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백산 자락의 감성여행
-삼탄아트마인 박물관 참관기-
글 德田 이응철(춘천産)
옛 시인들은 장마를 적우(積雨)라 했다. 내리고 또 내리어 녹엽(綠葉)에 쌓이는 여름비란 이미지로 무한한 정감을 안겨주지만, 비가 내려 나무와 나무를 적신다는 장마림(霖)의 임우(霖雨)를 즐겨 나는 노래한다.
유년기때 물이 좋아서인지, 변죽을 떠는 소강 때문인지 아직도 빗소리에 취하고픔은 어인 일인가! 소양강에서 흥건히 젖은 맏딸을 꼬드겨 강산을 한번 바꾼 함백산 도깨비 강원랜드를 찾은 것은 엊그제 오후였다.
김유정은 땡볕에서 쇠뿔이 녹는다고 노래한 중복이 다가온다. 체크인 하고 새로 문을 연 강원랜드 야심작 등산로를 내자와 올랐다. 이미 가족단위 명품 트레킹 코스로 폭신폭신한 하늘길 등산로를 해거름녁에 쉬엄쉬엄 오르며 푸름을 만끽한 날이었다. 어느 명인의 작품 산(山)이나 너울성 파도처럼 푸름과 보랏빛 청색들이 아득한 곳에서 겹쳐 밀려온다. 오르던 길목에서 반긴 돌탑에 막내의 성공을 기원하며, 열 개의 탑을 돌아 내려온 것은 푸른 숲 고산의 체취가 폭포처럼 하늘길로 쏟아진 저녁 무렵이었다.
다음날 정오쯤이었을까, 초록 빗물인가 장마의 맥은 계속 이어졌다. 가족은 함백산 자락에 귀염둥이로 태어난 한국최초 문화예술 광산을 찾았다. 석탄 박물관은 태백, 보령, 문경 등이 이미 잘 알려졌지만, 이날 찾는 박물관은 녹슨 폐광을 창조의 산업 메카로 만든 문화 예술광산이란 점에서 차별성을 보인다.
최근 문화재 출토로 떠들썩한 정암사를 향하다가 오른쪽으로 난 샛길로 향하니 안내간판이 허리 굽혀 강원랜드 정문 앞 교통 안내처럼 겸손하다. 한 때 3천여 명의 광산 근로자가 들끓던 삼척탄좌의 줄임말 삼탄에 아트와 광산을 의미하는 마인(mine)을 넣어 삼탄아트마인 박물관으로 지난 5월 오픈했다.
느낌이 좋은 것은 무슨 연유일까? 예술의 향이었다. 검은 과거의 전시가 아닌 예술가들의 작품들이 함께 한 위대한 탄생이었다. 그 현장은 40년간 검은 노다지를 캐던 그 자리매김이었다.
매표소를 들어서면 4층부터 아래로 관람은 시작된다. 광대같은 모빌들이 눈길을 끈다. 아래 3층은 현대미술관 캠(cam)이었다. 중국 아티스트의 작품 구두엔 모세관이 열리고 털이 솟아 느낌은 생명이었다. 모두 살아있는 생명체로 봐 달라는 작가의 아우성이요, 일본 작가의 목재로 형상화한 작품 관절 또한 강한 메시지였다.
두뇌의 다양한 사고를 입체적으로 나타낸 설치미술가들의 작품들이 모빌과 함께 발길을 멈추게 한다. 오랜만에 접하는 현대 미술작품들이 평면과 공간에서 출렁인다. 해갈이었다.
끈끈한 액을 캔버스 뒤편에서 밀어 넣어 흘러내린 추상 작품도 놀랍고, 최소한 1억 5천만 년 전의 통나무 화석을 한지로 재현한 작품 앞에 바투서서 나뭇결의 숨소리를 숙연히 들었다. 기하학적인 점이 면이 되고 그 평면이 다시 입체가 되는 그 앞에서 나른한 심신을 일깨운다.
