악과의 투쟁에 있어서 고삐를 늦추는 것은 영적인 지체를 일으키는 경향을 가져온다. 악이 선보다 우위를 차지하게 되며, 종교적인 열이 식게 되고, 영혼은 미지근하고 차게 되어 결국에는 죽게 된다. 개인 신자에게 있어서 그러한 것처럼 공동체에 있어서도 그렇다. 한 교회와 넓은 지역에 산재해 있는 교회들의 자매관계는 어떤 이 세상적인 관심의 지배적인 영향력 때문에 거룩함을 곧바로 추구하는 것으로부터, 그리고 그리스도의 왕국을 발전시키는 활동의 실행으로 부터 빗나가게 되어 상당한 범위까지 생명은 아니더라도 신앙의 능력을 상실하게 될 수도 있다. 그런데 그러한 이 세상적인 관심이란 거대한 상업적인 번영을 할 수 있는 호기회에 소득에 대한 탐욕, 대단히 과열되어 있는 정치운동 기간 동안 정당의 투쟁, 전시에 호전적인 정신으로 만연해 있는것, 일반적인 세상의 잔치놀이와 축제때에 쾌락에 탐닉하는 것, 단순한 일시적인 선에 지나치게 빠져드는 것 등이다. 즉 영적인 것과 영원한 것이 이 세상적인 것과 일시적인 것에 종속하게 되는 상태이다. 그러하게 되면 영적인 타락이라는 병충해는 자리를 잡게 되며, 해가 갈수록 점점 더 심해지면서 영속성을 가지고 달라붙게 된다. 그러한 기독교회의 역사는 어느곳에든 있다. 이러한 것은 영혼과 신앙의 능력으로부터 멀어지고자 하는 인간의 본성적 경향성에 대한 보편적 경험의 증거인데, 문제가 되는 것은 그러한 경향성을 어떻게 막을 것인가 하는 일이다. “ 확실히 영적인 쇠퇴의 계절을 위한 단 한가지 참된 효과적인 방법은 부흥운동이다.”135 135「기독교 대백과 사전」(1984), E. F. Hatfield, “부흥운동” 항목.
역사 으로 부흥운동은 죄악과 나태에 빠져가는 교회와 교인들을 건져 낼 뿐만 아니라 한 국가와 나아가서 한 시대를 변화시키는 놀라운 능력을 가지고 나타났다. 이러한 영적 부흥운동이야 말로 명목상의 그리스도인들, 나태해지고 해이해진 교인들에게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 생의 원동력을 주는 계기가 되어왔다. 따라서 명목상의 그리스도인들이 상당히 많이있는 아프리카의 선교에 있어 영혼의 생명력을 불어 넣는 부흥운동이야말로 필수 불가결한 선교전략의 하나가 될 것이다.
2) 초대교회의 부흥운동
초대교회의 오순절의 성령강림과 3천명의 회개 사건으로 시작된 초대교회 부흥운동은 놀라운 속도로 퍼져나가기 시작하였고 이에 따라서 교회가 자리를 잡게 되고 뿌리를 내리며, 이스라엘 땅을 그 축복된 열매들로 채우게 되었다. 그것은 거대하고도 영광스러운 신앙의 부흥이었다. 이것은 오로지 기독교 교회의 역사에 있어서 첫번째 위대한 부흥이었다. 헤아릴 수없이 많은 특별히 위급한 시기들에 하나님은 교회의 구속과 그리스도의 복음의 개선적인 발전을 위해서 개입하여왔다. 불의가 들어와서 황폐화시키는 홍수처럼 온 땅을 휩쓸고 간 영적인 타락의 계절 이후에, 새롭게 하고 거룩하게 하는 은총의 물결이 전 지역에 퍼져나가 이로 인해서 많은 사람들의 관심이 일어났으며, 아무 생각없이 되는 대로 살던 자들이 구원의 확신을 갖게 되고, 수많은 개심자들이 구원받을 자들의 교회로 들어왔다. 거대한 공동체의 모습 가운데서 엄청난 변화들이 일어 났는데, 이러한 변화는 성경말씀의 선포, 개인의 기도생활, 가정 그리고 성소에서의 기도생활 그리고 영적인 일이나 외부적인 일 가운데서 많은 사람들이 갖게 된 관심사에 있어서 가장 유익하게 영향을 미쳤으며, 신앙적인 관심을 비상하게 불러일으키고, 기독교의 은총을 전반적으로 자극하였으며, 불의와 죄 가운데 죽어 있던 영혼들을 거룩하게 갱신시키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다. 예루살렘에서뿐만 아니라 그 때에 사도들과 사도의 사람들이 설교했던 모든 지역의주변에서 그리고 멀리 이방인들 가운데서도 그러한 광경이 목격되었다. 성령이 그렇게 강림함으로 말미암아, 복음서에 기록되어 있는 신의 권능과 은총이 특별히 표명되는 것이 너무나 많아지고 강하게 되자 3세기 초에 테르툴리아누스는 행정당국에 보내는 그의 상소문에서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었다. “우리는 당신이 다스리는 모든 곳들-도시들, 섬들, 단체들, 의회들, 군대들, 원로원, 궁전, 법정-을 채웠다.” “그렇게도 강하게 하나님의 역사는 성장하고 승리해 나갔다.”136 136Ibid.
