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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진리의 바다 원문보기 글쓴이: 나우
단군세기
한양조선과 고조선
우리가 조선이라는 국호도 과거에 고조선이 있었기 때문에 근세 조선때 명나라에 두 가지의 국호를 가지고 가서 허가를 맡을 때 그 때 조선이라는 국호를 맡아서 한양조선, 근세조선의 국호가 있게 되었고요. 그런 배경에는 과거에 고조선이 있었기 때문이죠. 또 어떤 사람들은 고조선하면 옛날에 국호가 고조선인가. 그것은 근세에 있었던 한양조선과 과거에 있었던 조선이 두 개가 있으니까 그것을 구별하기 위해서 고조선이다. 옛날에 있었던 조선이다. 이렇게 우리가 고 자를 편의상 넣어서 부르는 것이지 고조선이 국호는 아니었습니다.
삼한관경제의 삼신사상
우리 고조선은 여러분들이 잘 알다시피 고조선은 BC 2333년에서부터 BC 238년 까지 2096년 동안 47명의 단군이 통치를 했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고조선의 역사를 얘기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지금의 국사학자들도 전혀 언급을 못 하고 있는 삼한관경에 관한 얘기입니다. 삼한관경이라는 것은 삼한이라는 것은 진한, 마한, 번한을 얘기하죠. 진한, 마한, 번한을 얘기하는데 이 삼한관경제를 썼다는 겁니다. 삼한관경이란 것은 이 진한에 대단군이 계시고, 이 마한, 번한에는 부단군을 두셨어요. 부단군을 두셔가지고 하나가 곧 셋이고 셋이 곧 삼이고. 일즉삼 삼즉일의 원리를 가지고 통치 방식을 채택했다는 겁니다.
이것은 대단히 중요한 의미가 들어있는데요. 왜 우리 민족은 전 영토를 한 분의 단군께서 통치를 하시지 않고 왜 이렇게 삼한관경제를 썼느냐. 지금의 국사학자들이 이 삼한관경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그것을 모르는 이유는 그들이 철학이 없기 때문에 그것을 알지 못하는 거죠.
이것은 삼신일체원리에서 나온 것입니다. 우리가 한분의 상제님이 계신데 일신 상제님이시지만 그 한분의 상제님을 삼신 상제님이라고 호칭을 합니다. 일신 상제님은 조화의 권능도 가지고 계시고, 교화의 역할도 하시고, 치화의 역할도 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교화신, 조화신, 치화신. 조교치 삼신이라고 하는데 그렇다 그래서 세 분의 신이 계신게 아니라 한 분의 신이 권능을 달리 하는 것이죠. 한 분의 신이 작용을 달리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일신이 곧 삼신이고 삼신이 곧 일신의 이러한 원리에 의해서. 배달국 시대에는 그러한 원리에 의해서 풍백, 우사, 운사라는 그러한 제도를 두었어요. 그것도 삼신의 원리를 어떤 조직 속에서 구현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완전히 더 구체화되어가지고 어떤 삼신의 원리를 이 통치 방식의 적용을 해서, 원융을 해서 진한, 번한, 마한으로 다스렸는데요.
제가 지도를 잘 못 그리지만 이렇게 우리나라가 있다고 할 때요. 여기가 하얼빈이고 여기가 평양이라고 하고요. 여기 하북성 당산시가 있는데 여기에 서요하와 동요하가 흘러가는데요. 이쪽을 우리가 번한이다. 이렇게 얘기하고요. 이쪽을 마한이다 이렇게 얘기하구요. 이 부분을 진한이다 얘기를 합니다. 진한, 번한, 마한은 천지인의 원리에 의해서 이 진한은 인에 해당 합니다. 마한은 천에 해당을 하고 번한은 지에 해당해서 천지인이 공간적으로 이렇게 나누어져 있으면서 그리고 우주라는 하나 속에서는 하나의 우주일 뿐이죠.
이러한 원리를 통치철학을 가지고 삼한관경제를 썼던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민족은 창세에서부터 어떤 삼신 상제님의 이상을 지상에다가 구현하고자 했던 민족이 우리 민족입니다. 증산도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이 땅에 오신 상제님, 하느님의 이상을 인간이 이 지상에다가 한번 그대로 구현한다는 뜻이 있는데 우리 민족은 환인 환국, 배달국, 고조선 시대 때부터 삼신 상제님의 이상을 이 지상에다가 그대로 펼치고자 했던 민족이었다 하는 것을 우리는 이 삼한관경제를 통해서도 알 수가 있습니다.
단군세기 내용 개괄
이 진한에 대한 얘기가 바로 행촌 이암이 쓴 단군세기의 내용이 바로 이 전부 진한에 대한 얘기가 되겠습니다. 진한도 공간적으로도 셋으로 나누었지만 시간적으로도 생장성, 삼변 성도하는 원리에 의해서 수도가 세 번 바뀌죠. 제일 먼저 그 우리가 송화강 아사달 시대라고 뭐 편의상 이름을 붙이고 있는데요. 초대 단군할아버지부터 21대 소태 단군 때까지. BC 2333년에서부터 1286년 까지. 1048년간을 우리가 송화강 아사달 시대다 이렇게 얘기를 합니다.
그리고 두 번째. 이것은 하얼빈에 도읍을 했었어요. 송화강 아사달 시대는 하얼빈에 도읍을 했었구요. 그리고 고조선의 역사에서 유일하게 한번 어떤 힘에 의해서 혁명이 된 적이 있습니다. 21대 소태 단군에서 22대 색불루 단군으로 넘어갈 때 소태 단군이 색불루 단군의 힘에 의해서 단군의 자리를 남겨주는데 그 전에는 아들에게 계승이 되거나 선거에 의해서, 오가 중에서 가장 덕망이 높은 분이 단군이 되었는데 22대 단군만은 힘에 의해서 뺏게 됩니다. 단군의 자리를. 그러면서 수도를 저 송화강 하얼빈에서 백악산 아사달로 옮기게 됩니다. 백악산 아사달은 지금의 길림성 농안현 주위로 비정을 하고 있는데 이것이 22대 색불루 단군에서부터 43대 물리 단군 때 까지 BC1285년에서부터 426년까지 860년 동안을 우리가 백악산 아사달 시대라고 얘기 합니다.
그리고 세 번째. 장당경 아사달 시대가 있는데 장당경 아사달 시대는 44대 구물 단군에서부터 마지막 47대 고열가 단군 때까지 이것은 BC425년에서부터 238년까지 188년 동안. 이렇게 진한 자체는 역시 삼변 성도합니다. 세 번 공간을 이동하는데 우리가 이 장당경, 송화강 아사달, 백악산 아사달, 장당경 아사달이라고 하는데 장당경 아사달은 장춘 지방에서 서남쪽으로 조금 내려오면 요령성에 개원이 있습니다. 지금은 개원시가 되었죠. 거기로 비정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보는 이유는 이 자체에 전부 나와요 이 내용이. 이것은 여러분들하고 이제 원문을 통해서 전부 확인을 해보게 될 겁니다.
단군세기에는 이 마한과 번한에 대한 얘기는 없습니다. 참고적으로 간단히 말씀 드리면 마한이라는 것은 초대 부단군으로서 웅백다라는 사람이 봉해지게 됩니다. 그래서 35대 맹남이라는 부단군까지 지속이 되고요. 번한은 초대 부단군은 치우천왕의 후손인 치두남이라는 사람이 봉함을 받아가지고 74대 준왕, 기준이라는 분. 지금 우리는 전부 고조선의 마지막 임금으로 잘못 알고 있는데 번조선의 마지막 왕이었던 기준까지 74대 동안 BC194년까지 지속이 됩니다. 이렇게 해서 고조선의 역사가 전체가 되는데요. 기본적으로 이런 정도를 여러분들이 이건 뭐 기본적으로 암기를 하고 내용을 알고 있어야 될 그러한 내용들입니다.
범례
그러면 직접 환단고기 원문강독으로 들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오늘은 단군세기인데요. 범례를 한번 보세요.
단군세기 홍행촌수소편
檀君世紀는 紅杏村叟所編이니
내행촌선생문정공소전야
乃杏村先生文貞公所傳也라
차서 역득어백진사 진사 문조고가야
此書도 亦得於白進士하니 進士는 文藻古家也라
소다장서 이금양종사서 구출기가
素多藏書오 而今兩種史書가 俱出其家하니
해시비제백붕지사 가위조국지만장광채야
奚啻譬諸百朋之賜리오 可謂祖國之萬丈光彩也로다.
단군세기는 홍행촌수 소편이니(紅杏村叟 所編). 홍행천수. 홍행촌의 늙은이다. 이암 선생이 강화도에 그 마지막 말년을 보내기 위해서 은둔을 하시는데 그것이 1362년이나 63년 정도가 될 것 같아요. 그 두 해중에 하나인데요. 가서 한 1년 정도를 거기서 머무르지 않았나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자기가 사는 집은 해운당이라고 얘기를 하고 자기는 행촌이다 호를 말이에요. 또는 홍행촌수다. 이렇게 자호를 짓습니다. 단군세기는 홍행촌수 소편이니. 단군세기는 홍행촌의 노인네란 뜻이겠죠.
