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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즈오카 시미즈1 - 가케가와에서 기차를 타고 눈쌓인 후지산을 보러 시미즈에 가다!
여행 7일째인 2019년 4월 10일 아침에 시즈오카현의 가케가와 掛川(괘천) 시의
호텔에서 일어나 남쪽으로 10분쯤 걸어서 가케가와 카죠엔 ( 掛川 花鳥園),
괘천화조원을 구경하고는 다시 북쪽으로 걸어서 가케가와역 을 통과해
북문으로 나와서 다시 10여분을 걸어 가케가와성 掛川城(괘천성) 에 도착합니다.
510엔에 입장권을 끊어서 가파른 나무 계단을 올라 가케가와성 천수각 에서 시내를
조망하고는 내려와 쪽문으로 해서 니노마루 로 내려가 옛날 고텐(御殿 어전)
이라고 불렀던 대청 마루가 넓고 다다미가 깔린 집으로 들어가니 니노마루
미술관 이라는데 옛 갑옷과 번주 행열 미니어처며 은장도등 수공예품 을 구경합니다.
고텐 을 나와 성벽과 해자 를 둘러보고는 가케가와 역을 지나 남구에 호텔 도요코인으로
돌아와 아침에 맡겼던 배낭을 찾아 가케가와역 으로 가서는 오늘밤 숙소인 미시마 로
가는 신간센 고다마(新幹線 こだま) 기차를 타면... 40분이면 미시마(三島) 에 도착합니다.
그런데 2년전에 이번과 같은 일본 도카이도(東海道 동해도 : 우리나라에 동해가 있듯 일본도
나고야에서 도쿄에 이르는 동쪽 바다길을 동해도 라 합니다) 를 여행하면서 시즈오카
와 에노시마 및 하코네 케이블카 와 도겐다이 아시노코 호수 등지에서 여러차례 눈을
인 후지산 을 보려고 시도했지만... 날씨가 좋지않은 탓인지 결국 보지 못한게 아쉬웠습니다.
그래서 이번 여행에서는 어떡하던지 꼭 눈을 인 후지산 을 보아야 하겠다는 생각에서
포인트 를 찾으니... 후지산 고코호수 가 아니더라도 미시마 가는 중에 도카이도
(東海道 동해도) 시미즈의 미호노마츠바라 (三保松原) 해변에서는 늘 볼수 있다네요?
해서 오늘 가케가와 에서 사철 기차를 타고 엔슈모리에키 (遠州森駅) 에 내려서 벚꽃의
명소라는 가케가와 모리마치 오쿠니 진자 (掛川森町 小國神社) 에 가서는 꽃
창포원 (花菖浦園) 과 수려한 연못에 대보전(大寶展) 을 보려던 계획을 포기한 것입니다.
가케가와(掛川)시 는 특이한 것이 1979년 4월 세계 최초로 평생 학습도시 선언 을 했으며
인구 30만 이하의 도시에는 신칸센역을 만들어주지 않으니 인구 8만 5000명 소도시 는
불가하지만..... 시민들은 공사비의 4분지 1인 30억엔을 가구당 100만원 정도씩 시민
모금을 통해 신칸센 역을 유치 했다 합니다! 아니? 집집마다 100만원씩을 냈다니 놀랍네요?
해서 미시마(三島) 로 가자면 여기서 신칸센 열차 를 타면 간단하지만... 도중에
시미즈(淸水)는 작은 역이라 신칸센이 서지 않으니 도큐(特級 특급)
기차를 타야하는데 그럼 1시간 8분 이나 걸리니... 너무 오래 걸리는게 문제입니다.
해서 여기 가케가와역 에서 신칸센 기차 를 타고 17분 후에 시즈오카역 에 내려서
특급 열차로 갈아타면 12분 만에 시미즈(淸水) 에 도착하니... 중간에
환승 시간을 20분 가량씩 잡으면 50분이 걸리니 이게 더 빠르다는 생각이 듭니다.
가케가와역에서 11시 7분에 출발하는 도쿄행 신간센 고다마 (新幹線 こだま) 기차를 타니
17분만인 24분에 시즈오카현의 현청 소재지 시즈오카역 에 도착하기로 완행 열차인
후쓰(普通 보통) 기차를 기다리는데... 여기 시즈오카는 2년전 여행시 들렀던 도시 입니다.