이러 초대교회의 부흥 운동은 강한 핍박으로 주춤하였다가 콘스탄틴대제의 기독교 공인과 더불어 되살아나고 시대적 여건과 환경에 따라 새로운 신앙단체들에 의하여 부훙운동과 교회갱신운동은 계속 되었다.
3) 교회갱신 운동의 역사적 교훈
콘스탄틴 대제의 기독교 공인후 동,서의 교회는 급격한 성장을 가져왔다. 그러나 점차로 교회가 정체화 되어가고 심한 교리논쟁,그리고 명목상의 기독교화로 인한 부작용(형식화, 제도화)이 계속되자 교회는 점차로 영적 생명을 잃어가게 되었다. 따라서 이에 대한 영적 각성이 뜻있는 지도자들에 의하여 발생하게 되었는데 이 영적 각성운동은 기독교의 영적 생명력을 유지시켰을 뿐만 아니라 선교적 사명을 감당하는데도 가장 앞장 서게 되었고, 나아가서 교회의 개혁을 자극하여 기독교의 생명력을 강화시켰다. 이러한 영적 각성운동은 몇몇 특정 계열을 빼고는 거의가 수도원을 중심으로 계속 되었다. 따라서 선교사의 파송도 수도원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게 되었고, 수도원 운동이 강하면 강할수록 선교운동도 강해지게 되었으며 선교사 파송도 많아지게 되었던 것이다. 이집트의 안토니(Antony:250)로 부터 시작된 수도원운동은 베네딕(Benedict), Celtic Church, Cluny Movment, 시스터시안등으로 계속 되면서 교회가 영적 암흑기에 허덕일 때 교회를 새롭게 하고 신앙의 새바람을 일으켜 갱신운동의 주역이 되었다. 또한 카타리 운동, 왈도파 운동등의 평신도운동도 이에 가세 하였으며, 정통교회의 탁발승 운동(Dominacan, and Franciscan)도 신앙 갱신운동의 맥을 이어 나갔다. 영국에서의 롤라드 운동은 경건 주의 운동으로, 이 경건주의 운동은 청교도 운동과 모라비안 운동으로 연결되고 후에 웨슬리의 감리교회운동으로 연결되면서 많은 기독교인들의 신앙의 새바람을 일으켰다.137 137참조, 칼 호이시, 「일그러진 신의 얼굴」 (서울: 임마누엘, 1988),
pp. 48-414.
이상에서 교회갱신운동의 역사적인 교훈들을 살펴 보았다. 여기에서는 교회가 침체기를 맞이할 때 마다 새로운 부흥운동을 주도하는 경건한 단체들이 출현하여 교회갱신운동을 주도하며 그 시대의 어두운 교회들을 밝은 영적세계로 인도하는 놀라운 역사들이 이루어져 왔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아프리카의 빛을 잃은 교회들에게, 어려운 환경과 여건 때문에 영적 힘을 잃어버린 아프리카의 교회에 부흥운동을 일으켜 신앙갱신을 이루고 영적인 대각성이 벌어져 새로운 교회성장의 전기를 만들어 가는 것도 값진 선교전략의 하나가 될 것이다.