홍행촌수가 지은 것이니 행촌선생 문정공 소전야라(杏村先生 文.貞公 所傳也). 행촌선생, 홍핸촌수라고도 했고 이건 강화도에 들어가셔서 스스로 쓴 호예요. 홍행촌수라고도 하고 행촌이라고도 하고. 홍행촌수 행촌 선생 문정공이 전한 바다. 문정공은 옛날에 사람이 돌아가시면 벼슬한 사람이 돌아가면 임금이 시호를 내려줍니다. 시호예요 문정공이란 것은.
차서도 역득어백진사하니(此書 亦得於白進士) 이 책도 운초 계연수 선생이 어디에서 입수하게 되냐면 태촌의 백관묵씨에게서 입수를 하게 됩니다. 또 역 자를 쓰게 된 것은 삼성기전하를 백관묵씨 집에서 입수를 해요. 삼성기 전 하. 원동중이 쓴. 그리고 이 단군세기를 또한 태촌의 백진사에게서 입수를 하게 됩니다. 그래서 진사는 문조고가야라(進士 文藻古家也). 진사는 아주 그 집안이 문체가 나고. 조 라는 것은 마름 조 자인데요. 옛날에 마름 무늬로서 우리 고구려 벽화를 봐도 마름 무늬를 가지고 장식을 하는게 있는데요. 아주 굉장히 화려하죠. 그러니까 굉장히 화려한 어떤 문장을 잘 짓고 그런 그 전통이 내려오는 집안이다.
소다장서오(素多藏書). 본래 그 장서가 많았고 금양종사서가(今兩種史書). 양종사서면 삼성기 전 하. 원동중 삼성기와 그리고 단군세기. 이 두 책이 구출기가(俱出其家)하니. 모두 그 집안에서 나왔다. 뒤에는 뭐 생략하겠습니다.
단군세기의 저자 행촌 이암
자, 이렇게 해서 운초 계연수 선생이 환단고기를 지을 때 본인이 입수한 내력을 전부 밝히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단군세기는 저자가 누구예요. 고려 말 공민왕 때 시중을 지냈던, 재상을 지냈던 행촌 이암 선생입니다. 우리가 책을 공부하기 위해서는 그 사람에 대해서 정확히 알고 있어야 합니다.
행촌 이암 선생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면 1297년 생이에요. 정유 생입니다. 김호연 성도하고 똑같아요. 김호연 성도가 1897년이었죠. 정유 생이에요. 이렇게 해서 17살에 과거에 급제를 합니다. 과거에 급제를 해서 워낙 똑똑하고 17살에 과거 시험관들이 이 사람은 앞으로 어떤 재상의 그릇이다. 공복이다. 삼공과 어떤 임금을 보필하는 그런 공보의 그릇이다. 이렇게 벌써 17살에 평가를 받습니다.
그 뒤에 쭉 벼슬을 해오면서 뭐 충숙왕, 충선왕, 충혜왕, 충목왕, 충정왕. 충정왕 때 최고의 벼슬인 시중 자리에 올라가요. 그리고 공민왕 때 역시 시중 벼슬을 하게 됩니다. 그러다가 한 5년 동안은 저 강원도 청평. 춘천에 있는 청평산에 들어가서 5년 동안 다시 은퇴를 해요. 은퇴를 하는데 너무나 똑똑하고 훌륭하니까 그 사람을 다시 모셔와야 한다. 이렇게 해서 다시 이 세상에 나오게 됩니다.
홍건적이 침입을 해요. 모거경 홍건적이 1359년에 모거경 홍건적이 침입을 하자 최고의 벼슬인 병마대원수가 되어가지고 그들을 무찌르기도 합니다. 1361년에는 공민왕이 홍건적이 침입을 받아가지고 여기 충청도 양산을 거쳐가지고 저 안동까지 피난을 가잖아요. 그 때 호종을 합니다. 호종공신이 되고. 그 다음에 적들을 무찔러서 1362년에 적들을 평정합니다. 평정을 하고 나서 이 단군세기를 언제 쓰느냐 하면 1363년에 쓰거든요.
그러니까 이 해에 은둔해서 쓰셨는지, 이 해에 홍건적을 평정을 하고 나서 강화도에 들어가서 쓰셨는지 이것은 알 수가 없어요. 그렇지만 대개 1년 정도 있으면서 마지막에 이 단군세기를 썼다는 것을 우리가 추측을 할 수가 있고요. 워낙 훌륭한 분이니까 공민왕이 유명한 화가가 아닙니까. 공민왕이 그림을 잘 그렸잖아요. 공민왕이 행촌 이암 선생의 자화상을 그려줘요. 얼마나 영광됩니까. 임금이 직접 행촌 이암 선생의 얼굴을 그려가지고 진상을 직접 그려줍니다. 그리고 이제 1364년 갑진년에 돌아가시니까 68세로 돌아가시게 됩니다. 그리고 문정공이라는 시호를 내리게 됩니다. 문정공.
행촌 이암 선생의 할아버지가 이존비라는 분이예요. 그리고 그 손자가 행촌 이암이에요. 행촌 이암의 현손자가 이맥이에요. 태백일사를 쓴 이맥이에요. 전부 고성 이 씨에요. 고성 이 씨가 아니라 아주 직계 혈통으로 내려오게 되고. 근세에 이유립이란 사람이 이 환단고기를 제일 많이 연구를 했는데 그 사람이 또 직계조상입니다. 그 사람도 고성 이 씨에요. 고성이라고 저 경상남도에 고성이라는 지방이 있습니다. 철성이라고도 합니다. 철성은 고성의 옛 터인데.
그런데 거기를 갔더니 그 분이 족보를 한권 줘요. 이걸 한번 보라고 당신이 관심이 있으면. 그 사람들은 전혀 몰라요. 이 환단고기를 그 고성 이 씨 집안에서 전해 내려왔는지 전혀 모르고 그냥 책을 한권 주더라고요. 그래서 그 책을 가져와서 보니까 그 앞에 이존비에 대해서, 또 그 아드님 이우라는 분에 대해서 그 다음에 행촌 이암에 대해서 자세하게 적어놓은 글이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걸 보고 지금 말씀을 드리는 거예요.
아주 서예에 뛰어났다고 합니다. 이 행촌 선생은 서예에 뛰어나가지고 중국에서 당시에 가장 유명한 서예가가 조맹부거든요. 송설체. 우리나라에는 행촌 이암이 있고 중국에는 조맹부가 있다 할 정도로 이렇게 비견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서경의 태갑편을 잘 써 가지고 공민왕한테 올려드리기도 했었고. 하도 글을 잘 썼다고 하니까 원나라 황제가 행촌 이암선생을 불러와요. 불러가지고 화엄경을 열 폭을 써 가지고 나한테 바쳐라. 그런데 그 행촌 선생이 하루 만에 열 첩을 그냥 다 써서 바쳤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그 원나라 황제가 너무 기쁘고 놀라가지고 천하제일이다. 당신의 그 서예는 서도는 천하제일이다 이렇게 칭찬을 하면서 그 중에서 한 첩을 다시 행촌 이암 선생에게 돌려주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것을 받아가지고 자손만대에 전하도록 하라. 그런데 그 중간에 반쪽이 지금까지 전해 내려오고 있고 고성 이 씨 문화재로써 지정 되가지고 지금까지 전해 내려오고 있다고 하는데 저도 보지는 못했습니다.
단군세기 서문
이 행촌 이암 선생은 이런 분이에요. 이렇게 이암 선생에 대해서 간단히 소개를 마치구요. 단군세기 서문이 나옵니다. 그런데 이 서문은 정말로 천하의 명문장입니다. 이 단군세기의 서문이라는 것은. 그런데 지금은 이것은 좀 어렵고 이것은 일단 생략을 하고 넘어갈까 하는데 여기에서 인간이라는 것은 어떤 삼신의, 삼신 상제님의 조화신, 교화신, 치화신이 있는데 거기에서 조화신은 우리 인간에게 성명정의 성이 되고 교화신은 명이 되고, 치화신이 정이 되어가지고 인간의 원뿌리는 삼신 상제님께 뿌리를 두고 있다 하는 것이 있고요. 인간이 공부하는데 있어서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나를 깨달아야 한다. 나를 깨닫고 주체성을 회복해야 된다. 지아구독(知我求獨). 이런 얘기를 했어요.
우리는 역사를 왜 배우냐. 역사는 나에 대해서 정확히 알고자 하는 겁니다. 우리가 족보를 통해서 우리의 조상은 누가 있었다. 내가 지금 어디에 위치해 있다. 이런 것을 우리가 알 수가 있어요. 나의 그 소자출과 뿌리를 알 수 있습니다. 원시반본은 그런 것을 통하지 않고서는 알 수가 없는 것이죠. 그러면 민족의 역사라는 것은 뭐 큰 집안의 족보라고 얘기하면 되겠죠. 그래서 민족의 역사를 통해서 우리는 나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대한민국 사람들이 뭐 7천만 명이 살고 있다고 그러지만 상제님께서는 남은 조선 사람을 말씀하셨어요. 남은 조선 사람. 그 7천만 명 중에서 정말로 자기의 뿌리와 역사를 정확하게 알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오직 상제님을 신앙하는 우리들만 축복을 받아가지고 우리의 뿌리와 근원을 공부할 수가 있는 겁니다. 이것은 너무나도 큰 축복이죠.
