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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팬데믹 속에서 버킷리스트 하나와 환갑을…
2020년에 들어서자마자 나는 기다렸던 버킷리스트 하나를 실행했다.
2020년은 내가 만 60세로 환갑을 맞은 해이다. 환갑(還甲)은 회갑(回甲)이라고도 하는데 돌 회(回)나 돌아올 환(還)의 한자어 탓인지 왠지 환갑(還甲)이라는 용어가 인생의 새로운 전환점을 맞는 시기 같아서 무언가를 시작해야 하는, 막연하게 그런 느낌을 받았었다. 그래서 환갑이 되면… 환갑 때는…환갑에… 라는 말로 뭐든지 환갑이 되는 해로 미루어 놓았다.
마침내 환갑이 되는 2020년이 밝아오자마자 미뤄두었던 버킷리스트 하나를 꺼내 들었다. ‘예함 청소년 크리스천 문학상’이었다. 그것은 나의 몇 안 되는 버킷리스트 중 하나였고, 예함은 ‘예수님과 함께’라는 말의 준말로 나의 아호이다. 문학상을 제정하는 이유가 확실해지자 바로 포스터를 만들고 인쇄해서 신문사를 통해 교민 소식란에 공모 소식을 알렸다. 청소년 크리스천 학생만을 대상으로 하니 의외로 까다로운 조건이었는지 생각보다 많은 학생이 응모하지 않았다. 그 이유가 한글로 글을 쓴다는 것이 이민 2세에게 매우 어려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영어를 국어로 사용하니 한국어가 그들에게는 외국어가 되어 한글은 더욱 접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렇지만 의외로 곳곳마다 한글학교가 있어서 한글을 배우고자 하는 열의와 가르치겠다는 부모의 의지만 있다면 어렵지 않게 배울 수 있는 환경은 조성되어 있다. 어찌 되었든 1회 당선작과 수상자들이 선출되었지만, 생각지 않은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이 되어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강력한 지침으로 시상식을 할 수 없는 상황에 놓였다. 그래서 아쉽지만, 상장은 전자 상장으로 대체하고, 상금은 E-Transfer로 지급했다. 얼굴은 비록 마주하지 못했지만, 시상식 당일 날엔 수상자들과 전화로 그들의 밝은 목소리를 들으며 축하할 수 있어서 좋았다. 팬데믹 상황은 그 이듬해도 나아지지 않아 2회 역시 1회 때와 같은 방법으로 상장과 상금을 전해야만 했다. 그리고 2022년은 사회적 거리 두기는 해제되었지만, 수상자 가족들과 의논을 한 끝에 ‘밴쿠버 평안 교회’에서 수상자들과 만날 수 있었다. 그 교회 목사님께서 시상식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신 덕분에 수상자를 비롯하여 가족들과 은혜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그 당시도 대체로 마스크를 써야 했던 관계로 식사는 함께하지 못했지만, 대신 맛있는 생크림 케이크를 수상자들에게 주니 모두 맛이 있었다며 감사하다는 메일을 보내오기도 했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코로나19 팬데믹 속에서 시작된 예함 청소년 크리스천 문학상이 벌써 올해 4회로 접어든다. 특히 2023년 제4회 포스터는 2회와 3회 때 사랑상을 받은 조민우 군이 자원해서 포스터를 만들어 주어 더욱더 의미가 크다. 이것 역시 나에겐 은혜의 기적이다. 예함 청소년 크리스천 문학상은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 관한 글로서 예수님과의 관계를 생각해 보는 좋은 기회로 공모에 응모하는 학생뿐만 아니라 가족들 모두 은혜 안에 동참하는 시간을 마련해 주었다. 그런데 사람들은 어느 단체에서 혹은 누가? 무엇 때문에? 상금까지 주는지 궁금해했다. 1회와 2회 시상식이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무산되니까 더욱 궁금해했는데 나는 오히려 그것이 좋았다. 사람이 드러나지 않으니까 오롯이 하나님께만 향하는 감사 기도가 나오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제3회 시상식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코로나19로부터 안전하고 자유로운 시기는 아니었지만, 당선자 중 한 학생이 얼굴을 보며 상을 받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 마음을 이해할 수 있어서 부랴부랴 시상식을 할 만한 공간이 있는 식당을 예약하고 시상식 장소를 수상자들에게 전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마스크를 벗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또 다른 수상자 가족의 우려로 아예 수상자들 가족 모두 다 같이 의논 끝에 밴쿠버 평안 교회에서 마스크를 쓰고 시상식을 하게 된 거였다. 어찌 되었든 3회 시상식을 하던 날 인사말로 예함 청소년 크리스천 문학상을 제정하게 된 경위를 들려주었는데 참석자들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크리스천이어서 이야기에 공감하며 가족 같은 친밀한 느낌으로 시상식을 마칠 수 있었다. 비록 오랜 시간의 준비로 마련된 시상식은 아니지만 그곳에서 함께하던 그 순간만큼은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좋은 기억과 즐거운 추억을 지니게 되었다.