4) 신앙갱신 운동의 아프리카 접촉점
오늘날 전세계의 교회가 한국 교회들의 성장에 놀라고 있다. 겨우 선교 100년의 짧은 역사에 이처럼 급성장한 국가도 민족도 없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한국교회의 성장은 선교사들의 헌신과 노력, 마지막 때를 위한 하나님의 섭리도 있었겠지만 고난과 역경의 세월, 반도가 지닌 지리적 수난, 타 민족의 침략에 의한 서러움등의 역사적 고난의 현실에 오순절의 강한 성령의 역사가 한국교회의 부흥운동을 통하여 다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1900년초 일본의 통치가 기정 사실화되고 온 국민이 실의와 좌절에 빠졌을 때 기독교 역시 최대의 위기에 봉착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역경속에서 길선주목사를 비롯한 한국교회의 지도자들에 의해 심령 부흥회 운동이 일어나기 시작하였다.138 138「기독교 대백과 사전」 “부흥운동, 한국교회” 항목.
19 3년, 1904년에 하디(R.A. Hardie) 선교사의 연합 부흥회를 통하여 불붙기 시작한 성령의 역사는 계속해서 전국으로 번져 나갔고 내면적 신앙의 체험속에 근거하는 신앙생활이 교회속에 자리잡게 되었으며 한국교회 부흥의 초석이 되었다.140 140Ibid.
이어 1907년 대 부흥 운동은 부흥사경회를 통한 한국교회의 성장의 기초를 마련 하였다. 한일합방으로 주춤하였던 부흥운동은 김익두 목사의 부흥운동을 시작으로 다시 일어났고 그후 3.1운동 등의 수난을 겪으면서 1930년대의 이용도, 최봉석 목사등의 부흥운동으로 계속되었으며 해방이후 6.25를 겪으면서 주춤했던 부흥운동은 1949년 피어스목사(B. Pierce) 1952,1956,1973년의 빌리 그래함 목사(Billy Graham) 등이 대규모 군중집회를 열어 새로운 부흥운동의 장을 열었다. 전쟁의 폐허 속에서 한국 민족의 끈질긴 국민성은 경제성장 만이 아니라 신앙의 성장을 아름답게 이룬 것이다. 물론 이렇게 짧은 시간에 급성장을 하다 보니 많은 문제들이 야기된 것 또한 사실이다. 무속신앙의 영향으로 인한 기복신앙, 신비주의적 경향, 외형적인 성장에 치우치는 경향등은 한국교회에서 나타난 문제 상황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한국교회는 지혜롭게 이를 극복해 나가고 있으며 이제는 세계선교의 선봉에 서게 된 것이다. 이러한 한국교회의 부흥 운동과 선교역사는 아프리카 선교의 초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아프리카의 역사적 현실과 한국의 역사적 현실이 너무 유사할 뿐만 아니라 같은 고난과 역경의 길을 걸은 동반자로서의 형제애로 함께 할 수 있는 요소들이 많기 때문이다. 더우기 아프리카의 전통종교는 한국의 민간신앙과 유사한 점이 많이 있기 때문에 종교 혼합의 위험에서도 잘 대처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고유한 국민적 특색인 풍부한 감정은 부흥운동의 맥락을 이어받기에 충분하다 할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한국교회와 아프리카선교의 접촉점을 찾기위해 먼저 한국교회의 성장 원인을 살펴보고 동부 아프리카 선교의 접촉점이 될 선교방법을 찾아본다.
(1) 한국교회의 성장
한국교회의 부흥과 성장의 원인은 다음의 일곱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① 먼저 종교성에 있어 한국인의 종교는 다원적 종교(multireligion)
141 141Eugene Nida, Religion Across Culture (Pasadena, William
Carey, 1968), pp. 14-16.
로 정 고등종교의 지배없이 무속신앙과 복합적으로 공존하여 왔기 때문에 복음이 쉽게 받아들여 졌다.142 142민경배, 「한국기독교회사」,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1972), pp.
102f.
② 1906-1910년의 감리교 선교사 하디등에 의한 제 1차 부흥운동, 1920년대 이용도, 최봉석목사등을 중심한 제 2차 부흥운동, 1947년의 장대현교회를 중심한 제 3차 부흥운동등의 3차례 부흥운동에 의한 영적 대각성 운동을 원동력으로 명목상의 그리스도인들의 일대변화가 교회부흥과 성장의 원인이 되었다.
③ 한국교회는 초기 선교사들부터 보수신학을 중심하여 교회를 이끌어 가면서 성경을 강조하였기 때문에 보수성을 띤 성경 중심의 신앙인들이 배출 됨으로 교회 부흥과 성장의 원동력이 되었다.143 143Soltau, Yin Yang, Korean Voices (Toronto: Home Evangelical
Book, 1971), p. 132.
