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10일경 호주에 다녀와서 한 번 만나곤 한동안 못 봤는데 연말에 뭣도 모르고 내가 “친구들에게나 나에게 항상 ‘나 행복하게 해줘’ ‘나 즐겁게 해줘요’ 하던 아이가 생일을 그냥 지나치면 어떡하니?” 하고 야단을 쳤지. 그때 넌 ‘정말 죄송하다. 콘서트 못 가봐서 죄송하다’고 그랬고.(전인권의 콘서트가 12월21·22일 열렸고, 이은주의 생일은 12월22일이었다)
연말에 너도 일하느라 무척 바빴다는 거 알아. 촬영 때문에 이탈리아 갔다 해를 넘기고 1월1일경 들어왔지. 그날 넌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하고 보냈고, 나도 굳이 어디 갔다 왔냐고 물어볼 필요가 없을 것 같아서 기운을 북돋워주는 기분 좋은 얘기를 해주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우리가 그동안 나눈 소중한 얘기들은 내 휴대전화에 고스란히 간직돼 있다. 네가 그리울 때는 그 메시지를 뒤져보며 좋았던 기억들을 곱씹어보곤 한단다.
우리가 서로를 막 알아갈 무렵 어떤 연예인의 마약 사건 났을 때 나한테 전화해서 빨리 나오라고, 혼자 있으면 절대 안 나간다는 나를 안심시키려고 감독도 같이 있는데 빨리 오시라고 했다며 나의 아픔을 위로해주려고 애쓰던 너. 그런 네게 달려가다 끝내 돌아왔다. 그냥 혼자 있고 싶다고 네게 말했지. 그때는 내가 우울증이었어. 사람들이 왠지 나만 쳐다보는 것 같았거든. 결국 가지 못한 나에게 그때도 넌 힘내라고 다시 한번 말해주었지.
은주 넌 남을 많이 배려해주는 사람, 나이답지 않게 성숙한 사람, 순수한 영혼을 가진 사람이었지. 물론 여느 여자들처럼 샘을 낼 때도 있었고. 그럴 땐 꼭 아이 같았지만. 배우로서는 두말 할 것도 없었지. 실은 너와 안면만 있고 잘 모를 때 ‘오! 수정’이라는 영화를 보고 참 대단한 배우라고 느꼈다. 너에게 관심이 가고 끌린 것도 영화에서 연기하는 모습을 보고 반했기 때문이야.
네가 이승과 영영 작별하던 날, 너의 명복을 빌며 ‘걱정말아요’를 불렀어. 살아생전 네가 그 노래를 정말 좋아했잖아. ‘그대여 걱정말아요’ 하는 가사가 꼭 너를 위해 쓴 것 같다면서…. 이제 와서 얘기지만 너의 영향도 있었지. 그때 네가 ‘불새’와 ‘주홍글씨’를 촬영하면서 무지 힘들어했으니까. 그 노래를 만드는 동안 마음 언저리에 남아 있던 아내와 헤어진 아픔과 이런저런 번민들을 탁탁 털어버리면서 네 생각도 많이 했다.
너에게서는 동지 같은 느낌이 있었어. 그래서 문자에다 ‘독립군’이라는 표현도 곧잘 쓰고, “연예계에 정말 청량음료 같은 존재가 되자” 하는 얘기도 나누었지. 그런 동지를 떠나보내고 나니 슬픔을 견디기가 무척 힘들구나.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힘들어서 바쁘게 일하며 정신없이 보내는데도 밤이 되면 어느새 술잔을 기울이곤 한다. 밤마다 잠을 이루기가 힘들어 내내 술로 살다 어제는 마시지 않았다. 잘했지?
나름대로는 챙겨준다고 챙겨줬지만 더 잘해줄 걸 하는 생각이 들어 많이 아쉽다. 다행히 너를 추억할 수 있는 것들이 많이 있구나. 휴대전화에 남아 있는 문자메시지들도 그렇고, 팬클럽 아주머니들이 집안 청소해주시면서 치워 어디에 있는지는 다 모르지만 네가 준 소중한 선물들도 있고 말이야.
넌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선물 주는 것을 좋아했지. 그것도 너의 성의를 담아서. 한번은 예쁜 종이상자를 정성스럽게 만들어주었는데 그 안에 든 하얀 종이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지. ‘전인권 만세’ 하고. 넌 항상 선물할 때면 ‘전인권 만세’라고 써서 주었는데….
꿈을 잃어버리면 안 된다는 내용의 시가 담긴 십자수 액자도 주고, 하트 모양의 달도 주었지. 그래도 가장 기억에 남는 선물은 음악이 나오는 로봇이야. 태엽을 감으면 영화 ‘여인의 향기’에서는 알 파치노가 탱고를 출 때 흘러나오는 ‘포르 우나 카베자(Por Una Cabeza)’라는 탱고음악이 나오잖아. 너도 외로울 때 그 노래를 들었다고 했지. 나도 요즘 그러고 있단다. 정말 효과가 있더라고(ㅠㅠ).
너를 생각하면 그리움, 아쉬움만 커질 것 같아 이제는 훌훌 떠나보내련다. 진정 네가 꿈꾸던 자유로운 영혼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하면서 나도 시를 썼다. 내 손이 닿을 수 없는 곳으로 너는 가버렸지만 내 마음의 메시지가 네게 전해지기를 기원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