간단하게 이 자리를 빌려 청소년 크리스천 문학상을 만들게 된 경위를 이야기한다면, 2007년 5월 6일은 빅토리아에 있는 ‘Glad Tidings Church’에서 내가 세례받은 날이다. 엄마의 세례식을 지켜본 두 아들은 일 년 후에 본인들이 신청해서 2008년 5월 4일에 세례를 받았다. 아들들보다 내가 일 년 먼저 세례받다 보니 두 아들이 세례받고 이틀 뒤에 나의 첫 세례 기념일이 찾아왔다. 그래서 두 아들에게 엄마의 첫돌, 첫 생일이니 “난 오늘부터 한 살이다.”라는 말로 웃음을 주며 생일을 기념하기 위해 도네이션을 해야겠다고. 너희들 세례 기념일도 엄마와 이틀 차이이니 앞으로 각자 생일 파티하지 말고 대신 우린 5월 첫째 주에 생일 파티에 들어갈 비용을 기부하자고 약속했다. 그리고 기부는 빅토리아 한인 유학생(대학생)들을 대상으로 비빔밥 전도에 동참하기도 하고, 홈리스들에게 매주 금요일 저녁마다 식사를 제공하기도 하면서 기부 액수가 점점 늘어가고 다양한 곳으로 폭도 넓혀져 갔다. 8년 동안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내가 8살이 되고 두 아들이 7살이 되는 동안 꾸준하게 세례 기념일을 지켜오다가 작은아들의 학업으로 2015년 7월 14일에 밴쿠버로 이사 오게 되었다. 겨울이 지나고 그 이듬해 봄이 오면서 우리들의 아홉 번째와 여덟 번째의 세례 기념일 역시 다가왔는데 밴쿠버에서 딱히 아는 곳도 없고… 말하자면 기부할 대상을 찾지 못했다. 그래서 윌링던 교회를 다니며 알게 된 백여 명의 한인 모임에 점심 대신으로 떡을 건네 드렸다. 빅토리아에서 살 때는 크리스천이 아닌 사람들에게 하던 일이 밴쿠버에서는 지리도 낯설고 모든 것이 익숙하지 않아 어느 곳을 통해야 하는지 역시 몰라서 섬기는 대상이 크리스천으로 바뀌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자녀들이니 그들을 섬기는 모습 또한 하나님께서 좋아하시겠지… 하는 마음으로…. 홈리스를 섬기는 교회를 비롯하여 장애를 지닌 자녀와 함께하는 모임, 여성 암 센터, 가끔 아들과 금요 심야 예배를 가는 한인 교회의 낡은 프로젝터도 바꾸어 주고 그저 마음이 닿는 곳은 세례 기념일과 상관없이 기부했다. 몸에 배는 습관처럼 기부하는 것도 좋은 습관이 되어 나뿐만 아니라 두 아들 역시 각자 필요한 곳에 망설이지 않고 서슴없이 기부했다. 사실 기부 액수는 중요하지 않다. 온전한 기쁨으로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도네이션이다. 