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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가 시작되었습니다만 아직도 개학은 멀었네요. 그동안 게으름 때문에 잠시 쉬었던 한자 공부 계속 해보겠습니다. 유기(鍮器)입니다. 우리 말로는 놋그릇이라고 하지요. 안성에서 이 유기를 아주 잘 만들었다고 해서 안성맞춤이란 말이 생겨났다고 하죠. 요즘 결혼을 하면 양가의 부모님께 이 유기를 많이 선물해준다고 합니다. 이 유기는 우리나라에서 상당히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습니다. 박물관에 가면 많이 볼 수 있는 유물이 바로 바로 이것이라는 것이 이를 증명합니다. 그러나 이 유기는 옛날 사람들에게는, 특히 우리네 세대의 어머니를 위시한 여인들에게는 좋은 추억이 없을 것입니다. 설날이 되면 기와를 곱게 갈아 재를 섞어서 새끼줄을 뭉쳐 이 유기를 닦는 것이 큰 일이었을 정도였으니까요. 이 유기는 아마 연탄가스에 노출되면 가장 색이 잘 변했던 것 같습니다. 대략 주 연료가 연탄일 무렵 사라졌다가 도시가스가 나오면서부터 다시 사용을 하게 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이 사진들의 특징은 뚜껑이 있는 식기들이라는 것입니다. 이는 한자 "합할 합(合)"자로 표현되었습니다. "합할 합(合)"자의 갑골-금문-금문대전-소전 위의 삼각형 부분이 뚜껑을 나타내는 부분이고 아래의 네모 모양은 바로 그릇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합(合)는 뚜껑이 있는 그릇이므로 뚜껑을 덮는다는 동작에서 "합하다"라는 뜻을 나타내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그릇이라는 의미는 완전히 없어졌을까요? 다른 부분을 첨가하여 뜻을 보존하면 됩니다. 그릇은 "皿"으로 나타내었으니 이 합자의 원래 뜻을 나타내는 글자는 바로 합(盒)자로 자연스레 바뀐 것입니다. 반합, 찬합 등의 합자가 바로 이 합(盒)자지요. 그리고 이 합자에는 재미 있는 일화가 하나 있습니다. 주인공은 『삼국지』의 머리 좋기로 유명한 두 사람 조조와 양수입니다. 늘 전쟁터를 누비던 조조의 진영에 지역 주민이 찾아와 요즘으로 치면 치즈 비슷한 연유인 수(酥)를 가져온 것입니다. 그런데 조조는 한 입만 맛보고는 뚜껑을 덮어 봉한 후에 "합(合)"자를 써놓고 나갔습니다. 여러 사람들이 영문을 몰라 어쩔 줄을 모르는데 양수가 먹어도 좋다고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모두 물었죠. "정말?" "책임질 수 있어?" 양수는 이에 "물론, 그런데 한 입씩만 먹어야 해." 그러자 사람들이 "무슨 근거로?"라고 물었죠. 양수는 자신만만하게 웃으며 "여기에 '한 사람(人)에 한(一) 입(口)씩'이라고 적어 놓았잖아."라 하였습니다. 사람들은 그제서야 먹었고 이는 결국 나중에 조조에게 마움을 받아 죽게 되는 한 요인이 되기도 합니다. 참고로 우리나라의 맛있는 과자를 먹다가 중국에 가면 과자 맛이 없죠. 그럴 때는 과자의 포장지에 수(酥)자가 붙은 것을 먹으면 그래도 실망은 하지 않을 것입니다. 여기서 수(酥)자는 보통 잼 같은 의미로 쓰이는 것입니다. 이 뚜껑과 그릇 사이에 음식물을 넣으면 어떤 모양이 될까요? 바로 아래와 같은 모양이 되겠지요. 회의 금문-금문대전-소전 모일 회자는 합(合)의 사이에 음식물이 들어 있는 모양입니다. 이 음식은 아주 얇게 저민 생고기입니다. 이것은 우리는 뭐라 그러죠? 예, 바로 "회(膾)"라고 합니다. 그런데 회 역시 뚜껑을 덮으면 합(合)과 똑같이 만난다는 뜻이 되고 맙니다. 곧 회합(會合)이 되는 것이지요. 