④ 네비우스 선교정책, 속회, 구역제도등으로 인한 자립적 의지가 한국교회 부흥의 초석이 되었다.144 144Rolland Allen, "the Nevius Method in Korea," World Dominion Vol. 9, No. 3. p. 256.
⑤ 전도, 성경연구, 기도, 헌신, 고난극복과 같은 뜨거운 신앙의 정열이 어려운 시기의 한국교회를 일으킨 원인이 되었다.145 145Soltau, pp. 132ff.
⑥ 여기에 네비우스 정책등으로 시작된 초기 선교사들로부터 계속된 선교의 토착화 작업 역시 한국교회가 그토록 급성장하게 된 원인이 되었다.146 146윤성범, 「기독교와 한국사상」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1964),
p.83.
⑦ 여기에다 비 기독교적 종교의 약화, 정치적 불안에서 오는 절망감, 민족주의, 더 좋은 문화에 대한 동경등의 사회적인 요인도 빼놓을 수 없는 원인이 된다.147 147Lataurette, A History of the Expansion of Christianity, Vol.
6, p. 430.
하지만 이러한 원인들 보다 하나님의 때를 작정하신 하나님의 섭리와 능력의 역사가 모든 원인의 원인이 될 것이다.
이상에서 지적한 원인들 중에서 공통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한국교회의 부흥 성장 방법은 ① 부흥사경회, 성경공부 등을 통한 성경중심의 평신도 지도자 양성 ② 부흥운동 등을 통해 지속적으로 계속된 새벽기도, 철야기도, 기도원 설립등의 열성적인 기도운동 ③ 속회, 구역등의 자립정신에 의한 세포분열식 교회조직 ④ 계속적인 신앙갱신운동(부흥회, 선교대회, 각종 사경회, 훈련)에서 자원 헌신하여, 철저한 신학교육등을 통하여 양성된 헌신적인 목회자, 평신도 등을 찾아 볼수 있다.
(2) 한국교회 성장 방법과 동부아프리카 선교
이상에서 살펴본 한국교회의 성장 방법이 그대로 동부 아프리카에 적용될 수는 없을 것이다. 여건과 환경이 다르고 사람들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부 아프리카의 사회적, 종교적 상황이 한국교회의 상황과 유사하고, 그 열정적 심성이 같으며, 명목적인 그리스도인들이 많기 때문에 이를 선별 적용하기에 주저해서는 안될 것이다. 가나안 농군학교의 정신을 이식 시켜 내부적인 의식구조를 변회시키고, 팀사역, 제자훈련등을 통해 변화를 시도하면서 신앙갱신운동을 부흥사경회등을 통하여 일으키며, 지속적으로 성경공부, 새벽기도회, 철야기도등의 영성운동을 점진적으로 시도하고 자립정신을 키워주며 속회, 구역등의 세포분열식 교회조직을 이루어 유기적 신앙생활을 하도록 할 때 둥부아프리카 선교의 미래는 밝아질 것이다.
V. 결론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아프리카의 선교 상황은 매우 다양하고 복잡하다. 제3세계 모두가 가진 공통적인 문제 상황 뿐만 아니라 동부 아프리카의 문제상황 역시 결코 단순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선교사에게 가장 큰 장벽인 종족마다 다른 다양한 언어에서부터 문제의식이 없고 천성적으로 게으르고 낙천적인 국민성과 의식구조, 식민지 피해의식과 외국인에의 배타성, 날로 부패일로에 있는 정치풍토, 부패한 정치와 자연적 조건, 그리고 자국의 이익만을 위한 강대국들의 식민지정책에 기인한 극심한 빈곤, 그리고 다양하게 섞여 사는 인종 간의 문제와 국가와 개인의 화합을 저해하는 종족주의, 일부다처제, 각종 질병들, 여기에다 동부 아프리카 자국의 교회들 가지고 있는 종교 혼합주의와 신학의 부재등은 이미 19세기 식의 선교방법이 적용되는 상황이 아닌 것이다. 이는 동부 아프리카 만의 상황이라기 보다는 세계적 현상일 것이다. 보다 가까와지고 문화의 접근이 다양해지면 결국 상황은 다양성과 복잡성을 띠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오늘의 동부 아프리카의 문제 상황은 자발적 상황이라기 보다는 타의에 의한 것이 더욱 많은 것이 마음 아프게 한다. 이제 동부 아프리카 선교에 나서는 선교사들은 또 다른 문제 상황을 더 추가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될 것이다. 이러한 다양성과 복잡한 문제상황 속에서 동부 아프리카를 선교하는 최선의 방법은 오순절과 같은 성령의 역사 일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우 리에게 주신 경험, 지식, 지혜를 총동원 하여 하나님의 선교 역사를 도와야 할 것이다. 다양한 문제상황을 풀어가는 방법은 결코 선교사 한사람의 힘으로 되는 것은 아닌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현실적인 선교에의 어려움(재정지원,인력난등)을 묵과해 버릴 수는 없다. 따라서 팀사역을 하되 아프리카 현지에 모두가서 하는 사역이 아니라 현실적으로 가능한 자국의 선교전략 연구팀을 주축으로 하여 팀사역을 하며, 제자훈련을 통하여 현지 지도자들을 양성하고, 가나안 농군학교 정신과 새마을 운동을 통하여 의식구조의 개혁을 이루며, 가난을 퇴치하고, 부흥운동의 전개로 명목상의 그리스도인들을 뜨겁고 열심있는 신앙인으로 변화시켜 나아감으로서 다각적이고 총체적인 선교를 해 나가야 할 것이다. 결국 문제상황이 총체적인 성격을 띠기 때문에 총체적인 선교방법이 제시 될수 밖에는 없는 것이다.