코인로까에 배낭 을 넣고 시티투어 버스 駿部浪漫 BUS(슨푸 로망버스) 를 타고
내리니 거대한 성벽 이 보이는데.... 시즈오카 마쓰리 깃발이
나부끼는 2차 해자에 걸린 니노마루하시 二の丸橋(이노환교) 를 건너
미나미몬 南門(남문) 으로 입장해서 슨푸성 을 구경한 기억이 되살아 납니다.
기차가 시미즈 淸水 시내로 접어 들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마눌이 창밖을 가르키는데.....
아!!! 거기 차창 밖으로 "눈을 인 후지산" 이 아주 선명하게 보이는지라,
얼른 디카를 꺼내 찍는데 주택들이 지나가는지라 몇장 건지지 못한게 아쉽습니다.
하지만 날이 맑은지라 후지산이 저리 선명하게 보이니 여기서 버스를 타고 도카이도
(東海道 동해도) 시미즈의 미호노마츠바라 (三保松原) 해변에 가도 선명하게 볼수 있을라나?
몇년 전에 백두산 여행시 이도백하에서 자고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니 햇볕이 좋은지라
4륜구동 지프에 오르면서 백두산 정상에 오르면 푸르디 푸른 천지의 물 을 실컷
볼 수 있으리라 기대했으나... 안개로 실패하고 돌아온후 다음날 아침에 햇볕이
쨍쨍한지라 오늘은 틀림없다며 다시한번 더 지프를 탔는데 결국은 안개로 땅을 쳤다는...
그런데 백두산도 높은 산이니 사시사철 후지산 처럼 눈을 이고 있다고 해서 白頭山 인데
우리말로 하면 "흰머리뫼" 인가 합니다만 백두산이며 동해, 한강은 모두 중국말 이니,
일,이,삼,사,오,육,칠,팔,구,십... 이치,니,산,시,고,로쿠, 시치,하치, 쿠,쥬...
이,얼,싼,쓰,우,리우,치,빠,구,스 는 한자 一二三四五六七八九十 을 세나라 말로 적은
것이지만, 2천년전 중국 한(漢)나라 사람들의 한자 발음 이니 세가지 모두 중국말 입니다?
우리는 “山” 을 “산” 이라 하고 “江” 을 “강”, “東海” 를 “동해” 라고 하는데...... 모두
중국말 이니.... 우리나라 말로는“산” 은 “뫼” 이고 “강” 은 “가람” 이며 “해” 는
“바다” 입니다. 그런데 동쪽에 해당하는 우리 말은 잊어버렸는데...... 어부들이 동풍 을
샛바람 이라고 부르니 중국말인 동해는 우리말로 "샛바다" 이고 한강(漢江)은 큰가람 일까요?
몇년전 중국 강남 안휘성 여행에서 Ticket 인 票 를 베이징의 표준어 인 "피아오" 가 아닌
우리나라에서 발음하듯 "표" 라고 하고.... 또 身分證 을 베이징 보퉁화로는 신펭장
이라고 하는데 절강성에서는 "신분증" 이라고 우리나라와 발음이 같아 매우 놀랐습니다?
베이징은 한나라 이후 흉노, 선비, 거란, 여진, 몽고, 만주족 지배로 언어가 변해버린데
비해 강남과 조선 은 2천년전 중국 한나라 사람들의 말(발음) 이 그대로 전해졌는가 합니다?
우리나라는 문자를 만들지 못해 말만 있었는데 훗날 중국에서 한자 가 전해지니 태극과 팔괘,
음양오행설, 24절기, 유교, 불교, 도교가 전해지면서 춘제(설날), 정월 보름, 단오,
칠석, 중추절(추석), 동지등이 전해지니... 우리 고유 명절인 5월 삼한 수릿날, 10월
고구려 동맹, 동예 무천, 삼한 상달제 12월에 부여 영고 등은 중국 명절 에 밀려
사라지고 말았으니... 내일(來日) 에 해당하는 우리말도 잊어버렸는데 누구는 "하제" 라나요?