저는 과거에 불교를 신앙하다가 상제님 도문에 들어왔는데 정말로 우선은 제가 가장 크게 깨닫고 느낀 것은 내가 평생 불교를 했으면 나는 정말로 우리 민족의 역사와 우리 민족의 철학과 우리 민족의 종교에 대해서 평생을 알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도문에 들어왔기 때문에 다행스럽게도 우리 민족의 역사, 우리 민족의 철학, 우리 민족의 종교에 대해서 눈을 뜰 수 있었다. 너무나도 나는 이걸 축복이라고 생각하고 기쁘게 생각한다. 한 생각을 대단히 여러 번, 아니 정말로 진심으로 수없이 많이 생각을 했습니다.
내가 상제님의 진리를 몰랐다면 나도 상놈 아니냐. 상놈이라는 것은 뭐 행동이 천박해서 상놈도 될 수 있겠지만 자기의 뿌리와 근원을 모르면 사생아가 되는 것 아닙니까. 우리 민족의 역사는 우린 이제까지 사생아의 역사를 배워왔죠. 머리 없는 몸통과 다리만을 가진 그러한 역사만을 배워 왔습니다. 바로 우리는 이 환단고기를 통해서 잃어버린 머리 그것을 배우게 되는 겁니다.
제1대 단군왕검
자, 단군세기는 서문은 넘어 가구요.
고기에 운하되(古記云). 그러니까 옛날에 고기라는 책들이 여기에 이름은 밝히지 않았지만 대단히 많았습니다. 고기에 이르되 왕검의 부는 단웅씨요(王儉父檀雄). 왕검. 제가 삼성기 강독을 하면서 왕검이라는 것은 관경의 장이다. 관경. 모든 지역의 우두머리를 왕검이라고 하기 때문에 이건 보통명사예요 왕검이라는 것은. 지방의 책임자. 우리가 고유명사로 쓰기 위해서는 단군왕검이다. 이러면 이제 초대 단군이 되는 거예요. 우리 삼성기에서는 신인왕검이다 이렇게 표현이 되어 있었죠.
탄생
단군의 부는 단웅이다 했는데 이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단웅이라면 18대 거불단 환웅을 얘기하는 거죠. 그럼 18대 거불단 환웅이 우리 초대 단군 할아버지의 아버지냐 여기서는 그랬지만 이 뒤에 여러분들 146쪽을 펴보세요. 146쪽을 보면 그렇지가 않습니다. 146쪽을 보면 넷째 줄 볼까요. 사화라 환웅지초에(斯瓦羅 桓雄之初). 그럼 13대 환웅입니다. 13대 환웅의 초에 웅녀군지후를(熊女君之後). 웅녀군의 후예들을 여(黎)라고 했어요. 시득봉어단허하여(始得封於檀墟). 처음으로 단허라는 곳에 봉함을 얻었습니다. 뭐 단허라면 이것은 단이라는 것은 광명을 의미하니까 밝은 땅이다. 밝터라고 우리가 번역을 합니다. 밝은 곳, 밝은 땅. 또는 박달나무가 우거진 그런 곳이다 이렇게도 해석을 할 수가 있겠죠. 박달나무가 우거진 곳인지 아니면 밝은 그런 땅이라고 봐야 될지는 모르지만 우리가 두 가지는 다 취택할 수는 있습니다.
위왕검하여(爲王儉). 거기에 왕검이 되었어요. 여기 왕검은 보통명사죠. 한 지역의 우두머리를 왕검이라고 합니다. 수덕애민(樹德愛民)하니. 덕을 심을 수 자입니다. 나무 수 자가 아니라. 덕을 심었다. 백성들에게 덕을 베풀고 백성을 사랑하니. 토경이점대(土境漸大)하고. 땅덩어리가 점점점 확대가 되었어요. 제토경왕검이(諸土境王儉). 그래서 모든 토경의 왕검들이 분명히 왕검이 보통 명사죠. 한 지역의 우두머리를 전부 왕검이라고 그래요.
왕검이 내헌방물하여(來獻方物). 와서 방물을 바쳐서. 방물은 뭡니까. 그 지방에서 나는 특산물을 방물이라고 하는 거예요. 이귀화자가 천여자라(以歸化者千餘). 귀화하는 자가 천여 명에 이르렀다. 그렇다면 이것은 일반 백성이 천여 명이 아니라 지방 책임자가 천여 명들이 귀순하는 겁니다. 후사백육십년에 유신인왕검자(後四百六十年有神人王儉者). 신인왕검자가 있어서. 우리 초대 단군에겐 꼭 신이이라고 호칭을 합니다. 이것은 중요한 의미가 있어요. 왜 신인이라고 하느냐. 태어날 때부터 신령한 덕이 있었다는 겁니다.
신인왕검자가 있어서 대득민망하야(大得民望). 크게 백성의 명망을 얻으셔서. 승위비왕이라가(陞爲裨王). 자 올라가서 비왕이 되었다가. 비왕, 임금을 보필하는 그런 두 번째 왕이 되었다가. 거섭이십사년에(居攝二十四年). 섭정에 거한지 24년에. 웅씨왕이 붕어전(熊氏王崩於戰)하고. 웅씨왕이 전쟁에서 돌아가시고 왕검이 수대기위하사(王儉遂代其位). 드디어 그 자리를 대신해서. 통구환위일(統九桓爲一) 하시니. 구환족을 통일해서 하나로 만드시니. 시위단군왕검야시니라(是爲檀君王儉也) 이 분이 단군왕검이시니라.
그러니까 여기에 보면 18대 거불단 환웅의 아드님이 아니에요. 그러니까 앞의 것은 우리가 지금 것으로 바로 잡고요. 그 다음에 모는 웅씨왕녀라(王儉父檀雄). 어머니는 웅씨왕녀라고 보는 것은 정확하죠. 왜냐하면 웅씨국에서 신인단군, 단군왕검께서 나오셨습니다. 신묘오월이일에. BC2370년. 신묘년은 BC2370년이에요. 음력 5월 2일이 단군할아버지 생신날입니다. 인시에 생후단수하(辛卯五月二日寅時生于檀樹下). 자 박달나무 아래에서 태어나시니. 유신인지덕(有神人之德)과. 신인의 덕이 있어서. 그러니까 아마 태어날 때부터 신령스런 덕이 있었어요. 신인의 덕이 있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벌써 이 구환족을 통일할 그런 분이시니까 태어날 때부터 신령스러웠어요.
원근이외복하니라(遠近畏服). 먼데 있는 사람 가까운데 있는 사람들이 모두 두려워하고 복종 하니라. 연십사갑진(年十四甲辰)에. 나이 열네 살 되셨을 때 갑진년에. 열네 살이라면 지금으로 따지면 중학교 1학년입니다. 중학교 1학년이지만 웅씨왕이 문기신성(熊氏王聞其神聖)하고. 웅씨왕이 그 신성함을 듣고서. 열네 살이지만 기가 막히게 똑똑하고 지혜롭다는 것을 소문이 나서 알았어요.
그래서 거위비왕하니(擧爲裨王). 천거를 해서 비왕으로 삼았다 했어요. 나는 이것이 두 가지로 해석이 가능한데요. 첫째로는 자기 웅씨국의 비왕으로 삼았다는 것인가. 일반적으로는 그 뜻이 되겠죠. 웅씨국의 비왕이라면 웅씨국의 우두머리 왕을 보필하는 그 밑자리 그것으로 삼았다는 것이 일반적인 뜻 같은데요. 뒤의 문장을 보면 돌아왔다는 얘기가 있어요. 그래서 혹시 배달국의 거불단 환웅의 보필자로 가셨다는 것이 아닌가. 이런 추측도 한번 해보게 됩니다. 이 비왕자체가. 배달국의 마지막 환웅인 거불단 환웅의 보필자로 간 것이 아닌가 하는 해석도 여운이 있어요. 그렇게 한번 남겨두시구요.
고조선의 건국
섭행대읍국사하시고(攝行大邑國). 대읍국의 일을 겸해서 하셨다. 제가 배달국에 간 것이 아니냐 한 것이 대읍국사 때문에 그래요. 대읍국. 대읍국은 배달국 전체를 대읍국이라고 얘기 하거든요. 대읍국의 일을 겸해서 행하시고. 무진당요시(戊辰唐堯時)에. 이것이 바로 BC2333년입니다. 무진년. 우리 1988년도에 88올림픽을 열었어요. 그 해도 무진년이었습니다. 일흔두 번째 맞이하는 무진년이었습니다 그 때가. 그래서 대단히 중요한 의미가 있는데 뭐 우리는 그렇게도 해석이 가능하죠. 88올림픽은 우리 초대 단군할아버지가 나라를 건국한 것을 기념하는. 무진년에 나라를 건국했으니까 무진년에 이런 축제를 벌였다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당요시에. 이때가 요임금 25년이에요. 그러니까 우리 초대단군할아버지와 요임금은 24년의 차이가 있습니다. 요 임금이 24년 먼저 왕위에 올랐고. 뭐 우리 단군할아버지가 비왕 때부터 따지면 똑같은 때에 왕에 오른 것이 됩니다. 내자단국하야(來自檀國). 단국으로부터 돌아와서. 그래서 제가 아까 대읍국 사람인가. 단국으로부터 돌아와서. 이런 것 때문에 혹 배달국의 비왕으로 간 것이라고 한번 해석할 수도 있다고 생각해봤습니다.