강요에 의해서 또는 남에게 드러내기 위한 과시용 기부는 안 하는 것보다야 낫겠지만 그것은 자기만족으로 치우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적은 것이라도 나눌 줄 아는 마음부터 지녀야 하고 한 번 두 번 쌓여가다 보면 언제 어디서든 누군가를 향한 도움의 손길을 내밀고 있는 자신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여기저기 도네이션을 하며 성실하게 세례 기념일도 지켰는데 백 명의 시온 선교 합창 단원들에게 김밥을 대접하던 어느 날 문득 환갑이 되는 해에 환갑 기념으로 청소년 크리스천 문학상을 만들어서 하나님을 잘 믿는 학생들에게 용돈을 주어야겠다… 그런 마음이 들어 왔다. 그 찰나의 순간에 들어왔던 마음 하나가 버킷리스트로 이어진 것이다. 고난 기간인 4월 첫째 주 토요일에 응모 마감하면 그 기간에 자녀들과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생각하고 이야기 나누며 가정마다 뜻깊은 시간을 가질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당선작 발표는 예수님 부활의 기쁨으로 4월 셋째 주 토요일에 하면 수상자뿐만 아니라 가족들 모두 부활절이 더욱 기쁘고 즐거울 거라고…. 게다가 시상식을 매년 5월 첫째 주에 하면 두 아들과 나의 세례 기념일도 의미 있게 보내게 될 테니 청소년 문학상을 만들 이유는 충분했고 나 자신에게도 납득할만한 일이었다. 심사평은 현대시문학 발행인 겸 주간인 양태철 님께 부탁드리니 흔쾌히 승낙해 주셨다. 2019년 겨울 현대시문학에서 내가 수필 부문으로 당선되어 신인상을 받은 인연의 고리 하나 붙들고 조심스럽게 여쭸는데… 심사평뿐만 아니라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에는 전자 상장도 만들어 주셔서 수월하게 진행할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셨다. 사실 3년 전에 크리스천이 아니라서 심사평이 어려울 수도 있다고 난처해하시던 분이 지금은 성경을 읽으시고 심지어 성경을 녹음해서 지인들께 전달하시기도 한다. 하나님께서는 글솜씨도 없는 나를 현대시문학을 통해 등단시키시고 아끼고 사랑하는 잃어버린 자녀를 찾으신 거다. 할렐루야!
처음부터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인도 아래 2023년 새해 벽두의 곳곳에 제4회 포스터가 벽에 붙었다. 처음 시작하던 해와 달리 회가 거듭될수록 응모작도 많아지고 학생들의 한글이 눈에 띄게 좋아지고 있다. 응모 작품을 통해 내가 은혜를 많이 받는데 특히 가장 보람을 느끼는 순간은 1회 때 시 부문에서 소망상을 수상한 김시온 군 덕분이었다.
예수님의 손과 발
친구들과 놀고 있었다.
높은 곳에서 뛰어내렸는데 내 손과 발에 가시가 박혔다.
가시 만도 이러게 아픈데 예수님 손과 발에 박힌 못은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나는 뛰고 달리고 걸을 수 있는데
예수님은 손과 발에 못이 박히고
뛰고 달리고 걸을 수 있을까?
예수님과 손잡고 달릴 수 있으면 좋겠다.