시미즈(淸水 청수)역 에서 내려 2층 복도에서 코인로까 에 배낭을 넣으면서 보니 눈을 인
후지산이 보이기는 한데 조금전 기차 차창으로 볼 때는 아주 선명했으나 지금은
조금 덜해서 약간은 걱정이 되는데, 그래도 해변의 넓은 백사장 에서라면 틀림 없겠지요?
누구 여행기에 보니 시미즈역 바로 앞에는 에스필스 드림 플라자의 치비 마루코랜드
를 볼수 있다고 했지만 후지산이 눈 앞에 어른거려 광장에서 버스 부터
찾는데.... 나중에 지도를 보니 역 앞은 아니고 버스로 네정거장 정도 가야 합니다.
시미즈역 서쪽 출구 3번 승강장에서 257번 버스는 평일에는 매시 10분, 20분, 40분, 50분
에 출발하니... 네정거장인가 가서 만세이 마을에서 한국의 50대 여성 네분이 타는데
버스는 출발한지 28분만에 미호노마츠바라 입구 三保松原入口 (삼보송원입구) 에 내립니다.
일본의 버스는 거리에 따라 요금이 달라지니 뒷문으로 타서는 기계에서 정리권
이라는 종이를 뽑으면 번호 가 찍혀 있는데... 버스가 달리면서 앞 전광판에
번호에 따라 요금이 점점 올라가니 앞문으로 내릴때 정확히 요금 상자에 넣습니다.
그런데 일본의 버스 기사는 운전만 하므로 거스럼돈을 주지 않으니 앞쪽 환전상 구멍 에
천엔이나 500엔 을 넣으면 잔돈으로 바뀌어 나오니 정확하게 세어서 넣어야 합니다.
우리 부부는 먼저 돈을 넣고 내리는데 한국의 50대 여성 네분 은 요금대로 돈을
넣지 못하는지.... 우리가 내려서 도로를 건너서 가다가 보아도
아직도 내리지 못하는데.... 해서 염려가 되어 지켜서서 보니 정말 오랜
시간 후에야 내리는게 보이는데, 때문에 버스는 정류소에서 오래 지체 되었습니다.
골목길 로 들어가 5분 가량을 걸으니 御穗 神社(미호신사) 표지판 이 나오기로 오른쪽 길 을
택해 걷다가 다시 좌회전을 해서 가니...... 왼쪽에 미호신사(御穗 神社) 정문이 나타납니다.
일본에서 신사 는 하도 자주 보는지라 구경하는 것은 포기하고 신사앞에서 우회전을
해서 "신의 길" 이라고 불리는 신사 참배로 인 소나무 산책로 로 접어듭니다.
참배로 바닥에는 나무 판자 를 깔아놓은 데다가 소나무 우거진 그늘 이라 여름 에도 걷는데는
불편함이 없는데....... 중간중간에 벤치 까지 놓여있으니 쉬어가며 걷기에 좋은 길입니다.
이윽고 산책로 가 끝나니 여긴 행정 건물 과 관광안내소 에 매점 건물들이 늘어서고
약간 경사진 언덕길 에는 가게들도 많이 보이는데 소나무 모습 이 특이 합니다.
7~8분을 걸어 언덕을 올라가니 소나무들이 이리저리 휜게 특이한데 모래사장은 검은색
모래 로 멀리 눈부시게 푸른 바다며 백사장 아니 흑사장(?) 이 넓게 펼쳐져
있습니다. 넓은 모래사장 너머로 잔잔한 파도가 치는 망망대해 태평양 바다
를 한참 바라보다가 문득 여긴 상륙작전을 시행하기 좋은 곳 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해서 동아일보 ‘임용한의 전쟁 史’ 칼럼에 “미군, 최악의 상륙작전” 이라는 글이 떠오릅니다.
"워싱턴 근교 콴티코에 미국 해병대박물관 이 있다. 입구에 들어서면 해병 항공대 전투기를
주렁주렁 매달아 놓은 중앙홀이 나타난다. 땅에는 해병대 전투장면이 재현 되어 있다.
2개의 전투가 있는데...... 하나는 베트남전 이고, 또 다른 하나는 태평양에서의 상륙작전 이다."
