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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동사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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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이야기 스크랩 D일(04.20) 집사람이 쓰러졌다.
뚝밑아이 추천 0 조회 161 17.05.24 22:19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08:30 집사람도 아침식사를 해야 하는데 기척이 없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팬티착용의 집사람이 멍 하니 허공을 바라보고 있다.

자세히 보니 방바닥에 대변이 흥건하다.

이게 뭐야, 괜찮아?

대답이 없다.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무슨 말을 하고 싶은 모양이지만, 말은 없다. 갑자기 여러 생각이 들면서, 큰일을 직감하고 우선 집사람을 씻기기로 했다.

목욕으로 돌리고 샤워기를 틀었다. 오늘따라 더운 물이 더디나온다.

찬물을 버려가며 더운 물을 받아놓고, 집사람을 옮기러 갔다.

축 늘어진 몸을 어찌할 수가 없었다. 간신히 욕조에 걸쳐놓고 씻었다.

등에 말라붙은 대변은 30분 이상 지난 듯하다.

집사람을 욕조에 담그려는데 참 어려웠다. 몸이 미끌미끌 하니 더 어려웠다.

이러다가 내가 같이 넘어지기라도 하면, 모두 더 어려움에 처할 것이다.

욕조에 더운 물이 조금 차서, 정신을 집중하여 몇 번이고 조심조심 욕조에 몸을 담갔다.

그리고 따뜻한 물을 틀었다.

집사람이 조금 편해진 듯 했다.

몸을 모두 닦고 그 물에 세수를 해보라고 했다.

집사람이 두 손에 물을 묻히고 두 손을 턱 아래에까지 올렸다. 얼굴로는 올리지 못했다.

세수를 하란 이야기는 알아듣고, 손의 힘이 얼굴까지 미치지 못하였던 것이다.

할 수없이 내가 한손으로 얼굴을 씻어 주었다. 그리고 침대로 와서 이불을 반쯤 걷었다.

집사람을 조시조심 끌다시피 데리고 나와 침대에 눕혔다.

팬티와 거들, 러닝셔츠와 검은 티를 입히고, 외투를 입혔다.

그리고 방안을 대충 청소했다. 걸레를 빨아 방바닥을 닦았다.

그리고 침대에 누워있는 집사람을 소파에 앉혔다. 넘어지지 않게 쿠션으로 받쳐놓고 밖으로 나왔다. 내 차를 꺼내어 장애인 주차구역에 대 놓고 뒷문을 열어놓은 채로, 그리고 깜빡이를 켜 놓은 채로 경비아저씨를 불렀다. 경비실에 다녀올 동안 소파에 앉혀놓은 대로 앉아 있었다.

경비아저씨는 119를 불러야 되지 않겠느냐고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내차로 황산의원을 찾으려고 했다.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을 하지 않았다.

생각해보니 119가 나을 듯하여, 구급차를 부르고 우리 집 주소와 전화번호를 대었다.

거동을 할 수 있느냐는 전화가 왔다. 거동도 못한다고 했더니 들것을 가지고 오겠다는 말을 했다.

문을 열어놓고 기다렸다.

119대원들이 여자간호원과 세 명이 일인용 긴 의자를 들고 왔다. “신을 신고 들어가겠습니다.”

백제병원으로 간다고 하며 떠났다.

나는 집안 정리를 대강 마치고 백제병원으로 향했다.

가다가 황산의원으로 가면 안 될까요?” 먼저 떠난 구급대에게 전화를 했다.

시설이 안되어 있어 안 됩니다.” 구급대의 말에 겁이 더 났다.

남들 보기에 그리 심각해 보이나?’

백제병원에 갔다. 안내원의 안내를 받아 구석자리에 주차를 하고 응급실로 갔다.

신원을 확인하고, 처지를 하였다.

잠시 후 의사가 불렀다. 그리고 기도를 확보해 주어야 한다고 동의를 구했다. 동의서에 싸인을 하니까, 기도에 어마어마한 파이프를 연결하여 보기가 흉했다. 지금 보기 좋은 게 문제가 아닌 듯 했다.

채혈하기 위해 팔에 주사기를 꽂으니 혈관이 잘 보이지 않아 주사기를 움직이자 아파서 몸을 뒤척이었다. 그때까지도 그런 감각은 있었다.