참고로 회(會)는 A와 B가 C라는 지점에서 만난다는 뜻입니다. 만나는 당사자들이 다 움직인다는 것을 말하죠. 그리고 회는 생고기라는 뜻을 상실해서 다시 고기를 나타내는 육달월(月)을 추가하여 지금은 회(膾)로 표기를 합니다. 위의 그릇은 저 앞의 모습과는 좀 다르죠. 재질을 가지고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닙니다. 밑에 굽이 있는 점이 다르다는 것이지요. 아마 식탁이나 상에 앉아서 밥을 먹는 문화가 일찍부터 생겨나 굽이 점점 짧아져서 급기야 없어졌겠죠. 아마 맨바닥에서 밥을 먹던 시절에는 다음과 같은 사진의 그릇을 사용해야 했을 것입니다. 이 정도는 되어야 아마 밥을 먹을 때 좀 편안함을 느끼겠죠? 그런데 여기에 내용물을 넣고 뚜껑을 닫으면 어떤 모양이 될까요? 아마 아래와 같은 모양이 될 것입니다. 굽만 없으면 합(合)이나 회(會)자 같은 모양이 되겠지요. 이렇게 굽이 있는 그릇에다가 내용물(음식)을 넣고 뚜껑을 닫은 모양의 한자는 바로 "밥 식(食)"자입니다. 식(食)의 갑골-금문-소전 음식을 넣고 뚜껑을 닫으면 위 사진처럼 되겠지만 문자로 만들기 위해서는 내용물이 보이도록 표현을 해야 했을 것입니다. 굽 같은 것은 빼고 밥을 먹기 위한 준비를 하려면 첫 번째가 뚜껑을 여는 것이겠죠? 옛날에는 그릇보다 더 높이 밥을 담아주기도 하였는데 그것을 "고봉"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런 쌀밥 고봉은 1년에 딱 한번 생일 때나 먹어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위의 잡곡이 섞은 고봉은 머슴들이 먹는 것이었죠. 이렇게 뚜껑을 벗긴 밥그릇은 아마 "艮"자처럼 썼을 것입니다. 밥을 먹을 때는 어떻게 할까요? 말하나 마나 모두 밥 앞으로 시선을 두고 밥그릇에 바짝 붙어서 먹겠죠. 위의 사진처럼 말입니다. 이렇게 밥그릇에 바짝 다가앉아 시선을 밥으로 향하여 앉아 있는 글자가 바로 "곧 즉(卽)"자 입니다. 곧 즉(卽)자의 갑골-금문-금문대전-소전 그런데 이 글자 역시 "곧" 밥을 먹으려는 모양을 딴 글자라서 지금은 밥을 먹기 위해 다가선다는 뜻은 없어졌습니다. 밥을 다 먹으면 어떨까요? 아마 밥상에서 물러날 텐데 대체로 고개부터 물러나려는 방향으로 먼저 돌린 후 몸이 따라나가겠죠? 이 모양을 형상화한 글자가 바로 "이미 기(旣)"자입니다. 이미 기(旣)자의 갑골-금문-금문대전-소전 제일 마지막 소전은 고개를 "홱"하고 돌리면서 몸까지 완전히 돌아선 모양을 보이는 것 같습니다. 그러면 밥을 중간에 두고 양쪽에서 앉아 먹으면 어떻게 될까요? 송강호와 강동원이 주연한 영화 "의형제"의 한 장면인데 위의 모습처럼 되지 않을까요? 한자에는 이렇게 밥을 중간에 두고 두 사람이 함께 먹는 것을 표현한 한자도 있습니다. 바로 "재상 경(卿)"자입니다. 시선을 나타내는 것을 표현한 부분이 모두 안쪽을 향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재상 경(卿)자의 금문-금문대전-소전 옛날에는 나라끼리 회담을 하거나 맹약을 할 때 나라를 대표하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저렇게 식사를 하면서 얘기를 하였나 봅니다. 그래서 높은 사람들끼리 예의를 지켜가며 함께 식사를 하는 사람들이 "경(卿)"이 된 것이죠. |
첫댓글 확실한 글자의 어원 재미있습니다. 사진까지 곁들이니 내용 100%전달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하영삼의 한자어원사전을 능가하는 재미있고 유익한 책을 만들기를 기대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