지아사달 단목지허하시니(至阿斯達檀木之墟). 아사달의 단목의 터에 이르시니. 아사라는 것은 일본에도 아스카라는 말이 아사에서 나온 건데요. 해 뜨는 곳이다. 다른 땅이라는 뜻이 있잖아요. 해 뜨는 땅. 해 뜨는 곳. 해 뜨는 산. 이런 뜻도 되고요. 우리가 밭을 맬 때 아이 맨다. 처음이란 뜻이 있거든요. 그러니까 처음, 시초의 땅이다. 그러면 수도를 얘기할 때도 있고 또는 가장 성스러운 땅이죠. 퍼스트 랜드니까 삼신 상제님께 천제를 올리는 그런 소도가 있던 곳이라고 볼 수가 있겠고요. 뭐 그런 두세 가지 의미로 아사달을 해석할 수가 있습니다.
국인추위천제자하사(國人推爲天帝子). 나라 사람들이 추대해서 천제의 아드님으로 추대해가지고. 혼일을 구환하시고(混一九桓). 혼은 우리가 합할 혼자예요. 뭐 혼합한다 할 때 혼 자를 쓰잖아요. 구환족을 하나로 합하시고. 신화원기하시니(神化遠曁). 신화라는 것은 신령스러운 교화가 멀리멀리까지. 미칠 기 자가 조금 어려운 글자죠. 시위 단군왕검이라(是謂檀君王儉). 이 분이 단군왕검이다. 재비왕이 이십사년이요(在裨王位二十四年). 비왕에 있었던 해가 24년이고. 재제위. 단군의 자리에 있었던 것이 구십 삼년이니 수는 일백삼십세를 사셨습니다.(在帝位九十三年壽一百三十歲)
8조교
그 다음에 초대단군에 대해서는 한 장을 넘겨보세요. 넘기면 그 다음에 있는 것은 저기와 똑같아요. 삼성기에 있는 내용하고 같은 내용입니다. 넷째 줄에 26쪽 넷째 줄 보시면. 조왈 천범은 유일이요 불이궐문이니(詔曰天範惟一弗二厥門). 여기에서부터 여덟 조문이 나오게 됩니다. 우리가 이것을 팔조교라고 얘기합니다. 팔조교. 여덟 조문의 가르침이다. 초대 단군할아버지의 여덟 조문의 가르침이 있는데 이 여덟 조문의 가르침은 우리 상제님의 가르침과 같은 부분이 많이 있어요. 여덟 개 다를 알아볼 시간이 없어서요.
세 가지만 빨리 한번 살펴보면. 천범은 유일이요. 천범이라는 것은 하늘의 법칙, 하느님의 법. 이렇게 해석할 수 있죠. 하느님의 법, 하늘의 법칙이라는 것은 오직 하나요 불이궐문이니. 그 문을 둘로 하지 아니하니. 이유순성하야(爾惟純誠). 너 이 자, 오직 유 자. 너는 오직 순성, 마음을 순수하게 갖고 정성을 가져서. 일이심이라야(一爾心). 너의 마음을 한결같이 해야만이. 내조천이니라(乃朝天). 이에 조천은 하늘나라에 갈 수가 있느니라. 또는 하느님을 조회할 수가 있느니라.
이것은 성심, 정성된 마음, 일심을 가져야만이 후천에 갈 수 있고 하느님을 뵐 수 있다는 우리 상제님의 진리와 똑같은 얘기입니다. 인생에서 성공하는 길, 상제님이 길에서 성공하는 길은 일심을 가져야 하고 성심을 가져야 한다. 그 문을 둘로 하지 않는다. 일심을 가져야 한다는 말이죠. 성심을 가져야 한다는 그 뜻이 구요.
두 번째 조문은 천범은 항일(天範恒一)하고. 하늘의 법도라는 것은 항상 되면서도 한결같고. 인심유동하니(人心惟同). 그러니까 사람의 마음도 오직 동일하니. 그러니까 항일해야 된다는 말이에요. 항상 되고 한결같아야 된다는 겁니다. 상제님께서는 내 마음은 한결같으니라. 이런 말씀을 하셨죠. 추기병심하야. 나를 미루어서 마음을 잡아요.
그러니까 이건 추기병심(推己秉心). 나의 마음을 미루어 잡을 병 자니까, 나의 마음을 미루어 잡아서. 내 마음을 잘 보면 이급인심하라(以及人心). 다른 사람의 마음에 비춰봐라. 그러니까 우리가 다른 사람이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고 다른 사람이 싫어하고 좋아하는 것은 내 마음을 비춰보면 다 아는 것이죠. 누가 나한테 외로울 때 나를 위로해 주는 말을 하면 내가 기분이 좋고 마음이 안정되죠. 그러니까 그런 것을 돌이켜 가지고 외로운 사람에게는 따뜻한 말을 전해주고 누가 나에게 욕을 하면 내가 싫잖아요. 그러니까 나도 다른 사람에게 욕을 하지 말아야겠다. 사실 내 마음을 비추어보면 우린 세상 사람들의 마음을 그대로 다 알 수가 있어요.
그래서 내 마음을 미루어 잘 잡아서 다른 사람 마음에 미치도록 하라. 인심유아하면(人心惟化). 다른 사람의 마음이 잘 교화가 되면, 또 화합이 되면, 융화가 되면. 역학천범이니(亦合天範). 또한 천범에 합하게 된다. 천범이라는 것은 항일한 천범이죠. 항상 되고 한결같은 하늘의 법도에 합하게 되니. 내융어우만방이니라((乃用御于萬邦). 이렇게 해야만이, 그런 자만이. 다른 사람의 마음을 파악할 수 있는 자만이 만방을 다스릴 수가 있느니라. 세상 사람을 누가 다스리느냐. 내 마음을 잘 돌이켜서 상대방의 마음을 잘 알고 그들의 마음을 교화한 자만이 세상 사람을 다스릴 수 있는 겁니다. 이것은 우리가 진리를 전하고 포교를 할 때도 내 생각을 그대로 전할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 이런 것을 상대방의 입장에서 우리가 생각해보는 그런 교훈을 줍니다.
그리고 세 번째는요. 이생유친(爾生惟親)이요. 너를 낳은 분은 너의 부모님이고. 어버이 친 자 아닙니까. 친강자천(親降自天)이니. 부모님은 하늘로부터 내려오셨으니. 부모님, 조상님, 그 조상, 그 조상님을 따라 올라가면 하느님으로부터 나온 것이죠. 사실 우리가 원시반본, 근본으로 돌아간다. 원시반본의 궁극적인 것은 하느님을 찾는 것입니다. 상제님을 만나는 것이죠. 모든 것의 근본, 모든 것의 뿌리자리에는 상제님이 계십니다.
원시반본의 궁극자리는 우리는 상제님을 만나는 거예요. 여기서도 그런 얘기죠. 나를 낳아준 분은 부모님이지만 부모님의 뿌리 뿌리를 캐어 가면 이치적으로는 하늘로부터 나왔고, 인격적으로 얘기하면 삼신 상제님으로부터 나왔으니. 유경일친이라야(惟敬爾親). 오직 너의 부모님을 공경해야만. 내극경천이요(乃克敬天). 이에 능히, 이 이길 극 자는요 능히 라고 해석합니다. 능히 하늘을 공경할 수 있다는 거예요. 우리 도전에 이 말이 있어요. 부모님을 경애하지 않으면 천지를 섬기기 어려우니라. 2편 26장에 그런 말이 있어요. 부모님을 경애하지 않으면 천지를 섬기기가 어려우니라.
유경이친이라야 내극경천이요. 똑같은 말이죠. 이극우방국이면(以及于邦國). 그리고 그런 마음을, 공경하는 마음을 나라 사람들에게 미친다면 이것이 충효다 이거죠. 시내충효라(是乃忠孝). 이극체시도하면(爾克體是道). 네가 능히 이 도를 체득하면. 천유붕이라도(天有崩). 하늘이 무너질지라도. 필선탈면이니라(必先脫免). 반드시 먼저 거기에서 벗어나고 면할 수가 있게 되리라. 뭐 우리 식으로 해석을 하면 부모님을 잘 공경하고 조상님을 잘 공경해서, 더 나아가서 상제님을 잘 공경하면 이번 개벽기에 우리는 살 수가 있으리라 이렇게 해석할 수가 있습니다.
체제의 정비
자, 나머지 4조, 5조, 6조, 7조, 8조교는 넘어 가구요. 그 뒤에 있는 얘기도 삼성기하고 똑같아요. 27쪽의 끝에서 셋째 줄 부터 볼까요. 어시에 명팽우하사 벽토지하시며 성조로 기궁실하시며.(命彭虞闢土地成造起宮室) 고시로 주종가하시며가 빠졌네요. 삼성기에는 그게 있었는데. 고시로 주종가하시며 신지로 조서계하시며 기성으로 설의약하시며 나을로 관판적하시며 희전괘서하시며.(臣智造書契奇省設醫藥那乙管版籍羲典卦筮) 우장이라고 되어 있었죠 삼성기에는. 여기에는 장으로 제대로 되어 있죠. 장 자가 더 좋아요. 우장병마하시고(尤掌兵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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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비서갑 하백녀하사(納斐西岬河伯女). 비서갑 땅. 비서갑은 송화강입니다. 하백녀라면 그 송화강의 백이라면 책임자예요. 거기 책임자의 따님을 맞이해가지고 왕비로 삼으셔가지고 치잠하시니.(爲后治蠶) 누에를 쳤다. 누에라는 것이 비단 옷을 만드는 건데요. 역사가 굉장히 깊습니다. 우리는 이 중국에 쓰는 황제의 첫 번째 부인이 누조라는 사람인데 누조가 양잠을 가르쳤다. 그럼 황제시대때부터 양잠이 있었다는 겁니다. 굉장히 오랜 역사죠. 순방지치가 희흡사표러라(淳厖之治熙洽四表). 이건 삼성기에서 해석을 했기 때문에 넘어가겠습니다.