CT실로 다녀오더니 뇌에 출혈이 심하다고 했다.

청천병력이었다.

방바닥에서 나를 아무 생각 없이 바라보던 집사람의 얼굴이 순간적으로 떠올랐다. 나를 얼마나 원망했을까?

코고는 소리가 싫다고 딴방을 쓴지 오래다.

배가 아파서 온 방을 헤매며 나를 얼마나 찾았을까? 그때 난 거실에서 자고 있었을 것이다.

잠들면 아무 것도 모르는 나의 잠귀도 집사람을 그리 만들었다.

그런데, 큰 병원으로 가야 한단다.

백제병원이 자청해서 큰 병원으로 가야 한다니 더 기가 막혔다. 여기서는 더 이상 치료를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절망적이었다.

병원을 대전의 중대병원이나 을지대병원이 어떠냐고 물었다.

을지대병원은 내가 다니는 병원이라 을지대 병원을 알아보라 부탁했다. 그런데 한참을 찾으면서 전화로 대전을 위시해서 천안까지 뒤져보더니 자리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익산 원광대 병원을 알아보더니 자리가 있다고 하였다. 그래서 선택의 여지가 없이 원광대 병원으로 향했다. 병원비를 계산을 하니 155,600원이었다. 백제병원에서 환자의뢰서류와 CT촬영한 CD를 한 장 받았다.

정수기 렌탈료를 만원 아끼려고 카드를 발급받아 쓸데가 없어 걱정을 했더니, 정말 어이없는 일이 벌어져 약정액 30만원을 훨씬 넘길 듯하다.

내 차를 그대로 두고 환자 앰뷸런스를 탔다. 다른 때 같으면 신나게 달린다고 했을 것이다. 그런데 기분을 낼 때가 아니다.

가면서 아들에게 전화를 했다. “엄마가 쓰러졌다. 뇌출혈이란다.” 아들은 한동안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했다. 익산 원광대 병원으로 후송중이라고 했다.

그때서야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당장 내려온단다.

또 딸에게 전화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래서 아들에게 부탁을 하고 전화를 끊었다.잠시후 딸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렇단다. 말을 잇지 못했다.

오빠는 바로 내려가 3시 반쯤 도착할 것이고, 딸은 아기용품을 챙겨서 뒤로 4시 반쯤 도착하겠단다. 그리고 처제한데 연락을 했다. 그리고 처제는 처남과 처형께 연락을 하여 모두 알렸다.

나는 조수석에 타고 있는데 환자를 돌보는 뒤에서 안전요원이 환자가 매우 안정적이니 너무 빨리 달리지 말라는 이야기를 했다. 나는 마음 놓이기도 했지만 안정적이란 말의 참뜻은 모르겠다.

12:45에 원광대 병원응급실에 도착을 했다. 환자 수속을 밟고 있는데 앰뷸런스 기사님이 부른다. 환자 이송 경비를 내야한단다.

병원비에 포함되는 줄 알았는데, 계산을 하니 107,500원이었다. 이 상황에 비싸다는 이야기도 수 없어 두말없이 결제를 했다. 원광대에서도 CO촬영을 하였다.

뇌압을 내려주기 위해 수두증 치료를 해야 한다고 했다. 수두증이란 뇌압이 올라간 상태란다. 머리에 구멍을 내고 관을 넣어 뇌압을 낮춘단다.

치료를 하기 위해 어느새 머리를 하얗게 밀었다. 동자승이 누워있는 모양이었다. 순간적으로 귀엽다는 생각도 들었다.

 

 

수두증 치료는 한 시간 정도면 할 수 있단다. 15시부터 수술이 시작되었다. 수술실 앞에서 기다리다, 앞쪽에 보호자 대기실이 있는 것을 알게 되어 그곳으로 갔다.

TV켜져 있고 옆에 안내모니터가 있었다.

 

 

모니터엔 가끔 류기, 63 신경외과 수술중이런 내용이 반복적으로 나왔지만, TV에서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이 없다. 16시가 되어 수술종료가 떴지만 연락이 오질 않았다. 하도 갑갑하여 여쭈어보았더니 벌써 나와 다른 곳을 들러 들어오는 것이다. 그리고 처음이니까 보호자들 모두 들어오라더니 젊은 의사 한분이 사진을 보여주고, 모니터에 글씨를 쓰면서 안내를 해 주었다. 17시였다.