아쉬움으로 남는 것은 현지 선교에 어려움을 잘 깨닫지 못하고 문제를 다룬것과, 다각적인 접근 때문에 세부적이고 깊이 있는 접근이 미약해 졌다는 것이다. 이제는 우리도 선교할 수 있다는 유아기적 환상에서 벗어나서 실제 가장 효과적이고 능률적이며 총체적인 선교에 총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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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MISSIONARY STRATECY FOR EAST AFRICA
Park, Hee-kwon
M.A. in Missiology
Asian Center for Theological
Studies and Mission
According to the statistics of 1990, number of Korean foreign missionaries amount to 1,645. Among them are at least fifty four persons commissioned to Africa. In spite of many deficiencies of suporting organizations and of reasonable missionary strategies, they have made great efforts for God's mission.
Thus, it is necessary to investigate the problems of the mission field and then to make a scientific strategy. In addition to this, a professional institution for full support should be established.
Chapter two shows a general understanding of East African mission
fields, especially that of Kenya, Uganda, and Tanzania. The problematic sitution as well as the general one becomes a foundation for setting the theological principles of mission to East Africa which come in the third chapter.
Accordingly, the theological principles of mission for East Africa
consist in the relationship between situational issues and missionary
theology. that is, the issues of poverty, social problems, oppressive politics, racialism(or tribalism),matrimony systim, and traditional religions. The writer sets the theological principles by dealing with the biblical alternatives well facing the situational issues.
The fourth chapter, missionary strategy for East Africa, composes the main part of this thesis. Here, the writer suggests five categories of missionary strategy. The first is team-work mission which is examplified in the Bible everywhere. The team-work ministry is indispenasble for the different situations of East Africa. It is certain that this kind of mission makes the so-called `total ministry' possible as long as missionaries can overcome their disparith in opinion, strategy, and activity.
The second strategy is an interrelated activity between strategy-makers and The mission field. As seen in a network of missionary strategy-makers, the strategy team is composed and mobilized according to necessities of mission fields. Of course, its work includes every possible activity and depends upon mission fields in which missionaries propose needy research and projects. In this account, computer correspondance will help the interrelated activity.
The third strategy is the native leader training through discipleship. In short, the discipleship refers th laymen training that they may commit themselves to Christ's will for the world. In this training, the role of the missionary and the curriculum pertinent to the mission field are very important parts. The short-term lay missionaries can be dispatched and assisted by this training program.
The fourth strategy refers to a reformation of the mental structure by means of two uniquely Korean movements. The first is the Canaan Farmers' School and the second the New Communith Movement. These two movements aim at promoting national prosperity of both spiritual and material life since the terrible civil-war in 1950. Thus, the writer suggests the transposition of CFS's spirit and the expansion of NCM to east African tribes in this thesis.
The last strategy is a rivival movement. Throughout church history, Christian churches have grown up in the spiritual rivival movements and declined in their lack. East African countries which have suffered similar to korea can also expect that kind of spiritual movemest. Therefore, this should be involved in the missionary strategy.
In conclusion,East African mission field has various situations and complicated problem. So we need a `total misistry'-team-work, aids of possible strategy-makers, and application of suitable movemests. Then the God of East Africa will help the natives to build themselves up sa His powerful childr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