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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광주대교구 꾸르실리스따 원문보기 글쓴이: 이선정스테파노
2024년 8월 23일 금요일
[(녹) 연중 제20주간 금요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오늘 전례
[백] 리마의 성녀 로사 동정
말씀의 초대
주님께서는 에제키엘 예언자를 뼈로 가득 찬 계곡으로 데리고 가시어 마른 뼈들을 살리시며, 이스라엘을 무덤에서 자기 땅으로 데려가시겠다고 예언하게 하신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율법 학자의 물음에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이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라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너희 마른 뼈들아, 주님의 말을 들어라. 온 이스라엘 집안인 너희를 무덤에서 끌어내겠다.>
▥ 에제키엘 예언서의 말씀입니다. 37,1-14
그 무렵 1 주님의 손이 나에게 내리셨다.
그분께서 주님의 영으로 나를 데리고 나가시어,
넓은 계곡 한가운데에 내려놓으셨다. 그곳은 뼈로 가득 차 있었다.
2 그분께서는 나를 그 뼈들 사이로 두루 돌아다니게 하셨다.
그 넓은 계곡 바닥에는 뼈가 대단히 많았는데, 그것들은 바싹 말라 있었다.
3 그분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
“사람의 아들아, 이 뼈들이 살아날 수 있겠느냐?”
내가 “주 하느님, 당신께서 아십니다.” 하고 대답하자,
4 그분께서 또 나에게 말씀하셨다. “이 뼈들에게 예언하여라.
이렇게 말하여라. ‘너희 마른 뼈들아, 주님의 말을 들어라.
5 주 하느님이 뼈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나 이제 너희에게 숨을 불어넣어 너희가 살아나게 하겠다.
6 너희에게 힘줄을 놓고 살이 오르게 하며 너희를 살갗으로 씌운 다음,
너희에게 영을 넣어 주어 너희를 살게 하겠다.
그제야 너희는 내가 주님임을 알게 될 것이다.’”
7 그래서 나는 분부받은 대로 예언하였다.
그런데 내가 예언할 때, 무슨 소리가 나고 진동이 일더니,
뼈들이, 뼈와 뼈가 서로 다가가는 것이었다.
8 내가 바라보고 있으니, 힘줄이 생기고 살이 올라오며
그 위로 살갗이 덮였다.
그러나 그들에게 숨은 아직 없었다.
9 그분께서 다시 나에게 말씀하셨다.
“숨에게 예언하여라. 사람의 아들아, 예언하여라.
숨에게 말하여라. ‘주 하느님이 이렇게 말한다.
너 숨아, 사방에서 와 이 학살된 이들 위로 불어서, 그들이 살아나게 하여라.’”
10 그분께서 분부하신 대로 내가 예언하니, 숨이 그들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그들이 살아나서 제 발로 일어서는데, 엄청나게 큰 군대였다.
11 그때에 그분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
“사람의 아들아, 이 뼈들은 온 이스라엘 집안이다.
그들은 ‘우리 뼈들은 마르고 우리 희망은 사라졌으니,
우리는 끝났다.’고 말한다.
12 그러므로 예언하여라. 그들에게 말하여라.
‘주 하느님이 이렇게 말한다. 나 이제 너희 무덤을 열겠다.
그리고 내 백성아, 너희를 그 무덤에서 끌어내어 이스라엘 땅으로 데려가겠다.
13 내 백성아, 내가 이렇게 너희 무덤을 열고, 그 무덤에서 너희를 끌어 올리면,
그제야 너희는 내가 주님임을 알게 될 것이다.
14 내가 너희 안에 내 영을 넣어 주어 너희를 살린 다음,
너희 땅으로 데려다 놓겠다.
그제야 너희는,
나 주님은 말하고 그대로 실천한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주님의 말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 음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2,34-40
그때에 34 예수님께서 사두가이들의 말문을 막아 버리셨다는 소식을 듣고
바리사이들이 한데 모였다.
35 그들 가운데 율법 교사 한 사람이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물었다.
36 “스승님, 율법에서 가장 큰 계명은 무엇입니까?”
37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38 이것이 가장 크고 첫째가는 계명이다.
39 둘째도 이와 같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
40 온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 이 두 계명에 달려 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심판을 선고하던 에제키엘이, 예루살렘이 함락된 뒤에는 구원을 선포합니다. 심판 선고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던 자들이 막상 멸망하고 나니 절망에 빠지는데, 심판을 선고하였던 예언자는 오히려 희망을 선포합니다.