초등학교 3학년 김시온 학생의 맞춤법도 틀리고 삐뚤빼뚤 직접 손 글씨로 쓴 글을 어머님께서 사진을 찍어 첨부파일로 보내오셨는데 윗글은 신문에 당선작을 싣는 관계로 느낌을 살리는 단어만 빼고는 기본 교정(맞춤법과 띄어쓰기)을 본 글이다. 두 살 때부터 캐나다에 살기 시작해서 한글 학교와 어머니를 통해 한글을 배우는 시온 군은 2회와 3회 때도 응모했는데, 3회 때는 시가 아닌 수필에 도전했다. 일취월장으로 한글이 늘었음은 말할 것도 없고 글 속에 녹아든 하나님의 사랑에 읽는 나도 그 은혜에 감사하고 귀한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3회는 2회 때 응모했던 학생들의 재도전이 유난히 많아 무척 기뻤었다. 4회 포스터를 만들어 준 학생 또한 2회와 3회 연속으로 응모하고 당선한 수상자다. 한 사람 한 사람 다 거론하면 좋겠지만, 이 자리를 빌려 마음을 담아 참가한 학생들 모두에게 감사와 응원을 보낸다. 이처럼 버킷리스트 하나가 코로나 팬데믹 속에서 실현되고 있던 그해 가을에 만 60세로 환갑이 찾아왔다. 지난 2019년 10월 5일 59세의 생일을 이미 근사하게 보낸 터라 나는 집에 있는 것이 좋았는데 두 아들은 그렇지 못했다. 내 마음과 달리 사회적 거리 두기로 외식하지 못하는 것에 무척 안타까워하고 아쉬워했다. 더욱이 지난 해 근사한 생일 이벤트로 감동과 감격하는 엄마를 보았던 작은 아들은 풀이 죽은 모습이었다. 깜짝 이벤트를 준비하던 즐거움의 기억도 있던 탓에 시무룩한 작은아들은 툭 건드리면 눈물이라도 쏟아낼 표정으로 내게 자꾸 미안하다는 말을 했다. 그때 마침 점광석화처럼 떠오른 생각을 붙들고 넌지시 제안 한 가지를 했다.
나는 꽃을 잘 사는 편이다. 심지어 중 고등학교 때도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도 자주 꽃집에 들러 꽃을 샀는데 한번은 양동이에 담겨 있는 그 당시 좋아하던 안개꽃을 몽땅 사서 안고 현관에 들어서다가 엄마에게 꾸지람 들은 적도 있다. 도가 지나쳤다는 이유로 야단을 맞았지만, 꽃을 사는 습관이 밴 탓에 지금까지도 마트에서 나올 때 생화 한 다발이 내 손에 들려 있을 때가 많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코스트코에 가면 이것저것 색색 가지 장미를 들어 보다가 결국 빨간 장미 다발을 들고 오게 된다. 한 가지만 골라야 하는 순간에 여지없이 선택권은 빨간 장미를 향하는 거다. 마치 나에게만 적용하는 빨간 장미 불변의 법칙 같은 것이라도 있다는 듯이….
“어차피 외식은 하지 못하니까 장미꽃을 선물해 주면 어떻겠니? 매번 빨간색만 사게 되는데 이럴 때 다른 색을.”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두 아들은 그러자며 나섰다. 코스트코에서 분홍 장미와 흰 장미가 반반으로 담긴 꽃다발 2개, 노랑 장미, 그러데이션이 들어간 다홍색의 고운 장미, 그리고 예외 없는 불변의 법칙으로 빨간 장미까지 모두 5다발을 수레에 담았다. 코스트코 장미 다발은 24송이가 기본이니 모두 백이십 송이였다.