시간이 지금 많이 흘러갔는데 진도가 안 나갔어요. 그래서 조금 빨리 하면 28쪽을 보면요. 28쪽 셋째 줄을 보죠. 무오오십일년이라(戊午五十一年). 이게 단군할아버지 88세가 되시던 해입니다. 제명운사배달신하야. 우리 초대단군할아버지께서 운사 배달신에게 명령을 내리셔가지고 설삼랑성우혈구하시고(帝命雲師倍達臣設三郞城于穴口). 삼랑성을 혈구에다가 쌓았어요. 설치했어요. 혈구는 강화도의 옛명칭입니다. 삼랑성은 삼랑이 머무는 성이예요. 삼랑이라면 삼신 상제님을 수호하는, 지키고 보호하는 그러한 핵랑군입니다.
축제천단어마리산하시니(築祭天壇於摩璃山). 제천단을 마리산에 쌓았어요. 제천단은 삼신 상제님께 천제를 올리는 제단을 마리산에 쌓았고 이것이 지금까지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여기 가본 분들도 많이 계실 거예요. 금참성단이 시야라(今塹城壇是也). 이것도 우리가 꼭 기억을 해둬야 되죠. 우리 강화도 마리산에 있는 참성단. 참성단은 위에가 네모나게 되었고요. 밑에가 원으로 되있어요. 지천태괘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것은 언제 쌓았느냐. 연도를 외우기가 어렵잖아요. 간지로도 외우기 어렵잖아요. 그러니까 우리가 초대 단군할아버지가 88세가 되시던 해에. 88세는 따지면 그렇게 나옵니다. 88세 되시던 해에 쌓았다 이렇게 기억을 해두시면 되죠.
부루태자의 오행치수법
그 다음에 갑술육십칠년이라(甲戌六十七年). 이것이 104세 되시던 해 인데요. 이것도 대단히 중요합니다. 제견태자불우하야(帝遣太子扶婁). 우리 초대 단군할아버지께서 부루 태자를 파견했어요. 우리 단군할아버지는 아드님이 네 분이 있었죠. 맏아드님이 부루, 부소, 부우, 부여 네 분의 아드님이 있었어요. 그 맏아들 부루 태자를 파견해서. 여우사공으로. 우사공(與虞司空). 우 임금의 사공이다 이런 뜻이에요. 요순 할 때 순을 성씨를 우라고 하잖아요. 순임금의 사공 벼슬을 하던 하나라의 건국자인 우임금. 이 우임금이죠. 치산치수를 한 이 우라는 사람이 순 임금에게서 사공 벼슬을 했어요. 그러면 우사공은 이 우라는 사람이에요. 우사공과 더불어.
회우도산할새(會于塗山). 도산에서 모였어요. 도산은 지금 절강성 소흥시에 있는 회계산을 얘기합니다. 태자가 전오행치수지법하고(太子傳五行治水之法). 우리 부루 태자가 오행치수지법을 전수했습니다. 그래서 우 임금이 그 법을 전수받아서 치산치수를 했어요. 그래서 그 공덕으로 중국 사람들이 소위 말하는 하나라의 건국자가 되었어요. 그 사람을 하나라의 건국자로 만들어준 분이 우리 부루 태자가 가서 오행치수지법을 전수하심으로부터 그런 공덕을 이루게 되었던 것입니다.
감정국계하야(勘定國界). 나라의 경계를 살필 감, 정할 정. 살펴서 정하니. 유영이주가. 유주와 영주. 두 주가 우리에게 속하고(幽營二州屬我). 정회대제우하야(定淮岱諸侯). 회는 회수입니다. 대는 태산을 얘기하죠. 그러면 이 회수가 지나가는데는 안휘성, 강소성, 저 하남성부터 쭉 흘러가잖아요. 대는 태산, 산동선. 그러니까 그 주위가 전부 우리나라였습니다. 회대에 제우를 정해서. 치분조이이지할새(置分朝以理之). 분조를 두었어요. 분조라는 것은 우리 고려 때 서경에다가 분조를 두고 그랬죠. 명나라 때도 남경에다가 분조를 두었어요. 분조라면 거의 조정에 있는 제도를 거의 갖추어 놓는 거예요. 분조를 두어 다스릴 때.
사우순으로 감기사하다(使虞舜監其事). 우순으로 하여금 그 일을 감독하게 하다. 그러니까 우순이라는 분은 우리 단군할아버지께서 파견한 그 제후들을 총 관리 감독하는 총독이었어요. 중국에 진출한 우리 민족을 동이족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동이라는 개념은 우리의 본래 개념보다는 중국 땅에 진출한 우리 민족들을 얘기한다고 봐야겠죠. 그러한 우리 민족이 제후를 두어 통치할 때 총 제후들을 감독하는 총독의 자리를 순 임금께서 맡고 계셨다 하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댕기의 유래
자, 초대 단군할아버지께서는 이렇게 해서 130세가 되서 돌아가시는데 맨 마지막 구절. 이세 단군 부루 단군 직전에 돌아가셨어요. 그러니까 여상고비하야(如喪考妣). 우리 초대단군할아버지가 130세로 돌아가시니까. 고는 죽은 아비 고 자. 비는 죽은 어미 비 자예요. 자신의 아버지 어머니가 돌아가신 것처럼 슬퍼했다는 거예요 만백성들이. 그리고 봉단기하고. 단기를 받들고 신석으로 합좌경배하야(奉檀旂晨夕合坐敬拜). 아침저녁으로 온 가족이 모여앉아서 공경스럽게 절을 해서 상념불망우회야다(常念不忘于懷). 항상 생각해서 잊지를 않으셨다.
여기에 단기라는 말이 나옵니다. 이 단기에서 댕기라는 말이 나왔다고 볼 수 있는데요. 댕기라는 것이 뭡니까. 어린애들 머리에 빨갛거나 파랗거나 이런 색깔 있는 천을 함께 묶어서 드리운 것을 우리가 댕기라고 얘기하죠. 그러니까 이 댕기는 초대 단군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그 초대 단군할아버지를 추모하는 조기. 우리는 사람이 돌아가면 시커먼 헝겊으로 왼쪽 여기다가 달기도 하고 그러잖아요. 그 당시에 조기를 애들 머리에다가 달아가지고 단군 성조가 돌아가신 것을 추모했어요. 추모한 그 유풍이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는 겁니다. 그렇다고 봐야 되겠죠. 이 단기에서 변형된 말이 댕기고. 이 단기는 초대 단군할아버지가 돌아가셔서 너무 슬프고 어떤 애도의 뜻을 표시하기 위해서 머리에다가 헝겊 같은 것을 애들이 드리웠는데 그것이 바로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는데 단군할아버지를 추모하던 의식이었던 것입니다.
2대 부루 단군
이세 단군 부루 단군인데요. 이제 부루 단군에서 셋째 줄을 보면 설요흥악하니 문화가대진하야(設寮興學文化大進). 문화라는 말이 나와요. 그래서 환단고기를 부정하는 사람은 왜 이런 현대적인 용어가 환단고기에 들어갔느냐. 이런걸 트집을 잡습니다. 문화라는 말이 여기 딱 한번 나와요.
여기서는 사실은 전 구절을 보면 좋은데요. 이세 단군은 넘어가겠습니다. 30쪽에 보면 제천가가 나와요. 넷째 줄에. 어아어아여. 아등대조신의 대은덕은. 배달국 아등이 개백백천천 물망이로다(於阿於阿我等大祖神大恩德倍達國我等皆百百千千勿忘). 어아어아여. 이것이 제천행사를 할 때 우리민족이 부르던 노래입니다. 제천가예요. 이 어아가는 광개토대왕이 적들과 전쟁을 할 때 군사들의 사기를 돋우기 위해서 이 어아가를 불렀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그리고 이 삼년상의 유래가 된 대련, 소련에 대한 얘기도 있고요.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3대 가륵 단군
삼세 단군 가륵으로 넘어가도록 해보죠. 가륵에서는 이 신왕종전지도가 나오는데 이건 좀 어렵구요. 이건 넘어가고. 이 삼세단군에서는 34쪽에 있는 원시 한글 가림토에 대한 얘기를 조금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우리 조선시대 4대 세종대왕께서 한글을 창제했어요. 이 한글을 창제할 때 정인지의 서문에 어떤 말이 있냐면 상형이, 어떤 그 우리의 발음기관을 형상했지만 상형이자방고전이다. 이 글자를 모방했다. 고전을 모방했다. 고전을 모방했다는 얘기를 정인지가 분명히 쓰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훈민정음을 창제할 때 그 자음과 모음은 고전을 모방해서 만들었어요. 그런데 이 고전이 도대체 뭔지를 누구도 알지를 못했어요. 그런데 이 환단고기가 나온 뒤에 이 38글자에 가림토 문자가 바로 고전이라는 것을 우리는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대마도에 아히루라는, 아비류라고 한문으로 되어 있는데 아히루라는 집에서 한글이 막 출토가 되었어요. 일본에는 신사가 많잖아요. 옛날 오래된 신사에서 한글이 나옵니다. 실지로 나와요. 그러니까 일본 놈들은 세종대왕이 만든 한글은 일본에서 전해준거다. 이렇게 얘기를 하고 있어요. 인도의 구자라트라는 주에 가면 우리 한글과 비슷한 글자를 쓰고 있습니다. 한국 사람들이 가면 우리말로 간판을 읽고 다닌다고 그래요. 비슷하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게 3세 가륵 단군때 이 원시 한글이 만들어져가지고 일본은 뭐 당시에 다 우리영토였잖아요. 이렇게 해서 인도에도 전파가 되고, 일본에도 전파가 되고 이렇게 해서 이 원시한글에서 훈민정음이 나오게 되었던 겁니다. 그런데 바로 이 훈민정음은 이 가림토는 말이에요. 첫 번째도 점. 점을 찍고 이렇게 해서 이렇게 시작하잖아요. 이게 뭡니까. 천지인 아닙니까. 그러니까 우리 한글에는 천지인의 원리가 들어있어요. 천지인 삼재 사상이 들어있습니다. 제일 앞에 있는 것은 모음이죠. 두 번째, 세 번째 것은 자음 아닙니까. 모음과 자음의 결합이라는 음양론이 들어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 휴대폰을 보면 문자 메시지를 보내고 있는데 이렇게 문자 메시지를 잘 보낼 수 있는게 한글이기 때문에 이렇게 가능하다는 겁니다. 어쨌든 이 삼랑을보륵이라는 사람이 가림토 문자를 3세 단군 가륵 때 만들었습니다.
