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부의 흔적이 그리워서
/곽경옥
둘째 딸에게서 전화가 왔다. 오늘 파주교육청 출장이 있어 가는데 이모집을 다녀오고 싶단다. 엄마는 서울서 이모 집으로 먼저 가 있으라고 했다.
6월이 되면서 TV에서 전쟁 이야기가 자주 나왔다. 큼직하게 전쟁사가 뜰 때마다 이모 생각이 났단다. 고령의 이모를 생각할 때마다 무언가해주고 싶다고 했다. 마침 파주교육청 출장이 있어 파주 가는 길에 이모를 뵙고 올 계획이니 엄마는 미리 가 있으라는 것이었다. 딸의 생각이 기특하고 고마웠다. 나는 파주 적성 언니 집으로 향했다. 5월이 지나고 6월로 들어선 산천의 초목이 싱그럽고 아름다웠다. 깊은 산골, 감악산계곡을 들어서면서 버스길 좌우의 산과 산의 우거진 가지들이 맞닿아 초록 터널을 달리고 있었다. 싱그러운 숲의 향기, 초록의 향기는 심신의 여유로움과 행복까지 더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숲속의 편안한 쉼이었다. 나만의 특권 같았다. 지하철과 버스를 갈아타며 두 시간 반이나 걸려 언니 집에 도착했다. 장학사인 딸은 이미 와 있었다. 늘바쁘게 사는 딸, 노트북 앞에서 무엇인가 하면서 다른 방으로 가서 좀쉬라는 손짓을 했다.
다음 날 아침, 오늘은 이모를 위해 연기를 내었단다. 이모와 엄마에게 봉사할 계획이니 무엇이든 시켜만 달라며 씽긋 웃었다. 지난번 친구에게 들었었던 연천 호로고루공원 보리밭 축제를 가고 싶다고 했다. 가까운 곳에서도 보리밭 축제를 하고 있다는 것을 나는 전혀 몰랐다. 몇년 전 고창 청보리밭 축제에 갔던 기억을 잊을 수 없었다. 가까운 곳이니 언니에게도 보여주고 싶었다. 딸은 휴대폰 검색을 하더니 가깝고 좋다고 했다. 자기도 오랜만에 콧바람 좀 쏘이게 되었단다. 96세의 이모에게 유쾌한 하루를 만들어 주겠다고 했다. 화창하고 상쾌한 날씨가 한몫 더 했다. 덥지도 않고 춥지도 않은 화창한 봄날. 우리 자매의 애틋함을 잘 아는 딸이 쉽지 않은 시간을 내 준 것에 더욱 고마웠다.
생각 없이 늘 지나쳤던 장남교를 오늘 처음으로 건너게 되었다. 북쪽 장단에서 남한을 이어준다고 장남교란 이름을 지었단다. 넓지 않은 임진강 남과 북을 이어놓은 장남교를 건넜다. 넓은 벌이 시원하게 펼쳐졌다. 깔끔하게 정리된 논에는 아기 모들이 예쁘게 자리를 잡아 살래살래 자신을 드러내고 있었다. 보리밭은 보이지 않았다. 나지막한 언덕에 끝없는 잔디밭으로 펼쳐져 있었다. 주차하고 잔디밭을 지나 임진강을 향해서 걸었다. 우리가 기대했던 보리밭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어린 해바라기와 코스모스가 넓은 벌을 채우고 있었다. 커다란 고무호스가 분수처럼 물을 뿌렸다. 맑은 햇살에 무지개가 피어올랐다. 올해는 보리는 심지 않았고, 7~8월 해바라기꽃 축제를 계획하여 준비하는 것이라 했다. 조금은 아쉬웠지만, 부모님께 이곳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던 곳이었기에 오히려 부모님을 보듯 정감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는 임진강줄기를 따라 걸었다. 강바람 산바람이 어우러져 최상의 기분이었다.
이게 웬일! 바로 앞 강 건너편으로 우리 문중 사당 지붕 한 부분이 보였다. 우리 고향 마을이었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나의 고향이 눈앞에 선명하게 드러났다. 강북에서 남쪽 우리 마을을 바라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어머니 아버지에게 늘 들었던 고랑포, 아버지가 자주 오가던 랑포 오일장, 갑자기 아버지 체취가 느껴졌다. 전쟁 전 부모님과 살던 집터를 바라보니 마음이 시리고 아파졌다. 한국전쟁 전, 어머니와 아버지가 늘 다니시며 먹거리와 생필품을 사 오시던 그곳이었다. 마치 북모님을 뵌 듯 따뜻한 정이 전신으로 스며들었다.
우리는 강가를 따라 걸었다. 널찍하고 편안한 둘레길. 언니는 나이에 맞지 않게 앞에서 부지런히 걸었다. 목표를 향해 걷는 것처럼. 빠른 걸음이었다. 지팡이에 몸을 의지하고 걸었다. 목표를 두고 가는 것 같았다. 삶의 모두를 가슴에 묻고 살아온 노인임을 알기에 더욱 쓸쓸하게 보였다. 잠시 잠시 멈춰 사방을 둘러보며 걸었다. 언니는 쉼터 벤치에 앉았다. 우리도 양옆으로 따라 앉았다.
쓸쓸한 그 표정이 더 슬프게 형부와 헤어진 당시의 이야기를 풀어 놓았다. 어느 날 갑자기 북한 공산군이 서울을 탈환했다고 했다. 우리 지역에서는 인민군이 언제 지나갔는지조차 몰랐단다. 어느 날 젊은이들을 면사무소로 불러들였다. 신혼인 그녀의 남편도 다른 많은 젊은이들과 함께 모였다. 어둑어둑해지자 모인 청년들을 모두 차에 태웠다. 아무 설명도 없었으나 어느 누구도 묻거나 따지지도 않았다. 겁에 질려 모두 차에 올랐다. 여기저기에 북쪽으로 가는 것이라 수군거렸다. 같은 마을 친구와 무언의 신호를 보내기도 했다. 앞이 안 보이는 캄캄한 밤길로 청년들을 태운 자동차는 흙먼지를 피우고 달렸다.
형부와 친구는 북으로 가느니 차라리 죽겠다는 각오를 하였단다. 둘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차에서 뛰어내렸다. 자동차가 속도를 줄이는 듯했다. 총소리가 났다. 무조건 엎드렸다. 다행히 자동차는 그대로 달렸다. 그들은 숲속으로 기어서 달리고 달렸다. 아래 고랑포, 자주 오가던 친척 집으로 들어갔다. 다음날, 그들은 커다란 늙은 호박을 두어 개씩 지게에 지워 늙은 농부로 가장을 하고 강을 건너왔다. 그의 이야기는 긴 한숨으로 이어졌다. 수십 년의 한을 모두 토해 내는 듯 그렇게 구사일생으로 형부는 돌아왔다. 하지만 점점 치열해지는 전쟁에 결국 우리 국방군으로 참전하게 되었고, 그것이 영원한 이별이 되었단다. 달랑 전사통지서 한 장, 그것이 그의 전부였다. 유골도 골분도 흔적 없는 종이 한장뿐이었다.
형부의 흔적이 그리워서 네 발 지팡이에 몸을 의지하고 그렇게 멍하게 서 있는 이 언니라도 좀 오래 버텼으면 좋겠는데 모시고 온 둘째 딸도 말을 잃었다.
곽경옥
<<인간과문학>> 수필등단
수필집 <<무쇠종>>
제1회 아침문학작품상(수필 부문)
2023년 한국예술복지제단 예술활동비 수혜
인간과문학회, 아침문학회 회원
kyoungok6272@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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