신의 세계에는 예술이 없다고 한다. 가는 곳마다 어느새 예술로 차원을 달리한다. 긍정적인 마인드가 이채롭다. 솔로몬의 지혜였다. 가슴을 찍은 X-ray 필름들의 공간 전시도 놀라웠다. 샤워실이었다. 4개의 수도꼭지에 달린 샤워기 30여개위에서 빛을 낸다. 섬뜩했다. 필름의 변화에 울고 웃는 광원들의 모습이 순간 떠오른다.
마인갤러리에 모여 있는 것들은 무엇인가? 60년대 이후 사용하던 급여명세서, 인감신고서, 예산서 등이 꾸며 논 증언대에 고스란히 모여 정직하게 고한다.
지하 채탄현장에서 희생된 광원(광부를 존칭)들을 추모하고 기억하는 곳이 1층 뜨락이다. 74년 900갱에서 고여 있던 물막이가 새어 작업자 전원이 희생되었던 산업 전사들을 영원히 기억하기 위한 약속이리라. 아직 미 개봉한 스파이 영화 촬영장 또한 이곳이라고 귀띔한다.
검은 석탄의 생성에 2억년이 소요된다. 그런 역사가 묻은 장화를 씻던 세화장, 욕실들이 마치 아우슈비츠 독일 가스실을 연상하며 움찔했다. 150여개 국에서 10만 여점의 세계미술품과 고가구 등 콘텐츠 또한 놀랍다.
전시장 입구에서부터 펄럭이는 붉은 로고(logo)가 눈에 띈다. 변형된 알파벳 F는 무슨 상징일까? 수직갱 650미터를 내리고 올리는 엘리베이터(케이지)이다. 하루에 400명씩 갑 을 병 24시간 3개조로 8시간씩 도르래 줄을 타고 지하 수직갱을 넘나들던 높이 53미터의 생명 철탑이다.
60년대 광부들은 공무원 월급의 3배, 80년대 교사의 1.5배나 되는 높은 임금은 진정 검은 노다지였다. 밑천 없이 일확천금을 벌수 있는 야망의 오지, 검은 광산-. 딱 1년만하고 나가서 멋지게 살자고 맹세한 젊은이들의 야망이 성취보다는 아스라이 무너진 현장이기도 하다. 열악한 작업환경으로 진폐 환자들의 울부짖음, 노후된 장비로 목숨 바친 인재(人災), 아내의 허영으로 박제된 유취만년(遺臭萬年) 스토리-. 이전에 그들은 산업역군이었다.
갱 안쪽 막장에서 물리적 변화를 거듭하며 자칫 저항마저 잃은 퇴적물로 스러질 고철덩어리들이 솔로몬에 머리를 조아린다. 선진국 폐광 미술관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이곳을 보전한 주민들의 예지 또한 놀랍다. 진정 광산은 신에 대한 인간의 반란 본거지였음인가!
마지막 당도한 1층은 예술놀이터요, 체험장이다. 석탄캐던 수평 동굴은 천연와인 저장고로 관광객을 손짓한다. 카페와 테라스가 싱싱한 삶의 맛과 향으로 자존심을 안겨준다.
-흑(黑)으로 백년, 백(白)으로 백년을 먹고 산다
이곳에 내려오는 전설이라고 큐레이터가 귀뜸한다. 구연동화 같은 이야기들이 더듬이를 단다. 검은 대지위에서 야생화처럼 함초롬히 피어난 예술의 혼-. 이곳 고한읍 전체 지하는 뿌리처럼 갱으로 드넓게 뚫려있다. 어린이들이 그리던 상상의 땅속나라가 바로 이곳이 아닐까!
새로운 예술작품은 옛것을 상실시킨다고 했다. 아트마인으로 옛 고통을 지우고 새로운 가치들이 넘실대는 현주소이다. 시간이라는 강물이 흐르다 그대로 멈춘 현장이다. 거룩한 예술의 힘으로 40년간 이어온 태백의 삶이 다시 재조명 되어 후손에 전하리―.
원주휴게소를 지날 때 어찌나 장대비가 시샘하는지 달래가며 당도한 춘천은 천연덕스럽게 폭염이 옥죈다. 좋은 감성여행이었다. 아직도 입안에서 맴도는 곤드레 나물이 수줍게 혀 위에서 졸고 있다. (끝) 최근作
첫댓글 깊은 감성의 향연에 깊이 잠겨 있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