5대 구을 단군
자, 4세 단군 오사구는 넘어 가구요. 그리고 5세 단군 구을은 좀 살펴보겠습니다. 5세 단군 구을에는 37쪽에 정축 십육 년이라. 거기를 한번 보죠. 정축십육년이라. 친행장당경하사(丁丑十六年親幸藏唐京). 친히 행이라는 것은 임금님께서 어디를 갈 때는 이 행이라고 씁니다. 임금님께서 행차하시는 것은 이 행이라고 그래요. 친히 장당경을 가셨어요. 요령성 지금의 개원현. 장당경 아사달을 가셔서 봉축삼신단 하시고(封築三神壇). 삼신 상제님께 천제를 올리는 삼신단을 봉해서 이렇게 쌓았어요. 그리고 다식환하하다(多植桓花). 환화를 많이 심으시다. 환하는 무슨 꽃입니까. 진달래예요. 진달래를 많이 심으시다. 그래서 우리 도모님에 진달래로 된 게 있을 거예요 배경이.
칠월에 제남순하야(七月帝南巡). 칠월 달에 5세 구을 단군께서 남순하야. 남쪽으로 순행을 해서. 역풍류강하고. 풍류강을 지나고. 도송양하야(歷風流江到松壤). 송양 땅에 이르셔서. 득질심붕하시니(得疾尋崩). 병을 얻어서 심은 이에 심 자예요. 이에 돌아가시니. 병을 얻어서 이에 돌아가시니. 장우대박산하다(葬于大博山). 대박산에다가 장례를 지내다. 이것이 바로 북한의 단군릉입니다. 풍류강이라는 것은 지금 북한의 강동읍에 동북쪽에 흐르는 비류강을 얘기하구요. 송양이 강동현의 옛명칭입니다. 그리고 대박산은 지금도 대박산이라고 그래요. 지금의 북한의 단군릉이 있는 그 산이 대박산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이 5대 단군께서 하얼빈에 계시다가 남쪽으로 순행을 와서 평양까지 오셨어요. 평양 동쪽이거든요. 동쪽에 단군릉이 있는데 거기서 돌아가셨어요. 이때가 여름 아닙니까. 7월이라고 그랬으니까 여름에 시체를 가지고 옮길 수가 없어요. 그러니까 아마 그 자리에다가 매장을 한 것 같습니다. 그러면 북한에서 이 단군릉을 지금 뭐 북한에서 이 1994년에 대대적으로 보수를 해가지고 엄청나게 꾸며놓았잖아요.
북한의 단군릉
그럼 이 단군릉을 조작을 했느냐. 아닙니다. 조선시대의 10여개의 문헌에. 예를 들어서 1530년에 완성된 신증동국여지승람이라든가 허목이 지은 동사라든가 숙종실록이라든가 정조 실록, 또는 유형원의 여지지, 이긍익의 열려실기술. 이런 모든 책에 평양 동쪽 강동군에 단군의 무덤이 있다 하는 기록이 무수하게 많이 나옵니다. 우리 그 소설가 빙헌 현진건도 자기가 1932년에 단군성적순례를 떠나거든요. 그 때 이 강동군에 단군릉을 참배를 합니다. 그러니까 이 단군릉은 그전부터 원래 있었던 것이지 북한에서 어떤 정통을 조작하기 위해서 최근에 만든 것이 아닙니다. 이 명칭, 송양이라든가 풍류강이라든가 대박산이라든가 이런 명칭이 그 장소와 정확히 일치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북한의 단군릉은 5세 단군 구을 단군의 무덤으로 우리가 추측이 됩니다.
21대 소태 단군
자, 그러면 쭉 넘어가서요. 21대 소태 단군으로 가겠습니다. 왜 그러냐면 22대 색불루 단군 때 송화강 아사달에서 백악산 아사달로 천도를 하잖아요. 그 계기, 그것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52쪽 되겠습니다. 21대 소태단군부터 빨리 보죠. 21세 단군 소태다. 재위오십이년이라. 갑진원년이라. 은주소을이 견사입공하다(甲辰元年殷主小乙遣使入貢). 은나라 21번째 임금인 소을이 견사입공. 사신을 보내서 공물을 드리다. 공물을 바쳤다 이거죠. 고조선 시대에는 중국에서 은나라가 다 우리나라한테 공물을 바칩니다. 경인사십칠년이라. 은주무정이. 22번째 임금인데요. 기승귀방하고(庚寅四十七年殷主武丁旣勝鬼方). 이미 귀방을 이기고. 우인대군하야(又引大軍). 또 대군을 이끌어서. 침공색도영지등국이라가(侵攻索度令支等國). 색도국이라든가 영지국이라든가. 색도는 이건 뭐 산동성 임치에 있었다 그러고요. 그리고 영지는 옛날에 고죽국자리인 지금의 하북성 천하현 근처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이건 북쪽이고 이건 남쪽이죠. 등국을 이렇게 침공을 하다가. 위야대패하고. 우리에게 크게 패하고. 청화입공하다. 강화를 청하고서 공물을 드리다(爲我大敗請和入貢).
임진사십구년이라. 개사원욕살고등이(壬辰四十九年蓋斯原褥薩高登). 바로 이 개사원이 장당경 아사달이 있는 개원지방이라고 보면 되겠습니다. 개사원욕살고등이라는 사람이. 잠사. 군대를 몰래 움직이는 것을 잠사(潛師)라고 그러죠. 군대를 몰래 움직여서. 습귀방멸지하다(襲鬼方減之). 귀방을 습격해서 멸하다. 일군양운이국이. 일군국과 양운국 두 나라가. 견사조공하다(一群養雲二國遣使朝貢). 사신을 보내서 조공을 바치다. 두려우니까 그렇게 했다는 것이죠.
어시에 고등이. 이에 고등이라는 사람이. 수확중병하야(於是高登手握重兵). 손에 아주 그 강병을, 많은 군사를 장악해서. 경락서북지하니(經略西北地). 서북지방을 경락하니. 세심강성이라(勢甚强盛). 형세가 심히 강성한지라. 견인하야. 사람을 파견해서. 청위우현왕이어늘(遣人請爲右賢王). 우현왕이 되기를 청했어요. 이 우현왕의 제도는 흉노의 좌현왕, 우현왕 제도가 있었어요. 그러니까 우현왕이라는 것은 다음에 후계자가 되기를 청하는 겁니다 이것은. 다음 단군이 되기를 청하거늘.
제탄지불륜이라가(帝憚之不允). 그 소태 단군께서 그것을 꺼려서 윤허하지 아니하다가. 누청내허하고(屢請乃許). 자주 청하자 이에 허락하고. 호위두막루라(號爲豆莫婁) 그랬다. 고등을 두막루라 그랬는데요. 이 두막루는 뜻이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내용은 모르겠어요. 왜냐하면 고두막한을 또한 두막루라고 그랬거든요. 고등이라는 분을 두막루라고 하고. 우리가 고두막한이라면 북부여의 5대 단군. 한나라를 물리친 다섯 번째 단군. 다음시간에 우리가 공부 할 텐데 그 때 고두막한을 두막루라고 했는데 이 고등도 두막루라고 했다는 겁니다.
자, 을미 오십이년이다(乙未五十二年). 이 을미오십이년이 1286년이에요. 그러니까 이때까지 송화강 아사달 시대가 진행이 되는 겁니다. 우현왕 고등이 흥하고. 우현왕 고등이 훙하고(右賢王高登薨) 그 손자, 고등의 손자인 색불루가. 습이우현왕하다(基孫索弗婁襲爲右賢王). 자, 그 직위를 세습해서 우현왕이 되었어요. 우현왕이라는 것은 다음 단군자리를 노리는 그것과 가장 가까운 그런 자리예요. 재순수국중이라가(帝巡狩國中). 21대 소태단군께서 나라 가운데를 순수하다가. 남지해성하야(南至海城). 남쪽으로 해성에 이르러서. 해성은 요령성 영구시 북쪽에 해성이라는 현이 있습니다.
