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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좌) 파르미지아니 ‘부가티’(부가티자동차와 함께 만든 시계) 3억원대 후반 (중) 율리스 나르덴 ‘알렉산더 더 그레이트 미닛 리피터’ 10억원대 (우) 예거 르쿨트르‘마스터 그랑 트레디션 그랑 컴플리케이션’ 5억원대 |
여성의 명품백 수집에 비하면 남성의 명품시계 수집은 단위가 다르다. 보통 억대이다. 몇억원에서 수십억원짜리도 손목에 차고 다닌다. 그렇다고 아무 시계나 1억원이 넘지는 않는다. 그 시계들은 특수한 기능을 가졌거나, 정말 많은 기능을 한꺼번에 보유하고 있거나, 전 세계를 통틀어 몇 개밖에 없는 등 보편 타당한 이유를 가지고 있어야 가격표에 ‘0’을 8개 이상 붙일 수 있다.
억! 소리 나는 시계들은 어떤 것일까. 국내에서 판매되고 있거나, 원한다면 언제든 스위스나 독일 본사에서 공수해 올 수 있는 1억원 이상의 시계를 보자.
- ▲ 자케 드로 ‘그랑드 스공드 미닛 리피터’ 2억7000만원대
보는 순간 억 소리 나게 만드는 시계들과 함께, 처음 들으면 외계어처럼 느껴지는 시계 용어도 알아보자. 외래어가 아닌 한국어로 표현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시계가 스위스와 프랑스, 독일 등에서 생겨난 물건이기 때문에 아직 무리가 있다. 기계식 시계가 인기를 끌면서 처음엔 어렵게만 느껴지던 시계 용어도 신문이나 잡지 등에 자주 실리는 만큼 이번 기회에 알아본다면 기계식 시계의 세계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중력의 오차까지 줄여준다
- ▲ 랑에 운트 죄네 ‘리처드 랑에 투르비옹 푸르 르 메리트’ 2억8000만원대
높은 기능의 컴플리케이션 시계(투르비옹 등 정교한 부가적 기능을 탑재한 시계)를 논할 때 투르비옹과 함께 손꼽히는 미닛 리피터(Minute Repeater·소리로 시간을 알려주는 기능)는 18세기에 처음 발명된 기술로 어둠 속에서도 시간을 알리기 위해 고안된 신기술이었다. 지금까지도 최고봉에 해당하는 기술이기도 하다. 시계 브랜드 자케 드로의 ‘그랑드 스공드 미닛 리피터(Grande Seconde Minute Repeater)’는 이처럼 역사적인 탄생 배경의 기술과 아름다운 외관이라는 요소를 모두 갖춘 시계다. 두 가지 소리 톤으로 시간과 분을 알려주는데 그 소리는 흡사 교회의 맑은 종소리를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하다. 뒷면을 통해서 두 개의 아주 작은 해머가 링을 두드리며 소리를 내는 모습을 엿볼 수도 있다. 가격은 2억7000만원대이다.
앞에서 언급한 율리스 나르덴의 시계는 조금 더 특별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알렉산더 더 그레이트 미닛 리피터’라는 이름의 이 시계는 고대 그리스의 정복자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전투 모습을 시계의 문자반에 묘사했다. 버튼을 누르면 각각의 병사들이 움직이며 칼과 창이 부딪치는 소리로 시간을 알려준다. 네 개의 해머가 서로 다른 음을 내는데, 그 소리가 영국 런던의 웨스트민스터 사원의 벽시계 소리와 같아 ‘웨스트민스터 카리옹 리피터(Westminster Carillon Repeater)’라고도 한다. 가격은 10억원대이다.
예술작품보다 정교한 한정 생산품
복잡한 기능뿐 아니라 예술 작품에 견주어도 절대 뒤지지 않는 정교한 수작업으로 승부를 건 시계도 있다. 한정 생산되는 이 시계들도 가격이 어마어마하다. 바쉐론 콘스탄틴은 전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원시 예술 박물관 중 하나인 ‘바비에 뮐러’ 박물관 측과 “원작과 최대한 유사하게 제작할 것”을 약속하고 원시시대의 마스크를 시계 다이얼에 옮겨 놓았다. ‘메티에 다르 레 마스크(Metiers d’Art Les Masques)’라고 이름 붙인 이 시계는 총 12개가 만들어졌는데 4개가 한 세트로 현재 서울 남산의 그랜드하얏트호텔에 있는 바쉐론 콘스탄틴 매장에 전시되어 있다. 한국에 처음 입고된 이 시계의 한 세트 가격은 5억6900만원대다. 주얼리 브랜드 부쉐론은 다이아몬드를 비롯해 각종 보석들을 시계에 세팅하는 것으로 수억원대의 시계를 완성한다. 소설 ‘천일야화’에서 등장하는 세헤라자데에서 영감을 받은 ‘크레이지 세헤라자데(Crazy Sherazade)’ 시계에는 문자반과 베젤, 러그 등에 다이아몬드를 비롯한 각종 보석들을 세팅했는데 그 가격은 1억원대 초반이다.
윤년까지 구별해 시간 자동 보정
마지막으로 언급하고 싶은 기능은 퍼페추얼 캘린더(Perpetual Calendar)이다. 큰달(31일)과 작은달(30일)뿐 아니라 윤년의 29일까지 자동으로 구별하는 캘린더 기능을 말하는데 매달 시간을 맞춰야 하는 수동식 캘린더 시계의 번거로움을 해결해 준다. 현재 나오는 퍼페추얼 캘린더 시계는 2100년까지 날짜나 연도를 보정할 필요가 없게 프로그램 되어 있다. 정확한 시간을 나타내는 기술뿐 아니라 윤년까지 계산해 자동으로 알려주는 퍼페추얼 캘린더는 시계 제작자들이 단지 기술자가 아닌 수학과 천문학 등에도 능했던 사람들이었다는 것을 알려 준다.
퍼페추얼 캘린더 이외에 태양계 천체의 일주를 비롯한 별자리를 표시한 조디악(ZODIAC) 캘린더도 있는데 예거 르쿨트르에는 ‘미닛 리피터’ ‘투르비옹’ ‘조디악 캘린더’ 등 손목에 담을 수 있는 가장 정확하고 복잡한 기능을 무려 세 가지 이상 구현한 ‘마스터 그랑 트레디션 그랑 컴플리케이션(Master Grande Tradition Grande Complication)’ 시계를 보유하고 있다. 아름다운 밤 하늘과 우주의 신비로움을 표현한 이 시계의 가격은 5억원대이다.
트위터에 ‘남자가 고급시계에 눈을 돌리기 시작하면 집 대들보가 무너진다는데…’라는 글을 올린 걸 본 적이 있는데, 어느 날 앞서 설명한 시계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