이튿날 환갑 당일이 되자 두 아들은 식사와 케이크까지 만들어서 근사한 생일상을 차려 놓았다. 장미 두 송이를 아들이 만든 초콜릿케이크에 얹어 놓으니까 마치 진열장에 놓여 있는 케이크처럼 그럴듯했다. 정성과 사랑이 가득 담긴 아들들의 사랑스러운 음식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아름다운 맛이었다. 게다가 고개를 어느 방향을 향하든 어제 손질해서 꽂아 놓은 장미꽃들이 화원에 들어와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올 만큼 장미 향이 얼마나 좋은지 지금까지 느껴보지 못한 강렬한 장미 향이었다. 색도 다르고 꽃송이 크기도 다른 장미들이 화병에 담겨있는 모양새 역시 집에서 처음 보는 장관이어서 나도 모르게 “작년의 행복한 송아지 스테이크 하나 값으로 백이십 송이 장미에 싸였으니 얼마나 잘한 일이니….”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장미에 코를 대고 킁킁거렸다. 코로나19 팬데믹 덕분에? 백이십 송이 장미를 내 눈앞에 놓아둔 것도 난생처음이고 더욱이 두 아들의 선물이니 백이십 송이가 주는 기쁨은 더할 나위 없는 행복감을 주었다.
생각해보면 코로나19 팬데믹의 사회적 거리두기의 상황은 2년 동안 가깝게 지내던 지인들과는 다소 소원해지고 멀어졌지만, 아들과는 더욱 친밀해졌다. 함께하는 시간이 많아져서 TV 보고 새로운 음식을 같이 만들어 먹고 게다가 반려견 캔디도 가족이 되었으니 우리들에겐 좋은 점이 오히려 더 많았다. 그런데 아들아이는 지금까지도 똑같이 재택근무하고 있지만, 요즘 우리들의 생활은 달라져 있다. 나란히 앉아 영화를 보는 횟수도 줄어들었을뿐더러 내가 외출이 잦아지고 분주해졌다. 어쩌면 이렇게 시나브로 제 자리를 찾아가는 것인지는 모르지만 어찌 되었든 코로나19 팬데믹은 내겐 잃은 것보다 얻은 것이 더 많은 기간이었다. 내 안에 숨겨져 있던 잠재력을 끄집어내 부엌에선 대장금으로, 화초를 만질 땐 솜씨 좋은 정원수가 되었다. 바닥에 떨어진 팝콘 옥수수로 싹을 틔워 내 키를 훌쩍 넘기며 손가락만 한 옥수수가 매달리기까지. 식탁에 흘린 고추씨 역시 결실을 보아 다시 식탁으로 돌아온 일도 있었다. 상상조차 하지 못한 일들이 마치 기적처럼 찾아와 생명의 존엄성과 신비로움을 선사했으니…. 집안에만 갇혀 지내는 것이 답답하고 얼굴을 덮고 있는 마스크가 불편하다고 하는 그 기간에 되레 배우고 깨달아가며 좋은 시간의 추억으로 쌓였으니 돌아보면 내게 왔던 지나간 모든 시간이 이보다 더 아름답고 좋았던 것이라는 것을 팬데믹 기간을 통해 깨달았다. 평범한 일상이 얼마나 소중하고 고마운 것인지…. 하나님께서는 어떠한 상황이든 감사하고 기쁨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에게는 느끼는 그대로 돌려주신다. 아무리 좋은 환경과 좋은 조건에 있어도 감사할 줄 모르면 행복한 것을 느낄 수 없다. 그와 반대로 악조건에 놓여 있더라도 순종하고 순응하며 그 또한 감사로 여기는 사람은 그 악조건도 기쁨으로 행복한 시간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행복과 불행은 늘 같은 선상의 시작점에 있다. 마치 갈림길에 불행과 행복이 놓여있는 것 같지만 처음부터 길은 외길로 하나이다. 자신의 선택에 따라 행복한 길과 불행한 길로 나뉘는 것일 뿐.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감사하는 마음으로 걸어가면 절대로 불행의 길로 바뀌는 일은 없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18절의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성경에 쓰여 있는 그대로 감사하며 행하는 아름다운 사람, 그런 사람이 되고 싶은 사람, 그런 사람이 될 것 같은 사람… 그 사람에 생각이 미치자 갑자기 행복해진다. 언젠가 나도 그런 사람이 될 것 같은….
-2023년 1월 4일 새해가 시작되자 행복한 길에 들어선 것 같은 기분에 지난 시간을 돌아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