희망이라는 것, 쉽지 않은 덕목입니다. 문명이 발달하였다고 하는데, 사람들은 전보다 더 간절히 희망을 이야기합니까? 어떻게 희망을 말할 수 있을까요? 에제키엘에게서 분명히 볼 수 있는 것은, 그가 선포하는 희망은 하느님에 대한 믿음에서 온다는 것입니다. 마른 뼈들이 살아날 수 있을지 여부에 대해서, 에제키엘은 판단하지 않습니다. “당신께서 아십니다”(에제 37,3).
다른 많은 사람이 그러하였듯이 에제키엘이 보기에도 마른 뼈들이 살아나는 것은 하느님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에제키엘은 하느님을 믿고, 그분께서 하라고 하시는 대로 합니다. 마른 뼈들에게 살아나리라고 예언하라는 것은, 아무런 희망이 없다고 여기던 이스라엘에게 희망을 선포하라는 것과 같은 말씀이었습니다. 그런데 에제키엘은 그 말씀을 믿고 선포합니다.
그가 부르심을 받던 장면이 떠오릅니다. 하느님께서는 심판을 선고하라고 에제키엘을 보내시면서, 이스라엘이 완고하여 듣지 않으리라고 하시며 그들이 듣든 듣지 않든 선포하여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이 듣든, 또는 그들이 반항의 집안이어서 듣지 않든, 자기들 가운데에 예언자가 있다는 사실만은 알게 될 것이다”(2,5). 모두 절망하고 있을 때 희망을 말할 수 있다면 그것은 그가 예언자이기 때문이고, 그가 자신의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희망은 오직 하느님에게서 옵니다.(안소근 실비아 수녀)
진정한 사랑은 역동적인 것, 누군가를 위해 기꺼이 움직이는 것입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저희 살레시오회 창립자 성 요한 보스코가 청소년 교육을 위해 창안한 교육 방식을 ‘예방교육’이라고 칭합니다. 예방교육을 한 마디로 ‘마음의 교육학’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저도 처음 이 용어를 접하고 마음의 교육학? 무슨 뜬금없는 말인가? 했습니다.
그런데 살레시오 회원으로 연륜이 조금씩 쌓이면서 아주 조금씩 마음의 교육학에 대해서 수긍을 하게 되고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습니다.
매사에 마음이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모릅니다. 수많은 교사들을 만났는데, 아이들을 위한 마음이 조금도 없는 교사들도 계시더군요. 마음이 없으니 열정도 없고, 사랑도 없습니다. 아이에 대한 기대도 없고, 그저 때되면 월급 나오고, 일년 지나면 헤어지고...마음이 없는 교사들의 전형적인 모습입니다.
반면에 마음이 있는 선생님들, 스승님들, 정말이지 대단합니다. 아이들에 대한 마음이 관심을 지닙니다. 그의 미래에, 그의 성적에, 그의 내면에 신경을 씁니다. 그를 위해 시간을 내고, 그를 위해 헌신합니다. 자신에게 맡겨진 아이들 하나하나가 내 자식 같습니다.
마음이 없는 사목자들도 만납니다. 자신에게 맡겨진 양들을 위한 마음이 조금도 없습니다. 그의 마음이 늘 다른 데 가 있습니다. 양들의 영혼, 그들의 건강과 행복, 구원과 영생에는 조금도 관심이 없습니다. 마음이 없으니 헌신도 희생도 없습니다.
예수님 말씀에 따르면 그들은 삯꾼일 뿐입니다. 그저 자기 자리 잘 보전하고 자기 한 몸 지키는데 급급합니다. 그런 상황에서 성장이나 쇄신은 조금도 기대할 수 없습니다.
하느님과 관련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음 없이 드리는 제사, 건성건성 바치는 봉헌, 습관처럼 해치우는 미사, 그저 하나의 요식행위일 뿐입니다.
목숨도 마찬가지입니다. 목숨이라고 다 같은 목숨이 아닙니다. 주변을 둘러보면 파리목숨 같은 목숨도 있고, 너무나 어이없고 하찮은 목숨도 있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단 한번 뿐인 이 목숨, 얼마나 소중한 것인데 말입니다.
가끔 후배들에게 한 마디 할 기회가 생기면 어쩔 수 없이 ‘왕꼰대’가 되고 맙니다.