 

 

지주막하 출혈이라는 전문적인 용어와 원인, 치료 과정 등을 이야기 하였다.

수두증 치료를 하여 뇌압을 낮추었고, 5일에서 1주일쯤 파열점을 찾아서 봉합을 해야 한단다. 그래야 완전 지혈을 할 수 있는데 파열점을 찾지 못할 수도 있단다. 파열점을 찾지 못하더라도 혈액이 응고되어 파열점이 막힐 수도 있지만 완전한 지혈이 보류될 수도 있단다.

2차 치료는 수두증 치료와 재출혈시 수술, 혈관 경련시 약물 투입 등 미리 확정기울 수 없는 치료가 남아 있다. 거기까지 2주가 걸린단다.

그 외어도 최악의 경우이지만 내과적 합병증으로 의식 저하로 인한 폐렴과 위장질환, 신장질환 심장질환 등이 수반될 수 있단다. 그냥 이야기 했으면 다 잊어버리고 알아듣지도 못했을 것이다. 나는 구세대사람이 분명하다. 글자로 정리하면서 이야기 하는 것이 훨씬 알아듣기 쉬웠다.

결론적으로 지금은 수두증 치료만 하고, 결과를 지켜보는 중이다.

옆에서 모니터가 사라지기 전에 폰으로 사진을 찍어두었다. 그런데 끝나고 3부를 프린트 하여 주었다.

 

 

 

 

 

그때까지 집사람은 아무 기척이 없었다.

집중치료실은 면회시간이 정해져 있다. 11:30부터 12:00, 20:30부터21:00까지 하루에 두 번에 걸쳐 한 시간이다. 한 번의 면회 최대인원은 2명이다. 20:30에 집중치료실 앞으로 갔다. 남자 안내원이 설명을 했다. 명단을 작성 하고, 마스크를 착용해야 한다. 명 이상일 경우 교대로 할 수 있다. 손을 깨끗이 닦고 실내화로 갈아 신고 들어간다.

실내에 의사분이 치료를 하시는 중이라 끝나고 면회가 시작된다. 시간은 엄격하게 통제 되었다. 낮에는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았었는데, 바로 아들이 마스크를 사러 갔다.

면회시간은 자나가는 데 아들은 오지 않았다. 5분이 그리 긴 줄은 처음 느껴본다.

내가 먼저 들어갔다. 집사람의 눈가에 눈물이 가득 했다. 눈물을 닦아주면서 불러보았다. “여보평소에 부르지 않던 호칭이다. 나도 눈물이 앞을 가린다. 불러도 대답이 어 없다. 서너 번 부르다 얼굴을 살펴보았다. 수술 부위가 약간 부어있었다. 당신이 왜 이렇게 누워 있는지 아는 듯 했다.

오늘 아침 처음에 아무 생각 없이 바라보던 얼굴이 떠올랐다. 얼마나 내가 원망스러우면 불러도 대답을 하지 않고, 눈물만 흘릴까? 얼마나 괴로울까.

더 이상 보고 있을 수 없어 나왔다. 여러 사람이 기다리고 있은 교대를 해 주었다. 그리고 눈물을 감출 수가 없었다. 처제 내외와 처형 처남 내외가 차례로 들어갔다. 마지막에 딸도 들어갔다. 딸은 간호사한테 무엇인가 많은 질문을 하고 간호사는 열심히 설명을 했다. 한참 동안을 이야기 하다 나왔다. 딸의 말에 의하면 엄마를 부르며, 손을 엄마 손에 대었더니 엄마 손이 꼬옥 쥐는 느낌이 들었단다. 그리고 딸에게 시선을 돌리려고 고개를 움직였단다.

그러면서 나에겐 들은 척을 하지 않았나? 하는 섭섭한 느낌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날 밤 잠이 오지 않았다. 24시에 누웠지만, 몸을 뒤척이며, 별 생각을 다하였다. 뒷목이 당기는 것도 뇌신경과 연관이 있다는데 하는 생각이 떠오르자, 그 시각에 다시 일어나 컴퓨터를 켜고 검색해 보았다. 걱정했던 답은 없었고, 안심은 되었지만 내가 내일 아침에 정상적으로 일어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회의도 들었다. 02:39를 본 기억이 있다.

평생 잊지 못할 기나긴 420일이 그렇게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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