색불루의 왕의계승
대회부로하야(大會父老). 크게. 부로들을 모아놓고서. 제천가무하고(祭天歌舞). 하늘에 천제를 올리고 노래하고 춤추고. 잉소오가하야(仍召五加). 오가를 불렀어요. 오가는 밑에 있는 최고의 벼슬아치들입니다. 여지의전위할새(與之議傳位). 그들과 더불어 전의를 의논했어요. 자위노권우근이라 하고(自謂老倦于勤). 스스로 여기기를 나는 이제 늙어가지고 부지런히 일을 하는데는 권태롭다. 이렇게 해가지고. 욕위정어서우여(欲委政於徐于餘). 서우여라는 사람에게 정치를 넘겨주려고 했어요. 즉, 다음 단군을 서우여라는 사람에게 넘겨주려고 했어요. 22대 단군 자리를. 그리고 환살수백리이봉지하야(環薩水百里而封之). 서우여를 살수 둘레 백리 땅을 봉해주었어요. 살수는 대단히 중요한 얘기인데 지금 살수 많이 나오잖아요. 바로 해성 그 밑에 있습니다.
명위섭주하고. 명해서 섭주로 삼고(命爲攝主). 호왈 기수(號曰奇首)라. 기수라고 불렀어요. 우현왕이 문지하고(右賢王聞之). 이 때 우현왕은 누굽니까. 색불루죠. 고등은 벌써 돌아가셨고 그 손자인 색불루가 아니 다음 단군은 내가 차지해야 하는데 지금 소태 단군은 서우여한테 주려고 그래요 22대 단군자리를 그러니까. 견인하야. 사람을 파견해서. 권제지지한데(遣人勸帝止之). 21대 소태 단군을 권해서 그치게 한데. 제종불청이라(帝綜不聽). 고집이 있습니다 소태 단군도. 제가 끝내 듣지 않는 지라. 어시에 우현왕이(於是右賢王). 이에 우현왕이. 솔, 좌우의 측근들 및 엽호. 사냥꾼 수천 명을 거느리고서. 수즉위우부여신궁하시니(率左右及獵戶數千遂卽位于夫餘新宮). 부여신궁에서 즉위를 하셨어요. 내가 22대 단군이다 이렇게. 바로 이 부여신궁이 농안 지방에 있는 백악산 아사달입니다. 그래서 이 송화강 아사달에서 백악산 아사달로 천도를 하게 되는 과정이 이렇게 해서 되는 겁니다.
제부득이하야(帝不得已). 21대 소태 단군이 부득이해서 전옥책국보하고(傳玉冊國寶). 아마 단군께서 보물로 가지고 계신 옥책이라든가 국보를 전해주고. 폐서우여하야. 서우여를 폐해서 위서인하고(廢徐于餘爲庶人). 서인으로 삼고. 제은허아사달하니. 21대 단군은 아사달에 은둔을 하시니. 이종하다(帝隱於阿斯達以終). 돌아가시다. 시세에 백이숙제가 역이고죽군지자(是歲伯夷叔齊亦以孤竹君之子). 고죽군의 아들로서. 손국이도하야(遜國而逃). 나라를 사양하다가 도망을 해서. 거동해빈하야. 동해빈에 거해서. 역전자급하다(居東海濱力田自給). 힘써서 농사를 지어서 자급자족을 하다. 백이숙제 얘기를 하려면 길기 때문에 생략을 하구요.
22대 색불루 단군
자, 이렇게 해서 22대 색불루 단군이 단군의 자리를 차지하게 되는데 유일하게 47대 단군에 있어서 힘에 의해서 어떤 역성혁명이 일어나는 것은 이것이 유일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소태단군의 마음이 얼마나 쓰렸겠습니까. 그래서 우리가 가장 쓴 나무를 소태나무라고 하고 쓴 것을 얘기할 때 소태처럼 쓰다고 얘기하는데 이 소태단군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봐야 합니다. 자기는 서우여에게 22대 단군자리를 주려고 했는데 힘에 의해서 무릎을 꿇고 색불루가 자리를 차지하니까 쓰라린 마음을 가눌 길이 없었고 백성들이 아마 그 마음을 다 알았기 때문에 소태라는 말은 쓰디쓴 것을 상징하는 말이 되었습니다. 22대 단군 색불루인데요. 색불루 단군은 하나만 볼까요.
54쪽. 병신원년이다(丙申元年). 이것이 1285년이에요. 왜냐하면 1285년, 1286년은 우리가 송화강 아사달에서 백악산 아사달로 수도가 바뀌는 과정입니다. 제명. 색불루 단군께서 명해서. 수축녹산하고(帝命修築鹿山). 녹산을 수리해서 건축을 했다. 이것은 백악산 아사달입니다. 개관제(改官制). 관제를 고치다. 추구월에. 가을 구월에 친행장당경하사(秋九月親幸藏唐京). 친히 장당경에 가셔가지고. 행이라는 것은 임금님이 가시는 것을 행 자를 쓴다고 했잖아요.
왜 장당경을 가냐 하면, 장당경은 우리가 위치를 잘 모른다고 놓고요. 이 묘사고등왕(立廟祀高登王)하다. 입묘. 사당을 세워서 고등왕을 제사하다. 그럼 고등왕은 어디 사람이냐면 개사원욕살이었어요. 앞의 그 고등왕이 개사원욕살이라고 나오잖아요. 욕살이라는 것은 지방장관이라는 뜻입니다. 고구려 시대 때도 욕살이라는 호칭이 많이 나오거든요. 그러니까 개사원이 곧 장당경이예요. 이것이 바로 요령성 개원시입니다.
43대 물리 단군
전부 넘어 가구요. 43세로 넘어가죠. 세 번째 장당경 아사달로 넘어가게 되는 그런 과정을 보기 위해서요. 43세 단군, 물리단군. 66쪽으로 넘어가겠습니다. 경진원년이라. 을묘삼십육년이라(庚辰元年乙卯三十六年). 융안엽호우화충이(隆安獵戶于和沖). 융안은 지금 장춘지방이라고 하는데요. 융안 땅의 엽호인, 사냥꾼인 우화충이라는 사람이. 자칭장군하고(自稱將軍). 스스로 장군이라고 칭하고. 취중수만하야(聚衆數萬). 무리 수만 명을 모아서. 함서북삼십육군이어늘(陷西北三十六郡). 서북쪽에 있는 36군을 함락시키거늘. 제견병불극이라(帝遣兵不克). 단군께서 군사를 보냈지만 우화충을 이기지 못했습니다. 이 우화충의 역모사건으로 의해서 고조선이 결국 쇠약해지기 시작합니다.
동에. 겨울에. 적이 위도성급공이어늘(冬賊圍都城急攻). 이 우화충의 역적들이 도성을 포위해서 급히 공격하거늘. 제여좌우궁인으로(帝與左右宮人). 단군께서 좌우에 있는 궁인들과 더불어. 봉묘사주하야(奉廟社主). 묘사주면 묘주와 사주. 사당에 있는 신주와 사직단에 있는 신주. 묘주와 사주를 받들어서. 부주이하다가. 배를 타고 내려가다가. 지해두하야. 해두에 이르렀다. 해두는 송화강과 흑룡강이 서로 만나는 동방현을 얘기합니다. 이 해두라는 것은 뒤에 또 나와요. 해두하야 심붕하다(浮舟而下之海頭尋崩). 심은 이에 심 자라 그랬죠. 이에 내 자와 같습니다. 이에 돌아가시다.
시세에 백민성욕살(是歲白民城褥薩). 이 해에 백민성의 지방장광인 구물장군께서. 이명기병하야. 명령으로써 군사를 일으켜서. 선거장당경하니(丘勿以命起兵先據藏唐京). 먼저 장당경을 점거했어요. 장당경은 개사원이고 지금의 요령성 개원시입니다. 고등이 욕살로 있었던 곳이죠. 고등왕이. 구지사가. 이 아홉 지방의 군사가. 종지하고(九地師從之). 그 백민성 욕살 구물을 쫒았어요. 동서압록십팔성이(東西鴨綠十八城). 동압록은 지금의 압록강이구요. 서압록은 지금의 요하입니다. 그런데 이 압록이라는 것은 송화강도 압록강이라고 그러고 대단히 압록강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여기서 동서압록이라면 동압록강은 지금의 압록강이고. 서압록강은 요하라고 보면 되겠습니다. 개견병내원하다(皆遣兵來援). 모두 군사를 보내서 응원을 하게 되었습니다.
44대 구물 단군
43세 물리 단군은 우하충이 반란을 일으켜서 백악산 아사달을 빼앗겼어요. 그래가지고 묘주와 사직의 신주를 안고서 저쪽 동쪽으로 동쪽으로 도망을 가서 흑룡강과 오소리강이 만나는 그 해두에서 돌아가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44세 구물 단군을 보시면. 병진 원년이라. 그래서 426년까지는 백악산 아사달 시대구요. 이 44세 단군 구물 병진원년부터. BC425년인데요. 이때부터 장당경 아사달 시대가 열리는 겁니다.
삼월에 대수가 침도성하니(三月大水浸都城). 큰물이 도성을 침범했어요. 그러니까 백악산 아사달에 물이 그냥 침범을 하니까. 적이 대란이다. 그 우하충의 반역집단이 수도를 차지하고 있었잖아요. 혼란이 되었어요. 적이 대란이다(賊大亂). 구물 단군이 솔병일만하야(丘勿率兵一萬). 군사 일만을 거느리고서. 왕토지하니(往討之). 가서 치니. 적이부전자괴어늘(賊不戰自潰). 우하충의 도적들이 전쟁을 하지도 않고서 스스로 무너지거늘. 수참우하충하다(遂斬于和沖). 드디어 우하충의 목을 베다. 어시에 구물이. 이에 구물이. 위제장소추하야(爲諸將所推). 모든 장수들의 추대를 받는 바가 되어서.