"미국은 태평양전쟁 당시 60회가 넘는 상륙작전 을 감행했다. 사실상 최초의 지상전
이었다고 할수 있는 과달카날 전투, 해변 상륙지점에서 격렬한 전투를 벌인
최초의 상륙작전이면서 실수 투성이였던 타라와 전투, 맥아더의 명예회복이자
영광이 된 필리핀 전투, 민간인까지 집단자살 해서 충격을 주었던 괌과 사이판 전투!"
"지옥과도 같았던....... 그러나 한편으로는 해병의 피와 땀의 상징 이 된
이오지마와 오키나와 전투…. 그 나름대로 다 의미가 깊은
전투들 중에서 해병대박물관 이 전시를 선택한 것은 타라와 전투 였다."
"타라와 상륙작전 은 1943년 11월 20일인데, 타라와는 솔로몬 제도 에 있는 길고 가느다란
환초다. 이 중에서 제일 큰 섬이 베티오인데 일본군 활주로 가 있었다. 중부 태평양
으로 들어가는 관문 이라 할 수 있는 곳이다. 일본군도 이 섬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대대적인 요새화 작업 을 했다. 이 공사에는 1,400명이 넘는 조선인 징용자 가 동원되었다."
"전투란 일단 시작하면 온갖 실수, 예상치 못한 사고의 회오리 속으로 뛰어드는 행위이다.
처음 해보는 작전이라면 혼란은 더 엄청나다. 미군은 100년 전의 해도 에 의지해
수심을 잘못 측정하는 치명적인 실수 를 했다. 상륙정이 환초에 걸려 버렸다. 이때
처음 도입한 수륙양용 장갑차 LVT 가 없었다면... 끔찍한 비극으로 끝날 뻔한 전투 였다."
"하필 타라와 전투 를 재현한 이유는 최초의 상륙전투 였다는 숫자적인 의미 때문일까?
이 실패로 얻은 교훈이 수많은 성공의 밑거름 이 되었다는 의미 때문일까?
실패의 기억은 아프다. 그러나 실패만큼 좋은 교사 도 없다. 뻔한 교훈이지만
실천은 정말 어렵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에서 부터 시작해야 하기 때문 이다."
그런데 동아일보 논설위원 정권현 씨에 따르면 1950년 실시한 "인천 상륙작전에 일본인 2천명이
참가해 57명이 전사 했다고.... 일본 NHK에서 특집 다큐멘터리 가 방영됐다" 고 전합니다.
아니? 인천 상륙작전은 7만 5천이 참가했는데 미군이 주도 했지만 그외에 영연방 군대에다가
한국군도 해병 1연대와 육군 17연대등 2개연대 4천명 이 참가한줄 아는데 일본인들이 2천명 이나?
당시 인천 상륙작전 의 주역은 일본에 주둔중인 미군 7사단 인데 일본에서 배를 타고
부산을 거쳐 인천으로 항해 해야 하니... 특히 서해는 해안선이 복잡하고 인천은
수로가 좁고 암초를 피해 구불구불하니 "식민지 시기에 조선을 통치 했던 일본인
으로 한국 서해안의 물길을 잘 아는 일본인 선원들의 도움이 필수적" 이었다고 합니다.
솔직히 미군이야 한국의 바다와 해안에 대해 잘 모르는지라 이들 일본인 선원들이 인천
까지 뱃길 안내 는 물론이고 "조수간만의 차 가 심한 때문에 상륙에 주어진 시간이
두세시간" 정도에 불과한 제한된 악조건에서 "미군이 탄 상륙정 LST 를 직접 조종"
했다고 하는데 저 "일본인들의 맹활약으로 인천 상륙작전이 성공" 할수 있었다고 봅니다!
첫댓글 가케가와(掛川)시 는 특이한 것이 신칸센역을 만들어주지 않으니 인구 8만 5000명 소도시 는
불가해서 시민들이 철도 공사비로 가구당 100만원 정도씩 시민들이 집집마다 내엇다니
정말로 대단한 시민들입니다. 본받을만합니다.
가구당 백만원씩이나 갹출했다니....
쉬운 일은 아닌가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