“여러분들, 시편 말씀 기억하십니까? 우리가 아무리 난다긴다 할지라도 숨 한번 끊어지면 즉시 흙으로 돌아가고 맙니다. 뭐 그리 아끼고, 애지중지하고, 그렇게 목숨 걸고 관리합니까? 움직일 수 있을 때, 누군가에게 도움 줄 수 있을 때, 아낌없이 팔 걷어붙이고 움직이십시오. 진정한 사랑은 역동적인 것, 누군가를 위해 부지런히 움직이는 것입니다.”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
지금부터 33년 전, 1991년 8월 23일 금요일입니다. 저는 교구장인 고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님으로부터 사제서품을 받았습니다. 그날의 설렘과 감동은 빛바랜 사진처럼 추억의 책장에 묻혀있습니다. 보좌 신부 8년, 본당 신부 8년, 교구청에서 8년을 살았습니다. 해외에서 9년을 살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제게 축복을 주셨습니다. 부족한 저를 위해서 좋은 분들을 보내 주셨습니다. 본당 신부님들은 제게 이정표가 되어 주었습니다. 기도하는 사제의 모습을 보여 주었습니다. 포근하게 감싸 안는 사제의 모습을 보여 주었습니다. 사목의 열정을 보여 주었습니다. 책을 가까이하고, 성실한 모습을 보여 주었습니다. 제가 33년을 사제로 지낼 수 있는 것은 모두 제게 이정표가 되었던 신부님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본당에서 2명의 사제와 교구청에서 2명의 사제와 함께 지냈고, 이곳 댈러스에서 1명의 사제와 함께 지내고 있습니다. 먼저 사제가 된 선배로서 이정표가 되어야 했는데, 부족함이 많았습니다.
8년간 본당 신부로 지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저의 부족함을 아시고, 이미 성당이 완공된 곳으로 보내 주셨습니다. 적성에서는 초대 신부님이 성당과 사제관을 신축하였습니다. 저는 2대 신부로 부임했습니다. 초대 신부님이 잘 차려놓은 밥상에 저는 교우들과 함께 말씀의 공동체를 반찬으로 만들었습니다. 본당 교우는 작았지만, 관할 구역은 넓었습니다. 33년 사제 생활 중에 보람 있고, 행복했던 시간이었습니다. 2번째 본당인 시흥 5동 성당도 전임 신부님이 성전 신축을 하고 떠났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저의 부족함을 아시고, 좋은 봉사자들을 보내 주셨습니다. 교우들은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지혜를 보여 주었습니다. 태풍 곤파스의 영향으로 성당 뒷산의 토사가 밀려왔습니다. 서울 시장도 와서 피해 상황을 살폈습니다. 저는 산의 높이를 낮추자고 제안했습니다. 서울시와 관할 구청에서도 저의 의견을 받아들였습니다. 성당 뒷산의 높이를 낮추니 성당에 큰 마당이 생겼습니다. 교우들은 마당에 잔디를 심었습니다. 철쭉과 유실수를 심었습니다. 태풍이 지나간 자리에 아늑한 마당이 생겼습니다. 함께 하면 위기는 기회가 된다는 걸 실감했습니다.
뉴욕에서 5년을 지냈고, 지난 2월부터 댈러스 성 김대건 안드레아 성당에서 지내고 있습니다. 이 또한 감사할 일입니다. 뉴욕에서는 팬데믹의 터널을 지나왔습니다. 동북부에 있는 사제들이 함께했기에 팬데믹 중에도 기쁘게 지낼 수 있었습니다. 함께 캠핑도 다녔고, 함께 사목에 관한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뉴욕에서 제가 했던 일은 신문을 제작하고, 홍보하는 일이었습니다. 팬데믹의 여파로 신문 홍보가 쉽지 않았습니다. 가톨릭 신문은 경영난으로 문을 닫았습니다. 제가 운영하던 가톨릭 평화신문은 팬데믹의 파도를 무사히 넘을 수 있었습니다. 힘든 시간들 함께 했던 직원들과 봉사자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저는 하느님의 사랑을 넘치게 받았습니다. 팬데믹 중에 미국에 더 머물 수 있도록 영주권 신청을 해 보라는 권유가 있었습니다. 2년이 안되어 영주권이 나왔고 그것이 계기가 되어서 댈러스 성 김대건 안드레아 성당으로 왔습니다. 댈러스 한인 성당의 전임 신부님이 저의 동창신부님입니다. 동창 신부님이 있던 곳이라서 마음이 편하고, 예전부터 잘 알고 있었던 느낌입니다. 이 모든 것이 주님의 은총입니다.