내어삼월십육일에(乃於三月十六日). 이에 3월 16일에. 우리가 3월 16일이라면 모든 단군 성조들이 삼신 상제님께 천제를 올리는 영고제를 행하던 날이 언제냐 하면. 부여에는 영고가 있었다. 그 영고를 행하던 때가 3월 16일이예요. 그래서 우리가 이 3월 16일을 대영절이라고 합니다. 크게 삼신 상제님을 맞이해가지고 천제를 지내는 날이다. 이런 뜻이죠. 대단히 의미 있는 날이죠. 뭐 가장 큰 국경일이었죠. 고조선 시대에는 3월 16일이. 축단제천하고(築壇祭天). 단을 쌓아서 천제를 올리고. 수즉유장당경하사(遂卽位于藏唐京). 드디어 장당경에서 올랐어요.
대부여와 삼조선 시대
22대 색불루 단군은 백악산 아사달에서 단군 자리에 오르시고 44대 구물 단군은 장당경에서 단군의 자리에 오르사. 개국호위대부여하고(改國號爲大夫餘). 국호를 바꾸어서 대부여라고 했다는 겁니다. 이제부터 부여가 나오게 되는 거예요. 원시부여. 개삼한위삼조선하니(改三韓爲三朝鮮). 삼한이라는 것을 고쳐서 삼조선이라고 호칭을 했어요. 그런데 이것은 우리가 초대 단군부터 21대 단군까지는 삼한 관경제를 삼한이라고 호칭을 했고요. 삼조선이라고 호칭한 것은 색불루에서부터 시작을 합니다.
색불루 단군에서부터 시작을 하고 여기에서 다시 삼조선이라고 한 것은 조금 개념이 달라지는데. 이때의 삼조선이라는 개념은 병권이 분산이 되는 거예요. 22대 색불루 단군에서는 삼조선이라고 했지만 병권은 대단군이 가지고 있고 부단군들은 명령을 받았는데 44대 구물 단군에서는 진조선, 번조선, 막조선이 있을 때 이제는 병권은 구분이 됩니다. 왜, 고조선이 2096년이라는 장구한 역사를 가지게 되었느냐. 그것은 삼한광경에 있었어요. 이제 삼한관경제가 깨지게 되는 겁니다. 그러면서 서서히 고조선이 멸망의 길로 접어들게 됩니다.
자시로. 이로부터. 삼조선이 수봉단군하야(自是三朝鮮雖奉檀君). 삼조선이 비록 단군을 받들어서. 위일존임리지제나(爲一尊臨理之制). 하나의 존귀한 단군께서 임하여 다스리는 제도는 되지만. 대단군을 가장 높은 분으로 받들기는 받들지만. 유화전지권은(惟和戰之權). 적과 싸우다가 전쟁을 그만두는 강화를 맺는다거나, 또는 전쟁을 하거나 이런 권한은. 부재일존야라(不在一尊也). 이제는 일존에게 있지를 않습니다. 이제는 번조선의 임금이나 막조선의 임금이 병권을 스스로 구사하기 시작합니다. 칠월에 명개축해성하야(七月命改築海城). 해성을 개축하야. 위평양하야(爲平壤). 평양으로 삼고. 이것도 기억을 해두세요. 해성. 해성이라면 요령성 영구시 위에 지금 해성시가 있는데요. 그 해성시를 평양이라고 불렀다는 겁니다. 지금의 대동강 평양이 아닌 거기를 평양이라고 불렀다는 것을 기억하시고. 작이궁하다(作離宮)
47대 고열가 단군
그 다음에 마지막 고열가 단군을 보고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47세 단군 고열가. 71쪽으로 넘어가서요. 71쪽 맨 마지막 줄. 임술오십칠년이라. BC239년입니다. 여러분들은 기억을 해 두실 필요가 있어요. BC239년 임술 년이 해모수가 북부여를 건국한 해이고, 그 다음해인 BC238년이 고열가 단군이 단군의 자리를 버리고 도를 닦기 위해서 산속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고조선의 멸망은 BC238년으로 잡습니다.
[Time 01:30]
그러니까 2096년이요 BC2333년에서 BC238년을 빼면 그래서 2096년이 되거든요. 그래서 BC238년 까지라는 거예요. 여러분들이 BC2333년 까지는 정확히 기억하시는데 언제 끝나느냐. BC238년이에요. 그래서 2096년이 됩니다. 그런데 그 전 해에 해모수께서 웅심산에서 4월 8일에. 4월 8일이 중요해요. 지금은 석가모니가 오신 날이라고 석탄일이라고 행사를 하고 있지만 이것은 우리나라 연등회를 고려시대 때 4월 8일 날 했어요. 그것은 불교하고는 상관이 없고 해모수가 나라를 세운 4월 8일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봐야 합니다.
강우웅심산하니(降于熊心山). 웅심산에서 내려오시니. 웅심산은 지금의 길림성 서란현입니다. 기병하야. 군사를 일으키니. 기선은 고리국인야라(起兵其先膏離國人也). 그 조상은 고리국 사람이다. 이 고리를 고구려라고도 합니다. 고리. 우리가 지금 고구려라고 할 때 려 자를 실제로는 리 로 읽어야 한다는 것이죠. 원래 음은 리로 읽어야 하는데 지금은 전부 고구려 하니까 려로 하지만 리라고 읽어야 합니다. 그러면 고구리나 고리나 같죠. 고구려의 어원이 여기서 시작하게 됩니다.
BC238년이에요. 계해오십팔년이라 제인유부단하사(癸亥五十八年帝仁柔不斷). 이 고열가 단군은 너무 어질고 부드럽고 그래서 과단성이 부족했어요. 영다불행하고(令多不行). 명령이 대부분 행해지지 않고. 제장시용하야(諸將恃勇). 모든 장수들이 용맹만을 믿고서. 화란이빈기하니(禍亂頻起). 화란이 자꾸 일어나며. 국용이 불부하고(國用不敷). 나라 살림살이도 부족했어요. 민기가 익세라. 삼월제천지석에(民氣益哀三月祭天之夕). 3월 달에 제천한 저녁에. 당연히 3월 16일이겠죠. 3월 16일 천제를 지낸 날 저녁에.
여오가로(與五加議曰). 오가 대신들과 더불어. 의왈. 이렇게 죽 해서 본인이 이제 나는 임금 자리를 버리고 입산수도하겠다. 산속에 들어가서 수도해서 신선이 됩니다. 그래서 BC232년까지 6년 동안 오가가 공화정을 펼치게 됩니다. 오가가 단군이 없이 공동으로 통치를 해요. 그걸 공화라 하죠. 그러다가 232년에 해모수가 와서 접수를 해요. 이렇게 해서 완전히 북부여의 시대가 열리게 됩니다.
해모수의 북부여 건국
자, 그러면 마지막 구절만 한번 볼까요. 72쪽에 마지막 줄. 개북부여지흥이(蓋北夫餘之興). 대개 북부여의 흥한 것이 이것으로부터 시작되었고. 고구리는 내해모수지생향야라(始此而高句麗乃解慕漱之生鄕也). 해모수의 고향땅이었다. 고로 역칭 고구려야라(故亦稱高句麗也). 그래서 북부여를 고구려라고 했다는 거예요. 이게 지금 해모수가 북부여를 건국하는데 해모수의 원 고국이 고구려였기 때문에 북부여를 고구려라고 했다. 그래서 북부여를 원시 고구려라고 합니다. 그리고 진짜 고구려를 본 고구려. 그리고 대진국을 후 고구려.
단군기원 원년무진으로 지금상천조후십이년계묘(檀君紀元元年戊辰至今上踐祚後十二年癸卯). 이것이 1363년이거든요. 그래서 범삼천육백십육년(凡三千六百十六年也)이라고 했는데 이것이 잘못되었어요. 그러면 우리가 한번 따져 볼까요. BC2333년에서부터 행촌 이암 선생이 단군 세기를 쓰는 1363년. 그리고 다음 해 돌아가시죠. 1363년을 더하면 3696년이 됩니다. 그런데 여기에 금상천조. 금상이라면 공민왕이죠. 공민왕이 왕위에 오른지 이후 12년 되는 계묘. 계묘는 1363년이 딱 떨어지잖아요. 범삼천육백십육년이 아니라 구십육 년. 구 자가 빠졌다고 봐야죠. 시세시월삼일에 홍행촌수는 서우강도지해운당하노라.(歲十月三日紅杏村臾書于江都之海雲堂) 강화도의 해운당. 자기가 거처하는 집을 해운당이라고 불렀어요. 아마 바다 안개가 자욱하게 껴서 해운당에서 내가 10월 3일 날 이 단군세기를 쓰노라. 이렇게 해서 단군세기는 끝이 나고 있습니다.
첫댓글 윤창렬교수는, 증산도의 대표 강사입지요.. 아주 지루한 강의를 잘도하시는~~.. 이런분이 증산도를 뒤로하고 나오셔야할텐데~~....증산도작은교주의 둘도없는 충복이던데,,,,어떤 역할을 하실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