오늘 율법교사는 예수님께 이렇게 질문하였습니다. ‘스승님, 율법에서 가장 큰 계명은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이것이 가장 크고 첫째가는 계명이다. 둘째도 이와 같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온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 이 두 계명에 달려 있다.” 그리고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이야기를 들려 주셨습니다. 사랑은 관념이 아니고 사랑은 실천이며, 사랑은 삶입니다. “내가 너희 안에 내 영을 넣어 주어 너희를 살린 다음, 너희 땅으로 데려다 놓겠다. 그제야 너희는 나, 주님은 말하고 그대로 실천한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예수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며 사제서품 33년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지내려합니다.
<사랑>
상지종 베르니르도 신부님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마태 22,37.39)
하느님께서
늘 그렇게 또렷이
나의 하느님이시듯이
나는
늘 그렇게 또렷이
하느님의 나이겠어요
벗님께서
늘 그렇게 또렷이
나의 벗님이시듯이
나는
늘 그렇게 또렷이
벗님의 나이겠어요
오늘의 성인
성녀 로사(Rose)
신분 : 은수자, 3회원
활동지역 : 리마(Lima)
활동연도 : 1586-1617년
같은이름 : 로싸, 로즈
1586년 4월 20일 페루 리마의 에스파냐 가문에서 태어나 이사벨 데 플로레스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받은 성녀는 14살 때에 로사(Rosa)라는 이름으로 견진을 받았다. 용모가 빼어나게 아름다웠던 그녀는 양친의 결혼 계획을 끝내 반대하고는, 어릴 때부터 자신의 모델 성녀로 모시던 시에나(Siena)의 성녀 카타리나(Catharina)를 본받기 위하여 엄격한 생활을 하기 시작하였다. 로사는 도미니코회 3회원이 되었는데, 그녀가 부모를 도와야 할 입장이므로 정원의 통나무 집 속에서 은수생활을 하였다.
이때부터 여러 가지 신비적인 특은을 비롯하여 환시를 보았는데, 초자연적인 일들이 자주 일어나게 되자, 사제와 전문가들로 구성된 조사위원회가 그녀를 심사하는 사태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그들은 로사 주변의 모든 일들이 초자연적인 사실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자 로사의 성덕 이야기가 퍼져나가기 시작하여 자기의 집 정원은 영성 센터로 변하였다.
건강이 나빴던 관계로 로사는 돈 곤잘로 데 마사와 그 아내의 제안을 받아들여 3년 동안 리마에 있는 그들의 집에서 지내다가 운명하였다.
그녀는 교황 클레멘스 10세(Clemens X)에 의하여 1671년 4월 12일 신세계의 첫 번째 성인으로 시성되었으며, 페루와 남아메리카, 서인도 제도, 필리핀의 수호성인으로 선포되었다
성 필립보 베니시오(Philip Benitius)
활동년도 : 1233-1285년
신분 : 총장
지역 :
같은 이름 : 베니시우스, 베니티오, 베니티우스, 비리버, 필리뽀, 필리뿌스, 필리포, 필리포스, 필리푸스, 필립, 필립부스, 필립뽀, 필립뿌스, 필립포, 필립푸스
이탈리아 중부 피렌체(Firenze)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난 성 필리푸스 베니티우스(Philippus Benitius, 또는 필립보 베니시오)는 프랑스 파리(Paris)와 이탈리아의 파도바(Padova)에서 의학을 공부하여 의학과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는데, 이때 그의 나이는 불과 19세였다. 그는 즉시 피렌체에서 의원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만 일년을 일한 후 몬테 세나리오에 있는 마리아의 종 수도회에 입회하였다.
그는 1259년에 사제가 되었다. 그 후 그는 설교로 더욱 유명해졌고 나중에는 총장까지 되었다. 그는 수도회의 회칙을 제정하였고, 오토부오니(Ottobuoni) 추기경이 그를 교황 후보자로 추천하였을 때 새 교황이 선출될 때까지 어느 동굴에 숨어 살았다. 그는 리옹(Lyon) 공의회에 참석하여 큰 영향을 미쳤으며, 코르닐롱산(Mount Cornillon)의 성녀 율리아나(Juliana, 4월 5일)를 도와서 마리아의 종 수도회 3회를 설립토록 적극 지원하였음은 물론, 회원들을 극동의 선교사로 파견하였다. 1285년 그는 총장직을 사임하고 토디(Todi) 수도원에서 은거하다가 운명하였다. 그는 1645년 8월 8일 교황 인노켄티우스 10세(Innocentius X)에 의해 시복되었고, 1671년 4월 12일 교황 클레멘스 10세(Clemens X)에 의해 시성되었다.